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화
엄밀히 말해, 박문대의 춤은 경탄스러울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군무에 들어가면 안 튀겠구나 싶은 정도.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군무에 낄 수 있을 만큼의 보는 즐거움은 갖췄다는 것이다.
‘당장 저게 데뷔곡이라고 쳐도….’
얼추 다른 인원에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발전이었다!
안무가는 예상 못 한 상황에 약간 흥분했지만, 곧 냉정해졌다.
‘이틀 만에 갑자기 없던 재능이 생길 순 없지.’
그러니 머리를 좀 썼다면, 딱 첫 도입의 임팩트를 위해 극 초반만 어떻게든 맞추려고 했을 터다.
‘조금만 있으면 도로 율동으로 돌아갈….’
“…….”
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박문대는 처음의 그 수준을 그대로 끌고 후렴에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후렴에서 완급조절이 더 괜찮아졌다.
대다수의 하급 클래스 참가자처럼 사지 끝을 흐느적대지 않는다. 관절 주변을 대충 뭉개 추는 게 아니라 확실히 각을 잡는다.
-오늘 무대 위에 빛나는 건… 바로 나!
게다가 노래도 단 한 부분 놓치거나 생략하는 부분 없이 정직히 다 부르고 있다.
기교는 부족하지만, 음 이탈 한 번, 플랫 한 번 없이 깨끗하고 울림 좋은 소리였다.
안무가의 옆에서 심사위원 뮤디가 경쾌하게 펜을 두드렸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인 것 같았는데, 그만큼 마음에 쏙 든다는 뜻일 것이다.
보컬에는 큰 조예가 없는 그의 귀에도 지금까지 참가자 중에 박문대가 제일 나았다.
-잘 봐, 이 순간… 내가 제일 빛나는걸!
아니, 훌륭한 수준이다.
깨끗한 음색이 귀에 콱콱 들어온다.
‘문외한이 저 춤을 따라가면서 노래를 안정적으로 부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안무가는 무심코 온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그는 ‘잘하는, 전도유망한, 가능성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확실히 구분해서 대우했다.
그리고 지금 안무가의 내면에서, 춤에 별 재능이 없어 보여 떨어졌던 박문대의 등급이 재조정됐다.
‘자기 장점이 노래니까, 안무 중에 노래를 안정적으로 불러야 한다는데 신경 쓰느라 그동안 안무는 익히는 것에 급급해 보였던 건가.’
하지만 그래도 위화감이 사라지진 않긴 했다.
‘…아무 계기 없이 이틀 만에 춤이 되긴 힘든데.’
그 와중에 박문대는 기어코 2절 마무리까지 템포와 힘을 잃지 않고 곡을 끝마쳤다.
심사위원석은 고요했다.
그는 의아함과는 별개로, 문득 긍정적인 감정이 머리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기특함이었다.
“후욱, 후, 감사합니다,”
곡이 끝난 직후, 박문대는 체력을 다 쥐어짜 냈는지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과감히 선곡을 지르고 표정 변화도 없던 첫 평가 때의 뻔뻔함 대신, 열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참… 노력했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얼굴.
그런 간극은 보는 사람을 괜히 울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안 그래도 안무가의 옆에서는 뮤디가 금방이라도 칭찬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정도는 덜하겠지만 다른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안무가는 짐작했다.
하지만 자기만큼 이 임팩트를 방송적으로 살릴 사람은 없었다. 보름간 댄스 클래스에서 갈군 게 자신이니까.
그래서 안무가는 영린에게 첫 평가를 주라는, 제작진의 암묵적인 눈치를 일부러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먼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문대야.”
“후우…, 예.”
“잘했어.”
“…….”
간단해서 더 확실한 칭찬이었다.
박문대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보름 내내 무덤덤했던 그 참가자답지 않은, 개구지게 보일 만큼 확실한 미소였다.
* * *
역시 좋은 반전은 승리한다.
이 공식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에서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숨이 찬 와중에도, 안도감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심사위원들에게 괜찮은 리액션이 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 기특하다.”
“문대 씨 오늘 뭐, 흠잡을 곳이 없네요~”
“참 잘했어.”
돌연사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역시. 촬영 내내 모은 포인트 3점을 전부 춤에 투자한 건 정답이 맞았다.’
그래서 지금 춤은 C.
솔직히 가창을 키울 때보다 레벨업의 체감이 컸다.
머리로 알아도 몸이 따라와 주지 않던 것이 순식간에 체득되는 느낌이었다.
쓸 수 없던 근육을 갑자기 쓸 수 있게 되는 감각도 전신에 선명했다.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상급은 못 가도 중급 클래스 참가자와 비슷할 것이다.
심지어 첫 일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안무만 외웠으니 툭 치면 튀어나올 만큼 안무 숙달도 됐다.
이 곡으로 한정 짓는다면 웬만한 댄스 중급 클래스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걸 중간 과정 없이 한 번에 터뜨렸지.’
통편집만 되지 않는다면, 이걸로 일단 1차 탈락은 패스할 것이다.
차근차근 생존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상 질문도 나왔다.
“근데 문대야, 이틀간 대체 뭐 했어?”
안무가의 질문에 심사위원 뮤디가 입 모양으로 ‘왜요?’ 하고 되묻는 게 나한테도 보였다.
안무가가 그것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설명을 덧붙인다.
“춤이 갑자기 되네? 우리 안 본 이틀 만에 갑자기.”
“그게….”
나는 숨을 고르고, 일부러 살짝 어수룩하게 머리를 털었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잘하는 친구한테 물어봤습니다.”
“잘하는 친구?”
“선아현이요.”
말하자면, 연막이다.
상태창으로 레벨업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대신 감성적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마침 룸메이트에 댄스 상급 클래스인 선아현이 있었다.
또래한테 직접 실전성 넘치는 조언을 받으니 확 늘었다는 건 없는 사례도 아니니까, 그림상 한번 시도해 보았다.
-혹시 시간 괜찮아?
-나, 나한테 말한…?
-어. 미안한데 혹시 상황되면 이 동작 좀…….
-으, 응! 돼!
-…음, 그래.
게다가 선아현은 내가 대충 운만 뗐더니 반색하면서 너무 열심히 가르쳐 줬었다. 못 늘었으면 미안했을 정도였다.
거의 두 시간쯤 동작마다 쪼개가며 열정적으로 알려줘서 좀 당황했었다.
대충 구색만 맞추려던 거였는데…….
아무튼, 감 못 잡는 일반인 참가자를 도와준 이미지면 선아현한테도 손해는 절대 아닐 것이다. 나쁘지 않지 뭐.
상황을 좀 더 강화해 볼까. 쓸데없는 말을 더 덧붙여보자.
“…아현이 되게 친절해요.”
“야, 그럼 난 안 친절하다는 소리야?”
안무가가 곧바로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얼굴은 피식피식 웃고 있는 게, 장난치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충 잘 넘어간 느낌이다. 심사위원들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제가 첫 평가에서 말했던 내용, 기억하시나요?”
‘세인트유’의 영린이 부드럽게 물었다. 진짜 묻는 게 아니라 말문을 트는 문장인 것 같았다.
“춤에 숙련도가 아예 없어서, 앞으로 미션이 버거울 거라고 했는데.”
영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제가 잘못 말한 것 같네요. 박문대 씨는 버거워도 잘 이겨내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참 잘 봤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말 하나로 갑자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대답은 확실히 해야 하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좀 재밌군.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나는 이어지는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적당히 예상했다.
등급은 골드겠군.
* * *
다른 여타 아이돌 오디션 프로들처럼, 에서도 테마곡은 가장 먼저 대중에게 노출되는 컨텐츠였다.
그리고 테마곡의 분량은 당연히 잘하는 사람 위주로 돌아간다. 이 ‘잘하는 사람’의 기준을 가르는 것이 이번 등급이었다.
클래스 나누는 배지에서 대충 짐작했겠지만, 골드-실버-브론즈 순으로 상중하 등급이 나뉘었다.
“그러나 브론즈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참가자는… 방출입니다!”
저 소리는 매 시즌마다 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세 분류 위에 등급이 하나 더 있었다.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돌아온 , 이번 재상장 시즌 대표하는 플래티넘 등급을 받을 참가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플래티넘 등급이었다.
인터넷에서는 다단계부터 부모님 안부 묻는 게임까지 온갖 비유를 들어 이 등급을 밈(Meme)화했었지.
제작진의 작명 센스가 다이아까지는 가지 않아서 솔직히 약간 안심이다.
내 속마음이야 어쨌든 간에, 다른 참가자들은 다들 바짝 굳은 채로 MC의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참가자 각자의 앞에는 화려한 금속 상자가 배치됐고, 그 안에 등급을 상징하는 배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이미 등급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
실버는 26위부터였는데, 대충 상태창 수치만 봐도 이제 25위 안에는 들었다. 그리고 플래티넘 등급인 10명 안에 들기에는 수치가 부족했고.
그럼 골드지 뭐.
“참가자 여러분, 등급박스를 오픈해 주세요!”
나는 심드렁한 티를 내지 않으려 표정을 잡으며, 상자를 툭 열었다.
그리고 굳었다.
상자 안에는 홀로그램 반사처리를 한 백금빛 배지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플래티넘 등급 배지였다.
“…….”
내가 굳어 있자니, 옆에서 자신의 금색 배지를 들어 올리던 선아현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자기가 화들짝 놀랐다.?
“우, 우, 우와, 우와아!”
“뭐야? …헐, 대박!! 와 대박이야!!”
마찬가지로 골드 배지를 들고 있던 (전)20위 이세진이 내 상자 속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 등을 때리며 외쳤다.
“너 진짜 대박! 플래티넘!!”
언제부터 우리가 친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며 가며 인사만 하지 않았나? 그것도 저쪽이 먼저 해서 마지못해 했는데.
나는 심호흡 후에 상자에서 배지를 집어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내가 감격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플래티넘이지?’
시즌마다 두셋 정도는 실력의 절대치가 아니라 성장치를 보고 플래티넘 등급을 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리고 깨달았다.
‘…그 등급평가 순서!’
그것 때문에 중하위권에서 확 솟구쳐오를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튄 것 같았다.
춤이 회귀로 인한 예습과 밤샘 연습으로 확실히 숙지된 상태라, 동급 상태창들보다 괜찮았던 것도 한몫한 것 같고.
“……흠.”
나는 배지를 손에서 굴렸다.
눈도장 찍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어쩐지 뒷맛이 찝찝했다.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내가 다음 평가에서 한 치만 잘못해도 무슨 편집이 들어갈지 몰랐다. 첫 시즌에서도 한 참가자가 이런 비슷한 루트로 호되게 당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다음 평가까지 갈 것도 없었다. 지금 플래티넘 등급을 받는 게 편집점이 조금만 어긋나도 욕을 있는 대로 처먹을 것이다.
당장 저기서 날 노려보고 있는 최원길이 ‘솔직히, 완전하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어요’ 같은 인터뷰라도 하면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테지.
그렇다고 여기서 싫은 티를 내는 건 미친 짓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천히 배지를 들어서 몸에 달았다. 고개를 돌리자 플래티넘 배지를 달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이 보였다.
예상대로 첫 번째 평가 1, 2위는 둘 다 플래티넘. 그 외에도 소파에 앉았던 인원들은 대부분 다시 플래티넘을 받았다.
몇몇 골드로 떨어진 참가자들의 틈을 나와 10위권 참가자들이 파고든 모양이었다.
20위권은 나뿐이었다. 젠장.
‘집중포화가 쏟아지겠군.’
…아니, 좋게 생각하자. 실제로 좋은 일이니까.
‘분량은 많겠네.’
어차피 무대 직캠 뜰 때까지는 분량 싸움이었다.
초반에 무조건 탈락은 면하겠으니, 내 목표인 ‘1년 내로 데뷔’에는 착실히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 미친 비호감만 되지 않으면 된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꼬투리 잡힐 일을 더 줄이자.
미친 듯이 레벨업을 해서 춤 노래에 다 때려 박자.
“플래티넘 등급을 받은 참가자분들부터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그리고 일단은, 테마곡 무대에서 무조건 춤 스텟이 A인 참가자 주변은 피하자.
비교되면 답이 없으니까.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화
엄밀히 말해, 박문대의 춤은 경탄스러울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군무에 들어가면 안 튀겠구나 싶은 정도.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군무에 낄 수 있을 만큼의 보는 즐거움은 갖췄다는 것이다.
‘당장 저게 데뷔곡이라고 쳐도….’
얼추 다른 인원에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발전이었다!
안무가는 예상 못 한 상황에 약간 흥분했지만, 곧 냉정해졌다.
‘이틀 만에 갑자기 없던 재능이 생길 순 없지.’
그러니 머리를 좀 썼다면, 딱 첫 도입의 임팩트를 위해 극 초반만 어떻게든 맞추려고 했을 터다.
‘조금만 있으면 도로 율동으로 돌아갈….’
“…….”
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박문대는 처음의 그 수준을 그대로 끌고 후렴에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후렴에서 완급조절이 더 괜찮아졌다.
대다수의 하급 클래스 참가자처럼 사지 끝을 흐느적대지 않는다. 관절 주변을 대충 뭉개 추는 게 아니라 확실히 각을 잡는다.
-오늘 무대 위에 빛나는 건… 바로 나!
게다가 노래도 단 한 부분 놓치거나 생략하는 부분 없이 정직히 다 부르고 있다.
기교는 부족하지만, 음 이탈 한 번, 플랫 한 번 없이 깨끗하고 울림 좋은 소리였다.
안무가의 옆에서 심사위원 뮤디가 경쾌하게 펜을 두드렸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인 것 같았는데, 그만큼 마음에 쏙 든다는 뜻일 것이다.
보컬에는 큰 조예가 없는 그의 귀에도 지금까지 참가자 중에 박문대가 제일 나았다.
-잘 봐, 이 순간… 내가 제일 빛나는걸!
아니, 훌륭한 수준이다.
깨끗한 음색이 귀에 콱콱 들어온다.
‘문외한이 저 춤을 따라가면서 노래를 안정적으로 부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안무가는 무심코 온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그는 ‘잘하는, 전도유망한, 가능성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확실히 구분해서 대우했다.
그리고 지금 안무가의 내면에서, 춤에 별 재능이 없어 보여 떨어졌던 박문대의 등급이 재조정됐다.
‘자기 장점이 노래니까, 안무 중에 노래를 안정적으로 불러야 한다는데 신경 쓰느라 그동안 안무는 익히는 것에 급급해 보였던 건가.’
하지만 그래도 위화감이 사라지진 않긴 했다.
‘…아무 계기 없이 이틀 만에 춤이 되긴 힘든데.’
그 와중에 박문대는 기어코 2절 마무리까지 템포와 힘을 잃지 않고 곡을 끝마쳤다.
심사위원석은 고요했다.
그는 의아함과는 별개로, 문득 긍정적인 감정이 머리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기특함이었다.
“후욱, 후, 감사합니다,”
곡이 끝난 직후, 박문대는 체력을 다 쥐어짜 냈는지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과감히 선곡을 지르고 표정 변화도 없던 첫 평가 때의 뻔뻔함 대신, 열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참… 노력했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얼굴.
그런 간극은 보는 사람을 괜히 울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안 그래도 안무가의 옆에서는 뮤디가 금방이라도 칭찬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정도는 덜하겠지만 다른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안무가는 짐작했다.
하지만 자기만큼 이 임팩트를 방송적으로 살릴 사람은 없었다. 보름간 댄스 클래스에서 갈군 게 자신이니까.
그래서 안무가는 영린에게 첫 평가를 주라는, 제작진의 암묵적인 눈치를 일부러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먼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문대야.”
“후우…, 예.”
“잘했어.”
“…….”
간단해서 더 확실한 칭찬이었다.
박문대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보름 내내 무덤덤했던 그 참가자답지 않은, 개구지게 보일 만큼 확실한 미소였다.
* * *
역시 좋은 반전은 승리한다.
이 공식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에서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숨이 찬 와중에도, 안도감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심사위원들에게 괜찮은 리액션이 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 기특하다.”
“문대 씨 오늘 뭐, 흠잡을 곳이 없네요~”
“참 잘했어.”
돌연사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역시. 촬영 내내 모은 포인트 3점을 전부 춤에 투자한 건 정답이 맞았다.’
그래서 지금 춤은 C.
솔직히 가창을 키울 때보다 레벨업의 체감이 컸다.
머리로 알아도 몸이 따라와 주지 않던 것이 순식간에 체득되는 느낌이었다.
쓸 수 없던 근육을 갑자기 쓸 수 있게 되는 감각도 전신에 선명했다.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상급은 못 가도 중급 클래스 참가자와 비슷할 것이다.
심지어 첫 일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안무만 외웠으니 툭 치면 튀어나올 만큼 안무 숙달도 됐다.
이 곡으로 한정 짓는다면 웬만한 댄스 중급 클래스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걸 중간 과정 없이 한 번에 터뜨렸지.’
통편집만 되지 않는다면, 이걸로 일단 1차 탈락은 패스할 것이다.
차근차근 생존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상 질문도 나왔다.
“근데 문대야, 이틀간 대체 뭐 했어?”
안무가의 질문에 심사위원 뮤디가 입 모양으로 ‘왜요?’ 하고 되묻는 게 나한테도 보였다.
안무가가 그것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설명을 덧붙인다.
“춤이 갑자기 되네? 우리 안 본 이틀 만에 갑자기.”
“그게….”
나는 숨을 고르고, 일부러 살짝 어수룩하게 머리를 털었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잘하는 친구한테 물어봤습니다.”
“잘하는 친구?”
“선아현이요.”
말하자면, 연막이다.
상태창으로 레벨업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대신 감성적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마침 룸메이트에 댄스 상급 클래스인 선아현이 있었다.
또래한테 직접 실전성 넘치는 조언을 받으니 확 늘었다는 건 없는 사례도 아니니까, 그림상 한번 시도해 보았다.
-혹시 시간 괜찮아?
-나, 나한테 말한…?
-어. 미안한데 혹시 상황되면 이 동작 좀…….
-으, 응! 돼!
-…음, 그래.
게다가 선아현은 내가 대충 운만 뗐더니 반색하면서 너무 열심히 가르쳐 줬었다. 못 늘었으면 미안했을 정도였다.
거의 두 시간쯤 동작마다 쪼개가며 열정적으로 알려줘서 좀 당황했었다.
대충 구색만 맞추려던 거였는데…….
아무튼, 감 못 잡는 일반인 참가자를 도와준 이미지면 선아현한테도 손해는 절대 아닐 것이다. 나쁘지 않지 뭐.
상황을 좀 더 강화해 볼까. 쓸데없는 말을 더 덧붙여보자.
“…아현이 되게 친절해요.”
“야, 그럼 난 안 친절하다는 소리야?”
안무가가 곧바로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얼굴은 피식피식 웃고 있는 게, 장난치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충 잘 넘어간 느낌이다. 심사위원들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제가 첫 평가에서 말했던 내용, 기억하시나요?”
‘세인트유’의 영린이 부드럽게 물었다. 진짜 묻는 게 아니라 말문을 트는 문장인 것 같았다.
“춤에 숙련도가 아예 없어서, 앞으로 미션이 버거울 거라고 했는데.”
영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제가 잘못 말한 것 같네요. 박문대 씨는 버거워도 잘 이겨내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참 잘 봤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말 하나로 갑자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대답은 확실히 해야 하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좀 재밌군.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나는 이어지는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적당히 예상했다.
등급은 골드겠군.
* * *
다른 여타 아이돌 오디션 프로들처럼, 에서도 테마곡은 가장 먼저 대중에게 노출되는 컨텐츠였다.
그리고 테마곡의 분량은 당연히 잘하는 사람 위주로 돌아간다. 이 ‘잘하는 사람’의 기준을 가르는 것이 이번 등급이었다.
클래스 나누는 배지에서 대충 짐작했겠지만, 골드-실버-브론즈 순으로 상중하 등급이 나뉘었다.
“그러나 브론즈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참가자는… 방출입니다!”
저 소리는 매 시즌마다 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세 분류 위에 등급이 하나 더 있었다.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돌아온 , 이번 재상장 시즌 대표하는 플래티넘 등급을 받을 참가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플래티넘 등급이었다.
인터넷에서는 다단계부터 부모님 안부 묻는 게임까지 온갖 비유를 들어 이 등급을 밈(Meme)화했었지.
제작진의 작명 센스가 다이아까지는 가지 않아서 솔직히 약간 안심이다.
내 속마음이야 어쨌든 간에, 다른 참가자들은 다들 바짝 굳은 채로 MC의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참가자 각자의 앞에는 화려한 금속 상자가 배치됐고, 그 안에 등급을 상징하는 배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이미 등급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
실버는 26위부터였는데, 대충 상태창 수치만 봐도 이제 25위 안에는 들었다. 그리고 플래티넘 등급인 10명 안에 들기에는 수치가 부족했고.
그럼 골드지 뭐.
“참가자 여러분, 등급박스를 오픈해 주세요!”
나는 심드렁한 티를 내지 않으려 표정을 잡으며, 상자를 툭 열었다.
그리고 굳었다.
상자 안에는 홀로그램 반사처리를 한 백금빛 배지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플래티넘 등급 배지였다.
“…….”
내가 굳어 있자니, 옆에서 자신의 금색 배지를 들어 올리던 선아현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자기가 화들짝 놀랐다.?
“우, 우, 우와, 우와아!”
“뭐야? …헐, 대박!! 와 대박이야!!”
마찬가지로 골드 배지를 들고 있던 (전)20위 이세진이 내 상자 속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 등을 때리며 외쳤다.
“너 진짜 대박! 플래티넘!!”
언제부터 우리가 친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며 가며 인사만 하지 않았나? 그것도 저쪽이 먼저 해서 마지못해 했는데.
나는 심호흡 후에 상자에서 배지를 집어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내가 감격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플래티넘이지?’
시즌마다 두셋 정도는 실력의 절대치가 아니라 성장치를 보고 플래티넘 등급을 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리고 깨달았다.
‘…그 등급평가 순서!’
그것 때문에 중하위권에서 확 솟구쳐오를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튄 것 같았다.
춤이 회귀로 인한 예습과 밤샘 연습으로 확실히 숙지된 상태라, 동급 상태창들보다 괜찮았던 것도 한몫한 것 같고.
“……흠.”
나는 배지를 손에서 굴렸다.
눈도장 찍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어쩐지 뒷맛이 찝찝했다.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내가 다음 평가에서 한 치만 잘못해도 무슨 편집이 들어갈지 몰랐다. 첫 시즌에서도 한 참가자가 이런 비슷한 루트로 호되게 당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다음 평가까지 갈 것도 없었다. 지금 플래티넘 등급을 받는 게 편집점이 조금만 어긋나도 욕을 있는 대로 처먹을 것이다.
당장 저기서 날 노려보고 있는 최원길이 ‘솔직히, 완전하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어요’ 같은 인터뷰라도 하면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테지.
그렇다고 여기서 싫은 티를 내는 건 미친 짓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천히 배지를 들어서 몸에 달았다. 고개를 돌리자 플래티넘 배지를 달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이 보였다.
예상대로 첫 번째 평가 1, 2위는 둘 다 플래티넘. 그 외에도 소파에 앉았던 인원들은 대부분 다시 플래티넘을 받았다.
몇몇 골드로 떨어진 참가자들의 틈을 나와 10위권 참가자들이 파고든 모양이었다.
20위권은 나뿐이었다. 젠장.
‘집중포화가 쏟아지겠군.’
…아니, 좋게 생각하자. 실제로 좋은 일이니까.
‘분량은 많겠네.’
어차피 무대 직캠 뜰 때까지는 분량 싸움이었다.
초반에 무조건 탈락은 면하겠으니, 내 목표인 ‘1년 내로 데뷔’에는 착실히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 미친 비호감만 되지 않으면 된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꼬투리 잡힐 일을 더 줄이자.
미친 듯이 레벨업을 해서 춤 노래에 다 때려 박자.
“플래티넘 등급을 받은 참가자분들부터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그리고 일단은, 테마곡 무대에서 무조건 춤 스텟이 A인 참가자 주변은 피하자.
비교되면 답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