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8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0화
제작진까지 다 같이 극도로 조심하면서 쭈그려 앉아 여름 철새 근처까지 이동한 결과, 드디어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근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아, 여기서요?”
“그럼~ 더 접근 안 하는 게 좋아요.”
육안으로 새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던 것이다.
옆에서 카메라를 들어보던 류청우가 난감하게 중얼거렸다.
“음, 차라리 쏴서 맞추는 거면 하겠는데…….”
“…?”
양궁 금메달 출신만 할 법한 발상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 덜컥덜컥 카메라를 만지던 차유진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저거 초점도 안 맞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이미 개판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받은 카메라를 들었다.
‘옛날 생각나는군.’
돈이 없었다 보니 동아리 공용장비 대여해서 찍고 다녔었다. 돈 좀 만진 다음에는 졸업하는 동아리 선배 중고 장비 싸게 받았고.
나는 보급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노출값을 잡았다.
‘어디… 좀 당기면.’
조작감과 해상도가 그렇게 구리진 않았다. 대충 쓸 만한 게 몇 컷 나온다.
배가 하얀 남색의 작은 새였다. 성격이 포악한지 부리로 나뭇가지를 던지고 있다.
…근데 대체 저 조류가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카메라 기종을 맞추는 게 편하겠군.’
나는 한숨을 참고,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 작게 물었다.
“찍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종인지 모르겠습니다.”
“…?! 아, 아하~ 그래요?”
조류 연구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빠르다며 칭찬을 주절거렸다.
‘…이 사람 방금 놀란 것 같은데?’
하지만 뭘 더 생각하기도 전에 다른 놈들이 끼어들었다.
“오~ 역시 문대!”
“저도 보고 싶습니다.”
“어, 어때?”
나름대로 조용히 하겠답시고 몰려서 수군거리는 놈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자, 신나서 자기들끼리 보면서 감탄하기 시작했다.
“자, 잘 나왔다. 귀, 귀여워.”
“역시 문대야 금손이지.”
“멋있어요!”
“선생님, 이건 무슨 새인가요?”
조류 연구가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 친구들의 목표입니다!”
“아하!”
“철새 촬영이 끝나면 사진을 보며 알아볼 시간을 가질 겁니다~ 자, 그럼 또 이동해 볼까요~”
“예?”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다양한 곳에서 여러 철새를 찍어봅시다!”
“넵…….”
그리고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망할 것 같군.’
재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분위기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전히 내 사진을 들여다보던 선아현이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여, 여기.”
“음.”
나는 카메라를 받아들다가, 별생각 없이 선아현을 한 컷 찍어봤다.
“…!”
“잘 나온 것 같은데.”
선아현은 확실히 자연광을 잘 받았다. 나중에 갈 때 받아다가 SNS에 업로드나 해야겠군.
“나, 나도…….”
“마음만으로 고맙다. 이동하자.”
“으, 으응….”
슬슬 도로 졸리기 시작했다. 촬영에 그나마 가졌던 기대도 없어진 탓인 듯했다.
‘이대로 걷다 끝인가.’
…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나.
“자… 저기 보이는 새는 좀 더 접근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봅시다.”
“넵!”
조류 연구가의 지시에 따라 물가의 커다란 허연 새에게 접근한 지 5초 뒤.
갑자기 새가 퍼덕거리며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
“어어어억.”
“자, 잠깐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쫓아오는 새를 피해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새는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차유진과 김래빈을 쫓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X발.’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인가.
“선생님!! 이거 어떡해요!!”
“HELP!!”
“아니, 보통 새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이런 일은 드문데… 신기하네요!”
“으아아아!!”
차유진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새를 피해 굴렀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새가… 달리네?
“…….”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이거 뻥이죠?”
“예?”
“저거 새 아니잖아요.”
그 순간, 차유진을 덮친 큰 새가 외쳤다.
“잡았다!”
“…!!”
순간, 새 모가지가 꺾이며, 안에서 사람 얼굴이 튀어나왔다.
“히이익!!”
탈이 리얼해서 좀 징그러웠다. 차유진의 반응이 완전히 이해가 갔다.
“짠! , 곽정원의 Prank 쇼였습니다!”
“흐어어어…….”
차유진이 길바닥에서 녹아내렸다.
모가지 따인 새 탈을 뒤집어쓴 여성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이고, 어떡해!”
* * *
잠시 뒤, 히죽히죽 웃는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저수지 근방 카페로 이동했다.
MC는 세팅된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이런 쇼 국룰이지.’
“아니, 제일 겁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라 쫓아갔는데… 둘 다 너무 놀란 것 같아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무서워요.”
김래빈은 넋 나간 표정으로 사과를 받았지만, 차유진은 여전히 MC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아서 멤버들의 뒤로 숨었다.
다만 내 옷은 잡아당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이 졸렸다.
‘공포영화는 잘 보더니.’
역시 체험은 또 다른 이야기였나 보다.
어쨌든, MC는 충분히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했는지 촬영 진도를 뺐다.
“이제 다들 깨달으셨겠지만, 저희 은 사실 본격 깜짝 카메라 방송이었습니다~”
“아아아…….”
신음과 함께 박수를 쳐주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껄껄 웃었다.
“그, 그럼 원래 1화는……?”
“그 선공개화로 시청자분들까지 낚은 거죠! 사실 도 그냥 줄임말이고요, 본래 타이틀은… 입니다!”
“……?!”
선아현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나도 혀를 깨물뻔했다.
‘저건 들어본 이름 같다.’
하필 이름까지 바꿔서 낚이는 최초 출연자가 될 줄이야.
“자, 의 진정한 타이틀, 을 처음 체험해 보신 느낌 어떠신가요?”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 현수막! 그거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거죠!”
“너무 걸어서 왜 그럴까 고민했는데!”
“오리걸음도 필요 없던 건가요?”
“아하하! 다 맞아요~ 다 맞아~”
MC가 웃으며 즐겁게 커피를 들이켰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한마디 얹었다.
“조류 연구가분도 가짜셨나요.”
“당연히! 우리 멋진 연기자분이시죠~”
“어쩐지 이상했어요! 계속 뱁새 이야기만 하시더라고!”
큰세진의 말에 제작진까지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애초에 여기 겨울 철새 찍는 곳이에요~ 여름 철새 찍으러 굳이 여기까지 안 와. 걔네 퍼져서 살아. 경기도에도 있어!”
“아아…….”
류청우가 저렇게 대놓고 민망함에 고통스러워하는 꼴은 또 처음 본다.
나는 묵묵히 음료를 마셨다. 아니면 나도 저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속사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MC는 이후로 테스타의 앨범과 활동에 대해 꽤 길게 잡담을 이어줬다.
류청우는 괴로워하면서도 홍보를 위해 성실하게 대답했다.
‘내가 리더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역시 의무만 있는 감투는 피하고 봐야 했다.
어쨌든, 그 잡담 후에는 타이틀곡 중 하나도 촬영할 수 있었다.
시골 감성 카페에서 공연한 뒤 스탭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나름대로 독특한 경험이었다.
“세상에, 너무 멋있어요! 역시 오디션 합격자네!”
“후, 감사합니다!”
사방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밝게 웃었다.
“오늘 프로그램 스타트 재밌게 끊어줘서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재밌었습니다!”
마무리는 훈훈했다. 예능인데 안 훈훈하게 끝낼 수는 없겠다만.
막판 가서는 차유진도 정신 차리고 꾸벅 인사는 했다.
“새 무서워요.”
“하하하!”
MC는 농담인 줄 알고 웃었겠지만, 차유진은 깨끗한 진심일 것이다.
‘뭐… 꼬투리 잡힐 정도는 아니니 상관없겠지.’
저게 말한다고 눈치껏 할 놈도 아니니까.
그때, MC가 제작진으로부터 신호를 받더니 손바닥을 치며 말을 이었다.
“자, 여러분! 원래 드리기로 했던 일당은 그대로 드립니다~”
“네?”
“비싼 점심밥! 여러분 일당만큼 잔~ 뜩 가져왔습니다~”
“……어어어!!”
“헐!!”
불판과 한우가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악감정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소고기의 위력이었다.
“많이 드셔요!”
“가,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고기 앞에 앉았다. 이것도 낚시는 아닌지 의심하는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우 등심은 최근 반년 동안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괜찮네.’
출연료까지 받은 걸 생각하면 알찬 스케줄이었다.
‘직접 당한 차유진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유진이 속삭였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지.”
배부른 차유진의 진지한 말에 맞장구를 치자니, 이 모든 촌극이 어떤 예능으로 구성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모르겠다.’
욕먹지만 않으면 됐다. 나는 소나 입으로 가져갔다.
앞에서 매니저가 제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멤버들에게 보내고 있었지만, 선아현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요일 오후.
테스타의 음방 2주 차가 끝났다.
팬들은 슬슬 MV에 나오지 않은 의상들이 음악방송과 행사 등지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뮤직밤 연핑크 하복은 전설이다… (캡처)
-발카를 뚫고 나오는 검은 야구복의 박력을 보고 얼른 테스타에 입덕하세요 여러분 지금 입덕하면 주식 살 필요 없이 덕질 가능 (동영상)
-테스타 박문대 2X0630 오성 기업행사 (사진)
오성 베어스 야구 유니폼 입었어요ㅠㅠ 등번호도 11로 야무지게 챙겼다!
일 못하는 소속사에 대한 불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고 큰 사건 없이 컨텐츠 많은 활동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만 예능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다.
-리얼리티 좋은데 대형 예능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토크쇼 같은데 나와서 귀여움 받는 게 보고 싶어….
-아 우리 애들 다 캐릭터 있어서 나오기만 하면 대박인데 왜 소식이 없냐ㅠㅠ
이 상황에 웬 듣도 보도 못한 예능에서 ‘테스타’의 출연 소식을 기사로 뿌린 것이다.
[국민 주식 테스타, 첫 예능은 TVC 신작 ]
[의 첫 번째 게스트는? 의 테스타]
-??
-이게 무슨 예능인데요?
-오보인가
-신작?
하지만 곧 위튜브로 선공개된 1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분노로 SNS가 가득 찼다.
-ㅋㅋㅋㅋㅋ T1 이 새끼들 지들 프로그램 홍보용으로 우리 애들 쓰려는 거네
-1화 X노잼이던데 미쳤나?
-예능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작으로 이미 입소문남ㅠㅠ
-진짜 일 못 한다… 하…
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다. 공개적으로 한탄해 봐야 쓸데없이 어그로들에게 먹잇감만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 아래에서만 검색이 안 되는 한탄글이 넘치고, 기사 댓글에서는 이런 반응이 대세가 되었다.
-와! 테스타가 나와서 이 프로그램도 흥하겠다!
-테스타 드디어 리얼리티가 아니라 다른 프로에서도 보겠네
-본방사수 갑니다~
물론 이 일은 차곡차곡 적립되어서, 만일의 경우 활화산처럼 터질 것이다.
그러나 팬들의 열받음이 가시기 전, 그날 밤에 2화 선공개가 떴다.
============================
[테스타 나오는 2화 선공개]
: 떴다 (링크)
========================
-벌써 뜸?
-이거 목요일 방송 아니야?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링크를 클릭하자, 이런 제목이 떴다.
[미안하다! 사실 이름도 1화도 낚시였다! | 낚는데 진심인 PRANK쇼 | 첫 번째 손님은 테스타! | 2화 선공개]
썸네일은 저세상 감성의 현수막을 보고 굳은 테스타의 멤버들이었다.
-???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황급히 재생을 클릭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0화
제작진까지 다 같이 극도로 조심하면서 쭈그려 앉아 여름 철새 근처까지 이동한 결과, 드디어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근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아, 여기서요?”
“그럼~ 더 접근 안 하는 게 좋아요.”
육안으로 새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던 것이다.
옆에서 카메라를 들어보던 류청우가 난감하게 중얼거렸다.
“음, 차라리 쏴서 맞추는 거면 하겠는데…….”
“…?”
양궁 금메달 출신만 할 법한 발상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 덜컥덜컥 카메라를 만지던 차유진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저거 초점도 안 맞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이미 개판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받은 카메라를 들었다.
‘옛날 생각나는군.’
돈이 없었다 보니 동아리 공용장비 대여해서 찍고 다녔었다. 돈 좀 만진 다음에는 졸업하는 동아리 선배 중고 장비 싸게 받았고.
나는 보급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노출값을 잡았다.
‘어디… 좀 당기면.’
조작감과 해상도가 그렇게 구리진 않았다. 대충 쓸 만한 게 몇 컷 나온다.
배가 하얀 남색의 작은 새였다. 성격이 포악한지 부리로 나뭇가지를 던지고 있다.
…근데 대체 저 조류가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카메라 기종을 맞추는 게 편하겠군.’
나는 한숨을 참고,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 작게 물었다.
“찍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종인지 모르겠습니다.”
“…?! 아, 아하~ 그래요?”
조류 연구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빠르다며 칭찬을 주절거렸다.
‘…이 사람 방금 놀란 것 같은데?’
하지만 뭘 더 생각하기도 전에 다른 놈들이 끼어들었다.
“오~ 역시 문대!”
“저도 보고 싶습니다.”
“어, 어때?”
나름대로 조용히 하겠답시고 몰려서 수군거리는 놈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자, 신나서 자기들끼리 보면서 감탄하기 시작했다.
“자, 잘 나왔다. 귀, 귀여워.”
“역시 문대야 금손이지.”
“멋있어요!”
“선생님, 이건 무슨 새인가요?”
조류 연구가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 친구들의 목표입니다!”
“아하!”
“철새 촬영이 끝나면 사진을 보며 알아볼 시간을 가질 겁니다~ 자, 그럼 또 이동해 볼까요~”
“예?”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다양한 곳에서 여러 철새를 찍어봅시다!”
“넵…….”
그리고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망할 것 같군.’
재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분위기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전히 내 사진을 들여다보던 선아현이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여, 여기.”
“음.”
나는 카메라를 받아들다가, 별생각 없이 선아현을 한 컷 찍어봤다.
“…!”
“잘 나온 것 같은데.”
선아현은 확실히 자연광을 잘 받았다. 나중에 갈 때 받아다가 SNS에 업로드나 해야겠군.
“나, 나도…….”
“마음만으로 고맙다. 이동하자.”
“으, 으응….”
슬슬 도로 졸리기 시작했다. 촬영에 그나마 가졌던 기대도 없어진 탓인 듯했다.
‘이대로 걷다 끝인가.’
…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나.
“자… 저기 보이는 새는 좀 더 접근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봅시다.”
“넵!”
조류 연구가의 지시에 따라 물가의 커다란 허연 새에게 접근한 지 5초 뒤.
갑자기 새가 퍼덕거리며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
“어어어억.”
“자, 잠깐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쫓아오는 새를 피해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새는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차유진과 김래빈을 쫓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X발.’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인가.
“선생님!! 이거 어떡해요!!”
“HELP!!”
“아니, 보통 새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이런 일은 드문데… 신기하네요!”
“으아아아!!”
차유진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새를 피해 굴렀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새가… 달리네?
“…….”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이거 뻥이죠?”
“예?”
“저거 새 아니잖아요.”
그 순간, 차유진을 덮친 큰 새가 외쳤다.
“잡았다!”
“…!!”
순간, 새 모가지가 꺾이며, 안에서 사람 얼굴이 튀어나왔다.
“히이익!!”
탈이 리얼해서 좀 징그러웠다. 차유진의 반응이 완전히 이해가 갔다.
“짠! , 곽정원의 Prank 쇼였습니다!”
“흐어어어…….”
차유진이 길바닥에서 녹아내렸다.
모가지 따인 새 탈을 뒤집어쓴 여성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이고, 어떡해!”
* * *
잠시 뒤, 히죽히죽 웃는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저수지 근방 카페로 이동했다.
MC는 세팅된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이런 쇼 국룰이지.’
“아니, 제일 겁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라 쫓아갔는데… 둘 다 너무 놀란 것 같아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무서워요.”
김래빈은 넋 나간 표정으로 사과를 받았지만, 차유진은 여전히 MC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아서 멤버들의 뒤로 숨었다.
다만 내 옷은 잡아당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이 졸렸다.
‘공포영화는 잘 보더니.’
역시 체험은 또 다른 이야기였나 보다.
어쨌든, MC는 충분히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했는지 촬영 진도를 뺐다.
“이제 다들 깨달으셨겠지만, 저희 은 사실 본격 깜짝 카메라 방송이었습니다~”
“아아아…….”
신음과 함께 박수를 쳐주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껄껄 웃었다.
“그, 그럼 원래 1화는……?”
“그 선공개화로 시청자분들까지 낚은 거죠! 사실 도 그냥 줄임말이고요, 본래 타이틀은… 입니다!”
“……?!”
선아현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나도 혀를 깨물뻔했다.
‘저건 들어본 이름 같다.’
하필 이름까지 바꿔서 낚이는 최초 출연자가 될 줄이야.
“자, 의 진정한 타이틀, 을 처음 체험해 보신 느낌 어떠신가요?”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 현수막! 그거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거죠!”
“너무 걸어서 왜 그럴까 고민했는데!”
“오리걸음도 필요 없던 건가요?”
“아하하! 다 맞아요~ 다 맞아~”
MC가 웃으며 즐겁게 커피를 들이켰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한마디 얹었다.
“조류 연구가분도 가짜셨나요.”
“당연히! 우리 멋진 연기자분이시죠~”
“어쩐지 이상했어요! 계속 뱁새 이야기만 하시더라고!”
큰세진의 말에 제작진까지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애초에 여기 겨울 철새 찍는 곳이에요~ 여름 철새 찍으러 굳이 여기까지 안 와. 걔네 퍼져서 살아. 경기도에도 있어!”
“아아…….”
류청우가 저렇게 대놓고 민망함에 고통스러워하는 꼴은 또 처음 본다.
나는 묵묵히 음료를 마셨다. 아니면 나도 저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속사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MC는 이후로 테스타의 앨범과 활동에 대해 꽤 길게 잡담을 이어줬다.
류청우는 괴로워하면서도 홍보를 위해 성실하게 대답했다.
‘내가 리더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역시 의무만 있는 감투는 피하고 봐야 했다.
어쨌든, 그 잡담 후에는 타이틀곡 중 하나도 촬영할 수 있었다.
시골 감성 카페에서 공연한 뒤 스탭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나름대로 독특한 경험이었다.
“세상에, 너무 멋있어요! 역시 오디션 합격자네!”
“후, 감사합니다!”
사방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밝게 웃었다.
“오늘 프로그램 스타트 재밌게 끊어줘서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재밌었습니다!”
마무리는 훈훈했다. 예능인데 안 훈훈하게 끝낼 수는 없겠다만.
막판 가서는 차유진도 정신 차리고 꾸벅 인사는 했다.
“새 무서워요.”
“하하하!”
MC는 농담인 줄 알고 웃었겠지만, 차유진은 깨끗한 진심일 것이다.
‘뭐… 꼬투리 잡힐 정도는 아니니 상관없겠지.’
저게 말한다고 눈치껏 할 놈도 아니니까.
그때, MC가 제작진으로부터 신호를 받더니 손바닥을 치며 말을 이었다.
“자, 여러분! 원래 드리기로 했던 일당은 그대로 드립니다~”
“네?”
“비싼 점심밥! 여러분 일당만큼 잔~ 뜩 가져왔습니다~”
“……어어어!!”
“헐!!”
불판과 한우가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악감정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소고기의 위력이었다.
“많이 드셔요!”
“가,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고기 앞에 앉았다. 이것도 낚시는 아닌지 의심하는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우 등심은 최근 반년 동안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괜찮네.’
출연료까지 받은 걸 생각하면 알찬 스케줄이었다.
‘직접 당한 차유진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유진이 속삭였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지.”
배부른 차유진의 진지한 말에 맞장구를 치자니, 이 모든 촌극이 어떤 예능으로 구성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모르겠다.’
욕먹지만 않으면 됐다. 나는 소나 입으로 가져갔다.
앞에서 매니저가 제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멤버들에게 보내고 있었지만, 선아현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요일 오후.
테스타의 음방 2주 차가 끝났다.
팬들은 슬슬 MV에 나오지 않은 의상들이 음악방송과 행사 등지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뮤직밤 연핑크 하복은 전설이다… (캡처)
-발카를 뚫고 나오는 검은 야구복의 박력을 보고 얼른 테스타에 입덕하세요 여러분 지금 입덕하면 주식 살 필요 없이 덕질 가능 (동영상)
-테스타 박문대 2X0630 오성 기업행사 (사진)
오성 베어스 야구 유니폼 입었어요ㅠㅠ 등번호도 11로 야무지게 챙겼다!
일 못하는 소속사에 대한 불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고 큰 사건 없이 컨텐츠 많은 활동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만 예능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다.
-리얼리티 좋은데 대형 예능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토크쇼 같은데 나와서 귀여움 받는 게 보고 싶어….
-아 우리 애들 다 캐릭터 있어서 나오기만 하면 대박인데 왜 소식이 없냐ㅠㅠ
이 상황에 웬 듣도 보도 못한 예능에서 ‘테스타’의 출연 소식을 기사로 뿌린 것이다.
-??
-이게 무슨 예능인데요?
-오보인가
-신작?
하지만 곧 위튜브로 선공개된 1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분노로 SNS가 가득 찼다.
-ㅋㅋㅋㅋㅋ T1 이 새끼들 지들 프로그램 홍보용으로 우리 애들 쓰려는 거네
-1화 X노잼이던데 미쳤나?
-예능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작으로 이미 입소문남ㅠㅠ
-진짜 일 못 한다… 하…
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다. 공개적으로 한탄해 봐야 쓸데없이 어그로들에게 먹잇감만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 아래에서만 검색이 안 되는 한탄글이 넘치고, 기사 댓글에서는 이런 반응이 대세가 되었다.
-와! 테스타가 나와서 이 프로그램도 흥하겠다!
-테스타 드디어 리얼리티가 아니라 다른 프로에서도 보겠네
-본방사수 갑니다~
물론 이 일은 차곡차곡 적립되어서, 만일의 경우 활화산처럼 터질 것이다.
그러나 팬들의 열받음이 가시기 전, 그날 밤에 2화 선공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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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떴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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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뜸?
-이거 목요일 방송 아니야?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링크를 클릭하자, 이런 제목이 떴다.
썸네일은 저세상 감성의 현수막을 보고 굳은 테스타의 멤버들이었다.
-???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황급히 재생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