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9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1화
의 예고 영상은 지난 게스트들을 주르륵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라성 같은 유명인들의 출연을 보여준 뒤, 그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 새 게스트를 보여준 것이다.
[이번 게스트는….]
[VTIC!]
자막 뒤로 VTIC의 수많은 기록과 활동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 한 멤버가 클로즈업되었다. 국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인사하는 유명한 장면이었다.
[VTIC의 리더]
[청려]
[그가 친해지고 싶은 상대는?]
직후, 새로운 화면이 나왔다.
[202X년 7월 어느 날]
[청려 : 안녕하세요. VTIC의 청려입니다.]
사복 차림의 청려가 나오는, 사전미팅 영상이었다.
[Q :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선정 기준은?]
[청려 : 아무래도… 동료 가수분? (웃음)]
[청려 : 사실 그동안 활동에 집중하느라, 동료 가수분들도 만나본 적이 거의 없어서요.]
‘워커홀릭의 비애’라는 작은 덧붙임 자막이 떴다가 사라졌다.
[Q : 딱 한 분만 들자면?]
[청려 : 어렵네요. (웃음)]
[청려 : 사실 최근에 눈여겨본 분이 있긴 한데.]
[청려 : 저랑 좀 비슷하신 것 같아요.]
다음에 나온 청려의 목소리는 ‘삐-’ 소리로 처리되었다.
입 모양도 가려진 탓에 거기서는 아무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이 청려가 누굴 지목한 것인지 짐작했다.
의 ‘바로 나’ 무대가 부분만 클로즈업되어서 흐릿한 화질로 송출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사로 다 유출된 거, 대놓고 힌트나 주겠다는 뜻이다.
[청려가 지목한 ‘비슷한 동료 가수’는 과연 누구?]
[다음 주 에서 밝혀집니다!]
그리고 댓글은 이미 스포로 점령당했다.
-박문대네
-누가 봐도 박문댄데요ㅋㅋㅋ
-우와 청려님 예능 거의 안 나오던데 드디어ㅠㅠ 후배님과의 케미 기대합니다!
-헐 존잼이겠다
베스트 댓글은 거의 이런 기조였다.
최신순으로 정렬하거나 SNS에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일반 시청자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대중성까지 확보한 남자 아이돌은 드물었는데, 그중에서도 단독 예능 출연이 없던 둘이 공중파 예능에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쪽은 첫 공중파 예능이라, 팬들은 완전히 들떴다.
-헉 문댕댕 단독 예능ㅠㅠㅠ
-이 프로 진짜 재밌음 그리고 문대가 잘할 것 같은 타입의 프로임 기대된다
-드디어 소취 성공… 존버 1승 추가… 감개무량…
-(이미 본방 사수 중인 영혼입니다 지나가세요)
VTIC과 활동 기간이 겹치며 생겼던 갈등의 여운이나, 테스타 내부 개인 팬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대세를 잡지는 못했다. 테스타 멤버의 개인 팬들도 일단 누구든 공중파 예능을 뚫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건 악성 개인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속사가 임의로 꽂은 것도 아니고 지목당한 거니까 욕은 안 박는데… 애초에 곰머가 사연팔이로 1위 해서 득보니 찝찝하긴 함ㅎ
-문대야 말아먹지만 말아라 우리 애도 나와야하니까
-곰머 예능 X도 관심 없으니 뮤트하겠습니다 가뜩이나 그룹 계정만 있어서 계속 봐야 됨 빡침
-잉? 박문대만 공중파 예능 나옴? 우리 애도 개인 스케줄 더 잡아줘라 티원 놈들아
부정적인 여론은 수면 아래에서 이 정도로만 말이 오간 뒤,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 빨리 다음 주 금요일 됐으면 좋겠다ㅠㅠ
전반적으로 이 의견이 연예 관련 커뮤니티의 여론이었다.
그리고 이 설렘의 당사자는 지금, 불신에 가득 찬 상태로 촬영장에 들어섰다.
* * *
‘이 새끼 수상한데.’
갑자기 상의도 없이 예능 게스트로 박문대를 지목했다고?
심지어 꼽 주는 톡은 날리면서 이 예능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개인적으로 귀띔 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엿 먹이려는 것 같다.’
하지만 딱 찍어서 들어온 공중파 예능, 그것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 금요일 밤 예능 섭외를 날리는 걸 회사가 오케이할 리 없었다.
덕분에 현재, 스탭에게 인사 후 촬영지로 접근 중이었다.
“…….”
눈앞에 거대한 목재 건축물이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군.’
하필 목재냐. 나는 한숨을 참으며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 계시나요?”
쿵쿵쿵.
제법 강하게 문을 두드리고 있자니, 곧 살짝 문이 열렸다.
“추우실 텐데 얼른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한겨울 감성을 넣은 이 X 같은 설정 때문에 여름에 패딩까지 껴입고 있으려니 쪄 죽을 뻔했다.
‘분명 초대하는 쪽에서 정한다고 했으니, 이 새끼가 정했겠지.’
자기는 처음부터 실내에 있으니까 상관없다 이건가.
나는 목까지 치밀어 오른 욕을 삼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전형적인 산장의 모습이었다. 펜션 수준은 아니고, 등산객들이 오가며 잠깐 묵을 만한 간이시설의 느낌이 확 났다.
‘…대사 칠 타이밍인가.’
나는 짐을 벗어서 구석에 두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눈보라가 쳐서 놀랐는데, 산장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날씨 상황 보고 얼른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다. 현재 기본설정값이 ‘눈 내린 산장에서 조난 직전인 상태’다.
이 얼토당토않은 설정이 들어간 이유는 뻔하다.
이 프로그램 특색이다.
는 한 유명인을 섭외해서 그 사람이 지목한 유명인과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런 힐링 컨텐츠야 워낙 흔하니, 적당히 신박한 요소를 하나 집어 넣어뒀다.
바로 극한 상황이다.
두 사람은 모종의 극한 상황에서 몸의 안위를 챙기기 위해 고립됐다는 설정이 무조건 기본값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콩트다. 개그와 몰입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
참고로 파일럿 때 대히트한 상황은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가 터진 아파트였다.
영린이 말랑달콤 출신 배우를 지목해서 둘이 출연했다는데, 클립 몇 개로 살펴봤을 때는 꽤 흥미로웠다.
‘내가 출연하는 게 문제지.’
그것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초동 180만 장 아이돌과 함께 말이다.
‘꼬투리만 주지 말자.’
무조건 성질 더러운 선임 다루듯이 대해서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게 목표다.
“이런 날씨에 산행은 드문 일인데,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아, 커피 드실래요?”
청려는 웃으며 보온병을 들어 올렸다. 다른 손에는 산장에서 찾았다는 설정인지, 낡고 촌스러운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청려가 내미는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안에서 아메리카노가 끓고 있었다.
“…….”
더워죽겠는데 긴 팔에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라…….
입만 대는 시늉을 하고 내려놨다. 다행히 안쪽은 냉방이 팽팽 돌아가서 슬슬 겨울옷으로도 견딜 만했다.
‘여기서 내가 권유할 차례였지.’
나는 입을 열었다.
“커피도 얻어 마셨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은 제가 대접할까요? 보존식을 좀 넉넉히 챙겨왔습니다.”
“좋죠. 음… 눈보라가 아직 거세네요.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든든히 먹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초록 칸막이로 막아둔 창문 유리창을 슬쩍 내다보는 척하자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무슨 일이긴.’
돈 받고 하는 일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자.
나는 구석에 던져둔 가방에 다가가 보존식을 꺼냈다.
내가 챙긴 건 아니고 제작진이 미리 챙겨준 건데…….
상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간편 무뼈닭발 덮밥]
“…….”
다른 걸 꺼내자. 이제 닭발은… 뇌절이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식사 시간은 그냥 왜 등산을 하게 된 건지 가벼운 콩트나 하면서 지나갔다.
“정리는 제가 할게요.”
“…아닙니다! 이런 건 같이 해야죠.”
누굴 보내 버리려고 후배를 놀게 만드냐.
그렇게 남은 비닐과 용기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콰과과광!!’
이 소리는 진짜로 넣어주는군. 솔직히 놀랐다.
“…!!”
“천둥인가?”
청려가 눈을 찌푸리더니, 산장 문 앞으로 가서 살짝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 그 소리가 산사태였나 봅니다. 밖에 눈이 쌓인 것 같네요.”
“일단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나는 구형 피처폰을 들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눈이 너무 쌓여서 오늘은 못 온다고 들은 사람’ 시늉을 했다.
“이런. 그럼 일단 오늘은 이 산장에서 버텨봅시다.”
“넵.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이걸로 고지받은 기본 설정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한두 가지 콩트용 인물 설정을 염두에 두고 자유롭게 상황을 꾸려가면 된다… 는 게 제작진의 사전 설명이었다.
그래서 난로를 찾고 창문 단속하는 웃긴 시늉을 좀 하고, 다시 거실에 앉았다.
“난로가 잘 작동이 안 되네요.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오늘은 자지 않고 버텨야겠습니다.”
방송 그림을 위해 밤새 노가리나 까라는 제작진의 뜻이다.
‘…뭘 해야 하나.’
이 프로그램 구성상 슬슬 ‘낯선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이건 하급자가 조언을 구하는 식으로 먼저 시작해야 그림에 적합하려나.’
나는 고민하다가, 적당히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가 오늘 등산을 하시게 되셨습니까?”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됐네요. 하하. 음, 사실 제가 가수거든요.”
“예?”
청려는 쑥스러운 것처럼,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VTIC이라는 아이돌 그룹인데, 혹시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이 가증스러운 설정 좀 봐라.
나는 ‘당연히 들어봤다, 팬이다.’ 같은 반응 좀 해주고 내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최근에 데뷔했습니다.”
“정말요? 후배님이셨군요. 이런 우연이 있나.”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현실성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상황 설정이지.
슬슬 진지한 대화로 들어가려나 싶었는데, 턱을 문지르던 청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음… 마침 저희가 직종도 같고, 자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예?”
“들어보실래요?”
여기서 싫다고 할 놈이 있겠냐?
“예. 경청하겠습니다.”
“하하, 경청까지 할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잡담인데요.”
청려가 가볍게 목재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혹시 아이돌 괴담 아세요? 저도 최근에 들은 건데.”
“……괴담이요? 아이돌 괴담?”
“예.”
…무슨 콩트 욕심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주자.
“무슨 내용입니까?”
“음, 어떤 내용이냐면…….”
청려가 빙그레 웃었다.
“한 아이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눈을 뜨니 과거로 돌아간 거예요.”
“…….”
“그 아이돌은 놀라면서도, 이번에야말로 논란 없이 성공한 아이돌이 돼보자고 열심히 도전하는데……. 이게 웬걸. 자꾸 사고로 죽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죠!”
“…….”
“그래서 과거에 갇힌 아이돌은 어느새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녹음실을 배회하며, 성공할 것 같은 아이돌이 녹음을 하면 끼어들어서 같이 녹음을 한대요. ‘나도 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청려가 팔짱을 꼈다.
“어때요?”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1화
의 예고 영상은 지난 게스트들을 주르륵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라성 같은 유명인들의 출연을 보여준 뒤, 그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 새 게스트를 보여준 것이다.
자막 뒤로 VTIC의 수많은 기록과 활동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 한 멤버가 클로즈업되었다. 국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인사하는 유명한 장면이었다.
직후, 새로운 화면이 나왔다.
사복 차림의 청려가 나오는, 사전미팅 영상이었다.
‘워커홀릭의 비애’라는 작은 덧붙임 자막이 떴다가 사라졌다.
다음에 나온 청려의 목소리는 ‘삐-’ 소리로 처리되었다.
입 모양도 가려진 탓에 거기서는 아무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이 청려가 누굴 지목한 것인지 짐작했다.
의 ‘바로 나’ 무대가 부분만 클로즈업되어서 흐릿한 화질로 송출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사로 다 유출된 거, 대놓고 힌트나 주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댓글은 이미 스포로 점령당했다.
-박문대네
-누가 봐도 박문댄데요ㅋㅋㅋ
-우와 청려님 예능 거의 안 나오던데 드디어ㅠㅠ 후배님과의 케미 기대합니다!
-헐 존잼이겠다
베스트 댓글은 거의 이런 기조였다.
최신순으로 정렬하거나 SNS에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일반 시청자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대중성까지 확보한 남자 아이돌은 드물었는데, 그중에서도 단독 예능 출연이 없던 둘이 공중파 예능에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쪽은 첫 공중파 예능이라, 팬들은 완전히 들떴다.
-헉 문댕댕 단독 예능ㅠㅠㅠ
-이 프로 진짜 재밌음 그리고 문대가 잘할 것 같은 타입의 프로임 기대된다
-드디어 소취 성공… 존버 1승 추가… 감개무량…
-(이미 본방 사수 중인 영혼입니다 지나가세요)
VTIC과 활동 기간이 겹치며 생겼던 갈등의 여운이나, 테스타 내부 개인 팬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대세를 잡지는 못했다. 테스타 멤버의 개인 팬들도 일단 누구든 공중파 예능을 뚫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건 악성 개인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속사가 임의로 꽂은 것도 아니고 지목당한 거니까 욕은 안 박는데… 애초에 곰머가 사연팔이로 1위 해서 득보니 찝찝하긴 함ㅎ
-문대야 말아먹지만 말아라 우리 애도 나와야하니까
-곰머 예능 X도 관심 없으니 뮤트하겠습니다 가뜩이나 그룹 계정만 있어서 계속 봐야 됨 빡침
-잉? 박문대만 공중파 예능 나옴? 우리 애도 개인 스케줄 더 잡아줘라 티원 놈들아
부정적인 여론은 수면 아래에서 이 정도로만 말이 오간 뒤,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 빨리 다음 주 금요일 됐으면 좋겠다ㅠㅠ
전반적으로 이 의견이 연예 관련 커뮤니티의 여론이었다.
그리고 이 설렘의 당사자는 지금, 불신에 가득 찬 상태로 촬영장에 들어섰다.
* * *
‘이 새끼 수상한데.’
갑자기 상의도 없이 예능 게스트로 박문대를 지목했다고?
심지어 꼽 주는 톡은 날리면서 이 예능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개인적으로 귀띔 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엿 먹이려는 것 같다.’
하지만 딱 찍어서 들어온 공중파 예능, 그것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 금요일 밤 예능 섭외를 날리는 걸 회사가 오케이할 리 없었다.
덕분에 현재, 스탭에게 인사 후 촬영지로 접근 중이었다.
“…….”
눈앞에 거대한 목재 건축물이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군.’
하필 목재냐. 나는 한숨을 참으며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 계시나요?”
쿵쿵쿵.
제법 강하게 문을 두드리고 있자니, 곧 살짝 문이 열렸다.
“추우실 텐데 얼른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한겨울 감성을 넣은 이 X 같은 설정 때문에 여름에 패딩까지 껴입고 있으려니 쪄 죽을 뻔했다.
‘분명 초대하는 쪽에서 정한다고 했으니, 이 새끼가 정했겠지.’
자기는 처음부터 실내에 있으니까 상관없다 이건가.
나는 목까지 치밀어 오른 욕을 삼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전형적인 산장의 모습이었다. 펜션 수준은 아니고, 등산객들이 오가며 잠깐 묵을 만한 간이시설의 느낌이 확 났다.
‘…대사 칠 타이밍인가.’
나는 짐을 벗어서 구석에 두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눈보라가 쳐서 놀랐는데, 산장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날씨 상황 보고 얼른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다. 현재 기본설정값이 ‘눈 내린 산장에서 조난 직전인 상태’다.
이 얼토당토않은 설정이 들어간 이유는 뻔하다.
이 프로그램 특색이다.
는 한 유명인을 섭외해서 그 사람이 지목한 유명인과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런 힐링 컨텐츠야 워낙 흔하니, 적당히 신박한 요소를 하나 집어 넣어뒀다.
바로 극한 상황이다.
두 사람은 모종의 극한 상황에서 몸의 안위를 챙기기 위해 고립됐다는 설정이 무조건 기본값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콩트다. 개그와 몰입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
참고로 파일럿 때 대히트한 상황은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가 터진 아파트였다.
영린이 말랑달콤 출신 배우를 지목해서 둘이 출연했다는데, 클립 몇 개로 살펴봤을 때는 꽤 흥미로웠다.
‘내가 출연하는 게 문제지.’
그것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초동 180만 장 아이돌과 함께 말이다.
‘꼬투리만 주지 말자.’
무조건 성질 더러운 선임 다루듯이 대해서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게 목표다.
“이런 날씨에 산행은 드문 일인데,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아, 커피 드실래요?”
청려는 웃으며 보온병을 들어 올렸다. 다른 손에는 산장에서 찾았다는 설정인지, 낡고 촌스러운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청려가 내미는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안에서 아메리카노가 끓고 있었다.
“…….”
더워죽겠는데 긴 팔에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라…….
입만 대는 시늉을 하고 내려놨다. 다행히 안쪽은 냉방이 팽팽 돌아가서 슬슬 겨울옷으로도 견딜 만했다.
‘여기서 내가 권유할 차례였지.’
나는 입을 열었다.
“커피도 얻어 마셨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은 제가 대접할까요? 보존식을 좀 넉넉히 챙겨왔습니다.”
“좋죠. 음… 눈보라가 아직 거세네요.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든든히 먹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초록 칸막이로 막아둔 창문 유리창을 슬쩍 내다보는 척하자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무슨 일이긴.’
돈 받고 하는 일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자.
나는 구석에 던져둔 가방에 다가가 보존식을 꺼냈다.
내가 챙긴 건 아니고 제작진이 미리 챙겨준 건데…….
상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
다른 걸 꺼내자. 이제 닭발은… 뇌절이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식사 시간은 그냥 왜 등산을 하게 된 건지 가벼운 콩트나 하면서 지나갔다.
“정리는 제가 할게요.”
“…아닙니다! 이런 건 같이 해야죠.”
누굴 보내 버리려고 후배를 놀게 만드냐.
그렇게 남은 비닐과 용기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콰과과광!!’
이 소리는 진짜로 넣어주는군. 솔직히 놀랐다.
“…!!”
“천둥인가?”
청려가 눈을 찌푸리더니, 산장 문 앞으로 가서 살짝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 그 소리가 산사태였나 봅니다. 밖에 눈이 쌓인 것 같네요.”
“일단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나는 구형 피처폰을 들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눈이 너무 쌓여서 오늘은 못 온다고 들은 사람’ 시늉을 했다.
“이런. 그럼 일단 오늘은 이 산장에서 버텨봅시다.”
“넵.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이걸로 고지받은 기본 설정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한두 가지 콩트용 인물 설정을 염두에 두고 자유롭게 상황을 꾸려가면 된다… 는 게 제작진의 사전 설명이었다.
그래서 난로를 찾고 창문 단속하는 웃긴 시늉을 좀 하고, 다시 거실에 앉았다.
“난로가 잘 작동이 안 되네요.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오늘은 자지 않고 버텨야겠습니다.”
방송 그림을 위해 밤새 노가리나 까라는 제작진의 뜻이다.
‘…뭘 해야 하나.’
이 프로그램 구성상 슬슬 ‘낯선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이건 하급자가 조언을 구하는 식으로 먼저 시작해야 그림에 적합하려나.’
나는 고민하다가, 적당히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가 오늘 등산을 하시게 되셨습니까?”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됐네요. 하하. 음, 사실 제가 가수거든요.”
“예?”
청려는 쑥스러운 것처럼,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VTIC이라는 아이돌 그룹인데, 혹시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이 가증스러운 설정 좀 봐라.
나는 ‘당연히 들어봤다, 팬이다.’ 같은 반응 좀 해주고 내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최근에 데뷔했습니다.”
“정말요? 후배님이셨군요. 이런 우연이 있나.”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현실성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상황 설정이지.
슬슬 진지한 대화로 들어가려나 싶었는데, 턱을 문지르던 청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음… 마침 저희가 직종도 같고, 자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예?”
“들어보실래요?”
여기서 싫다고 할 놈이 있겠냐?
“예. 경청하겠습니다.”
“하하, 경청까지 할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잡담인데요.”
청려가 가볍게 목재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혹시 아이돌 괴담 아세요? 저도 최근에 들은 건데.”
“……괴담이요? 아이돌 괴담?”
“예.”
…무슨 콩트 욕심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주자.
“무슨 내용입니까?”
“음, 어떤 내용이냐면…….”
청려가 빙그레 웃었다.
“한 아이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눈을 뜨니 과거로 돌아간 거예요.”
“…….”
“그 아이돌은 놀라면서도, 이번에야말로 논란 없이 성공한 아이돌이 돼보자고 열심히 도전하는데……. 이게 웬걸. 자꾸 사고로 죽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죠!”
“…….”
“그래서 과거에 갇힌 아이돌은 어느새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녹음실을 배회하며, 성공할 것 같은 아이돌이 녹음을 하면 끼어들어서 같이 녹음을 한대요. ‘나도 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청려가 팔짱을 꼈다.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