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4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1화
신재현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내린 DMZ의 풍경은 그 아래 불발탄들이 숨겨져 있든 말든 퍽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가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야외에서 복무하는 일은 예상보다 드물었다. 그는 지휘통제실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직업 특수 상 판문점 안내 업무를 맡기려 했던 것 같지만, 같은 이유로 ‘사건 및 사고의 소지가 있어’ 제외된 것 같다고 청려는 추측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십 년 만에, 고요하고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흘렀다.
이색적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쇼 비즈니스 업계가 굉장히 역동적이며 매일같이 신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더없이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며 모든 게 매뉴얼화된 사람에게는 특히.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통제하고 쥐어짤 것이 없는 유순한 하루는 청려의 사고 구조와 잘 맞지 않긴 했다.?
그래도 이 일상은 꽤 흥미로웠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단점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반려견, 콩이의 소식을 직접 가지고서.
그는 떨떠름한 얼굴의 박문대가 걸어오는 것을 마주하며 빙긋 웃었다.?
* * *
“오랜만이네요.”
나는 마중 나온 상대를 보고 잠깐 침묵했다.
예상은 했다만, 면회 오는데 출입 허가를 이렇게 요란하게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남의 면회에 오는 건 거의 처음이긴 하다만.’
심지어 이 동네는 면회를 일요일에만 받아서 스케줄 맞추느라 이가 갈릴 뻔했다.
“오느라 고생했겠어요.”
“아닙니다.”
말투만 들어서는 내가 이등병 같다. 심지어 놈은 친절한 듯이 권유했다.
“관광이라도?”
“괜찮습니다.”
이놈이 안내해주는 JSA 박물관 투어 같은 건 관심 없다. 본인도 그냥 해본 말인지 다시 권유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냥 천천히 고요한 공간을 걸어서 마찬가지로 조용한 실내로 들어갔다.
“앉아요.”
면회용으로 자주 쓰는 것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리에는 나 외엔 아무런 면회객도 없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라.”
“예.”
휴전선에 민간인이 많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온 것을 꺼내 들었다.
“받으세요.”
바로 개 발자국이 음각으로 찍힌 발 도장이었다.
저놈의 반려견이 무슨… 아무튼 찰흙을 가지고 노는 야외 활동을 하면서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아무튼 반입 금지 품목은 아니었다.
놈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고마워요.”
개 발자국이 굳은 원반형의 작은 장식품을 집어 든 녀석은 꽤 부드럽게 표면을 쓸었다.?
“…….”
뭐, 나쁜 일 한 것 같지는 않군.
하지만 나는 단순히 청려 개의 발바닥 현황을 보여주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문자로 보내도 상관없지.
그래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빠르게 처리할 것부터 말하고 넘어가자면….
바로 일 얘기다.
“그러고 보니, 티홀릭 선배님을 만났는데요.”
“네.”
“티홀릭 선배님들이 LeTi와 협력해서 회사를 세웠다고 하시던데요.”
“그렇죠.”
청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수긍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정말 컴백할 때 서로 스케줄이 겹칠까 염려하진 않아도 되겠네요. 하하.”
“…….”
그래. 이 새끼가 주도한 거군.
혹시 했는데 과연 지독한 놈이었다. 과거 지긋지긋한 라이벌도 일단 도움이 되면 냉큼 삼키고 보는 건가.
‘입대 전에 많이도 해치워놓고 갔군.’
게다가 청려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음, 그 과정에서 작은 이벤트도 만들었고. 이건 후배님도 이미 잘 알고 있죠?”
“…이벤트?”
“네. 기사로 봤잖아요.”
나는 번개처럼 깨달았다.
‘기사 이벤트.’
티홀릭, 테스타가 모두 관계되어있으면서, 기사로 뜰 만한 사건은….
-이테르 관계자들이 테스타 욕했다는데?
이테르 스탭들의 ‘테스타 녹취록’ 사건이다.
“…티홀릭 선배님이 그 이벤트를 만드셨다고요.”
청려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지만, 사실상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침음을 삼켰다.
‘경쟁 신인이 한 줄 알았는데.’
티홀릭이 터트린 거였나.
“그렇죠. 후배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을 텐데.”
“…….”
그 사건으로 테스타가 이득을 봤냐 안 봤냐로 말하자면, 이득을 보긴 했다.
이게 무슨 개이득이냐 싶은 수준이었지. 갑자기 누가 살얼음 낀 사이다를 목구멍에 꽂아준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마 테스타가 본 건 반사이득일 것이고, 티홀릭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원더홀 사내를 뒤집으려고 한 것이다.?
‘본인들 독립에 쓸데없는 수작 못 부리게 주목을 돌린 거지.’
즉, 어쩌다 보니 서로 수작질이 돌고 돌면서 이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거 원.
‘적폐가 된 기분인데,’
진짜 적폐 같은 개짓거리는 원더홀이 했는데 이 새끼들이 편 먹고 입 싹 닦아서 괜히 한 역할 맡은 것 같군.
그리고 이놈도 일부러 ‘테스타가 본 이득’을 상기시키면서 뭘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합리적인 대응을 했다.
시치미를 뗐다는 뜻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 그렇겠죠.”
자기가 넘어가 준다는 듯이 실실 쪼개는 것 좀 안 할 수 없냐.
놀랍게도 청려는 금방 어투를 바꿨다.
“하지만 이걸 말하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것 같은데. 말해요.”
그래. 목적이 있지.
그리고 물어볼 것도 많다.?
일단 이놈이 훈련소까지 수료하고서는 어떻게 아직도 저 사람 빡치게 만드는 말투를 자연스럽게 쓰는지부터 궁금….?
아니, 적어도 몇십 년은 저 말투를 썼을 테니, 겨우 한두 달 가지고 바뀌지 않는 건 당연하겠군.
나는 이런 분위기 조성용 질문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직구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깔끔하게 가자.
“제가 지난번에 시스템 파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음.”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다지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워낙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누가 엿들어도 게임 이야기려니 했으니까.
그래도 예의상 목소리를 낮추자 곧바로 피드백이 들어왔다.
“편하게 말해요. CCTV는 있지만 녹음 장치는 없고,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아니면 같이 X 될 텐데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야.
“그래.”
나는 즉시 말을 놓고, 이 시스템 파편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파편을 가지고 있어서 내게 건물 붕괴 미션 실패가 발생한 것, 내가 남은 파편으로 회사 시스템을 만든 것.
이미 설명한 이야기지만 흐름에 맞춰서 깔끔이 한 번 더 정리해준다.
그리고 결론은 이것이다.
-너한테도 그 시한폭탄 같은 파편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말을 놓자 피식거리던 녀석의 표정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감해졌다.
결국, 이렇게 대꾸하게 될 때까지.
“그래서?”
“너한테 있는 파편을 지금 수거해보겠다고.”
“…….”
“조건을 맞춰서 지금은 가능하니까.”
지금 하지 않으면, 이놈한테 있는 파편도 언제 미션 실패로 터질지 몰랐다.
‘그리고 상태창 없는 이놈은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될 확률이 꽤 높다.’
이놈도 컴백도 못하고 황당한 돌연사를 맞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솔직히 내가 밑지는 제안이다.
그러나 청려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도된 것 같은데.”
뭐?
“등급을 올리고, 미션을 주고… 이건 우리가 해왔던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여서.”
“…….”
“잘 생각해봐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시스템을 쓰지 마라.
뭐,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안 하면 죽는다니까.”
“그것도 똑같고.”
“그렇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일단 안 하는 쪽은 더 피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얼마나 사람이 X될 수 있는지 이미 목격하고 경험했지 않은가. 아니까 차선책을 쓰자는 거지.
시스템의 상태이상, 혹은 미션을 처리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들이끼리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법 대책도 마련해두긴 했다.?
‘논리적을 보자면… 스티어 기억이든 뭐든 그런 특이점은 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나를 더 쓰게 만들겠다’인 이상, 그 부분을 규칙적인 사용으로 직접 통제하고 있으니 ‘시스템 업데이트’랍시고 날 애먹일 일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받자마자 시스템을 끌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위험을 부담하겠다?”
“그건 아니고.”
나는 손깍지를 꼈다.
“몇 가지 약속을 좀 해줘야겠는데.”
“말해요.”
“첫 번째.”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오르빗을 ‘LeTi 식구들’ 같은 단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
“물론 가족, 한솥밥, 동생 같은 유사 단어는 모두 금지고.”
다음 것도 중요했다.
“두 번째, 티홀릭 예능에 단체 출연하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인간들 성격에 진짜 추진할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약간 얼이 빠져 보이는 녀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은… 이걸 회수해서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해결하는데 전적으로 협력해라.”
“…….”
이건 인간적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상 나는 이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지.
나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파편이라는 걸 회수하는 순간 바로 시스템 사용을 그만두는 조건하에서.”
“물론이지.”
네가 말 안 해도 당장 소지품으로 돌려버릴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태창을 불렀다.?
“그럼 한다.”
“그래요.”?
비슷한 상황이라 그런가.
이놈 전용기에서 시스템의 삭제하려고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다만 차이도 분명했다.
그때는 이놈이 흥미가 있어서 전용기까지 제공하며 관람하려 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자리의 두 놈 다 흥미라곤 없지만,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걸 누르게 됐군.
‘후.’
“소원이 뭐냐.”
“음?”
“필요한 절차야.”
“음.”
녀석은 짧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말했다.
“콩이를 잘 돌보면 좋겠는데.”
“…….”
뭐… ‘테스타 망해라’ 같은 소원보단 낫군.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눈앞으로 팝업이 튀어 올랐다.
[‘■■■ 파편’ 보유자 확인!]
[ 등록]
역시.
청려에겐 파편이 있었다.
‘이런 소원에도 반응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미 모든 회사 등급 기준을 만족한 덕에, 복잡한 베이스 과정 없이 곧장 결과 팝업이 이어졌다.
[‘■■■의 파편’ 보유자 재확인]
‘■■■ 파편 (1 / 4)’을 ‘회사용 ’으로 흡수하시겠습니까?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보이냐?”
“보이죠.”
나는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상태창에게 응답했다.
‘흡수한다.’
그 즉시, 팝업에서 나온 빛무리가 경쾌하게 청려를 한 바퀴 돌고 도로 들어갔다.
청려는 서늘한 눈으로 해당 현상을 지켜보았다.
[‘■■■ 파편 (1 / 4)’ 회수 완료!]
여기까지도 예상대로.
‘후.’
나는 짧게 안도했다.
그러나 다음에 뜬 것은, 지금까지 없던 것이다.
[‘■■■ 파편’ (4 / 4) 전체 확인]
[■■■ 완성]
그리고 마치 뜯겨나가듯이, ‘■■■’의 검은 칠이 벗겨지며… 정확한 명칭이 드러난다.
[시스템 완성]
그리고 하단에 뜨는 설명.
[리부트 시작]
* * *
차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로 몇 주 전 스페인에서 낯선 고양이를 화재로부터 구했음에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잘했지만 위험했다’라는 모순적인 평을 내린 박문대가 저염식단을 줄 때 반발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뭐, 사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짝 엄살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건 얼마나 좋은가.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열다가, 그 앞 탁자에서 사과주스를 마시던 김래빈을 발견했다.
“문대 형이 해줬어?”
“맞아!”
차유진은 약간 서운해졌으나, 곧 털어냈다.
해달라고 직접 말하자!
“형 어디 갔어?”
“친구분을 만나러 외출하셨어. 바빠 보이셨으니 귀찮은 부탁을 드리면 안….”
“OK!”
차유진은 말이 끊긴 김래빈이 분노해서 쫓아 오기 전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는, 킬킬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감각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건 뭐지?’
알 수 없는 것이 거슬렸다.
그는 제법 긍정적이며 약간 낙천적이기까지 했지만, 현실 감각이 없진 않았다.
지금은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야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만일 그가 50km 떨어진 JSA의 한 곳에서 박문대의 정신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이런 X발!
정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박문대는 현재, 세상이 부서져 나가는 경험을 또 한 번 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나야.’
터져나가는 것은, 박문대 본인이었다!
붙잡으려고 기를 썼으나, 정신적인 의미에서 ‘뽑혀 나오듯’ 인식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규격 외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박문대는 지체하지 않고 만일을 위해 대기 중이던 조력자를 불렀다.
-큰달!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박문대는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되뇌며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통제 불능이었다.
무슨 정신이 엿가락처럼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리부트 시작]
상태창마저도 점점 희미해지며 일그러졌다.
-…!
잠깐, 맞은편에 앉았던 상대가 팔을 잡는 것 같았으나, 곧 그 감각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상태창 주변도 왜곡되며 빨려들 듯 휙휙 색감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흡사 말도 안 되게 빠른 고속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처럼.
‘X발.’
박문대는 다시 욕지거리하며, 통제권을 되찾으려 애썼다.
‘멈춰!’
달리는 기차를 맨손으로 끌어당겨 멈추는 것 같은 터무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순간.
[-]
거짓말처럼, 그는 간신히 상황을 붙들었다.
드디어 고정된 시야에서 정적인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조금만 방심하면 도로 의식이 빨려들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보였다.
‘어디지?’
주변은 밤이었다.
야외.
옥상.
…사람.
서늘한 겨울밤, 옥상에서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인영이 그의 눈앞에 보였다.
“…….”
코트를 입은 낯익은 남성.
청려.
-…!!
박문대는 반사적으로, 몇 년 전에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상태이상’을 클리어하고 보상이랍시고 받았던 청려의 첫 번째 재시작 기억.
‘같은 장소야.’
마치 자신이 의식이 그 기억 속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기억과의 차이점도 깨달았다.
‘담배가 없다.’
당시 청려가 피우고 있던 담배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인영의 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 속 청려가 ‘본래 VTIC의 광고가 나왔으나,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라고 회상하며 바라보았던 전광판.
그곳에서는.
[ with VTIC]
VTIC 광고가 여전히 걸려 있다.
전광판에서 화려한 색감이 반짝였다.
그의 그룹이 아직도 망하지 않은 어느 시점.
정확히는, 어떤 ‘재시작의 반복’ 속 한 시점.
-…….
박문대는 스스로 물었다.
이건 대체 ‘몇 번째’ 청려이지?
그리고.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1화
신재현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내린 DMZ의 풍경은 그 아래 불발탄들이 숨겨져 있든 말든 퍽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가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야외에서 복무하는 일은 예상보다 드물었다. 그는 지휘통제실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직업 특수 상 판문점 안내 업무를 맡기려 했던 것 같지만, 같은 이유로 ‘사건 및 사고의 소지가 있어’ 제외된 것 같다고 청려는 추측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십 년 만에, 고요하고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흘렀다.
이색적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쇼 비즈니스 업계가 굉장히 역동적이며 매일같이 신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더없이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며 모든 게 매뉴얼화된 사람에게는 특히.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통제하고 쥐어짤 것이 없는 유순한 하루는 청려의 사고 구조와 잘 맞지 않긴 했다.?
그래도 이 일상은 꽤 흥미로웠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단점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반려견, 콩이의 소식을 직접 가지고서.
그는 떨떠름한 얼굴의 박문대가 걸어오는 것을 마주하며 빙긋 웃었다.?
* * *
“오랜만이네요.”
나는 마중 나온 상대를 보고 잠깐 침묵했다.
예상은 했다만, 면회 오는데 출입 허가를 이렇게 요란하게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남의 면회에 오는 건 거의 처음이긴 하다만.’
심지어 이 동네는 면회를 일요일에만 받아서 스케줄 맞추느라 이가 갈릴 뻔했다.
“오느라 고생했겠어요.”
“아닙니다.”
말투만 들어서는 내가 이등병 같다. 심지어 놈은 친절한 듯이 권유했다.
“관광이라도?”
“괜찮습니다.”
이놈이 안내해주는 JSA 박물관 투어 같은 건 관심 없다. 본인도 그냥 해본 말인지 다시 권유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냥 천천히 고요한 공간을 걸어서 마찬가지로 조용한 실내로 들어갔다.
“앉아요.”
면회용으로 자주 쓰는 것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리에는 나 외엔 아무런 면회객도 없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라.”
“예.”
휴전선에 민간인이 많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온 것을 꺼내 들었다.
“받으세요.”
바로 개 발자국이 음각으로 찍힌 발 도장이었다.
저놈의 반려견이 무슨… 아무튼 찰흙을 가지고 노는 야외 활동을 하면서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아무튼 반입 금지 품목은 아니었다.
놈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고마워요.”
개 발자국이 굳은 원반형의 작은 장식품을 집어 든 녀석은 꽤 부드럽게 표면을 쓸었다.?
“…….”
뭐, 나쁜 일 한 것 같지는 않군.
하지만 나는 단순히 청려 개의 발바닥 현황을 보여주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문자로 보내도 상관없지.
그래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빠르게 처리할 것부터 말하고 넘어가자면….
바로 일 얘기다.
“그러고 보니, 티홀릭 선배님을 만났는데요.”
“네.”
“티홀릭 선배님들이 LeTi와 협력해서 회사를 세웠다고 하시던데요.”
“그렇죠.”
청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수긍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정말 컴백할 때 서로 스케줄이 겹칠까 염려하진 않아도 되겠네요. 하하.”
“…….”
그래. 이 새끼가 주도한 거군.
혹시 했는데 과연 지독한 놈이었다. 과거 지긋지긋한 라이벌도 일단 도움이 되면 냉큼 삼키고 보는 건가.
‘입대 전에 많이도 해치워놓고 갔군.’
게다가 청려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음, 그 과정에서 작은 이벤트도 만들었고. 이건 후배님도 이미 잘 알고 있죠?”
“…이벤트?”
“네. 기사로 봤잖아요.”
나는 번개처럼 깨달았다.
‘기사 이벤트.’
티홀릭, 테스타가 모두 관계되어있으면서, 기사로 뜰 만한 사건은….
-이테르 관계자들이 테스타 욕했다는데?
이테르 스탭들의 ‘테스타 녹취록’ 사건이다.
“…티홀릭 선배님이 그 이벤트를 만드셨다고요.”
청려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지만, 사실상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침음을 삼켰다.
‘경쟁 신인이 한 줄 알았는데.’
티홀릭이 터트린 거였나.
“그렇죠. 후배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을 텐데.”
“…….”
그 사건으로 테스타가 이득을 봤냐 안 봤냐로 말하자면, 이득을 보긴 했다.
이게 무슨 개이득이냐 싶은 수준이었지. 갑자기 누가 살얼음 낀 사이다를 목구멍에 꽂아준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마 테스타가 본 건 반사이득일 것이고, 티홀릭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원더홀 사내를 뒤집으려고 한 것이다.?
‘본인들 독립에 쓸데없는 수작 못 부리게 주목을 돌린 거지.’
즉, 어쩌다 보니 서로 수작질이 돌고 돌면서 이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거 원.
‘적폐가 된 기분인데,’
진짜 적폐 같은 개짓거리는 원더홀이 했는데 이 새끼들이 편 먹고 입 싹 닦아서 괜히 한 역할 맡은 것 같군.
그리고 이놈도 일부러 ‘테스타가 본 이득’을 상기시키면서 뭘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합리적인 대응을 했다.
시치미를 뗐다는 뜻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 그렇겠죠.”
자기가 넘어가 준다는 듯이 실실 쪼개는 것 좀 안 할 수 없냐.
놀랍게도 청려는 금방 어투를 바꿨다.
“하지만 이걸 말하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것 같은데. 말해요.”
그래. 목적이 있지.
그리고 물어볼 것도 많다.?
일단 이놈이 훈련소까지 수료하고서는 어떻게 아직도 저 사람 빡치게 만드는 말투를 자연스럽게 쓰는지부터 궁금….?
아니, 적어도 몇십 년은 저 말투를 썼을 테니, 겨우 한두 달 가지고 바뀌지 않는 건 당연하겠군.
나는 이런 분위기 조성용 질문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직구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깔끔하게 가자.
“제가 지난번에 시스템 파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음.”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다지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워낙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누가 엿들어도 게임 이야기려니 했으니까.
그래도 예의상 목소리를 낮추자 곧바로 피드백이 들어왔다.
“편하게 말해요. CCTV는 있지만 녹음 장치는 없고,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아니면 같이 X 될 텐데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야.
“그래.”
나는 즉시 말을 놓고, 이 시스템 파편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파편을 가지고 있어서 내게 건물 붕괴 미션 실패가 발생한 것, 내가 남은 파편으로 회사 시스템을 만든 것.
이미 설명한 이야기지만 흐름에 맞춰서 깔끔이 한 번 더 정리해준다.
그리고 결론은 이것이다.
-너한테도 그 시한폭탄 같은 파편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말을 놓자 피식거리던 녀석의 표정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감해졌다.
결국, 이렇게 대꾸하게 될 때까지.
“그래서?”
“너한테 있는 파편을 지금 수거해보겠다고.”
“…….”
“조건을 맞춰서 지금은 가능하니까.”
지금 하지 않으면, 이놈한테 있는 파편도 언제 미션 실패로 터질지 몰랐다.
‘그리고 상태창 없는 이놈은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될 확률이 꽤 높다.’
이놈도 컴백도 못하고 황당한 돌연사를 맞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솔직히 내가 밑지는 제안이다.
그러나 청려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도된 것 같은데.”
뭐?
“등급을 올리고, 미션을 주고… 이건 우리가 해왔던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여서.”
“…….”
“잘 생각해봐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시스템을 쓰지 마라.
뭐,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안 하면 죽는다니까.”
“그것도 똑같고.”
“그렇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일단 안 하는 쪽은 더 피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얼마나 사람이 X될 수 있는지 이미 목격하고 경험했지 않은가. 아니까 차선책을 쓰자는 거지.
시스템의 상태이상, 혹은 미션을 처리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들이끼리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법 대책도 마련해두긴 했다.?
‘논리적을 보자면… 스티어 기억이든 뭐든 그런 특이점은 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나를 더 쓰게 만들겠다’인 이상, 그 부분을 규칙적인 사용으로 직접 통제하고 있으니 ‘시스템 업데이트’랍시고 날 애먹일 일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받자마자 시스템을 끌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위험을 부담하겠다?”
“그건 아니고.”
나는 손깍지를 꼈다.
“몇 가지 약속을 좀 해줘야겠는데.”
“말해요.”
“첫 번째.”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오르빗을 ‘LeTi 식구들’ 같은 단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
“물론 가족, 한솥밥, 동생 같은 유사 단어는 모두 금지고.”
다음 것도 중요했다.
“두 번째, 티홀릭 예능에 단체 출연하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인간들 성격에 진짜 추진할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약간 얼이 빠져 보이는 녀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은… 이걸 회수해서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해결하는데 전적으로 협력해라.”
“…….”
이건 인간적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상 나는 이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지.
나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파편이라는 걸 회수하는 순간 바로 시스템 사용을 그만두는 조건하에서.”
“물론이지.”
네가 말 안 해도 당장 소지품으로 돌려버릴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태창을 불렀다.?
“그럼 한다.”
“그래요.”?
비슷한 상황이라 그런가.
이놈 전용기에서 시스템의 삭제하려고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다만 차이도 분명했다.
그때는 이놈이 흥미가 있어서 전용기까지 제공하며 관람하려 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자리의 두 놈 다 흥미라곤 없지만,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걸 누르게 됐군.
‘후.’
“소원이 뭐냐.”
“음?”
“필요한 절차야.”
“음.”
녀석은 짧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말했다.
“콩이를 잘 돌보면 좋겠는데.”
“…….”
뭐… ‘테스타 망해라’ 같은 소원보단 낫군.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눈앞으로 팝업이 튀어 올랐다.
역시.
청려에겐 파편이 있었다.
‘이런 소원에도 반응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미 모든 회사 등급 기준을 만족한 덕에, 복잡한 베이스 과정 없이 곧장 결과 팝업이 이어졌다.
‘■■■ 파편 (1 / 4)’을 ‘회사용 ’으로 흡수하시겠습니까?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보이냐?”
“보이죠.”
나는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상태창에게 응답했다.
‘흡수한다.’
그 즉시, 팝업에서 나온 빛무리가 경쾌하게 청려를 한 바퀴 돌고 도로 들어갔다.
청려는 서늘한 눈으로 해당 현상을 지켜보았다.
여기까지도 예상대로.
‘후.’
나는 짧게 안도했다.
그러나 다음에 뜬 것은, 지금까지 없던 것이다.
그리고 마치 뜯겨나가듯이, ‘■■■’의 검은 칠이 벗겨지며… 정확한 명칭이 드러난다.
그리고 하단에 뜨는 설명.
* * *
차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로 몇 주 전 스페인에서 낯선 고양이를 화재로부터 구했음에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잘했지만 위험했다’라는 모순적인 평을 내린 박문대가 저염식단을 줄 때 반발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뭐, 사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짝 엄살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건 얼마나 좋은가.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열다가, 그 앞 탁자에서 사과주스를 마시던 김래빈을 발견했다.
“문대 형이 해줬어?”
“맞아!”
차유진은 약간 서운해졌으나, 곧 털어냈다.
해달라고 직접 말하자!
“형 어디 갔어?”
“친구분을 만나러 외출하셨어. 바빠 보이셨으니 귀찮은 부탁을 드리면 안….”
“OK!”
차유진은 말이 끊긴 김래빈이 분노해서 쫓아 오기 전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는, 킬킬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감각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건 뭐지?’
알 수 없는 것이 거슬렸다.
그는 제법 긍정적이며 약간 낙천적이기까지 했지만, 현실 감각이 없진 않았다.
지금은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야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만일 그가 50km 떨어진 JSA의 한 곳에서 박문대의 정신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이런 X발!
정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박문대는 현재, 세상이 부서져 나가는 경험을 또 한 번 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나야.’
터져나가는 것은, 박문대 본인이었다!
붙잡으려고 기를 썼으나, 정신적인 의미에서 ‘뽑혀 나오듯’ 인식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규격 외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박문대는 지체하지 않고 만일을 위해 대기 중이던 조력자를 불렀다.
-큰달!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박문대는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되뇌며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통제 불능이었다.
무슨 정신이 엿가락처럼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상태창마저도 점점 희미해지며 일그러졌다.
-…!
잠깐, 맞은편에 앉았던 상대가 팔을 잡는 것 같았으나, 곧 그 감각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상태창 주변도 왜곡되며 빨려들 듯 휙휙 색감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흡사 말도 안 되게 빠른 고속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처럼.
‘X발.’
박문대는 다시 욕지거리하며, 통제권을 되찾으려 애썼다.
‘멈춰!’
달리는 기차를 맨손으로 끌어당겨 멈추는 것 같은 터무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순간.
거짓말처럼, 그는 간신히 상황을 붙들었다.
드디어 고정된 시야에서 정적인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조금만 방심하면 도로 의식이 빨려들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보였다.
‘어디지?’
주변은 밤이었다.
야외.
옥상.
…사람.
서늘한 겨울밤, 옥상에서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인영이 그의 눈앞에 보였다.
“…….”
코트를 입은 낯익은 남성.
청려.
-…!!
박문대는 반사적으로, 몇 년 전에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상태이상’을 클리어하고 보상이랍시고 받았던 청려의 첫 번째 재시작 기억.
‘같은 장소야.’
마치 자신이 의식이 그 기억 속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기억과의 차이점도 깨달았다.
‘담배가 없다.’
당시 청려가 피우고 있던 담배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인영의 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 속 청려가 ‘본래 VTIC의 광고가 나왔으나,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라고 회상하며 바라보았던 전광판.
그곳에서는.
VTIC 광고가 여전히 걸려 있다.
전광판에서 화려한 색감이 반짝였다.
그의 그룹이 아직도 망하지 않은 어느 시점.
정확히는, 어떤 ‘재시작의 반복’ 속 한 시점.
-…….
박문대는 스스로 물었다.
이건 대체 ‘몇 번째’ 청려이지?
그리고.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