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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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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67화(569/5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67
화
견하준 솔로 활동 때는 마지막 주 음방에 멤버들이 모두 출석해서 응원하고, 활동이 완전히 끝나고는 기념 파티도 벌였다.
물론 이번에는 낙하산도, 삼자대면도 없는 평화로운 활동이라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덜할 수밖에 없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둘 중 하나만 해 줘도 만족하련다.
내가 인자하게 미소 짓고 있자 그런 나를 보는 류재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형, 또 막방이라고 이상한 거 꾸미고 있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다음 주 음방 1위 공약으로 호랑이 동물 잠옷 입고 앵콜 무대하기 이런 걸 계획하고 있다던가…”
류재희는 내가 어그로를 너무 끈다고 주장하지만, 가끔 보면 류재희가 나보다 더 했다. 그건 나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어그로 방식이었다.
데이드림한테 호랑이 PTSD 심어 줄 일 있냐.
“왜, 호랑이 말고 고양이 잠옷 두르고 앵콜 무대 하련다. 됐냐?”
내 투덜거림에 류재희가 호랑이보단 차라리 고양이가 낫다며 대놓고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마지막 활동을 내 추구미가 큐티라는 오해만 강화하는 상태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동물 잠옷은 실컷 입었으니까 이제는 동물 잠옷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여기에서 동물 잠옷 더 끌고 나오면 뇌절밖에 더 되겠는가. 뭐든지 1절만 할 때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내가 류재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견하준이 숙소로 돌아왔다. 손에는 두툼한 시나리오집을 몇 개 쥔 상태였다.
“엥, 왠 시나리오? 오늘 간 거 행사 스케줄 아니었냐?”
“아, 스케줄 끝나고 소속사 들러서 받아 왔어. 드라마 시나리오 몇 개 들어왔다고, 읽어 보고 결정해 달라고 해서.”
견하준이 손에 쥔 시나리오를 가볍게 흔들었다. 딱 봐도 두 개는 넘어 보이는 걸 보니 에서 견하준이 본인을 배우로서 각인시키는 것에 확실히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긴, DTB에 환장하는 남초딩들이 레브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듯이 중년 여성분들도 레브는 몰라도 견하준은 알 정도인데, 이것만 봐도 각 나오지 않나.
물론 견하준을 캐스팅하는 배역에 주연급 배역은 없었다. 주연도 아니고 주조연으로 드라마 하나 나왔는데 바로 주연으로 캐스팅되면 그게 김도빈이 보는 소설이지, 현실이겠냐.
소파 앞 탁자에 올려 둔 시나리오 중 하나를 집어서 대충 훑어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TvZ, 이건 케이블인데… 김정서 작가님 시나리오네?”
“안 그래도 나도 오는 길에 차에서 그거 봤어. 원래 지상파만 하시던 분인데 이번에 케이블로 오셨더라고.”
견하준이 다른 시나리오를 넘기며 대답했다. 우리 옆에서 시나리오 하나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던 류재희가 종이에서 눈을 떼고 우리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저번에 대차게 망해서 M사에서 아쉬운 소리라도 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케이블이랑 손잡으신 듯요. 그때 터졌던 협찬 문제랑 인맥 캐스팅 그런 건 제작사 책임이기도 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이건 내용이 딱히 안 끌려. 이건 보류.”
본인이 넘겨보던 시나리오를 탁자에 내려놓은 견하준이 가늠하는 듯한 눈으로 나와 류재희가 든 시나리오를 훑었다.
저번에 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견하준이 내 손에 들린 김정서 작가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 드라마는 회귀 전에 대박이 났던 작품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회귀 전 배우로서의 견하준의 대표작이기도 했다.
그때 견하준이 맡았던 배역이 화제가 되면서, 아이돌 출신 배우로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군.
그때는 비중도 많이 없는 감초 조연 역할만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맡은 비중 있는 배역이었다면, 지금은 팀장 유환 이미지가 하도 확 박혀 버려서 말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이 드라마는 확실히 히트 친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르니 다른 시나리오도 한 번씩 훑어보고 견하준한테 말했다.
“나는 이중에서 김정서 작가님 작품이 제일 나아 보이는데?”
“나는 모르겠어. 그 작품이 제일 걱정되는 작품이기도 해서.”
“뭐가 걱정돼? 시청률?”
내 물음에 견하준이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야, 준아. 네가 시청률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너는 네 연기만 잘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우리 본업은 아이돌이니까 드라마 시청률 한 번 안 나온다고 먹고 살 걱정은 없잖냐?”
그러니까 마음 놓으라고 격려의 말을 건네 주자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견하준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김정서 작가님 전작이 망해서 부담스러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잖아. 그런 거지, 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한 번 삐끗했다고 평생 망하라는 법 있냐? 오히려 이번엔 작정하고 제대로 할 수도 있지. 우리 다음에 빌보드 핫100 차트인 한 거 기억 안 나?”
“라올다는 외국에서 터져서 역주행했잖아. 그런데 은…”
견하준 쟤 진짜로 디스 재능 있는 거 맞다니까. 문장 완성을 하지 않고 말끝 흐리기만으로도 뼈를 때리는 저 능력을 봐라.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말을 이었다.
“이번 작도 망할까 봐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흥행 수표 작가님이 한 번 삐끗하신 만큼 차기작에 사람들의 관심도 쏠릴 거고, 김정서 작가님도 지난번 결과를 만회하시려고 이번 작품에 전력을 다하실 텐데. 그런데 내가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구설수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싶어서…”
견하준은 본인 마음 속의 고민을 모두 털어놓고도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으로 김정서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해는 갔다.
지금 견하준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서 연기력으로 제대로 인정받았고, 그 덕에 배우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으니까. 이번 선택이 그 이미지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흔들리게 할지 고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저 시나리오에 미련을 두고 있는 저 모습을 보니 마음은 조금 놓였다.
견하준이 하기 싫어하는 드라마를 내가 억지로 강요하는 건 아니라서.
“준아, 그렇게 미적거리면 효도할 기회 놓친다. 어머니 원픽 작가님이 김정서 작가님이라며. 효도 한 번 해 드려야지.”
견하준이 여전히 미적지근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나는 마지막으로 한 방을 더 날렸다.
“그리고 내가 장담한다. 이 드라마 무조건 성공한다니까. 할 때도 똑같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때도 도빈이 빼고 다들 프젝맞선 반대하고 러브라인 디자인 밀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데? 내가 민 프젝맞선이 대박 났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말 한 번 믿어봐. 내가 언제 너한테 해될 일 강요한 적 있냐?”
기억 떠맡긴 건 지금의 내가 하지 않았으므로 논외로 치고.
“그건 아닌데, 그래도 조금 더 고민을 해 보고…”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우면 그냥 예현 형한테 가서 상담받고 결정하든가. 참고로 그 인간은 전에 밀었다. 그냥 참고하라고.”
부러 퉁명스럽게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저 같아도 김정서 작가님 작품 선택해요. 한번 삐끗하긴 했어도 기본 타율이 높잖아요. 이런 거 보는 눈은 있는 이든이 형도 이번에 김정서 작가님 작품 밀기도 하고요. 이든이 형이 저번에는 반대했다가 이번에 미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류재희가 옆에서 훌륭하게 서포트를 해 줬다.
그런데 하나만 정정하겠다. 내가 이런 거 보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7주년 이후 드라마 흥행 여부는 모른다.
기억을 찾으면 10주년까지는 어떻게 떠올려 보겠지만? 물론 10주년 이후부터는 기억 찾아도 모른다.
“그러면 도빈이한테도 한 번 물어볼게. 도빈이한테 제일 흥행될 것 같은 작품 하나 집어 보라고 해야겠다.”
견하준의 입에서 나온 상담자의 이름은 매우 의외였다.
준아, 너까지 김도빈을 레브의 행운 토템처럼 여기면서 의지하게 되어 버린 거냐.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렇게 깨닫다니.
“아니면 확실하게 레브 공식 행운 토템인 대표님한테도 도빈이 형이랑 크로스체크로 물어보는 거는요?”
“도빈이로 만족할게. 시나리오 하나가 SF 요소 있잖아. 대표님이면 백퍼센트 이거 선택할 거 같아.”
“그 시나리오만 빼고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면 되잖아요.”
“절대 안 되지! 그 양반 감 없는 거 한두 번이냐?”
막내야, 서포트 잘하다가 왜 그러냐.
김도빈이면 김정서 작가님 작품을 선택하라고 견하준 몰래 미리 찔러 주면 되지만 대표님은 그게 불가능하므로 필사적으로 막았다.
***
DTB 프로듀서는 초반 예선만 제외하면 본선 전까지는 딱히 할 게 없어서 시간이 넉넉했다.
1차 예선부터 3차 예선까지는 프로듀서들이 합격과 탈락을 결정하지만, 디스전부터 조별 미션까지는 청중 평가단이 결정하기에 우리가 개입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조별 미션은 전통적으로 DTB 음원 중 세미 파이널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덥넷의 주요 음원 수익원이 되는 미션이었기에 준비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
덕분에 2차 예선, 3차 예선, 패자 부활전과 싸이퍼, 디스전, 조별 음원 미션 음원 메이킹 과정이 방영될 때까지 5주간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미리 본선 1차 비트 짜놓기가 그나마 지금 해야 할 일 정도?
마침 여유도 생겼겠다, 생각난 김에 이해원의 작곡 공부도 다시 봐줄까 싶었다.
조금 봐주다가 내가 솔로 앨범 준비와 DTB 시즌 6 촬영으로 인해 바빠지며 몇 달간 신경 쓰지 못했는데, 한 번쯤 짚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온정 따위는 아니다.
회귀 전의 인연으로만 이해원에게 온정을 베풀기에는 영 찜찜한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그 녀석만 보면 껄끄러워지는 내 감이라든가, 그 녀석이랑 엮이자마자 주어진 스물여덟 살 때 기억의 파편이라든가, 분기점이라든가.
회귀 전처럼 이해원의 작곡 공부를 봐주면 서예현과의 오디 키워드로 인한 버그 때처럼 뭐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이해원에게 이것저것 대화를 붙여 봤지만 아직 지금까지 발생한 버그는 딱히 없었다.
기억의 파편을 최대한 많이 해금하든가, 아니면 버그로 이런 귀찮은 과정 없이 기억 관람을 하든가 해야지 키워드를 유추라도 해 볼텐데.
그래야지 왜 견하준이 내 기억을 대신 떠맡고 그 기억 속에서 조뺑이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거 아니야.
시스템은 아무리 캐물어도 말해 주지를 않고, 그렇다고 기억 하나 없는 현재 견하준을 붙잡고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지금은 중간 기억 다 건너뛰고 내 장례식부터 관람해 버린 바람에 영화 초중반쯤 보다가 갑자기 결말을 스포당해 버린 기분이었다.
혹시 모르지.
버그를 일으켜서 내 기억을 찾아주는 게 서예현 다음으로 김도빈일 수도.
그냥 가벼운 블랙 조크처럼 한 생각이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까 정말로 가능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회귀 전에 나랑 말도 안 하고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어, 그러면 당분간 김도빈이랑 붙어 있어야 하나?
물론 여기에 김도빈의 의견은 없었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67화(569/5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67

화

견하준 솔로 활동 때는 마지막 주 음방에 멤버들이 모두 출석해서 응원하고, 활동이 완전히 끝나고는 기념 파티도 벌였다.

물론 이번에는 낙하산도, 삼자대면도 없는 평화로운 활동이라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덜할 수밖에 없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둘 중 하나만 해 줘도 만족하련다.

내가 인자하게 미소 짓고 있자 그런 나를 보는 류재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형, 또 막방이라고 이상한 거 꾸미고 있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다음 주 음방 1위 공약으로 호랑이 동물 잠옷 입고 앵콜 무대하기 이런 걸 계획하고 있다던가…”

류재희는 내가 어그로를 너무 끈다고 주장하지만, 가끔 보면 류재희가 나보다 더 했다. 그건 나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어그로 방식이었다.

데이드림한테 호랑이 PTSD 심어 줄 일 있냐.

“왜, 호랑이 말고 고양이 잠옷 두르고 앵콜 무대 하련다. 됐냐?”

내 투덜거림에 류재희가 호랑이보단 차라리 고양이가 낫다며 대놓고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마지막 활동을 내 추구미가 큐티라는 오해만 강화하는 상태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동물 잠옷은 실컷 입었으니까 이제는 동물 잠옷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여기에서 동물 잠옷 더 끌고 나오면 뇌절밖에 더 되겠는가. 뭐든지 1절만 할 때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내가 류재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견하준이 숙소로 돌아왔다. 손에는 두툼한 시나리오집을 몇 개 쥔 상태였다.

“엥, 왠 시나리오? 오늘 간 거 행사 스케줄 아니었냐?”

“아, 스케줄 끝나고 소속사 들러서 받아 왔어. 드라마 시나리오 몇 개 들어왔다고, 읽어 보고 결정해 달라고 해서.”

견하준이 손에 쥔 시나리오를 가볍게 흔들었다. 딱 봐도 두 개는 넘어 보이는 걸 보니 에서 견하준이 본인을 배우로서 각인시키는 것에 확실히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긴, DTB에 환장하는 남초딩들이 레브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듯이 중년 여성분들도 레브는 몰라도 견하준은 알 정도인데, 이것만 봐도 각 나오지 않나.

물론 견하준을 캐스팅하는 배역에 주연급 배역은 없었다. 주연도 아니고 주조연으로 드라마 하나 나왔는데 바로 주연으로 캐스팅되면 그게 김도빈이 보는 소설이지, 현실이겠냐.

소파 앞 탁자에 올려 둔 시나리오 중 하나를 집어서 대충 훑어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TvZ, 이건 케이블인데… 김정서 작가님 시나리오네?”

“안 그래도 나도 오는 길에 차에서 그거 봤어. 원래 지상파만 하시던 분인데 이번에 케이블로 오셨더라고.”

견하준이 다른 시나리오를 넘기며 대답했다. 우리 옆에서 시나리오 하나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던 류재희가 종이에서 눈을 떼고 우리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저번에 대차게 망해서 M사에서 아쉬운 소리라도 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케이블이랑 손잡으신 듯요. 그때 터졌던 협찬 문제랑 인맥 캐스팅 그런 건 제작사 책임이기도 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이건 내용이 딱히 안 끌려. 이건 보류.”

본인이 넘겨보던 시나리오를 탁자에 내려놓은 견하준이 가늠하는 듯한 눈으로 나와 류재희가 든 시나리오를 훑었다.

저번에 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견하준이 내 손에 들린 김정서 작가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 드라마는 회귀 전에 대박이 났던 작품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회귀 전 배우로서의 견하준의 대표작이기도 했다.

그때 견하준이 맡았던 배역이 화제가 되면서, 아이돌 출신 배우로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군.

그때는 비중도 많이 없는 감초 조연 역할만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맡은 비중 있는 배역이었다면, 지금은 팀장 유환 이미지가 하도 확 박혀 버려서 말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이 드라마는 확실히 히트 친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르니 다른 시나리오도 한 번씩 훑어보고 견하준한테 말했다.

“나는 이중에서 김정서 작가님 작품이 제일 나아 보이는데?”

“나는 모르겠어. 그 작품이 제일 걱정되는 작품이기도 해서.”

“뭐가 걱정돼? 시청률?”

내 물음에 견하준이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야, 준아. 네가 시청률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너는 네 연기만 잘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우리 본업은 아이돌이니까 드라마 시청률 한 번 안 나온다고 먹고 살 걱정은 없잖냐?”

그러니까 마음 놓으라고 격려의 말을 건네 주자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견하준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김정서 작가님 전작이 망해서 부담스러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잖아. 그런 거지, 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한 번 삐끗했다고 평생 망하라는 법 있냐? 오히려 이번엔 작정하고 제대로 할 수도 있지. 우리 다음에 빌보드 핫100 차트인 한 거 기억 안 나?”

“라올다는 외국에서 터져서 역주행했잖아. 그런데 은…”

견하준 쟤 진짜로 디스 재능 있는 거 맞다니까. 문장 완성을 하지 않고 말끝 흐리기만으로도 뼈를 때리는 저 능력을 봐라.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말을 이었다.

“이번 작도 망할까 봐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흥행 수표 작가님이 한 번 삐끗하신 만큼 차기작에 사람들의 관심도 쏠릴 거고, 김정서 작가님도 지난번 결과를 만회하시려고 이번 작품에 전력을 다하실 텐데. 그런데 내가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구설수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싶어서…”

견하준은 본인 마음 속의 고민을 모두 털어놓고도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으로 김정서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해는 갔다.

지금 견하준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서 연기력으로 제대로 인정받았고, 그 덕에 배우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으니까. 이번 선택이 그 이미지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흔들리게 할지 고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저 시나리오에 미련을 두고 있는 저 모습을 보니 마음은 조금 놓였다.

견하준이 하기 싫어하는 드라마를 내가 억지로 강요하는 건 아니라서.

“준아, 그렇게 미적거리면 효도할 기회 놓친다. 어머니 원픽 작가님이 김정서 작가님이라며. 효도 한 번 해 드려야지.”

견하준이 여전히 미적지근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나는 마지막으로 한 방을 더 날렸다.

“그리고 내가 장담한다. 이 드라마 무조건 성공한다니까. 할 때도 똑같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때도 도빈이 빼고 다들 프젝맞선 반대하고 러브라인 디자인 밀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데? 내가 민 프젝맞선이 대박 났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말 한 번 믿어봐. 내가 언제 너한테 해될 일 강요한 적 있냐?”

기억 떠맡긴 건 지금의 내가 하지 않았으므로 논외로 치고.

“그건 아닌데, 그래도 조금 더 고민을 해 보고…”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우면 그냥 예현 형한테 가서 상담받고 결정하든가. 참고로 그 인간은 전에 밀었다. 그냥 참고하라고.”

부러 퉁명스럽게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저 같아도 김정서 작가님 작품 선택해요. 한번 삐끗하긴 했어도 기본 타율이 높잖아요. 이런 거 보는 눈은 있는 이든이 형도 이번에 김정서 작가님 작품 밀기도 하고요. 이든이 형이 저번에는 반대했다가 이번에 미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류재희가 옆에서 훌륭하게 서포트를 해 줬다.

그런데 하나만 정정하겠다. 내가 이런 거 보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7주년 이후 드라마 흥행 여부는 모른다.

기억을 찾으면 10주년까지는 어떻게 떠올려 보겠지만? 물론 10주년 이후부터는 기억 찾아도 모른다.

“그러면 도빈이한테도 한 번 물어볼게. 도빈이한테 제일 흥행될 것 같은 작품 하나 집어 보라고 해야겠다.”

견하준의 입에서 나온 상담자의 이름은 매우 의외였다.

준아, 너까지 김도빈을 레브의 행운 토템처럼 여기면서 의지하게 되어 버린 거냐.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렇게 깨닫다니.

“아니면 확실하게 레브 공식 행운 토템인 대표님한테도 도빈이 형이랑 크로스체크로 물어보는 거는요?”

“도빈이로 만족할게. 시나리오 하나가 SF 요소 있잖아. 대표님이면 백퍼센트 이거 선택할 거 같아.”

“그 시나리오만 빼고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면 되잖아요.”

“절대 안 되지! 그 양반 감 없는 거 한두 번이냐?”

막내야, 서포트 잘하다가 왜 그러냐.

김도빈이면 김정서 작가님 작품을 선택하라고 견하준 몰래 미리 찔러 주면 되지만 대표님은 그게 불가능하므로 필사적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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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B 프로듀서는 초반 예선만 제외하면 본선 전까지는 딱히 할 게 없어서 시간이 넉넉했다.

1차 예선부터 3차 예선까지는 프로듀서들이 합격과 탈락을 결정하지만, 디스전부터 조별 미션까지는 청중 평가단이 결정하기에 우리가 개입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조별 미션은 전통적으로 DTB 음원 중 세미 파이널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덥넷의 주요 음원 수익원이 되는 미션이었기에 준비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

덕분에 2차 예선, 3차 예선, 패자 부활전과 싸이퍼, 디스전, 조별 음원 미션 음원 메이킹 과정이 방영될 때까지 5주간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미리 본선 1차 비트 짜놓기가 그나마 지금 해야 할 일 정도?

마침 여유도 생겼겠다, 생각난 김에 이해원의 작곡 공부도 다시 봐줄까 싶었다.

조금 봐주다가 내가 솔로 앨범 준비와 DTB 시즌 6 촬영으로 인해 바빠지며 몇 달간 신경 쓰지 못했는데, 한 번쯤 짚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온정 따위는 아니다.

회귀 전의 인연으로만 이해원에게 온정을 베풀기에는 영 찜찜한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그 녀석만 보면 껄끄러워지는 내 감이라든가, 그 녀석이랑 엮이자마자 주어진 스물여덟 살 때 기억의 파편이라든가, 분기점이라든가.

회귀 전처럼 이해원의 작곡 공부를 봐주면 서예현과의 오디 키워드로 인한 버그 때처럼 뭐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이해원에게 이것저것 대화를 붙여 봤지만 아직 지금까지 발생한 버그는 딱히 없었다.

기억의 파편을 최대한 많이 해금하든가, 아니면 버그로 이런 귀찮은 과정 없이 기억 관람을 하든가 해야지 키워드를 유추라도 해 볼텐데.

그래야지 왜 견하준이 내 기억을 대신 떠맡고 그 기억 속에서 조뺑이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거 아니야.

시스템은 아무리 캐물어도 말해 주지를 않고, 그렇다고 기억 하나 없는 현재 견하준을 붙잡고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지금은 중간 기억 다 건너뛰고 내 장례식부터 관람해 버린 바람에 영화 초중반쯤 보다가 갑자기 결말을 스포당해 버린 기분이었다.

혹시 모르지.

버그를 일으켜서 내 기억을 찾아주는 게 서예현 다음으로 김도빈일 수도.

그냥 가벼운 블랙 조크처럼 한 생각이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까 정말로 가능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회귀 전에 나랑 말도 안 하고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어, 그러면 당분간 김도빈이랑 붙어 있어야 하나?

물론 여기에 김도빈의 의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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