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화
피곤하다.
눈이 뻑뻑했다.
이 무식한 놈들이 77명을 다 심사할 동안 참가자들을 세트에서 못 벗어나게 한 것이다.
심지어 중간 브레이크 타임 때도 조를 나눠서 화장실만 보내줬다.
혈기왕성한 어린애 수십 명을 다 관리하기 불편해서 그런 거겠지만, 덕분에 인내심이 갈수록 바닥나고 있다.
상태창 한 번 보면 다 각이 잡히는 입장에서는 모든 무대가 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현역 아이돌 무대도 행사 찍으러 가서 질리게 봤는데 새삼 연습생의 무대가 감명 깊을 리 없었다.
물론 두세 번 정도 인상 깊은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저 위의 과하게 화려한 소파에 앉은 두 명을 힐끗 쳐다보았다.
현재 1, 2등이다. 같은 유명기획사 출신인데, 확실히 잘했다. 상태창도 화려했고.
둘 다 데뷔하는 데다가 한 명은 1등이었지.
저놈들한테 붙어야 데뷔 확률이 높아지긴 할 텐데… 이 나이 먹고 십 년 전에나 어울렸을 청소년 서열놀음을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일단 팀 전이 나올 때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슬슬 심사가 끝나갔다.
“류청우 참가자는… 9위입니다!”
밀었군. 마지막 참가자가 이미 빽빽이 차 있던 상위권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내 등수는 이제 22위였다.
대단히 선방했는걸.
사실 수치적으로 나보다 실력이 좋았던 참가자를 한… 7명은 제친 것 같았다.
과대평가가 티 나지 않게 앞으로도 잘 관리해야겠다.
“감사합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전 양궁 국가대표가 씩 웃으며 무대를 나왔다.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도 땄었다던데 잘 모르겠다. 데뷔 조에 들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어쨌든 군대는 안 갈 테니 기획사가 좋아할 인재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나… 군대 가야 하나.
예전 몸에선 4급 받고 시청 사회복무로 빠졌었는데.
생각해 본 적 없던 무서운 화제가 머릿속을 점령하기 직전에 촬영이 끝났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참가자분들 바로 이동하실 게요~”
“옙~”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박수와 대답이 나왔다.
스텝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면서도 머리가 아찔했다.
이번 촬영 끝나자마자 ‘박문대’의 신검 여부부터 확인해야겠다.
“등수표 받으시고~ 탑승하시면 됩니다!”
숙소는 세트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시즌 1의 대성공 이후 방송국 뒷산부지에 새롭게 만든 숙소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운송수단을 이용했는데, 이유는 당연했다.
방송 컷 뽑아내려는 거지.
등수에 따라 운송 수단이 달랐으니 말이다.
“참가자분들! 10위까지 이쪽으로 와주세요~”
“헐, 리무진!”
“우와~ 진짜 좋아요!”
“대박.”
카메라에 엄지를 치켜들며 검은 리무진에 탑승하는 최상위권 참가자들 뒤로 최하위권 등수의 참가자들이 보였다.
51위부터 77위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애써 긍정적인 척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척 애를 쓰려 하지만, 울 것 같은 표정을 참는 게 곳곳에 보였다.
그 참가자들을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들도.
불행을 자극적으로 뽑는 데에 도가 텄다.
솔직히, 좀 징그러운 판이다.
“오, 좋은걸?”
11위부터 25위까지는 프리미엄 버스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세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버스를 먼저 탑승했다.
같이 앉는 불상사를 피하고 싶어서 약간 기다렸다가 적당히 나도 탑승했다.
그러자 우당탕 뒤에서 누군가 황급히 따라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며 내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선아현이었다.
“……?”
너는 왜…?
뭐, 됐다. 말도 안 거니 조용해서 좋았다.
* * *
숙소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등수별로 다른 층을 사용했다.
팀전 미션이 나올 때까지는 이 유사 카스트 제도가 계속될 것이다.
11위부터 25위까지는 널찍한 5인실이 배정되었다. 등수별로 5명씩 끊어서 한 방인 덕에 20위인 이세진과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와~ 나! 이 침대 찜!”
이층 침대 2채와 싱글 침대 1채로 구성된 침실에 입장하자마자 한 놈이 작위적으로 싱글 침대에 뛰어들었다.
카메라에 개구지고 쾌활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나는 적당히 이층 침대 아래쪽을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후다닥 선아현이 내 위쪽 침대에 짐을 올렸다.
“…….”
쳐다보니 고개를 숙인다. 어째 꼬붕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
이후 지급받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집합할 때도 졸졸 따라왔다.
가만 보니 기가 센 연예인 지망생들이 부담스러워서인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일반인이 편한 거겠지.
당장 엮여서 문제 될 인물도 아닐 것 같으니 그냥 뒀다.
다만, 언쟁만 해도 내 쪽에 인성으로 트집이 잡힐 수 있으니 굳이 같은 팀으로 고를 만큼 친해지진 말아야겠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맞춤형 이동클래스!”
MC가 과장된 말투로 이미 다들 알고 있을 시스템을 소개했다.
“여러분은 지금 심사위원분들께 받은 성적을 바탕으로 보컬, 댄스의 등급이 정해지셨습니다!”
“네!”
“각 클래스는 상중하로 나뉘며, 각각 수준별 맞춤 트레이닝을 통해 실력향상을 도모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오디션과 비슷했다. 이다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실시간으로 클래스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모든 것은 여러분의 노력과 정진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보컬 중급’에서 트레이닝 중에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갑자기 잘하게 된다면, 다음 타임부터 ‘보컬 상급’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다.
물론, 못하면 바로 클래스가 내려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짓을 열흘간 한 후 테마곡 개별 평가를 통해 최종 등급이 결정된다.
어린애들 멘탈을 사정없이 태워서 분량을 뽑겠다는 의미였다.
“이번 배지는… 박문대 참가자!”
“예.”
나는 예상대로 ‘보컬 상급’과 ‘댄스 하급’을 받았다.
금색으로 빛나는 보컬 배지와 칙칙한 동색 댄스 배지를 어깨에 달자니 좀 남사스러웠다.
배지는 어찌나 과장스러운지 싸구려 티가 났다.
참고로, 배지가 아예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이 경우를 ‘폐급’이라고 불렀다.
“배지가 없는 분들은… 등급 외입니다. 이분들은 하급 클래스를 함께 듣지만, 밤에 시간 외 특수 트레이닝도 받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악물고 한다면 그냥 하급보다 카메라를 받기 유리한 위치였다. 스토리 짜기도 좋고.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다른 생각이 들겠지.
저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역배우 출신이 좋은 예시였다.
십 년 전에 천만 명이 본 스릴러 영화에 나왔다던데, 이후 불우한 사정으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구구절절 말하더라.
저 참가자는 댄스가 등급 외 판정, 보컬도 하급이다. 상태창으로는 각각 F급 D급.
아이돌 자체보다는 방송 재기를 노리고 나왔을 것이다.
단지 좀 놀라운 점은, 저쪽 이름도 ‘이세진’이었다.
동명이인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데뷔한 쪽은 다른 쪽이겠지만.
왜 저쪽이 데뷔한 이세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냐고? 딱 봐도 초반 화제성용으로 써먹고 버릴 패처럼 보이니까.
일단 기분 상한 걸 못 참는지 대놓고 표출했다.
‘PD가 좋아하겠군.’
이윽고 배지가 다 배부되자 거대한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지금, 여러분이 연습할 곡이 공개됩니다. 앞으로 열흘간!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이 곡을 마스터해서 의 주주님들께 선보이게 됩니다!”
내년까지 질리도록 온갖 장소에서 흘러나올 곡이었다. 심지어 미디어를 끊은 공시생인 나도 후렴 안무까지 기억났다.
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라 할 만한 동작이었다.
“이번 재상장 시즌의 곡… 입니다!”
귀에 붙는 비트와 함께 적당히 벅차고 참아낼 만큼 유치한 가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 서 있는 나
아직은 모를 거야
내 안에 요동치는 STAR LIGHT
섬광처럼 네게 다가갈걸
화면에 댄서가 나타나 안무 동작을 소화했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오묘한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깨달았다.
후렴의 그 난이도는 훼이크였다.
대중성을 위해 거기만 따라 하기 쉽게 만들어놓고 도입부는 더럽게 복잡하게 구성해 둔 것이다.
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1절이 훅 지나갔다. 그리고 후렴이 터져 나왔다.
-오늘 무대 위에 빛나는 건
바로 나!
그래 네가 만들 Shining Star
바로 나!
마침내 깨어나 빛을 발해
잘 봐, 이 순간~
내가 제일 빛나는걸!
심지어 후렴의 ‘그 안무’도 발재간까지 보니, 하다가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마음을 정했다.
“상태창.”
그냥… 자지 말자.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활성화.”
* * *
칼로리. 칼로리를 잘 계산해야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안 자고 활동하는 만큼 칼로리 소모가 심할 것을 진작 알아차려야 했단 뜻이다. 첫날 밤을 샐 때 배가 고파서 짜증을 낼 뻔했다.
‘이, 이, 이거… 드실래요?’
그리고 선아현이 초콜릿바를 줬다. 고마워서 몇 마디 하다 보니 말을 놨다.
‘박문대’랑 동갑이더라. 시퍼런 어린애랑 말을 놓으니 정말 회춘한 실감이 났다.
이튿날부터는 삼시세끼와 음료수까지 최대한 입에 욱여넣었다. 밥이야 뭐… 짬밥 맛이었지만, 양 제한이 없다는 점은 좋았다.
그렇게 아흐레째 되는 날.
안무를 다 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로 없이 밤 시간을 다 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레벨업도 몇 단계 이뤄졌다.
[이름 : 박문대 (류건우)]
Level : 7
칭호 : 없음
가창 : A-
춤 : D
외모 : C+
끼 : C
특성 : 잠재력 무한,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D)
!상태이상 :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남은 포인트 : 3
500번까지는 백 단위 업적이 제법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포인트 분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지금 해봤자 큰 임팩트가 없을 테니까.
‘오늘까지… 5명.’
벌써 5명이나 댄스 하급에서 중급으로 승급했다.
겨우 며칠 트레이닝받았다고 실력이 극적으로 늘어난 사람은 드물 테니, 대부분 첫 심사를 망쳤다가 이제 자기 실력을 찾아간 거겠지.
여기에 포함되어 봤자 묶여서 지나가 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럼 승급의 의미가 없었다. 실력이 늘어났다는 걸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줘야 했다.
심지어 나는 쓸 만한 장면도 충분했다.
첫날부터 안무가에게 깨졌기 때문이다.
-다시!
-발, 왼발 굽히고!
-팔을 왜 휘둘러? 위로 잡아!
첫째 날, 클래스가 시작하자마자 안무가는 말을 놓고 참가자들을 전 방위로 무자비하게 조졌다.
덕분에 분위기는 갈수록 초상집처럼 무거워졌다.
그리고 클래스가 끝날 때 즈음, 안무가는 나를 콕 집어 말을 걸었다.
-문대야.
-예.
-너 안무 계속 이러면 다음 평가에서 답 없어.
-…….
내가 이 클래스에서 특출나게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급’ 클래스였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중간 정도일까. 몸치 아닌 일반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내가 제일 첫 등수가 높았다. 그러니 이건 기대치의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시즌과 비슷한 대사도 나와주고.
-아니, 나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등수를 잘못 줬어. 너 애초에 그 등수를 받을 실력이 아니었던 것 같아.
정답이었다. 아마 본인도 알면서 방송 재미를 위해서 이러는 거겠지.
-제대로 하자, 응? 정신 차리고.
-예.
정말 운 좋게 재능이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며칠 트레이닝받는다고 갑자기 없던 기본기가 생길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니 그냥 결심한 것처럼 고개나 끄덕이자.
알맹이 없는 비판과 조언은 감흥 없었다. 하지만 남이 보기에 마음 상할만한 일로 보인다는 게 중요했다.
이런 자극적인 소재는 아까워서라도 살려야 했다.
그러니 나는 기다려야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포기하지 말고.”
땀에 절어 헉헉거리는 참가자들의 인사에 안무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스텝들이 카메라를 정리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의 폰을 들여다보며 클래스를 나갔다.
오전의 댄스 클래스는 이걸로 끝.
이제 식사 후 보컬 클래스다.
점심은 불고기와 미역국이 나왔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먹어뒀다. 그리고 간단한 샤워 후에, 홀로 보컬 상급 클래스로 이동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백할 것이 있다.
“그럼 문대가 불러봐야겠네~”
보컬은 날로 먹는 중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화
피곤하다.
눈이 뻑뻑했다.
이 무식한 놈들이 77명을 다 심사할 동안 참가자들을 세트에서 못 벗어나게 한 것이다.
심지어 중간 브레이크 타임 때도 조를 나눠서 화장실만 보내줬다.
혈기왕성한 어린애 수십 명을 다 관리하기 불편해서 그런 거겠지만, 덕분에 인내심이 갈수록 바닥나고 있다.
상태창 한 번 보면 다 각이 잡히는 입장에서는 모든 무대가 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현역 아이돌 무대도 행사 찍으러 가서 질리게 봤는데 새삼 연습생의 무대가 감명 깊을 리 없었다.
물론 두세 번 정도 인상 깊은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저 위의 과하게 화려한 소파에 앉은 두 명을 힐끗 쳐다보았다.
현재 1, 2등이다. 같은 유명기획사 출신인데, 확실히 잘했다. 상태창도 화려했고.
둘 다 데뷔하는 데다가 한 명은 1등이었지.
저놈들한테 붙어야 데뷔 확률이 높아지긴 할 텐데… 이 나이 먹고 십 년 전에나 어울렸을 청소년 서열놀음을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일단 팀 전이 나올 때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슬슬 심사가 끝나갔다.
“류청우 참가자는… 9위입니다!”
밀었군. 마지막 참가자가 이미 빽빽이 차 있던 상위권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내 등수는 이제 22위였다.
대단히 선방했는걸.
사실 수치적으로 나보다 실력이 좋았던 참가자를 한… 7명은 제친 것 같았다.
과대평가가 티 나지 않게 앞으로도 잘 관리해야겠다.
“감사합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전 양궁 국가대표가 씩 웃으며 무대를 나왔다.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도 땄었다던데 잘 모르겠다. 데뷔 조에 들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어쨌든 군대는 안 갈 테니 기획사가 좋아할 인재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나… 군대 가야 하나.
예전 몸에선 4급 받고 시청 사회복무로 빠졌었는데.
생각해 본 적 없던 무서운 화제가 머릿속을 점령하기 직전에 촬영이 끝났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참가자분들 바로 이동하실 게요~”
“옙~”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박수와 대답이 나왔다.
스텝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면서도 머리가 아찔했다.
이번 촬영 끝나자마자 ‘박문대’의 신검 여부부터 확인해야겠다.
“등수표 받으시고~ 탑승하시면 됩니다!”
숙소는 세트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시즌 1의 대성공 이후 방송국 뒷산부지에 새롭게 만든 숙소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운송수단을 이용했는데, 이유는 당연했다.
방송 컷 뽑아내려는 거지.
등수에 따라 운송 수단이 달랐으니 말이다.
“참가자분들! 10위까지 이쪽으로 와주세요~”
“헐, 리무진!”
“우와~ 진짜 좋아요!”
“대박.”
카메라에 엄지를 치켜들며 검은 리무진에 탑승하는 최상위권 참가자들 뒤로 최하위권 등수의 참가자들이 보였다.
51위부터 77위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애써 긍정적인 척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척 애를 쓰려 하지만, 울 것 같은 표정을 참는 게 곳곳에 보였다.
그 참가자들을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들도.
불행을 자극적으로 뽑는 데에 도가 텄다.
솔직히, 좀 징그러운 판이다.
“오, 좋은걸?”
11위부터 25위까지는 프리미엄 버스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세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버스를 먼저 탑승했다.
같이 앉는 불상사를 피하고 싶어서 약간 기다렸다가 적당히 나도 탑승했다.
그러자 우당탕 뒤에서 누군가 황급히 따라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며 내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선아현이었다.
“……?”
너는 왜…?
뭐, 됐다. 말도 안 거니 조용해서 좋았다.
* * *
숙소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등수별로 다른 층을 사용했다.
팀전 미션이 나올 때까지는 이 유사 카스트 제도가 계속될 것이다.
11위부터 25위까지는 널찍한 5인실이 배정되었다. 등수별로 5명씩 끊어서 한 방인 덕에 20위인 이세진과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와~ 나! 이 침대 찜!”
이층 침대 2채와 싱글 침대 1채로 구성된 침실에 입장하자마자 한 놈이 작위적으로 싱글 침대에 뛰어들었다.
카메라에 개구지고 쾌활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나는 적당히 이층 침대 아래쪽을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후다닥 선아현이 내 위쪽 침대에 짐을 올렸다.
“…….”
쳐다보니 고개를 숙인다. 어째 꼬붕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
이후 지급받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집합할 때도 졸졸 따라왔다.
가만 보니 기가 센 연예인 지망생들이 부담스러워서인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일반인이 편한 거겠지.
당장 엮여서 문제 될 인물도 아닐 것 같으니 그냥 뒀다.
다만, 언쟁만 해도 내 쪽에 인성으로 트집이 잡힐 수 있으니 굳이 같은 팀으로 고를 만큼 친해지진 말아야겠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맞춤형 이동클래스!”
MC가 과장된 말투로 이미 다들 알고 있을 시스템을 소개했다.
“여러분은 지금 심사위원분들께 받은 성적을 바탕으로 보컬, 댄스의 등급이 정해지셨습니다!”
“네!”
“각 클래스는 상중하로 나뉘며, 각각 수준별 맞춤 트레이닝을 통해 실력향상을 도모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오디션과 비슷했다. 이다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실시간으로 클래스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모든 것은 여러분의 노력과 정진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보컬 중급’에서 트레이닝 중에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갑자기 잘하게 된다면, 다음 타임부터 ‘보컬 상급’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다.
물론, 못하면 바로 클래스가 내려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짓을 열흘간 한 후 테마곡 개별 평가를 통해 최종 등급이 결정된다.
어린애들 멘탈을 사정없이 태워서 분량을 뽑겠다는 의미였다.
“이번 배지는… 박문대 참가자!”
“예.”
나는 예상대로 ‘보컬 상급’과 ‘댄스 하급’을 받았다.
금색으로 빛나는 보컬 배지와 칙칙한 동색 댄스 배지를 어깨에 달자니 좀 남사스러웠다.
배지는 어찌나 과장스러운지 싸구려 티가 났다.
참고로, 배지가 아예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이 경우를 ‘폐급’이라고 불렀다.
“배지가 없는 분들은… 등급 외입니다. 이분들은 하급 클래스를 함께 듣지만, 밤에 시간 외 특수 트레이닝도 받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악물고 한다면 그냥 하급보다 카메라를 받기 유리한 위치였다. 스토리 짜기도 좋고.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다른 생각이 들겠지.
저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역배우 출신이 좋은 예시였다.
십 년 전에 천만 명이 본 스릴러 영화에 나왔다던데, 이후 불우한 사정으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구구절절 말하더라.
저 참가자는 댄스가 등급 외 판정, 보컬도 하급이다. 상태창으로는 각각 F급 D급.
아이돌 자체보다는 방송 재기를 노리고 나왔을 것이다.
단지 좀 놀라운 점은, 저쪽 이름도 ‘이세진’이었다.
동명이인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데뷔한 쪽은 다른 쪽이겠지만.
왜 저쪽이 데뷔한 이세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냐고? 딱 봐도 초반 화제성용으로 써먹고 버릴 패처럼 보이니까.
일단 기분 상한 걸 못 참는지 대놓고 표출했다.
‘PD가 좋아하겠군.’
이윽고 배지가 다 배부되자 거대한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지금, 여러분이 연습할 곡이 공개됩니다. 앞으로 열흘간!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이 곡을 마스터해서 의 주주님들께 선보이게 됩니다!”
내년까지 질리도록 온갖 장소에서 흘러나올 곡이었다. 심지어 미디어를 끊은 공시생인 나도 후렴 안무까지 기억났다.
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라 할 만한 동작이었다.
“이번 재상장 시즌의 곡… 입니다!”
귀에 붙는 비트와 함께 적당히 벅차고 참아낼 만큼 유치한 가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 서 있는 나
아직은 모를 거야
내 안에 요동치는 STAR LIGHT
섬광처럼 네게 다가갈걸
화면에 댄서가 나타나 안무 동작을 소화했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오묘한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깨달았다.
후렴의 그 난이도는 훼이크였다.
대중성을 위해 거기만 따라 하기 쉽게 만들어놓고 도입부는 더럽게 복잡하게 구성해 둔 것이다.
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1절이 훅 지나갔다. 그리고 후렴이 터져 나왔다.
-오늘 무대 위에 빛나는 건
바로 나!
그래 네가 만들 Shining Star
바로 나!
마침내 깨어나 빛을 발해
잘 봐, 이 순간~
내가 제일 빛나는걸!
심지어 후렴의 ‘그 안무’도 발재간까지 보니, 하다가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마음을 정했다.
“상태창.”
그냥… 자지 말자.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활성화.”
* * *
칼로리. 칼로리를 잘 계산해야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안 자고 활동하는 만큼 칼로리 소모가 심할 것을 진작 알아차려야 했단 뜻이다. 첫날 밤을 샐 때 배가 고파서 짜증을 낼 뻔했다.
‘이, 이, 이거… 드실래요?’
그리고 선아현이 초콜릿바를 줬다. 고마워서 몇 마디 하다 보니 말을 놨다.
‘박문대’랑 동갑이더라. 시퍼런 어린애랑 말을 놓으니 정말 회춘한 실감이 났다.
이튿날부터는 삼시세끼와 음료수까지 최대한 입에 욱여넣었다. 밥이야 뭐… 짬밥 맛이었지만, 양 제한이 없다는 점은 좋았다.
그렇게 아흐레째 되는 날.
안무를 다 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로 없이 밤 시간을 다 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레벨업도 몇 단계 이뤄졌다.
Level : 7
칭호 : 없음
가창 : A-
춤 : D
외모 : C+
끼 : C
특성 : 잠재력 무한,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D)
!상태이상 :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남은 포인트 : 3
500번까지는 백 단위 업적이 제법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포인트 분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지금 해봤자 큰 임팩트가 없을 테니까.
‘오늘까지… 5명.’
벌써 5명이나 댄스 하급에서 중급으로 승급했다.
겨우 며칠 트레이닝받았다고 실력이 극적으로 늘어난 사람은 드물 테니, 대부분 첫 심사를 망쳤다가 이제 자기 실력을 찾아간 거겠지.
여기에 포함되어 봤자 묶여서 지나가 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럼 승급의 의미가 없었다. 실력이 늘어났다는 걸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줘야 했다.
심지어 나는 쓸 만한 장면도 충분했다.
첫날부터 안무가에게 깨졌기 때문이다.
-다시!
-발, 왼발 굽히고!
-팔을 왜 휘둘러? 위로 잡아!
첫째 날, 클래스가 시작하자마자 안무가는 말을 놓고 참가자들을 전 방위로 무자비하게 조졌다.
덕분에 분위기는 갈수록 초상집처럼 무거워졌다.
그리고 클래스가 끝날 때 즈음, 안무가는 나를 콕 집어 말을 걸었다.
-문대야.
-예.
-너 안무 계속 이러면 다음 평가에서 답 없어.
-…….
내가 이 클래스에서 특출나게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급’ 클래스였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중간 정도일까. 몸치 아닌 일반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내가 제일 첫 등수가 높았다. 그러니 이건 기대치의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시즌과 비슷한 대사도 나와주고.
-아니, 나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등수를 잘못 줬어. 너 애초에 그 등수를 받을 실력이 아니었던 것 같아.
정답이었다. 아마 본인도 알면서 방송 재미를 위해서 이러는 거겠지.
-제대로 하자, 응? 정신 차리고.
-예.
정말 운 좋게 재능이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며칠 트레이닝받는다고 갑자기 없던 기본기가 생길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니 그냥 결심한 것처럼 고개나 끄덕이자.
알맹이 없는 비판과 조언은 감흥 없었다. 하지만 남이 보기에 마음 상할만한 일로 보인다는 게 중요했다.
이런 자극적인 소재는 아까워서라도 살려야 했다.
그러니 나는 기다려야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포기하지 말고.”
땀에 절어 헉헉거리는 참가자들의 인사에 안무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스텝들이 카메라를 정리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의 폰을 들여다보며 클래스를 나갔다.
오전의 댄스 클래스는 이걸로 끝.
이제 식사 후 보컬 클래스다.
점심은 불고기와 미역국이 나왔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먹어뒀다. 그리고 간단한 샤워 후에, 홀로 보컬 상급 클래스로 이동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백할 것이 있다.
“그럼 문대가 불러봐야겠네~”
보컬은 날로 먹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