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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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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82화(18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82화
1화로 올라갈 촬영 첫날은 카메라만 있을 뿐, 다들 평소와 같은 일상을 영위했다. 에서의 모습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시청률 0.01% 나오는 거 아니야? 팬들도 재미없다고 안 보게 생겼는데.”
자기가 생각해도 팩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었던지 서예현이 한탄했다.
“하지만 여기에 나레이션을 넣으면 달라지죠.”
“나레이션이 미친 듯이 캐리하는 게 아닌 이상, 얼마나 달라지겠어.”
“제가 써 갔던 멘트들이 얼마나 주옥같은지 메인 작가님이 그거 보고 감탄하셨다니까요. 멘트 수정도 거의 없이 나레이션에 그대로 썼어요.”
그러니 저만 믿으라고 류재희가 브이자를 그리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레이션을 쓴 게 김도빈이라면 걱정이 좀 많이 됐겠지만 류재희라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촬영 둘째 날, 우리는 숙소가 아닌 한옥집에 모였다.
추석에 맞추어 송출될, 미리 찍는 추석 특집이었다.
한 지붕 5형제라는 부제에 맞추어 추석 특집은 흩어져 살다가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다섯 형제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휴먼다큐:한 지붕 5형제와 완전히 다른 외전격 시트콤이었기에, 촬영 전에 미리 추석 버전 설정을 짰다.
그냥 짜는 건 또 재미가 없으니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네 멤버가 어울릴 만한 설정을 적고, 적힌 그 설정을 빠짐없이 모두 합친 캐릭터를 연기하기라는 극악 조건까지 붙여 놨다.
한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추석 인사를 찍고, 드디어 멤버들이 써 준 설정을 공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마 이건 시트콤이 끝나고 비하인드 컷으로 나오지 않을까.
“만약 상충되는 설정이 있으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설정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제일 먼저 서예현의 추석 버전 맏형 설정이 공개되었다.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성공해서 나머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장남(돈줄 끊는다는 협박이 말버릇이어야 함)]
[얼굴로 성공한 연예인-이 형은 얼굴만으로 망돌도 살려낼 거 같아서 도저히 망했다는 설정을 못 쓰겠음요]
[길거리 캐스팅당했다가 발연기력으로 거하게 말아먹고 이대로 망하려나 싶은 순간 모델로 기사회생]
[저 얼굴이 길캐를 안 당했을 리가…… 연예인]
다들 도저히 저 얼굴이 망했다는 설정을 적지 못한 터라 서예현은 만장일치로 성공한 연예인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제작진 측에서 준비한, 오늘의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받아드는 서예현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다음으로는 둘째 형이죠. 하준이 형 설정 공개!”
[타지로 떠나보낸 형제들이 언젠가는 돌아오길 기다리며 혼자 집 지키고 있던 둘째 형(뭔가 하준이 형은 이런 역할이 어울리는…….)]
[연기력으로 단역으로 시작해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신화를 씀]
[타짜]
[성공한 톱배우]
“이러면 이제 설정이 상충해 버리는 거죠. 성공한 톱배우가 되어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했으면 혼자 집 지키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1번 설정과 2, 4번 설정을 툭툭 두드리며 류재희가 말했다.
“하준이 형은 과연 무슨 설정을 택할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혼자 집 지키고 있던 둘째 형 할게. 아무리 설정이라지만 할리우드는 아무래도 좀 부끄러워서. 유일하게 성공한 장남이라는 예현이 형 설정이 깨지기도 하고.”
좀 충격을 받았다. 견하준이 내 설정을 버리고 김도빈 설정을 택하다니. 내가 입을 떡 벌리고 견하준을 돌아보자 미안함을 담은 어깨 토닥임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걸 조합해 보면, 타지로 떠나보낸 형제들이 언젠가는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혼자 집 지키고 있던 타짜 둘째 형, 이거네요.”
“의상 지급받으실게요.”
배우 버전/집 지키는 버전 두 개를 준비했는지 제작진 앞에 놓여 있던 옷은 두 벌이었다.
“오, 두루마기 좀 멋있는데?”
견하준이 건네받은 의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예현의 의상도 그렇고, 신경 써서 준비한 태가 꽤 나는지라 내 의상을 향한 기대감 역시 착실히 커져 갔다.
“야, 그런데 타짜는 누가 썼냐? 타짜가 왜 나와?”
“형, 몰라요? 하준이 형 같은 인상이 명절에 열리는 고스톱 판에서 조용히 웃으면서 돈 싹 털어 간다니까요?”
경험담이라며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셋째 형, 이든이 형의 설정을 공개합니다!”
가림막인 흰 종이가 시원하게 뜯겨 나가며 내가 오늘 연기해야 할 설정이 공개되었다.
[음악 한다고 가출함]
[날백수-물론 형 평소 이미지가 날백수라는 건 절대 아니고 형이 레브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건 잘 알고 있기에 시트콤에서라도 조금이나마 쉬시라는 의미로]
[힙찔이 아니 이건 너무 욕 같고 성공한 앨범 한 장 없는 래퍼]
[음악 한다고 부모님이랑 거하게 싸우고 집 나가서 연락 끊겼다가 1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여어, 잘 지냈냐?” 이런 인사 건네는 탕아 셋째 형(특: 아무것도 이룬 건 없음)]
그러니까 이걸 모두 조합해 보면…….
“아니, 왜 예현 형은 잘 나가는 연예인인데 나는 음악 한다고 뛰쳐나갔다가 10년 만에 성공한 앨범 한 장 없이 날백수 꼴로 돌아온 탕아 설정이냐고!”
펄쩍펄쩍 뛰며 머리를 쥐어뜯는 내게 제작진이 의상을 건넸다. 착잡한 얼굴로 건네받은 의상을 바라보았다. 컨셉에 충실하도록 너무 신경 쓰셨다.
아무리 내가 스포츠 져지를 즐겨 입는다고 해도 백수 블루 컬러의 트레이닝복을 위아래 깔 맞춤으로 입는 게 좋을 리가. 그리고…….
“내 음악이 망할 리가 없잖아!”
트레이닝복 상의의 자크를 목 끝까지 올리며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겼다. 선글라스를 쓰고선 코트 옷매무시를 정돈하던 서예현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날백수 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설정이 문제였어?”
날백수는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실패할 일이 앞으로도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한 번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견하준이 여전히 설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나를 진정시켰다.
“잠깐, 도빈이 형. 10년 만에 어쩌고, 저거 쓴 거 형이지? 그런데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설정이면 이든이 형이 열두 살 때 가출했다는 소리 아니야?”
“누구는 열두 살에 부자가 됐는데 누구는 열두 살에 집을 나갔어.”
키득거리던 막내 라인이 일단 상의만 백수룩으로 갈아입은 나를 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와, 진짜 찐 백수 같다. 골목길에 서서 담배 좀 사게 돈 좀 달라고 삥 뜯을 거 같이 생겼어.”
“아니, 묘하게 잘 어울려. 이게, 얼굴이랑 좀 상호 작용이, 씁…….”
“뭐, 인마? 내가 백수상이라고?”
“아니요, 백수라기보다는 좀 양아치상? 그런데 형도 알잖아요. 형 인상이랑 착실함이랑은 거리가 먼 거.”
그다음 순서, 기대에 한가득 찬 얼굴로 김도빈이 제 설정 판을 가린 종이를 뜯어냈다.
[5수 한다고 절 들어감]
[시험의 ‘시’자만 나와도 발악하는 장수생]
[형은 왠지 장수생이 잘 어울려ㅋㅋㅋㅋ]
[재수생]
제 설정을 읽어 내릴수록 김도빈의 얼굴에 서려 있던 기대감이 사라져 갔다. 눈썹을 팔(八)자로 늘어뜨린 김도빈이 물었다.
“왜 저는 장수생이에요? 혹시 형들이랑 재희랑 미리 다 짠 거예요?”
이번에도 다들 마음이 통한 모양이다.
“너는 뭔가 시험 한 번에 못 붙고 계속 공부하고 있을 이미지야.”
“백수면 이든이랑 컨셉이 겹치니까 적당히 재수생 정도로?”
“도빈이 너는 뭔가 불교에 잘 어울린달까?”
“저희 집안 다 천주교인데요?”
열공 티셔츠와 체육복 바지를 받아 들던 김도빈이 서예현의 말에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앗, 잠깐! 그런데 지금 이거 설정 상충되는 거 아니에요? 재수생이랑 5수생이 어떻게 같이 있어?”
“그럼 그냥 5수 해. 5수가 장수생이잖아.”
그렇게 재수생으로 신분 세탁을 시도하려 했던 김도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류재희의 설정이 공개되었다.
[못 본 사이에 거의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온 동생]
[오랜만에 봤더니 너무 커져서 못 알아본 동생]
[구세대 사이의 유일한 신세대 막내(틀딱 방식을 고수하는 형들 사이에서 신세대 해답법을 마구 제시함)]
[국정원]
“예상했던 거 세 개는 나왔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가 끼어 있어요, 지금. 국정원 뭔데요?”
“왜, 국정원 좀 너랑 잘 어울리지 않냐? 넌 아이돌 안 했으면 국정원 들어가서 요원 하고 있었어도 된다니까.”
“흑막, 흑막.”
김도빈의 말을 듣고 있자 흑막을 별명으로 쓰고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흑막연호 같은 소리 하네. 그렇게 의뭉스럽게 쳐 웃으면서 헛발질이나 해 대는 놈보다는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판 짜는 놈이 훨씬 더 흑막 같지.
류재희한테는 국정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정장이 지급되었다. 미성년자는 정장 입고, 성인은 날백수 패션 츄리닝 입고, 참…….
지급 받은 옷으로 모두 갈아입고 나온 우리는 각 설정 목록을 누가 쓴 건지 색출해 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김도빈이 쓴 것들은 확실히 알겠다. 뭔가 매체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설정은 둘째치고, 괄호치고 구구절절 설정 설명하고 있어.”
“그게 덕후 특이래요.”
류재희와 함께 킬킬거리고 있자 김도빈이 울컥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캐릭터 잡기에 도움 주고 싶었던 저의 큰 뜻도 몰라주고!”
“어어, 그래. 덕분에 이룬 거 하나 없이 돌아온 탕아가 됐다.”
드디어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견하준만 먼저 집 안에 들어가 있고, 차례로 한 명씩 들어가면 됐다.
나는 심지어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통일이라고는 하나도 안 된 가지각색의 옷을 입고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멤버들이 내가 들어가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환대 아닌 환대가 이어졌다.
“세상에, 음악 한다고 10년 전에 집 나갔던 셋째가 동네 날백수가 되어서 돌아오다니!”
“형, 대체 지금까지 뭘 했길래 앨범 한 장 안 나온 거예요! 뮤클에 형 이름 검색해도 곡 한 곡 안 나오고!”
“그렇게 트랜디 했던 셋째 형이 거저 줘도 안 입을 이런 옷을……!”
“이든아, 대체 10년 동안 뭘 한 거니.”
왜 설정인 걸 아는데도 내 뼈가 다 아프냐.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82화(18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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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0.01% 나오는 거 아니야? 팬들도 재미없다고 안 보게 생겼는데.”

자기가 생각해도 팩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었던지 서예현이 한탄했다.

“하지만 여기에 나레이션을 넣으면 달라지죠.”

“나레이션이 미친 듯이 캐리하는 게 아닌 이상, 얼마나 달라지겠어.”

“제가 써 갔던 멘트들이 얼마나 주옥같은지 메인 작가님이 그거 보고 감탄하셨다니까요. 멘트 수정도 거의 없이 나레이션에 그대로 썼어요.”

그러니 저만 믿으라고 류재희가 브이자를 그리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레이션을 쓴 게 김도빈이라면 걱정이 좀 많이 됐겠지만 류재희라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촬영 둘째 날, 우리는 숙소가 아닌 한옥집에 모였다.

추석에 맞추어 송출될, 미리 찍는 추석 특집이었다.

한 지붕 5형제라는 부제에 맞추어 추석 특집은 흩어져 살다가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다섯 형제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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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짜는 건 또 재미가 없으니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네 멤버가 어울릴 만한 설정을 적고, 적힌 그 설정을 빠짐없이 모두 합친 캐릭터를 연기하기라는 극악 조건까지 붙여 놨다.

한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추석 인사를 찍고, 드디어 멤버들이 써 준 설정을 공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마 이건 시트콤이 끝나고 비하인드 컷으로 나오지 않을까.

“만약 상충되는 설정이 있으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설정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제일 먼저 서예현의 추석 버전 맏형 설정이 공개되었다.

다들 도저히 저 얼굴이 망했다는 설정을 적지 못한 터라 서예현은 만장일치로 성공한 연예인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제작진 측에서 준비한, 오늘의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받아드는 서예현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다음으로는 둘째 형이죠. 하준이 형 설정 공개!”

“이러면 이제 설정이 상충해 버리는 거죠. 성공한 톱배우가 되어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했으면 혼자 집 지키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1번 설정과 2, 4번 설정을 툭툭 두드리며 류재희가 말했다.

“하준이 형은 과연 무슨 설정을 택할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혼자 집 지키고 있던 둘째 형 할게. 아무리 설정이라지만 할리우드는 아무래도 좀 부끄러워서. 유일하게 성공한 장남이라는 예현이 형 설정이 깨지기도 하고.”

좀 충격을 받았다. 견하준이 내 설정을 버리고 김도빈 설정을 택하다니. 내가 입을 떡 벌리고 견하준을 돌아보자 미안함을 담은 어깨 토닥임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걸 조합해 보면, 타지로 떠나보낸 형제들이 언젠가는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혼자 집 지키고 있던 타짜 둘째 형, 이거네요.”

“의상 지급받으실게요.”

배우 버전/집 지키는 버전 두 개를 준비했는지 제작진 앞에 놓여 있던 옷은 두 벌이었다.

“오, 두루마기 좀 멋있는데?”

견하준이 건네받은 의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예현의 의상도 그렇고, 신경 써서 준비한 태가 꽤 나는지라 내 의상을 향한 기대감 역시 착실히 커져 갔다.

“야, 그런데 타짜는 누가 썼냐? 타짜가 왜 나와?”

“형, 몰라요? 하준이 형 같은 인상이 명절에 열리는 고스톱 판에서 조용히 웃으면서 돈 싹 털어 간다니까요?”

경험담이라며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셋째 형, 이든이 형의 설정을 공개합니다!”

가림막인 흰 종이가 시원하게 뜯겨 나가며 내가 오늘 연기해야 할 설정이 공개되었다.

그러니까 이걸 모두 조합해 보면…….

“아니, 왜 예현 형은 잘 나가는 연예인인데 나는 음악 한다고 뛰쳐나갔다가 10년 만에 성공한 앨범 한 장 없이 날백수 꼴로 돌아온 탕아 설정이냐고!”

펄쩍펄쩍 뛰며 머리를 쥐어뜯는 내게 제작진이 의상을 건넸다. 착잡한 얼굴로 건네받은 의상을 바라보았다. 컨셉에 충실하도록 너무 신경 쓰셨다.

아무리 내가 스포츠 져지를 즐겨 입는다고 해도 백수 블루 컬러의 트레이닝복을 위아래 깔 맞춤으로 입는 게 좋을 리가. 그리고…….

“내 음악이 망할 리가 없잖아!”

트레이닝복 상의의 자크를 목 끝까지 올리며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겼다. 선글라스를 쓰고선 코트 옷매무시를 정돈하던 서예현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날백수 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설정이 문제였어?”

날백수는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실패할 일이 앞으로도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한 번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견하준이 여전히 설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나를 진정시켰다.

“잠깐, 도빈이 형. 10년 만에 어쩌고, 저거 쓴 거 형이지? 그런데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설정이면 이든이 형이 열두 살 때 가출했다는 소리 아니야?”

“누구는 열두 살에 부자가 됐는데 누구는 열두 살에 집을 나갔어.”

키득거리던 막내 라인이 일단 상의만 백수룩으로 갈아입은 나를 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와, 진짜 찐 백수 같다. 골목길에 서서 담배 좀 사게 돈 좀 달라고 삥 뜯을 거 같이 생겼어.”

“아니, 묘하게 잘 어울려. 이게, 얼굴이랑 좀 상호 작용이, 씁…….”

“뭐, 인마? 내가 백수상이라고?”

“아니요, 백수라기보다는 좀 양아치상? 그런데 형도 알잖아요. 형 인상이랑 착실함이랑은 거리가 먼 거.”

그다음 순서, 기대에 한가득 찬 얼굴로 김도빈이 제 설정 판을 가린 종이를 뜯어냈다.

제 설정을 읽어 내릴수록 김도빈의 얼굴에 서려 있던 기대감이 사라져 갔다. 눈썹을 팔(八)자로 늘어뜨린 김도빈이 물었다.

“왜 저는 장수생이에요? 혹시 형들이랑 재희랑 미리 다 짠 거예요?”

이번에도 다들 마음이 통한 모양이다.

“너는 뭔가 시험 한 번에 못 붙고 계속 공부하고 있을 이미지야.”

“백수면 이든이랑 컨셉이 겹치니까 적당히 재수생 정도로?”

“도빈이 너는 뭔가 불교에 잘 어울린달까?”

“저희 집안 다 천주교인데요?”

열공 티셔츠와 체육복 바지를 받아 들던 김도빈이 서예현의 말에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앗, 잠깐! 그런데 지금 이거 설정 상충되는 거 아니에요? 재수생이랑 5수생이 어떻게 같이 있어?”

“그럼 그냥 5수 해. 5수가 장수생이잖아.”

그렇게 재수생으로 신분 세탁을 시도하려 했던 김도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류재희의 설정이 공개되었다.

“예상했던 거 세 개는 나왔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가 끼어 있어요, 지금. 국정원 뭔데요?”

“왜, 국정원 좀 너랑 잘 어울리지 않냐? 넌 아이돌 안 했으면 국정원 들어가서 요원 하고 있었어도 된다니까.”

“흑막, 흑막.”

김도빈의 말을 듣고 있자 흑막을 별명으로 쓰고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흑막연호 같은 소리 하네. 그렇게 의뭉스럽게 쳐 웃으면서 헛발질이나 해 대는 놈보다는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판 짜는 놈이 훨씬 더 흑막 같지.

류재희한테는 국정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정장이 지급되었다. 미성년자는 정장 입고, 성인은 날백수 패션 츄리닝 입고, 참…….

지급 받은 옷으로 모두 갈아입고 나온 우리는 각 설정 목록을 누가 쓴 건지 색출해 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김도빈이 쓴 것들은 확실히 알겠다. 뭔가 매체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설정은 둘째치고, 괄호치고 구구절절 설정 설명하고 있어.”

“그게 덕후 특이래요.”

류재희와 함께 킬킬거리고 있자 김도빈이 울컥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캐릭터 잡기에 도움 주고 싶었던 저의 큰 뜻도 몰라주고!”

“어어, 그래. 덕분에 이룬 거 하나 없이 돌아온 탕아가 됐다.”

드디어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견하준만 먼저 집 안에 들어가 있고, 차례로 한 명씩 들어가면 됐다.

나는 심지어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통일이라고는 하나도 안 된 가지각색의 옷을 입고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멤버들이 내가 들어가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환대 아닌 환대가 이어졌다.

“세상에, 음악 한다고 10년 전에 집 나갔던 셋째가 동네 날백수가 되어서 돌아오다니!”

“형, 대체 지금까지 뭘 했길래 앨범 한 장 안 나온 거예요! 뮤클에 형 이름 검색해도 곡 한 곡 안 나오고!”

“그렇게 트랜디 했던 셋째 형이 거저 줘도 안 입을 이런 옷을……!”

“이든아, 대체 10년 동안 뭘 한 거니.”

왜 설정인 걸 아는데도 내 뼈가 다 아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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