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54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1화(543/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1화
* * *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는 말이 있지.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라고.
견하준의 복수는 10년의 반 토막인 5년 만에 끝났으니 이 고사를 놓고 보면 존나게 빨리 끝난 셈이었다. 견하준 정도면 군자지, 뭐.
“정이서는 본인 곡 커버한 사람이 하준이 형이었다는 걸 언제 알았을까여?”
“하준이가 곡까지 뺏는다고 면전에서 선포했잖아. 그러니까 이미 커버곡 때부터 Smile J가 하준이라는 걸 눈치 까고 있었겠지. 얼굴은 못 깔 거라 생각해서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렇게 원곡자 부심을 부려 댄 거고.”
서예현이 샴페인을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사이버렉카들이 날뛰어 준 덕분에 아주 적절한 정당성이 생겼죠.”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덧붙였다. 견하준 덕분에 파티할 날이 넘쳐나서 행복했다.
서예현도 견하준이 낙하산을 추락시키기 위해 힙합 전사 패션까지 기꺼이 감수한 걸 다 보았기에 차마 1~2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이 파티를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친구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된 복수의 성공을 행복해해도 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견하준이 제법 후련해 보여서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까 낙하산은 나한테도 견하준과의 절연 위기라는 빅엿을 선사했다. 회귀 전에는 실제로 절연도 했고.
음, 행복해해도 될 것 같다.
“맨날 하던 대로 씩씩거리면서 전화해서 따질 줄 알았더니, 웬일로 얌전하네.”
지겨운 이름이 수신 화면에 뜨지 않은지 좀 된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나를 귀찮게 하던 낙하산의 끈질긴 전화 통화 시도는 어느 순간부터 뚝 그쳤다. 언제부터였더라? 삼자대면? 아니면 내가 피처링으로 견하준과 함께 무대에 섰던 둘째 주?
“그때 대기실에서 네 멧돼지 같은 면모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까 쫀 거지. 또 전화했다가 처맞을까 봐.”
서예현이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 하나를 흔들며 말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저런 말을 하니까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언제 서예현 앞에서 사람 팬 줄 알겠네.
“이참에 번호 삭제나 해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번호부에 번호가 한가득인데, 이런 잉여 번호를 바로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진다.
샴페인 잔을 내려놓은 견하준이 내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번호 삭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 한 번만 해 볼래.”
“오케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흔쾌히 견하준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잠시간 통화음이 울리다가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조롱이라도 하려고 전화했어요? 그쪽이 준 노래 다시 뺏어서 준 게 그렇게 속 시원했어요…?
전화 받자마자 와다다 쏘아붙일 줄 알았더니 한껏 불쌍한 척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를 타고 퍼지자 다들 기가 막히거나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가증스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 사람 심금을 울리는 것조차 실패한 걸 보니 연기 쪽으로 기어 나오기도 그른 것 같았다.
자고로 전황을 다 아는 사람조차도 진심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는 되어야지. 우리집 연기돌처럼. 암암, 그렇고말고.
-아니면, 이든 씨… 애초에 이러려고 견하준 씨에게 맞춰서 작곡한 곡을 저한테 넘긴 거 아니에요? 저한테는 이게 정말로 간절했던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 새끼, 지금 이 통화 내용 녹음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막판에 이 통화 녹음으로 판 뒤집기 하려고 이렇게 불쌍한 척하는 거 아니냐고.
낙하산만 마주하면 눈이 돌아가는 견하준이 욕을 시원하게 한 바가지 쏟아붓기 전에 발신자 번호 제한과 음성 변조를 이용해서 다시 전화하자고 만류하려 했지만, 견하준이 입을 여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도 간절해서요.”
-뭐?
상대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나 역시 저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현민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도 화가 빡 치밀어 오르던 말. 그 말을 면전에서, 빽으로 본인 자리를 뺏은 이에게 직접 들었을 견하준은 어땠겠는가.
-잠깐만, 너…
이제야 목소리의 주인을 눈치챘는지 정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읊조렸다.
“기억 안 나? 한 사람 나가야 하는 건 알고 들어왔냐니까 네가 그때 했던 말이잖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이서가 입을 떼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얕은 숨소리만이 전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당혹감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나도 간절했어.”
견하준이 해묵은 진심을 드디어 꺼내놓았다. 몇 년이고 갈고닦아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된 그 진심을.
그리고 그 칼끝이 지금, 정이서를 향해 똑바로 겨눠져 있었다.
그때는 그 한마디로 베였고, 이제는 이 한마디로 되갚아 줄 차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망, 씁쓸함, 환희, 통쾌함. 속삭이듯 덧붙인 한마디에 온갖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린 견하준이 미련 없이 통화를 끊었다.
뚝-
견하준이 통화 종료 화면이 뜬 내 휴대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꾹꾹 눌러 댔다. 저런다고 액정이 박살 나는 것도 아니라서 화풀이용으로 쓰라고 내버려 뒀다.
통화 내용 중에서 꼬투리 잡힐 만한 것도 없었다. 정이서 네 쪽에서 통화 녹음본 아무리 풀어봐라. 낙하산 과거 논란 재점화밖에 더 되겠냐?
내 휴대폰 액정에 화풀이를 마친 견하준에게 휴대폰을 돌려받자마자 정이서의 번호를 깔끔하게 삭제했다.
“아, 맞다. 차단부터 할걸.”
“이든이 너는 아무 생각 없이 삭제부터 할 것 같아서 내가 차단해 놨어.”
화풀이가 아니라 차단하고 있던 거였군. 내 수고를 덜어 준 견하준과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가장 모욕적이었던 말까지 고스란히 돌려주며 나와 견하준의 복수는 완벽하게 막을 내렸다.
다들 기념으로 건배나 하자며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곳으로 모아 댔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익숙하게 막내인 류재희가 건배사를 고지했다.
“제가 ‘나도 간절했어’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외쳐 주세요!”
“평범하게 축하하면 안 될까? 나 그 멘트 뱉은 지 5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건배사로 쓰려고…?”
“왜, 건배사로 쓰기 딱 좋구먼.”
견하준이 귀가 빨개진 채로 만류해 봤지만 다들 좋다고 류재희의 의견에 동조해 댔다. 두 마디로 K.O 시킨 레전드 디스전 대사는 이렇게 길이길이 기록해야지.
가사 써 왔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견하준도 디스전에 재능이 있다니까. 디스랩이 아니라 디스전. 랩은, 엄…
“나도 간절했어!”
류재희의 선창에 다들 입 모아 건배사를 외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견하준은 모두가 건배사를 외칠 때 빨개진 얼굴로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잔은 또 착실하게 부딪혔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보다 훨씬 낫다. 그때는 내가 견하준을 물들인 죄로 대가리 박아야 하나 싶어서 아득했는데, 이제야 좀 견하준답잖아.
* * *
낙하산이 화려하게 몰락하는 동안 류재희는 준우승전을 치렀다.
준우승전인 4라운드 미션은 운명을 건 경연곡 선택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1시간 전, 참가자들은 총 두 개의 곡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나는 본인이 고른 경연곡, 다른 하나는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
본인이 고른 경연곡은 무대 중간에 추가 도전 미션이 주어진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도, 미션의 타이밍도 알지 못한 채로 무대를 이어나가다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미션을 즉석에서 수행해야 한다.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은 추가 도전 미션이 없다. 하지만 1시간 만에 경연곡을 연습하여 무대에 올라야 한다.
운명을 건 선택이라는 미션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가수 본인이 고른 곡이 성공적인 선택일지, 혹은 더 도전적인 곡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했다.
두 명은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선택했고, 두 명은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선택했다.
류재희는 전자였다. 1시간 내로는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곡 특색을 살려 완벽하게 무대를 완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밀고 나갔다.
류재희의 추가 도전 미션은 무반주 구간이었다.
노래 도중 갑작스럽게 음향 사고마냥 전주가 뚝 끊겼지만 류재희는 당황하지 않고 아카펠라로 그 파트를 소화했으며, 다시 음향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클라이맥스를 집중시켜 극적인 연출을 더해, 오히려 인상 깊게 남는 무대를 만들었다.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택한 다른 가수는 템포 체인지가 추가 도전 미션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빨라진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고 박자를 놓쳐 감점을 받았다.
후자 두 명도 똑같은 선택을 했지만 전자와 마찬가지로 운명이 갈렸다.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회귀 전 우승자였던 노강열은 1시간 만에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완벽하게 무대에서 선보이며 환호를 받았지만, 다른 가수는 곡을 외우기에 급급해 누가 봐도 부족한 무대를 선보였다.
떨어진 사람들은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고, 류재희와 노강열은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류재희와 노강열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으아아아, 노강열 선배님 너무 잘해요! 진짜 보컬의 신이라고요! 제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결승까지 온 것도 운 좋게 노강열 선배님이랑 중간에 안 붙은 덕분에 온 것 같아요.”
결승전 경연곡을 신중히 고르던 류재희가 머리를 감싸 메고 한탄했다. 옆에서 류재희가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한 경연곡 리스트를 함께 뽑아 주다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물론 나도 네가 100퍼센트 이긴다는 확신은 못 하지.”
무슨 말을 기대한 건지 류재희가 입을 비죽였다. 내가 음악 관련해선 입바른 말을 못한다, 막내야. 확실히 노강열 선배님은 경력이든 실력이든 능력치가 류재희보다 모두 우위였다.
“그런데 이것만은 확신한다. 네가 못 이길 것 같다고 지레 포기하면 가능성은 0퍼센트고, 어떻게든 넘어 보겠다고 부딪힐 각오를 하고선 덤비면 50퍼센트라고.”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으며 덧붙이자 눈을 깜빡인 류재희가 물었다.
“왜 50퍼센트에요?”
“네가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일 거 아니냐. 그리고 나는 너를 막 지레 포기하는 놈으로 그렇게 키운 적 없다. 나는 뭐 스코언이 조빱이라 그렇게 평온했대?”
오예, 초심도 감점 안 됐고.
내가 업그레이드된 초심도 시스템에 만족하는 동안, 류재희는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열심히 본인 휴대폰 뮤직 리스트를 뒤져보고 있었다. 애청곡에서 고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형들, 결승 방청하러 오실래요? 형평성 때문에 투표권은 못 받아도 방청은 가능해요.”
“막내 결승인데 당연히 가지!”
“그러면 인마, 우리 초대도 안 하려고 했냐? 나는 결승에 너네 다 불렀는데, 어?”
“엥, 왜 우리 투표 못 해? 류재 너한테만 투표할까 봐? 그러면 노강열 선배님도 똑같은 숫자로 지인 부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아쉽네. 막내한테 결승전 한 표 투표해 주고 싶었는데.”
모두가 방청객에서 함께하는 류재희의 결승전 날이 밝았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1화(543/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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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는 말이 있지.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라고.
견하준의 복수는 10년의 반 토막인 5년 만에 끝났으니 이 고사를 놓고 보면 존나게 빨리 끝난 셈이었다. 견하준 정도면 군자지, 뭐.
“정이서는 본인 곡 커버한 사람이 하준이 형이었다는 걸 언제 알았을까여?”
“하준이가 곡까지 뺏는다고 면전에서 선포했잖아. 그러니까 이미 커버곡 때부터 Smile J가 하준이라는 걸 눈치 까고 있었겠지. 얼굴은 못 깔 거라 생각해서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렇게 원곡자 부심을 부려 댄 거고.”
서예현이 샴페인을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사이버렉카들이 날뛰어 준 덕분에 아주 적절한 정당성이 생겼죠.”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덧붙였다. 견하준 덕분에 파티할 날이 넘쳐나서 행복했다.
서예현도 견하준이 낙하산을 추락시키기 위해 힙합 전사 패션까지 기꺼이 감수한 걸 다 보았기에 차마 1~2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이 파티를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친구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된 복수의 성공을 행복해해도 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견하준이 제법 후련해 보여서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까 낙하산은 나한테도 견하준과의 절연 위기라는 빅엿을 선사했다. 회귀 전에는 실제로 절연도 했고.
음, 행복해해도 될 것 같다.
“맨날 하던 대로 씩씩거리면서 전화해서 따질 줄 알았더니, 웬일로 얌전하네.”
지겨운 이름이 수신 화면에 뜨지 않은지 좀 된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나를 귀찮게 하던 낙하산의 끈질긴 전화 통화 시도는 어느 순간부터 뚝 그쳤다. 언제부터였더라? 삼자대면? 아니면 내가 피처링으로 견하준과 함께 무대에 섰던 둘째 주?
“그때 대기실에서 네 멧돼지 같은 면모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까 쫀 거지. 또 전화했다가 처맞을까 봐.”
서예현이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 하나를 흔들며 말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저런 말을 하니까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언제 서예현 앞에서 사람 팬 줄 알겠네.
“이참에 번호 삭제나 해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번호부에 번호가 한가득인데, 이런 잉여 번호를 바로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진다.
샴페인 잔을 내려놓은 견하준이 내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번호 삭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 한 번만 해 볼래.”
“오케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흔쾌히 견하준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잠시간 통화음이 울리다가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조롱이라도 하려고 전화했어요? 그쪽이 준 노래 다시 뺏어서 준 게 그렇게 속 시원했어요…?
전화 받자마자 와다다 쏘아붙일 줄 알았더니 한껏 불쌍한 척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를 타고 퍼지자 다들 기가 막히거나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가증스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 사람 심금을 울리는 것조차 실패한 걸 보니 연기 쪽으로 기어 나오기도 그른 것 같았다.
자고로 전황을 다 아는 사람조차도 진심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는 되어야지. 우리집 연기돌처럼. 암암, 그렇고말고.
-아니면, 이든 씨… 애초에 이러려고 견하준 씨에게 맞춰서 작곡한 곡을 저한테 넘긴 거 아니에요? 저한테는 이게 정말로 간절했던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 새끼, 지금 이 통화 내용 녹음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막판에 이 통화 녹음으로 판 뒤집기 하려고 이렇게 불쌍한 척하는 거 아니냐고.
낙하산만 마주하면 눈이 돌아가는 견하준이 욕을 시원하게 한 바가지 쏟아붓기 전에 발신자 번호 제한과 음성 변조를 이용해서 다시 전화하자고 만류하려 했지만, 견하준이 입을 여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도 간절해서요.”
-뭐?
상대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나 역시 저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현민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도 화가 빡 치밀어 오르던 말. 그 말을 면전에서, 빽으로 본인 자리를 뺏은 이에게 직접 들었을 견하준은 어땠겠는가.
-잠깐만, 너…
이제야 목소리의 주인을 눈치챘는지 정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읊조렸다.
“기억 안 나? 한 사람 나가야 하는 건 알고 들어왔냐니까 네가 그때 했던 말이잖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이서가 입을 떼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얕은 숨소리만이 전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당혹감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나도 간절했어.”
견하준이 해묵은 진심을 드디어 꺼내놓았다. 몇 년이고 갈고닦아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된 그 진심을.
그리고 그 칼끝이 지금, 정이서를 향해 똑바로 겨눠져 있었다.
그때는 그 한마디로 베였고, 이제는 이 한마디로 되갚아 줄 차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망, 씁쓸함, 환희, 통쾌함. 속삭이듯 덧붙인 한마디에 온갖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린 견하준이 미련 없이 통화를 끊었다.
뚝-
견하준이 통화 종료 화면이 뜬 내 휴대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꾹꾹 눌러 댔다. 저런다고 액정이 박살 나는 것도 아니라서 화풀이용으로 쓰라고 내버려 뒀다.
통화 내용 중에서 꼬투리 잡힐 만한 것도 없었다. 정이서 네 쪽에서 통화 녹음본 아무리 풀어봐라. 낙하산 과거 논란 재점화밖에 더 되겠냐?
내 휴대폰 액정에 화풀이를 마친 견하준에게 휴대폰을 돌려받자마자 정이서의 번호를 깔끔하게 삭제했다.
“아, 맞다. 차단부터 할걸.”
“이든이 너는 아무 생각 없이 삭제부터 할 것 같아서 내가 차단해 놨어.”
화풀이가 아니라 차단하고 있던 거였군. 내 수고를 덜어 준 견하준과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가장 모욕적이었던 말까지 고스란히 돌려주며 나와 견하준의 복수는 완벽하게 막을 내렸다.
다들 기념으로 건배나 하자며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곳으로 모아 댔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익숙하게 막내인 류재희가 건배사를 고지했다.
“제가 ‘나도 간절했어’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외쳐 주세요!”
“평범하게 축하하면 안 될까? 나 그 멘트 뱉은 지 5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건배사로 쓰려고…?”
“왜, 건배사로 쓰기 딱 좋구먼.”
견하준이 귀가 빨개진 채로 만류해 봤지만 다들 좋다고 류재희의 의견에 동조해 댔다. 두 마디로 K.O 시킨 레전드 디스전 대사는 이렇게 길이길이 기록해야지.
가사 써 왔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견하준도 디스전에 재능이 있다니까. 디스랩이 아니라 디스전. 랩은, 엄…
“나도 간절했어!”
류재희의 선창에 다들 입 모아 건배사를 외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견하준은 모두가 건배사를 외칠 때 빨개진 얼굴로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잔은 또 착실하게 부딪혔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보다 훨씬 낫다. 그때는 내가 견하준을 물들인 죄로 대가리 박아야 하나 싶어서 아득했는데, 이제야 좀 견하준답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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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이 화려하게 몰락하는 동안 류재희는 준우승전을 치렀다.
준우승전인 4라운드 미션은 운명을 건 경연곡 선택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1시간 전, 참가자들은 총 두 개의 곡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나는 본인이 고른 경연곡, 다른 하나는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
본인이 고른 경연곡은 무대 중간에 추가 도전 미션이 주어진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도, 미션의 타이밍도 알지 못한 채로 무대를 이어나가다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미션을 즉석에서 수행해야 한다.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은 추가 도전 미션이 없다. 하지만 1시간 만에 경연곡을 연습하여 무대에 올라야 한다.
운명을 건 선택이라는 미션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가수 본인이 고른 곡이 성공적인 선택일지, 혹은 더 도전적인 곡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했다.
두 명은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선택했고, 두 명은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선택했다.
류재희는 전자였다. 1시간 내로는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곡 특색을 살려 완벽하게 무대를 완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밀고 나갔다.
류재희의 추가 도전 미션은 무반주 구간이었다.
노래 도중 갑작스럽게 음향 사고마냥 전주가 뚝 끊겼지만 류재희는 당황하지 않고 아카펠라로 그 파트를 소화했으며, 다시 음향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클라이맥스를 집중시켜 극적인 연출을 더해, 오히려 인상 깊게 남는 무대를 만들었다.
본인이 고른 경연곡을 택한 다른 가수는 템포 체인지가 추가 도전 미션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빨라진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고 박자를 놓쳐 감점을 받았다.
후자 두 명도 똑같은 선택을 했지만 전자와 마찬가지로 운명이 갈렸다.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회귀 전 우승자였던 노강열은 1시간 만에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곡을 완벽하게 무대에서 선보이며 환호를 받았지만, 다른 가수는 곡을 외우기에 급급해 누가 봐도 부족한 무대를 선보였다.
떨어진 사람들은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고, 류재희와 노강열은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류재희와 노강열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으아아아, 노강열 선배님 너무 잘해요! 진짜 보컬의 신이라고요! 제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결승까지 온 것도 운 좋게 노강열 선배님이랑 중간에 안 붙은 덕분에 온 것 같아요.”
결승전 경연곡을 신중히 고르던 류재희가 머리를 감싸 메고 한탄했다. 옆에서 류재희가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한 경연곡 리스트를 함께 뽑아 주다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물론 나도 네가 100퍼센트 이긴다는 확신은 못 하지.”
무슨 말을 기대한 건지 류재희가 입을 비죽였다. 내가 음악 관련해선 입바른 말을 못한다, 막내야. 확실히 노강열 선배님은 경력이든 실력이든 능력치가 류재희보다 모두 우위였다.
“그런데 이것만은 확신한다. 네가 못 이길 것 같다고 지레 포기하면 가능성은 0퍼센트고, 어떻게든 넘어 보겠다고 부딪힐 각오를 하고선 덤비면 50퍼센트라고.”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으며 덧붙이자 눈을 깜빡인 류재희가 물었다.
“왜 50퍼센트에요?”
“네가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일 거 아니냐. 그리고 나는 너를 막 지레 포기하는 놈으로 그렇게 키운 적 없다. 나는 뭐 스코언이 조빱이라 그렇게 평온했대?”
오예, 초심도 감점 안 됐고.
내가 업그레이드된 초심도 시스템에 만족하는 동안, 류재희는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열심히 본인 휴대폰 뮤직 리스트를 뒤져보고 있었다. 애청곡에서 고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형들, 결승 방청하러 오실래요? 형평성 때문에 투표권은 못 받아도 방청은 가능해요.”
“막내 결승인데 당연히 가지!”
“그러면 인마, 우리 초대도 안 하려고 했냐? 나는 결승에 너네 다 불렀는데, 어?”
“엥, 왜 우리 투표 못 해? 류재 너한테만 투표할까 봐? 그러면 노강열 선배님도 똑같은 숫자로 지인 부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아쉽네. 막내한테 결승전 한 표 투표해 주고 싶었는데.”
모두가 방청객에서 함께하는 류재희의 결승전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