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7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3화
지루한 음악방송 사전녹화 대기 시간, 취향 따라 스마트폰을 만지던 VTIC 멤버 중 하나가 청려를 불렀다.
보여준 것은 위튜브 실시간 인기동영상 9위였다.
[쇼케이스에서 물벼락 맞은 1위 아이돌!]
[지난 18일 저녁, 한 아이돌 그룹의 데뷔 쇼케이스가 레드스퀘어에서 진행됐습니다. 바로 몇 달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오디션, 의…….]
이슈 위튜버는 쇼케이스 물병 사건을 신나게 개인 사견을 붙여서 떠들고 있었다.
“이거 걔 맞지? 그 아주사.”
“…아.”
청려는 화면을 보고, 그 얼토당토않은 심리테스트를 기억해 냈다.
“박문대.”
[눈치가 빠르시네.]
마침 영상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작게 첨부된 애매한 화질의 직캠이 나왔다. 박문대가 부드럽게 상황을 수습해버리는 장면이었다.
“얘 진짜 좀 똑똑한데?”
“그러게.”
“근데 좀 안 됐어. 하필 우리랑 동발이라…….”
옆에서 슬쩍 구경하던 다른 멤버들도 끼어들어 혀를 찼다.
“Tnet이 만용 부리는 게 하루 이틀이냐.”
“지표 괜찮은데 1위 못해서 아쉽겠다.”
약간의 동정심이 깃든 말투는, 2주 차에도 본인들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1 Night Sign / VTIC]
지금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일간 순위였다.
음원 차트가 실시간이 보이지 않게 개편된 이후로부터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기존 음원 순위를 뚫고 바로 1위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린다.’
오는 자정에 공개될 테스타의 음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테스타의 1주 차 앨범 판매량이 VTIC 2주 차를 트리플 스코어 이상으로 따돌려야 음악방송 1위를 기대할만했는데, 안타깝게도 VTIC과 초동 기간이 하루 정도 겹쳤다.
어느 한쪽에서 테스타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미친 기록을 세우지 않는 이상, 지는 건 예정된 일이란 뜻이다.
물론, 아무리 오디션 출신이라도 신인 남자 아이돌에게 음원 차트 1위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했다.
“아~ 됐다! 후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우리나 잘하자!”
“옳소!”
VTIC은 순식간에 다시 자신들 각자의 관심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청려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질 수도 있겠는데.’
* * *
데뷔 쇼케이스는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뒤풀이는 없었다.
“이제 막 데뷔했는데 TV에 호빵처럼 나올 수는 없잖아. 거하게 먹이긴 그렇겠지~”
“호빵 맛있는데요!”
“얼굴이 잘생겨야지 뜯어먹고 싶게 토실토실하면 안 되잖아.”
“아하!”
차유진은 단번에 납득했다. 나는 큰세진의 놀라운 소통 솜씨를 잠시 감상하다가, 또다시 대화 소재가 되었다.
“그래도 문대 업적은 진짜 뒤풀이감이었지.”
“마, 맞아.”
“훌륭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하하, 이 친구 부끄러워하긴!”
“…….”
나는… 쇼케이스가 끝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박문대의 순발력은 세계제일’이란 말을 기출 변형해서 듣는 중이었다.
이젠 민망하다기보단 떨떠름할 지경이다.
특히 큰세진 저놈은 일부러 더 민망해하라고 저러는 것 같아서 은근히 열 받는군.
“다들 고생 많았고, 잠깐… 쉬자.”
“예이~!”
“드디어.”
어쨌든 뒤풀이 대신 짧은 휴식 시간을 받긴 했다. 류청우의 말에 멤버들은 안도부터 기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응을 선보이며 숙소로 흩어졌다.
참고로 나는 잤다. 같은 방 쓰는 이세진도 자서 수면 질이 향상되었다.
‘잠 안 자도 되는 특성이 그립군.’
그러나 리얼리티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길지 않은 개인 시간을 보낸 뒤엔 다시 거실에 모여야 했다.
“다들 잘 쉰 것 같네.”
“헤헤.”
누가 봐도 간식을 까먹고 온 얼굴의 차유진이 웃었다.
그리고 다 같이 옹기종기 류청우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벌써 공개일이라니까 신기하긴 하다.”
“기, 긴장돼…….”
자정에 데뷔 앨범 음원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자기 걸 안 보고 굳이 하나를 같이 보는 건… 뭐, 그림이 훈훈하게 나오기 때문이겠지.
“어! 넘어갔다!”
금방 스마트폰 시계 단위가 변했다.
[00:00]
“으, 음원 나온 건가?”
“지금 봐요?”
김래빈이 단호하게 정리했다.
“24Hits 차트에 보일 때까지는 한 시간 이상 집계 시간이 걸립니다.”
“한 시간…….”
침음성을 뱉으며 이세진이 부엌으로 사라졌다. 물이라도 가져오려는 것 같았다.
‘…한 시간 후에도 안 뜰 확률이 높을 텐데.’
24시간 집계된 다른 곡들 사이에서 한 시간짜리 성적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VTIC도 한 시간 후 24시간 차트 진입이 87위였다.
아마도 김래빈은 그 사실을 이어서 설명하려는 듯했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곧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
이번에는 설명해도 괜찮았는데?
큰세진은 긴장된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마법소년’ 뮤직비디오부터 보는 건 어때요?”
“아.”
맞다. 그것도 아직 못 봤지.
겨우 숙소에 돌아와서 휴식 시간을 받은 탓에 그것까지 생각해낼 겨를이 없었다.
‘리얼리티 제작진이 이것도 리액션 분량 찍어달라고 했었지.’
“좋은 생각이네.”
“큰 걸로 봐요!”
차유진이 얼른 리모컨을 들고 TV 화면을 위튜브로 바꾸었다.
검색할 것도 없이, 실시간 1위에 뮤직비디오가 떠 있다.
[테스타(TeSTAR) ‘마법소년’ Offic ial MV]
“예에!”
“우, 우와.”
멤버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쳐다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 썸네일 문대다.”
“자, 잘 나왔어.”
썸네일은 교실의 창 앞에서 뒤를 돌아보는 박문대의 모습이었다.
하얀 커튼 뒤로 주홍빛, 자줏빛에 물든 하늘이 역광으로 빛났다.
‘1위 대우인가.’
나는 떨떠름하게 썸네일을 보다가, 차유진이 들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해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오?”
당황한 차유진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마법소년’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영상은 썸네일 화면으로 시작되었다.
[…….]
텅 빈 교실 한편, 박문대는 노을이 지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노래가 시작되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화면이 바뀌었다.
낡고 부서진 교정이 한낮의 햇살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갑자기 보랏빛으로 물들며 반짝이는 비눗방울이 쏟아졌다.
♬♪♩♪- ♬♪♬♪- ♪♩-
그리고 학교의 일상적인 장소에,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각자의 파트마다 지나갔다.
-세상이 차가워도
꿈은 달콤해
현실이 무너져도
꿈은 선명해
차유진이 다 부수어진 교실에서 홀로 멀쩡한 교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동물 모양 태엽 인형을 모퉁이에 줄 세워, 태엽을 돌렸다. 그림자와 조명 탓에, 인형은 작은 생물처럼 보였다.
-잠기고 싶지 않아
잠들고 싶어 난,
꿈을 그리는데
But reality is breathing
All the time…
양호실 침대에 앉은 선아현이 베갯잇을 뜯었다. 그 안에서 솜 대신 빛나는 민들레 솜털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침대 주변 허공을 반짝였다.
-All that time,
아마 필요했던 거야
미래로 가는 마법이
그래서 난
류청우가 장난감 총으로 화단의 꽃을 쐈다. 비비탄이나 물 대신 빛줄기가 터지며 푸른 꽃잎이 비상한다.
그리고 보랏빛 노을이 지는 옥상에서 펼쳐지는 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미래로 빠져들어 조용히
-Cast a spell
Make a dream come
true true true
-꿈으로 잠들어 파랗게
후렴이 끝나고 나오는 간주에는 박자가 좀 더 쪼개지며 화려한 댄스 브레이크가 이어졌다.
한낮의 옥상이 교차 편집되며, 보랏빛 배경 장면의 오묘함이 더 깊어졌다.
“저거 메이크업도 새로 해서 다들 고생 많으셨지.”
“맞아요! 여러분, 잘 보시면… 이 낮에 찍은 거랑, 노을 질 때 찍은 거랑 의상이랑 메이크업에 차이가 있습니다!”
큰세진이 카메라에 대고 설명했다. 사실이었다.
낮 배경은 좀 더 맨 얼굴에 가까웠고 노을 배경은 뭔 반짝이에 눈 밑에 홍조 비슷한 것까지 넣어놨다.
의상도 노을 배경을 찍을 때 액세서리를 더 붙였었다.
‘그걸 하루 만에 찍으려니 모두 죽을 맛이었겠지.’
다행히 고생한 보람이 있게도, 컷은 잘 나왔다.
♬♪♩♪- ♬♪♬♪- ♪♩-
그리고 들어가는 2절.
최면을 거는 것 같은 묘한 손가락 동작이 끝나고 뒤에서 김래빈이 나왔다.
그리고 느리고 복잡한, 아주 묘한 리듬으로 멜로디 랩을 했다.
교차되는 것은 복도의 부서진 캐비닛이 겹겹이 쌓인 더미 위에 앉아서 송곳을 던졌다 받는 김래빈이다.
“오!”
“목소리 좋다.”
“…감사합니다.”
김래빈이 약간 머쓱하지만, 자랑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근데 어쩌다 송곳같이 살벌한 물건을 골랐습니까, 래빈 씨?”
“…귀여워서……?”
“……?”
상상 이상의 대답에 큰세진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기분 좋게 대신 대답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 귀여워 래빈아.”
뮤직비디오 때깔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 안심했는지, 리액션들이 좀 편해졌다.
이어진 화면에서는 마지막 타자로 이세진이 나오고 있었다.
이세진은 학교 건물 안에서 정문 현관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교정이 보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마지막 후렴 전 브릿지.
리프 멜로디인 오르골 소리가 톤이 낮아지며, 그 위에 보컬 멜로디가 똑같이 따라갔다.
-숨어도 감출 수 없는 건
아마도 마법일 거야
숨이 벅차고 떨리는
꿈.
이세진은 유리문을 부쉈다.
그 순간,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컷이 돌아갔다.
테이프를 뒤로 돌리는 것 같은 기묘한 속삭임이 지나가더니, 곡 없이 컷이 삽입되었다.
박문대가 학교 밖에서 교정으로 걸어들어왔다.
[…….]
이윽고 현관 앞에 멈춰선 박문대는, 두 손을 모두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달칵.
자물쇠를 채웠다.
…달칵.
필름이 돌아가며, 안무와 함께 마지막 후렴이 터져 나왔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미래로 잠들어 조용히
-Cast a spell
Make a dream come
true true true
-꿈으로 빠져들어 파랗게
어느새 안무가 펼쳐지는 옥상 주변은 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옥상을 감싼 난간이 깨지며 투명한 결정 맺혔다. 그리고 프리즘처럼 빛을 왜곡했다.
배경을 어지럽히는 빛처럼, 안무가 더 복잡하고 곡선이 강해졌다.
♬♪♩♪- ♬♪♬♪- ♪♩-
안무의 마지막.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대형을 서클로 바꿨다. 그들이 옥상에 머리를 맞대고 동그랗게 눕는 순간 곡이 끝났다.
툭.
보랏빛 비눗방울이 터져 나왔다.
[…….]
그리고 나타나는 검은 화면.
느릿하게 편곡된 ‘마법소년’의 Inst가 흐르는 가운데, 마치 단편영화처럼 고전적인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그제야 멤버들의 말문이 다시 터졌다.
“와!!”
“너무 잘 나왔는데요?”
“감독님 감사합니다.”
“머, 멋지게 잘 나온 것 같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통에 아무도 서로의 말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다.
“굉장히 음, 의미심장하게 나와서 재밌네.”
“팬분들께서 다양한 세부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우린 좋았는데, 팬분들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분위기는 이 이상 따스할 수 없을 만큼 따스해졌다.
‘스타트를 잘 끊었으니 들뜰 만도 하지.’
덕분에 음원 차트를 확인할 때도 불편할 정도로 긴장감이 곤두서 있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
“…!”
“와! 진입했네~”
85위, 88위 진입이었다.
‘…한 곡은 VTIC보다도 약간 높은데.’
전국적으로 흥했던 오디션의 대중성을 등에 업은 오픈 빨은 생각 이상이었다.
‘미쳤군.’
하지만 ‘실시간 진입 1위’ 같은 말에 더 익숙하던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인지, 멤버들은 그냥저냥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머리로는 알아도 당장 눈에 보이는 건 80위권이니까.
그래서 더 격한 반응은 다음에 터졌다.
“다, 다 우리 곡…….”
“헉.”
아직 실시간 차트가 살아 있는 다른 음원 사이트들에서는 테스타의 타이틀곡이 1위, 2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1위 Hi-five / 테스타] new!
[2위 마법소년 / 테스타] new!
[3위 Night Sign / VTIC] ▼2
[…….]
심지어 7위 안에 이번 앨범에서 발표한 4곡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물론 잠시 후면 VTIC에게 순식간에 밀릴 것이다. 그래도 미친 기세였다.
그제야 실감이 난 멤버들은 경악에 휩싸인 채로 스마트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캐, 캡처하자.”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직 음악방송에 출연하지도 않은, 활동 극 초반부터 터진 호신호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3화
지루한 음악방송 사전녹화 대기 시간, 취향 따라 스마트폰을 만지던 VTIC 멤버 중 하나가 청려를 불렀다.
보여준 것은 위튜브 실시간 인기동영상 9위였다.
이슈 위튜버는 쇼케이스 물병 사건을 신나게 개인 사견을 붙여서 떠들고 있었다.
“이거 걔 맞지? 그 아주사.”
“…아.”
청려는 화면을 보고, 그 얼토당토않은 심리테스트를 기억해 냈다.
“박문대.”
마침 영상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작게 첨부된 애매한 화질의 직캠이 나왔다. 박문대가 부드럽게 상황을 수습해버리는 장면이었다.
“얘 진짜 좀 똑똑한데?”
“그러게.”
“근데 좀 안 됐어. 하필 우리랑 동발이라…….”
옆에서 슬쩍 구경하던 다른 멤버들도 끼어들어 혀를 찼다.
“Tnet이 만용 부리는 게 하루 이틀이냐.”
“지표 괜찮은데 1위 못해서 아쉽겠다.”
약간의 동정심이 깃든 말투는, 2주 차에도 본인들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지금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일간 순위였다.
음원 차트가 실시간이 보이지 않게 개편된 이후로부터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기존 음원 순위를 뚫고 바로 1위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린다.’
오는 자정에 공개될 테스타의 음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테스타의 1주 차 앨범 판매량이 VTIC 2주 차를 트리플 스코어 이상으로 따돌려야 음악방송 1위를 기대할만했는데, 안타깝게도 VTIC과 초동 기간이 하루 정도 겹쳤다.
어느 한쪽에서 테스타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미친 기록을 세우지 않는 이상, 지는 건 예정된 일이란 뜻이다.
물론, 아무리 오디션 출신이라도 신인 남자 아이돌에게 음원 차트 1위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했다.
“아~ 됐다! 후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우리나 잘하자!”
“옳소!”
VTIC은 순식간에 다시 자신들 각자의 관심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청려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질 수도 있겠는데.’
* * *
데뷔 쇼케이스는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뒤풀이는 없었다.
“이제 막 데뷔했는데 TV에 호빵처럼 나올 수는 없잖아. 거하게 먹이긴 그렇겠지~”
“호빵 맛있는데요!”
“얼굴이 잘생겨야지 뜯어먹고 싶게 토실토실하면 안 되잖아.”
“아하!”
차유진은 단번에 납득했다. 나는 큰세진의 놀라운 소통 솜씨를 잠시 감상하다가, 또다시 대화 소재가 되었다.
“그래도 문대 업적은 진짜 뒤풀이감이었지.”
“마, 맞아.”
“훌륭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하하, 이 친구 부끄러워하긴!”
“…….”
나는… 쇼케이스가 끝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박문대의 순발력은 세계제일’이란 말을 기출 변형해서 듣는 중이었다.
이젠 민망하다기보단 떨떠름할 지경이다.
특히 큰세진 저놈은 일부러 더 민망해하라고 저러는 것 같아서 은근히 열 받는군.
“다들 고생 많았고, 잠깐… 쉬자.”
“예이~!”
“드디어.”
어쨌든 뒤풀이 대신 짧은 휴식 시간을 받긴 했다. 류청우의 말에 멤버들은 안도부터 기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응을 선보이며 숙소로 흩어졌다.
참고로 나는 잤다. 같은 방 쓰는 이세진도 자서 수면 질이 향상되었다.
‘잠 안 자도 되는 특성이 그립군.’
그러나 리얼리티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길지 않은 개인 시간을 보낸 뒤엔 다시 거실에 모여야 했다.
“다들 잘 쉰 것 같네.”
“헤헤.”
누가 봐도 간식을 까먹고 온 얼굴의 차유진이 웃었다.
그리고 다 같이 옹기종기 류청우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벌써 공개일이라니까 신기하긴 하다.”
“기, 긴장돼…….”
자정에 데뷔 앨범 음원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자기 걸 안 보고 굳이 하나를 같이 보는 건… 뭐, 그림이 훈훈하게 나오기 때문이겠지.
“어! 넘어갔다!”
금방 스마트폰 시계 단위가 변했다.
“으, 음원 나온 건가?”
“지금 봐요?”
김래빈이 단호하게 정리했다.
“24Hits 차트에 보일 때까지는 한 시간 이상 집계 시간이 걸립니다.”
“한 시간…….”
침음성을 뱉으며 이세진이 부엌으로 사라졌다. 물이라도 가져오려는 것 같았다.
‘…한 시간 후에도 안 뜰 확률이 높을 텐데.’
24시간 집계된 다른 곡들 사이에서 한 시간짜리 성적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VTIC도 한 시간 후 24시간 차트 진입이 87위였다.
아마도 김래빈은 그 사실을 이어서 설명하려는 듯했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곧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
이번에는 설명해도 괜찮았는데?
큰세진은 긴장된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마법소년’ 뮤직비디오부터 보는 건 어때요?”
“아.”
맞다. 그것도 아직 못 봤지.
겨우 숙소에 돌아와서 휴식 시간을 받은 탓에 그것까지 생각해낼 겨를이 없었다.
‘리얼리티 제작진이 이것도 리액션 분량 찍어달라고 했었지.’
“좋은 생각이네.”
“큰 걸로 봐요!”
차유진이 얼른 리모컨을 들고 TV 화면을 위튜브로 바꾸었다.
검색할 것도 없이, 실시간 1위에 뮤직비디오가 떠 있다.
“예에!”
“우, 우와.”
멤버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쳐다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 썸네일 문대다.”
“자, 잘 나왔어.”
썸네일은 교실의 창 앞에서 뒤를 돌아보는 박문대의 모습이었다.
하얀 커튼 뒤로 주홍빛, 자줏빛에 물든 하늘이 역광으로 빛났다.
‘1위 대우인가.’
나는 떨떠름하게 썸네일을 보다가, 차유진이 들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해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오?”
당황한 차유진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마법소년’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영상은 썸네일 화면으로 시작되었다.
텅 빈 교실 한편, 박문대는 노을이 지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노래가 시작되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화면이 바뀌었다.
낡고 부서진 교정이 한낮의 햇살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갑자기 보랏빛으로 물들며 반짝이는 비눗방울이 쏟아졌다.
♬♪♩♪- ♬♪♬♪- ♪♩-
그리고 학교의 일상적인 장소에,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각자의 파트마다 지나갔다.
-세상이 차가워도
꿈은 달콤해
현실이 무너져도
꿈은 선명해
차유진이 다 부수어진 교실에서 홀로 멀쩡한 교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동물 모양 태엽 인형을 모퉁이에 줄 세워, 태엽을 돌렸다. 그림자와 조명 탓에, 인형은 작은 생물처럼 보였다.
-잠기고 싶지 않아
잠들고 싶어 난,
꿈을 그리는데
But reality is breathing
All the time…
양호실 침대에 앉은 선아현이 베갯잇을 뜯었다. 그 안에서 솜 대신 빛나는 민들레 솜털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침대 주변 허공을 반짝였다.
-All that time,
아마 필요했던 거야
미래로 가는 마법이
그래서 난
류청우가 장난감 총으로 화단의 꽃을 쐈다. 비비탄이나 물 대신 빛줄기가 터지며 푸른 꽃잎이 비상한다.
그리고 보랏빛 노을이 지는 옥상에서 펼쳐지는 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미래로 빠져들어 조용히
-Cast a spell
Make a dream come
true true true
-꿈으로 잠들어 파랗게
후렴이 끝나고 나오는 간주에는 박자가 좀 더 쪼개지며 화려한 댄스 브레이크가 이어졌다.
한낮의 옥상이 교차 편집되며, 보랏빛 배경 장면의 오묘함이 더 깊어졌다.
“저거 메이크업도 새로 해서 다들 고생 많으셨지.”
“맞아요! 여러분, 잘 보시면… 이 낮에 찍은 거랑, 노을 질 때 찍은 거랑 의상이랑 메이크업에 차이가 있습니다!”
큰세진이 카메라에 대고 설명했다. 사실이었다.
낮 배경은 좀 더 맨 얼굴에 가까웠고 노을 배경은 뭔 반짝이에 눈 밑에 홍조 비슷한 것까지 넣어놨다.
의상도 노을 배경을 찍을 때 액세서리를 더 붙였었다.
‘그걸 하루 만에 찍으려니 모두 죽을 맛이었겠지.’
다행히 고생한 보람이 있게도, 컷은 잘 나왔다.
♬♪♩♪- ♬♪♬♪- ♪♩-
그리고 들어가는 2절.
최면을 거는 것 같은 묘한 손가락 동작이 끝나고 뒤에서 김래빈이 나왔다.
그리고 느리고 복잡한, 아주 묘한 리듬으로 멜로디 랩을 했다.
교차되는 것은 복도의 부서진 캐비닛이 겹겹이 쌓인 더미 위에 앉아서 송곳을 던졌다 받는 김래빈이다.
“오!”
“목소리 좋다.”
“…감사합니다.”
김래빈이 약간 머쓱하지만, 자랑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근데 어쩌다 송곳같이 살벌한 물건을 골랐습니까, 래빈 씨?”
“…귀여워서……?”
“……?”
상상 이상의 대답에 큰세진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기분 좋게 대신 대답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 귀여워 래빈아.”
뮤직비디오 때깔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 안심했는지, 리액션들이 좀 편해졌다.
이어진 화면에서는 마지막 타자로 이세진이 나오고 있었다.
이세진은 학교 건물 안에서 정문 현관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교정이 보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마지막 후렴 전 브릿지.
리프 멜로디인 오르골 소리가 톤이 낮아지며, 그 위에 보컬 멜로디가 똑같이 따라갔다.
-숨어도 감출 수 없는 건
아마도 마법일 거야
숨이 벅차고 떨리는
꿈.
이세진은 유리문을 부쉈다.
그 순간,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컷이 돌아갔다.
테이프를 뒤로 돌리는 것 같은 기묘한 속삭임이 지나가더니, 곡 없이 컷이 삽입되었다.
박문대가 학교 밖에서 교정으로 걸어들어왔다.
이윽고 현관 앞에 멈춰선 박문대는, 두 손을 모두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달칵.
자물쇠를 채웠다.
…달칵.
필름이 돌아가며, 안무와 함께 마지막 후렴이 터져 나왔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미래로 잠들어 조용히
-Cast a spell
Make a dream come
true true true
-꿈으로 빠져들어 파랗게
어느새 안무가 펼쳐지는 옥상 주변은 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옥상을 감싼 난간이 깨지며 투명한 결정 맺혔다. 그리고 프리즘처럼 빛을 왜곡했다.
배경을 어지럽히는 빛처럼, 안무가 더 복잡하고 곡선이 강해졌다.
♬♪♩♪- ♬♪♬♪- ♪♩-
안무의 마지막.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대형을 서클로 바꿨다. 그들이 옥상에 머리를 맞대고 동그랗게 눕는 순간 곡이 끝났다.
툭.
보랏빛 비눗방울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타나는 검은 화면.
느릿하게 편곡된 ‘마법소년’의 Inst가 흐르는 가운데, 마치 단편영화처럼 고전적인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그제야 멤버들의 말문이 다시 터졌다.
“와!!”
“너무 잘 나왔는데요?”
“감독님 감사합니다.”
“머, 멋지게 잘 나온 것 같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통에 아무도 서로의 말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다.
“굉장히 음, 의미심장하게 나와서 재밌네.”
“팬분들께서 다양한 세부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우린 좋았는데, 팬분들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분위기는 이 이상 따스할 수 없을 만큼 따스해졌다.
‘스타트를 잘 끊었으니 들뜰 만도 하지.’
덕분에 음원 차트를 확인할 때도 불편할 정도로 긴장감이 곤두서 있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
“…!”
“와! 진입했네~”
85위, 88위 진입이었다.
‘…한 곡은 VTIC보다도 약간 높은데.’
전국적으로 흥했던 오디션의 대중성을 등에 업은 오픈 빨은 생각 이상이었다.
‘미쳤군.’
하지만 ‘실시간 진입 1위’ 같은 말에 더 익숙하던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인지, 멤버들은 그냥저냥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머리로는 알아도 당장 눈에 보이는 건 80위권이니까.
그래서 더 격한 반응은 다음에 터졌다.
“다, 다 우리 곡…….”
“헉.”
아직 실시간 차트가 살아 있는 다른 음원 사이트들에서는 테스타의 타이틀곡이 1위, 2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심지어 7위 안에 이번 앨범에서 발표한 4곡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물론 잠시 후면 VTIC에게 순식간에 밀릴 것이다. 그래도 미친 기세였다.
그제야 실감이 난 멤버들은 경악에 휩싸인 채로 스마트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캐, 캡처하자.”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직 음악방송에 출연하지도 않은, 활동 극 초반부터 터진 호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