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48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82화(482/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82화
* * *
“네이비 후배들 자컨 풀리고 이모한테 전화 왔잖아요. 예약 문의 전화가 전화기에서 불날 수준으로 왔대요. 촬영하러 온 애들이 그렇게 유명한 애들이었냐고 이모가 물어봤거든요.”
김도빈은 본가에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이야깃거리가 생겨 잔뜩 신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오늘 안으로 다 먹어 치워야만 하는 샐러드를 친히 포장까지 까서 김도빈의 앞에 놓아 주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 했는데?”
“걔네도 유명하고 저희도 유명해서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터졌다고 했죠.”
화자가 김도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정 관념에 박혀 있던 김도빈스러운 대답을 김도빈이 하지 않은 지도 제법 됐다. 저 녀석이 드디어 철이 들었다는 기특함 반, 왜인지 모를 시원씁쓸함 반이었다.
이게 바로 철이 든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인가. 물론 내가 김도빈을 키운 건 아니지만.
류재희도 자연스럽게 김도빈의 앞에 앉아 샐러드 하나의 포장을 뜯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민박은 문 닫는다지 않았어?”
“식당은 하신대. 그래서 지금 예약 박 터지고 있다나. 고맙다고 나중에 한 번 더 멤버들 꼭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라고.”
아무래도 고난의 3일 후유증이 사라질 때까지 다시 그 민박에 가는 건 요원할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젠간 후유증이 사라져 닭백숙이랑 닭볶음탕 한 번 더 먹으러 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셋이서 냉장고에 남은 마지막 샐러드를 깔끔하게 해치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샐러드가 모두 사라져 기뻐할 서예현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비록 그 샐러드의 3분의 2는 내 본가 냉장고에 고이 담겨 있지만 말이다.
“형, 꽃다발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나아요?”
“네 마음에 드는 걸로 사.”
“에이, 미감은 형이 훨씬 더 좋잖아요. 기왕이면 예쁜 꽃다발이 낫죠.”
“그러면 왼쪽 거. 그게 색 조합이 더 깔끔해.”
공연은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는 오케스트라 같은 연주회를 더 선호했기에 뮤지컬 관람도 꽤 오랜만이었다.
각색을 거치고 활자가 연극이라는 형태로 눈앞에서 구현이 되어서 그런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한결 다른 신선함을 선사했다.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커튼콜까지 쭉 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 대기실에서 류재희가 지인 배우를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물품 보관소에서 꽃다발이 든 쇼핑백을 가져와 류재희한테 건네주었다.
“자, 찍는다. 하나, 둘.”
SNS에 올릴 투샷과 지인들 단체 사진을 찍어 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귀찮아서 사진 촬영은 김도빈한테 맡기려 했더니 사진의 퀄리티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굳이 굳이 나한테 맡기더라.
이번에 뮤지컬 무대에 선 배우가 꽤 인맥 관리를 잘하는 친구인지 류재희와 함께 TK 연습생 시절을 함께 보냈던 이들이 제법 보였다.
TK 연습생 서바이벌이었던 ‘Select My Idol’을 통해 데뷔한 아이돌 멤버도 있었다. 쟤는 활동이 겹쳤을 때 류재희와 오고 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았기에 눈에 제법 익었다. 내가 SMI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양손 가득 안고 있던 꽃다발들을 조심스럽게 쇼핑백에 넣은 뮤지컬 배우 친구가 류재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 재희야. 그런데 그거 들었냐? 이제영도 연기하려 하는 거 같더라. 내 지인 소속사에 이제영 들어왔다는데. 거기가 배우 소속사거든.”
“아, 그래? 실장님 앞에서 김지운이랑 나 몰아갈 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거짓말할 때부터 그 인간 연기에 재능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조용히 살지는 못할망정, 양심 있나?”
류재희가 냉소를 내뱉었다. 뮤지컬 배우 친구가 그런 류재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
“그래도 그때, SMI 때 재희 네가 폭로한 거, 업보라고 다들 속 시원해하면서 대리 만족했어. 물론 그 인간들 때문에 제일 피해 봤던 건 폭행죄 뒤집어쓰고 TK 퇴출당한 재희 너였긴 하지만.”
“진짜 이제영은 그래도 순위 간당간당해서 떨어질 것 같긴 했는데 나 하마터면 김지운이랑 한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잖아. 으으, 그 쓰레기랑 7년 플러스 알파의 세월을 함께 보낼 뻔했다고.”
TK 보이 그룹 멤버가 진저리 치며 팔을 쓱쓱 문질렀다.
하긴, 류재희는 TK에서 나와서 우리를 만났기라도 하지. 쟤네는 몇 년 동안 자기들을 괴롭힌 놈들이랑 한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구나.
“제발 떨어지라고 밤마다 싹싹 빌었는데 재희 너 폭로랑 팀별 미션곡 표절 건이랑 합쳐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씨…”
“그러고 보니까 김지운은 요즘 뭐한대? 나는 김지운 그 인간이 먼저 다시 나올 줄 알았는데.”
“몰라, 관심 없어. 제발 평생 안 기어 나왔으면 좋겠어. 나 아직도 다른 연습생들 앞에서 그 새끼한테 인신공격 당한 거 못 잊어.”
얼마나 기억하기도 싫은 기억인지 TK 보이 그룹 멤버는 내가 생판 남의 치아 건강을 걱정할 정도로 이를 아득바득 갈아 댔다.
“그 새끼랑 이제영이랑 티비에 얼굴 비추면 재희가 쓴 폭로문 존나 끌올하고 영어로 번역까지 해서 올릴 거야. 이제 재희 슈스라 걔네 더 좆돼. 아주 글로벌적으로 좆될걸.”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군. 내가 워낙 착하게 살아온 덕에 나한테 저렇게까지 이를 가는 사람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차연호는 자연 발생이라 치자. 걔도 요즘은 독기 한풀 꺾여서 이도 덜 갈더라.
슬슬 인사를 마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나와 친구들끼리도 작별 인사를 마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셋이 남자 이야기 주제는 오늘 공연한 의 감상 후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결국 악마랑 계약한 건 본인 의지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결국 내기 문장을 말했는데도 용서 받고 천국 간 게 말이 안 되는데요. 신이 너무 파우스트 편애 같아요.”
“계약의 허를 찌른 거지. 금지된 문장을 말했던 타이밍이 정말 이 시간을 계속 누리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었잖아. 깨달음을 얻은 기쁨 때문이었지.”
“어쨌든 금지 키워드를 말하긴 했잖아요. 역시 목소리 큰 놈이 우기면 이긴다는 게 주제인 건가.”
김도빈의 삐딱한 해석을 바로잡아 주려 했으나 김도빈의 생각은 더욱 삐딱한 해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사 목소리가 악마보다 음향 사운드가 더 크긴 했지만 이런 해석은 좀.
“음, 악마의 유혹도 모두한테 균등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랜덤? 자연 재해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유혹에 넘어간 인간에게도 벗어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가 주제 아닐까?”
제법 깊이 있는 해석을 꺼낸 류재희가 손가락으로 쿡쿡 김도빈의 볼을 찌르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유혹에 넘어가서 볼살이 오른 형한테도 예현이 형의 분노에서 벗어나서 살을 뺄 기회가 주어져야 하듯이?”
“나 그렇게 살쪘어?”
떨리는 어조로 물어보는 김도빈의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안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쟤는 좀만 운동하면 쫙쫙 빠지더만. 콘서트 연습 며칠 하고 헬스장 며칠 빡세게 굴리면 예현이 형도 뭐라 못 할걸.”
“맞아, 형. 그러니까 예현이 형 앞에서는 최대한 후드티 모자 끈 꽉 조여서 그 볼살을 숨겨. 형이 다시 살 뺄 때까지.”
그 전에 김도빈의 부주의로 인해 서예현한테 결국 들키리란 것에 서예현의 칼로리 집착증을 건다.
“나는 애초부터 악마가 이길 수 없는 내기 조건이라고 봤는데. 타락하지 않는 조건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거라니.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않으면 진짜 쉬운 조건 아니냐?”
내 관점은 김도빈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이 부와 명예를 다 가졌어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몇 개 있으면 계속 그 목표를 향해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거 아니야.”
살면서 이룰 열 가지 목표만 세워 놔도 수명 다 할 때까지 거뜬히 미래지향적으로 살겠다.
지금 당장 나만 봐도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의 조건인 팬 3천만 명 기쁘게 하기를 끝내고 나서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몇 갠데.
하지만 또 김도빈은 신박한 가설로 내 말에 반박했다.
“무한 루프에 가둬 놓으면 언젠가는 타락하지 않을까요? 계속 그 시간대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포기하겠죠.”
“그런 생각은 또 어떻게 하냐?”
현실적인 생각으로 반박을 좀 해 보라고 타박하려다가 무한 루프를 페널티로 박아놓은 극악무도한 우리집 시스템이 생각나 입을 다물었다. 음, 내 현실이긴 하구나.
“제가 재미있게 본 만화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계속 일주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 일주일 안에 무슨 성취를 이뤄도 다 리셋이 되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이 미쳐요. 그래서 루프를 어떻게든 끝내려고 하는데 루프를 끝내려면 주인공이랑 같이 세상이 루프하는 걸 깨달은 주인공의 제일 친한 친구가 혼자 그 루프에 갇혀야 해요. 그래야지 주인공이 나가면서 그 루프가 끝날 수 있어요.”
“어어, 재미있겠다.”
전문 분야가 나와 흥분했는지 잔뜩 들뜬 어조로 쏟아내는 김도빈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해 주었다. 얘가 이러는 걸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익숙할 정도였다.
그런데 서치퀘로 찾다가 본 글에 따르면 얘는 패션 오타쿠라던데 그럼 진짜 오타쿠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소리지?
내가 김도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과 달리 류재희는 김도빈이 늘어놓은 만화 내용에 흥미를 느낀 듯 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루프가 끝난 세상에서는 없는 존재인 거야?”
“존재는 하는데 주인공이랑 함께 루프를 겪었던 그 기억이 루프에 영영 갇혀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만화에서는 사람의 자아를 이루는 건 기억이라고 여기거든. 그래서 나중에 주인공이…”
신나서 떠드는 김도빈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주차 비용을 계산했다.
“그런데 막내 네 친구는 무슨 역이든? 내가 분명히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레트헨 오빠 역이요.”
“아, 맞다.”
그 후로도 한참을 연극 내용으로 이야기하면서 숙소로 돌아오니 먼저 숙소에 도착해 있던 서예현이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었다.
후드티 모자를 벗고 있던 김도빈은 서예현이 우리를 돌아보기 전에 잽싸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후드 줄을 확 당겼다.
“샐러드 다 먹었네? 드디어 너희들이 정신을 차렸구나!”
그게 대체 뭐라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서예현을 보고 류재희와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샐러드의 진짜 행방은 류재희나 내가 입을 털지 않는 이상 서예현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한 법이지.
음, 그렇고말고.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82화(482/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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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후배들 자컨 풀리고 이모한테 전화 왔잖아요. 예약 문의 전화가 전화기에서 불날 수준으로 왔대요. 촬영하러 온 애들이 그렇게 유명한 애들이었냐고 이모가 물어봤거든요.”
김도빈은 본가에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이야깃거리가 생겨 잔뜩 신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오늘 안으로 다 먹어 치워야만 하는 샐러드를 친히 포장까지 까서 김도빈의 앞에 놓아 주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 했는데?”
“걔네도 유명하고 저희도 유명해서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터졌다고 했죠.”
화자가 김도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정 관념에 박혀 있던 김도빈스러운 대답을 김도빈이 하지 않은 지도 제법 됐다. 저 녀석이 드디어 철이 들었다는 기특함 반, 왜인지 모를 시원씁쓸함 반이었다.
이게 바로 철이 든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인가. 물론 내가 김도빈을 키운 건 아니지만.
류재희도 자연스럽게 김도빈의 앞에 앉아 샐러드 하나의 포장을 뜯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민박은 문 닫는다지 않았어?”
“식당은 하신대. 그래서 지금 예약 박 터지고 있다나. 고맙다고 나중에 한 번 더 멤버들 꼭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라고.”
아무래도 고난의 3일 후유증이 사라질 때까지 다시 그 민박에 가는 건 요원할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젠간 후유증이 사라져 닭백숙이랑 닭볶음탕 한 번 더 먹으러 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셋이서 냉장고에 남은 마지막 샐러드를 깔끔하게 해치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샐러드가 모두 사라져 기뻐할 서예현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비록 그 샐러드의 3분의 2는 내 본가 냉장고에 고이 담겨 있지만 말이다.
“형, 꽃다발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나아요?”
“네 마음에 드는 걸로 사.”
“에이, 미감은 형이 훨씬 더 좋잖아요. 기왕이면 예쁜 꽃다발이 낫죠.”
“그러면 왼쪽 거. 그게 색 조합이 더 깔끔해.”
공연은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는 오케스트라 같은 연주회를 더 선호했기에 뮤지컬 관람도 꽤 오랜만이었다.
각색을 거치고 활자가 연극이라는 형태로 눈앞에서 구현이 되어서 그런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한결 다른 신선함을 선사했다.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커튼콜까지 쭉 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 대기실에서 류재희가 지인 배우를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물품 보관소에서 꽃다발이 든 쇼핑백을 가져와 류재희한테 건네주었다.
“자, 찍는다. 하나, 둘.”
SNS에 올릴 투샷과 지인들 단체 사진을 찍어 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귀찮아서 사진 촬영은 김도빈한테 맡기려 했더니 사진의 퀄리티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굳이 굳이 나한테 맡기더라.
이번에 뮤지컬 무대에 선 배우가 꽤 인맥 관리를 잘하는 친구인지 류재희와 함께 TK 연습생 시절을 함께 보냈던 이들이 제법 보였다.
TK 연습생 서바이벌이었던 ‘Select My Idol’을 통해 데뷔한 아이돌 멤버도 있었다. 쟤는 활동이 겹쳤을 때 류재희와 오고 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았기에 눈에 제법 익었다. 내가 SMI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양손 가득 안고 있던 꽃다발들을 조심스럽게 쇼핑백에 넣은 뮤지컬 배우 친구가 류재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 재희야. 그런데 그거 들었냐? 이제영도 연기하려 하는 거 같더라. 내 지인 소속사에 이제영 들어왔다는데. 거기가 배우 소속사거든.”
“아, 그래? 실장님 앞에서 김지운이랑 나 몰아갈 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거짓말할 때부터 그 인간 연기에 재능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조용히 살지는 못할망정, 양심 있나?”
류재희가 냉소를 내뱉었다. 뮤지컬 배우 친구가 그런 류재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
“그래도 그때, SMI 때 재희 네가 폭로한 거, 업보라고 다들 속 시원해하면서 대리 만족했어. 물론 그 인간들 때문에 제일 피해 봤던 건 폭행죄 뒤집어쓰고 TK 퇴출당한 재희 너였긴 하지만.”
“진짜 이제영은 그래도 순위 간당간당해서 떨어질 것 같긴 했는데 나 하마터면 김지운이랑 한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잖아. 으으, 그 쓰레기랑 7년 플러스 알파의 세월을 함께 보낼 뻔했다고.”
TK 보이 그룹 멤버가 진저리 치며 팔을 쓱쓱 문질렀다.
하긴, 류재희는 TK에서 나와서 우리를 만났기라도 하지. 쟤네는 몇 년 동안 자기들을 괴롭힌 놈들이랑 한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구나.
“제발 떨어지라고 밤마다 싹싹 빌었는데 재희 너 폭로랑 팀별 미션곡 표절 건이랑 합쳐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씨…”
“그러고 보니까 김지운은 요즘 뭐한대? 나는 김지운 그 인간이 먼저 다시 나올 줄 알았는데.”
“몰라, 관심 없어. 제발 평생 안 기어 나왔으면 좋겠어. 나 아직도 다른 연습생들 앞에서 그 새끼한테 인신공격 당한 거 못 잊어.”
얼마나 기억하기도 싫은 기억인지 TK 보이 그룹 멤버는 내가 생판 남의 치아 건강을 걱정할 정도로 이를 아득바득 갈아 댔다.
“그 새끼랑 이제영이랑 티비에 얼굴 비추면 재희가 쓴 폭로문 존나 끌올하고 영어로 번역까지 해서 올릴 거야. 이제 재희 슈스라 걔네 더 좆돼. 아주 글로벌적으로 좆될걸.”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군. 내가 워낙 착하게 살아온 덕에 나한테 저렇게까지 이를 가는 사람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차연호는 자연 발생이라 치자. 걔도 요즘은 독기 한풀 꺾여서 이도 덜 갈더라.
슬슬 인사를 마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나와 친구들끼리도 작별 인사를 마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셋이 남자 이야기 주제는 오늘 공연한 의 감상 후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결국 악마랑 계약한 건 본인 의지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결국 내기 문장을 말했는데도 용서 받고 천국 간 게 말이 안 되는데요. 신이 너무 파우스트 편애 같아요.”
“계약의 허를 찌른 거지. 금지된 문장을 말했던 타이밍이 정말 이 시간을 계속 누리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었잖아. 깨달음을 얻은 기쁨 때문이었지.”
“어쨌든 금지 키워드를 말하긴 했잖아요. 역시 목소리 큰 놈이 우기면 이긴다는 게 주제인 건가.”
김도빈의 삐딱한 해석을 바로잡아 주려 했으나 김도빈의 생각은 더욱 삐딱한 해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사 목소리가 악마보다 음향 사운드가 더 크긴 했지만 이런 해석은 좀.
“음, 악마의 유혹도 모두한테 균등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랜덤? 자연 재해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유혹에 넘어간 인간에게도 벗어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가 주제 아닐까?”
제법 깊이 있는 해석을 꺼낸 류재희가 손가락으로 쿡쿡 김도빈의 볼을 찌르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유혹에 넘어가서 볼살이 오른 형한테도 예현이 형의 분노에서 벗어나서 살을 뺄 기회가 주어져야 하듯이?”
“나 그렇게 살쪘어?”
떨리는 어조로 물어보는 김도빈의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안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쟤는 좀만 운동하면 쫙쫙 빠지더만. 콘서트 연습 며칠 하고 헬스장 며칠 빡세게 굴리면 예현이 형도 뭐라 못 할걸.”
“맞아, 형. 그러니까 예현이 형 앞에서는 최대한 후드티 모자 끈 꽉 조여서 그 볼살을 숨겨. 형이 다시 살 뺄 때까지.”
그 전에 김도빈의 부주의로 인해 서예현한테 결국 들키리란 것에 서예현의 칼로리 집착증을 건다.
“나는 애초부터 악마가 이길 수 없는 내기 조건이라고 봤는데. 타락하지 않는 조건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거라니.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않으면 진짜 쉬운 조건 아니냐?”
내 관점은 김도빈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이 부와 명예를 다 가졌어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몇 개 있으면 계속 그 목표를 향해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거 아니야.”
살면서 이룰 열 가지 목표만 세워 놔도 수명 다 할 때까지 거뜬히 미래지향적으로 살겠다.
지금 당장 나만 봐도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의 조건인 팬 3천만 명 기쁘게 하기를 끝내고 나서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몇 갠데.
하지만 또 김도빈은 신박한 가설로 내 말에 반박했다.
“무한 루프에 가둬 놓으면 언젠가는 타락하지 않을까요? 계속 그 시간대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포기하겠죠.”
“그런 생각은 또 어떻게 하냐?”
현실적인 생각으로 반박을 좀 해 보라고 타박하려다가 무한 루프를 페널티로 박아놓은 극악무도한 우리집 시스템이 생각나 입을 다물었다. 음, 내 현실이긴 하구나.
“제가 재미있게 본 만화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계속 일주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 일주일 안에 무슨 성취를 이뤄도 다 리셋이 되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이 미쳐요. 그래서 루프를 어떻게든 끝내려고 하는데 루프를 끝내려면 주인공이랑 같이 세상이 루프하는 걸 깨달은 주인공의 제일 친한 친구가 혼자 그 루프에 갇혀야 해요. 그래야지 주인공이 나가면서 그 루프가 끝날 수 있어요.”
“어어, 재미있겠다.”
전문 분야가 나와 흥분했는지 잔뜩 들뜬 어조로 쏟아내는 김도빈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해 주었다. 얘가 이러는 걸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익숙할 정도였다.
그런데 서치퀘로 찾다가 본 글에 따르면 얘는 패션 오타쿠라던데 그럼 진짜 오타쿠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소리지?
내가 김도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과 달리 류재희는 김도빈이 늘어놓은 만화 내용에 흥미를 느낀 듯 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루프가 끝난 세상에서는 없는 존재인 거야?”
“존재는 하는데 주인공이랑 함께 루프를 겪었던 그 기억이 루프에 영영 갇혀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만화에서는 사람의 자아를 이루는 건 기억이라고 여기거든. 그래서 나중에 주인공이…”
신나서 떠드는 김도빈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주차 비용을 계산했다.
“그런데 막내 네 친구는 무슨 역이든? 내가 분명히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레트헨 오빠 역이요.”
“아, 맞다.”
그 후로도 한참을 연극 내용으로 이야기하면서 숙소로 돌아오니 먼저 숙소에 도착해 있던 서예현이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었다.
후드티 모자를 벗고 있던 김도빈은 서예현이 우리를 돌아보기 전에 잽싸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후드 줄을 확 당겼다.
“샐러드 다 먹었네? 드디어 너희들이 정신을 차렸구나!”
그게 대체 뭐라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서예현을 보고 류재희와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샐러드의 진짜 행방은 류재희나 내가 입을 털지 않는 이상 서예현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한 법이지.
음,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