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5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59화
LeTi의 녹음실.
“말씀대로 가겠습니다. 재현 씨.”
“예.”
청려는 지난번 갑작스러운 멤버의 도주 때문에 중단되었던 신곡 녹음을 다시 진행하는 중이었다.
밀린 만큼 일정의 밀도는 빡빡할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퀄리티에 문제가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버리고 다시 시작할 삶이었지만, 그는 습관처럼 결점을 잡아내고 최선의 길을 다듬었다.
‘음.’
언제나처럼 고요한 머릿속에선 계산으로 쌓은 지층이 견고했다.
청려는 부드럽게 가사지를 툭 쳤다.
그때였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고요를 깨고 들어온 문장.
급한 듯이 튀어나온 도움말에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음원이 믹싱 중이라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버릇이 없군.’
이런 상황에서는 양해부터 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는 짧게 고민했으나, 일단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떤 질문.”
암묵적인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장이 우르르 쏟아진다.
질문.
[네가 지난번에 말했던 정우단 이야기, 재시작 직전에 털어놨다는 그거 말인데.]
[그때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냐.]
기억한다.
그는 VTIC의 멤버로 사용했던 인력들에 대하여 깔끔히 표로 정리하듯 머릿속에 기입해 두었다. 사용한 이유와 더는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도.
그리고 저 도움말이 말하는 ‘정우단 이야기’란 후자였다. 즉, 그가 의도적으로 기록한 기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알려줄 이유는 없다.’
청려는 짧고 무감각하게 도움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곧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 재시작 직전이었지.”
그리고 당시 상황을 단조롭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21번째 VTIC.
새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나비효과로, 소속사의 재무 담당자가 바뀌며 세금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
그렇게 VTIC의 하반기 투어가 취소되었고. 청려는 깨달았다.
‘끝인가.’
다시 재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을.
어쩌면 약간 억울하거나 짜증이 치밀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룹은 건재한데 어처구니없는 일로 타이밍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몇 번 없었던, 초반 시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소 싸늘한 충동으로 결정한 것이다.
‘말해볼까.’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말하면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위기 대처 능력이 준수하고 사고 발상이 독특하며 윤리적 문제가 없는 멤버를 골랐다.
주단.
처음, 설명을 듣고 증명까지 요구해서 꼼꼼히 본 녀석은, 놀랍게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과연….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은…….
-네 도움? 음. 네 도움은 지금 필요 없는데.
-…예?
-원래 채웠어야 할 관객 숫자를 기준치만큼 채우지 못한 시점에서 이 그룹은 실패거든. 끝이지. 누가 도와줘도 재시작은 해야 해. 하하….
-……그런데 제게 이…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네가 믿는지 확인하려고.
주단은 재시작 이후에도 다시 기용할 멤버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이건 일종의 시범 가동이었다. 재시작 이후에도 이 과정에 잘 통할지 확인하기 위한.
그리고 청려는 이때까진 이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다행이지. 네가 믿어서.
-……예.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청려는 회상을 마쳤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하지만 정우단은 다음 날 숙소에서 사라졌지. ‘몸이 나빠서 활동을 쉬고 싶다’라는 노트만 회사에 남기고.”
그리고 자신은 머리가 식은 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말이다.
“가출이라니. 차라리 리더가 정신 이상증에 걸렸다고 회사에 신고했다면 평가를 덜 낮췄을 텐데.”
[…….]
아니, 믿어서 개무서워 한 것 같은데.
‘나라도 X발 튀었다.’
박문대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아마 누가 봐도 청려는 맛이 가보였을 것이고, 주단은 호랑이 만난 개같이 쫄았을 것이다.
청려는 여전히 단조롭게 설명을 이었다.
“여유 시간을 다 쓴 나는 다음날 재시작했고. 그때까지 정우단은 본인의 도피처에서 숙소로 복귀하지 않았어.”
‘…….’
박문대는 목 뒤를 문질렀다.
그리고 그 문장에 내포된 의미를 알아차렸다.
정확히 도피처를 언급했다.
[너 그놈이 어디 있는지 알았냐.]
청려는 평이하게 대답했다.
“회사 근처.”
그러고 보니….
“대여용 미팅룸이었지.”
그리고 청려는 깨달았다.
이번에 도망친 VTIC 멤버의 행방도 세미나룸이었다.
즉.
“독특한 발상을 한 게 아니라, 우연히 본인 상황과 유사했을 뿐인가.”
[…….]
“흠. 역시.”
청려는 정우단의 평가를 재고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녹음으로….
[잠깐만.]
도움말이 허공을 눌렀다.
“…….”
박문대는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한데.’
세미나룸.
-보통 쉬거나 놀러 가는 곳은 아니라 회사에서 쉽게 예상하기 어렵고,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쾌적하기까지 하죠. 완벽한 도피용 공간입니다.
분명 주단은 그렇게 설명했었다.
‘그건 일상에서 쓰는 도피용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연습 중에 사람이랑 부대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면, 내성적인 인간이 정신 안정을 위해 혼자 처박혀 있을 장소.
주단은 그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피해 쥐 죽은 듯 잠수 탈 장소가 아니라.
‘…어쩌면.’
박문대는 잠깐 침묵하다가 타자를 쳤다.
[그놈 네 말 믿었을 것 같은데.]
“음?”
[정우단은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했는데도 바로 믿었거든. 나 도와줬다는 게 그놈이다.]
덕분에 내가 안 굶어 죽고 살았지.
“…….”
박문대는 청려의 눈에 스쳐 지나간 어처구니없다는 기색을 무시했다.
그 대신 친절히 문장을 완성해 줬다.
[현실적으로, 생판 남을 믿었다면 멤버 말을 믿었을 확률은 더 높지 않냐. 증거도 보여줬다며.]
“명백한 현상을 두고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건진 모르겠지만…. 잠적했다는 이야기는 잊어버렸나?”
[그래, 그거 말인데. 안 그래도 네 말 듣고 정우단 본인한테 물어봤다.]
그리고 박문대는 심리테스트로 얻어낸 주단의 발상을 적당히 정제해서 전달했다.
상대 멤버가 지금 무슨 짓을 해도 재시작을 하면 없던 일이 되니, 어차피 망한 판에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튀었을 거라고.
[오히려 믿어서 잠적했다는 거지.]
“음.”
청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히 괜찮은 발상인데.”
[…….]
“그룹으로 활동하기엔 다소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단점으로 양호하지….”
그렇게 청려가 주단의 평가에 보류 판정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사실 도움말의 본론은 여기서부터였다.
[나는 그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슬슬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박문대는 직감했다.
이제부터 말을 잘 골라야 했다.
“어떤 점이.”
[장소.]
[만약에 그 녀석이 진짜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도망가려고 했다면 벌써 해외로 떴을 거다. 최소한 지방으로는 도망갔을 놈이야.]
세미나룸에서 죽치고 있던 게 아니라 정말 젖 먹던 힘을 다해서 튀었을 것이다.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자마자 하차하겠다고 질렀던 놈이다. 생존의 위기인데 겨우 회사 근처 시설에서 이틀간 묵었을 리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는 초자연적인 인물이라면 이 정도 위치는 알아낼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걸.’
[그렇게 보자면, 회사 근처 세미나실은 너무 안일하지.]
게다가 말이다.
[내가 가져온 답변은 그냥 연습생인 녀석이 심리테스트로 했던 내용이다. 몇 년이나 VTIC을 했던 그때 네 멤버가 아니야.]
[다른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는 거지.]
이곳의 주단.
자신과 대화한 연습생 정우단은 청려를 잘 모른다.
하다못해 아이돌로 데뷔해서 멤버들과 부대끼며 살아본 적도 없는 어린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준 답은, 실제로 VTIC 멤버였던 주단의 실제 심정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놈도 은근히 정이 있는 타입이라는 걸 고려하면….’
가까운 곳에서 눈치를 봤다는 것은.
-주단은 청려의 말을 믿어서 도망갔다.
이 말에 더해서.
[네가 위험하지 않다고 머릿속이 정리되면, 아마 도로 돌아왔을 거다.]
주단은 금방 돌아올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 * *
나는 청려의 평온한 얼굴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녹음실에서 레코딩에 집중하는 KPOP 아티스트 자체였으나, 나는 놈의 겉 생각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새로운 해석 때문이겠지.
-주단은 청려의 말을 믿었고, 청려의 의도를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 했다.
[이건 네가 자기 안위를 해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사인이기도 하고.]
청려는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에 네가 리더로서 괜찮았다는 뜻이겠지.]
정우단 입장에선 나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언제든 복귀할 수 있게 근처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판단한 거니까.
“…….”
이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연결했을 때 이게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이다.]
그리고.
[일단 널 못 믿어서 탈주했다는 생각이 오히려 확률이 가장 낮은 게 확실하지 않냐.]
청려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장을 완성했다.
[정우단을 고른 네 시도는 성공이었을 확률이 훨씬 높다.]
[그 사례 하나로 아예 실패 처리하지 말라고.]
“…….”
청려는 가사지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천천히 의사를 표출했다.
“…내가 내 사정을 그룹 멤버에게 이야기한 게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은 없을 텐데.”
‘…….’
뭐라고.
“그 후에도 다른 대상으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기댓값이 형편없이 낮아서 폐기한 거라서.”
그러나 청려의 표정은 싸늘하진 않았다.
놈의 얼굴에는 그림 같은 미소 대신 자연스러운 무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건 통계에 큰 영향을 주지.”
‘……!’
“완전한 실패로 시작하니까.”
그리고, 그것이 지금 뒤집힌 것이다.
[그래서, 네 판단이 맞았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난 기분은?]
청려는 잠깐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곧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은데.”
오냐.
나는 씩 웃었다.
청려는 전보다 살짝 부드럽게 가사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녀석의 겉 생각에서, 살짝 편안한 정서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나쁘진 않았다.
나는 경쾌하게 타자를 두들겼다.
[그럼 이제 정우단은 멤버로 쓸 거냐?]
“후보로는 올릴까.”
‘…!’
그렇지.
……아니. 내가 왜 뿌듯해하고 지랄이란 말인가. 어차피 현실에선 건물 사면서 VTIC 잘해 먹는 놈인데.
‘무슨 과몰입이냐.’
오히려 경쟁 그룹은 망하는 편이 기분째져야 하는데, 여기서 티홀릭 개발살 난 꼴을 보자니 괴상한 방향으로 감정 이입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입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음?
“정우단과 연락 중인 것 같은데.”
청려는 웃으며 말했다.
“면접이라도 볼까.”
[…??]
상상도 못 한 소리였다.
* * *
3시간 후 오피스텔.
“이런 입장으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우단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네. 반가워요.”
내게 오피스텔을 준 놈과 이사 도와준 놈이 탁자에 둘러앉아 있다.
사실만 나열하니 훈훈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썩 현실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녹음 끝난 청려가 시간을 내서 여기 온다?
‘권유해도 시간 낭비라고 무시할 것 같은 새끼가 자진해서 요청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청려와 주단은 썩 괜찮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단 청려가 주단의 온갖 헛소리와 질문에 동요 없이 웃으며 대응 중이라는 게 클 테지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뭘요.”
게다가 놀랍게도 놈은 주단의 질문을 대충 흘리는 게 아니라 제법 사실대로 대답해 주고 있었다.
대충 뭉개는 부분도 있었으나, 최소한 자기가 과거로 돌아가서 재시작한다는 부분은 별 감춤 없이 털어놓았다는 거다.
‘흠.’
나는 기어코 ‘다음엔 네가 VTIC으로 데뷔할 수도’라는 라는 이야기까지 들어낸 주단이 약간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제 입장에선 영광입니다만, 재시작은 보류하신 것 아닙니까? 건우 형이 도우미로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걸 이렇게 거침없이 물어본다고?
“글쎄요. 음, 대상을 받으면 굳이 재시작하지 않아도 되긴 하죠. 하하.”
너는 이걸 이렇게 솔직하게 답변하고?
‘앨범 녹음이 엄청 잘 되고 있냐.’
나는 약간 얼빠진 얼굴로 돌아보았다.
청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재시작할 건데.”
“…….”
뭐?
“한번 성공하면 끝이거든요. 이 현실이 고정되는 거니까.”
“…예?”
“하지만 난 지금 구성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그리고 청려는 주단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대상을 받아도 몇 년 안에 이 그룹은 수명이 끝날 거라서요.”
“그…….”
“잘 됐죠. 우단 씨는 쓸 테니까.”
청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너도.”
나를 향해.
“…….”
“연예계에서 활동할 만한 감이 좋고, 음, 스카웃 동영상을 보니 노래를 잘하던데. 보컬 풀이 부족했는데 잘 됐어.”
대체 무슨 소리냐.
“나는 네가 재시작하면….”
“그래. 재시작하면 그 몸을 못 쓸 수도 있다고 했지.”
청려가 차분히 대응했다.
“상관없어. 넌 도움말로 있으면 되지.”
왜냐하면.
“여긴 네가 한 명 더 있잖아.”
“…….”
나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류건우!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과거의 나.
“학점도 좋고. 성실하고… 흠. 금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의식주를 지원한다고 하면 설득하기도 쉽겠고.”
“…….”
“네가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를 노리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차분하게 말하는 놈의 말투에는 확신이 있었다.
“언제 조사한 거지.”
본인 시야는 언제든 내가 도움말로서 접속만 하면 공유받을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언제긴.”
청려가 부드럽게 웃었다.
“류문 씨가 열심히 배우 스케줄을 소화할 때죠.”
“…!”
“정보 탐색하느라 고생했어요. 그래서 더 도움말로 접속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런 X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59화
LeTi의 녹음실.
“말씀대로 가겠습니다. 재현 씨.”
“예.”
청려는 지난번 갑작스러운 멤버의 도주 때문에 중단되었던 신곡 녹음을 다시 진행하는 중이었다.
밀린 만큼 일정의 밀도는 빡빡할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퀄리티에 문제가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버리고 다시 시작할 삶이었지만, 그는 습관처럼 결점을 잡아내고 최선의 길을 다듬었다.
‘음.’
언제나처럼 고요한 머릿속에선 계산으로 쌓은 지층이 견고했다.
청려는 부드럽게 가사지를 툭 쳤다.
그때였다.
고요를 깨고 들어온 문장.
급한 듯이 튀어나온 도움말에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음원이 믹싱 중이라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버릇이 없군.’
이런 상황에서는 양해부터 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는 짧게 고민했으나, 일단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떤 질문.”
암묵적인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장이 우르르 쏟아진다.
질문.
기억한다.
그는 VTIC의 멤버로 사용했던 인력들에 대하여 깔끔히 표로 정리하듯 머릿속에 기입해 두었다. 사용한 이유와 더는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도.
그리고 저 도움말이 말하는 ‘정우단 이야기’란 후자였다. 즉, 그가 의도적으로 기록한 기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알려줄 이유는 없다.’
청려는 짧고 무감각하게 도움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곧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 재시작 직전이었지.”
그리고 당시 상황을 단조롭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21번째 VTIC.
새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나비효과로, 소속사의 재무 담당자가 바뀌며 세금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
그렇게 VTIC의 하반기 투어가 취소되었고. 청려는 깨달았다.
‘끝인가.’
다시 재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을.
어쩌면 약간 억울하거나 짜증이 치밀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룹은 건재한데 어처구니없는 일로 타이밍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몇 번 없었던, 초반 시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소 싸늘한 충동으로 결정한 것이다.
‘말해볼까.’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말하면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위기 대처 능력이 준수하고 사고 발상이 독특하며 윤리적 문제가 없는 멤버를 골랐다.
주단.
처음, 설명을 듣고 증명까지 요구해서 꼼꼼히 본 녀석은, 놀랍게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과연….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은…….
-네 도움? 음. 네 도움은 지금 필요 없는데.
-…예?
-원래 채웠어야 할 관객 숫자를 기준치만큼 채우지 못한 시점에서 이 그룹은 실패거든. 끝이지. 누가 도와줘도 재시작은 해야 해. 하하….
-……그런데 제게 이…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네가 믿는지 확인하려고.
주단은 재시작 이후에도 다시 기용할 멤버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이건 일종의 시범 가동이었다. 재시작 이후에도 이 과정에 잘 통할지 확인하기 위한.
그리고 청려는 이때까진 이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다행이지. 네가 믿어서.
-……예.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청려는 회상을 마쳤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하지만 정우단은 다음 날 숙소에서 사라졌지. ‘몸이 나빠서 활동을 쉬고 싶다’라는 노트만 회사에 남기고.”
그리고 자신은 머리가 식은 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말이다.
“가출이라니. 차라리 리더가 정신 이상증에 걸렸다고 회사에 신고했다면 평가를 덜 낮췄을 텐데.”
아니, 믿어서 개무서워 한 것 같은데.
‘나라도 X발 튀었다.’
박문대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아마 누가 봐도 청려는 맛이 가보였을 것이고, 주단은 호랑이 만난 개같이 쫄았을 것이다.
청려는 여전히 단조롭게 설명을 이었다.
“여유 시간을 다 쓴 나는 다음날 재시작했고. 그때까지 정우단은 본인의 도피처에서 숙소로 복귀하지 않았어.”
‘…….’
박문대는 목 뒤를 문질렀다.
그리고 그 문장에 내포된 의미를 알아차렸다.
정확히 도피처를 언급했다.
청려는 평이하게 대답했다.
“회사 근처.”
그러고 보니….
“대여용 미팅룸이었지.”
그리고 청려는 깨달았다.
이번에 도망친 VTIC 멤버의 행방도 세미나룸이었다.
즉.
“독특한 발상을 한 게 아니라, 우연히 본인 상황과 유사했을 뿐인가.”
“흠. 역시.”
청려는 정우단의 평가를 재고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녹음으로….
도움말이 허공을 눌렀다.
“…….”
박문대는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한데.’
세미나룸.
-보통 쉬거나 놀러 가는 곳은 아니라 회사에서 쉽게 예상하기 어렵고,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쾌적하기까지 하죠. 완벽한 도피용 공간입니다.
분명 주단은 그렇게 설명했었다.
‘그건 일상에서 쓰는 도피용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연습 중에 사람이랑 부대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면, 내성적인 인간이 정신 안정을 위해 혼자 처박혀 있을 장소.
주단은 그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피해 쥐 죽은 듯 잠수 탈 장소가 아니라.
‘…어쩌면.’
박문대는 잠깐 침묵하다가 타자를 쳤다.
“음?”
덕분에 내가 안 굶어 죽고 살았지.
“…….”
박문대는 청려의 눈에 스쳐 지나간 어처구니없다는 기색을 무시했다.
그 대신 친절히 문장을 완성해 줬다.
“명백한 현상을 두고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건진 모르겠지만…. 잠적했다는 이야기는 잊어버렸나?”
그리고 박문대는 심리테스트로 얻어낸 주단의 발상을 적당히 정제해서 전달했다.
상대 멤버가 지금 무슨 짓을 해도 재시작을 하면 없던 일이 되니, 어차피 망한 판에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튀었을 거라고.
“음.”
청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히 괜찮은 발상인데.”
“그룹으로 활동하기엔 다소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단점으로 양호하지….”
그렇게 청려가 주단의 평가에 보류 판정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사실 도움말의 본론은 여기서부터였다.
“…….”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슬슬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박문대는 직감했다.
이제부터 말을 잘 골라야 했다.
“어떤 점이.”
세미나룸에서 죽치고 있던 게 아니라 정말 젖 먹던 힘을 다해서 튀었을 것이다.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자마자 하차하겠다고 질렀던 놈이다. 생존의 위기인데 겨우 회사 근처 시설에서 이틀간 묵었을 리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는 초자연적인 인물이라면 이 정도 위치는 알아낼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걸.’
게다가 말이다.
이곳의 주단.
자신과 대화한 연습생 정우단은 청려를 잘 모른다.
하다못해 아이돌로 데뷔해서 멤버들과 부대끼며 살아본 적도 없는 어린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준 답은, 실제로 VTIC 멤버였던 주단의 실제 심정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놈도 은근히 정이 있는 타입이라는 걸 고려하면….’
가까운 곳에서 눈치를 봤다는 것은.
-주단은 청려의 말을 믿어서 도망갔다.
이 말에 더해서.
주단은 금방 돌아올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 * *
나는 청려의 평온한 얼굴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녹음실에서 레코딩에 집중하는 KPOP 아티스트 자체였으나, 나는 놈의 겉 생각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새로운 해석 때문이겠지.
-주단은 청려의 말을 믿었고, 청려의 의도를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 했다.
청려는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우단 입장에선 나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언제든 복귀할 수 있게 근처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판단한 거니까.
“…….”
이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청려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장을 완성했다.
“…….”
청려는 가사지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천천히 의사를 표출했다.
“…내가 내 사정을 그룹 멤버에게 이야기한 게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은 없을 텐데.”
‘…….’
뭐라고.
“그 후에도 다른 대상으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기댓값이 형편없이 낮아서 폐기한 거라서.”
그러나 청려의 표정은 싸늘하진 않았다.
놈의 얼굴에는 그림 같은 미소 대신 자연스러운 무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건 통계에 큰 영향을 주지.”
‘……!’
“완전한 실패로 시작하니까.”
그리고, 그것이 지금 뒤집힌 것이다.
청려는 잠깐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곧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은데.”
오냐.
나는 씩 웃었다.
청려는 전보다 살짝 부드럽게 가사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녀석의 겉 생각에서, 살짝 편안한 정서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나쁘진 않았다.
나는 경쾌하게 타자를 두들겼다.
“후보로는 올릴까.”
‘…!’
그렇지.
……아니. 내가 왜 뿌듯해하고 지랄이란 말인가. 어차피 현실에선 건물 사면서 VTIC 잘해 먹는 놈인데.
‘무슨 과몰입이냐.’
오히려 경쟁 그룹은 망하는 편이 기분째져야 하는데, 여기서 티홀릭 개발살 난 꼴을 보자니 괴상한 방향으로 감정 이입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입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음?
“정우단과 연락 중인 것 같은데.”
청려는 웃으며 말했다.
“면접이라도 볼까.”
상상도 못 한 소리였다.
* * *
3시간 후 오피스텔.
“이런 입장으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우단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네. 반가워요.”
내게 오피스텔을 준 놈과 이사 도와준 놈이 탁자에 둘러앉아 있다.
사실만 나열하니 훈훈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썩 현실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녹음 끝난 청려가 시간을 내서 여기 온다?
‘권유해도 시간 낭비라고 무시할 것 같은 새끼가 자진해서 요청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청려와 주단은 썩 괜찮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단 청려가 주단의 온갖 헛소리와 질문에 동요 없이 웃으며 대응 중이라는 게 클 테지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뭘요.”
게다가 놀랍게도 놈은 주단의 질문을 대충 흘리는 게 아니라 제법 사실대로 대답해 주고 있었다.
대충 뭉개는 부분도 있었으나, 최소한 자기가 과거로 돌아가서 재시작한다는 부분은 별 감춤 없이 털어놓았다는 거다.
‘흠.’
나는 기어코 ‘다음엔 네가 VTIC으로 데뷔할 수도’라는 라는 이야기까지 들어낸 주단이 약간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제 입장에선 영광입니다만, 재시작은 보류하신 것 아닙니까? 건우 형이 도우미로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걸 이렇게 거침없이 물어본다고?
“글쎄요. 음, 대상을 받으면 굳이 재시작하지 않아도 되긴 하죠. 하하.”
너는 이걸 이렇게 솔직하게 답변하고?
‘앨범 녹음이 엄청 잘 되고 있냐.’
나는 약간 얼빠진 얼굴로 돌아보았다.
청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재시작할 건데.”
“…….”
뭐?
“한번 성공하면 끝이거든요. 이 현실이 고정되는 거니까.”
“…예?”
“하지만 난 지금 구성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그리고 청려는 주단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대상을 받아도 몇 년 안에 이 그룹은 수명이 끝날 거라서요.”
“그…….”
“잘 됐죠. 우단 씨는 쓸 테니까.”
청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너도.”
나를 향해.
“…….”
“연예계에서 활동할 만한 감이 좋고, 음, 스카웃 동영상을 보니 노래를 잘하던데. 보컬 풀이 부족했는데 잘 됐어.”
대체 무슨 소리냐.
“나는 네가 재시작하면….”
“그래. 재시작하면 그 몸을 못 쓸 수도 있다고 했지.”
청려가 차분히 대응했다.
“상관없어. 넌 도움말로 있으면 되지.”
왜냐하면.
“여긴 네가 한 명 더 있잖아.”
“…….”
나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류건우!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과거의 나.
“학점도 좋고. 성실하고… 흠. 금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의식주를 지원한다고 하면 설득하기도 쉽겠고.”
“…….”
“네가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를 노리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차분하게 말하는 놈의 말투에는 확신이 있었다.
“언제 조사한 거지.”
본인 시야는 언제든 내가 도움말로서 접속만 하면 공유받을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언제긴.”
청려가 부드럽게 웃었다.
“류문 씨가 열심히 배우 스케줄을 소화할 때죠.”
“…!”
“정보 탐색하느라 고생했어요. 그래서 더 도움말로 접속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런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