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50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99화(499/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99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크리스마스가 없어도 우리한테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있었다.
“왜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생략했는지 알 것 같다. 트리 꾸미는 게 은근 성가시네.”
숙소 거실 한구석을 차지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열심히 장식을 달다가 문득 든 깨달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부모님을 이해해 가게 되는 거구나.
그땐 동심이 넘쳐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트리를 꾸미지 않아서 귀찮지 않고 마냥 좋았던 거였다.
“그래서 우리집도 크리스마스 트리 안 놓고 보냈잖아. 카이사르 오고 한 번 트리 샀는데 캣타워인줄 알고 올라가다가 엄청 엎어서 하루 만에 다시 다용도실에 집어넣었지.”
“우리 집도요. 그래서 지금 크리스마스 트리 이렇게 장식하는 게 엄청 오랜만이에요.”
서예현과 김도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류재희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불규칙 속의 규칙 콘셉트로 배치해 놓은 장식 사이에 산타 장식을 달며 눈을 깜빡였다.
“의외로 트리 없이 크리스마스 보낸 집이 많네요.”
“다 유년기 한때 추억이지. 비슷한 의미로 지금 추억 만들기 하고 있는 거고.”
내년에 트리를 꺼내지 않아도 될 밑밥을 미리 깔아 놨다.
“그래도 재밌어요. 우리 데뷔 초에 뮤비 찍으면서 크리스마스 트리 꾸민 건 그냥 다 장식되어 있는 트리에 장식 몇 개만 더 달았던 거잖아요.”
제일 큰 키를 이용해서 트리 꼭대기에 별을 달던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그래, 저 녀석도 한두 해 더 트리 꾸미기 노동을 하면 질리겠지. 그때까지는 어울려 줘야지 어쩌겠는가.
원래 어렸을 때 못 해 봤던 것들은 커서 어릴 적의 한이 풀릴 때까지 해 보는 법이다.
어쨌건 집에서는 용돈 받고 살아야 하니 미성년자 시기에는 친조부한테 소소한 불효만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집 나가고 돈 벌고 나서야 효륜디스랩을 팔순 잔치에서 시원하게 박았던 나처럼 말이다.
본가 추억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혼자만 말이 없던 견하준을 툭 치며 물었다.
“야, 준아. 너희 집은?”
“…내 기억 속에는 트리 있는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없어. 내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쓰러진 트리에 깔렸다나.”
“오우, 설마 트리 트라우마 이런 거 있어?”
“그럴 리가. 그냥 부모님의 과보호 걱정이지.”
만약 트라우마가 있으면 견하준의 동선이 겹치지 않는 거실 구석이나 견하준의 시야가 닿지 않을 만한 공간인 류재희의 방에 트리를 처박아 놔야 하나 고민했는데 없다니까 다행이었다.
하긴, 크리스마스 트리 트라우마 있으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디 못 나다니지. 사방이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마지막으로 LED 전구 줄을 트리에 칭칭 감고 콘센트에 연결하니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미니 스피커에서 캐롤송까지 흘러나오자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였다.
고생은 했지만 결과물이 제법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자자,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선물 포장해서 트리 밑에 둬라.”
내 말에 김도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류재희보다 더 기뻐했다.
“드디어 내 로망을 이루는구나! 반지하 숙소에서 무슨 트리냐고 한 소리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이만한 트리를 설치해도 생활 반경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숙소로 왔다니…!”
로망이 트리야, 집이야?
“너도 크리스마스 선물 안 받았냐? 넌 받았을 거 아니야. 그런데 이게 왜 로망이야?”
“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 쫙 있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어렸을 때 한 번 그렇게 받았다가 빨간색 로봇 서로 가지겠다고 형이랑 싸워서 그 다음부터는 엄마아빠한테 직접 수여받았어요.”
정말로 김도빈 같은 이유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숙제 하나를 끝내 놓고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숙제에 돌입했다.
4년간 부대끼고 살아온 터라 서로의 취향을 대강 알고는 있었다.
마이돌 때처럼 정해진 지원금이 있는 것도 아니요, 설령 있다 한들 이제는 모두가 자유롭게 추가금을 퍼붓는 게 가능했다.
다른 멤버들의 선물은 돈으로 해결했지만 류재희의 선물만은 돈이 아닌 다른 걸로 해 주고 싶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추억할 수 있는 걸로.
그리고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만한 것으로.
내가 준 생일 선물을 친동생 때문에 강제로 잃어버리고 본인의 속상함 이전에 나한테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지켜봤던 입장으로써 그게 류재희 선물 조건의 1순위였다.
“결국 이걸 꺼내게 되는구나. 내 크리스마스 및 겨울 시즌 연금곡이었는데.”
작업실에 틀어박혀 곡 멜로디를 편곡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데뷔 초에 냈던 이 영 연금곡이 될 기미가 안 보이자 그건 마감에 쫓겨서 낸 곡이라고 위안하며 칼을 갈고 장기 프로젝트로 작업했던 겨울 시즌 곡이었다.
솔직히 내 작업물에 깐깐한 내가 들어도 이건 한 10년은 길이길이 남을 역작이었다.
랩 파트를 싹 빼고 멜로디로 뜯어 고친 버전, 그리고 랩 파트를 피처링 수준으로 줄인 버전, 이렇게 두 버전을 준비했다.
선택은 류재희의 몫이었다.
가이드녹음은 견하준에게 맡길까 하다가 역시 이 곡을 최초로 듣는 건 선물의 당사자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내가 했다.
거친 저음과 불안한 고음과 그걸 들어보는 나. 그건 아마도…
“음정 알아들을 정도는 되겠지?”
고음 음역대는 류재희에게 맞춘 터라 내가 부른 데모곡엔 가성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알아들을 정도이기만 하면 되지 않겠냐.
나는 항상 보컬 부문에 관해서는 나 자신한테 관대한 편이었다. 래퍼가 랩만 잘하면 됐지.
가이드녹음까지 끝낸 두 개의 음정 파일을 담은 USB를 큰 선물 상자에 넣고 잘 포장했다. 과대 포장의 정석이었다.
류재희의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선물 상자를 감싼 리본 끈 밑에 잘 끼워 넣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내려놓았다.
마찬가지로 포장된 네 개의 선물 상자를 바리바리 들고 와서 트리 밑에 놓던 김도빈이 내가 방금 둔 선물 상자를 가리키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이제 비견하준 차별은 그만두고 비류재희 차별을 시작하시기로 마음먹으셨나요?”
“뭔 헛소리야?”
타박 한 마디 하고 등을 돌리자 기어이 그 선물 상자를 들어봤는지 당황한 김도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뭐지? 크기는 이렇게 큰데 왜 이렇게 가볍지?”
내가 저거 저럴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선물을 오픈하는 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했다. 제일 먼저 리더이자 가장인 나부터 선물을 오픈했다.
가장 먼저 뜯어 본 서예현의 선물은 돈 꽃다발이었다. 수표가 몇 장이나 꽂힌 꽃다발을 선물 상자에서 꺼내 들자 서예현이 기대에 한껏 찬 얼굴로 물었다.
“어때? 신박하지? 선물 받은 느낌도 나지?”
당사자가 필요한 걸 알아서 살 수 있는 돈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는 인간이었기에 모두의 선물을 저걸로 통일했을 확률이 100%였다.
그래도 돈봉투에서 많이 발전했다 싶었다. 주황색 장미 꽃다발을 서예현의 품에 안겨 놓고 나머지 선물도 깠다.
김도빈의 선물인 새 작곡 장비 명세서, 견하준의 선물인 내가 위시리스트에 넣어 놨던 시계를 거쳐 류재희의 선물을 깔 차례가 다가왔다.
포장을 벗기고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신발 한 켤레에 나도 모르게 상자 뚜껑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내가 류재희한테 생일 선물로 주었던 그 신발이었다. 류재희의 망할 동생 놈이 중고월드에 팔아먹었던.
“돌려받지는 못했고, 똑같은 거 찾아왔어요. 형이 아끼는 건데 제가 생일 선물로 달라고 졸랐다가 그렇게 잃어버려서 그게 좀 마음에 남았거든요.”
“짜식, 한정판이라 찾기도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다.”
피식 웃으며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내게 다시 돌아온 한정판 신발도 신발이지만 저 녀석 마음이 이걸로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면 그게 내게 최고의 선물이지, 뭐.
다른 멤버들도 선물을 모두 오픈하고, 마지막으로 잔뜩 기대에 들뜬 류재희의 순서만이 남아 있었다.
서예현의 선물은 다른 멤버들에게 준 돈 꽃다발과 달랐다. 무려 돈 꽃바구니였다. 더 신경 쓴 태가 났다. 수표도 딱 봐도 더 많이 꽂혀 있었다.
“우와, 나 마침 노트북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형?”
“그걸 네가 내 귀에 대고 말했잖아.”
“헉, 이 코트! 가격 때문에 보고만 있었던 건데…! 하준이 형, 진짜 고마워요!”
“뭘, 크리스마스잖아.”
김도빈과 견하준의 선물까지 차례로 뜯어 본 류재희가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남겨 놨던 가장 큰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
“엥…?”
집채만 한 박스 안에 덩그러니 담긴 USB를 발견한 류재희가 당황했다. 박스 주위로 몰려든 다른 멤버들도 무슨 이런 과대 포장을 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뭐. 자고로 선물 상자는 커야지.”
“쓰레기는 네가 버리는 거지?”
내가 서예현과 논쟁을 벌이는 동안 류재희는 새로 받은 노트북에 바로 USB를 연결했다.
“?”
“안 잃어버리고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선물이 뭘까 생각하다가 역시 겨울철마다 돈 들어오는 연금곡이 최고라는 생각에 겨울 시즌 솔로곡을 선물로 준비해 봤어. 야, 이걸로 한 10년 크리스마스 선물 퉁쳐도 되겠다.”
처음에는 ‘그 정돈가’ 하던 멤버들의 표정은 곡이 재생되자 ‘그 정도네’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불러도 노래가 좋게 들리면, 이걸 막내가 부르면….”
“와, 막내 부럽다. 연금곡 생겼네.”
멤버들이 부러운 감정을 담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랩이 있는 버전까지 듣고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 보는 류재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어때, 선물 마음에 드냐?”
“…최고예요.”
살짝 맺힌 눈물을 후다닥 훔친 류재희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꾸했다.
“크리스마스도 12월도 지나가고 있는 터라 발매하기 좀 늦은 감이 있긴 하니까 네가 골라. 늦은 캐롤 및 겨울 시즌 송으로 발매할래, 아니면 내년까지 기다렸다가 12월 초에 발매할래?”
“내년에 레브 곡으로 발표해요. 다 같이 뮤비도 찍고.”
굉장히 의외의 말에 다급히 류재희 설득을 시도했다.
“이걸로 솔로 앨범 퉁치는 게 아니라 이거 받고 또 솔로 앨범도 내준다니까? 이 곡 욕심 안 나?”
“욕심은 나죠. 이 곡을 안 좋다고 하는 사람은 제가 장담컨대 절대 없을걸요. 그래도 데이드림한테 더 큰 선물을 주고 싶은 욕심이 더 커서 그래요. 솔로곡보단 우리가 다 같이 참여하는 게 팬분들한테는 최고의 선물이잖아요.”
류재희가 씩 웃었다.
“이런 곡을 뒤늦은 류재희 솔로 겨울 시즌 송으로 남기기에는 많이 아깝거든요.”
선물을 받은 당사자가 이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는 류재희의 솔로곡이 아니라 레브의 단체곡으로 내년을 기약하며 선물 개봉식이 끝이 났다.
내가 준비한 류재희만을 위한 선물이 모두의 선물이 된 셈이라 나는 류재희 선물을 패싱한 놈이 되어 버렸다. 에휴, 따로 챙겨 줘야지. 내일까지 구할 수 있는 선물이 뭐가 있으려나.
“그럼 이제 칠면조 대신 치킨 시켜서 파티해요!”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치킨 대신 칠면조햄이 든 샌드위치를 준비했어, 도빈아. 그거 칼로리 의외로 낮더라.”
“으아아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서예현의 칼로리 집착증은 건재했다.
* * *
12월 31일, M사에서 하는 가요빅매치 대기실.
신월 엔터와 M사가 사이가 틀어졌다는 그 불화설 카더라가 진짜였는지 이번 가요빅매치에는 알테어 및 신월 엔터 소속 아이돌들이 참석하지 않았기에 엔딩은 우리가 맡게 되었다.
흠, 작년부터 알테어한테 엔딩 안 주고 알테어보다 성적 낮았던 TK 엔터 아이돌한테 엔딩 무대를 주더라니.
이번에는 디그린도 TK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어부지리로 엔딩 무대가 우리한테 온 모양이었다. 소속사가 좆소를 벗어났어도 아직은 레브 하나 있는 중소라서 우리에게 엔딩을 쥐여 주는 건 덥넷밖에 없었는데.
25일에도 한 번 봤긴 하지만 31일에 차연호를 못 보게 된 건 조금 아쉬웠다.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하는 게 속내가 까발려져서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거짓말탐지기를 존나 진지하게 마주 보고 했던 게 뒤늦게 쪽팔려져서인지 가늠하는 재미기 있었는데.
“기념비적인 첫 가요빅매치 엔딩 무대인데 이 자리에 네 명밖에 없다니….”
테이블에 세워 놓은 아이패드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빈자리를 힐긋거리며 김도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99화(499/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99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크리스마스가 없어도 우리한테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있었다.
“왜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생략했는지 알 것 같다. 트리 꾸미는 게 은근 성가시네.”
숙소 거실 한구석을 차지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열심히 장식을 달다가 문득 든 깨달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부모님을 이해해 가게 되는 거구나.
그땐 동심이 넘쳐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트리를 꾸미지 않아서 귀찮지 않고 마냥 좋았던 거였다.
“그래서 우리집도 크리스마스 트리 안 놓고 보냈잖아. 카이사르 오고 한 번 트리 샀는데 캣타워인줄 알고 올라가다가 엄청 엎어서 하루 만에 다시 다용도실에 집어넣었지.”
“우리 집도요. 그래서 지금 크리스마스 트리 이렇게 장식하는 게 엄청 오랜만이에요.”
서예현과 김도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류재희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불규칙 속의 규칙 콘셉트로 배치해 놓은 장식 사이에 산타 장식을 달며 눈을 깜빡였다.
“의외로 트리 없이 크리스마스 보낸 집이 많네요.”
“다 유년기 한때 추억이지. 비슷한 의미로 지금 추억 만들기 하고 있는 거고.”
내년에 트리를 꺼내지 않아도 될 밑밥을 미리 깔아 놨다.
“그래도 재밌어요. 우리 데뷔 초에 뮤비 찍으면서 크리스마스 트리 꾸민 건 그냥 다 장식되어 있는 트리에 장식 몇 개만 더 달았던 거잖아요.”
제일 큰 키를 이용해서 트리 꼭대기에 별을 달던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그래, 저 녀석도 한두 해 더 트리 꾸미기 노동을 하면 질리겠지. 그때까지는 어울려 줘야지 어쩌겠는가.
원래 어렸을 때 못 해 봤던 것들은 커서 어릴 적의 한이 풀릴 때까지 해 보는 법이다.
어쨌건 집에서는 용돈 받고 살아야 하니 미성년자 시기에는 친조부한테 소소한 불효만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집 나가고 돈 벌고 나서야 효륜디스랩을 팔순 잔치에서 시원하게 박았던 나처럼 말이다.
본가 추억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혼자만 말이 없던 견하준을 툭 치며 물었다.
“야, 준아. 너희 집은?”
“…내 기억 속에는 트리 있는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없어. 내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쓰러진 트리에 깔렸다나.”
“오우, 설마 트리 트라우마 이런 거 있어?”
“그럴 리가. 그냥 부모님의 과보호 걱정이지.”
만약 트라우마가 있으면 견하준의 동선이 겹치지 않는 거실 구석이나 견하준의 시야가 닿지 않을 만한 공간인 류재희의 방에 트리를 처박아 놔야 하나 고민했는데 없다니까 다행이었다.
하긴, 크리스마스 트리 트라우마 있으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디 못 나다니지. 사방이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마지막으로 LED 전구 줄을 트리에 칭칭 감고 콘센트에 연결하니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미니 스피커에서 캐롤송까지 흘러나오자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였다.
고생은 했지만 결과물이 제법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자자,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선물 포장해서 트리 밑에 둬라.”
내 말에 김도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류재희보다 더 기뻐했다.
“드디어 내 로망을 이루는구나! 반지하 숙소에서 무슨 트리냐고 한 소리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이만한 트리를 설치해도 생활 반경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숙소로 왔다니…!”
로망이 트리야, 집이야?
“너도 크리스마스 선물 안 받았냐? 넌 받았을 거 아니야. 그런데 이게 왜 로망이야?”
“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 쫙 있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어렸을 때 한 번 그렇게 받았다가 빨간색 로봇 서로 가지겠다고 형이랑 싸워서 그 다음부터는 엄마아빠한테 직접 수여받았어요.”
정말로 김도빈 같은 이유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숙제 하나를 끝내 놓고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숙제에 돌입했다.
4년간 부대끼고 살아온 터라 서로의 취향을 대강 알고는 있었다.
마이돌 때처럼 정해진 지원금이 있는 것도 아니요, 설령 있다 한들 이제는 모두가 자유롭게 추가금을 퍼붓는 게 가능했다.
다른 멤버들의 선물은 돈으로 해결했지만 류재희의 선물만은 돈이 아닌 다른 걸로 해 주고 싶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추억할 수 있는 걸로.
그리고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만한 것으로.
내가 준 생일 선물을 친동생 때문에 강제로 잃어버리고 본인의 속상함 이전에 나한테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지켜봤던 입장으로써 그게 류재희 선물 조건의 1순위였다.
“결국 이걸 꺼내게 되는구나. 내 크리스마스 및 겨울 시즌 연금곡이었는데.”
작업실에 틀어박혀 곡 멜로디를 편곡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데뷔 초에 냈던 이 영 연금곡이 될 기미가 안 보이자 그건 마감에 쫓겨서 낸 곡이라고 위안하며 칼을 갈고 장기 프로젝트로 작업했던 겨울 시즌 곡이었다.
솔직히 내 작업물에 깐깐한 내가 들어도 이건 한 10년은 길이길이 남을 역작이었다.
랩 파트를 싹 빼고 멜로디로 뜯어 고친 버전, 그리고 랩 파트를 피처링 수준으로 줄인 버전, 이렇게 두 버전을 준비했다.
선택은 류재희의 몫이었다.
가이드녹음은 견하준에게 맡길까 하다가 역시 이 곡을 최초로 듣는 건 선물의 당사자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내가 했다.
거친 저음과 불안한 고음과 그걸 들어보는 나. 그건 아마도…
“음정 알아들을 정도는 되겠지?”
고음 음역대는 류재희에게 맞춘 터라 내가 부른 데모곡엔 가성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알아들을 정도이기만 하면 되지 않겠냐.
나는 항상 보컬 부문에 관해서는 나 자신한테 관대한 편이었다. 래퍼가 랩만 잘하면 됐지.
가이드녹음까지 끝낸 두 개의 음정 파일을 담은 USB를 큰 선물 상자에 넣고 잘 포장했다. 과대 포장의 정석이었다.
류재희의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선물 상자를 감싼 리본 끈 밑에 잘 끼워 넣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내려놓았다.
마찬가지로 포장된 네 개의 선물 상자를 바리바리 들고 와서 트리 밑에 놓던 김도빈이 내가 방금 둔 선물 상자를 가리키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이제 비견하준 차별은 그만두고 비류재희 차별을 시작하시기로 마음먹으셨나요?”
“뭔 헛소리야?”
타박 한 마디 하고 등을 돌리자 기어이 그 선물 상자를 들어봤는지 당황한 김도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뭐지? 크기는 이렇게 큰데 왜 이렇게 가볍지?”
내가 저거 저럴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선물을 오픈하는 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했다. 제일 먼저 리더이자 가장인 나부터 선물을 오픈했다.
가장 먼저 뜯어 본 서예현의 선물은 돈 꽃다발이었다. 수표가 몇 장이나 꽂힌 꽃다발을 선물 상자에서 꺼내 들자 서예현이 기대에 한껏 찬 얼굴로 물었다.
“어때? 신박하지? 선물 받은 느낌도 나지?”
당사자가 필요한 걸 알아서 살 수 있는 돈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는 인간이었기에 모두의 선물을 저걸로 통일했을 확률이 100%였다.
그래도 돈봉투에서 많이 발전했다 싶었다. 주황색 장미 꽃다발을 서예현의 품에 안겨 놓고 나머지 선물도 깠다.
김도빈의 선물인 새 작곡 장비 명세서, 견하준의 선물인 내가 위시리스트에 넣어 놨던 시계를 거쳐 류재희의 선물을 깔 차례가 다가왔다.
포장을 벗기고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신발 한 켤레에 나도 모르게 상자 뚜껑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내가 류재희한테 생일 선물로 주었던 그 신발이었다. 류재희의 망할 동생 놈이 중고월드에 팔아먹었던.
“돌려받지는 못했고, 똑같은 거 찾아왔어요. 형이 아끼는 건데 제가 생일 선물로 달라고 졸랐다가 그렇게 잃어버려서 그게 좀 마음에 남았거든요.”
“짜식, 한정판이라 찾기도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다.”
피식 웃으며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내게 다시 돌아온 한정판 신발도 신발이지만 저 녀석 마음이 이걸로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면 그게 내게 최고의 선물이지, 뭐.
다른 멤버들도 선물을 모두 오픈하고, 마지막으로 잔뜩 기대에 들뜬 류재희의 순서만이 남아 있었다.
서예현의 선물은 다른 멤버들에게 준 돈 꽃다발과 달랐다. 무려 돈 꽃바구니였다. 더 신경 쓴 태가 났다. 수표도 딱 봐도 더 많이 꽂혀 있었다.
“우와, 나 마침 노트북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형?”
“그걸 네가 내 귀에 대고 말했잖아.”
“헉, 이 코트! 가격 때문에 보고만 있었던 건데…! 하준이 형, 진짜 고마워요!”
“뭘, 크리스마스잖아.”
김도빈과 견하준의 선물까지 차례로 뜯어 본 류재희가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남겨 놨던 가장 큰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
“엥…?”
집채만 한 박스 안에 덩그러니 담긴 USB를 발견한 류재희가 당황했다. 박스 주위로 몰려든 다른 멤버들도 무슨 이런 과대 포장을 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뭐. 자고로 선물 상자는 커야지.”
“쓰레기는 네가 버리는 거지?”
내가 서예현과 논쟁을 벌이는 동안 류재희는 새로 받은 노트북에 바로 USB를 연결했다.
“?”
“안 잃어버리고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선물이 뭘까 생각하다가 역시 겨울철마다 돈 들어오는 연금곡이 최고라는 생각에 겨울 시즌 솔로곡을 선물로 준비해 봤어. 야, 이걸로 한 10년 크리스마스 선물 퉁쳐도 되겠다.”
처음에는 ‘그 정돈가’ 하던 멤버들의 표정은 곡이 재생되자 ‘그 정도네’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불러도 노래가 좋게 들리면, 이걸 막내가 부르면….”
“와, 막내 부럽다. 연금곡 생겼네.”
멤버들이 부러운 감정을 담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랩이 있는 버전까지 듣고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 보는 류재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어때, 선물 마음에 드냐?”
“…최고예요.”
살짝 맺힌 눈물을 후다닥 훔친 류재희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꾸했다.
“크리스마스도 12월도 지나가고 있는 터라 발매하기 좀 늦은 감이 있긴 하니까 네가 골라. 늦은 캐롤 및 겨울 시즌 송으로 발매할래, 아니면 내년까지 기다렸다가 12월 초에 발매할래?”
“내년에 레브 곡으로 발표해요. 다 같이 뮤비도 찍고.”
굉장히 의외의 말에 다급히 류재희 설득을 시도했다.
“이걸로 솔로 앨범 퉁치는 게 아니라 이거 받고 또 솔로 앨범도 내준다니까? 이 곡 욕심 안 나?”
“욕심은 나죠. 이 곡을 안 좋다고 하는 사람은 제가 장담컨대 절대 없을걸요. 그래도 데이드림한테 더 큰 선물을 주고 싶은 욕심이 더 커서 그래요. 솔로곡보단 우리가 다 같이 참여하는 게 팬분들한테는 최고의 선물이잖아요.”
류재희가 씩 웃었다.
“이런 곡을 뒤늦은 류재희 솔로 겨울 시즌 송으로 남기기에는 많이 아깝거든요.”
선물을 받은 당사자가 이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는 류재희의 솔로곡이 아니라 레브의 단체곡으로 내년을 기약하며 선물 개봉식이 끝이 났다.
내가 준비한 류재희만을 위한 선물이 모두의 선물이 된 셈이라 나는 류재희 선물을 패싱한 놈이 되어 버렸다. 에휴, 따로 챙겨 줘야지. 내일까지 구할 수 있는 선물이 뭐가 있으려나.
“그럼 이제 칠면조 대신 치킨 시켜서 파티해요!”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치킨 대신 칠면조햄이 든 샌드위치를 준비했어, 도빈아. 그거 칼로리 의외로 낮더라.”
“으아아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서예현의 칼로리 집착증은 건재했다.
* * *
12월 31일, M사에서 하는 가요빅매치 대기실.
신월 엔터와 M사가 사이가 틀어졌다는 그 불화설 카더라가 진짜였는지 이번 가요빅매치에는 알테어 및 신월 엔터 소속 아이돌들이 참석하지 않았기에 엔딩은 우리가 맡게 되었다.
흠, 작년부터 알테어한테 엔딩 안 주고 알테어보다 성적 낮았던 TK 엔터 아이돌한테 엔딩 무대를 주더라니.
이번에는 디그린도 TK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어부지리로 엔딩 무대가 우리한테 온 모양이었다. 소속사가 좆소를 벗어났어도 아직은 레브 하나 있는 중소라서 우리에게 엔딩을 쥐여 주는 건 덥넷밖에 없었는데.
25일에도 한 번 봤긴 하지만 31일에 차연호를 못 보게 된 건 조금 아쉬웠다.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하는 게 속내가 까발려져서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거짓말탐지기를 존나 진지하게 마주 보고 했던 게 뒤늦게 쪽팔려져서인지 가늠하는 재미기 있었는데.
“기념비적인 첫 가요빅매치 엔딩 무대인데 이 자리에 네 명밖에 없다니….”
테이블에 세워 놓은 아이패드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빈자리를 힐긋거리며 김도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