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8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81화
몇 분 후.
“아현이 오늘도 멋졌다~!”
“고… 고마워…!”
백스테이지, 막 솔로 무대를 마치고 온 선아현이 황급히 의상을 갈아입고 합류했다. 스탭이 붙어서 붉은 페인트 자국이 남은 목을 물티슈로 빠르게 정리했다.
나는 엄지를 내미는 큰세진을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선아현 무대가 인상적이긴 했지.’
기묘한 호텔 스토리의 클라이맥스를 앞둔 마지막 파트.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갈 것인가, 호텔 밖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
‘그리고 관객들은 첫 공연 때는 전자를 골랐고….’
이번에도 전자를 골랐다. 첫 공연 당시 그 무대가 충격적으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페인트를 뒤집어쓴 선아현의 ‘RED’ 선택지가.
-다 혼잣말이라니까
너는 듣지 마
쿵.
거미줄처럼 복잡한 지하실의 배관을 구현한 무대 장치 사이. 그 위아래를 교묘하게 매달리듯 오가며 강렬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
벗어날 수 없이 예정된 사랑에 관한 느린 템포의 수록곡이다. 김래빈은 그 곡에 테레민을 써서 더 실험적으로 편곡해 이질감을 고조시켰다.
그에 맞춰서 선아현의 퍼포먼스도 곡이 흐를수록 더 파괴적이고 공격적이 됐다.
그리고 현대 무용보다도 발레에 가까운 우아한 안무들이 사이사이 찌릿한 위화감을 더 조성하면.
으아아아아아!
나는 직전에 터진 관객들의 환호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재밌겠지.’
괜히 만장일치로 선아현을 마지막 솔로곡으로 빼둔 게 아니었다.
흐뭇한 얼굴로 녀석들의 대화를 보던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선택지 따라서 무대가 달라지는 순서는 끝났으니까 더 수월할 거야. 확실하게 몰입하면서 가보자.”
“네!”
그렇다. 이제 선택지를 고르는 건 끝났다. 애초에 이전에도 모든 무대에 선택지가 붙진 않았고 말이다.
‘그랬다간 퀄리티 관리가 안 되지.’
세트리스트가 두 배가 되는 거니까.
절반 정도의 무대에만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중 솔로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부담을 최소화했다.
나도 그랬고.
…내 솔로 무대 말이다.
“…….”
나는 다시금 직전의 내 무대를 떠올렸다.
노래에 모든 기력과 힘을 쏟아붓고 다른 건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것 같다.
그게 바로 몇 분 전이라는 게 이상했다.
정말로.
“…….”
“…박문대.”
“예?”
고개를 들자, 배세진이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내가 정신 나가 보였나 싶군.
“너는… 정말 노래를 잘하더라. 솔로 무대 말이야.”
다행히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크흠. 뭐, 이런 말도 너한테는 새삼스럽겠지만…….”
배세진은 뭐라도 덕담을 더 건네보려는 것 같았으나, 주변에 다 들리게 귓속말을 해오는 다른 녀석에게 막혔다.
“형, 말할 필요 없어요. 카메라가 이미 했어요!”
“…? 무슨 소리….”
“배세진 형이 문대 형 노래 들으면서 이렇게 눈 감는 거요. 카메라가 찍었어요. 그거 감동한 사람이에요. 맞죠?”
“……!”
차유진은 비하인드 카메라 감독의 동작에 이어 배세진이 감격에 젖어 감상하는 듯 진중한 표정까지 절묘하게 묘사하더니, 눈을 찡긋거렸다.
“다들 곧 알 거예요.”
배세진의 얼굴이 야차처럼 시뻘게졌다.
“으하하핫!”
큰세진을 필두로 멤버들이 웃으며 백스테이지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배세진도 차유진에게 악의가 없고 그냥 장난이라는 것을 아는지 금방 표정을 풀고 한숨이나 쉬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놈들이 이러다 혹시 싸울까 감시했을 테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분위기는 좋았다.
‘우리도 서로 익숙해진 거겠지.’
그리고 지쳐서 헐떡대는 와중에도 다들 웃으며 떠들 기운이 있는 건, 이 콘서트가 만족스러워서 가능한 일일 터다.
어제 콘서트의 백스테이지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들은 그걸 언급도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고마웠다.
나는 녀석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VCR 2분 남았대요.”
“오오!”
나는 신호를 주는 스탭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다른 녀석들과 함께 자세를 바로잡았다.
머리 위에서는 VCR의 내레이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류청우의 목소리다.
[뒤를 돌아봐.]
지금 VCR에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류청우가 나타나서 티켓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
아까 선아현의 무대 선택지에서 지하실로 갔든 호텔 밖으로 나갔든 간에 똑같다.
[어서.]
그리고 카메라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시점으로, 영상이 끝난다.
고오오오오-
그렇게 이제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선택지 없이, 하나에 완전히 집중해서 쏟아 넣은 무대들이.
이번 콘서트의 클라이맥스로.
치이이익.
눈앞의 무대 장치가 열린다. 드라이아이스가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고, 눈앞에서 응원봉의 빛 물결이 번진다.
처음도 아닌데 심장이 울렁거렸다.
‘최고를 보여줘야 한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나는 인이어에 들리는 클릭 소리에 맞추어,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무대 장치였던 호텔 로비가 열리면서 드러날 공간은… 바로 서커스 천막이다.
[Welcome to the HUNTHOUSE!]
그리고 서커스답게, 화려한 무대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것이다.
차유진이 씩 웃으며 대형 가운데에서 손을 올렸다.
“You, have my dice!”
와아아아악!!
부터 까지.
최근 히트곡과 이전 타이틀곡들 서너 곡이 연달아 몰아치는 구성이었다.
제일 신나는 구간!
퍼포머도 관객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며, 현장의 열기를 달군다.
“Woooo-”
나는 핸드 마이크로 클라이맥스 파트를 내질렀다. 내키는 데까지 질렀다가 정확히 기분 좋은 기점에서 걸리는 것 없이 초고음이 터졌다.
목이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안무 중 눈이 마주치자 김래빈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뭐지?’
아니,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마음껏 쓰자.
나는 마지막 까지, 원하는 만큼 목소리를 썼다.
목에 제한이 없었다.
아아아아악!!
마지막 곡이 끝나는 순간 더없이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관객석 끝까지.
내 귀와 눈이 모두 무대에 대한 반응으로 가득 찼다.
“후욱.”
숨을 헐떡이는데도 고통스럽지 않다.
나는 다른 녀석들과 대형을 맞추어 돌출 무대에서 뛰어서 돌아갔다.
전광판과 같은 위치까지.
[THANK YOU]
함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 전광판이 번뜩였다.
눈앞으로 천막이 내려오듯 무대 장치가 내려오며,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정적.
“…….”
“……후욱.”
잠시간의 침묵 끝에.
“고생하셨습니다!”
“의상 준비 끝났어요!”
백스테이지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나는 멈춰 서서, 방금 본 관객석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열기와 반응.
‘만족시켰다.’
그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콘서트에서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
나는 핸드 마이크를 내려놓으면서도, 그것에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짜릿했지만 압도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 *
와아아아!
큰달은 양손을 꽉 쥐었다.
‘대단했어!’
직전, 메들리에 가까운 15분간의 어마어마한 무대 밀도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준이었다.
게다가 여지를 주지도 않았다.
곡이 끝나는 순간 테스타는 깔끔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서커스 천막이 훅 내려가듯 장치가 다시 닫히고 무대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다 끝났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관객석에는 불이 들어왔다. 공연이 끝났으니 일어나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VR로 보고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앵콜!’
암묵적인 합의였다. 큰달은 신나서 손을 움직였다. 응원봉 불빛이 흔들렸다.
참고로 이 앵콜을 기다리면서는 주로 팬송, 혹은 가수와 팬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곡을 부르곤 했다.
아니면 이벤트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어제는… 제대로 못 했겠지.’
박문대의 갑작스러운 불참으로 이벤트는 흐지부지되었다.
‘원래 최신 팬송인 을 무반주로 다 같이 1절만 부르기로 했다던데.’
그리고 오늘도 상황이 갑자기 수습된 만큼, 조심스러웠는지 특별한 이벤트는 기획하지 않은 듯했다.
단지 산발적으로 앵콜과 박수,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는 구호가 남아 있었을 뿐.
‘…죄송해요.’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
큰달은 약간 마음이 가라앉은 채로, 관객석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몇 분이나 시간이 흘렀을 때.
둥.
VCR에 낡은 호텔 로비가 떠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
관객석에서는 응원봉이 다시 원격제어되며 선명하게 색을 가득 채운다.
노란색, 분홍색, 푸른색.
테스타의 그룹 상징색들이었다.
그리고.
[아니, 또 오셨어요?]
이세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VCR에서 울린다.
[어쩌죠. 저희 서커스가 더 준비한 게 없는데…….]
우우우우!
장난스러운 야유가 폭소가 관객석을 덮었다.
그러자 VCR에서 때맞춰 웃음 어린 밝은 목소리가 나왔다.
[아, 그럼 서커스는 끝났지만… 저희같이 재밌는 거라도 볼까요?]
네!
[좋습니다!]
[저희 지금 준비하겠습니다…, 얍!]
VCR 화면이 빠르게 돌아갔다.
마치 호텔의 역사를 배속해서 보는 것처럼, 낡은 호텔이 골조만 남을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도착한 대낮.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준비 끝났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앙상한 모습으로 호텔이었던 건물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갈게요!]
무대에 조명이 돌아왔다.
“…!”
다시 드러난 무대.
그 자리에 호텔을 구현한 화려한 배경 세트는 사라져 있었다. 무대용 철골 같은 뼈대만 남긴 채.
“어어어!”
그리고 이윽고, 세트장이 아니라 중앙에서 멤버들이 튀어 오른다.
으아아아아!
반주가 세차게 울리는 가운데, 멤버들은 거침없이 돌출 무대로 뛰어나와 자리를 잡고 안무에 들어갔다.
모두에게 익숙할 멜로디.
음원차트 1위를 했던 이지리스닝곡이며, 동시에 테스타에게 처절한 고민을 안겨준 곡.
바로 그들의 마지막 활동곡이자 팬송.
.
[무거운 어제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완벽한 오늘은
끝내 오지 않았지]
류청우가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멤버들이 대형을 갖추며 움직인다.
[그래
완벽은 없어도 이제
어제의 끝 오늘의 시작]
쩌렁쩌렁한 라이브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린다.
방금까지 지치도록 무대를 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멤버들은 웃으며 돌출 무대를 크게 쓰며 뛰어다녔다.
편곡 하나 건드리지 않은 원곡이 라이브 덕에 음원 이상으로 사람들의 귀를 듣기 좋게 울렸다.
그리고 돌출 무대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홈마는 깨달았다.
“아…!!”
안무가 바뀌었다.
아니, 동작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러나 대형이 바뀌었다.
[I turn the page
다음 장으로 가
지침이 빛나
통증이 길잡이가 돼]
배세진의 파트, 본래 댄서가 양측에서 보조해야 하는 파트에는 이세진과 차유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선아현의 파트에서 턴을 할 때도, 댄서 대신 류청우가 그 턴을 받아 대형을 맞췄다.
‘댄서가 없어…….’
그렇다.
본래 구색 맞추어 댄서를 썼던 모든 구간의 대형이 전부, 테스타로 변했다.
온전히 테스타만으로 무대가 꽉 찼다.
원래 이렇게 하고 싶었다는 듯이.
이전에 활동은 급하게 추가된 팬서비스였으며 정식으로 기획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은 직접 보여주는 쪽을 골랐다.
정식 활동은 어떤 모습인지.
그 무대를.
[Let me tempt fate
이정표와 갈림길 너머로
발버둥치며
한 뼘만 더 나아가]
빈틈없이 안무가 맞물리며, 후렴을 시원하게 치고 올라온다.
“…….”
큰달은 사방에서 떼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아까 부르지 못한 팬송을 이제 함께, 더 행복하게 부르는 것처럼 주변에서 감격과 안심으로 마음을 놓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건 희열로 연결된다.
[오늘의 끝까지,
한계를 넘어서!]
차유진의 마지막 후렴이 끝난 순간, 박문대의 고음이 천장을 울린다.
전부 쏟아내듯이.
[숨차게 달려
도심을 발아래로
더 하늘 향해 손을 뻗어]
안무가 딱딱 맞아들어가며 대형이 터지듯 크게 나왔다가 힘이 넘치게 각을 잡는다.
[별은 닿지 않아도
오늘을 살래]
숨을 헐떡이며, 박문대는 우는 대신 웃었다.
[Don’t sleep
Just- dream!]
터지는 폭죽과 환호 속.
테스타의 콘서트는 그렇게 성황리에 엔딩을 맞았다.
이 콘서트가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한 채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81화
몇 분 후.
“아현이 오늘도 멋졌다~!”
“고… 고마워…!”
백스테이지, 막 솔로 무대를 마치고 온 선아현이 황급히 의상을 갈아입고 합류했다. 스탭이 붙어서 붉은 페인트 자국이 남은 목을 물티슈로 빠르게 정리했다.
나는 엄지를 내미는 큰세진을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선아현 무대가 인상적이긴 했지.’
기묘한 호텔 스토리의 클라이맥스를 앞둔 마지막 파트.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갈 것인가, 호텔 밖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
‘그리고 관객들은 첫 공연 때는 전자를 골랐고….’
이번에도 전자를 골랐다. 첫 공연 당시 그 무대가 충격적으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페인트를 뒤집어쓴 선아현의 ‘RED’ 선택지가.
-다 혼잣말이라니까
너는 듣지 마
쿵.
거미줄처럼 복잡한 지하실의 배관을 구현한 무대 장치 사이. 그 위아래를 교묘하게 매달리듯 오가며 강렬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
벗어날 수 없이 예정된 사랑에 관한 느린 템포의 수록곡이다. 김래빈은 그 곡에 테레민을 써서 더 실험적으로 편곡해 이질감을 고조시켰다.
그에 맞춰서 선아현의 퍼포먼스도 곡이 흐를수록 더 파괴적이고 공격적이 됐다.
그리고 현대 무용보다도 발레에 가까운 우아한 안무들이 사이사이 찌릿한 위화감을 더 조성하면.
으아아아아아!
나는 직전에 터진 관객들의 환호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재밌겠지.’
괜히 만장일치로 선아현을 마지막 솔로곡으로 빼둔 게 아니었다.
흐뭇한 얼굴로 녀석들의 대화를 보던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선택지 따라서 무대가 달라지는 순서는 끝났으니까 더 수월할 거야. 확실하게 몰입하면서 가보자.”
“네!”
그렇다. 이제 선택지를 고르는 건 끝났다. 애초에 이전에도 모든 무대에 선택지가 붙진 않았고 말이다.
‘그랬다간 퀄리티 관리가 안 되지.’
세트리스트가 두 배가 되는 거니까.
절반 정도의 무대에만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중 솔로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부담을 최소화했다.
나도 그랬고.
…내 솔로 무대 말이다.
“…….”
나는 다시금 직전의 내 무대를 떠올렸다.
노래에 모든 기력과 힘을 쏟아붓고 다른 건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것 같다.
그게 바로 몇 분 전이라는 게 이상했다.
정말로.
“…….”
“…박문대.”
“예?”
고개를 들자, 배세진이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내가 정신 나가 보였나 싶군.
“너는… 정말 노래를 잘하더라. 솔로 무대 말이야.”
다행히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크흠. 뭐, 이런 말도 너한테는 새삼스럽겠지만…….”
배세진은 뭐라도 덕담을 더 건네보려는 것 같았으나, 주변에 다 들리게 귓속말을 해오는 다른 녀석에게 막혔다.
“형, 말할 필요 없어요. 카메라가 이미 했어요!”
“…? 무슨 소리….”
“배세진 형이 문대 형 노래 들으면서 이렇게 눈 감는 거요. 카메라가 찍었어요. 그거 감동한 사람이에요. 맞죠?”
“……!”
차유진은 비하인드 카메라 감독의 동작에 이어 배세진이 감격에 젖어 감상하는 듯 진중한 표정까지 절묘하게 묘사하더니, 눈을 찡긋거렸다.
“다들 곧 알 거예요.”
배세진의 얼굴이 야차처럼 시뻘게졌다.
“으하하핫!”
큰세진을 필두로 멤버들이 웃으며 백스테이지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배세진도 차유진에게 악의가 없고 그냥 장난이라는 것을 아는지 금방 표정을 풀고 한숨이나 쉬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놈들이 이러다 혹시 싸울까 감시했을 테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분위기는 좋았다.
‘우리도 서로 익숙해진 거겠지.’
그리고 지쳐서 헐떡대는 와중에도 다들 웃으며 떠들 기운이 있는 건, 이 콘서트가 만족스러워서 가능한 일일 터다.
어제 콘서트의 백스테이지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들은 그걸 언급도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고마웠다.
나는 녀석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VCR 2분 남았대요.”
“오오!”
나는 신호를 주는 스탭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다른 녀석들과 함께 자세를 바로잡았다.
머리 위에서는 VCR의 내레이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류청우의 목소리다.
지금 VCR에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류청우가 나타나서 티켓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
아까 선아현의 무대 선택지에서 지하실로 갔든 호텔 밖으로 나갔든 간에 똑같다.
그리고 카메라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시점으로, 영상이 끝난다.
고오오오오-
그렇게 이제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선택지 없이, 하나에 완전히 집중해서 쏟아 넣은 무대들이.
이번 콘서트의 클라이맥스로.
치이이익.
눈앞의 무대 장치가 열린다. 드라이아이스가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고, 눈앞에서 응원봉의 빛 물결이 번진다.
처음도 아닌데 심장이 울렁거렸다.
‘최고를 보여줘야 한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나는 인이어에 들리는 클릭 소리에 맞추어,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무대 장치였던 호텔 로비가 열리면서 드러날 공간은… 바로 서커스 천막이다.
그리고 서커스답게, 화려한 무대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것이다.
차유진이 씩 웃으며 대형 가운데에서 손을 올렸다.
“You, have my dice!”
와아아아악!!
부터 까지.
최근 히트곡과 이전 타이틀곡들 서너 곡이 연달아 몰아치는 구성이었다.
제일 신나는 구간!
퍼포머도 관객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며, 현장의 열기를 달군다.
“Woooo-”
나는 핸드 마이크로 클라이맥스 파트를 내질렀다. 내키는 데까지 질렀다가 정확히 기분 좋은 기점에서 걸리는 것 없이 초고음이 터졌다.
목이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안무 중 눈이 마주치자 김래빈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뭐지?’
아니,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마음껏 쓰자.
나는 마지막 까지, 원하는 만큼 목소리를 썼다.
목에 제한이 없었다.
아아아아악!!
마지막 곡이 끝나는 순간 더없이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관객석 끝까지.
내 귀와 눈이 모두 무대에 대한 반응으로 가득 찼다.
“후욱.”
숨을 헐떡이는데도 고통스럽지 않다.
나는 다른 녀석들과 대형을 맞추어 돌출 무대에서 뛰어서 돌아갔다.
전광판과 같은 위치까지.
함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 전광판이 번뜩였다.
눈앞으로 천막이 내려오듯 무대 장치가 내려오며,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정적.
“…….”
“……후욱.”
잠시간의 침묵 끝에.
“고생하셨습니다!”
“의상 준비 끝났어요!”
백스테이지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나는 멈춰 서서, 방금 본 관객석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열기와 반응.
‘만족시켰다.’
그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콘서트에서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
나는 핸드 마이크를 내려놓으면서도, 그것에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짜릿했지만 압도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 *
와아아아!
큰달은 양손을 꽉 쥐었다.
‘대단했어!’
직전, 메들리에 가까운 15분간의 어마어마한 무대 밀도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준이었다.
게다가 여지를 주지도 않았다.
곡이 끝나는 순간 테스타는 깔끔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서커스 천막이 훅 내려가듯 장치가 다시 닫히고 무대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다 끝났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관객석에는 불이 들어왔다. 공연이 끝났으니 일어나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VR로 보고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앵콜!’
암묵적인 합의였다. 큰달은 신나서 손을 움직였다. 응원봉 불빛이 흔들렸다.
참고로 이 앵콜을 기다리면서는 주로 팬송, 혹은 가수와 팬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곡을 부르곤 했다.
아니면 이벤트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어제는… 제대로 못 했겠지.’
박문대의 갑작스러운 불참으로 이벤트는 흐지부지되었다.
‘원래 최신 팬송인 을 무반주로 다 같이 1절만 부르기로 했다던데.’
그리고 오늘도 상황이 갑자기 수습된 만큼, 조심스러웠는지 특별한 이벤트는 기획하지 않은 듯했다.
단지 산발적으로 앵콜과 박수,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는 구호가 남아 있었을 뿐.
‘…죄송해요.’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
큰달은 약간 마음이 가라앉은 채로, 관객석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몇 분이나 시간이 흘렀을 때.
둥.
VCR에 낡은 호텔 로비가 떠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
관객석에서는 응원봉이 다시 원격제어되며 선명하게 색을 가득 채운다.
노란색, 분홍색, 푸른색.
테스타의 그룹 상징색들이었다.
그리고.
이세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VCR에서 울린다.
우우우우!
장난스러운 야유가 폭소가 관객석을 덮었다.
그러자 VCR에서 때맞춰 웃음 어린 밝은 목소리가 나왔다.
네!
VCR 화면이 빠르게 돌아갔다.
마치 호텔의 역사를 배속해서 보는 것처럼, 낡은 호텔이 골조만 남을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도착한 대낮.
푸른 하늘 아래 앙상한 모습으로 호텔이었던 건물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대에 조명이 돌아왔다.
“…!”
다시 드러난 무대.
그 자리에 호텔을 구현한 화려한 배경 세트는 사라져 있었다. 무대용 철골 같은 뼈대만 남긴 채.
“어어어!”
그리고 이윽고, 세트장이 아니라 중앙에서 멤버들이 튀어 오른다.
으아아아아!
반주가 세차게 울리는 가운데, 멤버들은 거침없이 돌출 무대로 뛰어나와 자리를 잡고 안무에 들어갔다.
모두에게 익숙할 멜로디.
음원차트 1위를 했던 이지리스닝곡이며, 동시에 테스타에게 처절한 고민을 안겨준 곡.
바로 그들의 마지막 활동곡이자 팬송.
.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완벽한 오늘은
끝내 오지 않았지]
류청우가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멤버들이 대형을 갖추며 움직인다.
완벽은 없어도 이제
어제의 끝 오늘의 시작]
쩌렁쩌렁한 라이브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린다.
방금까지 지치도록 무대를 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멤버들은 웃으며 돌출 무대를 크게 쓰며 뛰어다녔다.
편곡 하나 건드리지 않은 원곡이 라이브 덕에 음원 이상으로 사람들의 귀를 듣기 좋게 울렸다.
그리고 돌출 무대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홈마는 깨달았다.
“아…!!”
안무가 바뀌었다.
아니, 동작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러나 대형이 바뀌었다.
다음 장으로 가
지침이 빛나
통증이 길잡이가 돼]
배세진의 파트, 본래 댄서가 양측에서 보조해야 하는 파트에는 이세진과 차유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선아현의 파트에서 턴을 할 때도, 댄서 대신 류청우가 그 턴을 받아 대형을 맞췄다.
‘댄서가 없어…….’
그렇다.
본래 구색 맞추어 댄서를 썼던 모든 구간의 대형이 전부, 테스타로 변했다.
온전히 테스타만으로 무대가 꽉 찼다.
원래 이렇게 하고 싶었다는 듯이.
이전에 활동은 급하게 추가된 팬서비스였으며 정식으로 기획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은 직접 보여주는 쪽을 골랐다.
정식 활동은 어떤 모습인지.
그 무대를.
이정표와 갈림길 너머로
발버둥치며
한 뼘만 더 나아가]
빈틈없이 안무가 맞물리며, 후렴을 시원하게 치고 올라온다.
“…….”
큰달은 사방에서 떼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아까 부르지 못한 팬송을 이제 함께, 더 행복하게 부르는 것처럼 주변에서 감격과 안심으로 마음을 놓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건 희열로 연결된다.
한계를 넘어서!]
차유진의 마지막 후렴이 끝난 순간, 박문대의 고음이 천장을 울린다.
전부 쏟아내듯이.
도심을 발아래로
더 하늘 향해 손을 뻗어]
안무가 딱딱 맞아들어가며 대형이 터지듯 크게 나왔다가 힘이 넘치게 각을 잡는다.
오늘을 살래]
숨을 헐떡이며, 박문대는 우는 대신 웃었다.
Just- dream!]
터지는 폭죽과 환호 속.
테스타의 콘서트는 그렇게 성황리에 엔딩을 맞았다.
이 콘서트가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