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9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3화
청려는 일단 말부터 흐리기 시작했다.
“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무릎을 꿇었다. 방송에는 하늘 같은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는 신인 아이돌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청려는 영혼 없이 웃으며 몇 번 편하게 앉으라고 빈말을 하더니, 화제를 트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때야 대답을 시작했다.
“저희야 소속사에서 팀으로 만나서 시작했고, 다들 성격이 좋아서 금방 친해졌죠.”
그리고 뭐 데뷔 때도 다들 열심히 했다는 정석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뻔하지만 사람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덕목이기도 했다.
음, 이렇게 회피하게 둘 순 없지.
“저는 지금 테스타 멤버들에게 굉장히 마음이 가는데, 청려 선배님께서도 같은 팀의 선배님들과 처음부터 잘 맞으셨군요.”
나는 얼마 안 남은 커피를 원샷 했다. 가라앉았던 부분이라 맛이 센 게 정신이 확 드는군.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이 팀으로 만나서, 다들 싸우지 않고 잘 맞은 거네요. 정말 신기하고 멋진 일입니다.”
“….”
“분명히 다들 좋은 분들이시겠지만, 청려 선배님께서 리더로서 큰 역량을 발휘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적당한 아부가 신인 같은 발언이다.
다른 멤버 후려친다고 보일 정도로 선 넘진 않았고.
그런데 대충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청려에게는 전달되었을 것이다.
‘너 무슨 수 써서 입맛에 딱 맞는 놈들만 골라다가 팀 구성했지. 나도 안다.’
…과연, 청려는 이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런가요.”
“예.”
“쑥스럽네요.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자, 이제 상황 파악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해보는 게 또 처음이라,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이 정도면 아쉬운 쪽이 누군지 알았겠지.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자, 그럼 저희 좀 편하게 있을까요?”
“넵. 감사합니다.”
그 후로는 평범한 산장 조난 꽁트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산사태와 망가진 뒷방.
그리고 창고에서 찾은 라디오에서 나온 섬뜩한 뉴스까지.
흠, 나름대로 몰입해서 잘 찍은 것 같다. 나중에 본방 사수 해야겠군.
그렇게 별일 없이, 촬영은 다음 날 아침에 마무리되었다.
* * *
촬영이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맛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꾸벅꾸벅 주변에 인사를 하며, 제작진의 권유에 따라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뚜뚜뚜- 달칵!
얼마 안 가서,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큰세진이다.
‘왜 류청우한테 전화했는데 너부터 나오냐.’
[헐, 박문대.]
[문대 형 전화입니까?]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곧 화면에 테스타 놈들이 가득 찼다.
‘혹시 누구한테든 전화하면 다 같이 나오라고 언질 준 보람이 있군.’
제작진에서 테스타도 곁다리로 몇 컷 나왔으면 좋겠다고 미리 이야기가 끝났기도 하고 말이다.
원래는 본 촬영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상 불가능해서 아마 이렇게 쿠키 영상처럼 자투리 컷으로 엔딩에 들어갈 것 같았다.
[촤, 촬영 끝났어?]
“어, 이제 들어가려고.”
[조심해서 와.]
[마, 맞아. 조, 조심하고…….]
[오는 길에 간식 사와라~]
“…….”
비까지 오는데 별 양심 터진 부탁을 다 듣는군. 나는 무시하려다가, 카메라를 생각하며 큰세진에게 최대한 온화하게 대꾸했다.
“너나 좀 사놔라. 들어가서 좀 먹게.”
[오~ 문대 잘 받아치는데? 그래!]
저쪽도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대충 웃으며 넘겼다. 나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몇 가지 더 떠들다가, 곧 영상통화를 종료했다.
매니저에게서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도착까지 약간 지연된다고 문자를 받은 상태다.
아, 참고로 며칠 전에 드디어 새로 온 매니저다. 원래 내 나이보다도 어리더라.
“문대 씨, 안 들어가세요?”
“아, 선배님.”
나는 말을 거는 청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주변에서 스탭 몇 명이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매니저 형님이 늦는다고 하셔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비가 와서 그런가 보네요. 그럼 점심시간도 늦을 텐데, 밥이라도 한 끼하고 들어가는 게 어때요?”
“그래, 문대 씨. 밥 먹고 들어가요. 원래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데, 비가 와서 정리하느라 우리가 안 되네.”
옆을 지나가던 작가가 끼어들어 거들었다.
그림 잘 뽑았다며 제법 칭찬하던데, 박문대에 대한 인상이 꽤 좋게 잡힌 것 같다.
일 쉽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군.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요.”
청려는 차를 가져왔고, 나는 매니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어차피 오후 스케줄이 없었던 것이다.
‘끝나면 바로 들어가서 자야지.’
즐거운 상상 중에, 청려가 차를 몰고 돌아왔다.
‘7년 차면 자기 차 뽑을 만하지.’
“타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앞자리에 탔다. 툭,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자,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청려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시간 낭비 안 좋아하는데. 우리 쓸데없이 재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
“몇 년도에서 왔지?”
“선배님부터.”
“하하.”
청려가 웃다가 뚝 그쳤다.
…좀 정신병자 같은데?
‘갑자기 반말을 찍찍 갈기다 처웃어?’
혹시라도 전방 주시를 잊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해야겠다. 나는 대화와 시야 모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본인 입으로 시인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나는 이미 시점이 지나서요. 별로 쓸모가 없지. 음, 앞으로 올 미래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했는데.”
“저도 별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뭐?”
“공시생이었거든요.”
“…….”
청려는 말문이 막힌 듯이 대답이 없더니, 곧 바람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약간 긴장 수위를 낮춘 듯, 약간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네. 공시생이 무슨 아이돌을…….”
“안 하면 죽잖습니까.”
“아, 벌써 거기까지 알았나.”
‘……?’
약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선배님은 언제 아셨습니까?”
“한 놈 보내 버리려다 실패하니까 죽어서 돌아가던데요.”
“……어딜 보낸다고요?”
“자기 조국으로. 어차피 3년 채우자마자 공작소 차려서 튈 놈이니까.”
청려가 웃으며 핸들을 가볍게 쳤다.
‘차라리 내가 운전하고 싶다.’
문제는 박문대에게 면허가 없다는 점이다. 한숨 나오는 상황이 따로 없다.
…어쨌든, 방금 대화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놈, 상태창을 못 본다.’
죽어서 돌아가서야 ‘죽는 상태이상’을 깨달았다는 걸 보니, 이놈한테는 상태창이라는 가이드가 안 붙은 것이다.
‘그래서 특성 3개를 못 채웠군.’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셈이다.
애초에 아이돌 출신에, 본인 몸 그대로 돌아갔다는 점에서야 나보다 유리하다만.
“어느 타이밍에 죽었지? 오디션에서 데뷔 못 하고 죽었을 것 같은데.”
여기서 괜히 거짓말을 하면 도리어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놈이 눈치채고 거짓말을 섞기 시작하면 나도 곤란해지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아직 안 죽었는데요.”
“……그래요? 그럼 어떻게 알았지?”
“그냥 알겠던데요. 기한 내로 업적 못 내면 죽는 거.”
“…….”
청려는 말없이 전방을 주시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부럽네?”
“…….”
룸미러에 눈동자만 굴려서 힐끗 나를 쳐다보는 청려의 눈이 보였다.
…솔직히 더럽게 섬뜩했다.
“지금이 딱 좋을 때잖아요. 주인공으로 사는 기분일 텐데.”
“…기한 돌아올 때마다 죽을지도 모르는 게요?”
“……아, 그렇지.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겠어……. 음.”
청려는 갑자기 한결 가벼운 말투로 불쑥 말을 이었다.
“그거, 일종의 패널티라고 난 생각해요.”
“예?”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일에 실패하면 죽는 거. 솔직히 감수할 만하지 않나요. 과거로 돌아왔는데.”
“…….”
전혀 모르겠는데요.
이거 순 미친놈 아닌가. 방어기제 때문에 상황 합리화하느라 돌아버린 것 같은데?
하지만 청려는 의외로 상식적인 이유를 댔다. 아주 놀라운, 이유였다.
“내가 계산하기로… 기본 한 번에, 돌아온 연(年)수만큼 더해서 주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거.”
“……!”
상태이상에 끝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놈 건 비활성화 상태였나.’
이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 계산해 보자. 그럼 나는 3년을 거슬러 왔으니…….
‘4번. 그중에 이미 2번은 끝낸 상태다.’
희망이 반짝였다.
…물론 이놈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긴 했다. 그래도 일단 캐낼 놈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음으로 마음에 걸렸던 점을 물어보자.
“그런데, 제가 과거로 돌아온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그냥 알겠던데요?”
“…….”
일부러 내 말을 따라 하는군. 일단 나부터 불라는 뜻이다.
나는 내심 혀를 찼다.
‘그래도 당장 상태창에 대해 벌써 이야기할 순 없다.’
이놈 평소에는 멀쩡하던데, 역시 이 초자연적 사태 관련해서는 좀 맛이 간 것 같다. 일단 오늘은 더 건드리지 말자.
“어쨌든, 여러 의미로 후배님 만나서 재밌었습니다. 유익한 경험이었네요.”
“예, 선배님. 감사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이후 적당한 한정식집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눈치 싸움하면서 밤을 새웠더니 더럽게 피곤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후 스케줄 없던 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문대 도착~”
“어때, 예능은 괜찮았고?”
“고, 고생 많았어!”
“……어 괜찮았죠, 고맙습니다.”
와, 이놈들 반갑네.
얼굴 자주 보면 정이 든다더니, 매일 같이 있다 보니 편해진 모양이다.
나는 양치질 중인 큰세진을 붙잡고 물었다.
“간식은?”
“어허, 그걸 믿었니 문대야?”
당연히 아니었지.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 타서 한번 말해봤다. 물론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하지만 놀랍게도 큰세진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확인하고 먹고 싶은 거 두 가지 골라가라~ 편의점에서 사 왔다.”
“…….”
예상이… 빗나갔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참, 원래 인당 세 갠데, 넌 단독 예능 잡혔으니까 하나 차감했다?”
“…….”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원래 두 개야.”
이놈 요새 좀 선 넘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잉.
[VTIC 청려 선배님 : 죽을 것 같으면 연락해요 ^^]
“…….”
갑자기 큰세진의 행동쯤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싶다.
‘일단 이놈보다야 훨씬 낫지.’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대충 답장한 뒤, 간식을 뒤로하고 씻자마자 곧장 침대로 직행했다.
“왔네.”
“네. 별일 없었나요.”
“없었어. …자게?”
“예. 밤을 새워서요. 커튼 좀 쳐도 될까요.”
“그래.”
나는 이세진과 짧게 대화를 나눈 후, 합의하에 암막 커튼을 치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저녁에 해야 할 모니터링이 있기 때문이다.
[테스타의 함께 살기 TEST! 6화]
리얼리티 여행 편 방영이 오늘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3화
청려는 일단 말부터 흐리기 시작했다.
“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무릎을 꿇었다. 방송에는 하늘 같은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는 신인 아이돌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청려는 영혼 없이 웃으며 몇 번 편하게 앉으라고 빈말을 하더니, 화제를 트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때야 대답을 시작했다.
“저희야 소속사에서 팀으로 만나서 시작했고, 다들 성격이 좋아서 금방 친해졌죠.”
그리고 뭐 데뷔 때도 다들 열심히 했다는 정석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뻔하지만 사람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덕목이기도 했다.
음, 이렇게 회피하게 둘 순 없지.
“저는 지금 테스타 멤버들에게 굉장히 마음이 가는데, 청려 선배님께서도 같은 팀의 선배님들과 처음부터 잘 맞으셨군요.”
나는 얼마 안 남은 커피를 원샷 했다. 가라앉았던 부분이라 맛이 센 게 정신이 확 드는군.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이 팀으로 만나서, 다들 싸우지 않고 잘 맞은 거네요. 정말 신기하고 멋진 일입니다.”
“….”
“분명히 다들 좋은 분들이시겠지만, 청려 선배님께서 리더로서 큰 역량을 발휘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적당한 아부가 신인 같은 발언이다.
다른 멤버 후려친다고 보일 정도로 선 넘진 않았고.
그런데 대충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청려에게는 전달되었을 것이다.
‘너 무슨 수 써서 입맛에 딱 맞는 놈들만 골라다가 팀 구성했지. 나도 안다.’
…과연, 청려는 이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런가요.”
“예.”
“쑥스럽네요.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자, 이제 상황 파악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해보는 게 또 처음이라,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이 정도면 아쉬운 쪽이 누군지 알았겠지.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자, 그럼 저희 좀 편하게 있을까요?”
“넵. 감사합니다.”
그 후로는 평범한 산장 조난 꽁트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산사태와 망가진 뒷방.
그리고 창고에서 찾은 라디오에서 나온 섬뜩한 뉴스까지.
흠, 나름대로 몰입해서 잘 찍은 것 같다. 나중에 본방 사수 해야겠군.
그렇게 별일 없이, 촬영은 다음 날 아침에 마무리되었다.
* * *
촬영이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맛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꾸벅꾸벅 주변에 인사를 하며, 제작진의 권유에 따라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뚜뚜뚜- 달칵!
얼마 안 가서,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큰세진이다.
‘왜 류청우한테 전화했는데 너부터 나오냐.’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곧 화면에 테스타 놈들이 가득 찼다.
‘혹시 누구한테든 전화하면 다 같이 나오라고 언질 준 보람이 있군.’
제작진에서 테스타도 곁다리로 몇 컷 나왔으면 좋겠다고 미리 이야기가 끝났기도 하고 말이다.
원래는 본 촬영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상 불가능해서 아마 이렇게 쿠키 영상처럼 자투리 컷으로 엔딩에 들어갈 것 같았다.
“어, 이제 들어가려고.”
“…….”
비까지 오는데 별 양심 터진 부탁을 다 듣는군. 나는 무시하려다가, 카메라를 생각하며 큰세진에게 최대한 온화하게 대꾸했다.
“너나 좀 사놔라. 들어가서 좀 먹게.”
저쪽도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대충 웃으며 넘겼다. 나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몇 가지 더 떠들다가, 곧 영상통화를 종료했다.
매니저에게서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도착까지 약간 지연된다고 문자를 받은 상태다.
아, 참고로 며칠 전에 드디어 새로 온 매니저다. 원래 내 나이보다도 어리더라.
“문대 씨, 안 들어가세요?”
“아, 선배님.”
나는 말을 거는 청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주변에서 스탭 몇 명이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매니저 형님이 늦는다고 하셔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비가 와서 그런가 보네요. 그럼 점심시간도 늦을 텐데, 밥이라도 한 끼하고 들어가는 게 어때요?”
“그래, 문대 씨. 밥 먹고 들어가요. 원래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데, 비가 와서 정리하느라 우리가 안 되네.”
옆을 지나가던 작가가 끼어들어 거들었다.
그림 잘 뽑았다며 제법 칭찬하던데, 박문대에 대한 인상이 꽤 좋게 잡힌 것 같다.
일 쉽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군.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요.”
청려는 차를 가져왔고, 나는 매니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어차피 오후 스케줄이 없었던 것이다.
‘끝나면 바로 들어가서 자야지.’
즐거운 상상 중에, 청려가 차를 몰고 돌아왔다.
‘7년 차면 자기 차 뽑을 만하지.’
“타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앞자리에 탔다. 툭,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자,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청려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시간 낭비 안 좋아하는데. 우리 쓸데없이 재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
“몇 년도에서 왔지?”
“선배님부터.”
“하하.”
청려가 웃다가 뚝 그쳤다.
…좀 정신병자 같은데?
‘갑자기 반말을 찍찍 갈기다 처웃어?’
혹시라도 전방 주시를 잊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해야겠다. 나는 대화와 시야 모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본인 입으로 시인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나는 이미 시점이 지나서요. 별로 쓸모가 없지. 음, 앞으로 올 미래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했는데.”
“저도 별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뭐?”
“공시생이었거든요.”
“…….”
청려는 말문이 막힌 듯이 대답이 없더니, 곧 바람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약간 긴장 수위를 낮춘 듯, 약간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네. 공시생이 무슨 아이돌을…….”
“안 하면 죽잖습니까.”
“아, 벌써 거기까지 알았나.”
‘……?’
약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선배님은 언제 아셨습니까?”
“한 놈 보내 버리려다 실패하니까 죽어서 돌아가던데요.”
“……어딜 보낸다고요?”
“자기 조국으로. 어차피 3년 채우자마자 공작소 차려서 튈 놈이니까.”
청려가 웃으며 핸들을 가볍게 쳤다.
‘차라리 내가 운전하고 싶다.’
문제는 박문대에게 면허가 없다는 점이다. 한숨 나오는 상황이 따로 없다.
…어쨌든, 방금 대화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놈, 상태창을 못 본다.’
죽어서 돌아가서야 ‘죽는 상태이상’을 깨달았다는 걸 보니, 이놈한테는 상태창이라는 가이드가 안 붙은 것이다.
‘그래서 특성 3개를 못 채웠군.’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셈이다.
애초에 아이돌 출신에, 본인 몸 그대로 돌아갔다는 점에서야 나보다 유리하다만.
“어느 타이밍에 죽었지? 오디션에서 데뷔 못 하고 죽었을 것 같은데.”
여기서 괜히 거짓말을 하면 도리어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놈이 눈치채고 거짓말을 섞기 시작하면 나도 곤란해지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아직 안 죽었는데요.”
“……그래요? 그럼 어떻게 알았지?”
“그냥 알겠던데요. 기한 내로 업적 못 내면 죽는 거.”
“…….”
청려는 말없이 전방을 주시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부럽네?”
“…….”
룸미러에 눈동자만 굴려서 힐끗 나를 쳐다보는 청려의 눈이 보였다.
…솔직히 더럽게 섬뜩했다.
“지금이 딱 좋을 때잖아요. 주인공으로 사는 기분일 텐데.”
“…기한 돌아올 때마다 죽을지도 모르는 게요?”
“……아, 그렇지.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겠어……. 음.”
청려는 갑자기 한결 가벼운 말투로 불쑥 말을 이었다.
“그거, 일종의 패널티라고 난 생각해요.”
“예?”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일에 실패하면 죽는 거. 솔직히 감수할 만하지 않나요. 과거로 돌아왔는데.”
“…….”
전혀 모르겠는데요.
이거 순 미친놈 아닌가. 방어기제 때문에 상황 합리화하느라 돌아버린 것 같은데?
하지만 청려는 의외로 상식적인 이유를 댔다. 아주 놀라운, 이유였다.
“내가 계산하기로… 기본 한 번에, 돌아온 연(年)수만큼 더해서 주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거.”
“……!”
상태이상에 끝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놈 건 비활성화 상태였나.’
이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 계산해 보자. 그럼 나는 3년을 거슬러 왔으니…….
‘4번. 그중에 이미 2번은 끝낸 상태다.’
희망이 반짝였다.
…물론 이놈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긴 했다. 그래도 일단 캐낼 놈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음으로 마음에 걸렸던 점을 물어보자.
“그런데, 제가 과거로 돌아온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그냥 알겠던데요?”
“…….”
일부러 내 말을 따라 하는군. 일단 나부터 불라는 뜻이다.
나는 내심 혀를 찼다.
‘그래도 당장 상태창에 대해 벌써 이야기할 순 없다.’
이놈 평소에는 멀쩡하던데, 역시 이 초자연적 사태 관련해서는 좀 맛이 간 것 같다. 일단 오늘은 더 건드리지 말자.
“어쨌든, 여러 의미로 후배님 만나서 재밌었습니다. 유익한 경험이었네요.”
“예, 선배님. 감사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이후 적당한 한정식집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눈치 싸움하면서 밤을 새웠더니 더럽게 피곤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후 스케줄 없던 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문대 도착~”
“어때, 예능은 괜찮았고?”
“고, 고생 많았어!”
“……어 괜찮았죠, 고맙습니다.”
와, 이놈들 반갑네.
얼굴 자주 보면 정이 든다더니, 매일 같이 있다 보니 편해진 모양이다.
나는 양치질 중인 큰세진을 붙잡고 물었다.
“간식은?”
“어허, 그걸 믿었니 문대야?”
당연히 아니었지.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 타서 한번 말해봤다. 물론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하지만 놀랍게도 큰세진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확인하고 먹고 싶은 거 두 가지 골라가라~ 편의점에서 사 왔다.”
“…….”
예상이… 빗나갔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참, 원래 인당 세 갠데, 넌 단독 예능 잡혔으니까 하나 차감했다?”
“…….”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원래 두 개야.”
이놈 요새 좀 선 넘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잉.
“…….”
갑자기 큰세진의 행동쯤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싶다.
‘일단 이놈보다야 훨씬 낫지.’
나는 대충 답장한 뒤, 간식을 뒤로하고 씻자마자 곧장 침대로 직행했다.
“왔네.”
“네. 별일 없었나요.”
“없었어. …자게?”
“예. 밤을 새워서요. 커튼 좀 쳐도 될까요.”
“그래.”
나는 이세진과 짧게 대화를 나눈 후, 합의하에 암막 커튼을 치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저녁에 해야 할 모니터링이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여행 편 방영이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