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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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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86화(8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86화
“아무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으니까 영 어색하구먼.”
“형, 사실 KICKS하고의 신경전을 즐기고 계셨던 거예요?”
“몰라, 그랬나 봐.”
내우주 활동 때만 해도 사녹은 꿈도 못 꾸고 펑크 메우기로나 들어갔던 레브였는데, 이제는 사녹 스케줄이 당연해졌다.
회귀 전 이때쯤의 우리가 공중파 음방에도 발을 못 디딜 수준의 망돌로 전락했다는 걸 상기하면, 정말로 엄청난 성장이었다.
경쾌한 느낌의 노래답게 안무는 격렬한 부분 하나 없이 꽤 쉬웠지만, 서예현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우리 또 쉬운 안무 들고 왔다고 비웃음당하는 거 아니야?”
“이제는 댄스 구멍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은 형 마음은 이해하는데요. 여기에 빡센 안무는 안 어울려요. 그리고 형이 간절함 없이 칼군무를 완성하려면 아직 멀었어여.”
“간절함은 또 뭔데.”
“예를 들면 KICKS와의 대결이라든가, 하준이 형의 패왕색 패기라던가.”
“그렇다고 매번 내 실력 끌어올린다고 KICKS 놈들이랑 대결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져.”
스승과 제자, 기사멸조 이러고 있더니만 김도빈과 서예현, 이 둘의 사이는 꽤 가까워진 것 같이 보였다.
아직도 나와 김도빈의 사이 개선도는 48%라는 걸 생각하니 뭔가 괘씸했다.
이 자식은 잘 대해 줘도 사이 개선도가 절대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이전처럼 하던 대로 대했다.
“도빈이 말이 맞지. 대신 정규앨범 활동에서는 형 늘어난 실력 마음껏 뽐낼 수 있게 해 줄게. 그땐 빡세디빡센 칼군무로 가자.”
어차피 다음 곡까지 청량을 들고 오면 이제 슬슬 질린다는 여론이 나올 게 분명했으므로 다른 콘셉트로 바꿔야 했다.
“이번에도 충분히 1위 할 수 있겠죠?”
“그건 몰라. 이번에 맞붙는 상대가 꽤 세서. 저번처럼 빈집 생각하면 안 돼.”
하필 이번 활동은 음원 강자 여돌과 활동 시기가 겹쳤다.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레브와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3년 차 걸그룹.
내 기억에 따르면, 그들이 들고나온 노래는 음악방송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던 노래였다.
3주 동안 3사 지상파 음방 1위를 차지했다는 의미다. 아마 이번 연도 2분기 최고 히트곡이었던가.
‘이번 활동이 진짜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판이 되겠군.’
저번 활동은 회귀 전에 이미 검증된 노래에 빈집털이에다가 라이벌이 우리보다 구린 곡을 들고 온 KICKS라서 결과가 좋게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런 짜릿함은 또 오랜만에 느껴 보는군.
회귀 전, 곡을 세상에 내놓을 때 느끼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절대 실패해서 다시 회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1군에 도달하도록 검증된 노래와 히트곡이 없는 시기만 골라 활동하리라 다짐했는데.
한 활동 만에 기어이 새로운 곡 들고 과거 히트곡과 직접 맞붙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지 않고 배기겠나.
음악이 아니었으면 도박했을 놈이라는 옛 지인의 회귀 전 내 평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인생이 걸린 일에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그 평가가 아예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레브 이동하실게요!”
스태프의 부름에 잡생각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컴백 첫 주 차니, 오늘은 순위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껏 무대나 즐기고 오자.
* * *
“와, 이게 슬럼프인가……?”
빈 스케줄 시간, 작업실 책상에 엎드려 중얼거렸다.
이 곡을 뛰어넘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도저히 작업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정규앨범 수록곡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뽑아 놨고, 남은 건 타이틀곡 후보들이었다.
많은 시간과 자본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정규앨범이 리패키지 앨범보다 더 낮은 성적을 내도록 할 수는 없었다.
이번 리패키지 앨범 성적은 꽤 좋았다.
더군다나 이번 앨범은 리패키지임에도 초동이 지난 앨범보다 2만 장 더 높은 80,2**장을 찍었고, 현재 는 음원 차트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더욱 정규앨범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성공과 실패는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 성적을 뛰어넘느냐 마냐의 차이였지.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나.’
어차피 머리는 안 돌아가고, 곡도 안 나오니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며 유통기한이 생긴 랜덤 티켓이나 까 보기로 했다.
[랜덤 티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yes를 연속 세 번 터치하자 세 개의 상태창이 차례로 떴다.
[아이템 ‘언젠가의 USB’가 나왔습니다!]
[아이템 ‘자각몽’이 나왔습니다!]
[아이템 ‘진실의 물약’이 나왔습니다!]
일단 한 달이라는 새로 생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랜덤 티켓 세 개를 오픈했다.
언젠가의 USB는 이전에 나왔던 것과 비슷하게 회귀 전의 내 작업물들이 들어 있었으며 자각몽은 몸은 쉬면서 꿈속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템.
진실의 물약은 말 그대로 마음속 깊숙한 진실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템이었다.
USB에 들어 있는 곡은 회귀 전 음원 본상까지 탔던 곡이지만, 첫 정규앨범의 타이틀곡을 예전 곡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는 세 아이템 다 슬럼프를 이겨 내는 데엔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슬럼프는 처음 겪어 보는군.
이전에는 내가 그 노래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부담감이 덜 해서 그랬나?
‘G1에게 슬럼프 극복 방법이라도 물어봐?’
이 인간, 은근 단호해서 그건 네가 알아서 극복할 일이라고 선 그을 거 같은데.
G1은 사적인 일을 깊이 친분을 쌓지 않은 상대가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했다.
겨우 만들어 놓은 인맥인데 겨우 그런 거로 끊길 수는 없었다.
“뭐,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작업실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내가 가볍게 여겼던 그 슬럼프는…….
‘시발, 내가 서예현 같은 실수를.’
[무대 위 실수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7]
급히 발 방향을 바꿨지만 이미 초심도는 깎였다. 그것도 7점이나.
2회차 때 마지막으로 보고 그 뒤로 볼일 없었던 상태창이라서 그런지 더 자존심 상했다.
며칠간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뻑뻑해진 눈을 무의식적으로 문지르려다가 현재 메이크업이 된 상태라는 걸 자각하고 손을 내렸다.
이놈의 슬럼프는 대가로 불면증까지 얹어 주었다.
꿈에서도 현실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까 봐 자각몽 아이템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정규앨범 타이틀곡 및 콘셉트 관련 회의까지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였다.
촬영분을 모니터링하면서 카메라가 상체를 잡은 덕에 무사히 묻힌 실수에 안도한 것도 잠시.
“이든아, 너 요즘 잠 못 자지?”
역시나 제일 먼저 내 상태를 캐치한 건 견하준이었다.
몸 관리 항목까지 강제로 위클리 퀘스트에 넣어 놓은 시스템 덕분에 나는 수면 부족 빼고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어 다크서클이 좀 생긴 걸 제외하고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다크서클도 메이크업으로 커버하면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고.
“아니, 잘 자는데.”
하지만 뭔가 슬럼프 때문에 불면증까지 왔다고 다른 멤버들까지 다 있는 곳에서 말하긴 자존심 상해서 곧바로 부정했다.
“예현이 형, 얘 요즘 방에서 잠 잘 자요?”
견하준이 나와 룸메이트인 서예현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서예현은 7시간 수면을 딱 지키느라 내가 잠을 못 자든 말든 저 혼자 새근거리며 편안한 숙면을 취했기 때문이다.
메이크업을 지우자마자 뻑뻑한 눈을 문지르는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말했다.
“너 그러다가 또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정밀 건강검진만 받으면 뭐 해. 네가 병을 만드는데.”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 작업실행을 금지당했다.
물론 무시하고 갈 수야 있겠지만, 나도 작업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나오는 날의 반복에 꽤 지쳐 있었으므로 순순히 숙소에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숙소나 작업실이나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은 앞에 장비가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덜하다는 것 정도?
김도빈과 서예현은 또 춤 연습한다고 연습실로 가고, 류재희는 그런 둘을 구경하겠다고 쫄래쫄래 따라간 덕에 숙소에는 나와 견하준뿐이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자 케모마일 차가 담긴 머그컵을 내게 내민 견하준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는 좀 남에게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는 팀인데 너는 항상 혼자 끌고 가려 하잖아.”
“내가?”
“그래, 원찬스 때부터 지금까지 쭉.”
무한회귀 피하겠다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달려오긴 했구나.
회귀 전 강제로 가졌던 장기 휴식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게 차라리 나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망돌 시절을 그리워하면 안 되지.
케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 차분해졌다.
“곡이 안 써져. 슬럼프인가 봐.”
어차피 견하준은 자존심 세울 상대가 아니기에 순순히 털어놓았다.
“어쩐지…… 그래서 불면증도 도진 거고?”
“아마.”
고개를 까딱이며 반쯤 긍정하자 견하준이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부담가지지 마. 앨범 한 번 망해도 너 원망할 사람 레브에서 아무도 없어. 그리고 거하게 말아 드신 대표님도 부담 안 가지시고 기도 안 죽으셨잖아.”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 나는 기껏 이번 앨범보다 성적이 덜 나올 거 정도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내 노래인데 망할 리 없지.”
“우울증 단계까지는 접어들지 않은 것 같아서 안심이네.”
한결 안도한 표정으로 견하준이 나를 마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네가 정 못하겠으면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도 되고. 아, 대표님이 아는 프로듀서는 빼고.”
다급히 덧붙이는 견하준의 말에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당연하지. 정규앨범에 또 내우주 같은 곡을 들고 오라고?”
“대표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걸.”
“동감. 정 내가 못 하겠으면 G1 형님에게라도 SOS 치지, 뭐. 그 형님이 곡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 했거든.”
어느새 케모마일 차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단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 갑자기 악상이 떠오른다거나 슬럼프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잠이 훅 몰려오긴 했다.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자, 내 손에서 머그컵을 가져간 견하준이 잠은 올 때 자야 한다며 나를 내 방으로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스르륵 눈을 감고 오랜만에 푹 숙면을 취했다.
며칠 만에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마자 소파에서 몸을 구기고 자고 있는 서예현을 발견했다.
흔들어 깨우자 서예현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방 놔두고 왜 여기에서 자고 있어?”
“하준이가 너 오랜만에 잠들었으니까 방 들어가지 말고 자기 침대에서 자라잖아. 자기는 소파에서 자겠다고. 그래서 내가 그냥 소파에서 잤지.”
오직 나 하나의 숙면을 위해서 잠자리까지 양보하며 배려해 준 둘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고마워.”
내 감사 인사에 이불을 슬쩍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뜬 서예현이 물었다.
“너 혹시 윤이든의 몸에 빙의된 타인의 영혼은 아니지?”
아무래도 김도빈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까 물들었나 보다.
불과 몇 주 전에 내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건 멀찍이 치워 놓았다.
그때 입 밖으로 안 내뱉어서 다행이다. 진짜 씹덕 같아 보이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86화(8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86화

“아무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으니까 영 어색하구먼.”

“형, 사실 KICKS하고의 신경전을 즐기고 계셨던 거예요?”

“몰라, 그랬나 봐.”

내우주 활동 때만 해도 사녹은 꿈도 못 꾸고 펑크 메우기로나 들어갔던 레브였는데, 이제는 사녹 스케줄이 당연해졌다.

회귀 전 이때쯤의 우리가 공중파 음방에도 발을 못 디딜 수준의 망돌로 전락했다는 걸 상기하면, 정말로 엄청난 성장이었다.

경쾌한 느낌의 노래답게 안무는 격렬한 부분 하나 없이 꽤 쉬웠지만, 서예현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우리 또 쉬운 안무 들고 왔다고 비웃음당하는 거 아니야?”

“이제는 댄스 구멍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은 형 마음은 이해하는데요. 여기에 빡센 안무는 안 어울려요. 그리고 형이 간절함 없이 칼군무를 완성하려면 아직 멀었어여.”

“간절함은 또 뭔데.”

“예를 들면 KICKS와의 대결이라든가, 하준이 형의 패왕색 패기라던가.”

“그렇다고 매번 내 실력 끌어올린다고 KICKS 놈들이랑 대결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져.”

스승과 제자, 기사멸조 이러고 있더니만 김도빈과 서예현, 이 둘의 사이는 꽤 가까워진 것 같이 보였다.

아직도 나와 김도빈의 사이 개선도는 48%라는 걸 생각하니 뭔가 괘씸했다.

이 자식은 잘 대해 줘도 사이 개선도가 절대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이전처럼 하던 대로 대했다.

“도빈이 말이 맞지. 대신 정규앨범 활동에서는 형 늘어난 실력 마음껏 뽐낼 수 있게 해 줄게. 그땐 빡세디빡센 칼군무로 가자.”

어차피 다음 곡까지 청량을 들고 오면 이제 슬슬 질린다는 여론이 나올 게 분명했으므로 다른 콘셉트로 바꿔야 했다.

“이번에도 충분히 1위 할 수 있겠죠?”

“그건 몰라. 이번에 맞붙는 상대가 꽤 세서. 저번처럼 빈집 생각하면 안 돼.”

하필 이번 활동은 음원 강자 여돌과 활동 시기가 겹쳤다.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레브와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3년 차 걸그룹.

내 기억에 따르면, 그들이 들고나온 노래는 음악방송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던 노래였다.

3주 동안 3사 지상파 음방 1위를 차지했다는 의미다. 아마 이번 연도 2분기 최고 히트곡이었던가.

‘이번 활동이 진짜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판이 되겠군.’

저번 활동은 회귀 전에 이미 검증된 노래에 빈집털이에다가 라이벌이 우리보다 구린 곡을 들고 온 KICKS라서 결과가 좋게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런 짜릿함은 또 오랜만에 느껴 보는군.

회귀 전, 곡을 세상에 내놓을 때 느끼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절대 실패해서 다시 회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1군에 도달하도록 검증된 노래와 히트곡이 없는 시기만 골라 활동하리라 다짐했는데.

한 활동 만에 기어이 새로운 곡 들고 과거 히트곡과 직접 맞붙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지 않고 배기겠나.

음악이 아니었으면 도박했을 놈이라는 옛 지인의 회귀 전 내 평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인생이 걸린 일에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그 평가가 아예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레브 이동하실게요!”

스태프의 부름에 잡생각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컴백 첫 주 차니, 오늘은 순위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껏 무대나 즐기고 오자.

* * *

“와, 이게 슬럼프인가……?”

빈 스케줄 시간, 작업실 책상에 엎드려 중얼거렸다.

이 곡을 뛰어넘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도저히 작업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정규앨범 수록곡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뽑아 놨고, 남은 건 타이틀곡 후보들이었다.

많은 시간과 자본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정규앨범이 리패키지 앨범보다 더 낮은 성적을 내도록 할 수는 없었다.

이번 리패키지 앨범 성적은 꽤 좋았다.

더군다나 이번 앨범은 리패키지임에도 초동이 지난 앨범보다 2만 장 더 높은 80,2**장을 찍었고, 현재 는 음원 차트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더욱 정규앨범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성공과 실패는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 성적을 뛰어넘느냐 마냐의 차이였지.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나.’

어차피 머리는 안 돌아가고, 곡도 안 나오니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며 유통기한이 생긴 랜덤 티켓이나 까 보기로 했다.

yes를 연속 세 번 터치하자 세 개의 상태창이 차례로 떴다.

일단 한 달이라는 새로 생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랜덤 티켓 세 개를 오픈했다.

언젠가의 USB는 이전에 나왔던 것과 비슷하게 회귀 전의 내 작업물들이 들어 있었으며 자각몽은 몸은 쉬면서 꿈속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템.

진실의 물약은 말 그대로 마음속 깊숙한 진실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템이었다.

USB에 들어 있는 곡은 회귀 전 음원 본상까지 탔던 곡이지만, 첫 정규앨범의 타이틀곡을 예전 곡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는 세 아이템 다 슬럼프를 이겨 내는 데엔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슬럼프는 처음 겪어 보는군.

이전에는 내가 그 노래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부담감이 덜 해서 그랬나?

‘G1에게 슬럼프 극복 방법이라도 물어봐?’

이 인간, 은근 단호해서 그건 네가 알아서 극복할 일이라고 선 그을 거 같은데.

G1은 사적인 일을 깊이 친분을 쌓지 않은 상대가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했다.

겨우 만들어 놓은 인맥인데 겨우 그런 거로 끊길 수는 없었다.

“뭐,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작업실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내가 가볍게 여겼던 그 슬럼프는…….

‘시발, 내가 서예현 같은 실수를.’

급히 발 방향을 바꿨지만 이미 초심도는 깎였다. 그것도 7점이나.

2회차 때 마지막으로 보고 그 뒤로 볼일 없었던 상태창이라서 그런지 더 자존심 상했다.

며칠간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뻑뻑해진 눈을 무의식적으로 문지르려다가 현재 메이크업이 된 상태라는 걸 자각하고 손을 내렸다.

이놈의 슬럼프는 대가로 불면증까지 얹어 주었다.

꿈에서도 현실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까 봐 자각몽 아이템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정규앨범 타이틀곡 및 콘셉트 관련 회의까지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였다.

촬영분을 모니터링하면서 카메라가 상체를 잡은 덕에 무사히 묻힌 실수에 안도한 것도 잠시.

“이든아, 너 요즘 잠 못 자지?”

역시나 제일 먼저 내 상태를 캐치한 건 견하준이었다.

몸 관리 항목까지 강제로 위클리 퀘스트에 넣어 놓은 시스템 덕분에 나는 수면 부족 빼고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어 다크서클이 좀 생긴 걸 제외하고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다크서클도 메이크업으로 커버하면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고.

“아니, 잘 자는데.”

하지만 뭔가 슬럼프 때문에 불면증까지 왔다고 다른 멤버들까지 다 있는 곳에서 말하긴 자존심 상해서 곧바로 부정했다.

“예현이 형, 얘 요즘 방에서 잠 잘 자요?”

견하준이 나와 룸메이트인 서예현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서예현은 7시간 수면을 딱 지키느라 내가 잠을 못 자든 말든 저 혼자 새근거리며 편안한 숙면을 취했기 때문이다.

메이크업을 지우자마자 뻑뻑한 눈을 문지르는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말했다.

“너 그러다가 또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정밀 건강검진만 받으면 뭐 해. 네가 병을 만드는데.”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 작업실행을 금지당했다.

물론 무시하고 갈 수야 있겠지만, 나도 작업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나오는 날의 반복에 꽤 지쳐 있었으므로 순순히 숙소에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숙소나 작업실이나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은 앞에 장비가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덜하다는 것 정도?

김도빈과 서예현은 또 춤 연습한다고 연습실로 가고, 류재희는 그런 둘을 구경하겠다고 쫄래쫄래 따라간 덕에 숙소에는 나와 견하준뿐이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자 케모마일 차가 담긴 머그컵을 내게 내민 견하준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는 좀 남에게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는 팀인데 너는 항상 혼자 끌고 가려 하잖아.”

“내가?”

“그래, 원찬스 때부터 지금까지 쭉.”

무한회귀 피하겠다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달려오긴 했구나.

회귀 전 강제로 가졌던 장기 휴식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게 차라리 나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망돌 시절을 그리워하면 안 되지.

케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 차분해졌다.

“곡이 안 써져. 슬럼프인가 봐.”

어차피 견하준은 자존심 세울 상대가 아니기에 순순히 털어놓았다.

“어쩐지…… 그래서 불면증도 도진 거고?”

“아마.”

고개를 까딱이며 반쯤 긍정하자 견하준이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부담가지지 마. 앨범 한 번 망해도 너 원망할 사람 레브에서 아무도 없어. 그리고 거하게 말아 드신 대표님도 부담 안 가지시고 기도 안 죽으셨잖아.”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 나는 기껏 이번 앨범보다 성적이 덜 나올 거 정도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내 노래인데 망할 리 없지.”

“우울증 단계까지는 접어들지 않은 것 같아서 안심이네.”

한결 안도한 표정으로 견하준이 나를 마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네가 정 못하겠으면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도 되고. 아, 대표님이 아는 프로듀서는 빼고.”

다급히 덧붙이는 견하준의 말에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당연하지. 정규앨범에 또 내우주 같은 곡을 들고 오라고?”

“대표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걸.”

“동감. 정 내가 못 하겠으면 G1 형님에게라도 SOS 치지, 뭐. 그 형님이 곡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 했거든.”

어느새 케모마일 차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단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 갑자기 악상이 떠오른다거나 슬럼프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잠이 훅 몰려오긴 했다.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자, 내 손에서 머그컵을 가져간 견하준이 잠은 올 때 자야 한다며 나를 내 방으로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스르륵 눈을 감고 오랜만에 푹 숙면을 취했다.

며칠 만에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마자 소파에서 몸을 구기고 자고 있는 서예현을 발견했다.

흔들어 깨우자 서예현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방 놔두고 왜 여기에서 자고 있어?”

“하준이가 너 오랜만에 잠들었으니까 방 들어가지 말고 자기 침대에서 자라잖아. 자기는 소파에서 자겠다고. 그래서 내가 그냥 소파에서 잤지.”

오직 나 하나의 숙면을 위해서 잠자리까지 양보하며 배려해 준 둘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고마워.”

내 감사 인사에 이불을 슬쩍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뜬 서예현이 물었다.

“너 혹시 윤이든의 몸에 빙의된 타인의 영혼은 아니지?”

아무래도 김도빈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까 물들었나 보다.

불과 몇 주 전에 내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건 멀찍이 치워 놓았다.

그때 입 밖으로 안 내뱉어서 다행이다. 진짜 씹덕 같아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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