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6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2화
팝업은 재차 단어를 만든다.
[후배님.]
그것이 방아쇠였다.
박스 아래를 막던 테이프를 뜯어낸 듯이, 머릿속에서 사고가 쏟아져 내렸다. 또 다른 단어가 연결된다.
신재현.
VTIC의 리더.
그리고 이 사람이 나를 후배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이 사람보다 늦게 데뷔한 같은 직종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그 직종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테스타.’
그래. 나는 테스타의 박문대였다.
기억이 났다.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멈칫했다. 잠깐. 기억이 났다고? 그건…….
‘……잊고 있었다는 건데.’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전신에 돋는 소름으로 정신을 차렸다.
-허억.
사방이 선명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어난 머리가 차갑게 날이 섰다.
‘이게 X발 뭐야.’
여긴 여전히 시스템 안이었다.
달라진 점은 하나뿐이다. 아까까지 내가 분석하던 단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대신 허공에 아주 단순한 형태의 팝업 하나가 떠 있었다.
날 정신 차리게 만든 녀석이.
나는 당장 입을 열었다.
“청려.”
[드디어.]
“…거참.”
말 툭툭 끊어먹고 자기 마음대로 대답하는 꼴을 보니 본인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약간 반갑게 느껴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만.
‘대체 어떻게 여기 나타난 거지.’
게다가 팝업으로 나타날 때면 괴상한 묘사나 뜨던 다른 녀석들과 달리 어떻게 혼자만 멀쩡하게 말하는 건지 알고 싶긴하다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몸을 가다듬으려다가, 나에게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팝업이 글자를 바꾸었다.
[지금 후배님의 상황은?]
어디 보자.
내가 직전에 본 걸 떠올리자.
‘시스템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교과서를 차근차근 잘 학습했다고 알려주는 단말.
그리고 ‘시스템 뉴버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알림이 뜨자마자 자아가 사라지게 된 내 멍청한 꼴까지.
음.
“조졌다.”
나는 미소를 지웠다.
“아무래도 이 새끼가 날 다음 시스템으로 만들려는 모양이야.”
* * *
[박문대(ㅁvㅁ) : 박문대를 되찾는 중.]
“으아아!”
“하…….”
도트 박문대 키우기 앞.
간신히 읽을 수 있는 모습이 된 화면을 보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신음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문대의 형상은 거무튀튀하게 덩어리진 원형이었다.
배경도 다 뭉개지고 시커멓게 변한 도트 화면 속에서 형태를 갖추고 반짝이는 건 오로지 박문대의 의지뿐이다.
이세진이 당장 큰달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문대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인가요?”
“바, 바로 확인할게요.”
하지만 이미 먼저 통로를 사용 중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청려.
거의 윽박지르듯이 연결을 강탈해간 그 사람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통로를 이용하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이었다.
아마도 GM이라 본인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큰달은 짐작했다.
‘그래도 분명 체감 시간이 다를 텐데….’
그 너머는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가.
그 덕분에 박문대의 표시가 다시 돌아온 건 거의 확실해 보였기 때문에, 큰달은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
그러나 그는 입을 멈추었다.
청려가 눈을 크게 뜬 채로 팝업을 보고 있었다.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 * *
[네가…….]
뒈지게 생긴 건 난데 어째 팝업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정신 차려라. 그 전에 뭐라도 시도해 볼 테니까.”
여기서 내가 순순히 시스템이 될 놈이었으면 벌써 진작 됐다. 이렇게까지 존버하고 이 악물고 돌아갈 방법 찾으려고 기를 썼는데 뒈지라고?
‘안 되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석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심호흡했다.
추측부터 검증한다.
“일단… 너희도 날 현실로 돌려놓으려고 뭘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맞냐.”
팝업은 잠시 텀을 둔 후에야 답을 뱉었다.
[그래요. 후배님 체력을 회복시킨 후에 데려올 계획이었죠.]
녀석은 한결 침착해졌다.
그리고 답변도 이해했다. 그래서 나한테 가호니 뭐니 자꾸 줘가면서 에너지를 퍼주려고 했군.
무슨 원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걸 물어볼 타이밍은 아니었다.
나는 준비한 질문을 쭉 뱉었다.
“여긴 시스템 안이다. 내가 여기 있을 때는 다른 녀석들 팝업이 안 뜨던데, 여기선 너희가 날 현실로 데려오려고 시도할 수 없는 상태가 맞냐.”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요.]
합리적인 충고다.
게다가 지난번에도 시스템에 잠식되다가 탈출하자 괜찮아졌던 전적이 있었으니 나도 당장 탈출하고 싶군.
문제는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이지만.
“갇힌 것 같다. 나갈 방법이 안 보여.”
게다가 지금 깨달았는데, 지금 내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이.
‘큰일이군.’
익숙해졌다.
이제 이 안에서 압박과 거부감은커녕 내 사지처럼 안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곧 좋은 일이 올 것…….
[후배님.]
후우.
나는 도로 정신을 차렸다.
이거 까딱하면 진짜 끌려가서 X 되기 딱인데.
나는 무심코 식은땀을 닦아내려다가 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음했다.
그래도 기분이 괜찮아서 더 끔찍하다.
[지금 여기서 나갈 수 없는 상태라는 거지.]
“…그래.”
눈을 질끈 감고 싶었으나, 눈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가 동요했다는 걸 알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너는 무슨 수로 지금 시스템 안에서 나한테 말을 걸고 있냐.”
[GM이라는 직책이 아직도 남아 있던데.]
[사용했죠.]
그거였군.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는 시간도 멈출 수 있던 권한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팝업 띄우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하게 보였다.
‘근데 무리하다가 저 새끼도 시스템에 빨려드는 거 아니냐.’
다 같이 X 되는 대환장 사태가 눈에 선하군.
혹시나 해서 덧붙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있어 봐. 잠깐… 생각 좀 할 거니까.”
다행히 팝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생각에 잠겼다.
탈출 방법… 탈출 방법.
‘X발.’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게 개념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나마 구체적인 건 밖에서 주단이 날 두들겨 패서 깨우는 것 같은 방법이 떠오르는데, 그게 통할 리가 있냐.
좀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논리적으로 확실한…….’
그리고 순간, 미친 발상이 떠올랐다.
…….
“내가 시스템이 되면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후배님.]
아니, 들어 봐라.
여긴 이미 시스템이 있는 과거다. 리부트가 목적이라면 굳이 이 시간대에 시스템 하나가 더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생각해 보면 동시에 시스템이 두 개인 건 불가능하지. 시스템 능력은 과거로 돌아가는 거니까.’
두 놈이 제각기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마치 현장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고 신입사원을 파견을 보내는 것처럼, 시스템의 리즈 시절인 리셋증후군 청려 시기로 날 보낸 게 아닐까 싶다.
“그럼 내가 시스템이 되면, 자연스럽게 도로 현실로 불러들여서 숙주를 찾게 만들겠지.”
리부트라면 그게 답이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현실로 돌아가는 건 박문대가 아니라 시스템이겠지만….
‘이걸 이용해 볼 수 있지 않나?’
[제정신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기다려.”
이 새끼가 내가 시스템에 완전히 물들었다고 생각하고 단독 행동에 나서기 전에 황급히 말렸다.
그리고 녀석과 대화하며, 몇 가지 검증을 거쳐서….
“좋아. 계획이 나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씩 웃었다.
우선.
“날 여기 내버려 두고 나가.”
* * *
아무것도 없는 공간.
새로운 시스템은 그곳에서 완성되었다.
‘좋아.’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떠나 온 곳으로 돌아가서,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소원을 들어주고, 생존한다.
‘괜찮네.’
시스템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에게 고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그게 어쩐지 이상했지만, 시스템은 곧장 자신의 본능에 순응했다.
모든 게 편안했다.
돌아갈 길은 뻔히 보였다. 이곳으로 빨려들어 올 때 느꼈던 압력은 자신이 완성되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작용해서, 자신을 현실로 끌고 갈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몸을 맡겼다.
곧, 그가 속해 있던 기존 시스템의 내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사방의 환경이 빠르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
시공간이 급속하게 앞으로 흘렀다.
어느새 기존 시스템의 내부를 벗어난 그는 휙휙 스쳐 지나가는 주변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는 압력에 찌부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돌아가자.’
현실로.
그 말을 떠올리자, 이상하게 없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주변은 더욱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때.
띠링.
[큰달이 당신을 부릅니다.]
정적.
시스템은 팝업을 들여다보았다.
꽉 조여들며 숨 막힐 듯 빠르게, 알아볼 수 없도록 쏜살같이 일그러지는 온 환경 속.
오로지 그것 하나만이 멈춰 있었다.
다정하게.
[큰달이 당신을 알아봅니다.]
나를 알아본다고?
시스템은 순간, 자신을 휩쓰는 압력에 몸을 맡기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마치 그 팝업처럼 자리에 멈춰서, 그것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알아봤다…….’
그 찰나의 순간.
[큰달이 당신을 이동시킵니다.]
[대상 : 박문대]
팝업에서 빛이 튀어나왔다.
‘…!!’
그 사이에서 하얀 손아귀가 보이며 자신을 붙드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잡은 게 아니었다. 일부만이 그 손아귀에 닿았다.
돌출된, 그 팝업에 반응한 자신만이.
찌이이익!
박문대는 자신을 움켜쥐는 손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형!”
박문대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은 익숙한 오피스텔이었다.
환상적인 의 노을이 창밖으로 지고 있는 거실.
“형!”
바로 자신의 심상 공간이었다.
그의 눈앞에, 박문대도 류건우도 아닌 모습으로 치지직 거리며 글리치가 튀는, 인위적인 인영이 보였다.
몇 번 봤던 모습.
바로 심상 세계에서의 큰달의 외양이었다.
“아.”
성공했다.
박문대는 드디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누를 수 있었다.
“…….”
예측은 훌륭했다.
‘현실로 돌아가려면 청려놈 시스템에서는 나와야 하니까.’
그럼 그 타이밍에 맞춰서, 현실로 돌아가기 직전의 자신을 불러온다는 작전이었다.
물론 위험했다.
거의 시스템과 자아가 융합되기 직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박문대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곧 얼굴이 누그러졌다.
‘그래도 성공했어.’
이곳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라.
마침 맞은편에서 이 심상 세계를 만든 장본인, 큰달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박문대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박문대를 불러준 반가운 사람에게…….
“형 미쳤어요?! 아니, 아니! 어떻게 이런!”
멱살이 잡혔다.
“시간 없다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냥 타이밍 되면 부르라는데, 타이밍 어긋나면 형이 죽는다지! 도트는 자꾸 뭉개지지! 형은 박문대를 잃어버린다고 뜨지!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일을…….”
“됐잖아.”
암튼 성공함.
“으윽!”
큰달이 불을 뿜을 듯이 분노하며 박문대의 멱살을 짤짤 흔들려고 들었다가, 결국 울상을 지었다.
참지 못한 반가움과 안도.
그리고 두려움 탓이었다.
“혀, 형만 잡긴 했는데, 어차피 시스템도 현실로 돌아오려고 해서…… 이대로는 현실에 가는 대로 시스템과 형이 다시 융합될 거예요!”
그러나 박문대는 같이 초조해하는 대신, 거실 창밖을 보았다.
붉고, 노랗고, 분홍빛과 보랏빛이 섞여 은은한 그 색채를 그리운 것처럼.
그리고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예?”
“시스템은 반대 방향으로 끌려갈 거다.”
박문대는 씩 웃었다.
“시스템 가진 놈이 부르거든!”
* * *
“도움말.”
입을 움직여 도움말을 부르며, 청려는 앞을 보았다.
이 일을 요구한 자를.
“…….”
거기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영이 미소 없이 서 있었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2화
팝업은 재차 단어를 만든다.
그것이 방아쇠였다.
박스 아래를 막던 테이프를 뜯어낸 듯이, 머릿속에서 사고가 쏟아져 내렸다. 또 다른 단어가 연결된다.
신재현.
VTIC의 리더.
그리고 이 사람이 나를 후배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이 사람보다 늦게 데뷔한 같은 직종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그 직종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테스타.’
그래. 나는 테스타의 박문대였다.
기억이 났다.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멈칫했다. 잠깐. 기억이 났다고? 그건…….
‘……잊고 있었다는 건데.’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전신에 돋는 소름으로 정신을 차렸다.
-허억.
사방이 선명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어난 머리가 차갑게 날이 섰다.
‘이게 X발 뭐야.’
여긴 여전히 시스템 안이었다.
달라진 점은 하나뿐이다. 아까까지 내가 분석하던 단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대신 허공에 아주 단순한 형태의 팝업 하나가 떠 있었다.
날 정신 차리게 만든 녀석이.
나는 당장 입을 열었다.
“청려.”
“…거참.”
말 툭툭 끊어먹고 자기 마음대로 대답하는 꼴을 보니 본인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약간 반갑게 느껴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만.
‘대체 어떻게 여기 나타난 거지.’
게다가 팝업으로 나타날 때면 괴상한 묘사나 뜨던 다른 녀석들과 달리 어떻게 혼자만 멀쩡하게 말하는 건지 알고 싶긴하다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몸을 가다듬으려다가, 나에게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팝업이 글자를 바꾸었다.
어디 보자.
내가 직전에 본 걸 떠올리자.
‘시스템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교과서를 차근차근 잘 학습했다고 알려주는 단말.
그리고 ‘시스템 뉴버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알림이 뜨자마자 자아가 사라지게 된 내 멍청한 꼴까지.
음.
“조졌다.”
나는 미소를 지웠다.
“아무래도 이 새끼가 날 다음 시스템으로 만들려는 모양이야.”
* * *
“으아아!”
“하…….”
도트 박문대 키우기 앞.
간신히 읽을 수 있는 모습이 된 화면을 보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신음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문대의 형상은 거무튀튀하게 덩어리진 원형이었다.
배경도 다 뭉개지고 시커멓게 변한 도트 화면 속에서 형태를 갖추고 반짝이는 건 오로지 박문대의 의지뿐이다.
이세진이 당장 큰달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문대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인가요?”
“바, 바로 확인할게요.”
하지만 이미 먼저 통로를 사용 중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청려.
거의 윽박지르듯이 연결을 강탈해간 그 사람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통로를 이용하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이었다.
아마도 GM이라 본인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큰달은 짐작했다.
‘그래도 분명 체감 시간이 다를 텐데….’
그 너머는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가.
그 덕분에 박문대의 표시가 다시 돌아온 건 거의 확실해 보였기 때문에, 큰달은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
그러나 그는 입을 멈추었다.
청려가 눈을 크게 뜬 채로 팝업을 보고 있었다.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 * *
뒈지게 생긴 건 난데 어째 팝업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정신 차려라. 그 전에 뭐라도 시도해 볼 테니까.”
여기서 내가 순순히 시스템이 될 놈이었으면 벌써 진작 됐다. 이렇게까지 존버하고 이 악물고 돌아갈 방법 찾으려고 기를 썼는데 뒈지라고?
‘안 되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석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심호흡했다.
추측부터 검증한다.
“일단… 너희도 날 현실로 돌려놓으려고 뭘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맞냐.”
팝업은 잠시 텀을 둔 후에야 답을 뱉었다.
녀석은 한결 침착해졌다.
그리고 답변도 이해했다. 그래서 나한테 가호니 뭐니 자꾸 줘가면서 에너지를 퍼주려고 했군.
무슨 원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걸 물어볼 타이밍은 아니었다.
나는 준비한 질문을 쭉 뱉었다.
“여긴 시스템 안이다. 내가 여기 있을 때는 다른 녀석들 팝업이 안 뜨던데, 여기선 너희가 날 현실로 데려오려고 시도할 수 없는 상태가 맞냐.”
합리적인 충고다.
게다가 지난번에도 시스템에 잠식되다가 탈출하자 괜찮아졌던 전적이 있었으니 나도 당장 탈출하고 싶군.
문제는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이지만.
“갇힌 것 같다. 나갈 방법이 안 보여.”
게다가 지금 깨달았는데, 지금 내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이.
‘큰일이군.’
익숙해졌다.
이제 이 안에서 압박과 거부감은커녕 내 사지처럼 안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곧 좋은 일이 올 것…….
후우.
나는 도로 정신을 차렸다.
이거 까딱하면 진짜 끌려가서 X 되기 딱인데.
나는 무심코 식은땀을 닦아내려다가 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음했다.
그래도 기분이 괜찮아서 더 끔찍하다.
“…그래.”
눈을 질끈 감고 싶었으나, 눈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가 동요했다는 걸 알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너는 무슨 수로 지금 시스템 안에서 나한테 말을 걸고 있냐.”
그거였군.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는 시간도 멈출 수 있던 권한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팝업 띄우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하게 보였다.
‘근데 무리하다가 저 새끼도 시스템에 빨려드는 거 아니냐.’
다 같이 X 되는 대환장 사태가 눈에 선하군.
혹시나 해서 덧붙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있어 봐. 잠깐… 생각 좀 할 거니까.”
다행히 팝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생각에 잠겼다.
탈출 방법… 탈출 방법.
‘X발.’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게 개념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나마 구체적인 건 밖에서 주단이 날 두들겨 패서 깨우는 것 같은 방법이 떠오르는데, 그게 통할 리가 있냐.
좀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논리적으로 확실한…….’
그리고 순간, 미친 발상이 떠올랐다.
…….
“내가 시스템이 되면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아니, 들어 봐라.
여긴 이미 시스템이 있는 과거다. 리부트가 목적이라면 굳이 이 시간대에 시스템 하나가 더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생각해 보면 동시에 시스템이 두 개인 건 불가능하지. 시스템 능력은 과거로 돌아가는 거니까.’
두 놈이 제각기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마치 현장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고 신입사원을 파견을 보내는 것처럼, 시스템의 리즈 시절인 리셋증후군 청려 시기로 날 보낸 게 아닐까 싶다.
“그럼 내가 시스템이 되면, 자연스럽게 도로 현실로 불러들여서 숙주를 찾게 만들겠지.”
리부트라면 그게 답이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현실로 돌아가는 건 박문대가 아니라 시스템이겠지만….
‘이걸 이용해 볼 수 있지 않나?’
“기다려.”
이 새끼가 내가 시스템에 완전히 물들었다고 생각하고 단독 행동에 나서기 전에 황급히 말렸다.
그리고 녀석과 대화하며, 몇 가지 검증을 거쳐서….
“좋아. 계획이 나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씩 웃었다.
우선.
“날 여기 내버려 두고 나가.”
* * *
아무것도 없는 공간.
새로운 시스템은 그곳에서 완성되었다.
‘좋아.’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떠나 온 곳으로 돌아가서,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소원을 들어주고, 생존한다.
‘괜찮네.’
시스템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에게 고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그게 어쩐지 이상했지만, 시스템은 곧장 자신의 본능에 순응했다.
모든 게 편안했다.
돌아갈 길은 뻔히 보였다. 이곳으로 빨려들어 올 때 느꼈던 압력은 자신이 완성되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작용해서, 자신을 현실로 끌고 갈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몸을 맡겼다.
곧, 그가 속해 있던 기존 시스템의 내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사방의 환경이 빠르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
시공간이 급속하게 앞으로 흘렀다.
어느새 기존 시스템의 내부를 벗어난 그는 휙휙 스쳐 지나가는 주변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는 압력에 찌부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돌아가자.’
현실로.
그 말을 떠올리자, 이상하게 없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주변은 더욱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때.
띠링.
정적.
시스템은 팝업을 들여다보았다.
꽉 조여들며 숨 막힐 듯 빠르게, 알아볼 수 없도록 쏜살같이 일그러지는 온 환경 속.
오로지 그것 하나만이 멈춰 있었다.
다정하게.
나를 알아본다고?
시스템은 순간, 자신을 휩쓰는 압력에 몸을 맡기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마치 그 팝업처럼 자리에 멈춰서, 그것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알아봤다…….’
그 찰나의 순간.
팝업에서 빛이 튀어나왔다.
‘…!!’
그 사이에서 하얀 손아귀가 보이며 자신을 붙드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잡은 게 아니었다. 일부만이 그 손아귀에 닿았다.
돌출된, 그 팝업에 반응한 자신만이.
찌이이익!
박문대는 자신을 움켜쥐는 손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형!”
박문대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은 익숙한 오피스텔이었다.
환상적인 의 노을이 창밖으로 지고 있는 거실.
“형!”
바로 자신의 심상 공간이었다.
그의 눈앞에, 박문대도 류건우도 아닌 모습으로 치지직 거리며 글리치가 튀는, 인위적인 인영이 보였다.
몇 번 봤던 모습.
바로 심상 세계에서의 큰달의 외양이었다.
“아.”
성공했다.
박문대는 드디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누를 수 있었다.
“…….”
예측은 훌륭했다.
‘현실로 돌아가려면 청려놈 시스템에서는 나와야 하니까.’
그럼 그 타이밍에 맞춰서, 현실로 돌아가기 직전의 자신을 불러온다는 작전이었다.
물론 위험했다.
거의 시스템과 자아가 융합되기 직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박문대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곧 얼굴이 누그러졌다.
‘그래도 성공했어.’
이곳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라.
마침 맞은편에서 이 심상 세계를 만든 장본인, 큰달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박문대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박문대를 불러준 반가운 사람에게…….
“형 미쳤어요?! 아니, 아니! 어떻게 이런!”
멱살이 잡혔다.
“시간 없다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냥 타이밍 되면 부르라는데, 타이밍 어긋나면 형이 죽는다지! 도트는 자꾸 뭉개지지! 형은 박문대를 잃어버린다고 뜨지!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일을…….”
“됐잖아.”
암튼 성공함.
“으윽!”
큰달이 불을 뿜을 듯이 분노하며 박문대의 멱살을 짤짤 흔들려고 들었다가, 결국 울상을 지었다.
참지 못한 반가움과 안도.
그리고 두려움 탓이었다.
“혀, 형만 잡긴 했는데, 어차피 시스템도 현실로 돌아오려고 해서…… 이대로는 현실에 가는 대로 시스템과 형이 다시 융합될 거예요!”
그러나 박문대는 같이 초조해하는 대신, 거실 창밖을 보았다.
붉고, 노랗고, 분홍빛과 보랏빛이 섞여 은은한 그 색채를 그리운 것처럼.
그리고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예?”
“시스템은 반대 방향으로 끌려갈 거다.”
박문대는 씩 웃었다.
“시스템 가진 놈이 부르거든!”
* * *
“도움말.”
입을 움직여 도움말을 부르며, 청려는 앞을 보았다.
이 일을 요구한 자를.
“…….”
거기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영이 미소 없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