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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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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3화
몇 분 전.
시스템의 보유자, 청려는 사라진 도움말 삭제 상태창을 확인했다.
말끔한 허공.
그는 어딘가 불쾌한 예감을 느꼈다.
‘음.’
통제를 벗어나는 사건이 주는 불쾌함이었다.
이제 더는 흥미롭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기계적으로 즉각 도움말을 호출하여 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려 했다.
그때였다.
처음에는 또다시, 손등의 느낌으로 시작했다.
물기.
툭.
직전에 식은땀이 손등으로 떨어질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청려는 눈동자만 내려 아래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로 식은땀이 아니었다.
물은 손등을 지나 바닥에 떨어진다.
후두둑.
어느새, 그가 디디고 선 바닥은 단단한 오피스텔의 거실 마루가 아니었다.
출렁이는 검은 수면이 부드럽게 물방울을 삼키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다.
“…….”
그것이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상의 화신은 어느새 어두운 오피스텔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젖지 않은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
청려의 얼굴을 한 남성은 자신과 똑같지만, 좀 더 앳된 얼굴을 한 청려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기다려.]
이윽고 청려는 오피스텔 거실에서 미적거리던 정우단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기묘한 팝업까지.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청려는….
[쓸데없는 행동은 서로 하지 말죠.]
우상의 화신은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았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을 영원히 잡아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때의 자신을.
흠.
[이런 모습이었나.]
우상의 화신이 턱에 손을 댄 채 말을 마쳤다.
맞은편의 청려는 자신이 얻어낸 모든 단서를 단숨에 검토했다.
같은 모습, 나이 든 얼굴, 미래에서 왔다는 도움말…….
그리고 저 말까지 종합하자면, 아주 가능성이 큰 가설이 하나 나왔다.
저건.
“미래의 나인가.”
우상의 화신은 그냥 웃었다. 그리고 청려도 입꼬리를 비틀었다.
[놀란 것 같진 않은데.]
“성공할 걸 아니까.”
청려는 당연한 듯 여상히 말했다. 우상의 화신도 무심히 중얼거렸다.
[재시작이 세자릿수에 막 진입할 때면… 그렇지. 이럴 때긴 하지.]
“…….”
[호승심이 계산보다 앞설 때가 가끔 있고……. 나쁜 건 아니지만, 그걸 취사선택하는 방법도 익히게 될 거예요.]
우상의 화신이 손깍지를 꼈다.
[하지만 자신의 계산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버릇은 슬슬 버리는 게 낫겠는데.]
“예시를 들자면?”
우상의 화신은 자신이 본 이번 삶의 히스토리를 즉각 끄집어냈다.
[어째서 티홀릭을 사고로 은퇴하게 만들었지?]
“…….”
그렇다.
최근 몇 번의 재시작 중, 청려는 티홀릭을 아주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예계에서 퇴장시켰다.
본래 있는 추문을 키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곡이 바뀌어도, 회사와 사이가 악화해도 티홀릭은 꿋꿋하게 대중인지도로 살아남았다.
그러니 그냥 무대 바깥의 요인을 건드려서 퇴장시켜 버렸던 것이다.
부상, 가족 문제, 잔인한 루머 따위로.
싸우지 않고 죽였다.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은 방법이라서.
자신의 도움말에게는 그렇게 설명했지만, 사실 ‘극단적인 방식’을 청려가 지금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니었다…….
쓸모가 있으면 쓴다.
청려는 표정 없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네가 나라면, 미션에 티홀릭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그래요.]
우상의 화신이 선선히 수긍했다.
그러나 미소는 짙어졌다.
[그러니까 이용해야지.]
“…!”
[적당한 자극과 적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나태해지거든.]
[바로 앞의 경쟁자가 닿을 듯 말 듯 숨통을 조여야만 최선을 다해서, 최후의 힘까지 짜내어 일에 매달리는 건데. 그걸 포기하다니.]
우상의 화신이 평가를 내렸다.
[방해물이 보람도 성취감도 없이 사라졌으니, 네 그룹 멤버들은 극복하는 쾌감을 학습하지 못했겠어.]
이 시기의 자신은, 티홀릭이 너무 지긋지긋한 나머지 도리어 편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골랐다고.
무의식 중에 말이다.
“…….”
청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상의 화신은 알았다.
바로 정곡을 찔리고, 논리적으로 납득했을 때의 제 얼굴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
그 순간.
‘맙소사.’
우상의 화신, 신재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문득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지금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은가.
‘분명 후배님도 비슷한 짓을 했을 것 같은데.’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느 순간 주단을 그룹에 넣게 됐더니. 이런 거였나.]
과거의 자신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우상의 화신은 친절히 설명했다.
[내가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리고 마치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아. 너는 원래 하려던 일이 있지 않나.]
“…….”
[일단 그것부터 해봐요. 이번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
신재현이 별 관심도 없던 과거의 자신과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눈 이유.
그가 도움말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시기에 부르게 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던 것이다.
신재현은 박문대와 직전에 나눈, 황급하고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이 시간대에 시스템을 가진 녀석… 그러니까 청려, 너 스스로하고 대화할 수 있냐.
-…가능하다면?
-그러면 큰달이 날 부른 후에, 여기 청려가 ‘도움말’을 부르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부탁하든 윽박지르든 무조건.
신재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알았다.
‘될 리가 없지.’
부탁하든 윽박지르든 순순히 듣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상황을 조종하는 쪽을 골랐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상대의 수작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할 테니…….’
자신이 뭐라고 지껄이든, 그것이 수상하고 값어치가 없을수록 청려는 우선 본래 자신이 하려던 일을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과거의 자신은 표정 없는 얼굴로 결국 입을 열고 있으니까.
“도움말.”
그렇게, 시스템 보유자는 시스템을 호출했다.
* * *
박문대의 심상 세계.
거실에 앉은 똑 닮은 인영 둘은 창밖이 반짝이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베란다 너머, 의 환상적인 노을빛 하늘 사이로 하얀 선이 가로질러 사라진다.
시각화된 이별.
“별똥별……?”
“시스템이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박문대인 내가 큰달에 의해 분리되고, 남은 찌꺼기 같은 시스템 부속들이 소유자의 부름을 듣고 본능적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신재현이 성공했군.’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시스템의 일부, 내 상태창이었던 큰달 녀석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해했다.
“그럼, 형은 저만큼이나 시스템이 멀어졌는데도 여전히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요?”
“…….”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이거 잘못하면 내가 현실로 돌아가도 연결되어 있다가, 무슨 탱탱볼처럼 도로 나한테 붙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생각만 하고 말은 믿음직스럽게 했단 뜻이다.
“그래도 우리가 현실로 돌아가면 여기 남은 시스템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죠….”
큰달이 약간 안심한 얼굴로 거실 밖을 보았다.
내 멱살을 잡았던 빡침보다 초조함이 더 큰 모양이다.
“…….”
“…….”
살짝 어두운 거실 위로 유성의 빛이 번뜩 우리를 지나쳐 멀리 간다.
저 징그러운 새끼가 굳이 유성으로 구현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한결 평화롭긴 했다.
고요한 오피스텔 안.
나는 거실에 앉은 채로 느리게 입을 열었다.
“…곧 내가 현실로 가는 건가.”
“지금도 형은 현실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제가 불렀잖아요.”
그렇냐. 워낙 쾌적해서 몰랐다.
개같이 우악스러운 시스템 놈의 압력 대신, 데뷔할 때 봤던 풍경이 펼쳐진 오피스텔에서 안락하게 현실로 가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이 녀석이 날 심상 세계로 불러준 덕분이겠지.
나는 큰달을 한번 본 후, 멀어지는 유성과 풍경을 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듯, 서서히 시스템과의 연결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뚝.
유성이 저 멀리에서 지면에 닿으며, 나는 시원한 감각을 느꼈다.
‘그래.’
시스템이 떨어져 나갔다.
다만, 예상 못 한 일도 일어났다.
“어?”
유성은 지면에 부딪혀서 그대로 멈추는 대신, 튀어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넘어간 것이다.
더 멀리.
“……?”
멍하니 보던 큰달이 입을 열었다.
“시스템이 더 멀리…… 가고 있어요. 형이랑 끊어져서.”
“…….”
“고무줄을 당겨서 끊으면, 남은 조각이 반대편으로 확 튀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어디 보자.
나는 지금 시점으로부터 미래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으로 가는 저 시스템 찌꺼기는….
“더 과거로 가는 건가.”
“아마도요.”
청려가 경험한 회차들을 지나, 유성이 지평선을 지나 사라져 간다.
더 과거로, 더 과거로.
“대체… 저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더 작아져 갔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멈출 것이고, 또 시스템다운 미친 짓을 하겠지.
파편만 남아도 끈질기게 나한테 붙은 것처럼 말이다.
숙주의 소원을 들어주고, 에너지를 뽑아서… 힘을 회복하려고 들 것이다.
‘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애초에 저거였나.
“저게 완전한 시스템이 되는 건가.”
“예?”
인격과 지성을 맡은 박문대가 떨어져 나간 녀석은, 아마 아주 미개한 지능과 원초적인 힘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숙주를 갈아타며 회복해서… 내가 만난 그 고등한 지능의 시스템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떨어져 나오면서, 다시 원초적인 찌꺼기가 돼서 먼 과거에 떨어지는 거지…….’
순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게 바로 우리가 만난 그 시스템이 될 거야.”
“아…….”
큰달이 천천히 말을 이해하는 것 같더니, 경악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 그러면 저희가 지금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요?”
무슨 소리냐.
“만들었다고 할 순 없지. 원래 있던 놈이 찌꺼기가 된 채로 과거로 가는 거잖아.”
“어… 그, 그렇네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 중간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니까, 저놈은 더 미래로 오지는 못하는 거야.”
이 시점까지 오면 저건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즉, 시스템은 이 시간대에 갇힌, 완결된 무언가였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정말 볼 일 없겠는데.”
개운했다.
“그럼…! 정말로, 끝이네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큰달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의 눈이 희망차게 빛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의 몸 여기저기서 튀는 인위적인 글리치는 여전했다.
‘이게 이놈이 인지하는 자기 모습이라는 거지….’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이, 저 녀석이 시스템에게서 받은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
나는 발을 고쳐 앉았다.
내가 시스템이 되어보고 나서 느낀 게 있다.
‘거기 있으면 자아정체성이 싹 바닥나는 기분이 들더라고.’
술 진탕 마시고 내가 어딘지 여기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처럼, 아주 모호해진단 뜻이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면 불쾌할 자극에도 동요하지 않게 되지.’
극도로 안정적인 상태.
한 마디로 멀쩡한 인간보단 자아 없는 AI에 가깝단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로 몇 년이나 지낸 사람의 정신에 대해, 비로소 직접적으로 이해했다.
“큰달.”
“네?”
그래.
아까 본 팝업에서도 큰달의 수식어는 큰달이었다.
그러니까, 류건우도 박문대도 아닌, 닉네임이 녀석의 정체성이고 수식어였다.
다른 녀석들한테는 온갖 다양한 묘사가 붙었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게 없었다.
나는 결국 물었다.
“너는… 네 이름이 뭐라고 생각하냐.”
“예?”
“큰달 같은 별명 말고.”
“어…….”
녀석이 갑작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대답했다.
“그…… 저는 큰달로 좋은데요. 별로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아, 류건우! 류건우 쓰고 있죠.”
“…….”
“혀, 형. 왜 한숨을 쉬고 그러세요. 이 상황에 이러니까 무섭…….”
“너 전에 그랬지.”
나는 천천히 읊조렸다.
“박문대가 별로 네 이름 같지 않다고. 그리고… 너 날 부를 때 가끔 건우 형이라고 부르던데. 류건우를 네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큰달은 여전히 내가 왜 이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형, 건우 형 맞잖아요?”
“너한테는…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사실 지금 류건우는 너잖아.”
“…….”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나한테는 넌 박문대였고.”
저거 하나도 와닿는 게 없고 더럽게 헷갈리기만 하다는 얼굴인데.
“음…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솔직히 지금 더 급한 게 많은데…….”
큰달이 끙끙댔다.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도. 류건우도 박문대도 네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예……?”
“네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좀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는 뜻이지.”
이 녀석에게 무대에서 보는, 압도적인 관객석을 향한 시야를 공유했던 기억이 났다.
그건 내가 테스타 박문대로서 살면서 찾은 의미였다.
이 녀석한테도, 스스로의 삶을 살면서 그런 장면을 공유받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이나 이야기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시스템은 없으니까. 너도 류건우로서, 사람으로서 삶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뭐가 좋고 뭐가 싫고… 그런 것도 좀 생각해 보고.”
“……예.”
큰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말이 썩 귀에 와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하다 보면 회복이 되겠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안 될 일도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놈에겐 이제 투자할 시간도, 비용도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은 너무 밀어붙이지 말고, 이 정도로만 이야기할까.’
“후.”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슬슬 타이밍이 됐기도 했다.
“형?”
“이제 마중이나 나가볼까.”
역할을 잘 수행한 신재현을 말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3화

몇 분 전.

시스템의 보유자, 청려는 사라진 도움말 삭제 상태창을 확인했다.

말끔한 허공.

그는 어딘가 불쾌한 예감을 느꼈다.

‘음.’

통제를 벗어나는 사건이 주는 불쾌함이었다.

이제 더는 흥미롭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기계적으로 즉각 도움말을 호출하여 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려 했다.

그때였다.

처음에는 또다시, 손등의 느낌으로 시작했다.

물기.

툭.

직전에 식은땀이 손등으로 떨어질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청려는 눈동자만 내려 아래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로 식은땀이 아니었다.

물은 손등을 지나 바닥에 떨어진다.

후두둑.

어느새, 그가 디디고 선 바닥은 단단한 오피스텔의 거실 마루가 아니었다.

출렁이는 검은 수면이 부드럽게 물방울을 삼키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다.

“…….”

그것이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상의 화신은 어느새 어두운 오피스텔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젖지 않은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

청려의 얼굴을 한 남성은 자신과 똑같지만, 좀 더 앳된 얼굴을 한 청려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윽고 청려는 오피스텔 거실에서 미적거리던 정우단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기묘한 팝업까지.

청려는….

우상의 화신은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았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을 영원히 잡아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때의 자신을.

흠.

우상의 화신이 턱에 손을 댄 채 말을 마쳤다.

맞은편의 청려는 자신이 얻어낸 모든 단서를 단숨에 검토했다.

같은 모습, 나이 든 얼굴, 미래에서 왔다는 도움말…….

그리고 저 말까지 종합하자면, 아주 가능성이 큰 가설이 하나 나왔다.

저건.

“미래의 나인가.”

우상의 화신은 그냥 웃었다. 그리고 청려도 입꼬리를 비틀었다.

“성공할 걸 아니까.”

청려는 당연한 듯 여상히 말했다. 우상의 화신도 무심히 중얼거렸다.

“…….”

우상의 화신이 손깍지를 꼈다.

“예시를 들자면?”

우상의 화신은 자신이 본 이번 삶의 히스토리를 즉각 끄집어냈다.

“…….”

그렇다.

최근 몇 번의 재시작 중, 청려는 티홀릭을 아주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예계에서 퇴장시켰다.

본래 있는 추문을 키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곡이 바뀌어도, 회사와 사이가 악화해도 티홀릭은 꿋꿋하게 대중인지도로 살아남았다.

그러니 그냥 무대 바깥의 요인을 건드려서 퇴장시켜 버렸던 것이다.

부상, 가족 문제, 잔인한 루머 따위로.

싸우지 않고 죽였다.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은 방법이라서.

자신의 도움말에게는 그렇게 설명했지만, 사실 ‘극단적인 방식’을 청려가 지금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니었다…….

쓸모가 있으면 쓴다.

청려는 표정 없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네가 나라면, 미션에 티홀릭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우상의 화신이 선선히 수긍했다.

그러나 미소는 짙어졌다.

“…!”

우상의 화신이 평가를 내렸다.

이 시기의 자신은, 티홀릭이 너무 지긋지긋한 나머지 도리어 편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골랐다고.

무의식 중에 말이다.

“…….”

청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상의 화신은 알았다.

바로 정곡을 찔리고, 논리적으로 납득했을 때의 제 얼굴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 순간.

‘맙소사.’

우상의 화신, 신재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문득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지금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은가.

‘분명 후배님도 비슷한 짓을 했을 것 같은데.’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중얼거렸다.

과거의 자신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우상의 화신은 친절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치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

그렇다.

신재현이 별 관심도 없던 과거의 자신과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눈 이유.

그가 도움말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시기에 부르게 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던 것이다.

신재현은 박문대와 직전에 나눈, 황급하고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이 시간대에 시스템을 가진 녀석… 그러니까 청려, 너 스스로하고 대화할 수 있냐.

-…가능하다면?

-그러면 큰달이 날 부른 후에, 여기 청려가 ‘도움말’을 부르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부탁하든 윽박지르든 무조건.

신재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알았다.

‘될 리가 없지.’

부탁하든 윽박지르든 순순히 듣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상황을 조종하는 쪽을 골랐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상대의 수작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할 테니…….’

자신이 뭐라고 지껄이든, 그것이 수상하고 값어치가 없을수록 청려는 우선 본래 자신이 하려던 일을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과거의 자신은 표정 없는 얼굴로 결국 입을 열고 있으니까.

“도움말.”

그렇게, 시스템 보유자는 시스템을 호출했다.

* * *

박문대의 심상 세계.

거실에 앉은 똑 닮은 인영 둘은 창밖이 반짝이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베란다 너머, 의 환상적인 노을빛 하늘 사이로 하얀 선이 가로질러 사라진다.

시각화된 이별.

“별똥별……?”

“시스템이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박문대인 내가 큰달에 의해 분리되고, 남은 찌꺼기 같은 시스템 부속들이 소유자의 부름을 듣고 본능적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신재현이 성공했군.’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시스템의 일부, 내 상태창이었던 큰달 녀석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해했다.

“그럼, 형은 저만큼이나 시스템이 멀어졌는데도 여전히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요?”

“…….”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이거 잘못하면 내가 현실로 돌아가도 연결되어 있다가, 무슨 탱탱볼처럼 도로 나한테 붙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생각만 하고 말은 믿음직스럽게 했단 뜻이다.

“그래도 우리가 현실로 돌아가면 여기 남은 시스템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죠….”

큰달이 약간 안심한 얼굴로 거실 밖을 보았다.

내 멱살을 잡았던 빡침보다 초조함이 더 큰 모양이다.

“…….”

“…….”

살짝 어두운 거실 위로 유성의 빛이 번뜩 우리를 지나쳐 멀리 간다.

저 징그러운 새끼가 굳이 유성으로 구현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한결 평화롭긴 했다.

고요한 오피스텔 안.

나는 거실에 앉은 채로 느리게 입을 열었다.

“…곧 내가 현실로 가는 건가.”

“지금도 형은 현실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제가 불렀잖아요.”

그렇냐. 워낙 쾌적해서 몰랐다.

개같이 우악스러운 시스템 놈의 압력 대신, 데뷔할 때 봤던 풍경이 펼쳐진 오피스텔에서 안락하게 현실로 가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이 녀석이 날 심상 세계로 불러준 덕분이겠지.

나는 큰달을 한번 본 후, 멀어지는 유성과 풍경을 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듯, 서서히 시스템과의 연결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뚝.

유성이 저 멀리에서 지면에 닿으며, 나는 시원한 감각을 느꼈다.

‘그래.’

시스템이 떨어져 나갔다.

다만, 예상 못 한 일도 일어났다.

“어?”

유성은 지면에 부딪혀서 그대로 멈추는 대신, 튀어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넘어간 것이다.

더 멀리.

“……?”

멍하니 보던 큰달이 입을 열었다.

“시스템이 더 멀리…… 가고 있어요. 형이랑 끊어져서.”

“…….”

“고무줄을 당겨서 끊으면, 남은 조각이 반대편으로 확 튀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어디 보자.

나는 지금 시점으로부터 미래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으로 가는 저 시스템 찌꺼기는….

“더 과거로 가는 건가.”

“아마도요.”

청려가 경험한 회차들을 지나, 유성이 지평선을 지나 사라져 간다.

더 과거로, 더 과거로.

“대체… 저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더 작아져 갔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멈출 것이고, 또 시스템다운 미친 짓을 하겠지.

파편만 남아도 끈질기게 나한테 붙은 것처럼 말이다.

숙주의 소원을 들어주고, 에너지를 뽑아서… 힘을 회복하려고 들 것이다.

‘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애초에 저거였나.

“저게 완전한 시스템이 되는 건가.”

“예?”

인격과 지성을 맡은 박문대가 떨어져 나간 녀석은, 아마 아주 미개한 지능과 원초적인 힘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숙주를 갈아타며 회복해서… 내가 만난 그 고등한 지능의 시스템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떨어져 나오면서, 다시 원초적인 찌꺼기가 돼서 먼 과거에 떨어지는 거지…….’

순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게 바로 우리가 만난 그 시스템이 될 거야.”

“아…….”

큰달이 천천히 말을 이해하는 것 같더니, 경악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 그러면 저희가 지금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요?”

무슨 소리냐.

“만들었다고 할 순 없지. 원래 있던 놈이 찌꺼기가 된 채로 과거로 가는 거잖아.”

“어… 그, 그렇네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 중간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니까, 저놈은 더 미래로 오지는 못하는 거야.”

이 시점까지 오면 저건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즉, 시스템은 이 시간대에 갇힌, 완결된 무언가였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정말 볼 일 없겠는데.”

개운했다.

“그럼…! 정말로, 끝이네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큰달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의 눈이 희망차게 빛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의 몸 여기저기서 튀는 인위적인 글리치는 여전했다.

‘이게 이놈이 인지하는 자기 모습이라는 거지….’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이, 저 녀석이 시스템에게서 받은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

나는 발을 고쳐 앉았다.

내가 시스템이 되어보고 나서 느낀 게 있다.

‘거기 있으면 자아정체성이 싹 바닥나는 기분이 들더라고.’

술 진탕 마시고 내가 어딘지 여기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처럼, 아주 모호해진단 뜻이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면 불쾌할 자극에도 동요하지 않게 되지.’

극도로 안정적인 상태.

한 마디로 멀쩡한 인간보단 자아 없는 AI에 가깝단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로 몇 년이나 지낸 사람의 정신에 대해, 비로소 직접적으로 이해했다.

“큰달.”

“네?”

그래.

아까 본 팝업에서도 큰달의 수식어는 큰달이었다.

그러니까, 류건우도 박문대도 아닌, 닉네임이 녀석의 정체성이고 수식어였다.

다른 녀석들한테는 온갖 다양한 묘사가 붙었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게 없었다.

나는 결국 물었다.

“너는… 네 이름이 뭐라고 생각하냐.”

“예?”

“큰달 같은 별명 말고.”

“어…….”

녀석이 갑작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대답했다.

“그…… 저는 큰달로 좋은데요. 별로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아, 류건우! 류건우 쓰고 있죠.”

“…….”

“혀, 형. 왜 한숨을 쉬고 그러세요. 이 상황에 이러니까 무섭…….”

“너 전에 그랬지.”

나는 천천히 읊조렸다.

“박문대가 별로 네 이름 같지 않다고. 그리고… 너 날 부를 때 가끔 건우 형이라고 부르던데. 류건우를 네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큰달은 여전히 내가 왜 이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형, 건우 형 맞잖아요?”

“너한테는…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사실 지금 류건우는 너잖아.”

“…….”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나한테는 넌 박문대였고.”

저거 하나도 와닿는 게 없고 더럽게 헷갈리기만 하다는 얼굴인데.

“음…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솔직히 지금 더 급한 게 많은데…….”

큰달이 끙끙댔다.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도. 류건우도 박문대도 네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예……?”

“네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좀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는 뜻이지.”

이 녀석에게 무대에서 보는, 압도적인 관객석을 향한 시야를 공유했던 기억이 났다.

그건 내가 테스타 박문대로서 살면서 찾은 의미였다.

이 녀석한테도, 스스로의 삶을 살면서 그런 장면을 공유받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이나 이야기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시스템은 없으니까. 너도 류건우로서, 사람으로서 삶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뭐가 좋고 뭐가 싫고… 그런 것도 좀 생각해 보고.”

“……예.”

큰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말이 썩 귀에 와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하다 보면 회복이 되겠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안 될 일도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놈에겐 이제 투자할 시간도, 비용도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은 너무 밀어붙이지 말고, 이 정도로만 이야기할까.’

“후.”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슬슬 타이밍이 됐기도 했다.

“형?”

“이제 마중이나 나가볼까.”

역할을 잘 수행한 신재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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