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5화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인형탈을 반납하고 선아현의 자취 집으로 귀가했다.
온몸이 인형탈 안의 습기로 쪄진 것 같았다.
‘더워.’
지출이 상당했다. 게다가 피곤했다.
그런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좋은 소리만 듣고 와서 그런가.’
마지막에 탈 벗을 때 반응도 신기했지만, 사실 탈 쓰고 돌아다닐 때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거나, 박문대의 인화 사진이나 간식 등을 건네주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런 사진까지 나올 줄은… 몰랐지만.’
노란 동물 귀를 합성한 사진도 있더라고.
나는 그 사진을 포함해 받은 물건들을 적당히 짐 속에 넣어뒀다. 나중에 더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즉시 샤워를 했다.
‘살 것 같다.’
몸을 말린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한결 상쾌해졌다.
침구에 앉아서 찬물을 마시고 있자니, 새로 생긴 단체 메시지방이 끝도 없이 울렸다.
[큰세진 : 이야 소식 다 봤다 다들 잘 다녀왔더라ㅋㅋ 유진이 빼고!]
[차유진 : ;(]
[김래빈 : 인형탈까지 쓰고 왜 말을 했어.]
[차유진 : 나는 몰랐어…]
위로 올려서 대충 확인해 보니, 차유진이 고맙다고 외쳐서 단번에 들통난 뒤 도주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어쩐지 놀랍진 않군.’
[큰세진 : 야 문대는 15군데나 돌았더라? 진짜 대단하다 의지의 한국인임 다들 박수 가자]
[김래빈 : (박수치는 올드한 이모티콘)]
[차유진 : 축하합니다…]
[큰세진 : 문대야 1 사라진거 다 보임 대답해라ㅋㅋㅋ]
나는 피식 웃고 답을 달았다.
[나 : 그래 고맙다.]
[김래빈 : (인사하는 기본 이모티콘)]
[차유진 : 멋져요!]
[큰세진 : ㅋㅋ별말씀을 (하트 이모티콘)]
나는 이모티콘이 남발된 단체방을 끄고 SNS에 접속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혹시라도 ‘쉬는 시간에 싸돌아다니지 말고 연습이나 하지 뇌가 없나.’ 따위의 이상한 소리가 나오진 않았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흠.”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즐거워 보였다.
타임라인을 좀 더 위로 당겨봤다.
왠 4명이 인형탈을 쓰고 각자 다른 참가자의 광고를 찾아다녔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챘을 때.
사람들은 처음엔 팬들끼리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도 덕친이랑 해보고 싶어짐
-화목하고 귀엽다 이렇게 팬들끼리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냈으면ㅠㅠ
-차래문큰 다 데뷔합시다♡
하지만 차유진이 들통나고, 하나둘씩 참가자들이 탈을 벗을 때마다 분위기는 경악의 도가니탕이 됐다.
-미미미친
-허억 얘들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어제 잠실역 갔는데ㅜㅜ 아아악 문대야ㅠㅠ 누나가… 알았으면 오늘 거기서 캠핑을 했지…
-쌩얼 뭐임 광나는 거 실화냐
-님들 저 웰시코기 문대한테 사진주고 왔는데ㅠㅠ어어어엉 문대야 사랑한다 으아아!!! [강아지 귀 합성한 문대 사진]
이후 사람들은 혹시 이것도 촬영인가 술렁거리다가, 인형탈 대여업체에서 사인과 함께 후기를 올리자 더 행복해하기 시작했다.
========================
[애들끼리 자기 이미지대로 맞춰서 빌렸나봐 인형탈 렌탈 업체에서 후기 뜸 (링크)]
========================
-세상에 이 미친놈들 어떻게 지들끼리 이런 생각을ㅠㅠ
-우리 애 인형탈 뒤져서 굳이 웰시코기 탈 골랐을 거 생각하면 진짜 귀여워서 죽고싶어진다 [죽도록 사랑해 밈 캡쳐]
-팬들이 자기 댕댕이라고 부른다고 강아지 찾아서 노란 거 고르고 뿌듯해했을 거 아니야ㅠㅠㅠ심장 아프다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좀 민망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니 참을 만했다. 그러나 이렇게 귀엽다고 연발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감성의 문제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침구를 정리해 누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늘 먹은 게 없어.’
종일 인형탈 쓰고 질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속이 허하진 않았다.
뭐라도 먹고 자야 하나. 짧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까무룩 잠들었다.
꿈도 없는 단잠이었다.
그렇게 이른 저녁 시간에 빠진 잠은 그다음 날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뭐… 알찬 휴일이었다.
* * *
반나절 동안 가벼운 운동만 하며 푹 쉬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
생방송 토크 준비를 위해 촬영장으로 향했다.
야밤에 웬 호두과자를 싸 들고 여행에서 돌아온 선아현도 물론 같이 왔다.
참고로 호두과자는 맛있었다. 앙금에 흰 강낭콩을 써서 부드럽더라.
“문대구나. 잘 쉬었어?”
“예.”
촬영장의 대기공간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도착한 류청우가 인사를 해왔다.
선아현은 제작진에게 호출받아서 자리에 없었다.
“형은 잘 쉬셨어요?”
“음……. 그래.”
류청우가 씩 웃었다. 그냥 보기에도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리더도 안 했군.’
전해 듣기로는 양보했다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관심도 없고.
“너희 인형탈 한 거 봤어. 재밌어 보이더라.”
“아, 감사합니다. 형도 인증 몇 번 하셨던데.”
혹시 데뷔할 경우를 생각해서 이 정도로 반응 접대는 해주자.
류청우는 약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최근에는 못 했지.”
“…….”
뭐 어쩌라는 건가.
사연을 물어봐 달라는 것 같은데, 굳이 내가 류청우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방송 끝나면 한번 하시면 되죠.”
“음… 데뷔 못 하면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
류청우가 하하 웃었다.
‘왜 계속 말꼬리를 잡는 것 같지.’
나는 말을 잘랐다.
“형 데뷔하실 것 같은데요.”
“고맙다. 근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야. 나도 순위 하락했잖아.”
설마 1위에서 4위로 떨어진 걸 말하는 건가.
‘너 데뷔해서 리더까지 해 먹는 걸 아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류청우를 훑었지만, 이 시점의 참가자는 누구든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걸 인정했다.
게다가 이놈은 좀… 번아웃 같은 게 온 느낌이다.
‘잠깐, 류청우가 이대로 탈락하면 공석이 하나 생긴다.’
나는 잠시 희망찬 생각을 했지만, 곧 버렸다. 이제 와서 멘탈 깨져도 남은 건 결승뿐이니 별 소용 없겠지.
그냥 되는 대로 편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탈락해도 팬분들은 광고 인증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걸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글쎄… 탈락하고, 프로그램 끝나도 팬분들이 계속 계실까 모르겠다.”
“광고에 돈까지 썼는데 갑자기 사라지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
“그거 환승역이면 단가 최소 이백에, 목 좋은 곳은 천만 원인거 아시죠.”
“그, 그래?”
“예.”
류청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몰랐나.’
“열심히… 해야겠네.”
“그럼요.”
나는 멀뚱하게 류청우를 마주 보았다.
“문대!”
마침 큰세진이 한 손을 들고 힘차게 입장했다.
‘저걸 핑계 삼으면 되겠군.’
나는 자연스럽게 류청우에게 목례하고 큰세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최소 단가로 잡아도 5,400만 원을 빚진 셈인가.’
소처럼 활동해야 양심이 박살 나지 않을 것 같은 액수였다.
돌연사 다음으로 확실한 동기부여가 이렇게 생길 줄은 몰랐다.
* * *
의 이번 주 본방송 부제는 이랬다.
토크쇼에 이런 컨셉충 같은 부제가 붙을 줄은 몰랐다만, 어쨌든 꽤 인상적인 네이밍 센스였다.
내용은 통상적인 오디션 프로 특집과 다를 게 없었다.
아직 생존한 참가자들을 불러서 앉혀놓고 질문하고 에피소드 관련 썰도 좀 푸는 식이다.
다만 생방송이기 때문에 편집의 마법은 없었고, 당연히 평상시보다 질문 수위는 많이 낮아졌다.
“오~ 찍먹파 14명! 역시 찍먹이 더 대세군요!”
고로 이런 식의 TMI 대방출이 분량의 다수였다.
‘날로 먹는군.’
나는 들고 있던 찍먹 판넬을 내리며 내심 생각했다.
기존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MC 대신, 토크쇼에서 자주 보던 탤런트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워낙 입담이 괜찮아서 아마추어 20명을 데리고도 마가 안 뜨는 것은 대단했다.
‘그래도 이대로면 시청률 반토막 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마다 MC가 새로운 컨텐츠를 입에 넣어줬다.
“이번 코너는~ 랜덤 플레이 댄스입니다!”
음악이 나오면 달려와서 춤추는 심플한 룰의 유명한 컨텐츠였지만, 20명이 마구 달려 나와서 하니 나름대로 엉망진창 흥겨운 재미가 있었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와악!”
“나 해보고 싶었어!”
말랑달콤의 에 맞춰 차유진과 몇몇 참가자들이 달려 나와 춤을 췄다.
“오~”
완전히 몰입한 것처럼 1차 팀전 당시의 안무를 따라 하는 모습에 악토버 31 출신 참가자들이 폭소하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곡만 써서 돌렸기 때문에, 다른 팀의 안무를 추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꽤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때렸다.
-POP! POP!
넌 나의 팝콘~
“어어?”
“와 이거!”
“으하핫!!”
들어가던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와서 팝콘을 추기 시작했다.
워낙 쉽고 유명한 춤이라 거의 스무 명 전원이 나온 것 같다.
나 빼고 다 나왔다는 뜻이다.
“문대 씨! 문대 씨!”
“…….”
MC가 신나게 박문대를 불렀다.
‘은퇴할 때까지 출 것 같군….’
나는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참가자들에게 합류했다.
기왕 하는 거니 열심히 추자.
-POP POP POP!
POP☆CON!
기어코 엔딩까지 음원을 틀어준 제작진 덕분에 마지막 포즈까지 하고 들어가게 됐다.
마지막까지 안무를 하며 앞자리에 붙어 있던 놈들이 같이 들어가며 쫑알거렸다.
“야~ 문대 진짜 늘었다!”
“천재입니다, 천재.”
“…그만하자.”
“어어~? 칭찬인데? 부끄러우세요?”
“형님 너무 겸손하신데요~?”
“…….”
큰세진과 골드 2를 같은 팀으로 받은 것은 실수였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방송은 그런 식으로 제법 흐름을 탔다.
빼는 사람 없이 필사적으로 컨텐츠에 달려드는 20명의 참가자들은 계속 적극적으로 MC의 발언에 따랐다.
“자자, 이쯤 해서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받은 질문을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오~”
“잠시만요, 제가 이름을 하나 뽑으면….”
MC는 세트 구석에 준비된 박스에서 볼을 뽑아내더니, 안에 있는 이름을 읽었다.
“박문대 참가자님!”
“…예.”
20분의 1 확률에 걸릴 줄은 몰랐다.
나는 얼른 손을 들고 대답했다.
MC는 에서 PPL 중인 태블릿PC를 가져와서 손에 들고는 슥슥 화면을 넘겼다.
아무래도 방송용으로 적절한 질문을 거르는 중인 것 같았다.
“지금 올라오는 질문 중에… 아, 이거!”
MC는 화면을 터치해서 질문 크기를 키우더니, 카메라 쪽으로 돌려서 보여주며 읽었다.
“음, ‘문대 개명한 게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입니다!”
“…….”
뭐라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5화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인형탈을 반납하고 선아현의 자취 집으로 귀가했다.
온몸이 인형탈 안의 습기로 쪄진 것 같았다.
‘더워.’
지출이 상당했다. 게다가 피곤했다.
그런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좋은 소리만 듣고 와서 그런가.’
마지막에 탈 벗을 때 반응도 신기했지만, 사실 탈 쓰고 돌아다닐 때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거나, 박문대의 인화 사진이나 간식 등을 건네주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런 사진까지 나올 줄은… 몰랐지만.’
노란 동물 귀를 합성한 사진도 있더라고.
나는 그 사진을 포함해 받은 물건들을 적당히 짐 속에 넣어뒀다. 나중에 더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즉시 샤워를 했다.
‘살 것 같다.’
몸을 말린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한결 상쾌해졌다.
침구에 앉아서 찬물을 마시고 있자니, 새로 생긴 단체 메시지방이 끝도 없이 울렸다.
위로 올려서 대충 확인해 보니, 차유진이 고맙다고 외쳐서 단번에 들통난 뒤 도주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어쩐지 놀랍진 않군.’
나는 피식 웃고 답을 달았다.
나는 이모티콘이 남발된 단체방을 끄고 SNS에 접속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혹시라도 ‘쉬는 시간에 싸돌아다니지 말고 연습이나 하지 뇌가 없나.’ 따위의 이상한 소리가 나오진 않았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흠.”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즐거워 보였다.
타임라인을 좀 더 위로 당겨봤다.
왠 4명이 인형탈을 쓰고 각자 다른 참가자의 광고를 찾아다녔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챘을 때.
사람들은 처음엔 팬들끼리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도 덕친이랑 해보고 싶어짐
-화목하고 귀엽다 이렇게 팬들끼리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냈으면ㅠㅠ
-차래문큰 다 데뷔합시다♡
하지만 차유진이 들통나고, 하나둘씩 참가자들이 탈을 벗을 때마다 분위기는 경악의 도가니탕이 됐다.
-미미미친
-허억 얘들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어제 잠실역 갔는데ㅜㅜ 아아악 문대야ㅠㅠ 누나가… 알았으면 오늘 거기서 캠핑을 했지…
-쌩얼 뭐임 광나는 거 실화냐
-님들 저 웰시코기 문대한테 사진주고 왔는데ㅠㅠ어어어엉 문대야 사랑한다 으아아!!! [강아지 귀 합성한 문대 사진]
이후 사람들은 혹시 이것도 촬영인가 술렁거리다가, 인형탈 대여업체에서 사인과 함께 후기를 올리자 더 행복해하기 시작했다.
========================
========================
-세상에 이 미친놈들 어떻게 지들끼리 이런 생각을ㅠㅠ
-우리 애 인형탈 뒤져서 굳이 웰시코기 탈 골랐을 거 생각하면 진짜 귀여워서 죽고싶어진다 [죽도록 사랑해 밈 캡쳐]
-팬들이 자기 댕댕이라고 부른다고 강아지 찾아서 노란 거 고르고 뿌듯해했을 거 아니야ㅠㅠㅠ심장 아프다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좀 민망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니 참을 만했다. 그러나 이렇게 귀엽다고 연발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감성의 문제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침구를 정리해 누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늘 먹은 게 없어.’
종일 인형탈 쓰고 질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속이 허하진 않았다.
뭐라도 먹고 자야 하나. 짧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까무룩 잠들었다.
꿈도 없는 단잠이었다.
그렇게 이른 저녁 시간에 빠진 잠은 그다음 날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뭐… 알찬 휴일이었다.
* * *
반나절 동안 가벼운 운동만 하며 푹 쉬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
생방송 토크 준비를 위해 촬영장으로 향했다.
야밤에 웬 호두과자를 싸 들고 여행에서 돌아온 선아현도 물론 같이 왔다.
참고로 호두과자는 맛있었다. 앙금에 흰 강낭콩을 써서 부드럽더라.
“문대구나. 잘 쉬었어?”
“예.”
촬영장의 대기공간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도착한 류청우가 인사를 해왔다.
선아현은 제작진에게 호출받아서 자리에 없었다.
“형은 잘 쉬셨어요?”
“음……. 그래.”
류청우가 씩 웃었다. 그냥 보기에도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리더도 안 했군.’
전해 듣기로는 양보했다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관심도 없고.
“너희 인형탈 한 거 봤어. 재밌어 보이더라.”
“아, 감사합니다. 형도 인증 몇 번 하셨던데.”
혹시 데뷔할 경우를 생각해서 이 정도로 반응 접대는 해주자.
류청우는 약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최근에는 못 했지.”
“…….”
뭐 어쩌라는 건가.
사연을 물어봐 달라는 것 같은데, 굳이 내가 류청우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방송 끝나면 한번 하시면 되죠.”
“음… 데뷔 못 하면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
류청우가 하하 웃었다.
‘왜 계속 말꼬리를 잡는 것 같지.’
나는 말을 잘랐다.
“형 데뷔하실 것 같은데요.”
“고맙다. 근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야. 나도 순위 하락했잖아.”
설마 1위에서 4위로 떨어진 걸 말하는 건가.
‘너 데뷔해서 리더까지 해 먹는 걸 아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류청우를 훑었지만, 이 시점의 참가자는 누구든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걸 인정했다.
게다가 이놈은 좀… 번아웃 같은 게 온 느낌이다.
‘잠깐, 류청우가 이대로 탈락하면 공석이 하나 생긴다.’
나는 잠시 희망찬 생각을 했지만, 곧 버렸다. 이제 와서 멘탈 깨져도 남은 건 결승뿐이니 별 소용 없겠지.
그냥 되는 대로 편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탈락해도 팬분들은 광고 인증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걸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글쎄… 탈락하고, 프로그램 끝나도 팬분들이 계속 계실까 모르겠다.”
“광고에 돈까지 썼는데 갑자기 사라지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
“그거 환승역이면 단가 최소 이백에, 목 좋은 곳은 천만 원인거 아시죠.”
“그, 그래?”
“예.”
류청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몰랐나.’
“열심히… 해야겠네.”
“그럼요.”
나는 멀뚱하게 류청우를 마주 보았다.
“문대!”
마침 큰세진이 한 손을 들고 힘차게 입장했다.
‘저걸 핑계 삼으면 되겠군.’
나는 자연스럽게 류청우에게 목례하고 큰세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최소 단가로 잡아도 5,400만 원을 빚진 셈인가.’
소처럼 활동해야 양심이 박살 나지 않을 것 같은 액수였다.
돌연사 다음으로 확실한 동기부여가 이렇게 생길 줄은 몰랐다.
* * *
의 이번 주 본방송 부제는 이랬다.
토크쇼에 이런 컨셉충 같은 부제가 붙을 줄은 몰랐다만, 어쨌든 꽤 인상적인 네이밍 센스였다.
내용은 통상적인 오디션 프로 특집과 다를 게 없었다.
아직 생존한 참가자들을 불러서 앉혀놓고 질문하고 에피소드 관련 썰도 좀 푸는 식이다.
다만 생방송이기 때문에 편집의 마법은 없었고, 당연히 평상시보다 질문 수위는 많이 낮아졌다.
“오~ 찍먹파 14명! 역시 찍먹이 더 대세군요!”
고로 이런 식의 TMI 대방출이 분량의 다수였다.
‘날로 먹는군.’
나는 들고 있던 찍먹 판넬을 내리며 내심 생각했다.
기존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MC 대신, 토크쇼에서 자주 보던 탤런트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워낙 입담이 괜찮아서 아마추어 20명을 데리고도 마가 안 뜨는 것은 대단했다.
‘그래도 이대로면 시청률 반토막 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마다 MC가 새로운 컨텐츠를 입에 넣어줬다.
“이번 코너는~ 랜덤 플레이 댄스입니다!”
음악이 나오면 달려와서 춤추는 심플한 룰의 유명한 컨텐츠였지만, 20명이 마구 달려 나와서 하니 나름대로 엉망진창 흥겨운 재미가 있었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와악!”
“나 해보고 싶었어!”
말랑달콤의 에 맞춰 차유진과 몇몇 참가자들이 달려 나와 춤을 췄다.
“오~”
완전히 몰입한 것처럼 1차 팀전 당시의 안무를 따라 하는 모습에 악토버 31 출신 참가자들이 폭소하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곡만 써서 돌렸기 때문에, 다른 팀의 안무를 추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꽤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때렸다.
-POP! POP!
넌 나의 팝콘~
“어어?”
“와 이거!”
“으하핫!!”
들어가던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와서 팝콘을 추기 시작했다.
워낙 쉽고 유명한 춤이라 거의 스무 명 전원이 나온 것 같다.
나 빼고 다 나왔다는 뜻이다.
“문대 씨! 문대 씨!”
“…….”
MC가 신나게 박문대를 불렀다.
‘은퇴할 때까지 출 것 같군….’
나는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참가자들에게 합류했다.
기왕 하는 거니 열심히 추자.
-POP POP POP!
POP☆CON!
기어코 엔딩까지 음원을 틀어준 제작진 덕분에 마지막 포즈까지 하고 들어가게 됐다.
마지막까지 안무를 하며 앞자리에 붙어 있던 놈들이 같이 들어가며 쫑알거렸다.
“야~ 문대 진짜 늘었다!”
“천재입니다, 천재.”
“…그만하자.”
“어어~? 칭찬인데? 부끄러우세요?”
“형님 너무 겸손하신데요~?”
“…….”
큰세진과 골드 2를 같은 팀으로 받은 것은 실수였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방송은 그런 식으로 제법 흐름을 탔다.
빼는 사람 없이 필사적으로 컨텐츠에 달려드는 20명의 참가자들은 계속 적극적으로 MC의 발언에 따랐다.
“자자, 이쯤 해서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받은 질문을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오~”
“잠시만요, 제가 이름을 하나 뽑으면….”
MC는 세트 구석에 준비된 박스에서 볼을 뽑아내더니, 안에 있는 이름을 읽었다.
“박문대 참가자님!”
“…예.”
20분의 1 확률에 걸릴 줄은 몰랐다.
나는 얼른 손을 들고 대답했다.
MC는 에서 PPL 중인 태블릿PC를 가져와서 손에 들고는 슥슥 화면을 넘겼다.
아무래도 방송용으로 적절한 질문을 거르는 중인 것 같았다.
“지금 올라오는 질문 중에… 아, 이거!”
MC는 화면을 터치해서 질문 크기를 키우더니, 카메라 쪽으로 돌려서 보여주며 읽었다.
“음, ‘문대 개명한 게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입니다!”
“…….”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