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8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4화
“흐엄…….”
숙소 거실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1위 했는데 알코올까지 들어가자 긴장이 풀리며 누적된 피로가 확 쏟아졌는지, 대부분 뻗어서 자고 있었다.
미성년자 둘도 덩달아 졸다가 잠이 들었다. 이세진은 체력문제인지 이미 중간에 방으로 들어간 상태다. 그쪽도 아마 잠들었겠지.
그래서 거실에 남은 것은…….
“문대 넌 괜찮아?”
나와 류청우뿐이다.
저쪽은 술이 강하고, 나는 ‘바쿠스500’ 특성 덕분에 아직 정신 차리고 있을 만했기 때문이다.
“예.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류청우는 빙긋 웃더니 손에 든 맥주를 쭉 들이켰다.
‘대체 몇 캔이나 마신 거지.’
어차피 거의 취한 것 같진 않으니 상관은 없지만, 분명 여섯 캔 이상은 마신 것 같았다.
주량이 어마어마한 건 분명했다.
“음, 활동하는 건 좀 어때?”
“저야 뭐, 할 만합니다.”
“하하, 문대는 언제나 침착하네.”
류청우는 다 마신 맥주캔을 잘 접어서 내려놨다. 표정이 영 씁쓸해 보였다.
‘왜 또 그러냐.’
1위까지 했는데 또 무슨 걱정이 생겼는지 얼굴이 영 안 좋았다.
“나도 너처럼 좀 침착한 성격이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형 충분히 침착하신 것 같은데요?”
끝나고 근 2달간 이놈이 취했던 태도를 생각하면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류청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안 좋은 것 같다. 오늘 1위 할 때 소감 제대로 말 못 한 것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그래.”
“……?”
이건 더 뜬금없다.
‘1위 소감은 이미 난장판이었구만 무슨.’
“형 오디션 때부터 리더 잘하셨는데요. 그런 문제 없으셨던 것 같은데.”
“연장자라 리더를 한 거지, 내가 잘해서 했던 건 아니야. 팀이 제대로 굴러간 적도… 그래, 우리 같이했던 2차 때 빼면 없지.”
그거야말로 솔직히 류청우 탓은 아니지 않나.
‘그냥 네가 팀 운이 더럽게 없었던 거지.’
나는 떨떠름하게 맥주를 하나 더 땄다.
“ 때야 뭐, 단기간에다 서바이벌이라 제대로 굴러간 팀이 더 드물었죠. 그리고 어쨌든 테스타는 잘 굴러가는 중인 것 같은데요.”
“…잘 굴러가다가 내 실수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인 거야.”
류청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내가 이 팀에 기여할 만한 포지션이 리더 정도라 맡기는 했는데… 좀, 한계 같기도 하다.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뭘 참는 성격도 아니고.”
“흠.”
어쩐지 테스타가 결성된 뒤로 류청우의 태도가 더 보수적이고 온건해졌다 했더니,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2차 때 생각해 보면, 원래는 좀 더 도전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지.’
아주사 때 겪은 갈등들이 이상한 학습효과를 줬나 보다.
그 와중에도 류청우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지간히 속이 텄던 모양이다.
“아주사 때도 좀 고민했었지. 여기 나온 게 정말 맞는 선택이었나 하는…….”
“…….”
그러고 보니 금메달까지 땄으면서 양궁 그만두고 굳이 망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이유가 없지 않았나.
“어쩌다 나오게 되셨는데요?”
“아, 이건 다들 모르겠구나. 아주사 작가 중에 친척이 있었거든.”
“……!”
잠깐.
“설마 류서린 작가요?”
“맞아. 성이 똑같아서 바로 알았나?”
류청우가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
“그 누나가 하도 부탁해서… 나도 어차피 새 진로를 이쪽으로 잡았으니까, 나와본 거였지.”
식은땀이 났다.
‘이거 지금 걸리면 스캔들감 아닌가…?’
어차피 오디션 망했을 때야 상관없겠지만, 지금 시즌3는 미친 듯이 대흥행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근데 데뷔한 멤버 중 하나가 작가 친적이다?
‘심지어 류청우는 우호적인 편집만 쭉 받았지.’
이거 완전… 스캔들인데.
류청우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너희한테 피해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먼 친척이고 거의 안면도 없었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 거라… 섭외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마 형식만 따지자면 박문대가 받았던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사가 뜰 때는 그런 걸 친절하게 표기해 줄 리가 없었다.
그냥 ‘테스타 멤버, 사실은 아주사 작가의 친척이었다’, ‘섭외된 친인척이 데뷔까지… 아주사의 그림자’ 같은 타이틀이 나오겠지.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음, 그것도 걱정 마. 너한테 처음 말해보는 거니까.”
류서린 작가 쪽에서도 1화 방영되고 반응 보자마자 전화해서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딱 이 시기만 넘기면 된다.’
다다음 시즌까지 나올 때쯤, 그러니까 한… 이삼 년 지난 후에 터지면 별일 없이 넘어가겠지.
그리고 방송 내내 안 터지고 아직까지 안 터졌다면 다들 아직은 모른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 다시 한번 류청우에게 확인했다.
“작가분하고 얼마나 먼 친척인데요?”
“음… 같은 풍산 류씨라는 것 빼고는… 몇 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정도.”
“…….”
그 정도면, 여차해도 친척까지는 아니라고 변명도 가능하겠다. 그냥 본가가 똑같아서 섭외가 용이했다로 풀 수 있겠군.
약간 긴장이 풀렸다.
다음 상태이상이 뭐가 뜰지 모르겠지만, 팀에 악재가 오면 좋을 리 없다는 건 확실해서 그런지 좀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생각도 슬슬 든다.
‘그러고 보니, 나도 풍산 류씨였던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별로 신경 안 써서 확신은 못 하겠는데,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아마 류청우와 항렬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류건우, 류청우. 흠.
‘우(佑)자 돌림이겠군.’
뭐 아무렴 어떤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상하게 너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됐네… 원래 동생들한테는 이런 이야기 안 하는데 말이야. 하하.”
“…….”
연상인 걸 본능적으로 알았나.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일단 섭외가 들어갔다는 건, 가수 준비는 이미 하고 계셨단 말이군요.”
“응. 양궁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류청우가 어깨를 살짝 돌리는 시늉을 했다.
“어릴 때 교통사고가 좀 크게 났었는데… 뭘 잘못 건드렸는지 다 크고 나서야 후유증이 생기더라고, 힘을 주면 손이 떨려.”
“…….”
“그래서 재작년인가 그만두고…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새로 진로 탐색해본 거지. 하하.”
이미 극복한 사람 특유의 여유가 묻어나는 태도였다.
‘끝난 일이란 뜻이군.’
나도 그냥 고개나 끄덕였다.
그때, 발 옆에서 누군가 들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크흡.”
“……??”
“죄송해여. 들었습니다…….”
옆에 엎어져서 자던 차유진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에 누워 있던 김래빈도 코를 훌쩍이며 몸을 움직였다.
“어쩌다 보니 정신을 차려서… 죄송합니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고…….”
“아니에요. 크흥”
“…….”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두 놈은 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류청우는 잠시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곧 웃어넘겼다.
“거실 한복판에서 이야기한 내 잘못이지 뭐.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자.”
하지만 두 놈은 주춤주춤 말을 더 남겼다.
“형.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청우 형 멋져요. 아이돌 잘했어요!”
“……음.”
류청우는 복잡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툭 말을 얹었다.
“이제 말 잘 들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안 참고 좀 편하게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리더.”
“…네가 할 생각은 없어?”
“예? 당연히 중도 포기해서 망할 걸요.”
“…….”
내가 리더를? 분명 하다가 빡쳐서 한두 놈은 손절해 버릴 것이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류청우는 말문이 막힌 얼굴이 됐다. 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휴.”
하지만 곧, 한결 편한 태도로 툭 대답했다.
“…그래. 잘 알겠다. 리더 계속해 볼게.”
“와!”
“대신 너희도 내가 쓸데없는 일 하려고 하면 말려. 이제 나도 무조건 브레이크만 거는 건 못하겠다.”
“그럼요.”
류청우는 ‘나 참’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곧 기지개를 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속내를 털어놔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거실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쓰러진 인간 몸들만 남았다.
“…….”
“…들어갈까?”
“예.”
깨면 알아서 들어가겠지. 놔두자.
* * *
테스타가 1위의 기쁨과 회포를 풀고 난 직후.
팬들은 테스타의 첫 1위가 기사로 뜨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까지 참았다. 테스타의 좋은 소식을 팀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계속 문의는 넣자
-눈치 있으면 알아서 준비하겠죠
팬들은 각자 전화와 메일로 조용히 피드백 요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결국 며칠이 지나도 아무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소속사 이 새끼들 정신 못 차리네?
수면 밑에서 부글부글 끓던 여론은 결국 폭발했고, 팬들은 결국 소속사를 향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
[아티스트 활동 지원 요청 성명문]
[202X년 7월 10일, 테스타의 팬 연합 일동은 T1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의 비합리적인 운영을 비판하며, 아티스트와 소비자(팬)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데뷔 전……]
========================
어떤 개인 멤버 한 명에 결부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멤버의 개인 팬 커뮤니티에서까지 연합하여 규모는 미친 듯이 불어났다.
성명서가 안 된다면 다음 수단으로 팩스와 포스트잇 시위까지 차근히 준비 중인 팬들에게, 다행스럽게도 소속사의 응답이 왔다.
========================
[안녕하세요. T1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당사는 테스타의 활동을 위한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으며, 최근 팬 여러분께서 우려하시는 사항 역시 늦지 않게 실행될……]
========================
항복 선언문이었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고 너희가 오버한 거야!’라는 뉘앙스가 살짝 느껴지는 것에 짜증을 느끼는 팬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빠른 시일 내로 뭘 해보겠다는 이야기에 분위기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역시 X소는 패야 말을 듣는가…
-솔직히 니들 지금 이 난리 안 부렸으면 2집 때야 팬덤명 나왔을 거라고 떠들고 있지?ㅋㅋ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함ㅇㅇ
-응원봉도 응원봉이지만 앞으로 제발 이젠 애들 컴백 일정 거지같이 잡지 마. 아무리 돈이 좋아도 애들 그만 쥐어짜라고.
-다음에 또 한 달 내로 컴백 이 지랄하는 기사 뜨면 시위 트럭 보낼 테니 그렇게 알아라ㅋㅋ
소속사는 이후 ‘팬들이 직접 선택하는 팬덤 이름’ 같은 아주사 스타일이벤트를 해볼 것처럼 슬쩍 기사로 운을 띄워봤지만, 팬들의 공격에 침몰했다.
-제발! 그만! 시켜! 우리 이제 투표 주식 다 지겨움 그냥 테스타가 하자는 거 시켜줘ㅠㅠ
-아주사 망령 이제 그만…
-1위 곡 컨셉 뚝딱 만드는 대천재 아이돌들 두고 왜 자꾸 팬들한테 시키려고 해 우린 그냥 애들 하는 거 보고 시시덕거릴래요
-그래 우린 돈이나 쓸래 빨리 굿즈나 찍어줘
다행히 소속사는 더 간 보지 않고 열심히 일정을 준비했다.
그래서 그 주 금요일.
[기쁘다 국민 주식 오셨네!]
[테스타의 첫 W라이브]
[테스타가 지어주는 팬 이름 이야기!]
[7/15 (SUN) 3:00 PM]
헐레벌떡 이벤트 배너가 떴다.
-와 드디어
-ㅠㅠㅠㅠ우리 애들도 이젠 덥라이브한다!!
-존버 승리!
-미친 라이브로 말하는 큰세진 아아아아ㅠㅠ
-제발 개노잼이라도 좋으니까 길게 하자
-티원 놈들 그래도 대기업이라고 일을 할 줄은 아네ㅠㅠ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테스타를 음방에서만 간신히 봤던 팬들은 잔뜩 흥분했다.
아직 예고 동영상 하나 올라온 테스타의 W앱 채널은 벌써부터 구독이 우수수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오후 3시 정각.
[아아!]
[안녕하세요~]
테스타가 W라이브를 켰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4화
“흐엄…….”
숙소 거실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1위 했는데 알코올까지 들어가자 긴장이 풀리며 누적된 피로가 확 쏟아졌는지, 대부분 뻗어서 자고 있었다.
미성년자 둘도 덩달아 졸다가 잠이 들었다. 이세진은 체력문제인지 이미 중간에 방으로 들어간 상태다. 그쪽도 아마 잠들었겠지.
그래서 거실에 남은 것은…….
“문대 넌 괜찮아?”
나와 류청우뿐이다.
저쪽은 술이 강하고, 나는 ‘바쿠스500’ 특성 덕분에 아직 정신 차리고 있을 만했기 때문이다.
“예.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류청우는 빙긋 웃더니 손에 든 맥주를 쭉 들이켰다.
‘대체 몇 캔이나 마신 거지.’
어차피 거의 취한 것 같진 않으니 상관은 없지만, 분명 여섯 캔 이상은 마신 것 같았다.
주량이 어마어마한 건 분명했다.
“음, 활동하는 건 좀 어때?”
“저야 뭐, 할 만합니다.”
“하하, 문대는 언제나 침착하네.”
류청우는 다 마신 맥주캔을 잘 접어서 내려놨다. 표정이 영 씁쓸해 보였다.
‘왜 또 그러냐.’
1위까지 했는데 또 무슨 걱정이 생겼는지 얼굴이 영 안 좋았다.
“나도 너처럼 좀 침착한 성격이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형 충분히 침착하신 것 같은데요?”
끝나고 근 2달간 이놈이 취했던 태도를 생각하면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류청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안 좋은 것 같다. 오늘 1위 할 때 소감 제대로 말 못 한 것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그래.”
“……?”
이건 더 뜬금없다.
‘1위 소감은 이미 난장판이었구만 무슨.’
“형 오디션 때부터 리더 잘하셨는데요. 그런 문제 없으셨던 것 같은데.”
“연장자라 리더를 한 거지, 내가 잘해서 했던 건 아니야. 팀이 제대로 굴러간 적도… 그래, 우리 같이했던 2차 때 빼면 없지.”
그거야말로 솔직히 류청우 탓은 아니지 않나.
‘그냥 네가 팀 운이 더럽게 없었던 거지.’
나는 떨떠름하게 맥주를 하나 더 땄다.
“ 때야 뭐, 단기간에다 서바이벌이라 제대로 굴러간 팀이 더 드물었죠. 그리고 어쨌든 테스타는 잘 굴러가는 중인 것 같은데요.”
“…잘 굴러가다가 내 실수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인 거야.”
류청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내가 이 팀에 기여할 만한 포지션이 리더 정도라 맡기는 했는데… 좀, 한계 같기도 하다.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뭘 참는 성격도 아니고.”
“흠.”
어쩐지 테스타가 결성된 뒤로 류청우의 태도가 더 보수적이고 온건해졌다 했더니,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2차 때 생각해 보면, 원래는 좀 더 도전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지.’
아주사 때 겪은 갈등들이 이상한 학습효과를 줬나 보다.
그 와중에도 류청우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지간히 속이 텄던 모양이다.
“아주사 때도 좀 고민했었지. 여기 나온 게 정말 맞는 선택이었나 하는…….”
“…….”
그러고 보니 금메달까지 땄으면서 양궁 그만두고 굳이 망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이유가 없지 않았나.
“어쩌다 나오게 되셨는데요?”
“아, 이건 다들 모르겠구나. 아주사 작가 중에 친척이 있었거든.”
“……!”
잠깐.
“설마 류서린 작가요?”
“맞아. 성이 똑같아서 바로 알았나?”
류청우가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
“그 누나가 하도 부탁해서… 나도 어차피 새 진로를 이쪽으로 잡았으니까, 나와본 거였지.”
식은땀이 났다.
‘이거 지금 걸리면 스캔들감 아닌가…?’
어차피 오디션 망했을 때야 상관없겠지만, 지금 시즌3는 미친 듯이 대흥행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근데 데뷔한 멤버 중 하나가 작가 친적이다?
‘심지어 류청우는 우호적인 편집만 쭉 받았지.’
이거 완전… 스캔들인데.
류청우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너희한테 피해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먼 친척이고 거의 안면도 없었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 거라… 섭외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마 형식만 따지자면 박문대가 받았던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사가 뜰 때는 그런 걸 친절하게 표기해 줄 리가 없었다.
그냥 ‘테스타 멤버, 사실은 아주사 작가의 친척이었다’, ‘섭외된 친인척이 데뷔까지… 아주사의 그림자’ 같은 타이틀이 나오겠지.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음, 그것도 걱정 마. 너한테 처음 말해보는 거니까.”
류서린 작가 쪽에서도 1화 방영되고 반응 보자마자 전화해서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딱 이 시기만 넘기면 된다.’
다다음 시즌까지 나올 때쯤, 그러니까 한… 이삼 년 지난 후에 터지면 별일 없이 넘어가겠지.
그리고 방송 내내 안 터지고 아직까지 안 터졌다면 다들 아직은 모른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 다시 한번 류청우에게 확인했다.
“작가분하고 얼마나 먼 친척인데요?”
“음… 같은 풍산 류씨라는 것 빼고는… 몇 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정도.”
“…….”
그 정도면, 여차해도 친척까지는 아니라고 변명도 가능하겠다. 그냥 본가가 똑같아서 섭외가 용이했다로 풀 수 있겠군.
약간 긴장이 풀렸다.
다음 상태이상이 뭐가 뜰지 모르겠지만, 팀에 악재가 오면 좋을 리 없다는 건 확실해서 그런지 좀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생각도 슬슬 든다.
‘그러고 보니, 나도 풍산 류씨였던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별로 신경 안 써서 확신은 못 하겠는데,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아마 류청우와 항렬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류건우, 류청우. 흠.
‘우(佑)자 돌림이겠군.’
뭐 아무렴 어떤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상하게 너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됐네… 원래 동생들한테는 이런 이야기 안 하는데 말이야. 하하.”
“…….”
연상인 걸 본능적으로 알았나.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일단 섭외가 들어갔다는 건, 가수 준비는 이미 하고 계셨단 말이군요.”
“응. 양궁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류청우가 어깨를 살짝 돌리는 시늉을 했다.
“어릴 때 교통사고가 좀 크게 났었는데… 뭘 잘못 건드렸는지 다 크고 나서야 후유증이 생기더라고, 힘을 주면 손이 떨려.”
“…….”
“그래서 재작년인가 그만두고…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새로 진로 탐색해본 거지. 하하.”
이미 극복한 사람 특유의 여유가 묻어나는 태도였다.
‘끝난 일이란 뜻이군.’
나도 그냥 고개나 끄덕였다.
그때, 발 옆에서 누군가 들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크흡.”
“……??”
“죄송해여. 들었습니다…….”
옆에 엎어져서 자던 차유진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에 누워 있던 김래빈도 코를 훌쩍이며 몸을 움직였다.
“어쩌다 보니 정신을 차려서… 죄송합니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고…….”
“아니에요. 크흥”
“…….”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두 놈은 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류청우는 잠시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곧 웃어넘겼다.
“거실 한복판에서 이야기한 내 잘못이지 뭐.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자.”
하지만 두 놈은 주춤주춤 말을 더 남겼다.
“형.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청우 형 멋져요. 아이돌 잘했어요!”
“……음.”
류청우는 복잡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툭 말을 얹었다.
“이제 말 잘 들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안 참고 좀 편하게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리더.”
“…네가 할 생각은 없어?”
“예? 당연히 중도 포기해서 망할 걸요.”
“…….”
내가 리더를? 분명 하다가 빡쳐서 한두 놈은 손절해 버릴 것이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류청우는 말문이 막힌 얼굴이 됐다. 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휴.”
하지만 곧, 한결 편한 태도로 툭 대답했다.
“…그래. 잘 알겠다. 리더 계속해 볼게.”
“와!”
“대신 너희도 내가 쓸데없는 일 하려고 하면 말려. 이제 나도 무조건 브레이크만 거는 건 못하겠다.”
“그럼요.”
류청우는 ‘나 참’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곧 기지개를 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속내를 털어놔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거실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쓰러진 인간 몸들만 남았다.
“…….”
“…들어갈까?”
“예.”
깨면 알아서 들어가겠지. 놔두자.
* * *
테스타가 1위의 기쁨과 회포를 풀고 난 직후.
팬들은 테스타의 첫 1위가 기사로 뜨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까지 참았다. 테스타의 좋은 소식을 팀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계속 문의는 넣자
-눈치 있으면 알아서 준비하겠죠
팬들은 각자 전화와 메일로 조용히 피드백 요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결국 며칠이 지나도 아무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소속사 이 새끼들 정신 못 차리네?
수면 밑에서 부글부글 끓던 여론은 결국 폭발했고, 팬들은 결국 소속사를 향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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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 멤버 한 명에 결부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멤버의 개인 팬 커뮤니티에서까지 연합하여 규모는 미친 듯이 불어났다.
성명서가 안 된다면 다음 수단으로 팩스와 포스트잇 시위까지 차근히 준비 중인 팬들에게, 다행스럽게도 소속사의 응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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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선언문이었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고 너희가 오버한 거야!’라는 뉘앙스가 살짝 느껴지는 것에 짜증을 느끼는 팬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빠른 시일 내로 뭘 해보겠다는 이야기에 분위기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역시 X소는 패야 말을 듣는가…
-솔직히 니들 지금 이 난리 안 부렸으면 2집 때야 팬덤명 나왔을 거라고 떠들고 있지?ㅋㅋ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함ㅇㅇ
-응원봉도 응원봉이지만 앞으로 제발 이젠 애들 컴백 일정 거지같이 잡지 마. 아무리 돈이 좋아도 애들 그만 쥐어짜라고.
-다음에 또 한 달 내로 컴백 이 지랄하는 기사 뜨면 시위 트럭 보낼 테니 그렇게 알아라ㅋㅋ
소속사는 이후 ‘팬들이 직접 선택하는 팬덤 이름’ 같은 아주사 스타일이벤트를 해볼 것처럼 슬쩍 기사로 운을 띄워봤지만, 팬들의 공격에 침몰했다.
-제발! 그만! 시켜! 우리 이제 투표 주식 다 지겨움 그냥 테스타가 하자는 거 시켜줘ㅠㅠ
-아주사 망령 이제 그만…
-1위 곡 컨셉 뚝딱 만드는 대천재 아이돌들 두고 왜 자꾸 팬들한테 시키려고 해 우린 그냥 애들 하는 거 보고 시시덕거릴래요
-그래 우린 돈이나 쓸래 빨리 굿즈나 찍어줘
다행히 소속사는 더 간 보지 않고 열심히 일정을 준비했다.
그래서 그 주 금요일.
헐레벌떡 이벤트 배너가 떴다.
-와 드디어
-ㅠㅠㅠㅠ우리 애들도 이젠 덥라이브한다!!
-존버 승리!
-미친 라이브로 말하는 큰세진 아아아아ㅠㅠ
-제발 개노잼이라도 좋으니까 길게 하자
-티원 놈들 그래도 대기업이라고 일을 할 줄은 아네ㅠㅠ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테스타를 음방에서만 간신히 봤던 팬들은 잔뜩 흥분했다.
아직 예고 동영상 하나 올라온 테스타의 W앱 채널은 벌써부터 구독이 우수수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오후 3시 정각.
테스타가 W라이브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