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4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8화
김래빈은 고개를 들었다.
한참 작업 중인 PC 안, 복잡하고 촘촘히 찍힌 점과 선들은 언뜻 보기엔 어지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음으로 바꾸면 놀라울 만큼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누가 부르실 곡이지?’
물론 가수를 마음대로 상상한 곡을 취미로 만들기도 했다. 멤버들이 함께 ‘별의별곡’ 계정을 만든 후, 그는 때로는 화자 없이 상상력만 넘치는 곡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빠르고 구체적으로 곡이 완성된다는 건, 그의 머릿속에 아주 명확한 노랫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건….”
그는 찍힌 노트를 보며, 반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음원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 음원에 퍼즐처럼 딱 들어맞을 목소리까지.
그건 청명하고 단단한 목소리다.
지나치게 무겁진 않으며, 옥타브를 오르내릴 때마다 부드러운 공기가 음에 살짝 섞인다.
그리고 절묘하게, 적확한 순간에 감정을 끌어내듯 호소력이 있는 소리가 비브라토를 과하지 않게….
“김래빈 또 작곡해?”
“…!”
순간, 김래빈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방, 남는 침대 하나에 차유진이 누워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들을래!”
“…알았어.”
깊은 각성 중에, 깨달음의 한 치 앞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묘한 아쉬움이 머릿속에 남았다.
김래빈은 왠지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헤드폰 대신 스피커를 PC에 연결했다.
입체적인 레이어가 사방으로 반짝이며 튀듯, 음악이 방을 물들였다.
“Wow.”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차유진도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작게 휘파람을 불면서 음악에 빠졌다. 그리고 김래빈도 다시 음원 속에 잠겼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침묵이 몇십 초간 공간을 지배한 후.
차유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래빈. 침대 왜 여기 하나 더 있어?”
“…….”
김래빈은 멍한 표정으로, 차유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분의 침대를 보았다.
“…만일을 위해 구매했을 거야.”
“언제?”
“그러니까… 제법 예전에.”
“누구를 위해?”
김래빈은 말하다가 멈췄다.
안개 속처럼, 머릿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공백이 떠다닌다.
그가 만든 음원이 스피커를 타고 배경음처럼 사고를 흔들었다.
침대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는, 이 1옥타브 도(C3)부터 3옥타브 레#(D#5)까지 오가는 음역의 곡을 대체 누구를 상정하고 만들었다는 말인가.
* * *
콘서트장 옆 광장.
야외에서 부는 바람이 모자를 쳤다.
하지만 그런 게 거슬리기는커녕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류건우는 노래를 부르는 것에 몰입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처럼 치고 올라간 곡조가 징검다리 같은 박자를 툭툭 가뿐히 디디며 노래를 끌고 간다.
-그래서 나
나는 나를 기념해야 해
다신 잊지 말아야만 해
몰입시키도록 집중하면서도 불안하지 않다.
영민하게 귀를 잡는 창법.
그가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몇 년간의 연습과 관리, 활동으로 연마한 아이돌 메인보컬의 성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취미로도 삼지 않았던 류건우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자 기억해
지금까지
허스키하게 살짝 갈라진다.
어딘가 원하는 대로 음정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고, 목소리가 생각 같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건 박문대가 처음 이 곡을 에서 불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오늘을 살아낸
놀라운 기적을
잊지 마, 지우지 마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축하해
지금을 기념해
That’s the party in me
매일이 PARTY인 것처럼, Ooh-
그는 테스타의 박문대였다.
어디에 있어도, 어떤 모습이어도.
지난 몇 년, 삶에서 가장 밀도 높고 강렬했던 시간 속에 형성된 정체성은 너무나 견고해서 그를 제자리에 서 있게 했다.
나는 나였다.
-Let’s PARTY
고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는 마이크가 닿는 범위를 단단히 채웠다.
단 한 곡의 노래는 끝까지 꽉 채워진 채로 기분 좋게 끝났다.
남자는 여느 때의 공연처럼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짝짝.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던 관객 몇의 박수가 반주가 끝난 자리를 채웠다.
VTIC 콘서트장에서, 아무리 그래도 전 라이벌이던 티홀릭의 노래를 부른 것 때문인지 오묘한 기색도 섞였다.
그래도 반응은 반응.
박수는 박수였다.
“…….”
그는 속이 시원한 듯한 숨을 내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비로소 멍한 표정에서 회복한 주단이 확신 어린 코멘트를 했다.
“가수셨군요.”
테스타 박문대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었다.
* * *
주단 녀석의 말이 많아졌다.
내가 사람 지나다니는 광장에서 낯짝 두껍게 한 곡 뽑은 걸 보니 확실히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사는 중이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절찬리에 이놈의 추리 퍼레이드를 듣고 있었는데… 아니, 원래는 좀 괴상할 정도로 세속주의자 같은 놈 아니었나?
‘왜 이렇게 신났냐고.’
문제는 은근히 타율이 높다는 점이다.
“혹시 미래에 LeTi에서 가수 활동 중이십니까?”
“…….”
“LeTi 관계자만 숙지할 지식에, 이 소속사가 선호하는 외양까지….”
그리고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아니 잠깐… 그렇군요. 저희 데뷔조에 곧 마지막 멤버로 합류해서 데뷔하십니까? 10년쯤 지났다고 치면 얼추 나이대도 맞는 것 같…….”
“아니다.”
그럴싸해서 더 미치겠다.
하지만 주단은 의미심장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미래에 만날 멤버라도 보는 얼굴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죠.”
“……..”
…비슷한 일을 겪어보긴 했다는 건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음, 주변에서 시선이 살짝 따라오는 건 아까 선곡의 문제 같고.
‘아무리 그래도 티홀릭 솔로곡은 선 넘었나.’
고의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실 갑자기 길 가다가 갑자기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부른 건… 실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박문대였다는 걸 말이지.’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면 그게 필요할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살아온 삶을 생생히 체득하는 것.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나에겐 테스타 박문대와의 아무런 증거도 연결도 없는 상태.
결국 내가 체감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해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스스로 납득한 것이다.
그 아이돌은 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좋아.’
확신이 생겼다.
이 감각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나는 어디서든 정신 차릴 수 있다. 그게 시스템 안이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확실히 정의해서 가자고.
-상태창을 띄워준다고 해서 내가 시스템인 건 아니다.
상태창이 생긴 원인은 애초에 대단히 인간적인 것 아닌가.
큰달 말이다.
그 녀석이 내가 아이돌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상태창이다.
그 녀석이 몇 년이나 그짓을 했는데.
‘내가 X발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정체성이 붕괴했다고 말할 순 없지.’
어떻게든 제정신으로 시스템 안에서 그 단말을 살펴본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발을 옮겼다. 드디어 침착해진 주단은 근처 건물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케이.
“저깁니다. 곧 도착….”
그때였다.
“저기 아까 광장에서 노래 부른 분이시죠?”
“…??”
웬 인간이 밝고 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거 영업하는 사람이 내는 목소린데.’
게다가 어딘가 좀 익숙해서 얼굴을 확인하니….
“실장님.”
“어어어 우단아!”
“…….”
LeTi의 신인개발팀 소속 실장이다.
‘야, 설마.’
주단에게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아는 척을 하던 이 사람은 주단에게 질문하는 척 내게 눈을 빛냈다.
“아는 분이셔? 아, 혹시 오신다던 친척이 이분이시니? 와, 역시 핏줄 못 속인다고 어떻게 사촌 형도 이렇게 잘생기셨어요. 깜짝 놀랐네.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
“아, 아직 시간도 이른데… 저, 식사 전이시죠? 안 그래도 우단이한테 밥이라도 한번 사려고 했는데, 여기 맛집 있거든요.”
“…그.”
“어떠세요? 바로 옆인데! 사실은 아까 너무 멋지게 노래 들려주셔 가지고… 긴장도 하나도 안 하셨잖아요. 관객 입장에서 너무 과몰입했어요, 제가! 그래서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어서….”
“…….”
아무래도 티홀릭 곡을 선곡한 게 생각 이상으로 쏠쏠한 어그로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흠.
‘이러면 더 자연스럽겠는데?’
정보를 캐내기 말이다.
나는 빠른 계산 후 입을 열었다.
“예. 음…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감사하죠.”
신인개발팀 실장은 반색하더니 얼른 맛집이라는 곳을 가리켰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행선지는 변경되었다.
주단이 숙덕였다.
“설마 여기까지 계산하시고 그 노래를?”
그럴 리가 있냐.
그러나 나는 그냥 씩 웃었다.
“이동하죠.”
주단이 나를 재평가했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기는 아니다. 사기는.
“여기 괜찮죠?”
“네. 감사합니다.”
그 ‘맛집’에서 예상대로 실장은 식사하는 동안은 잡담으로 분위기 슬슬 풀면서 내 신상을 조사했다.
“그러시구나!”
그리고 내가 적당하다 싶었는지 배가 차고 디저트가 나올 즈음 해서는 아예 썰을 풀기 시작했다.
계약용 설득 밑밥이다.
주로 LeTi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 소속사인지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척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었는데… 당연하지만, 간판 아티스트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VTIC.
“이번 LA 공연도 진짜 빠르게 매진 됐거든요.”
그리고 나는 말하는 실장의 안색을 살폈다.
‘멀쩡하군.’
게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에 끌고 나왔다. 조금도 조심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사람에게도 멤버 관련 비상 상태 같은 건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단이가 연습 기간이 좀 길긴 한데, 그게 다 또 잘하면 보상을 받으니까….”
그리고 이 사람 입에서 나온 연습생 주단부터 티홀릭 해체까지 각종 정보.
내가 상태창으로서 수집했던 정보들과 일치하는 지금의 여러 현실을 보면, 확실한 결론이 나온다.
-청려는 아직 재시작하지 않았다.
여긴 아직도 녀석의 100번째 재시작 삶 속이다.
그놈은 여전히 재시작을 준비 중이거나, 재시작하려다가 다른 문제가 생겨서 잠깐 보류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제 접촉만 남았군.’
이제 슬슬 이 실장이란 사람의 스카웃을 좋게 거절해서 돌려보내고, 청려와 자연스럽게 부딪히고 지나갈 타이밍만 노리면….
“그래서 건우 씨. 혹시 노래 말고 다른 일에는… 관심 있으세요?”
“…….”
흐음.
* * *
청려는 조용히 비행기 일등석에 누워 있었다.
LA 콘서트가 끝났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재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비행기 창문이라도 깨고 열고 뛰어내리는 것도 간단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위험 요소를 제거했으니, 이제 언제 시작하든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이유 없이.
“…….”
그는 거의 독실에 가까운 일등석에 누워, 생각했다.
‘삭제하길 잘했어.’
진심이 어린, 미약한 안도였다.
재시작 전까지는 이 쓸데없는 영향력을 지워야 했다.
하지만.
“…….”
지난 몇 달간의 습관이 필요 이상으로 과했다.
숨길 것이 없으며, 언제나 이야기가 가능한 대화 상대는 필연적으로 의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좋지 않았다.
‘…도움말이라.’
청려는 무감각하게 읊조렸다.
그 순간.
[왜.]
“…!”
손이 팔걸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는 즉각 상반신을 일으켜서 허공을 보았다.
새파랗게 뜬, 팝업을.
[너 재시작한다더니 왜 그대로 있냐.]
“…….”
도움말.
청려는 말없이 그것을 보다가, 천천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 재시작을 하든 내 마음일 텐데.”
[빠르게 재시작하고 싶어서 날 죽이려고 했던 것도 네 마음이겠지.]
[나는 네가 재시작하면 죽었던 것도 없던 일이 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지금 떠드는 건 환영인가?”
[환영이 아니고 진짜다.]
[어쨌든 너 결국 안 죽었지 않냐고 비꼬는 거라면 넌 개새끼고.]
청려는 멍하니 팝업을 보았다.
그리고 행간에서 감정을 읽었다.
그건 분노였다.
[너도 분명 알고 있었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눌렀지.]
[맥주도 그래서 마신 거 아니냐?]
“…….”
청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 일인지, 그는 대단히 피로해 보였다.
그러나 팝업은 거침없이 발언을 쏟았다.
[또 누르고 싶으면 눌러라. 이번엔 어떻게 되나 보자고.]
“어떻게 돌아왔는데.”
[나도 몰라. 어떻게든….]
팝업이 약간 힘겨운 것처럼 깜박였다.
모종의 타격이 있던 것처럼 보였으나, 문장은 여전히 거침없다.
[아무튼, 좀 회복해서 메세지 보내봤다. 열받아서.]
“…….”
청려는 표정 없이 그 팝업을 보았다.
그러나 팝업을 보낸 이가 예상했던 의심과 어마어마한 질문, 뻔뻔할 정도의 태연함은 표출되지 않았다.
[그게 전부야.]
청려는 마지막 메시지에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사람 뒤통수 갈기고 차분해지는 건 타고난 성향이냐’ 따위의 투덜거림을 참으며, 박문대는 팝업을 제거했다.
그렇게, 청려의 눈앞에 뜨던 푸른 팝업은 사라졌다.
“…….”
도움말이 돌아왔다.
청려는 묵묵히, 다시 뜬 붉은 삭제 권유창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시트에 몸을 기댔다.
삭제해야 했다.
문제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건우 씨?”
“…아.”
“아이고, 기다리시다 잠깐 잠드셨구나~”
박문대는 류건우의 몸으로 눈을 떴다.
그렇다.
그는 몸을 유지한 채로 청려 속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게 되네.’
-안녕하세요!
연습생과 관계자들이 인사하면서 악수하는 타이밍에 슬쩍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았다.
비록 지금 몸이 더럽게 아프고, 시스템에 접속할 때 부담이 두 배로 더 들지만….
‘좀 비빌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이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웃으며 눈앞의 실장과 악수했다.
“계약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무려 현실의 몸으로도 LeTi와 아티스트 지망생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30대 초반이란 사회 통념상 아이돌로 데뷔하기는 힘든 나이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비책을 썼다.
하나는… 직종 변경.
“정말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저희가 이번에 배우 라인도 진짜 괜찮죠.”
그는 신인 배우 지망생으로 계약했다.
애초에 이 실장의 스카웃 목적도 이것이었다.
류건우의 노래 실력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도 떨지 않고 부르는 태연함과 외양 때문에 섭외한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진짜 데뷔할 생각도 없어.’
그래서 이걸로 족했다.
그리고 두 번째.
“20대 중반이면 나이도 딱이시고!”
“…예.”
계약하는 데 주민등록번호는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음. 그는 정말 자신의 번호를 썼을 뿐이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류건우 님!”
이곳의 류건우 말이다.
그는 이 현실에 살고 있을 대학생 자신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냈다.
‘미안하다.’
신상 좀 도용하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8화
김래빈은 고개를 들었다.
한참 작업 중인 PC 안, 복잡하고 촘촘히 찍힌 점과 선들은 언뜻 보기엔 어지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음으로 바꾸면 놀라울 만큼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누가 부르실 곡이지?’
물론 가수를 마음대로 상상한 곡을 취미로 만들기도 했다. 멤버들이 함께 ‘별의별곡’ 계정을 만든 후, 그는 때로는 화자 없이 상상력만 넘치는 곡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빠르고 구체적으로 곡이 완성된다는 건, 그의 머릿속에 아주 명확한 노랫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건….”
그는 찍힌 노트를 보며, 반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음원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 음원에 퍼즐처럼 딱 들어맞을 목소리까지.
그건 청명하고 단단한 목소리다.
지나치게 무겁진 않으며, 옥타브를 오르내릴 때마다 부드러운 공기가 음에 살짝 섞인다.
그리고 절묘하게, 적확한 순간에 감정을 끌어내듯 호소력이 있는 소리가 비브라토를 과하지 않게….
“김래빈 또 작곡해?”
“…!”
순간, 김래빈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방, 남는 침대 하나에 차유진이 누워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들을래!”
“…알았어.”
깊은 각성 중에, 깨달음의 한 치 앞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묘한 아쉬움이 머릿속에 남았다.
김래빈은 왠지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헤드폰 대신 스피커를 PC에 연결했다.
입체적인 레이어가 사방으로 반짝이며 튀듯, 음악이 방을 물들였다.
“Wow.”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차유진도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작게 휘파람을 불면서 음악에 빠졌다. 그리고 김래빈도 다시 음원 속에 잠겼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침묵이 몇십 초간 공간을 지배한 후.
차유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래빈. 침대 왜 여기 하나 더 있어?”
“…….”
김래빈은 멍한 표정으로, 차유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분의 침대를 보았다.
“…만일을 위해 구매했을 거야.”
“언제?”
“그러니까… 제법 예전에.”
“누구를 위해?”
김래빈은 말하다가 멈췄다.
안개 속처럼, 머릿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공백이 떠다닌다.
그가 만든 음원이 스피커를 타고 배경음처럼 사고를 흔들었다.
침대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는, 이 1옥타브 도(C3)부터 3옥타브 레#(D#5)까지 오가는 음역의 곡을 대체 누구를 상정하고 만들었다는 말인가.
* * *
콘서트장 옆 광장.
야외에서 부는 바람이 모자를 쳤다.
하지만 그런 게 거슬리기는커녕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류건우는 노래를 부르는 것에 몰입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처럼 치고 올라간 곡조가 징검다리 같은 박자를 툭툭 가뿐히 디디며 노래를 끌고 간다.
-그래서 나
나는 나를 기념해야 해
다신 잊지 말아야만 해
몰입시키도록 집중하면서도 불안하지 않다.
영민하게 귀를 잡는 창법.
그가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몇 년간의 연습과 관리, 활동으로 연마한 아이돌 메인보컬의 성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취미로도 삼지 않았던 류건우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자 기억해
지금까지
허스키하게 살짝 갈라진다.
어딘가 원하는 대로 음정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고, 목소리가 생각 같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건 박문대가 처음 이 곡을 에서 불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오늘을 살아낸
놀라운 기적을
잊지 마, 지우지 마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축하해
지금을 기념해
That’s the party in me
매일이 PARTY인 것처럼, Ooh-
그는 테스타의 박문대였다.
어디에 있어도, 어떤 모습이어도.
지난 몇 년, 삶에서 가장 밀도 높고 강렬했던 시간 속에 형성된 정체성은 너무나 견고해서 그를 제자리에 서 있게 했다.
나는 나였다.
-Let’s PARTY
고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는 마이크가 닿는 범위를 단단히 채웠다.
단 한 곡의 노래는 끝까지 꽉 채워진 채로 기분 좋게 끝났다.
남자는 여느 때의 공연처럼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짝짝.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던 관객 몇의 박수가 반주가 끝난 자리를 채웠다.
VTIC 콘서트장에서, 아무리 그래도 전 라이벌이던 티홀릭의 노래를 부른 것 때문인지 오묘한 기색도 섞였다.
그래도 반응은 반응.
박수는 박수였다.
“…….”
그는 속이 시원한 듯한 숨을 내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비로소 멍한 표정에서 회복한 주단이 확신 어린 코멘트를 했다.
“가수셨군요.”
테스타 박문대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었다.
* * *
주단 녀석의 말이 많아졌다.
내가 사람 지나다니는 광장에서 낯짝 두껍게 한 곡 뽑은 걸 보니 확실히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사는 중이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절찬리에 이놈의 추리 퍼레이드를 듣고 있었는데… 아니, 원래는 좀 괴상할 정도로 세속주의자 같은 놈 아니었나?
‘왜 이렇게 신났냐고.’
문제는 은근히 타율이 높다는 점이다.
“혹시 미래에 LeTi에서 가수 활동 중이십니까?”
“…….”
“LeTi 관계자만 숙지할 지식에, 이 소속사가 선호하는 외양까지….”
그리고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아니 잠깐… 그렇군요. 저희 데뷔조에 곧 마지막 멤버로 합류해서 데뷔하십니까? 10년쯤 지났다고 치면 얼추 나이대도 맞는 것 같…….”
“아니다.”
그럴싸해서 더 미치겠다.
하지만 주단은 의미심장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미래에 만날 멤버라도 보는 얼굴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죠.”
“……..”
…비슷한 일을 겪어보긴 했다는 건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음, 주변에서 시선이 살짝 따라오는 건 아까 선곡의 문제 같고.
‘아무리 그래도 티홀릭 솔로곡은 선 넘었나.’
고의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실 갑자기 길 가다가 갑자기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부른 건… 실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박문대였다는 걸 말이지.’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면 그게 필요할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살아온 삶을 생생히 체득하는 것.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나에겐 테스타 박문대와의 아무런 증거도 연결도 없는 상태.
결국 내가 체감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해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스스로 납득한 것이다.
그 아이돌은 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좋아.’
확신이 생겼다.
이 감각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나는 어디서든 정신 차릴 수 있다. 그게 시스템 안이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확실히 정의해서 가자고.
-상태창을 띄워준다고 해서 내가 시스템인 건 아니다.
상태창이 생긴 원인은 애초에 대단히 인간적인 것 아닌가.
큰달 말이다.
그 녀석이 내가 아이돌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상태창이다.
그 녀석이 몇 년이나 그짓을 했는데.
‘내가 X발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정체성이 붕괴했다고 말할 순 없지.’
어떻게든 제정신으로 시스템 안에서 그 단말을 살펴본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발을 옮겼다. 드디어 침착해진 주단은 근처 건물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케이.
“저깁니다. 곧 도착….”
그때였다.
“저기 아까 광장에서 노래 부른 분이시죠?”
“…??”
웬 인간이 밝고 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거 영업하는 사람이 내는 목소린데.’
게다가 어딘가 좀 익숙해서 얼굴을 확인하니….
“실장님.”
“어어어 우단아!”
“…….”
LeTi의 신인개발팀 소속 실장이다.
‘야, 설마.’
주단에게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아는 척을 하던 이 사람은 주단에게 질문하는 척 내게 눈을 빛냈다.
“아는 분이셔? 아, 혹시 오신다던 친척이 이분이시니? 와, 역시 핏줄 못 속인다고 어떻게 사촌 형도 이렇게 잘생기셨어요. 깜짝 놀랐네.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
“아, 아직 시간도 이른데… 저, 식사 전이시죠? 안 그래도 우단이한테 밥이라도 한번 사려고 했는데, 여기 맛집 있거든요.”
“…그.”
“어떠세요? 바로 옆인데! 사실은 아까 너무 멋지게 노래 들려주셔 가지고… 긴장도 하나도 안 하셨잖아요. 관객 입장에서 너무 과몰입했어요, 제가! 그래서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어서….”
“…….”
아무래도 티홀릭 곡을 선곡한 게 생각 이상으로 쏠쏠한 어그로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흠.
‘이러면 더 자연스럽겠는데?’
정보를 캐내기 말이다.
나는 빠른 계산 후 입을 열었다.
“예. 음…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감사하죠.”
신인개발팀 실장은 반색하더니 얼른 맛집이라는 곳을 가리켰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행선지는 변경되었다.
주단이 숙덕였다.
“설마 여기까지 계산하시고 그 노래를?”
그럴 리가 있냐.
그러나 나는 그냥 씩 웃었다.
“이동하죠.”
주단이 나를 재평가했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기는 아니다. 사기는.
“여기 괜찮죠?”
“네. 감사합니다.”
그 ‘맛집’에서 예상대로 실장은 식사하는 동안은 잡담으로 분위기 슬슬 풀면서 내 신상을 조사했다.
“그러시구나!”
그리고 내가 적당하다 싶었는지 배가 차고 디저트가 나올 즈음 해서는 아예 썰을 풀기 시작했다.
계약용 설득 밑밥이다.
주로 LeTi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 소속사인지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척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었는데… 당연하지만, 간판 아티스트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VTIC.
“이번 LA 공연도 진짜 빠르게 매진 됐거든요.”
그리고 나는 말하는 실장의 안색을 살폈다.
‘멀쩡하군.’
게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에 끌고 나왔다. 조금도 조심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사람에게도 멤버 관련 비상 상태 같은 건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단이가 연습 기간이 좀 길긴 한데, 그게 다 또 잘하면 보상을 받으니까….”
그리고 이 사람 입에서 나온 연습생 주단부터 티홀릭 해체까지 각종 정보.
내가 상태창으로서 수집했던 정보들과 일치하는 지금의 여러 현실을 보면, 확실한 결론이 나온다.
-청려는 아직 재시작하지 않았다.
여긴 아직도 녀석의 100번째 재시작 삶 속이다.
그놈은 여전히 재시작을 준비 중이거나, 재시작하려다가 다른 문제가 생겨서 잠깐 보류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제 접촉만 남았군.’
이제 슬슬 이 실장이란 사람의 스카웃을 좋게 거절해서 돌려보내고, 청려와 자연스럽게 부딪히고 지나갈 타이밍만 노리면….
“그래서 건우 씨. 혹시 노래 말고 다른 일에는… 관심 있으세요?”
“…….”
흐음.
* * *
청려는 조용히 비행기 일등석에 누워 있었다.
LA 콘서트가 끝났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재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비행기 창문이라도 깨고 열고 뛰어내리는 것도 간단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위험 요소를 제거했으니, 이제 언제 시작하든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이유 없이.
“…….”
그는 거의 독실에 가까운 일등석에 누워, 생각했다.
‘삭제하길 잘했어.’
진심이 어린, 미약한 안도였다.
재시작 전까지는 이 쓸데없는 영향력을 지워야 했다.
하지만.
“…….”
지난 몇 달간의 습관이 필요 이상으로 과했다.
숨길 것이 없으며, 언제나 이야기가 가능한 대화 상대는 필연적으로 의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좋지 않았다.
‘…도움말이라.’
청려는 무감각하게 읊조렸다.
그 순간.
“…!”
손이 팔걸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는 즉각 상반신을 일으켜서 허공을 보았다.
새파랗게 뜬, 팝업을.
“…….”
도움말.
청려는 말없이 그것을 보다가, 천천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 재시작을 하든 내 마음일 텐데.”
“지금 떠드는 건 환영인가?”
청려는 멍하니 팝업을 보았다.
그리고 행간에서 감정을 읽었다.
그건 분노였다.
“…….”
청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 일인지, 그는 대단히 피로해 보였다.
그러나 팝업은 거침없이 발언을 쏟았다.
“어떻게 돌아왔는데.”
팝업이 약간 힘겨운 것처럼 깜박였다.
모종의 타격이 있던 것처럼 보였으나, 문장은 여전히 거침없다.
“…….”
청려는 표정 없이 그 팝업을 보았다.
그러나 팝업을 보낸 이가 예상했던 의심과 어마어마한 질문, 뻔뻔할 정도의 태연함은 표출되지 않았다.
청려는 마지막 메시지에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사람 뒤통수 갈기고 차분해지는 건 타고난 성향이냐’ 따위의 투덜거림을 참으며, 박문대는 팝업을 제거했다.
그렇게, 청려의 눈앞에 뜨던 푸른 팝업은 사라졌다.
“…….”
도움말이 돌아왔다.
청려는 묵묵히, 다시 뜬 붉은 삭제 권유창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시트에 몸을 기댔다.
삭제해야 했다.
문제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건우 씨?”
“…아.”
“아이고, 기다리시다 잠깐 잠드셨구나~”
박문대는 류건우의 몸으로 눈을 떴다.
그렇다.
그는 몸을 유지한 채로 청려 속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게 되네.’
-안녕하세요!
연습생과 관계자들이 인사하면서 악수하는 타이밍에 슬쩍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았다.
비록 지금 몸이 더럽게 아프고, 시스템에 접속할 때 부담이 두 배로 더 들지만….
‘좀 비빌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이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웃으며 눈앞의 실장과 악수했다.
“계약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무려 현실의 몸으로도 LeTi와 아티스트 지망생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30대 초반이란 사회 통념상 아이돌로 데뷔하기는 힘든 나이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비책을 썼다.
하나는… 직종 변경.
“정말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저희가 이번에 배우 라인도 진짜 괜찮죠.”
그는 신인 배우 지망생으로 계약했다.
애초에 이 실장의 스카웃 목적도 이것이었다.
류건우의 노래 실력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도 떨지 않고 부르는 태연함과 외양 때문에 섭외한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진짜 데뷔할 생각도 없어.’
그래서 이걸로 족했다.
그리고 두 번째.
“20대 중반이면 나이도 딱이시고!”
“…예.”
계약하는 데 주민등록번호는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음. 그는 정말 자신의 번호를 썼을 뿐이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류건우 님!”
이곳의 류건우 말이다.
그는 이 현실에 살고 있을 대학생 자신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냈다.
‘미안하다.’
신상 좀 도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