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7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7화
일요일 저녁에 안무를 재정비하고 쓰려졌다가 깨니 다음 주가 됐다.
첫 주 앨범 판매량 집계를 확인할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67만 장이요?”
“그래!”
나는 매니저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선주문량이 아니라 판매량이?”
“…그런 것도 아니? 아무튼 판매량 맞아!”
“…….”
참고로, 선주문량은 앨범이 판매될 걸 예상하고 소매점에서 미리 주문해놓는 양을 의미한다.
‘초동보다 많이 들여놓는 편이라 이쪽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진짜 67만 장이 나간 거라니.
‘실감이 안 나는데.’
아무리 최근 앨범 판매량 인플레이션이 심하다지만, 정말 감각이 마비될 것 같은 판매량이다.
오디션 프로 출신답게 테스타의 팬층이 국내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본래보다도 늘었다.
‘원래 60만 장 아니었나.’
분명 원래 로 데뷔하는 그룹의 초동은 60만 장이다. 7만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와서 사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남자 아이돌 데뷔앨범 판매량 신기록 갱신이라는데?”
“어, 어어어…….”
“Holy moly.”
다른 놈들도 기쁘다기보다는 어째 압도된 분위기였다.
한 30만 장이었다면 바닥을 구르고 기뻐했을 텐데, 더블 스코어가 뜨니 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물론 곧 정신 차리는 놈이 튀어나왔다. 현실적 판단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면 우리 다음 주에 1위 할 수도 있나?”
“…!!”
순간, 긴장감이 쭉 차올랐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VTIC 선배님 이번 주 판매량이 얼마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이 즉시 검색을 시작했다. 앨범 차트에서 바로 주간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LONG NIGHT / VTIC 312,608]
“…!”
“와.”
2주 차라고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아무리 초동 마지막 하루가 들어갔다고 해도 그렇지.’
웬만큼 잘나가는 남자 아이돌 총판매량급이었다.
이쯤 되니 정말 이놈들 이번 앨범 초동이 궁금해진다.
“…잠시만.”
나는 김래빈의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해서 VTIC의 첫 7일간 앨범 판매량, 초동을 확인했다.
[1,872,863]
“…….”
아, 글렀네.
“이야~”
“하하.”
“1위야 열심히 하다 보면 할 날이 오겠죠!”
긴장감이 확 사라졌다. 멤버들은 허허 웃으며 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기본 스코어가 차이 나니 호승심도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앨범 판매랑이 두 배 차이 나는 이번 집계가 적기였으나, 음원에서 확 밀려서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특별히 초동 이후에도 앨범 물량이 잘나갈 일은 없고……. 아마 2주 차에도 힘들겠군.’
음원 순위는 계속 슬금슬금 상승 중이었지만, 1위에 붙박이 중인 VTIC을 밀어낼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갈 준비나 할까요.”
“그게 좋겠다.”
“오늘도 화이팅~”
멤버들은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흩어졌다.
매니저는 ‘이게 아닌데….’ 같은 말을 몇 번 중얼거렸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푹 한숨을 쉬었다.
‘다른 생각이 있었나 본데.’
뭐, 알아서 하겠지.
매니저가 새롭게 운을 뗀 것은 차에 탄 직후였다.
“너희 팬 사인회 이틀 뒤부터인 거 알지?”
“헉.”
“벌써요?”
멤버들이 바짝 긴장했다. 활동 시작할 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스케줄이 바빠서 날짜를 잊고 있던 것이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앨범 이렇게 많이 사주시고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시는데 잘하고 와야지~ 성의 있게 잘 대해드려~”
“아, 그럼요!”
아마 앨범 판매량을 먼저 던진 것은 이렇게 빌드업하려는 생각에서였나 보다. 지금이라도 말해서 속 시원해 보이는군.
‘팬 사인회라.’
한 번에 백 명과 연달아 대화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좀 기합을 넣을 필요가 있긴 하지.
다만 이게 역효과로 작용한 멤버도 있어 보였다. 선아현은 단번에 얼굴이 새파래졌기 때문이다.
“나, 나, 나 못 할 것 같은데.”
“왜요?”
“으응? 마, 말을 잘 못 해서…?”
“…? 형은 지금 한국어 잘해요.”
차유진의 개소리에 말려든 선아현이 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끼어들었다.
“넌 신중한 편이니까 오히려 실수 안 할걸. 너무 걱정하지 마.”
“…고, 고마워.”
선아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다지 걱정 안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애초에 팬과 대화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스케줄 중에 오가면서 팬들을 근거리에서 가끔 보기도 하지만, 보통은 인사나 팬서비스만 빠르게 주고받고 얼른 차를 타야 했다.
간혹 숙소 근처나 편의점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건 팬이 아니라 사생이니 표본에 넣기 어렵고.
‘일대일로 각 잡고 대화하려니 멤버 중 누구든 긴장할 만…….’
“시간이 얼른 가야 되는데~ 우리 팬들 얼굴 보게~”
“…….”
저놈 빼고.
앞자리의 큰세진이 콧노래를 부르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다.
‘자신 있다, 이거군.’
팬 사인회를 앞둔 아이돌 양극단 예시를 이렇게 확인할 줄이야.
…나는 어떻냐고?
‘모르겠다.’
유명 아이돌 공개 팬 사인회라면 몇 번 돈 받고 대리로 사진 찍으러 가본 적은 있다.
하지만 사인을 받으며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들어본 적 없다. 생각보다 공간 자체가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보니 웬만한 소리는 다 뭉개지기 때문이다.
‘뭐… 머리띠 쓰는 건 많이 보긴 했지.’
그런 거야 좀 민망하겠다만 못할 것도 없으니 넘어가고.
나는 순 이미지만 남아 있는 뇌를 돌려보다가 혀를 찼다. 실속이 없군.
‘무슨 대화를 주로 하는지 정도는 찾아둘까.’
마침 이동 중이라 차 안인데 리얼리티 카메라도 없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으로 SNS 접속해서 검색을 시작했다.
[팬 사인회 후기]
‘뒤에 ‘후기’ 붙여뒀으니 홈마 사진은 대충 거를 수 있겠지‘.
하지만 인기글 탭으로 이동하기도 전에, 방금 뜬 최신글 하나가 눈에 꽂혔다.
“…!”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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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 이번 팬싸 컷 120장ㅋㅋㅋ 평일인데 미쳤다 진짜! 난 광탈했으니… 팬 사인회 후기라도 많이 올려 주세요ㅠ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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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100장을 사고 떨어졌다는 인증글의 캡처였다.
“…….”
120장?
솔직히 말하자면, 보자마자 이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얼마지?’
테스타의 데뷔 미니앨범 정가가 15,000원이다. 공동구매 등으로 할인율을 끌어올렸다고 해도…… 11,000원 정도가 최저가겠지.
‘그걸로 계산해도…….’
132만 원이다.
“……허.”
뇌가 팽팽 굴러갔다.
‘대화가 길어도 1, 2분 컷일 텐데.’
테스타가 7명이니 인당 얼추 18만원 이상 값어치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거 효율이 너무 낮지 않나?’
대화 1분으로 10만 원 값어치를 할 수 있냐고? 당연히 자신 없다.
‘그냥……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 하나.’
그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리고, 미간을 눌렀다.
팬싸 컷이 100장 이상인 놈들을 찍으러 다녀본 적은 있어도, 당사자가 될 줄이야.
식은땀이 다 났다.
* * *
박문대의 첫 번째 홈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팬 사인회가 열리는 목동 소재의 한 아트홀에 도착했다.
300명을 수용하는 아담한 무대와 관객석은 100명의 대기 인원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기 번호가 배부되었다.
[07]
‘앞번호 만세!’
문대가 지치기 전에 대화해볼 수 있겠다며, 홈마는 즐겁게 얼른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리고 7시 30분 정각을 살짝 넘었을 때.
무대 옆에서 테스타가 입장했다.
순간 귀가 먹먹할 만큼 큰 함성이 작은 아트홀을 가득 채웠다. 본래는 사진 찍는 소리가 먼저 들렸을 상황이나, 그보다 먼저 첫 팬싸의 설렘이 가득했다.
손을 흔들며 약간 쑥스러운 듯 입장하던 테스타는, 무대에 세팅된 사인용 테이블 앞에 서서 꾸벅 인사했다.
“Take your STAR! 안녕하세요, 테스타입니다!”
“와아아아!!”
아직 팬 사인회가 익숙하지 않은 신인다운 공식인사였다. 팬들이 열렬히 환호했으나, 속은 각자 응원하는 멤버를 부르짖고 있었다.
박문대의 홈마도 마찬가지였다.
‘문대 흑발!! 아 너무 좋아!!’
사녹 등에도 몇 번 다녀오며 이미 박문대의 이번 흑발 실물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볼 때마다 좋았다.
그녀가 처음 입덕하던 당시의 박문대가 흑발이어서일지도 몰랐다.
‘금발도 좋았지만, 역시 흑발이야.’
그녀는 강경 금발파인 자신의 친구를 잠깐 떠올렸지만, 곧 지우고 얼른 카메라에 집중했다.
잘 찍어서 저 얼굴을 널리 알려야 했다.
‘볼 때마다 잘생겨지는 것 같아.’
앨범 컨셉 탓인지, 지금 무대의상인 하얀 하복을 입은 흑발의 박문대는 묘하게 청량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건 주접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인사를 마친 테스타는 슬금슬금 테이블로 돌아 들어가서 앉았다.
‘문대가 제일 끝이네.’
혹시 몰라 다른 멤버들 선물도 하나씩 챙겨오길 잘했다고 홈마는 중얼거렸다. 문대가 있는 끝자리까지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면서 아무도 안 주는 건 좀 그러니까.
“번호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곧 본격적으로 팬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그녀는 앞번호를 받은 탓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 사인을 받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문대가 첫 번째 번호의 팬과 만나기 직전이었다.
첫 타자는 류청우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하는 류청우를 보고 홈마는 살짝 말을 더듬었다.
‘얘도 잘생기긴 했다.’
SNS 등지에서 핫한 유교남 같은 별명으로 불리던 것은 봤었는데, 가까이서 직접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웹툰에서 남주로 나올 체대생 같다…….’
그녀는 몇 마디 가벼운 스몰토크를 나누고, 하이파이브 후에 작은 홍삼 박스를 넘겼다.
“와, 감사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첫 번째 사인은 훈훈히 끝났다. 그리고 다음 순서.
“어디 사인해 드리면 되나요?”
아역배우 이세진이었다. 섬세하고 단정한 인상의 이세진은 특별히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무성의하지도 않았다.
“누구 보러 오셨어요?”
의외로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 테스타 다 보러왔죠~”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세진은 특별히 예민한 것 없이 무던히 대답하고, 깔끔하게 사인을 마쳤다.
‘생각보다 산뜻하네.’
어째 한 명, 한 명 사인을 받을수록 갱신되는 이미지가 괜찮았다.
다음으로 사인받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럼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눈에 잘 띄는 여백을 찾아서 해보겠습니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바짝 긴장한 티를 내며 수줍게 사인을 한 김래빈도 좋았고.
“앨범 어떤 커버 제일 좋아요? 전 바이올렛이 제일 좋아요!”
사인받는 팬보다 더 신나서 자기 사인 주변에 온갖 낙서를 넣고 질문 폭탄을 던진 차유진도 귀여웠다.
‘아주사 초반에는 진짜 얄미웠는데.’
그때 괜한 소리를 하지 않길 잘했다며, 그녀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큰세진이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첫 팬싸 오시면서 어땠어요? 저는 진짜 긴장했는데!”
“저도 긴장했죠!”
“에이, 긴장 안 하신 것 같은데~”
큰세진은 친근한 말투로 그날 그녀가 낮에 무엇을 했는지, 지금 기분과 상태, 고민까지 순식간에 술술 불게 만들었다.
게다가 말도 안 했는데 자동으로 하이파이브가 나왔다.
“다음에 또 봐요~”
“네…!”
‘…친해진 것 같은데?’
잘생긴 경영학과 과대와 혼자 내적 친분을 쌓은 느낌이었다. 사실 상대는 어지간하면 모든 동기에게 친근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겨우 2분 30초간의 대화로 느낀 인싸의 바이브에 감명을 받으면서도, 곧 올 문대의 차례에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이제 이 다다음이 문대…!’
그렇게 기대에 차서 선아현은 얼른 넘길 생각이었는데.
‘…라고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얼굴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선아현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정성껏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덕분에 그녀는 거의 홀린 듯이 사인을 받았다.
선아현은 그 밑으로 정성스러운 p.s까지 달아줬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원 님!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천연기념물은 맞다.’
저 얼굴에 저런 성격. 캐릭터라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대망의 최애.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대를 돌아보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7화
일요일 저녁에 안무를 재정비하고 쓰려졌다가 깨니 다음 주가 됐다.
첫 주 앨범 판매량 집계를 확인할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67만 장이요?”
“그래!”
나는 매니저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선주문량이 아니라 판매량이?”
“…그런 것도 아니? 아무튼 판매량 맞아!”
“…….”
참고로, 선주문량은 앨범이 판매될 걸 예상하고 소매점에서 미리 주문해놓는 양을 의미한다.
‘초동보다 많이 들여놓는 편이라 이쪽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진짜 67만 장이 나간 거라니.
‘실감이 안 나는데.’
아무리 최근 앨범 판매량 인플레이션이 심하다지만, 정말 감각이 마비될 것 같은 판매량이다.
오디션 프로 출신답게 테스타의 팬층이 국내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본래보다도 늘었다.
‘원래 60만 장 아니었나.’
분명 원래 로 데뷔하는 그룹의 초동은 60만 장이다. 7만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와서 사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남자 아이돌 데뷔앨범 판매량 신기록 갱신이라는데?”
“어, 어어어…….”
“Holy moly.”
다른 놈들도 기쁘다기보다는 어째 압도된 분위기였다.
한 30만 장이었다면 바닥을 구르고 기뻐했을 텐데, 더블 스코어가 뜨니 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물론 곧 정신 차리는 놈이 튀어나왔다. 현실적 판단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면 우리 다음 주에 1위 할 수도 있나?”
“…!!”
순간, 긴장감이 쭉 차올랐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VTIC 선배님 이번 주 판매량이 얼마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이 즉시 검색을 시작했다. 앨범 차트에서 바로 주간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와.”
2주 차라고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아무리 초동 마지막 하루가 들어갔다고 해도 그렇지.’
웬만큼 잘나가는 남자 아이돌 총판매량급이었다.
이쯤 되니 정말 이놈들 이번 앨범 초동이 궁금해진다.
“…잠시만.”
나는 김래빈의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해서 VTIC의 첫 7일간 앨범 판매량, 초동을 확인했다.
“…….”
아, 글렀네.
“이야~”
“하하.”
“1위야 열심히 하다 보면 할 날이 오겠죠!”
긴장감이 확 사라졌다. 멤버들은 허허 웃으며 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기본 스코어가 차이 나니 호승심도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앨범 판매랑이 두 배 차이 나는 이번 집계가 적기였으나, 음원에서 확 밀려서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특별히 초동 이후에도 앨범 물량이 잘나갈 일은 없고……. 아마 2주 차에도 힘들겠군.’
음원 순위는 계속 슬금슬금 상승 중이었지만, 1위에 붙박이 중인 VTIC을 밀어낼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갈 준비나 할까요.”
“그게 좋겠다.”
“오늘도 화이팅~”
멤버들은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흩어졌다.
매니저는 ‘이게 아닌데….’ 같은 말을 몇 번 중얼거렸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푹 한숨을 쉬었다.
‘다른 생각이 있었나 본데.’
뭐, 알아서 하겠지.
매니저가 새롭게 운을 뗀 것은 차에 탄 직후였다.
“너희 팬 사인회 이틀 뒤부터인 거 알지?”
“헉.”
“벌써요?”
멤버들이 바짝 긴장했다. 활동 시작할 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스케줄이 바빠서 날짜를 잊고 있던 것이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앨범 이렇게 많이 사주시고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시는데 잘하고 와야지~ 성의 있게 잘 대해드려~”
“아, 그럼요!”
아마 앨범 판매량을 먼저 던진 것은 이렇게 빌드업하려는 생각에서였나 보다. 지금이라도 말해서 속 시원해 보이는군.
‘팬 사인회라.’
한 번에 백 명과 연달아 대화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좀 기합을 넣을 필요가 있긴 하지.
다만 이게 역효과로 작용한 멤버도 있어 보였다. 선아현은 단번에 얼굴이 새파래졌기 때문이다.
“나, 나, 나 못 할 것 같은데.”
“왜요?”
“으응? 마, 말을 잘 못 해서…?”
“…? 형은 지금 한국어 잘해요.”
차유진의 개소리에 말려든 선아현이 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끼어들었다.
“넌 신중한 편이니까 오히려 실수 안 할걸. 너무 걱정하지 마.”
“…고, 고마워.”
선아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다지 걱정 안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애초에 팬과 대화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스케줄 중에 오가면서 팬들을 근거리에서 가끔 보기도 하지만, 보통은 인사나 팬서비스만 빠르게 주고받고 얼른 차를 타야 했다.
간혹 숙소 근처나 편의점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건 팬이 아니라 사생이니 표본에 넣기 어렵고.
‘일대일로 각 잡고 대화하려니 멤버 중 누구든 긴장할 만…….’
“시간이 얼른 가야 되는데~ 우리 팬들 얼굴 보게~”
“…….”
저놈 빼고.
앞자리의 큰세진이 콧노래를 부르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다.
‘자신 있다, 이거군.’
팬 사인회를 앞둔 아이돌 양극단 예시를 이렇게 확인할 줄이야.
…나는 어떻냐고?
‘모르겠다.’
유명 아이돌 공개 팬 사인회라면 몇 번 돈 받고 대리로 사진 찍으러 가본 적은 있다.
하지만 사인을 받으며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들어본 적 없다. 생각보다 공간 자체가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보니 웬만한 소리는 다 뭉개지기 때문이다.
‘뭐… 머리띠 쓰는 건 많이 보긴 했지.’
그런 거야 좀 민망하겠다만 못할 것도 없으니 넘어가고.
나는 순 이미지만 남아 있는 뇌를 돌려보다가 혀를 찼다. 실속이 없군.
‘무슨 대화를 주로 하는지 정도는 찾아둘까.’
마침 이동 중이라 차 안인데 리얼리티 카메라도 없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으로 SNS 접속해서 검색을 시작했다.
‘뒤에 ‘후기’ 붙여뒀으니 홈마 사진은 대충 거를 수 있겠지‘.
하지만 인기글 탭으로 이동하기도 전에, 방금 뜬 최신글 하나가 눈에 꽂혔다.
“…!”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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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100장을 사고 떨어졌다는 인증글의 캡처였다.
“…….”
120장?
솔직히 말하자면, 보자마자 이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얼마지?’
테스타의 데뷔 미니앨범 정가가 15,000원이다. 공동구매 등으로 할인율을 끌어올렸다고 해도…… 11,000원 정도가 최저가겠지.
‘그걸로 계산해도…….’
132만 원이다.
“……허.”
뇌가 팽팽 굴러갔다.
‘대화가 길어도 1, 2분 컷일 텐데.’
테스타가 7명이니 인당 얼추 18만원 이상 값어치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거 효율이 너무 낮지 않나?’
대화 1분으로 10만 원 값어치를 할 수 있냐고? 당연히 자신 없다.
‘그냥……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 하나.’
그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리고, 미간을 눌렀다.
팬싸 컷이 100장 이상인 놈들을 찍으러 다녀본 적은 있어도, 당사자가 될 줄이야.
식은땀이 다 났다.
* * *
박문대의 첫 번째 홈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팬 사인회가 열리는 목동 소재의 한 아트홀에 도착했다.
300명을 수용하는 아담한 무대와 관객석은 100명의 대기 인원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기 번호가 배부되었다.
‘앞번호 만세!’
문대가 지치기 전에 대화해볼 수 있겠다며, 홈마는 즐겁게 얼른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리고 7시 30분 정각을 살짝 넘었을 때.
무대 옆에서 테스타가 입장했다.
순간 귀가 먹먹할 만큼 큰 함성이 작은 아트홀을 가득 채웠다. 본래는 사진 찍는 소리가 먼저 들렸을 상황이나, 그보다 먼저 첫 팬싸의 설렘이 가득했다.
손을 흔들며 약간 쑥스러운 듯 입장하던 테스타는, 무대에 세팅된 사인용 테이블 앞에 서서 꾸벅 인사했다.
“Take your STAR! 안녕하세요, 테스타입니다!”
“와아아아!!”
아직 팬 사인회가 익숙하지 않은 신인다운 공식인사였다. 팬들이 열렬히 환호했으나, 속은 각자 응원하는 멤버를 부르짖고 있었다.
박문대의 홈마도 마찬가지였다.
‘문대 흑발!! 아 너무 좋아!!’
사녹 등에도 몇 번 다녀오며 이미 박문대의 이번 흑발 실물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볼 때마다 좋았다.
그녀가 처음 입덕하던 당시의 박문대가 흑발이어서일지도 몰랐다.
‘금발도 좋았지만, 역시 흑발이야.’
그녀는 강경 금발파인 자신의 친구를 잠깐 떠올렸지만, 곧 지우고 얼른 카메라에 집중했다.
잘 찍어서 저 얼굴을 널리 알려야 했다.
‘볼 때마다 잘생겨지는 것 같아.’
앨범 컨셉 탓인지, 지금 무대의상인 하얀 하복을 입은 흑발의 박문대는 묘하게 청량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건 주접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인사를 마친 테스타는 슬금슬금 테이블로 돌아 들어가서 앉았다.
‘문대가 제일 끝이네.’
혹시 몰라 다른 멤버들 선물도 하나씩 챙겨오길 잘했다고 홈마는 중얼거렸다. 문대가 있는 끝자리까지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면서 아무도 안 주는 건 좀 그러니까.
“번호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곧 본격적으로 팬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그녀는 앞번호를 받은 탓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 사인을 받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문대가 첫 번째 번호의 팬과 만나기 직전이었다.
첫 타자는 류청우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하는 류청우를 보고 홈마는 살짝 말을 더듬었다.
‘얘도 잘생기긴 했다.’
SNS 등지에서 핫한 유교남 같은 별명으로 불리던 것은 봤었는데, 가까이서 직접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웹툰에서 남주로 나올 체대생 같다…….’
그녀는 몇 마디 가벼운 스몰토크를 나누고, 하이파이브 후에 작은 홍삼 박스를 넘겼다.
“와, 감사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첫 번째 사인은 훈훈히 끝났다. 그리고 다음 순서.
“어디 사인해 드리면 되나요?”
아역배우 이세진이었다. 섬세하고 단정한 인상의 이세진은 특별히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무성의하지도 않았다.
“누구 보러 오셨어요?”
의외로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 테스타 다 보러왔죠~”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세진은 특별히 예민한 것 없이 무던히 대답하고, 깔끔하게 사인을 마쳤다.
‘생각보다 산뜻하네.’
어째 한 명, 한 명 사인을 받을수록 갱신되는 이미지가 괜찮았다.
다음으로 사인받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럼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눈에 잘 띄는 여백을 찾아서 해보겠습니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바짝 긴장한 티를 내며 수줍게 사인을 한 김래빈도 좋았고.
“앨범 어떤 커버 제일 좋아요? 전 바이올렛이 제일 좋아요!”
사인받는 팬보다 더 신나서 자기 사인 주변에 온갖 낙서를 넣고 질문 폭탄을 던진 차유진도 귀여웠다.
‘아주사 초반에는 진짜 얄미웠는데.’
그때 괜한 소리를 하지 않길 잘했다며, 그녀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큰세진이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첫 팬싸 오시면서 어땠어요? 저는 진짜 긴장했는데!”
“저도 긴장했죠!”
“에이, 긴장 안 하신 것 같은데~”
큰세진은 친근한 말투로 그날 그녀가 낮에 무엇을 했는지, 지금 기분과 상태, 고민까지 순식간에 술술 불게 만들었다.
게다가 말도 안 했는데 자동으로 하이파이브가 나왔다.
“다음에 또 봐요~”
“네…!”
‘…친해진 것 같은데?’
잘생긴 경영학과 과대와 혼자 내적 친분을 쌓은 느낌이었다. 사실 상대는 어지간하면 모든 동기에게 친근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겨우 2분 30초간의 대화로 느낀 인싸의 바이브에 감명을 받으면서도, 곧 올 문대의 차례에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이제 이 다다음이 문대…!’
그렇게 기대에 차서 선아현은 얼른 넘길 생각이었는데.
‘…라고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얼굴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선아현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정성껏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덕분에 그녀는 거의 홀린 듯이 사인을 받았다.
선아현은 그 밑으로 정성스러운 p.s까지 달아줬다.
‘…천연기념물은 맞다.’
저 얼굴에 저런 성격. 캐릭터라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대망의 최애.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대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