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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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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8화(478/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8화
“안 궁금해, 그딴 새끼 근황.”
인상을 구기며 곧바로 말을 잘랐다. 레브 10주년 콘서트가 끝내고 보낸 문자에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부터 끝이었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그 이름을 듣자 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던 서예현과 이렇게 마주 보고라도 있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내게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게 했던 서예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음악에 몰두하게 된 것에 꽤나 큰 지분을 차지한 놈이었으며, 서예현의 성공은 내 음악에 원동력을 줬으면 줬지 슬럼프를 안겨 주진 않았다.
오히려 내 음악의 가이드녹음을 도맡고 레브 시절 내 유일한 의지처였던 견하준이 나를 이 지랄 같은 슬럼프로 밀어 넣은 원인들 중 하나였지.
무어라 더 말을 이으려던 서예현이 자조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 와서 너랑 마주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쌓여 있던 감정의 골을 겨우 이 한 번의 만남으로 메우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서예현도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어도 애써 덮으려고 애쓰는 어색함과 거리감, 그리고 나를 향한 연민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서예현이 연기를 더럽게 못 해서 모르고 싶어도 티가 다 나는데 어쩌겠나.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테이블에 둔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들까 말까, 고민의 기로에 놓였다.
‘왜 내가 참고 있는 거지? 언제부터 서예현을 그렇게 배려했다고.’
담뱃갑을 덥석 집어 드는 것과 서예현이 다시 입을 연 건 거의 동시였다.
“그때, 그렇게 일 터지고 네가 한창 비난 들었을 때…”
긴 속눈썹에 반절은 가려졌지만 눈동자에 서린 죄책감은 선명히 읽어 낼 수 있었다. 씨발, 진짜… 신경질적으로 담뱃갑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사과하지 마. 나도 너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니까.”
퉁명스럽게 서예현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서로 걱정할 사이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빠졌어. 타 그룹 멤버보다 더 멀었던 게 나랑 서예현의 사이였는데.
그러니 서예현이 나를 신경 쓸 이유도, 그때 신경 쓰지 못했다고 내게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는데.
오히려 평판 나락 간 저 새끼랑 엮이지 않길 잘했다며 박수 치면 몰라.
왜 견하준이 아니라 네가…
문득 스쳐 간 생각을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래도 서예현이랑은 쌍방 손절이기라도 했지, 일방적으로 손절친 놈 알 바냐?
“우리 둘 다 너무 어렸잖아. 나중에는 세월의 골이 너무 깊었고.”
술기운이 오른 건지 서예현의 발음이 살짝 뭉개졌다. 한때 같은 멤버였던 이의 주량도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숙소 생활만 몇 년을 같이했는데도.
“그런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내가 형이니까, 그때 조금 더 어른스럽게 너를 대했더라면… 우리 그룹도 현재보단 더 나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예전에 어른들이 친구랑 싸우면 늘상 하는 말이 있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사람이 이긴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또 한 번 서예현한테 진 셈이다.
그래도 그 패배가 예전처럼 마냥 좆같지는 않았다.
어느새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던 오디가 동이 났다. 바닥을 보인 그릇을 둘 다 빤히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너 차는? 대리 불러 줘?”
한때 같은 멤버였던 놈이 음주 운전으로 사회면에 나오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묻자 서예현이 손을 내저었다.
“택시 타고 왔어. 초보 운전이라.”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잘 가라.”
현관 쪽 벽에 등을 대고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배웅하다가 서예현이 나가기 직전, 아주 작고 짧게 덧붙였다.
“…형.”
그 말을 용케 들은 서예현이 뒤를 돌아보며 픽 웃었다.
“또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오디를 담았던 그릇을 싱크대에 대충 던져 놓고 침실로 돌아와 눈을 감았다.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져 오늘은 잠을 좀 푹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불면증이 수면을 방해했다..
습관처럼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침대 옆 선반에 놓인 맥주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기억의 끝.
암전이었다.
* * *
와씨, 버그라서 그런가. 기억 존나 길어.
파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짤막하게 보여줬던 이전과 달리 이번 기억은 제법 길었다. ‘�ㄱㅓㄴ’은 조건이고 ‘ㅋㅣ��’는 키워드겠군.
조건은 서예현이랑 같이 술을 마시는 거고, 키워드는 뭐지? 역시 오디인가?
이전에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킨 ‘진솔한 대화’ 조건 달성 때, 서예현과 단둘이 캔맥주를 기울인 기억이 있었지. 그렇다면 애초에 이 조건만으로는 열릴 기억이 아니었고.
조건과 키워드를 동시에 달성하면 버그가 생기며 관련 기억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때까지 시스템이 내게 기억을 열어 주던 방식과는 달랐다.
그러면 대체 차연호처럼 기억 전체를 되찾을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의식이 심연으로 처박혔다.
낯선 기억이 또 다시 내 눈앞에 펼쳐졌다.
* * *
방금 봤던 기억보다 훨씬 앳된 서예현의 얼굴.
붉은 시야.
[위험도: 71]
잔뜩 긴장한 얼굴의 서예현이 내게 내민 악보를 잡아채듯이 가져왔다.
내가 네이비에게 주었던 곡인 의 멜로디가 오선지 위에 삐뚤빼뚤한 음표로 그려져 있었다.
코드도, 박자도 없이 오직 멜로디뿐인, 엉망인 악보를 보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걸로 우리 다음 곡 작곡을 해 보라고?”
“노래 괜찮지 않아…?”
[가장 바랐던 ‘성공’ 목표를 달성하십시오]
[위험도: 80]
마치 목표 달성에서 멀어졌다는 듯 상태창이 깜빡거리며 위험도 수치가 훅 올랐다.
서예현의 코앞에서 쓰레기 악보를 흔들며 빈정거렸다.
“이전에 김도빈이랑 류재희도 똑같이 내 노래 코드를 들고 와서 이 곡 한번 만들어 보라더라. 딱 봐도 기억 있는 꼴들이라 어쩌려나 봤더니 겨우 그 생각밖에 못 해. 존나 실망이었지.”
나를 보는 서예현의 얼굴이 벙쪘다.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두 회차 다 결과가 어땠게?”
어쨌긴, 시발. 성공하기엔 실패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탈퇴한 지 한 달 후에 다시 데뷔일로 돌아왔지.
탈퇴한 지 한 달 후? 분명 차연호가 그때 시간을 돌리는 조건은 원하는 날로부터 한 달 후라고 하지 않았나?
“이 그룹으로의 미래가 없다는 걸 너희가 이런 식으로 아주 잘 증명해 준 거잖아. 내가 성공하려면 너희가 짐이라니까.”
손을 놓자 악보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 발치에 내려앉은 악보를 내려다보던 서예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서예현을 보며 냉소 한 번 내뱉어주고 몸을 돌리려 하자마자 소매가 덥석, 붙잡혔다.
“…오디 기억 안 나?”
이유 모를 필사적인 눈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마찬가지로 그림자 신세였던 류재희와 김도빈은 이해라도 해. 하지만 어차피 너 혼자서 성공하는 건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함없는 미래인데, 너는 대체 뭐가 부족해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때 부정 안 했잖아. 미련 있다며.”
그래서 오디가 키워드였던 건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걸 결정적으로 들킨 매개체라.
“그게 그룹을 향한 미련이 아니라 단지 네 성공을 향한 미련이었어?”
가볍게 소매를 털어내 나를 붙든 서예현의 손을 떨쳐내고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뭐를 향한 미련이었을까.”
퍽 지친 듯한 자조적인 중얼거림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계속 시간이 반복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애새끼처럼 느껴지는 서예현의 정수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며 충고 하나 남겨 주었다.
“남 바꾸려고 애쓰지 마. 존나 오만한 생각에 하등 쓸데없는 짓이니까. 그나마 마지막 만남 때문에 너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니까 잘 새겨들어.”
“너나 좀 새겨들어! 반복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때 너 혼자 나가서 성공해서, 막내나 간간이 찾아오던 그 청담동 집에서 혼자 행복했어? 이제는 재희도 안 찾아올 거라고! 정신 좀 차리고 그놈의 성공 집착에서 좀 벗어나!”
내 멱살을 잡은 서예현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온갖 붉은 시야 속, 이질적인 푸른색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 시스템을 패치하시겠습니까?]
상태창 색깔이랑 폰트가 우리집 시스템이랑 똑같은데?
안 한다고, 씨발. 꺼져. 이렇게 설득해 봤자 내가——-
[올바른 접근이 아닙니다.]
[발견한 잔� �험� 시스템의 영�을 차단합니다.]
[5회차 기억을 강제 종료합니다.]
5회
차라고?
딱-!
귓전을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뽑혀 나가듯 기억의 경계에서 현실로 내던져졌다.
* * *
“야, 윤이든! 진짜 자냐?”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바로 핑거스냅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예현의 손이 보였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기억 속 내가 서예현과 마시고 있던 그 수입 맥주의 라벨이었다.
찌푸둥한 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혹여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제 몸을 뒤로 물린 서예현이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기억의 파편 속 아련몽롱하던 서예현의 눈깔만 보다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저 또렷한 눈깔을 보니 드디어 기억에서 벗어나 내가 살고 있는 현실로 돌아왔음이 실감 났다.
어쨌건, 내가 서예현이랑 오디와 캔맥주로 애매한 화해를 하긴 했다는 소리지?
어쩐지 데뷔 초로 돌아오고 다시 얼굴 봐도 덜 꼴 보기 싫더라니.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을 줄이야.
“형, 쏘리.”
“뭐가 미안한데?”
“형 내버려 두고 깜빡 잠드는 바람에 형이 이 밤 중에 먹으면 살찌는 과일을 이 밤 중에 혼자 반이나 먹게 해서. 이제 형도 나한테 오디 혼자 반이나 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뭐래, 진짜.”
코웃음을 친 서예현이 갑자기 멈칫하고 오디 그릇을 돌아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러고 보니까 내가 이 밤중에 이걸 나 혼자 절반이나 먹었다고? 이 밤중에? 이런 미치이인! 너 혼자 안 자고 술 마시고 있어서 내가 이 밤중에 오디랑 마주하게 만든 것도 사과해!”
“어엉, 그것도 미안해-.”
좋아,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8화(478/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8화

“안 궁금해, 그딴 새끼 근황.”

인상을 구기며 곧바로 말을 잘랐다. 레브 10주년 콘서트가 끝내고 보낸 문자에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부터 끝이었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그 이름을 듣자 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던 서예현과 이렇게 마주 보고라도 있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내게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게 했던 서예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음악에 몰두하게 된 것에 꽤나 큰 지분을 차지한 놈이었으며, 서예현의 성공은 내 음악에 원동력을 줬으면 줬지 슬럼프를 안겨 주진 않았다.

오히려 내 음악의 가이드녹음을 도맡고 레브 시절 내 유일한 의지처였던 견하준이 나를 이 지랄 같은 슬럼프로 밀어 넣은 원인들 중 하나였지.

무어라 더 말을 이으려던 서예현이 자조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 와서 너랑 마주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쌓여 있던 감정의 골을 겨우 이 한 번의 만남으로 메우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서예현도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어도 애써 덮으려고 애쓰는 어색함과 거리감, 그리고 나를 향한 연민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서예현이 연기를 더럽게 못 해서 모르고 싶어도 티가 다 나는데 어쩌겠나.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테이블에 둔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들까 말까, 고민의 기로에 놓였다.

‘왜 내가 참고 있는 거지? 언제부터 서예현을 그렇게 배려했다고.’

담뱃갑을 덥석 집어 드는 것과 서예현이 다시 입을 연 건 거의 동시였다.

“그때, 그렇게 일 터지고 네가 한창 비난 들었을 때…”

긴 속눈썹에 반절은 가려졌지만 눈동자에 서린 죄책감은 선명히 읽어 낼 수 있었다. 씨발, 진짜… 신경질적으로 담뱃갑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사과하지 마. 나도 너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니까.”

퉁명스럽게 서예현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서로 걱정할 사이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빠졌어. 타 그룹 멤버보다 더 멀었던 게 나랑 서예현의 사이였는데.

그러니 서예현이 나를 신경 쓸 이유도, 그때 신경 쓰지 못했다고 내게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는데.

오히려 평판 나락 간 저 새끼랑 엮이지 않길 잘했다며 박수 치면 몰라.

왜 견하준이 아니라 네가…

문득 스쳐 간 생각을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래도 서예현이랑은 쌍방 손절이기라도 했지, 일방적으로 손절친 놈 알 바냐?

“우리 둘 다 너무 어렸잖아. 나중에는 세월의 골이 너무 깊었고.”

술기운이 오른 건지 서예현의 발음이 살짝 뭉개졌다. 한때 같은 멤버였던 이의 주량도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숙소 생활만 몇 년을 같이했는데도.

“그런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내가 형이니까, 그때 조금 더 어른스럽게 너를 대했더라면… 우리 그룹도 현재보단 더 나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예전에 어른들이 친구랑 싸우면 늘상 하는 말이 있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사람이 이긴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또 한 번 서예현한테 진 셈이다.

그래도 그 패배가 예전처럼 마냥 좆같지는 않았다.

어느새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던 오디가 동이 났다. 바닥을 보인 그릇을 둘 다 빤히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너 차는? 대리 불러 줘?”

한때 같은 멤버였던 놈이 음주 운전으로 사회면에 나오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묻자 서예현이 손을 내저었다.

“택시 타고 왔어. 초보 운전이라.”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잘 가라.”

현관 쪽 벽에 등을 대고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배웅하다가 서예현이 나가기 직전, 아주 작고 짧게 덧붙였다.

“…형.”

그 말을 용케 들은 서예현이 뒤를 돌아보며 픽 웃었다.

“또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오디를 담았던 그릇을 싱크대에 대충 던져 놓고 침실로 돌아와 눈을 감았다.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져 오늘은 잠을 좀 푹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불면증이 수면을 방해했다..

습관처럼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침대 옆 선반에 놓인 맥주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기억의 끝.

암전이었다.

* * *

와씨, 버그라서 그런가. 기억 존나 길어.

파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짤막하게 보여줬던 이전과 달리 이번 기억은 제법 길었다. ‘�ㄱㅓㄴ’은 조건이고 ‘ㅋㅣ��’는 키워드겠군.

조건은 서예현이랑 같이 술을 마시는 거고, 키워드는 뭐지? 역시 오디인가?

이전에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킨 ‘진솔한 대화’ 조건 달성 때, 서예현과 단둘이 캔맥주를 기울인 기억이 있었지. 그렇다면 애초에 이 조건만으로는 열릴 기억이 아니었고.

조건과 키워드를 동시에 달성하면 버그가 생기며 관련 기억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때까지 시스템이 내게 기억을 열어 주던 방식과는 달랐다.

그러면 대체 차연호처럼 기억 전체를 되찾을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의식이 심연으로 처박혔다.

낯선 기억이 또 다시 내 눈앞에 펼쳐졌다.

* * *

방금 봤던 기억보다 훨씬 앳된 서예현의 얼굴.

붉은 시야.

잔뜩 긴장한 얼굴의 서예현이 내게 내민 악보를 잡아채듯이 가져왔다.

내가 네이비에게 주었던 곡인 의 멜로디가 오선지 위에 삐뚤빼뚤한 음표로 그려져 있었다.

코드도, 박자도 없이 오직 멜로디뿐인, 엉망인 악보를 보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걸로 우리 다음 곡 작곡을 해 보라고?”

“노래 괜찮지 않아…?”

마치 목표 달성에서 멀어졌다는 듯 상태창이 깜빡거리며 위험도 수치가 훅 올랐다.

서예현의 코앞에서 쓰레기 악보를 흔들며 빈정거렸다.

“이전에 김도빈이랑 류재희도 똑같이 내 노래 코드를 들고 와서 이 곡 한번 만들어 보라더라. 딱 봐도 기억 있는 꼴들이라 어쩌려나 봤더니 겨우 그 생각밖에 못 해. 존나 실망이었지.”

나를 보는 서예현의 얼굴이 벙쪘다.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두 회차 다 결과가 어땠게?”

어쨌긴, 시발. 성공하기엔 실패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탈퇴한 지 한 달 후에 다시 데뷔일로 돌아왔지.

탈퇴한 지 한 달 후? 분명 차연호가 그때 시간을 돌리는 조건은 원하는 날로부터 한 달 후라고 하지 않았나?

“이 그룹으로의 미래가 없다는 걸 너희가 이런 식으로 아주 잘 증명해 준 거잖아. 내가 성공하려면 너희가 짐이라니까.”

손을 놓자 악보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 발치에 내려앉은 악보를 내려다보던 서예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서예현을 보며 냉소 한 번 내뱉어주고 몸을 돌리려 하자마자 소매가 덥석, 붙잡혔다.

“…오디 기억 안 나?”

이유 모를 필사적인 눈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마찬가지로 그림자 신세였던 류재희와 김도빈은 이해라도 해. 하지만 어차피 너 혼자서 성공하는 건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함없는 미래인데, 너는 대체 뭐가 부족해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때 부정 안 했잖아. 미련 있다며.”

그래서 오디가 키워드였던 건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걸 결정적으로 들킨 매개체라.

“그게 그룹을 향한 미련이 아니라 단지 네 성공을 향한 미련이었어?”

가볍게 소매를 털어내 나를 붙든 서예현의 손을 떨쳐내고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뭐를 향한 미련이었을까.”

퍽 지친 듯한 자조적인 중얼거림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계속 시간이 반복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애새끼처럼 느껴지는 서예현의 정수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며 충고 하나 남겨 주었다.

“남 바꾸려고 애쓰지 마. 존나 오만한 생각에 하등 쓸데없는 짓이니까. 그나마 마지막 만남 때문에 너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니까 잘 새겨들어.”

“너나 좀 새겨들어! 반복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때 너 혼자 나가서 성공해서, 막내나 간간이 찾아오던 그 청담동 집에서 혼자 행복했어? 이제는 재희도 안 찾아올 거라고! 정신 좀 차리고 그놈의 성공 집착에서 좀 벗어나!”

내 멱살을 잡은 서예현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온갖 붉은 시야 속, 이질적인 푸른색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상태창 색깔이랑 폰트가 우리집 시스템이랑 똑같은데?

안 한다고, 씨발. 꺼져. 이렇게 설득해 봤자 내가——-

5회

차라고?

딱-!

귓전을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뽑혀 나가듯 기억의 경계에서 현실로 내던져졌다.

* * *

“야, 윤이든! 진짜 자냐?”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바로 핑거스냅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예현의 손이 보였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기억 속 내가 서예현과 마시고 있던 그 수입 맥주의 라벨이었다.

찌푸둥한 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혹여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제 몸을 뒤로 물린 서예현이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기억의 파편 속 아련몽롱하던 서예현의 눈깔만 보다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저 또렷한 눈깔을 보니 드디어 기억에서 벗어나 내가 살고 있는 현실로 돌아왔음이 실감 났다.

어쨌건, 내가 서예현이랑 오디와 캔맥주로 애매한 화해를 하긴 했다는 소리지?

어쩐지 데뷔 초로 돌아오고 다시 얼굴 봐도 덜 꼴 보기 싫더라니.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을 줄이야.

“형, 쏘리.”

“뭐가 미안한데?”

“형 내버려 두고 깜빡 잠드는 바람에 형이 이 밤 중에 먹으면 살찌는 과일을 이 밤 중에 혼자 반이나 먹게 해서. 이제 형도 나한테 오디 혼자 반이나 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뭐래, 진짜.”

코웃음을 친 서예현이 갑자기 멈칫하고 오디 그릇을 돌아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러고 보니까 내가 이 밤중에 이걸 나 혼자 절반이나 먹었다고? 이 밤중에? 이런 미치이인! 너 혼자 안 자고 술 마시고 있어서 내가 이 밤중에 오디랑 마주하게 만든 것도 사과해!”

“어엉, 그것도 미안해-.”

좋아,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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