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7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71화
테스타가 일 터질 때마다 회의 열어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이젠 멤버들이 하나같이 웬만한 일이 터져도 놀라지 않을 만큼 숙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 아, 회의요. 넵.”
그래서 회의 소집에 당황하거나 질문을 쏟아내는 녀석도 없이,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차분히 거실에 모였다.
큰세진이 사람을 좀 기특하다는 듯이 보는, 기가 막힌 일이 있긴 했다만.
“그래서 문대문대 얼굴이 그렇게 별로였던 거구나? 그래도 이젠 금방금방 털어놓네.”
알면 빨리빨리 진행이나 하도록 하자.
…뭐, 차분하다는 것이 심각성을 못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다만.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녀석들의 얼굴은 금방 진지해졌다.
“…음. 그래서…… 하락세 이미지가 문제다, 이거지.”
“그래.”
다음 앨범에서 뭘 골라도 팬덤과 대중성 한 측에 손상을 입는다.
걷잡을 수 없는 하강 흐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래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실력이 부족하여….”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앨범 이야기만 나오면 이놈이 이럴 줄 알았지.
김래빈은 ‘오히려 잘 돼서 꼬인 것이다’라는 설명을 구체적으로 듣고 나서야 어두운 기색이 가셨다.
대신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극도로 잘 만든 것은 취향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정진해서 대중과 러뷰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을 새롭게 써보겠습니다!”
“아이고 얘 또 이러네.”
“김래빈 바보예요.”
“…?!”
나는 김래빈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래빈아 잘 들어라.”
“예!”
“넌 천재다.”
“…!?”
“그리고 네 곡은 비상식적일 정도로 항상 좋았어.”
슬럼프 몇 번을 제외하면 질부터 속도까지 약점이 없는 미친 재능이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없었으면 일이 몇 배는 더 힘들어졌다.’
지금까지 김래빈이 만든 곡들이 보다 급이 낮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곡이 좋다고 무조건 메가 히트곡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타이밍이나 운의 문제야.”
“그건…….”
“음, 문대 말이 백번 옳지! 이게 꼭 곡이 아니더라도 여러 군데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말이거든~ 그렇죠, 형?”
“어?”
배세진은 큰세진의 말에 좀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어릴 때 출연했던 것 중에 제일 재밌었던 영화가 있는데, 그게 제일 흥행이 잘 되진 않았어.”
“아…….”
“그러니까, 그런 건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안 될 거야.”
김래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아무리 잘 만들고 프로모션을 빡세게 넣어도, 만인을 만족시키는 유행은 의도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겟층을 설정해서 그 사람들을 잡는 게 최선이다.’
그러다가 때로는 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서 모두가 좋아하게 되는 거고 말이다.
이야기를 듣던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모르겠어요. 왜 곡 하나만 만들어요? 우리 왜 둘 다 만들면 안 돼요?”
“응?”
“우리 어려운 거 쉬운 거 둘 다 할 수 있어요, Double title!”
“아.”
더블 타이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한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분산 투자해서 대중과 팬덤 둘 다 공략하는 방식이다.
이건 안 되는 이유가 간단하다.
“시간이 없다.”
더블 타이틀로 만들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을 딱 두 배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일방적으로 추가하는 거니까, 일정 조율 생각하면 두 배 이상 들 거야.’
안무, 의상, 컨셉, 뮤직 비디오 촬영을 다 한 번씩 더 하면서 다른 더블 타이틀과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 완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더블 타이틀을 쓰면 다음 앨범을 더 빨리 내긴 커녕 일정보다도 늦게 내야 할 수도 있어.”
결국, 팬덤 유출을 더 오래 방치하게 된다.
‘팬덤이 탈주하는 흐름을 막기 위해 빠르게 대처한다’라는 대전제 자체가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기한을 맞춰보려고 애써볼 수도 있긴 했다.
“빨리 많이 일해요! We’re all hard-working people.”
우리 몸을 갈아 넣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말에 솔깃해하는 인간이고.
하지만….
“그러다 과로로 골로 가면 누가 책임지냐.”
지금까지 무엇을 경험했던 그 이상의 업무 강도가 될 것이다.
당장 일정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일을 두 배로 끼워 넣으면 진짜 쓰러지는 녀석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럴 순 없지.’
…장기적으로 가려면, 이 그룹의 건강도 신경을 써야겠지.
고개 너머에서 류청우가 슬쩍 웃는 것이 보였다.
뿌듯하냐? 그래. 뭐… 좋다니 됐다.
차유진도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승복한 것 같…….
“OK. 형들 나이 고려해요.”
“…….”
배세진이 입을 열었다.
“너… 앞으로 사탕 안 가져올 거야.”
“What?!”
배세진의 어머님이 보내주시는 수제 사탕을 더 이상 꿀 빨 수 없다는 소리에 경악하는 차유진을 무시한 채로, 멤버들은 각자 고민에 빠졌다.
“그럼… 운에 맡겨야 한다?”
큰세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인 발상이었는지, 녀석의 얼굴은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얼굴도 약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운에 맡기자’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선아현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차라리… 이번 활동에 대해서, 팬분들께 직접 설명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음?”
“W앱이나… SNS에 편지를 올려도 좋고요.”
선아현의 제안은 결국 요약하자면 이것이었다.
-저희 각 잡고 만든 거 아니에요! 활동도 급하게 잡았고요!
-저희가 이제 열정이 식어서 설렁설렁 덜 빡세게 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모두 오해입니다!
이걸 잘 풀어서 솔직히 말해보자.
무슨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2주 만에 이 을 냈으며, 갑자기 이 곡이 잘 된 후엔 또 어떤 방식으로 급하게 활동을 준비했는지 말이다.
찬찬히 팬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자는 것이다.
“그,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활동했는지, 말씀드리면… 안심하시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우리는 차근차근 일정대로 앨범 준비를 하고?”
“네…!”
선아현의 말은 올곧은 정설이었다.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안 믿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그랬다가는 절박해 보여서 도리어 역효과였다. 이놈들 쫄리니까 해명하려 든다고 여기면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다가 이미지에도 타격이 온다.
-그만해… 변명하는 티 너무 나서 공감성 수치 온다고..ㅠㅠ
-아 테스타 1군 가오 다 죽네 진짜
-이게 이럴 일임?;;; 좀 당황스럽다 그냥 다음 앨범 빡센 거 들고오면 됐는데..
‘속된 말로 센스가 없어 보이겠지.’
그건 곤란했다.
지금은 모든 걸 신중히 골라서 이미지를 잘 복구해야 할 타이밍이니까.
그리고 이걸 굳이 잔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으음, 솔직히 나도 아현이 의견대로 하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지나가듯이 해야 하잖아? 그럼 주목을 많이 못 받을 것 같아.”
“아…!”
“물론 들어주시는 분들은 설득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더 많은 분들께 딱! 인상을 각인시켜야 하니까.”
큰세진이 솜씨 좋게 말을 넘겼다. 선아현은 납득한 얼굴로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럼, 역시 확실한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편이, 좋은 거구나…!”
“그렇지.”
그런데… 여전히 이놈의 앨범을 어떻게 낼지 모르겠다는 거다.
“…앨범을 아예 미루는 것도 안 되고. 음. 팬분들을 안심시켜야 하니까.”
“흐으으음.”
앨범을 당겨도, 미뤄도, 어떤 컨셉을 골라도 리스크와 손해는 피할 수 없었다.
머리를 부여잡은 놈들 사이에서 침묵이 짧게 흘렀다.
그리고 배세진이 주먹을 쥐었다.
“큼, 그냥 다 무시하고 열심히 준비하는 건 어떤데? 이건… 운에 맡기자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하던 방식을 믿어보자는 거야.”
“형…….”
배세진의 말에 김래빈이 약간 감동한 듯이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 큰세진도 우수에 찬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멋진 말씀이긴 한데… 지금까지 우리 하던 방식이 바로 이거 아닐까요? 열심히 전략 세우기.”
“……어?”
그건… 그렇지.
“형,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해서 대응하려는 이 태도! 이게 바로 제~일 테스타답지 않을까요?”
“그… 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배세진이 약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게 안 맞는 동명이인 사이에서 설득이 성공했다. 희귀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점점 이 업계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 흥미를 자극하잖아요. 이번에 헤일로 하임도 그렇고요.”
“헤일로 하임?”
“연애 리얼리티를 자체 컨텐츠로 쓰는 그룹인데, 지금 음원 1위거든요.”
“뭐?”
큰세진은 그 혼성 그룹이 어떤 기상천외한 마케팅 방법을 썼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연예 기획사들은 왜 이렇게 갈수록 비도덕적이 되는 거냐’라며 경악하는 배세진에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경쟁자는 그렇게 마케팅에 목숨 걸고 있더라구요.”
“…….”
“뭐, 우리가 혼자 웰메이드 외길 걷다가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줘서 역주행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지금 우리 환경이요.”
그 진지한 말에 몇몇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배세진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고개를 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 앨범을 그렇게 홍보하고 싶진 않아.”
의견 일치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군.
심지어 선아현까지도 다소 굳센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나, 나도.”
“…….”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 이상한 것 같아. 팬분들을 속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케이.”
큰세진은 더 주장하지 않고 능숙하게 쓱 자기 의견을 빼냈다.
“애초에 저희도 그런 방식을 쓰자는 말은 아니었고요. 좀 기상천외하고 자극적인 방식을 쓰는 것 자체는 고려해 보자, 그랬다는 거죠.”
“으응.”
“……그래. 알아.”
배세진도 이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넌 왜 사고방식이 그딴 식이야?’라고 외치면서 저 둘이 개같이 싸우는 걸 오히려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그래, 하지만….’
회의 연 목적은 계속 미달성 상태다.
아무리 진행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뭘 해도 양자택일이고, 어떻게 앨범을 내도 손해…….
“…….”
잠깐만.
‘앨범?’
나는 머릿속에서 반짝, 불꽃이 튀는 것을 느꼈다.
“왜 앨범으로만 생각했지?”
“어?”
“꼭 앨범일 필요가 없잖아.”
그렇다.
활동부터 다음 정규 앨범까지.
지금 이 모든 일의 원인과 과정이 전부 활동기와 관련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활동기를 만드는 앨범만을 대책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테스타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앨범 들고 컴백하는 활동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앨범 말고도 대단위 컨텐츠를 얼마나 많이 만들었냐.”
자체 컨텐츠, 콘서트, 투어, 콜라보 게임까지.
큰세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렇지! 팬분들이 많이 보시는 컨텐츠에서 새롭고 빡센 무대 보여드리면 되겠네!”
“…!”
그 호응에 회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그렇구나! 잘 만들면, 팬분들은 다 보실 테니까…….”
“Ohhhhhh!”
“그런데 앨범보다는 다소 비공식적이지 않습니까?”
“그게 가장 좋은 점이지.”
나는 씩 웃었다.
“성적하고 관련이 없잖아.”
“…!!”
잘 주목 당하는 지표, 그러니까 음원 순위나 음반 판매량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원하는 만큼 강렬한 컨셉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애초에 팬분들이 주로 보는 컨텐츠다. 일반 대중들은 그만큼 신경 쓰진 않아.”
어쩌면 테스타가 그렇게 나온 지도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현재 대중이 기대하는 이지리스닝 곡이 아니라고 실망할 일도, Epic의 음원 순위와 비교될 일도 없다!
“…그리고 혹시 대중에게 관심을 받아도, 화제가 될 만큼 좋았다는 거고?”
“그렇죠.”
이게 정답이다.
모든 질문에 답변을 때릴 수 있자 머리가 팽팽 돌았다.
나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상태로, 그룹 리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제일 일정 가까운 컨텐츠가 뭐지?”
* * *
얼마 후.
테스타가 활동으로 촬영한 프로그램들의 방영도 끝물일 무렵, 그들의 공식 위튜브에 영상 하나가 업로드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202X 테스타(TeSTAR) ‘HUNT or BE HUNTED’ WORLD TOUR TRAILER]
이미 팬들은 다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테스타의 투어 재개.
-애들 투어 다시 시작하는구나
-근데 표 다 판 거 아니었나… 추가 일정 잡혔나? 웬 프모 영상이래
-엥 투어 부제도 새로 붙었네 헌트 올 비 헌티드?
디테일에 의아해하면서 팬들은 영상을 클릭했다.
혹시 일정이 밀려서 지금 공개된 건가, 하는 추측을 하면서.
[Hello.]
영상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때깔이 근사했다.
지난 타이틀곡, 이 다소 우아하고 더 강렬히 편곡되어서 지나가는 가운데, 고전적인 호텔의 소품 몇 가지가 지나갔다.
금빛 초인종, 화려한 로비, 금속 열쇠, 빈티지 전화기.
‘옛날 여행이 컨셉인가?’
그리고 사이사이에 들어간, 정장을 입은 멤버들의 흑백 상반신 클로즈업!
다만 얼굴에 음영을 넣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뭐랄까, 자극이랄 게 부족했다.
‘딱히 막 새로운 건 없네.’
32초짜리 영상은 그냥 형식적으로 공개하는 투어 트레일러 컨셉 소개 그 자체였다. 팬들은 ‘그렇구나’하는 심정으로 대충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5초.
편곡된 의 마지막 멜로디에 맞추어 멋진 호텔 외관이 비추어지고, ‘HUNT or BE HUNTED’라는 타이틀이 크게 뜨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건물에 은은한 색이 돌며, 클래식풍으로 편곡된 BGM이 흐르기 시작했다.
‘……?’
그리고.
[->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 떠난다.]
‘……!’
선택지가 떴다.
연관 동영상으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71화
테스타가 일 터질 때마다 회의 열어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이젠 멤버들이 하나같이 웬만한 일이 터져도 놀라지 않을 만큼 숙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 아, 회의요. 넵.”
그래서 회의 소집에 당황하거나 질문을 쏟아내는 녀석도 없이,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차분히 거실에 모였다.
큰세진이 사람을 좀 기특하다는 듯이 보는, 기가 막힌 일이 있긴 했다만.
“그래서 문대문대 얼굴이 그렇게 별로였던 거구나? 그래도 이젠 금방금방 털어놓네.”
알면 빨리빨리 진행이나 하도록 하자.
…뭐, 차분하다는 것이 심각성을 못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다만.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녀석들의 얼굴은 금방 진지해졌다.
“…음. 그래서…… 하락세 이미지가 문제다, 이거지.”
“그래.”
다음 앨범에서 뭘 골라도 팬덤과 대중성 한 측에 손상을 입는다.
걷잡을 수 없는 하강 흐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래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실력이 부족하여….”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앨범 이야기만 나오면 이놈이 이럴 줄 알았지.
김래빈은 ‘오히려 잘 돼서 꼬인 것이다’라는 설명을 구체적으로 듣고 나서야 어두운 기색이 가셨다.
대신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극도로 잘 만든 것은 취향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정진해서 대중과 러뷰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을 새롭게 써보겠습니다!”
“아이고 얘 또 이러네.”
“김래빈 바보예요.”
“…?!”
나는 김래빈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래빈아 잘 들어라.”
“예!”
“넌 천재다.”
“…!?”
“그리고 네 곡은 비상식적일 정도로 항상 좋았어.”
슬럼프 몇 번을 제외하면 질부터 속도까지 약점이 없는 미친 재능이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없었으면 일이 몇 배는 더 힘들어졌다.’
지금까지 김래빈이 만든 곡들이 보다 급이 낮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곡이 좋다고 무조건 메가 히트곡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타이밍이나 운의 문제야.”
“그건…….”
“음, 문대 말이 백번 옳지! 이게 꼭 곡이 아니더라도 여러 군데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말이거든~ 그렇죠, 형?”
“어?”
배세진은 큰세진의 말에 좀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어릴 때 출연했던 것 중에 제일 재밌었던 영화가 있는데, 그게 제일 흥행이 잘 되진 않았어.”
“아…….”
“그러니까, 그런 건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안 될 거야.”
김래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아무리 잘 만들고 프로모션을 빡세게 넣어도, 만인을 만족시키는 유행은 의도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겟층을 설정해서 그 사람들을 잡는 게 최선이다.’
그러다가 때로는 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서 모두가 좋아하게 되는 거고 말이다.
이야기를 듣던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모르겠어요. 왜 곡 하나만 만들어요? 우리 왜 둘 다 만들면 안 돼요?”
“응?”
“우리 어려운 거 쉬운 거 둘 다 할 수 있어요, Double title!”
“아.”
더블 타이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한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분산 투자해서 대중과 팬덤 둘 다 공략하는 방식이다.
이건 안 되는 이유가 간단하다.
“시간이 없다.”
더블 타이틀로 만들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을 딱 두 배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일방적으로 추가하는 거니까, 일정 조율 생각하면 두 배 이상 들 거야.’
안무, 의상, 컨셉, 뮤직 비디오 촬영을 다 한 번씩 더 하면서 다른 더블 타이틀과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 완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더블 타이틀을 쓰면 다음 앨범을 더 빨리 내긴 커녕 일정보다도 늦게 내야 할 수도 있어.”
결국, 팬덤 유출을 더 오래 방치하게 된다.
‘팬덤이 탈주하는 흐름을 막기 위해 빠르게 대처한다’라는 대전제 자체가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기한을 맞춰보려고 애써볼 수도 있긴 했다.
“빨리 많이 일해요! We’re all hard-working people.”
우리 몸을 갈아 넣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말에 솔깃해하는 인간이고.
하지만….
“그러다 과로로 골로 가면 누가 책임지냐.”
지금까지 무엇을 경험했던 그 이상의 업무 강도가 될 것이다.
당장 일정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일을 두 배로 끼워 넣으면 진짜 쓰러지는 녀석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럴 순 없지.’
…장기적으로 가려면, 이 그룹의 건강도 신경을 써야겠지.
고개 너머에서 류청우가 슬쩍 웃는 것이 보였다.
뿌듯하냐? 그래. 뭐… 좋다니 됐다.
차유진도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승복한 것 같…….
“OK. 형들 나이 고려해요.”
“…….”
배세진이 입을 열었다.
“너… 앞으로 사탕 안 가져올 거야.”
“What?!”
배세진의 어머님이 보내주시는 수제 사탕을 더 이상 꿀 빨 수 없다는 소리에 경악하는 차유진을 무시한 채로, 멤버들은 각자 고민에 빠졌다.
“그럼… 운에 맡겨야 한다?”
큰세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인 발상이었는지, 녀석의 얼굴은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얼굴도 약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운에 맡기자’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선아현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차라리… 이번 활동에 대해서, 팬분들께 직접 설명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음?”
“W앱이나… SNS에 편지를 올려도 좋고요.”
선아현의 제안은 결국 요약하자면 이것이었다.
-저희 각 잡고 만든 거 아니에요! 활동도 급하게 잡았고요!
-저희가 이제 열정이 식어서 설렁설렁 덜 빡세게 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모두 오해입니다!
이걸 잘 풀어서 솔직히 말해보자.
무슨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2주 만에 이 을 냈으며, 갑자기 이 곡이 잘 된 후엔 또 어떤 방식으로 급하게 활동을 준비했는지 말이다.
찬찬히 팬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자는 것이다.
“그,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활동했는지, 말씀드리면… 안심하시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우리는 차근차근 일정대로 앨범 준비를 하고?”
“네…!”
선아현의 말은 올곧은 정설이었다.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안 믿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그랬다가는 절박해 보여서 도리어 역효과였다. 이놈들 쫄리니까 해명하려 든다고 여기면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다가 이미지에도 타격이 온다.
-그만해… 변명하는 티 너무 나서 공감성 수치 온다고..ㅠㅠ
-아 테스타 1군 가오 다 죽네 진짜
-이게 이럴 일임?;;; 좀 당황스럽다 그냥 다음 앨범 빡센 거 들고오면 됐는데..
‘속된 말로 센스가 없어 보이겠지.’
그건 곤란했다.
지금은 모든 걸 신중히 골라서 이미지를 잘 복구해야 할 타이밍이니까.
그리고 이걸 굳이 잔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으음, 솔직히 나도 아현이 의견대로 하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지나가듯이 해야 하잖아? 그럼 주목을 많이 못 받을 것 같아.”
“아…!”
“물론 들어주시는 분들은 설득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더 많은 분들께 딱! 인상을 각인시켜야 하니까.”
큰세진이 솜씨 좋게 말을 넘겼다. 선아현은 납득한 얼굴로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럼, 역시 확실한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편이, 좋은 거구나…!”
“그렇지.”
그런데… 여전히 이놈의 앨범을 어떻게 낼지 모르겠다는 거다.
“…앨범을 아예 미루는 것도 안 되고. 음. 팬분들을 안심시켜야 하니까.”
“흐으으음.”
앨범을 당겨도, 미뤄도, 어떤 컨셉을 골라도 리스크와 손해는 피할 수 없었다.
머리를 부여잡은 놈들 사이에서 침묵이 짧게 흘렀다.
그리고 배세진이 주먹을 쥐었다.
“큼, 그냥 다 무시하고 열심히 준비하는 건 어떤데? 이건… 운에 맡기자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하던 방식을 믿어보자는 거야.”
“형…….”
배세진의 말에 김래빈이 약간 감동한 듯이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 큰세진도 우수에 찬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멋진 말씀이긴 한데… 지금까지 우리 하던 방식이 바로 이거 아닐까요? 열심히 전략 세우기.”
“……어?”
그건… 그렇지.
“형,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해서 대응하려는 이 태도! 이게 바로 제~일 테스타답지 않을까요?”
“그… 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배세진이 약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게 안 맞는 동명이인 사이에서 설득이 성공했다. 희귀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점점 이 업계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 흥미를 자극하잖아요. 이번에 헤일로 하임도 그렇고요.”
“헤일로 하임?”
“연애 리얼리티를 자체 컨텐츠로 쓰는 그룹인데, 지금 음원 1위거든요.”
“뭐?”
큰세진은 그 혼성 그룹이 어떤 기상천외한 마케팅 방법을 썼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연예 기획사들은 왜 이렇게 갈수록 비도덕적이 되는 거냐’라며 경악하는 배세진에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경쟁자는 그렇게 마케팅에 목숨 걸고 있더라구요.”
“…….”
“뭐, 우리가 혼자 웰메이드 외길 걷다가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줘서 역주행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지금 우리 환경이요.”
그 진지한 말에 몇몇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배세진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고개를 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 앨범을 그렇게 홍보하고 싶진 않아.”
의견 일치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군.
심지어 선아현까지도 다소 굳센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나, 나도.”
“…….”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 이상한 것 같아. 팬분들을 속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케이.”
큰세진은 더 주장하지 않고 능숙하게 쓱 자기 의견을 빼냈다.
“애초에 저희도 그런 방식을 쓰자는 말은 아니었고요. 좀 기상천외하고 자극적인 방식을 쓰는 것 자체는 고려해 보자, 그랬다는 거죠.”
“으응.”
“……그래. 알아.”
배세진도 이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넌 왜 사고방식이 그딴 식이야?’라고 외치면서 저 둘이 개같이 싸우는 걸 오히려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그래, 하지만….’
회의 연 목적은 계속 미달성 상태다.
아무리 진행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뭘 해도 양자택일이고, 어떻게 앨범을 내도 손해…….
“…….”
잠깐만.
‘앨범?’
나는 머릿속에서 반짝, 불꽃이 튀는 것을 느꼈다.
“왜 앨범으로만 생각했지?”
“어?”
“꼭 앨범일 필요가 없잖아.”
그렇다.
활동부터 다음 정규 앨범까지.
지금 이 모든 일의 원인과 과정이 전부 활동기와 관련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활동기를 만드는 앨범만을 대책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테스타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앨범 들고 컴백하는 활동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앨범 말고도 대단위 컨텐츠를 얼마나 많이 만들었냐.”
자체 컨텐츠, 콘서트, 투어, 콜라보 게임까지.
큰세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렇지! 팬분들이 많이 보시는 컨텐츠에서 새롭고 빡센 무대 보여드리면 되겠네!”
“…!”
그 호응에 회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그렇구나! 잘 만들면, 팬분들은 다 보실 테니까…….”
“Ohhhhhh!”
“그런데 앨범보다는 다소 비공식적이지 않습니까?”
“그게 가장 좋은 점이지.”
나는 씩 웃었다.
“성적하고 관련이 없잖아.”
“…!!”
잘 주목 당하는 지표, 그러니까 음원 순위나 음반 판매량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원하는 만큼 강렬한 컨셉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애초에 팬분들이 주로 보는 컨텐츠다. 일반 대중들은 그만큼 신경 쓰진 않아.”
어쩌면 테스타가 그렇게 나온 지도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현재 대중이 기대하는 이지리스닝 곡이 아니라고 실망할 일도, Epic의 음원 순위와 비교될 일도 없다!
“…그리고 혹시 대중에게 관심을 받아도, 화제가 될 만큼 좋았다는 거고?”
“그렇죠.”
이게 정답이다.
모든 질문에 답변을 때릴 수 있자 머리가 팽팽 돌았다.
나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상태로, 그룹 리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제일 일정 가까운 컨텐츠가 뭐지?”
* * *
얼마 후.
테스타가 활동으로 촬영한 프로그램들의 방영도 끝물일 무렵, 그들의 공식 위튜브에 영상 하나가 업로드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팬들은 다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테스타의 투어 재개.
-애들 투어 다시 시작하는구나
-근데 표 다 판 거 아니었나… 추가 일정 잡혔나? 웬 프모 영상이래
-엥 투어 부제도 새로 붙었네 헌트 올 비 헌티드?
디테일에 의아해하면서 팬들은 영상을 클릭했다.
혹시 일정이 밀려서 지금 공개된 건가, 하는 추측을 하면서.
영상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때깔이 근사했다.
지난 타이틀곡, 이 다소 우아하고 더 강렬히 편곡되어서 지나가는 가운데, 고전적인 호텔의 소품 몇 가지가 지나갔다.
금빛 초인종, 화려한 로비, 금속 열쇠, 빈티지 전화기.
‘옛날 여행이 컨셉인가?’
그리고 사이사이에 들어간, 정장을 입은 멤버들의 흑백 상반신 클로즈업!
다만 얼굴에 음영을 넣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뭐랄까, 자극이랄 게 부족했다.
‘딱히 막 새로운 건 없네.’
32초짜리 영상은 그냥 형식적으로 공개하는 투어 트레일러 컨셉 소개 그 자체였다. 팬들은 ‘그렇구나’하는 심정으로 대충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5초.
편곡된 의 마지막 멜로디에 맞추어 멋진 호텔 외관이 비추어지고, ‘HUNT or BE HUNTED’라는 타이틀이 크게 뜨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건물에 은은한 색이 돌며, 클래식풍으로 편곡된 BGM이 흐르기 시작했다.
‘……?’
그리고.
‘……!’
선택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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