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57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4화(576/5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4화
* * *
약속했던 만남은 내 개인 작업실이 아닌 소속사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이해원을 회귀 전처럼 내 개인 작업실까지 거리낌 없이 들이기엔 아직 현재 이해원과 나의 거리감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
먼저 와 있던 이해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꾸벅 인사하다가 내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김도빈을 발견하고 거듭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본인에게 갑작스러운 엄청난 양의 숙제를 떠안겨 준 원흉을 보고서도 이해원은 딱히 김도빈한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당연하다. 원흉인지 모르니까. 그냥 나만 악덕 선배 된 거지. 김도빈 이미지 지켜 주느라 내가 참 고생이 많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으로 이해원에게는 악보가 있는 곡을 숙제로 내줬다. 힘들면 악보 보고 베끼라고.
하지만 내 넓은 도량도 모르고 김도빈은 나를 후배 연습생 잡는 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형, 얘랑 얼마나 빡센 작곡 놀이를 했길래 애가 이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요? 딱 예현이 형이 녹음실로 끌려가기 직전의 그 표정이잖아요.”
어쩐지 얼굴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왜 얘만 보면 서예현이 떠오르나 싶었는데, 표정이 똑같았구나.
오?
“작곡 놀이요…?”
이해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도빈의 눈이 커졌다.
“이든이 형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작곡 놀이를 모른다고? 형 그러면 대체 얘 데리고 뭐 하는 거예요?”
“작곡 공부, 작곡 스터디, 작곡 과외, 인마!”
너와 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로 말하면 얘가 알아듣겠냐고. 단어를 바로잡아 줬건만 김도빈은 또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럼 저는 형의 제자가 아니라 그저 한낱 놀잇감이었다는 소리네요?”
“뭐라는 거야, 인마!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진지하게 하지 마! 네가 나한테 즐거움을 안 줬는데 어떻게 네가 한낱 놀잇감이냐? 놀잇감은 즐거움이라도 주지!”
열받아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김도빈을 향해 윽박지르며 탈탈 털고 있자 이해원이 더욱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우리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도 잠시.
김도빈이 이해원을 향해 살갑게 대화를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목적은 아니고,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한 개수작이었다.
“내가 이든이 형의 마수에서 확실히 커버 쳐 줄 테니까 솔직하게 대답을 좀 해 주세요. 이거는 제 미래가 달린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솔직하게 대답을 해 줘야 해요.”
“네…? 그런 중요한 질문을 제가 대답해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무작정 음악만 듣고 악보를 써 오라는 게 작곡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네, 확실히 도움되더라고요. 음 파악 능력도 늘고 코드 진행이나 리듬 패턴, 스타일 같은 것들도 계속하다 보니까 학습이 되고요, 멜로디를 바로 악보로 옮긴다거나, 그거를 편곡해 본다든가 하는 그런 감각들도 채보를 하다 보니까 늘더라고요.”
“나는 그쪽이 내 과인 줄 알았는데 이든이 형 과였구나. 이든이 형이랑 동족이었다니.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이었어.”
개수작을 실패한 김도빈이 죽상을 하며 한탄했다.
“거 봐라, 도빈아. 내가 너한테 쓸데없는 거 시켰겠냐? 해원이, 너는 숙제하면서 안 어려웠어?”
“계속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면서 감이 잡히더라고요. 오히려 하다 보니 속도도 더 붙어서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났기도 했고요.”
급조했던 숙제였는데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었다. 이참에 이걸로 김도빈의 작곡 능력도 더 늘어 내 스페어로 쓸 수 있는 수준은 달성하길 바란다.
LnL이 미는 포스트 윤이든으로서 작업물 좀 한번 들려 달라는 김도빈의 땡깡에 이해원이 머쓱한 얼굴로 음악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이야, 역시 재능 있는 사람은 다르네. 나는 이든이 형에게 몇 년을 갈굼 당해도 이 정도는 못 만드는데.”
“저도 이거 이든 선배님 피드백 엄청 받아 가면서 만든 거예요. 완전히 제 실력은 아니에요.”
김도빈과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며 이해원은 점차 긴장을 푸는 기색이었다. 말도 나랑 있을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얘가 이렇게까지 긴장을 푼 걸 보니, 김도빈이 옆에 있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나 보다.
왜지? 김도빈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생겨서 그런가?
* * *
김도빈의 주도로 이루어진 삼자대면이 끝나고, 숙소로 오는 차 안.
김도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먼저 말을 꺼냈다.
“놀잇감인 저랑 다른 형의 진정한 문하생 걔 있잖아요. 걔 약간, 뭐라 해야 하지? 사기 잘 당할 타입 같아요.”
“네가 할 소리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브 선정 가장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멤버 1위에 선정된 김도빈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저는 분위기 풀어 준다고 저렇게 바로 무장 해제 안 돼요. 제가 형한테 마음을 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형도 봤잖아요.”
“그랬냐?”
내 체감상으로는 김도빈이 마음의 문을 참 빨리 열어준 것 같았는데 본인은 오래 걸렸다고 하니 유감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오늘의 이해원은 김도빈이 없던 평소와는 달랐다. 확실히 예전, 그러니까 회귀 전에 내가 봤던 이해원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잘 모르겠던데.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라.”
“형 설마… 후배라고 녹음실에서 저랑 예현이 형 갈구던 것처럼 그렇게 잡은 거 아니죠?”
“딱히.”
너희는 내 음악을 완성시켜야 할 놈들이라 빡세게 잡은 거고. 자기 음악의 세계를 완성해 가는 놈을 그렇게 빡세게 잡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
얘랑 얽힌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는 내 감 때문에 그저 이해원에게 덜 살가웠을 뿐이다.
“쟤한테 잘해 줘요, 형. 형이 저렇게 다 가르쳐 놨는데 형 무섭다고 다른 소속사로 런하면 어떡해요. 그거 완전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잖아요.”
“세상에, 도빈이 네가 그런 속담도 아냐?”
“트트블에서 속담 게임 많이 나와서 속담 공부 좀 했죠. 그런데 왜 작곡 공부는 안 하냐고 하려고 했죠?”
김도빈이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내가 막 뱉으려고 했던 말을 고스란히 읊었다.
“이야, 너-”
“왜 이렇게 눈치 빨라졌냐고 하려고 했죠? 그게 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어서 그래요.”
내가 읽기 쉬운 건지, 아니면 김도빈이 정말로 눈치가 빨라진 건지.
“그런데 형, 혹시 어미가 ‘냐’로 끝나야 하는 저주라고 걸리셨나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그런 페널티가 한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신호를 기다리며 회상에 잠겨 있든 말든 김도빈은 옆에서 계속해서 입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걔는 확실히 LnL에서 데뷔하겠죠? 그래도 형이 직접 가르쳐 놨는데 다른 데에서 데뷔해서 형 이름 파는 것도 좀 웃기긴 하잖아요.”
핸들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잠깐만, 데뷔?’
회귀 전, 레브가 7주년을 맞이했던 해에 LnL은 우리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신인 남돌 데뷔조를 꾸리는 데 한창 바빴다.
지금이야 나로 인해 작곡·프듀멤의 중요성을 LnL이 깨달았다지만, 작곡프듀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회귀 전의 LnL이 과연 작곡 능력치 빼고는 다른 능력치는 다 애매한 이해원을 데뷔조에 넣었을까?
나이는 어리지만 나름 장기 연습생이었던 이해원이 데뷔조에 들지 못했다면? 과연 이해원은 불발된 데뷔에도 계속 LnL에 남아 있으려 할까?
물론 TK나 신월 같은 대형 기획사라면 6~7년 정도는 되어야지 장기 연습생으로 쳐 주겠지만 솔직히 회귀 전의 LnL은 3년도 충분히 장기 연습생이었다.
그러니까… LnL 데뷔조에 들지 못한 이해원이 소속사를 만약 신월로 옮겼다면.
연습생을 단순하게 데뷔가 아닌 착취할 유령 작곡가로도 아주 알뜰살뜰하게 써먹는 신월이라면 다른 능력치가 부족하더라도 작곡 능력 하나는 확실히 있는 이해원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데뷔시킬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자살한 신월 연습생이 이해원 본인이든, 이해원과 인연이 있던 제삼자이든 나한테까지 연결고리가 뻗어진 이유가 얼추 설명이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해원이 신월로 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예 아이돌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가로 전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28살 기억의 파편을 보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차연호에게 단순히 이 추측만으로 딜을 걸 수는 없었다.
신월 연습생 시스템에 관련해서는 차연호에게 조금 더 캐물어 봐야겠군. 과연 자기 소속사의 치부를 차연호가 순순히 밝히려 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케이제이 살리는 일이라 협조하라고 적당히 협박 곁들여서 윽박지르면 말해 주지 않을까 싶다. 딱 봐도 소속사보다는 케이제이가 훨씬 중요해 보이던데.
하긴, 나도 LnL 살릴래, 견하준 살릴래? 하면 당연히 견하준 살리지.
이렇게 보니, 아무래도 스물여덟 살 기억의 파편을 여는 접근법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꽤 높았다.
‘작곡 도움’이 아니라 믿고 고민을 털어놓고 소속사를 옮기고 나서까지 연락을 유지하는 ‘친분’이 기억의 파편을 열 수 있는 핵심 요지였을 수도.
하지만 문제는, 내가 왜인지 모를 찝찝함 때문에 묘하게 거리를 둔 탓에 이해원과 나의 현재 사이는 회귀 전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어색했다.
이해원이랑 이전처럼 친밀도를 쌓기에 아직 안 늦었겠지…?
그러고 보니까 김도빈이 이상한 고집을 부려서 오늘의 삼자대면 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기억의 파편을 열 기회를 완전히 날릴 뻔했다.
“도빈아, 역시 너는 행운 토템이다.”
오른손을 뻗어 조수석에 앉은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주며 말하자 김도빈이 눈을 찡긋했다.
“대체 어떤 점프를 거쳐서 제가 행운 토템이라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정 그렇게 고마우시다면 형이 내준 숙제를 3분의 1로 줄여 주시는 건?”
내가 참으로 고마운 김도빈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약 스무 곡이 너를 더 기다리고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속으로 삼키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DTB 방영일 아니에요? 형 오늘도 방송 보면서 해명 라방 대본 적을 거예요?”
김도빈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데이드림 반응 보고.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4화(576/5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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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던 만남은 내 개인 작업실이 아닌 소속사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이해원을 회귀 전처럼 내 개인 작업실까지 거리낌 없이 들이기엔 아직 현재 이해원과 나의 거리감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
먼저 와 있던 이해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꾸벅 인사하다가 내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김도빈을 발견하고 거듭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본인에게 갑작스러운 엄청난 양의 숙제를 떠안겨 준 원흉을 보고서도 이해원은 딱히 김도빈한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당연하다. 원흉인지 모르니까. 그냥 나만 악덕 선배 된 거지. 김도빈 이미지 지켜 주느라 내가 참 고생이 많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으로 이해원에게는 악보가 있는 곡을 숙제로 내줬다. 힘들면 악보 보고 베끼라고.
하지만 내 넓은 도량도 모르고 김도빈은 나를 후배 연습생 잡는 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형, 얘랑 얼마나 빡센 작곡 놀이를 했길래 애가 이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요? 딱 예현이 형이 녹음실로 끌려가기 직전의 그 표정이잖아요.”
어쩐지 얼굴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왜 얘만 보면 서예현이 떠오르나 싶었는데, 표정이 똑같았구나.
오?
“작곡 놀이요…?”
이해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도빈의 눈이 커졌다.
“이든이 형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작곡 놀이를 모른다고? 형 그러면 대체 얘 데리고 뭐 하는 거예요?”
“작곡 공부, 작곡 스터디, 작곡 과외, 인마!”
너와 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로 말하면 얘가 알아듣겠냐고. 단어를 바로잡아 줬건만 김도빈은 또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럼 저는 형의 제자가 아니라 그저 한낱 놀잇감이었다는 소리네요?”
“뭐라는 거야, 인마!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진지하게 하지 마! 네가 나한테 즐거움을 안 줬는데 어떻게 네가 한낱 놀잇감이냐? 놀잇감은 즐거움이라도 주지!”
열받아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김도빈을 향해 윽박지르며 탈탈 털고 있자 이해원이 더욱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우리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도 잠시.
김도빈이 이해원을 향해 살갑게 대화를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목적은 아니고,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한 개수작이었다.
“내가 이든이 형의 마수에서 확실히 커버 쳐 줄 테니까 솔직하게 대답을 좀 해 주세요. 이거는 제 미래가 달린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솔직하게 대답을 해 줘야 해요.”
“네…? 그런 중요한 질문을 제가 대답해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무작정 음악만 듣고 악보를 써 오라는 게 작곡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네, 확실히 도움되더라고요. 음 파악 능력도 늘고 코드 진행이나 리듬 패턴, 스타일 같은 것들도 계속하다 보니까 학습이 되고요, 멜로디를 바로 악보로 옮긴다거나, 그거를 편곡해 본다든가 하는 그런 감각들도 채보를 하다 보니까 늘더라고요.”
“나는 그쪽이 내 과인 줄 알았는데 이든이 형 과였구나. 이든이 형이랑 동족이었다니.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이었어.”
개수작을 실패한 김도빈이 죽상을 하며 한탄했다.
“거 봐라, 도빈아. 내가 너한테 쓸데없는 거 시켰겠냐? 해원이, 너는 숙제하면서 안 어려웠어?”
“계속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면서 감이 잡히더라고요. 오히려 하다 보니 속도도 더 붙어서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났기도 했고요.”
급조했던 숙제였는데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었다. 이참에 이걸로 김도빈의 작곡 능력도 더 늘어 내 스페어로 쓸 수 있는 수준은 달성하길 바란다.
LnL이 미는 포스트 윤이든으로서 작업물 좀 한번 들려 달라는 김도빈의 땡깡에 이해원이 머쓱한 얼굴로 음악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이야, 역시 재능 있는 사람은 다르네. 나는 이든이 형에게 몇 년을 갈굼 당해도 이 정도는 못 만드는데.”
“저도 이거 이든 선배님 피드백 엄청 받아 가면서 만든 거예요. 완전히 제 실력은 아니에요.”
김도빈과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며 이해원은 점차 긴장을 푸는 기색이었다. 말도 나랑 있을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얘가 이렇게까지 긴장을 푼 걸 보니, 김도빈이 옆에 있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나 보다.
왜지? 김도빈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생겨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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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빈의 주도로 이루어진 삼자대면이 끝나고, 숙소로 오는 차 안.
김도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먼저 말을 꺼냈다.
“놀잇감인 저랑 다른 형의 진정한 문하생 걔 있잖아요. 걔 약간, 뭐라 해야 하지? 사기 잘 당할 타입 같아요.”
“네가 할 소리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브 선정 가장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멤버 1위에 선정된 김도빈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저는 분위기 풀어 준다고 저렇게 바로 무장 해제 안 돼요. 제가 형한테 마음을 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형도 봤잖아요.”
“그랬냐?”
내 체감상으로는 김도빈이 마음의 문을 참 빨리 열어준 것 같았는데 본인은 오래 걸렸다고 하니 유감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오늘의 이해원은 김도빈이 없던 평소와는 달랐다. 확실히 예전, 그러니까 회귀 전에 내가 봤던 이해원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잘 모르겠던데.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라.”
“형 설마… 후배라고 녹음실에서 저랑 예현이 형 갈구던 것처럼 그렇게 잡은 거 아니죠?”
“딱히.”
너희는 내 음악을 완성시켜야 할 놈들이라 빡세게 잡은 거고. 자기 음악의 세계를 완성해 가는 놈을 그렇게 빡세게 잡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
얘랑 얽힌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는 내 감 때문에 그저 이해원에게 덜 살가웠을 뿐이다.
“쟤한테 잘해 줘요, 형. 형이 저렇게 다 가르쳐 놨는데 형 무섭다고 다른 소속사로 런하면 어떡해요. 그거 완전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잖아요.”
“세상에, 도빈이 네가 그런 속담도 아냐?”
“트트블에서 속담 게임 많이 나와서 속담 공부 좀 했죠. 그런데 왜 작곡 공부는 안 하냐고 하려고 했죠?”
김도빈이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내가 막 뱉으려고 했던 말을 고스란히 읊었다.
“이야, 너-”
“왜 이렇게 눈치 빨라졌냐고 하려고 했죠? 그게 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어서 그래요.”
내가 읽기 쉬운 건지, 아니면 김도빈이 정말로 눈치가 빨라진 건지.
“그런데 형, 혹시 어미가 ‘냐’로 끝나야 하는 저주라고 걸리셨나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그런 페널티가 한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신호를 기다리며 회상에 잠겨 있든 말든 김도빈은 옆에서 계속해서 입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걔는 확실히 LnL에서 데뷔하겠죠? 그래도 형이 직접 가르쳐 놨는데 다른 데에서 데뷔해서 형 이름 파는 것도 좀 웃기긴 하잖아요.”
핸들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잠깐만, 데뷔?’
회귀 전, 레브가 7주년을 맞이했던 해에 LnL은 우리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신인 남돌 데뷔조를 꾸리는 데 한창 바빴다.
지금이야 나로 인해 작곡·프듀멤의 중요성을 LnL이 깨달았다지만, 작곡프듀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회귀 전의 LnL이 과연 작곡 능력치 빼고는 다른 능력치는 다 애매한 이해원을 데뷔조에 넣었을까?
나이는 어리지만 나름 장기 연습생이었던 이해원이 데뷔조에 들지 못했다면? 과연 이해원은 불발된 데뷔에도 계속 LnL에 남아 있으려 할까?
물론 TK나 신월 같은 대형 기획사라면 6~7년 정도는 되어야지 장기 연습생으로 쳐 주겠지만 솔직히 회귀 전의 LnL은 3년도 충분히 장기 연습생이었다.
그러니까… LnL 데뷔조에 들지 못한 이해원이 소속사를 만약 신월로 옮겼다면.
연습생을 단순하게 데뷔가 아닌 착취할 유령 작곡가로도 아주 알뜰살뜰하게 써먹는 신월이라면 다른 능력치가 부족하더라도 작곡 능력 하나는 확실히 있는 이해원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데뷔시킬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자살한 신월 연습생이 이해원 본인이든, 이해원과 인연이 있던 제삼자이든 나한테까지 연결고리가 뻗어진 이유가 얼추 설명이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해원이 신월로 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예 아이돌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가로 전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28살 기억의 파편을 보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차연호에게 단순히 이 추측만으로 딜을 걸 수는 없었다.
신월 연습생 시스템에 관련해서는 차연호에게 조금 더 캐물어 봐야겠군. 과연 자기 소속사의 치부를 차연호가 순순히 밝히려 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케이제이 살리는 일이라 협조하라고 적당히 협박 곁들여서 윽박지르면 말해 주지 않을까 싶다. 딱 봐도 소속사보다는 케이제이가 훨씬 중요해 보이던데.
하긴, 나도 LnL 살릴래, 견하준 살릴래? 하면 당연히 견하준 살리지.
이렇게 보니, 아무래도 스물여덟 살 기억의 파편을 여는 접근법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꽤 높았다.
‘작곡 도움’이 아니라 믿고 고민을 털어놓고 소속사를 옮기고 나서까지 연락을 유지하는 ‘친분’이 기억의 파편을 열 수 있는 핵심 요지였을 수도.
하지만 문제는, 내가 왜인지 모를 찝찝함 때문에 묘하게 거리를 둔 탓에 이해원과 나의 현재 사이는 회귀 전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어색했다.
이해원이랑 이전처럼 친밀도를 쌓기에 아직 안 늦었겠지…?
그러고 보니까 김도빈이 이상한 고집을 부려서 오늘의 삼자대면 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기억의 파편을 열 기회를 완전히 날릴 뻔했다.
“도빈아, 역시 너는 행운 토템이다.”
오른손을 뻗어 조수석에 앉은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주며 말하자 김도빈이 눈을 찡긋했다.
“대체 어떤 점프를 거쳐서 제가 행운 토템이라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정 그렇게 고마우시다면 형이 내준 숙제를 3분의 1로 줄여 주시는 건?”
내가 참으로 고마운 김도빈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약 스무 곡이 너를 더 기다리고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속으로 삼키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DTB 방영일 아니에요? 형 오늘도 방송 보면서 해명 라방 대본 적을 거예요?”
김도빈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데이드림 반응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