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화
‘박문대가 개명을 했냐고?’
뒷골이 싸해지는 게 느낌이 안 좋았다.
어쨌든 어색해 보이면 안 되겠지.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출생신고할 때부터 박문대였는데요.”
“으허허!”
MC가 리액션이 좋군.
이건 사실이었다.
‘이 몸에 들어오자마자 주민등록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떼어봤다.’
바보도 아니고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다 찾아봤었다.
박문대는 이 이름으로 계속 살았었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적어둔 고등학교 자퇴를 제외하면 깨끗했다.
‘자퇴도 유서 보니 따돌림 때문이었고.’
데뷔에 문제 될 이유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 구체적인 ‘개명 여부 확인’은… 확실히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끝나면 바로 인터넷을 찾아봐야겠어.’
“아~ 문대 씨 이름이 워낙 유니크해서 물어보셨나 보네요!”
MC는 더 뽑을 것이 없다고 느꼈는지 곧바로 질문을 마무리했다.
나는 다른 참가자가 질문을 받는 것을 확인하며,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 *
나는 막 인터넷에서 밈화된 SNS 글 하나를 찾았다.
========================
[문댕이 뭘 하고 살았을지 궁금한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 개명한 외계인인 건 아닐까]
========================
‘이게 문제였군.’
좀 허탈했다.
원래 계정 주인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였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빠르게 밈이 된 것 같았다. 팬 커뮤니티 내에서이긴 하지만.
-(일 리가… 있다!)
-먹는데 진심인 걸 보니까 외계인 맞는 듯 지구의 식문화를 조사하러 파견된 거임 암튼 그럼
-문대 본체 강아지 귀 달렸다 내가 봤다
이런 농담을 하며 사람들이 웃는 거야 상관없었지만, 상황 자체는 좀 의구심이 생기긴 했다.
‘하나도 안 나올 줄은 몰랐는데.’
박문대의 생년월일에 이름까지 프로필에 적혀 있었다.
솔직히 방영 중간에 출신 고등학교 정도는 밝혀질 줄 알았다.
하다못해 ‘나 같은 학교였는데 얘 좀 이상했음. 혼자 다니다 자퇴한 애임’ 같은 말까지도 예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발언이야 타격도 없을 터다. 오히려 학교에서 약자였으니 누굴 괴롭힐 깜냥은 아니라고 팬들이 안심했겠지.
‘인상이 많이 달라져서인가.’
이 추측이 그나마 제일 일리가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 박문대는 비쩍 마른 데다 머리카락도 덥수룩했었다. 거기다 아예 다른 사람(나)이 들어왔으니 말투나 동작,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겠지. 가명을 쓴 것도 아니니까.
‘기왕이면 프로그램 끝나고 나왔으면 좋겠군.’
이제 생방송까지 스마트폰을 보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토크쇼 촬영이 끝난 뒤, 숙소에 다시 들어가며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연습이나 열심히 하자.’
이제 결승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뿐이었다. 다른 생각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유가 없어도, 당장 문제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걸 얼마 지나지 않아 체감하게 되었다.
* * *
일이 터진 것은 이틀 후 저녁이었다.
반쯤 졸면서 저녁을 입에 밀어 넣고 있을 때, 제작진에게서 급한 호출이 왔다.
지금까지 경험상 무슨 인터뷰 컷이라도 딸 줄 알았다. 그러나 스태프룸 분위기는 심각했다.
“문대 씨.”
날 노래방에서 캐스팅했던 작가는 간신히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로 말을 시작했다.
“지금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는데.”
“……예.”
이거 기분이 더럽게 싸한데.
심지어 저 작가가 이걸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나를 앞에 두고 말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냥 제가 직접 봐도 괜찮을까요.”
“음, 그래요.”
작가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냉큼 자신의 폰을 건넸다.
나는 화면을 봤다. 낯익은 인터페이스가 보였다.
큰세진 학폭 논란이 올라온 그 커뮤니티다.
그리고 상단에 큰 폰트로 써진 제목이 보였다.
========================
[박문대 자퇴 이유 : 생리대 훔치다 걸려서ㅋㅋ]
========================
“…….”
이게 X발 무슨 개소리야.
상상도 못 한 타이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릿속이 턱 막히는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충격 때문에 안 돌아가는 뇌로 내용을 확인했다.
========================
박문대 인천 시정고 출신인 건 이미 다 떴으니까 설명 생략할게
나 시정고 나왔는데 박문대랑 동갑임. 박문대 3반이었는데 개음침하고 이상한 애였음. 나 사실 이름도 몰랐어 지금 뜬 거 보고 아주사 박문대인 거 알았다
응 근데 여기까지 읽고 안심하지마 빠들아ㅎㅎ ★박문대 자퇴한 거 같은 반 여자애 생리대 훔치다 걸려서 맞음★
심지어 이것 때문에 생리대 도둑맞은 여자애도 소문 이상하게 나서 얼마 안 가서 자퇴했음
그리고 이거 아는 애들 꽤 있다? 학폭위 열리는 거 아니냐고 한동안 난리였다니까ㅎ 박문대가 자퇴하고 튀어버렸지만!
혹시 안 믿을까봐 내 졸업앨범이랑 교복 인증할게. 근데 굳이 안 이래도 아는 애들 계속 나올 거임~
[사진] [사진] [사진]
========================
그 밑으로 자신도 이 사건을 안다고 주장하는 자칭 시정고 출신 네티즌들의 증언글이 줄줄 베스트 댓글로 달려 있었다.
“…….”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건… 답이 없었다.
차라리 누굴 때리거나 돈을 훔친 게 나았다. 훔칠 게 없어서 여자애 생리대를 훔쳐?
내가 현실에서 봤어도 답 없는 새끼라고 생각했을 일이었는데, 아이돌 오디션 참가자한테 이런 일이 터졌다고.
“다 읽었어요?”
읽었는데 할 말이 없다.
박문대 이 새끼 미친 거 아닌가?
‘이딴 병신 짓을 저지르고 유서에 따돌림당한 게 억울하다고 적어?’
그래, 혹시 훔친 게 아니었다면 그럴 만도 했다. 근데 당장 이 새끼가 안 훔쳤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있냐는 말이다.
“……예.”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작가는 쓸데없이 ‘진짜냐 아니냐’ 같은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빨리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요.”
수습하든가, 하차하든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나는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잠시,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 …습니다.”
“예. 빨리 해주세요.”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대로 정신 나간 채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직 연습할 시간이라 숙소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탁자에 앉으면 위에 있는 물건을 다 박살 낼 것 같아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려 노력… X발, 노력 같은 소리 하네.
나는 침대를 후려쳤다.
‘퍽, 퍽’ 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지만, 뭐 하나 이 빡침이 해소되지를 않았다.
‘이대로 뒈지라고?’
이걸 씨X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런 하자 있는 몸에 처넣어놓고 아닌 척 레벨업으로 퍼주는 척 1년 내로 데뷔하라고 등 떠민 이 상황에 악의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 엿 같은 부동심 특성을 받아왔어야 했다.
‘이제… 뭘 어쩌지.’
빡침 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우습게도 진한 무력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말로.
아는 게 없으니까.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서치라도… 아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지금 그나마 여론을 안 보고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별 신경 안 쓰면서 살았다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원색적인 비난을 쏟는 걸 보고도 멀쩡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박문대를 응원했던 사람들이 대체 무슨 심정이겠냐는 말이다.
있는 대로 돈과 시간을 썼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뒤통수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한 게 아니라서 더 어이가 없다. 아주 미칠 지경이다.
…이렇게 상황에 압도되는 느낌은 고아 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
포기할까.
짧게 그 생각이 스칠 때 즈음, 누군가 숙소 방문을 삐걱 열었다.
“저, 저기…….”
“…….”
지금 꺼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침대에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뇌가 끓는 것 같았다.
“야 박문대.”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큰세진이 들어왔다.
벌써 소문이 돌았나 보군. 눈치 빠른 놈이 먼저 알아차린 것도 이상한 건 없었다.
“너 그 얘기 진짜냐?”
몰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극도의 스트레스로 입이 제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저 새끼가 대꾸를 하더라.
“왜 몰라. 너 진짜 그것 때문에 자퇴했어?”
“모른다니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결승만 남았으니 내가 하차하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너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 알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기억이 안 나.”
“뭐?”
“X발. 자살하려다가 깨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됐냐?”
투두툭.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선아현이 들고 있던 초코바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탄식했다. 쓸데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나마 몸이 바뀌어서 과거로 돌아왔다고 지껄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상태창까지 보인다고 했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허언증 아니면 정신병자다.
아니, 지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 일 해결 못 하면 1년 내로 데뷔는 턱도 없을 것을.
“지, 지, 진짜…….”
“어, 진짜.”
가뜩이나 침착하기 어려운데 쓸데없는 대화에 기운 쓰게 하는군.
“알았으면 좀… 가만히 둬.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기억도 안 난다면서 무슨 수로 정리하게.”
“좀 나가라.”
“어차피 너도 아는 게 없으면 상의할 사람 있는 게 낫잖아. 소속사도 없으면서.”
“…….”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데, 네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생리대 훔쳤다는 루머는 더 이상하고.”
“마, 맞아.”
“너처럼 계산 빠른 놈이 그런 바보짓을 할 것 같지가 않거든.”
“…!! 아, 아니……. 그, 그런 뜻은 아니고, 어, 그, 그러니까…….”
선아현이 고장 났다. 큰세진은 선아현을 무시했다.
“그래. 피해자나 피해자 지인이 올린 거면 달랐겠지. 근데 보니까 그것도 아니라네.”
“…….”
머리가 좀 식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큰세진을 봤다.
큰세진은 침착하게 맞은편 바닥에 앉고 있었다.
안 그럴 것 같은 놈이 웬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자기 일 도와줬다고 저러나.’
그래도 결승을 코앞에 두고 이러는 건 의외긴 했다. 지금 내가 이딴 걸 신경 쓸 처지는 아니지만.
“일단… 이 사건은 그럼 기억이 안 난다고 치자. 고등학교 때 일 기억나?”
“고등학교고 뭐고 아예 기억 자체가 없어. 정신 차리니까 앞에 유서만 있던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서에는, 뭐 언급 없었고?”
“구체적인 사건 언급 자체가 없었지. 억울하다는 표현은 있었지만 그건 누구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본인인데 냉정하네.”
큰세진이 힘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심적 여유가 없었다.
“저, 저기.”
선아현이 힘들게 말에 끼어들었다.
“그, 그럼… 다, 당사자분이 계신지, 찾아서 확인하는 건… 히, 힘들까.”
“…….”
자퇴했다는 여자애를 말하는 거겠지.
“지금같이 촬영 중이면 찾을 시간도, 기회도 없지. …하차하면 모를까.”
…말할수록 상황이 명확해졌다.
일단 하차해서 급한 불을 끄고, 상황을 정확히 알아보는 게 그나마 생존율이 높을 것 같다는 것이.
“……하, 하지 마.”
“뭐?”
“그, 그만두지 말고, 조, 조금 기, 기다려 보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화
‘박문대가 개명을 했냐고?’
뒷골이 싸해지는 게 느낌이 안 좋았다.
어쨌든 어색해 보이면 안 되겠지.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출생신고할 때부터 박문대였는데요.”
“으허허!”
MC가 리액션이 좋군.
이건 사실이었다.
‘이 몸에 들어오자마자 주민등록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떼어봤다.’
바보도 아니고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다 찾아봤었다.
박문대는 이 이름으로 계속 살았었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적어둔 고등학교 자퇴를 제외하면 깨끗했다.
‘자퇴도 유서 보니 따돌림 때문이었고.’
데뷔에 문제 될 이유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 구체적인 ‘개명 여부 확인’은… 확실히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끝나면 바로 인터넷을 찾아봐야겠어.’
“아~ 문대 씨 이름이 워낙 유니크해서 물어보셨나 보네요!”
MC는 더 뽑을 것이 없다고 느꼈는지 곧바로 질문을 마무리했다.
나는 다른 참가자가 질문을 받는 것을 확인하며,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 *
나는 막 인터넷에서 밈화된 SNS 글 하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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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문제였군.’
좀 허탈했다.
원래 계정 주인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였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빠르게 밈이 된 것 같았다. 팬 커뮤니티 내에서이긴 하지만.
-(일 리가… 있다!)
-먹는데 진심인 걸 보니까 외계인 맞는 듯 지구의 식문화를 조사하러 파견된 거임 암튼 그럼
-문대 본체 강아지 귀 달렸다 내가 봤다
이런 농담을 하며 사람들이 웃는 거야 상관없었지만, 상황 자체는 좀 의구심이 생기긴 했다.
‘하나도 안 나올 줄은 몰랐는데.’
박문대의 생년월일에 이름까지 프로필에 적혀 있었다.
솔직히 방영 중간에 출신 고등학교 정도는 밝혀질 줄 알았다.
하다못해 ‘나 같은 학교였는데 얘 좀 이상했음. 혼자 다니다 자퇴한 애임’ 같은 말까지도 예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발언이야 타격도 없을 터다. 오히려 학교에서 약자였으니 누굴 괴롭힐 깜냥은 아니라고 팬들이 안심했겠지.
‘인상이 많이 달라져서인가.’
이 추측이 그나마 제일 일리가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 박문대는 비쩍 마른 데다 머리카락도 덥수룩했었다. 거기다 아예 다른 사람(나)이 들어왔으니 말투나 동작,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겠지. 가명을 쓴 것도 아니니까.
‘기왕이면 프로그램 끝나고 나왔으면 좋겠군.’
이제 생방송까지 스마트폰을 보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토크쇼 촬영이 끝난 뒤, 숙소에 다시 들어가며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연습이나 열심히 하자.’
이제 결승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뿐이었다. 다른 생각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유가 없어도, 당장 문제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걸 얼마 지나지 않아 체감하게 되었다.
* * *
일이 터진 것은 이틀 후 저녁이었다.
반쯤 졸면서 저녁을 입에 밀어 넣고 있을 때, 제작진에게서 급한 호출이 왔다.
지금까지 경험상 무슨 인터뷰 컷이라도 딸 줄 알았다. 그러나 스태프룸 분위기는 심각했다.
“문대 씨.”
날 노래방에서 캐스팅했던 작가는 간신히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로 말을 시작했다.
“지금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는데.”
“……예.”
이거 기분이 더럽게 싸한데.
심지어 저 작가가 이걸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나를 앞에 두고 말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냥 제가 직접 봐도 괜찮을까요.”
“음, 그래요.”
작가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냉큼 자신의 폰을 건넸다.
나는 화면을 봤다. 낯익은 인터페이스가 보였다.
큰세진 학폭 논란이 올라온 그 커뮤니티다.
그리고 상단에 큰 폰트로 써진 제목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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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X발 무슨 개소리야.
상상도 못 한 타이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릿속이 턱 막히는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충격 때문에 안 돌아가는 뇌로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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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대 인천 시정고 출신인 건 이미 다 떴으니까 설명 생략할게
나 시정고 나왔는데 박문대랑 동갑임. 박문대 3반이었는데 개음침하고 이상한 애였음. 나 사실 이름도 몰랐어 지금 뜬 거 보고 아주사 박문대인 거 알았다
응 근데 여기까지 읽고 안심하지마 빠들아ㅎㅎ ★박문대 자퇴한 거 같은 반 여자애 생리대 훔치다 걸려서 맞음★
심지어 이것 때문에 생리대 도둑맞은 여자애도 소문 이상하게 나서 얼마 안 가서 자퇴했음
그리고 이거 아는 애들 꽤 있다? 학폭위 열리는 거 아니냐고 한동안 난리였다니까ㅎ 박문대가 자퇴하고 튀어버렸지만!
혹시 안 믿을까봐 내 졸업앨범이랑 교복 인증할게. 근데 굳이 안 이래도 아는 애들 계속 나올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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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밑으로 자신도 이 사건을 안다고 주장하는 자칭 시정고 출신 네티즌들의 증언글이 줄줄 베스트 댓글로 달려 있었다.
“…….”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건… 답이 없었다.
차라리 누굴 때리거나 돈을 훔친 게 나았다. 훔칠 게 없어서 여자애 생리대를 훔쳐?
내가 현실에서 봤어도 답 없는 새끼라고 생각했을 일이었는데, 아이돌 오디션 참가자한테 이런 일이 터졌다고.
“다 읽었어요?”
읽었는데 할 말이 없다.
박문대 이 새끼 미친 거 아닌가?
‘이딴 병신 짓을 저지르고 유서에 따돌림당한 게 억울하다고 적어?’
그래, 혹시 훔친 게 아니었다면 그럴 만도 했다. 근데 당장 이 새끼가 안 훔쳤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있냐는 말이다.
“……예.”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작가는 쓸데없이 ‘진짜냐 아니냐’ 같은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빨리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요.”
수습하든가, 하차하든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나는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잠시,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 …습니다.”
“예. 빨리 해주세요.”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대로 정신 나간 채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직 연습할 시간이라 숙소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탁자에 앉으면 위에 있는 물건을 다 박살 낼 것 같아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려 노력… X발, 노력 같은 소리 하네.
나는 침대를 후려쳤다.
‘퍽, 퍽’ 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지만, 뭐 하나 이 빡침이 해소되지를 않았다.
‘이대로 뒈지라고?’
이걸 씨X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런 하자 있는 몸에 처넣어놓고 아닌 척 레벨업으로 퍼주는 척 1년 내로 데뷔하라고 등 떠민 이 상황에 악의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 엿 같은 부동심 특성을 받아왔어야 했다.
‘이제… 뭘 어쩌지.’
빡침 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우습게도 진한 무력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말로.
아는 게 없으니까.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서치라도… 아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지금 그나마 여론을 안 보고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별 신경 안 쓰면서 살았다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원색적인 비난을 쏟는 걸 보고도 멀쩡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박문대를 응원했던 사람들이 대체 무슨 심정이겠냐는 말이다.
있는 대로 돈과 시간을 썼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뒤통수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한 게 아니라서 더 어이가 없다. 아주 미칠 지경이다.
…이렇게 상황에 압도되는 느낌은 고아 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
포기할까.
짧게 그 생각이 스칠 때 즈음, 누군가 숙소 방문을 삐걱 열었다.
“저, 저기…….”
“…….”
지금 꺼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침대에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뇌가 끓는 것 같았다.
“야 박문대.”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큰세진이 들어왔다.
벌써 소문이 돌았나 보군. 눈치 빠른 놈이 먼저 알아차린 것도 이상한 건 없었다.
“너 그 얘기 진짜냐?”
몰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극도의 스트레스로 입이 제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저 새끼가 대꾸를 하더라.
“왜 몰라. 너 진짜 그것 때문에 자퇴했어?”
“모른다니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결승만 남았으니 내가 하차하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너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 알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기억이 안 나.”
“뭐?”
“X발. 자살하려다가 깨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됐냐?”
투두툭.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선아현이 들고 있던 초코바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탄식했다. 쓸데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나마 몸이 바뀌어서 과거로 돌아왔다고 지껄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상태창까지 보인다고 했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허언증 아니면 정신병자다.
아니, 지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 일 해결 못 하면 1년 내로 데뷔는 턱도 없을 것을.
“지, 지, 진짜…….”
“어, 진짜.”
가뜩이나 침착하기 어려운데 쓸데없는 대화에 기운 쓰게 하는군.
“알았으면 좀… 가만히 둬.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기억도 안 난다면서 무슨 수로 정리하게.”
“좀 나가라.”
“어차피 너도 아는 게 없으면 상의할 사람 있는 게 낫잖아. 소속사도 없으면서.”
“…….”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데, 네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생리대 훔쳤다는 루머는 더 이상하고.”
“마, 맞아.”
“너처럼 계산 빠른 놈이 그런 바보짓을 할 것 같지가 않거든.”
“…!! 아, 아니……. 그, 그런 뜻은 아니고, 어, 그, 그러니까…….”
선아현이 고장 났다. 큰세진은 선아현을 무시했다.
“그래. 피해자나 피해자 지인이 올린 거면 달랐겠지. 근데 보니까 그것도 아니라네.”
“…….”
머리가 좀 식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큰세진을 봤다.
큰세진은 침착하게 맞은편 바닥에 앉고 있었다.
안 그럴 것 같은 놈이 웬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자기 일 도와줬다고 저러나.’
그래도 결승을 코앞에 두고 이러는 건 의외긴 했다. 지금 내가 이딴 걸 신경 쓸 처지는 아니지만.
“일단… 이 사건은 그럼 기억이 안 난다고 치자. 고등학교 때 일 기억나?”
“고등학교고 뭐고 아예 기억 자체가 없어. 정신 차리니까 앞에 유서만 있던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서에는, 뭐 언급 없었고?”
“구체적인 사건 언급 자체가 없었지. 억울하다는 표현은 있었지만 그건 누구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본인인데 냉정하네.”
큰세진이 힘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심적 여유가 없었다.
“저, 저기.”
선아현이 힘들게 말에 끼어들었다.
“그, 그럼… 다, 당사자분이 계신지, 찾아서 확인하는 건… 히, 힘들까.”
“…….”
자퇴했다는 여자애를 말하는 거겠지.
“지금같이 촬영 중이면 찾을 시간도, 기회도 없지. …하차하면 모를까.”
…말할수록 상황이 명확해졌다.
일단 하차해서 급한 불을 끄고, 상황을 정확히 알아보는 게 그나마 생존율이 높을 것 같다는 것이.
“……하, 하지 마.”
“뭐?”
“그, 그만두지 말고, 조, 조금 기,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