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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60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0화
시작부터 든 의문이었다.
‘왜 청려는 나한테 배우판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가.’
겨우 신인 배우가 된 놈한테 말이다.
100번이나 재시작한 놈이 설마 그것보다 더 나은 창구를 뚫어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알아낼 수 있는, 특정한 정보 한 가지만 노리는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정보가 목적이 아니었던 거지.’
“정보를 찾겠답시고 스케줄에 소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터뷰 하나하나, 홍보 매체 하나하나를 시간을 들여 제대로 준비해 답변했지. 주목받을 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거야.”
“…….”
“질 좋은 재능과 태도를 타고났다는 뜻이죠. 건우 씨가.”
청려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마주 보았다.
“그건 대학에 재학 중인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내 태도를 보려고.
내가 얼마나 이 업계에 잘 적응하는지, 그리고 밥값을 하며 활약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배우 활동을 지원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쓸데없는 방해를 받지 않고 대학생 류건우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가리 굴리는 게 사람 빡치게 하는 건 여전하군.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학 잘만 다니는 놈이 뭐하러 아이돌을 할 것 같냐. 이 시기의 나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어.”
“그런 것 치고는 열심히 찍던데.”
“…….”
“숙소에 있는 내 사진 중에 건우 씨가 촬영한 게 있던데요.”
데이터팔이인 것까지 알아냈냐.
“돈 되니까 하는 거야.”
“그 학벌이면 돈 벌 방법이 하나는 아니지 않나? 굳이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아이돌 사진을 찍는 수지타산 안 맞는 짓을 왜 했을까.”
“네 생각보단 잘 번다.”
“더 ‘잘 버는’ 일을 소개해 줄 수 있어서 영광인걸.”
청려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놀라진 않았다.
이딴 말로 설득될 놈이었으면 내가 이 새끼 대가리를 수갑 찬 채로 내려칠 일도 없었겠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잠시만.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만.”
주단이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왜 저희에게 이런 계획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과거로 돌아가시는 순간 선배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경험과 기억은 사라질 텐데요.”
사실이었다.
“저희 역시 높은 확률로 기억하지 못할 텐데 굳이 말씀하시는 건… 감정적인 요인입니까?”
“…….”
주단 녀석은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살짝 손을 떨고 있었다.
‘애쓰는군.’
나는 침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반응을 보려는 거다.”
“예?”
“이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우리 반응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쓸지 계획을 세우려는 거지.”
한 마디로 인력 포텐셜 측정기다.
부작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잊어버릴 테니까.
주단은 감탄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과연….”
“추측이 아니라 확신을 하네?”
“…!”
청려가 빙긋 웃었다.
“역시 네가 살던 시간에서 나와 안면이 있었나 본데. 좀 깊게.”
“…….”
“우선 둘 다 너무 당황한 것 같은데. 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어.”
청려가 차분하게 말했다.
“내 조건은 변하지 않았거든. 누구든 손해 보는 일은 없어. 더 좋아질 뿐이지. 그리고….”
그리고 제법 친절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내가 재시작한 후에 건우 씨 몸을 잃어버려도 염려하지 마요. 도움말로 남아도 삭제하진 않을 테니.”
참 고맙기도 하군.
빈정거리고 싶었으나, 청려는 여전히 호의적인 기색을 유지했다.
“약속대로 앨범도 낼 테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확인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남아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뿐이다.
나는 이놈이 다음에 할 말을 예측했다.
“하지만, 들었다시피… 앨범이 성공해도 여기 남아 있는 건 그룹에 좋지 않은 판단이라서. 재시작은 정해진 일이야.”
청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만족하면 안 되지.”
리셋 증후군.
더 좋은 조건이 나오면 기꺼이 재시작하는 버릇.
이미 현실의 청려는 딛고 넘어간 이 단계에 무섭게 고여 있는 새끼는… 더럽게, 더럽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X발.’
나는 아려오는 뒤통수에 눈을 감았다.
설득 방법이… 있나.
“…….”
없다.
청려 놈에게서 내게로 시스템이 넘어오면서, 그 녀석이 내게 재시작 버튼이 있다고 오해했던 현실과는 다르다.
재시작을 위해 나를 설득해야 했던 현실과 달리 이 과거에선 저놈 마음대로 재시작할 수 있었다.
나한테는 협상할 패가 없다고 X발.
“…….”
게다가… 이제 슬슬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애초에 말이다.
‘내가 왜 이놈을 말려야 하는 거지?’
협상을 왜 해야 하나고.
적당히 시간만 벌면 그만 아닌가.
‘여긴 내가 사는 현실도 아니고.’
나는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이놈이 재시작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괜히 대학교 재학 중이던 이 시간대의 내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했을 뿐이다.
‘그놈을 굽든 삶든 VTIC을 만들던 내가 알 게 뭐야.’
상관없다.
‘그래.’
골이 지근거렸다.
그리고… 지긋지긋했다.
‘왜 내가 X발… 매번 이 새끼랑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는 이야기를 대체 몇 번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체 몇 번을 해야 이 빌어먹을 시스템 짓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뇌에 열이 치밀어 올랐다.
안 그래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내가 또 멍청하게 처박혀서 이 악물고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다고.
내 코가 석자인 와중에 무슨 여유가 있다고 VTIC 놈들끼리 오해를 풀어주려고 한 거지.
‘멍청한 짓이었다.’
난 돌아가고 싶었다.
…포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이유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계속 답지 않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시스템 안에 돌아갈 단서가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그걸 이용할 수 있으리라 믿고, 팝업이 진짜 큰달과 멤버들이라고 믿고….
하지만, 진짜, 진짜 현실적으로 보자면….
‘뭐 하나 확실할 수 있는 게, 없다.’
증명된 건 없다.
내가 돌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한 건, 어쩌면 전부 쓸모없는 헛짓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잠식당할 것 같았다.
‘X발.’
테스타 박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대로 개 같은 상황에 끌려다닐 것 같은 이… 망할 공포가 말이다.
‘안 돼.’
나는 손으로 허벅지를 핏줄이 서도록 쥐었다.
식은땀이 떨어졌다.
[고결한 마음가짐의 무용수가….]
“…….”
그때. 머리 위로 살짝 빛이 비친다.
나는 시선을 올렸다.
바로 옆에서, 팝업 속 문구가 별처럼 반짝인다.
[고결한 마음가짐의 무용수가 최선을 다합니다.]
[고결한 마음가짐의 무용수가 당신에게 가호를 내립니다.]
[특성 : 상태이상 무효]
그 순간.
나는 질척한 혼란과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크게 심호흡을 하자.
‘후우…….’
호흡에 맞추어 신체를 인지하고, 그다음으로 머릿속 사고를 인지한다.
‘겁먹었군.’
나는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진단했다.
난 현실을 깨달은 게 아니라 그냥 패닉에 빠진 것이다.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가 계속 무의식에 쌓이면서 임계치를 넘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하지.’
책망은 하지 말자.
나는 조금 객관적으로 스스로에게 인정 점수를 내렸다.
X도 모르면서 애썼다.
‘어떻게든 여기까지 끌고는 왔잖냐.’
내 머릿속을 진창으로 만들던 끔찍한 발상과 더러운 기분이 마법처럼 말끔히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혼란은 여전했다. 공포도 여전했다.
단지 그것을 다루는 힘이 생겼다.
마치 마라톤 중에 불쑥 체력이 솟아나듯이, 저기 떨어져 있는 골라인을 가늠하며 뛰어갈 의지가 마음을 채웠다.
근성.
회복 탄력성.
아마 선아현이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것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질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다.
[고결한 마음가짐의 무용수가 당신을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그 높은 시야로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며 마음이 단단해졌다.
‘다시 해도 더 잘하진 못하겠는데.’
청려의 도움말로, 미국에서 불법 노동자로, 배우 데뷔로.
순간순간마다 어쨌든 난 최선을 다해서 행동했다는 확신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굳는다.
그러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과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이곳의 청려가 리셋 증후군인 건 당연한 일이다.’
과거 시점이니까.
현실과 비교해서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리셋 증후군이라 인간불신인 놈한테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해서 멤버로 합격한 게 어디냐.
‘바란 적은 없다만.’
뭐, 내가 썩 쓸만한 놈이라는 뜻이겠지. 과연 만년 1군 답게 1군 아이돌을 알아봤다고 생각하자고.
‘그래.’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지 않았다면, 평소라면 그렇게 뻔뻔하게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또 가장 좋은 방법을 골몰해 보는 거지.’
내가 박문대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맨날 하던 짓 아닌가.
답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답 찾기.
어딘가에서 용기와 에너지가 배어 나와 머리와 척수에 스며드는 것 같다.
탄성을 가진 공처럼 마음이, 정신력이 튀어 오른다.
[고결한 마음가짐의 무용수가 숨을 내쉽니다.]
‘할 수 있어.’
팝업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 내가 할 일을 고르자면….
나는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거… 높이 평가해 준 건 고맙다만.”
“음?”
“날 멤버로 쓰는 건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당장 내가 할 일이 좀 있어서… 잠깐 자리 좀 비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청려의 시스템 속으로 뛰어들었다.
단말을 마저 분석하기 위하여.
* * *
그러나 같은 시간 JSA.
박문대의 지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사실, 직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아주 희망적이었다.
[박문대(ㅁㅅ@) : 혼란 속에서 가라앉는 중….]
[박문대(@ㅅ@) : 혼란과 좌절 중]
“What the fuck….”
“…….”
선아현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맺혀서 턱에서 떨어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박문대의 심정을 도와주려 했지만, 가호를 내리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걱정도 되었다.
‘나는, 다른 멤버들보다… 문대에게 힘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눈에 띄는 재능, 캐릭터가 있는 멤버들과 달리 자신은 어쩐지 밋밋하다는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만 가호를 내릴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마지막 순번이 됐다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그는 계속 가호를 내리려 애썼다.
‘아현 님….’
큰달은 눈을 껌벅거리며, 시큰거리는 감정을 참았다.
물론 스스로의 걱정과 달리 선아현의 가호는 박문대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었다.
[박문대(ㅁㅅㅁ*) : 혼란에서 벗어나는 중!]
“돼, 됐다…!”
“정말 다행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살아났다.
다만 박문대가 선아현의 가호를 받는 순간, 선아현의 특성이 가진 독특한 힘도 함께 전달받게 되었다.
-상태이상 무효.
상태이상을 무시하는 그 힘의 파생 효과. 바로 에러(error)였다.
시스템의 형식과 영향을 뚫고, 그 너머의 본질과 날것을 보는 것.
그래서 직후 박문대가 청려의 시스템에 접속한 그 순간.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박문대(■■■) : ■■■■■■■■■■■■■■■■■■]
사람의 형상이던 도트 박문대는 뭉개지더니, 이윽고 괴상하게 뒤틀린 사각형의 희끄무레한 것으로 변했다.
본래라면 큰달이 구현한 이 도트 화면의 예측 범위 바깥이기에 표기되지 않을, 박문대의 특이한 상황.
바로 상태창이 된 문대의 상태였다.
[박문대(■■■) : !!!!!!!]
전에는 인간의 모양새였던, 네모난 박스 같은 도트 위로 깨진 글자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등골이 서늘해지는, 덜컥 불안감이 차오르는 괴기한 상황.
순간 싸늘하게 식었던 분위기가 당황 속에서 끓어올랐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혹시 체력을 다 채워서, 지금 무슨 오류 같은 게 난 거야?”
큰달은 얼굴이 하얗게 굳은 채로 다시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이상해.’
하지만… 문대 형의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이상했다.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상황을 확인하고….”
하지만 큰달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팔을 덥석 잡아챘기 때문이다.
“…!”
군복을 입은 팔.
청려였다.
그는 순식간에 테스타의 어깨를 밀어 공간을 만들고 큰달을 잡아챘다.
‘자, 잠깐.’
청려는 지금까지, 박문대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매개체. 그러니까 통로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근데, 그쪽도 가호를 내려보려고요?’
청려가 이렇게 채널에 접속하려고 해도 과연 다른 사람들처럼 가호를 내릴 수 있는지는, 사실 큰달도 확신할 수 없….
“아…….”
그 순간 큰달은 깨달았다.
과거, 청려는 시스템의 가상세계에서 권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청려에게 남아 있었다.
그는 GM이었다.
게임 마스터. 운영자.
“연결해.”
큰달은 침을 삼키고, 움직였다.
* * *
같은 시각, 배우 류문의 오피스텔.
“소파에 눕혀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 예. 그냥 두시죠.”
갑자기 탁자 위에 고개를 처박고 눈을 감은 박문대 덕에, 감돌던 긴장감은 일단 해소된 상태였다.
비록 정우단은 VTIC 청려를 경계하는 동시에 떠받는 듯 오묘한 자세를 취했으나, 당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검증은 끝났으니까.
청려는 그래서 아직 미지의 구석이 남은, 다른 쪽 면접자를 쳐다보았다.
류건우.
‘도움말이 된 건가.’
왜 갑자기 접속한 걸까.
설마 또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할 뭔가를 개발해 와서, 재시작하지 말라고 설득해 볼 생각일까.
‘통하지 않는다는 걸 학습할 때도 됐는데.’
그는 희미한 호기심과 난감한 사이에서 호출을 시도했다.
-도움말.
답은 없었기에, 그는 이번엔 여러 번 불렀다.
-도움말.
-도움말.
-도움말.
약간 유쾌한 기분으로 그 반복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반응이 온다.
‘음.’
청려가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
본래 도움말 창이 뜨던 곳에.
찢어발기듯 폭력적인 글자가 고요히 떠오른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시야를 가득 채울 듯이.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상의 화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0화

시작부터 든 의문이었다.

‘왜 청려는 나한테 배우판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가.’

겨우 신인 배우가 된 놈한테 말이다.

100번이나 재시작한 놈이 설마 그것보다 더 나은 창구를 뚫어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알아낼 수 있는, 특정한 정보 한 가지만 노리는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정보가 목적이 아니었던 거지.’

“정보를 찾겠답시고 스케줄에 소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터뷰 하나하나, 홍보 매체 하나하나를 시간을 들여 제대로 준비해 답변했지. 주목받을 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거야.”

“…….”

“질 좋은 재능과 태도를 타고났다는 뜻이죠. 건우 씨가.”

청려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마주 보았다.

“그건 대학에 재학 중인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내 태도를 보려고.

내가 얼마나 이 업계에 잘 적응하는지, 그리고 밥값을 하며 활약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배우 활동을 지원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쓸데없는 방해를 받지 않고 대학생 류건우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가리 굴리는 게 사람 빡치게 하는 건 여전하군.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학 잘만 다니는 놈이 뭐하러 아이돌을 할 것 같냐. 이 시기의 나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어.”

“그런 것 치고는 열심히 찍던데.”

“…….”

“숙소에 있는 내 사진 중에 건우 씨가 촬영한 게 있던데요.”

데이터팔이인 것까지 알아냈냐.

“돈 되니까 하는 거야.”

“그 학벌이면 돈 벌 방법이 하나는 아니지 않나? 굳이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아이돌 사진을 찍는 수지타산 안 맞는 짓을 왜 했을까.”

“네 생각보단 잘 번다.”

“더 ‘잘 버는’ 일을 소개해 줄 수 있어서 영광인걸.”

청려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놀라진 않았다.

이딴 말로 설득될 놈이었으면 내가 이 새끼 대가리를 수갑 찬 채로 내려칠 일도 없었겠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잠시만.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만.”

주단이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왜 저희에게 이런 계획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과거로 돌아가시는 순간 선배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경험과 기억은 사라질 텐데요.”

사실이었다.

“저희 역시 높은 확률로 기억하지 못할 텐데 굳이 말씀하시는 건… 감정적인 요인입니까?”

“…….”

주단 녀석은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살짝 손을 떨고 있었다.

‘애쓰는군.’

나는 침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반응을 보려는 거다.”

“예?”

“이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우리 반응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쓸지 계획을 세우려는 거지.”

한 마디로 인력 포텐셜 측정기다.

부작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잊어버릴 테니까.

주단은 감탄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과연….”

“추측이 아니라 확신을 하네?”

“…!”

청려가 빙긋 웃었다.

“역시 네가 살던 시간에서 나와 안면이 있었나 본데. 좀 깊게.”

“…….”

“우선 둘 다 너무 당황한 것 같은데. 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어.”

청려가 차분하게 말했다.

“내 조건은 변하지 않았거든. 누구든 손해 보는 일은 없어. 더 좋아질 뿐이지. 그리고….”

그리고 제법 친절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내가 재시작한 후에 건우 씨 몸을 잃어버려도 염려하지 마요. 도움말로 남아도 삭제하진 않을 테니.”

참 고맙기도 하군.

빈정거리고 싶었으나, 청려는 여전히 호의적인 기색을 유지했다.

“약속대로 앨범도 낼 테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확인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남아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뿐이다.

나는 이놈이 다음에 할 말을 예측했다.

“하지만, 들었다시피… 앨범이 성공해도 여기 남아 있는 건 그룹에 좋지 않은 판단이라서. 재시작은 정해진 일이야.”

청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만족하면 안 되지.”

리셋 증후군.

더 좋은 조건이 나오면 기꺼이 재시작하는 버릇.

이미 현실의 청려는 딛고 넘어간 이 단계에 무섭게 고여 있는 새끼는… 더럽게, 더럽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X발.’

나는 아려오는 뒤통수에 눈을 감았다.

설득 방법이… 있나.

“…….”

없다.

청려 놈에게서 내게로 시스템이 넘어오면서, 그 녀석이 내게 재시작 버튼이 있다고 오해했던 현실과는 다르다.

재시작을 위해 나를 설득해야 했던 현실과 달리 이 과거에선 저놈 마음대로 재시작할 수 있었다.

나한테는 협상할 패가 없다고 X발.

“…….”

게다가… 이제 슬슬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애초에 말이다.

‘내가 왜 이놈을 말려야 하는 거지?’

협상을 왜 해야 하나고.

적당히 시간만 벌면 그만 아닌가.

‘여긴 내가 사는 현실도 아니고.’

나는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이놈이 재시작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괜히 대학교 재학 중이던 이 시간대의 내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했을 뿐이다.

‘그놈을 굽든 삶든 VTIC을 만들던 내가 알 게 뭐야.’

상관없다.

‘그래.’

골이 지근거렸다.

그리고… 지긋지긋했다.

‘왜 내가 X발… 매번 이 새끼랑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는 이야기를 대체 몇 번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체 몇 번을 해야 이 빌어먹을 시스템 짓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뇌에 열이 치밀어 올랐다.

안 그래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내가 또 멍청하게 처박혀서 이 악물고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다고.

내 코가 석자인 와중에 무슨 여유가 있다고 VTIC 놈들끼리 오해를 풀어주려고 한 거지.

‘멍청한 짓이었다.’

난 돌아가고 싶었다.

…포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이유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계속 답지 않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시스템 안에 돌아갈 단서가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그걸 이용할 수 있으리라 믿고, 팝업이 진짜 큰달과 멤버들이라고 믿고….

하지만, 진짜, 진짜 현실적으로 보자면….

‘뭐 하나 확실할 수 있는 게, 없다.’

증명된 건 없다.

내가 돌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한 건, 어쩌면 전부 쓸모없는 헛짓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잠식당할 것 같았다.

‘X발.’

테스타 박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대로 개 같은 상황에 끌려다닐 것 같은 이… 망할 공포가 말이다.

‘안 돼.’

나는 손으로 허벅지를 핏줄이 서도록 쥐었다.

식은땀이 떨어졌다.

“…….”

그때. 머리 위로 살짝 빛이 비친다.

나는 시선을 올렸다.

바로 옆에서, 팝업 속 문구가 별처럼 반짝인다.

그 순간.

나는 질척한 혼란과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크게 심호흡을 하자.

‘후우…….’

호흡에 맞추어 신체를 인지하고, 그다음으로 머릿속 사고를 인지한다.

‘겁먹었군.’

나는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진단했다.

난 현실을 깨달은 게 아니라 그냥 패닉에 빠진 것이다.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가 계속 무의식에 쌓이면서 임계치를 넘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하지.’

책망은 하지 말자.

나는 조금 객관적으로 스스로에게 인정 점수를 내렸다.

X도 모르면서 애썼다.

‘어떻게든 여기까지 끌고는 왔잖냐.’

내 머릿속을 진창으로 만들던 끔찍한 발상과 더러운 기분이 마법처럼 말끔히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혼란은 여전했다. 공포도 여전했다.

단지 그것을 다루는 힘이 생겼다.

마치 마라톤 중에 불쑥 체력이 솟아나듯이, 저기 떨어져 있는 골라인을 가늠하며 뛰어갈 의지가 마음을 채웠다.

근성.

회복 탄력성.

아마 선아현이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것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질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높은 시야로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며 마음이 단단해졌다.

‘다시 해도 더 잘하진 못하겠는데.’

청려의 도움말로, 미국에서 불법 노동자로, 배우 데뷔로.

순간순간마다 어쨌든 난 최선을 다해서 행동했다는 확신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굳는다.

그러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과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이곳의 청려가 리셋 증후군인 건 당연한 일이다.’

과거 시점이니까.

현실과 비교해서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리셋 증후군이라 인간불신인 놈한테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해서 멤버로 합격한 게 어디냐.

‘바란 적은 없다만.’

뭐, 내가 썩 쓸만한 놈이라는 뜻이겠지. 과연 만년 1군 답게 1군 아이돌을 알아봤다고 생각하자고.

‘그래.’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지 않았다면, 평소라면 그렇게 뻔뻔하게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또 가장 좋은 방법을 골몰해 보는 거지.’

내가 박문대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맨날 하던 짓 아닌가.

답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답 찾기.

어딘가에서 용기와 에너지가 배어 나와 머리와 척수에 스며드는 것 같다.

탄성을 가진 공처럼 마음이, 정신력이 튀어 오른다.

‘할 수 있어.’

팝업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 내가 할 일을 고르자면….

나는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거… 높이 평가해 준 건 고맙다만.”

“음?”

“날 멤버로 쓰는 건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당장 내가 할 일이 좀 있어서… 잠깐 자리 좀 비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청려의 시스템 속으로 뛰어들었다.

단말을 마저 분석하기 위하여.

* * *

그러나 같은 시간 JSA.

박문대의 지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사실, 직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아주 희망적이었다.

“What the fuck….”

“…….”

선아현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맺혀서 턱에서 떨어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박문대의 심정을 도와주려 했지만, 가호를 내리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걱정도 되었다.

‘나는, 다른 멤버들보다… 문대에게 힘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눈에 띄는 재능, 캐릭터가 있는 멤버들과 달리 자신은 어쩐지 밋밋하다는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만 가호를 내릴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마지막 순번이 됐다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그는 계속 가호를 내리려 애썼다.

‘아현 님….’

큰달은 눈을 껌벅거리며, 시큰거리는 감정을 참았다.

물론 스스로의 걱정과 달리 선아현의 가호는 박문대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었다.

“돼, 됐다…!”

“정말 다행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살아났다.

다만 박문대가 선아현의 가호를 받는 순간, 선아현의 특성이 가진 독특한 힘도 함께 전달받게 되었다.

-상태이상 무효.

상태이상을 무시하는 그 힘의 파생 효과. 바로 에러(error)였다.

시스템의 형식과 영향을 뚫고, 그 너머의 본질과 날것을 보는 것.

그래서 직후 박문대가 청려의 시스템에 접속한 그 순간.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사람의 형상이던 도트 박문대는 뭉개지더니, 이윽고 괴상하게 뒤틀린 사각형의 희끄무레한 것으로 변했다.

본래라면 큰달이 구현한 이 도트 화면의 예측 범위 바깥이기에 표기되지 않을, 박문대의 특이한 상황.

바로 상태창이 된 문대의 상태였다.

전에는 인간의 모양새였던, 네모난 박스 같은 도트 위로 깨진 글자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등골이 서늘해지는, 덜컥 불안감이 차오르는 괴기한 상황.

순간 싸늘하게 식었던 분위기가 당황 속에서 끓어올랐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혹시 체력을 다 채워서, 지금 무슨 오류 같은 게 난 거야?”

큰달은 얼굴이 하얗게 굳은 채로 다시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이상해.’

하지만… 문대 형의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이상했다.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상황을 확인하고….”

하지만 큰달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팔을 덥석 잡아챘기 때문이다.

“…!”

군복을 입은 팔.

청려였다.

그는 순식간에 테스타의 어깨를 밀어 공간을 만들고 큰달을 잡아챘다.

‘자, 잠깐.’

청려는 지금까지, 박문대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매개체. 그러니까 통로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근데, 그쪽도 가호를 내려보려고요?’

청려가 이렇게 채널에 접속하려고 해도 과연 다른 사람들처럼 가호를 내릴 수 있는지는, 사실 큰달도 확신할 수 없….

“아…….”

그 순간 큰달은 깨달았다.

과거, 청려는 시스템의 가상세계에서 권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청려에게 남아 있었다.

그는 GM이었다.

게임 마스터. 운영자.

“연결해.”

큰달은 침을 삼키고, 움직였다.

* * *

같은 시각, 배우 류문의 오피스텔.

“소파에 눕혀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 예. 그냥 두시죠.”

갑자기 탁자 위에 고개를 처박고 눈을 감은 박문대 덕에, 감돌던 긴장감은 일단 해소된 상태였다.

비록 정우단은 VTIC 청려를 경계하는 동시에 떠받는 듯 오묘한 자세를 취했으나, 당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검증은 끝났으니까.

청려는 그래서 아직 미지의 구석이 남은, 다른 쪽 면접자를 쳐다보았다.

류건우.

‘도움말이 된 건가.’

왜 갑자기 접속한 걸까.

설마 또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할 뭔가를 개발해 와서, 재시작하지 말라고 설득해 볼 생각일까.

‘통하지 않는다는 걸 학습할 때도 됐는데.’

그는 희미한 호기심과 난감한 사이에서 호출을 시도했다.

-도움말.

답은 없었기에, 그는 이번엔 여러 번 불렀다.

-도움말.

-도움말.

-도움말.

약간 유쾌한 기분으로 그 반복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반응이 온다.

‘음.’

청려가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본래 도움말 창이 뜨던 곳에.

찢어발기듯 폭력적인 글자가 고요히 떠오른다.

시야를 가득 채울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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