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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화
테마곡 무대는 플래티넘 등급 그룹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참가자들이 배치됐다. 당연히 등급이 높을수록 앞으로, 센터로 온다.
그 외에는 플래티넘 그룹만 출 수 있는 파트가 있다는 게 등급 특혜의 전부였다.
그러나 카메라에 한 컷 잡히는 게 초반 등수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등급에 신경 쓰는 눈치였다.
게다가 제작진들이나 트레이너들도 등급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움직이니, 아직 어린 참가자들이 휩쓸리기 딱 좋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플래티넘 배지 달자마자 말 거는 참가자가 다섯 배는 늘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도 겪어보지 못한 노골적인 사회적 서열에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분위기를 조성하다니, 이런 훌륭한 인성의 제작진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까…….
다행히 악랄한 제작진들도 연출적인 생각은 있었다. 플래티넘 등급 중에서도 댄스가 A 이상인 참가자들을 시작 타이밍과 댄스 브레이크에서 동선상 더 앞에 배치했다.
그리고 댄스가 비교적 약한 참가자는 교묘하게 뒤로 뺐다. 뭐, 당연히 나도 이 경우였다.
내 댄스브레이크에서의 동선은 골드보다도 살짝 뒤였다. 내 바로 옆에 선아현과 이세진(골드)이 보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역배우 이세진은 실버를 받았더라. 대충 흐름만 봐서는 진짜 저쪽이 데뷔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좀 아쉽지 않냐?”
그래서 이런 이세진(골드)의 친한 척 정도는 대충 넘기게 되었다. 혐의점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무심코 허들이 내려갔다.
“별로.”
나는 덤덤히 대답했다. 플래티넘 등급치고 무대 위치가 그다지 좋지 않은 점을 말하는 거겠지.
“와, 나는 되게 아쉬웠을 것 같은데.”
“넌 그럴 만도 하지.”
“응? 왜 그렇게 생각해?”
“춤을 잘 추니까.”
이세진의 춤은 A-였다. 보컬은 C+이었는데, 고음에서 음 이탈만 나지 않았어도 저쪽이 나 대신 플래티넘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으음, 고마워!”
어쨌든 이세진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었다.
그때, 불쑥 다른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춤 못 춰요?”
맨 앞 정 가운데 서 있던 플래티넘 등급의 참가자였다. 멀뚱한 표정에 별 악의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저게 처음 등수 평가에서 1위를 했던 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최종 1위기도 했다.
이름은 차유진. 내가 가던 고시촌 백반집 TV에서도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을 만큼 유명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희한한 놈이었다.
마이크도 켜져 있고 카메라도 돌아가는데 이렇게 묻는다고?
이렇게 막 던지는 성격으로 용케 1위를 했구나.
물론 상태창 내역도 그렇고, 평가마다 확실히 눈에 띄게 잘하긴 했다.
그래도 방송 편집 역시 우호적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괜히 이런 소재로 엮이지 말자.
그래서 일부러 피식 웃었다.
“내 평가 안 봤어요?”
그러자 뜨끔한 표정이 됐다. 의외로 이런 데서 양심에 찔리는 타입인가 보지.
“우리는 자기 무대를 준비해야 돼요. 그래서 잘 안 봤어요.”
“그럼 다음에 보면서 판단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차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세진이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웃었다.
“외국에서 와서 그런가 봐, 말투가 독특하네?”
“그러게.”
이세진 쪽도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대화가 더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무대 밖 스탭을 쳐다보았다. 슬슬 그쪽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리허설 들어갑니다!”
스탭이 소리를 질렀다. 역시 세팅이 끝난 게 맞았나 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길바닥에서 장비 챙기며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걸 직접 하게 될 줄이야.
지금 시각은 오전 6시.
그리고 본무대 녹화는 오후 4시.
고난의 행군이 될 것 같았다.
* * *
그리고 현재, 오후 8시.
본 촬영까지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처음 예상대로… 고난이 따로 없었다.
“허어…….”
“아… 죽겠다.”
옆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참가자들이 줄줄 바닥에 엎어졌다. 다들 땀에 절어 있었다.
나도 상태가 다를 게 없었지만, 먼저 엎어진 참가자들이 바닥을 메우고 있어서 앉을 공간도 없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체력이 바닥났다.’
우선 오전 내내 녹초가 되도록 리허설을 했다. 그 후에야 짧게 휴식 겸 점심시간을 받았다.
식사는 아직 관련 PPL을 못 땄는지, 그냥 은박지 싸인 김밥이었다.
대충 먹고 나니 우르르 스타일리스트 관련 직군들이 촬영장에 들어왔다.
-아, 진짜 뭘 둘 데가 없어~
-머리 이쪽으로 숙이세요!
-빨리 할게요.
그들은 대기실로 쓰이는 공터에서 열악한 환경에 짜증을 내면서도 참가자들을 기계적으로 화장시키고, 머리를 매만졌다.
솔직히 누군들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일단 방송용으로 봐줄 만큼은 됐다.
그 후에는 방송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때쯤 내 쪽으로 카메라가 들어왔다.
-옷 마음에 드세요?
-…예.
여기서 싫다고 대답할 놈이 있기나 할까?
-어떤 점이 좋아요?
-음, 제복과 교복을 아우르는 디자인이라, 다양한 컨셉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77명이 똑같은 옷을 입으니 남고로 돌아간 것 같아 좀 징그럽다는 감상은 말할 수 없어서 아쉽군.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의 다른 참가자들이 우수수 끼어들었다.
-저는 다양한 액서서리를 매치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 배지랑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아요!
여기서 나와봤자 지나가는 한두 컷일 텐데, 다들 정말 열정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본 촬영.
솔직히 여기서는… 편집이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겠다.
-다시 갑니다~
-어억…….
서른 번쯤 열사병에 걸릴 것처럼 더운 곳에서 떼거리로 춤을 추고 있자니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무슨 칭찬도 듣고 비판도 듣고 감동을 노린 동기부여 멘트도 들은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흐물흐물하다.
솔직히 기억이 희미했다. 서른 번 중에 제작진 놈들이 어떤 컷을 쓸지도 모르겠고.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PD의 말을 들었다.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고……,”
본무대 끝 즈음에야 슬그머니 나타난 메인 PD는 알맹이 없는 공치사를 하는 듯하더니, 다행히 몇 마디 후에는 쓸 만한 정보를 내놨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다음 주 금요일 뮤직밤에서 나갈 거구요. 여러분은 그다음 날에 다시 촬영을 시작할 거예요. 그때까지 잘 쉬시는데요, 이게 여러분에게 엄청난 기회라는 건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이 기회 잡으셔야죠.”
누가 보면 참가자가 노력만 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줄 알겠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회를 재단할 수 있는 PD의 말에 참가자들은 열심히 호응했다.
“열심히, 죽도록 해봅시다.”
“예!!”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남은 힘을 쥐어짜서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친다. 나도 일단 박수를 쳤다. 손이 후들거렸다.
“…….”
다음 주 뮤직밤 모니터링 때까지, 체력부터 키워야겠다.
* * *
일주일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체력을 키우려던 내 계획은 반만 성공했다. 첫 촬영이 끝나자 갑자기 열이 올라서 사흘간 약 먹고 이불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박문대의 몸이 몇 주간의 빡빡한 노동을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3일 만에 털고 일어난 후에는 전투적으로 식사량을 늘렸다. 그리고 춤 연습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지금 뮤직밤을 시청하면서도 아령을 들고 있으니, 제법 열심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니 반 정도는 성공이라고 치자.
[시원 씨, 신나는 EDM으로 돌아온 SoulWe의 무대, 잘 즐기셨나요?]
[그럼요, 시원이는 신나서 가슴이 다 시원~한데요?]
[지금 장난치신 거예요? 우우~]
[우우~]
화면에서 아이돌 한 쌍이 쾌활하게 사회를 본다.
프롬프터를 열심히 읽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본을 제법 능청맞게 읊었다.
바쁜 스케줄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애쓰는 모양이다.
[시원 씨! 이제 장난 아닌 다음 무대, 바로 소개해 볼까요?]
[네. 그 소식 들으셨나요, 윤지 씨?]
[어떤 소식인가요?]
[주주님들께서 애타게 기다린 그 뉴스요! 바로바로~ 가 재상장했습니다!]
[와아아!]
곧 시작하겠군. 나는 아령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미리 접속해 둔 페이지를 켰다.
거대 포털 사이트에서 만든 시청자 불판으로, 일반적인 인터넷 반응을 두루 살피기 가장 좋은 페이지였다.
마침 대형가수의 컴백주도 아닌 터라, 페이지는 아이돌 주식회사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MusicBOMB’ talk talk!]
-재상장이래ㅋㅋㅋ실화냐?
-뇌절도 가지가지
-와 고굽척 시즌3!
-ㅋㅋㅋㅋㅋ응 재상장 아냐 상장폐지야
-뭐임? 갑자기 여기 왜 이래요?
└아주사 새시즌 만든대여ㅋ
└아…….
-ㅎ노잼 무대 대신 댓글 보러온 거 나뿐임?
음. 예상대로의 반응들이 난립 중이군.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색다른 조롱이 우르르 쏟아졌다. 기존 뮤직밤 시청자들보다 몰려온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반응들을 요약하자면 시즌3는 무리수고 망할 게 확실하다는 말이었다. 시즌2가 너무 장대하고 화려하게 자폭한 탓에 시리즈 자체에 망한 프로라는 인식이 굳게 박힌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2를 인용한 조롱도 눈에 띈다.
-이번에는 남자끼리 터지나? 더 큰 대한민국 가나요?ㅋ
└대한민국에선 동성결혼이 안 되자나 시즌2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겠네^^ㅋㅋㅋㅋㅋㅋ
└X발ㅋㅋㅋㅋ
시즌2가 자폭한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남녀를 섞어서 참가자를 받고 혼성 아이돌 오디션으로 진행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괴이한 발상이었다.
제작진이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건지 궁금하다.
정석대로 시즌2는 남자 버전으로 만들었으면, 아니, 하다못해 여자 버전을 한 번 더 진행했어도 그 꼴은 안 났을 것이다.
그 꼴이 뭔가 하면…
-모르죠~ 또 누가 혼전임신 터져서 아이돌 오디션 계의 레전설로 남을지도
└엌ㅋㅋㅋ 두 시즌 연속 통수잼!
└지금이야 웃지 X발 그때는 진짜 트라우마될 뻔했음. 미친 새끼들 왜 오디션 프로에 기어 나와서 애먼 시청자들 빡치게 하고 지랄이야
└히익 급발진;
└예능에 과몰입 오졌쥬~
└응 그냥 예능 아냐 돈 처먹는 오디션이야~
└그 와중에 세기의 로맨스로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아주사에서 염병첨벙 떤 거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림ㅎ
그렇다. 혼전임신이 터졌던 것이다…….
연애여도 치명적인 이 판에 혼전임신.
그것도 참가자들 간에 터졌다.
더 큰 문제는 혼전임신이 터진 두 참가자가 시즌2를 견인하던 인기 참가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어차피 혼성 그룹이니 즉각 퇴출보다는 화제성 몰이에 써먹고 슬쩍 빼는 쪽이 그나마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둘의 남은 방송 분량을 로맨스 리얼리티스럽게 편집했던 거겠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다리 혼전임신이라니, 돌판에 다시없을 미친놈이었자나.
-진짜 아주사는 전설이다…… 아니, 아주사가 아니라 망주사ㅎ
혼전임신 스캔들이 터진 참가자 중 남자 쪽은 사실 다른 여성 참가자와도 연애 중이었다.
해당 여성 참가자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참고 넘길 생각이었지만, 핑크빛 방송분을 보고 눈이 돌아가서 언론사에 메신저 내역을 제보해 버렸다고 한다.
그 후는 뭐… 처참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연예 뉴스 페이지, SNS까지 전부 작살났었다.
그냥… 아주사 시즌2는 파이널까지 못 가고 조기 종영했다는 점만 기억해두면 된다.
그리고 이런 초대형 스캔들이 아직도 시청자층의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 이상, 방영 초기에는 무슨 짓을 해도 조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회상을 접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난리 난 댓글창과 대조적으로, 뮤직밤 MC들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주주님들의 투자를 기다리는 아이돌 주식이 가득!]
[Shine your star!]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캐치 프레이즈가 나온다.
[지금, 날아오르려는 아이돌에게 투자하세요!]
그 순간 댓글 리젠이 갑자기 세 배로 늘었다.
-날아오르라 주식이여…… 환상의 떡상…… ↖날아…… 오르라↗
이것도 한때 흥했던 인터넷 밈이다. 아마 잘될 줄 알았던 참가자가 악편으로 망했을 때 자주 썼던 것 같다.
거의 도배 수준으로 올라오는 이 댓글들 사이로 한탄 글이 몇 개 지나갔다.
-와 이걸 또 쓰네.
-문구 누가 정했을까 진짜 저제상 센스다.
-ㄹㅇ 퇴물 아재가 힙한 척하려다 망한 것 같어.
-시워니한테 저런 대사 시키지 말라고 미친 방송국 놈들아ㅠ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보긴 보네.”
욕하려고 본단 말이지.
무관심보다 몇백 배는 나았다. 이런 초기 시청자층이 초반 입소문에 분명 기여 할 것이다. 시즌3가 대성공하는 건 이미 경험해 본 사실이니까.
어차피 이들 중 대다수가 파이널쯤 가면 (아주사 식으로 표현하자면) 누구 주식이든 잡고 울면서 볼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첫 무대부터 그러진 않겠지.
무슨 반응이 또 나올지 심히 기대가 컸다.
MC의 말이 끝나자, 몇 초 뒤에 TV 화면이 무대를 비췄다.
무대 위에는 영린이 서 있었다. 핀포인트로 꽂힌 조명이 윤곽 또렷한 얼굴에 드라마틱한 음영을 새겼다.
음, 원래 는 블랙 코미디와 밈이 넘치는 B급 스타일로 유머러스한 포지션이었는데, 하도 밈이 돼서 미친 듯이 까이다 보니 약간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 같았다.
엄숙하게 가려나.
[주주 여러분! 지난 상장폐지를 기억하십니까?]
“……?”
내 예측은 영린이 입을 열자마자 박살 났다.
[여러분의 주식을 종이 쪼가리로 만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쩌렁쩌렁한 발성을 자랑하는 영린의 앞으로 대형자막이 떠오른다.
[※본 내용은 제작진의 사죄입니다. 영린은 죄가 없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홈페이지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받고 있습니다.※]
“…….”
제정신인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화

테마곡 무대는 플래티넘 등급 그룹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참가자들이 배치됐다. 당연히 등급이 높을수록 앞으로, 센터로 온다.

그 외에는 플래티넘 그룹만 출 수 있는 파트가 있다는 게 등급 특혜의 전부였다.

그러나 카메라에 한 컷 잡히는 게 초반 등수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등급에 신경 쓰는 눈치였다.

게다가 제작진들이나 트레이너들도 등급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움직이니, 아직 어린 참가자들이 휩쓸리기 딱 좋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플래티넘 배지 달자마자 말 거는 참가자가 다섯 배는 늘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도 겪어보지 못한 노골적인 사회적 서열에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분위기를 조성하다니, 이런 훌륭한 인성의 제작진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까…….

다행히 악랄한 제작진들도 연출적인 생각은 있었다. 플래티넘 등급 중에서도 댄스가 A 이상인 참가자들을 시작 타이밍과 댄스 브레이크에서 동선상 더 앞에 배치했다.

그리고 댄스가 비교적 약한 참가자는 교묘하게 뒤로 뺐다. 뭐, 당연히 나도 이 경우였다.

내 댄스브레이크에서의 동선은 골드보다도 살짝 뒤였다. 내 바로 옆에 선아현과 이세진(골드)이 보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역배우 이세진은 실버를 받았더라. 대충 흐름만 봐서는 진짜 저쪽이 데뷔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좀 아쉽지 않냐?”

그래서 이런 이세진(골드)의 친한 척 정도는 대충 넘기게 되었다. 혐의점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무심코 허들이 내려갔다.

“별로.”

나는 덤덤히 대답했다. 플래티넘 등급치고 무대 위치가 그다지 좋지 않은 점을 말하는 거겠지.

“와, 나는 되게 아쉬웠을 것 같은데.”

“넌 그럴 만도 하지.”

“응? 왜 그렇게 생각해?”

“춤을 잘 추니까.”

이세진의 춤은 A-였다. 보컬은 C+이었는데, 고음에서 음 이탈만 나지 않았어도 저쪽이 나 대신 플래티넘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으음, 고마워!”

어쨌든 이세진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었다.

그때, 불쑥 다른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춤 못 춰요?”

맨 앞 정 가운데 서 있던 플래티넘 등급의 참가자였다. 멀뚱한 표정에 별 악의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저게 처음 등수 평가에서 1위를 했던 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최종 1위기도 했다.

이름은 차유진. 내가 가던 고시촌 백반집 TV에서도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을 만큼 유명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희한한 놈이었다.

마이크도 켜져 있고 카메라도 돌아가는데 이렇게 묻는다고?

이렇게 막 던지는 성격으로 용케 1위를 했구나.

물론 상태창 내역도 그렇고, 평가마다 확실히 눈에 띄게 잘하긴 했다.

그래도 방송 편집 역시 우호적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괜히 이런 소재로 엮이지 말자.

그래서 일부러 피식 웃었다.

“내 평가 안 봤어요?”

그러자 뜨끔한 표정이 됐다. 의외로 이런 데서 양심에 찔리는 타입인가 보지.

“우리는 자기 무대를 준비해야 돼요. 그래서 잘 안 봤어요.”

“그럼 다음에 보면서 판단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차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세진이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웃었다.

“외국에서 와서 그런가 봐, 말투가 독특하네?”

“그러게.”

이세진 쪽도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대화가 더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무대 밖 스탭을 쳐다보았다. 슬슬 그쪽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리허설 들어갑니다!”

스탭이 소리를 질렀다. 역시 세팅이 끝난 게 맞았나 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길바닥에서 장비 챙기며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걸 직접 하게 될 줄이야.

지금 시각은 오전 6시.

그리고 본무대 녹화는 오후 4시.

고난의 행군이 될 것 같았다.

* * *

그리고 현재, 오후 8시.

본 촬영까지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처음 예상대로… 고난이 따로 없었다.

“허어…….”

“아… 죽겠다.”

옆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참가자들이 줄줄 바닥에 엎어졌다. 다들 땀에 절어 있었다.

나도 상태가 다를 게 없었지만, 먼저 엎어진 참가자들이 바닥을 메우고 있어서 앉을 공간도 없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체력이 바닥났다.’

우선 오전 내내 녹초가 되도록 리허설을 했다. 그 후에야 짧게 휴식 겸 점심시간을 받았다.

식사는 아직 관련 PPL을 못 땄는지, 그냥 은박지 싸인 김밥이었다.

대충 먹고 나니 우르르 스타일리스트 관련 직군들이 촬영장에 들어왔다.

-아, 진짜 뭘 둘 데가 없어~

-머리 이쪽으로 숙이세요!

-빨리 할게요.

그들은 대기실로 쓰이는 공터에서 열악한 환경에 짜증을 내면서도 참가자들을 기계적으로 화장시키고, 머리를 매만졌다.

솔직히 누군들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일단 방송용으로 봐줄 만큼은 됐다.

그 후에는 방송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때쯤 내 쪽으로 카메라가 들어왔다.

-옷 마음에 드세요?

-…예.

여기서 싫다고 대답할 놈이 있기나 할까?

-어떤 점이 좋아요?

-음, 제복과 교복을 아우르는 디자인이라, 다양한 컨셉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77명이 똑같은 옷을 입으니 남고로 돌아간 것 같아 좀 징그럽다는 감상은 말할 수 없어서 아쉽군.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의 다른 참가자들이 우수수 끼어들었다.

-저는 다양한 액서서리를 매치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 배지랑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아요!

여기서 나와봤자 지나가는 한두 컷일 텐데, 다들 정말 열정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본 촬영.

솔직히 여기서는… 편집이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겠다.

-다시 갑니다~

-어억…….

서른 번쯤 열사병에 걸릴 것처럼 더운 곳에서 떼거리로 춤을 추고 있자니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무슨 칭찬도 듣고 비판도 듣고 감동을 노린 동기부여 멘트도 들은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흐물흐물하다.

솔직히 기억이 희미했다. 서른 번 중에 제작진 놈들이 어떤 컷을 쓸지도 모르겠고.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PD의 말을 들었다.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고……,”

본무대 끝 즈음에야 슬그머니 나타난 메인 PD는 알맹이 없는 공치사를 하는 듯하더니, 다행히 몇 마디 후에는 쓸 만한 정보를 내놨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다음 주 금요일 뮤직밤에서 나갈 거구요. 여러분은 그다음 날에 다시 촬영을 시작할 거예요. 그때까지 잘 쉬시는데요, 이게 여러분에게 엄청난 기회라는 건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이 기회 잡으셔야죠.”

누가 보면 참가자가 노력만 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줄 알겠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회를 재단할 수 있는 PD의 말에 참가자들은 열심히 호응했다.

“열심히, 죽도록 해봅시다.”

“예!!”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남은 힘을 쥐어짜서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친다. 나도 일단 박수를 쳤다. 손이 후들거렸다.

“…….”

다음 주 뮤직밤 모니터링 때까지, 체력부터 키워야겠다.

* * *

일주일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체력을 키우려던 내 계획은 반만 성공했다. 첫 촬영이 끝나자 갑자기 열이 올라서 사흘간 약 먹고 이불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박문대의 몸이 몇 주간의 빡빡한 노동을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3일 만에 털고 일어난 후에는 전투적으로 식사량을 늘렸다. 그리고 춤 연습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지금 뮤직밤을 시청하면서도 아령을 들고 있으니, 제법 열심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니 반 정도는 성공이라고 치자.

화면에서 아이돌 한 쌍이 쾌활하게 사회를 본다.

프롬프터를 열심히 읽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본을 제법 능청맞게 읊었다.

바쁜 스케줄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애쓰는 모양이다.

곧 시작하겠군. 나는 아령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미리 접속해 둔 페이지를 켰다.

거대 포털 사이트에서 만든 시청자 불판으로, 일반적인 인터넷 반응을 두루 살피기 가장 좋은 페이지였다.

마침 대형가수의 컴백주도 아닌 터라, 페이지는 아이돌 주식회사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재상장이래ㅋㅋㅋ실화냐?

-뇌절도 가지가지

-와 고굽척 시즌3!

-ㅋㅋㅋㅋㅋ응 재상장 아냐 상장폐지야

-뭐임? 갑자기 여기 왜 이래요?

└아주사 새시즌 만든대여ㅋ

└아…….

-ㅎ노잼 무대 대신 댓글 보러온 거 나뿐임?

음. 예상대로의 반응들이 난립 중이군.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색다른 조롱이 우르르 쏟아졌다. 기존 뮤직밤 시청자들보다 몰려온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반응들을 요약하자면 시즌3는 무리수고 망할 게 확실하다는 말이었다. 시즌2가 너무 장대하고 화려하게 자폭한 탓에 시리즈 자체에 망한 프로라는 인식이 굳게 박힌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2를 인용한 조롱도 눈에 띈다.

-이번에는 남자끼리 터지나? 더 큰 대한민국 가나요?ㅋ

└대한민국에선 동성결혼이 안 되자나 시즌2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겠네^^ㅋㅋㅋㅋㅋㅋ

└X발ㅋㅋㅋㅋ

시즌2가 자폭한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남녀를 섞어서 참가자를 받고 혼성 아이돌 오디션으로 진행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괴이한 발상이었다.

제작진이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건지 궁금하다.

정석대로 시즌2는 남자 버전으로 만들었으면, 아니, 하다못해 여자 버전을 한 번 더 진행했어도 그 꼴은 안 났을 것이다.

그 꼴이 뭔가 하면…

-모르죠~ 또 누가 혼전임신 터져서 아이돌 오디션 계의 레전설로 남을지도

└엌ㅋㅋㅋ 두 시즌 연속 통수잼!

└지금이야 웃지 X발 그때는 진짜 트라우마될 뻔했음. 미친 새끼들 왜 오디션 프로에 기어 나와서 애먼 시청자들 빡치게 하고 지랄이야

└히익 급발진;

└예능에 과몰입 오졌쥬~

└응 그냥 예능 아냐 돈 처먹는 오디션이야~

└그 와중에 세기의 로맨스로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아주사에서 염병첨벙 떤 거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림ㅎ

그렇다. 혼전임신이 터졌던 것이다…….

연애여도 치명적인 이 판에 혼전임신.

그것도 참가자들 간에 터졌다.

더 큰 문제는 혼전임신이 터진 두 참가자가 시즌2를 견인하던 인기 참가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어차피 혼성 그룹이니 즉각 퇴출보다는 화제성 몰이에 써먹고 슬쩍 빼는 쪽이 그나마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둘의 남은 방송 분량을 로맨스 리얼리티스럽게 편집했던 거겠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다리 혼전임신이라니, 돌판에 다시없을 미친놈이었자나.

-진짜 아주사는 전설이다…… 아니, 아주사가 아니라 망주사ㅎ

혼전임신 스캔들이 터진 참가자 중 남자 쪽은 사실 다른 여성 참가자와도 연애 중이었다.

해당 여성 참가자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참고 넘길 생각이었지만, 핑크빛 방송분을 보고 눈이 돌아가서 언론사에 메신저 내역을 제보해 버렸다고 한다.

그 후는 뭐… 처참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연예 뉴스 페이지, SNS까지 전부 작살났었다.

그냥… 아주사 시즌2는 파이널까지 못 가고 조기 종영했다는 점만 기억해두면 된다.

그리고 이런 초대형 스캔들이 아직도 시청자층의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 이상, 방영 초기에는 무슨 짓을 해도 조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회상을 접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난리 난 댓글창과 대조적으로, 뮤직밤 MC들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캐치 프레이즈가 나온다.

그 순간 댓글 리젠이 갑자기 세 배로 늘었다.

-날아오르라 주식이여…… 환상의 떡상…… ↖날아…… 오르라↗

이것도 한때 흥했던 인터넷 밈이다. 아마 잘될 줄 알았던 참가자가 악편으로 망했을 때 자주 썼던 것 같다.

거의 도배 수준으로 올라오는 이 댓글들 사이로 한탄 글이 몇 개 지나갔다.

-와 이걸 또 쓰네.

-문구 누가 정했을까 진짜 저제상 센스다.

-ㄹㅇ 퇴물 아재가 힙한 척하려다 망한 것 같어.

-시워니한테 저런 대사 시키지 말라고 미친 방송국 놈들아ㅠ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보긴 보네.”

욕하려고 본단 말이지.

무관심보다 몇백 배는 나았다. 이런 초기 시청자층이 초반 입소문에 분명 기여 할 것이다. 시즌3가 대성공하는 건 이미 경험해 본 사실이니까.

어차피 이들 중 대다수가 파이널쯤 가면 (아주사 식으로 표현하자면) 누구 주식이든 잡고 울면서 볼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첫 무대부터 그러진 않겠지.

무슨 반응이 또 나올지 심히 기대가 컸다.

MC의 말이 끝나자, 몇 초 뒤에 TV 화면이 무대를 비췄다.

무대 위에는 영린이 서 있었다. 핀포인트로 꽂힌 조명이 윤곽 또렷한 얼굴에 드라마틱한 음영을 새겼다.

음, 원래 는 블랙 코미디와 밈이 넘치는 B급 스타일로 유머러스한 포지션이었는데, 하도 밈이 돼서 미친 듯이 까이다 보니 약간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 같았다.

엄숙하게 가려나.

“……?”

내 예측은 영린이 입을 열자마자 박살 났다.

쩌렁쩌렁한 발성을 자랑하는 영린의 앞으로 대형자막이 떠오른다.

“…….”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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