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화
‘27개 역’이라는 숫자에 말문이 막힌 사이, 광고 인증 원정대는 착실하게 숫자가 불어났다.
“지금 갈 거야? 그럼 나도 갈래. 여기 몇 군데 겹치네!”
“팀 스포일러 금지 조항이 있으니 다른 팀 사람도 같이 가는 건 어떨까요.”
“차유진?”
“예.”
“난 괜찮아. 문대는?”
“그러든가.”
“네!”
조용히 얼른 보고 오는 건 그 시점에서 끝났다.
의외였던 점은 선아현이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로 빠졌다는 점이다.
“부, 부모님이랑… 여행가기로 해서.”
“그래?”
이게 사유면 선아현 자취 집에 나 혼자 가 있는 것도 웃긴 일인데?
“아, 그럼 나도 다른 데 묵을까.”
“아, 아니! 써!”
선아현이 기겁했다.
“키, 키 줄게.”
“음, 고맙다.”
내 뭘 믿고 키까지 빌려주는 건지 모르겠다. 떨떠름하게 키를 받아들자, 선아현이 뜬금없이 이실직고했다.
“워, 원래는, 같이 가자고 하려고…….”
“…….”
가족여행에 박문대를 대체 왜 끼워주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이 허락은 한 건가?
“…마음만 고맙게 받는다.”
“으응.”
이렇게 된 거면 차라리 김래빈과 광고 투어가 낫겠군. 하마터면 얼굴 한 번 본 남의 부모님과 여행까지 갈 뻔했다.
“촬영 날 봐~”
손을 붕붕 흔드는 큰세진 주도로 선아현을 배웅했다. 그리고 선아현이 차를 타고 사라지자마자, 차유진이 나타났다.
“완전 신나요!”
차유진이 눈을 빛내며 백팩을 흔들었다. 벌써부터 피곤한 예감이 들었다.
‘하루는 날렸군.’
날아간 내 휴일에 묵념이나 하자.
* * *
일단 이 인원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자는 미친 안건은 기각했다. 이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역도 못 가서 도망쳐야 할걸.”
“맞아.”
차유진은 아쉬워했지만 금방 회복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재밌어하더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첫 타자는 촬영장과 제일 가까운 여의도역이었다.
“찍는다?”
이건 어찌저찌 잘 끝났다.
여의도역에 걸린 건 나와 김래빈뿐이었기 때문에 각자 군말 없이 얼른 사진을 찍고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마스크 벗을 때 눈치챈 사람이 한두 명 있던 것 같긴 했지만, 직장인이 많은 역에 평일 오전인지라 소란이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다.
“좋았어!”
비밀 지령이라도 수행한 것처럼 신난 동행인들과 택시에 도로 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러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닌가?’
목격담이 없으면 그냥 혼자 광고판 실물 구경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인증이라고 해도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목격담인 것처럼 내가 유출이라도 해야 하나.’
그러나 이 걱정은 쓸모없는 상념이었다.
바로 다음 방문지인 고속터미널역부터 난장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어어!!”
“차유진! 야 차유진이야!”
“쟤네 걔들이야? 아주사?”
“광고판 보러왔나 봐. 헐….”
이 모든 말을 고속터미널역 광고판 전방 3M 안에 접근하자마자 동시에 들었다.
당연히 모두 마스크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다들 모자나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지하상가에서부터 이쪽을 보고 뛰어오는 사람까지 보인다.
‘이건… 민폐다.’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튀자.’
대충 시선만 교환한 뒤 얼른 역을 벗어났다. 사진은 당연히 찍지 못했다.
‘이제 뭐로 가려도 쓸모가 없군.’
택시에 타서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택시 뒤로 다른 택시가 따라붙은 것까지 확인했다.
“저거 우리 따라오는 거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김래빈의 확인에 택시 분위기가 우중충해졌다.
택시 기사분은 ‘뭔 재밌는 일들을 그렇게 하셔~’ 하고 농담을 하셨다가, 심각한 분위기에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망했네.’
그렇게 광고 투어는 초반부터 장렬하게 망했다.
간신히 따라오는 차를 따돌리고 난 뒤, 모두 현 상황을 납득했다.
“…따로 가자.”
“그래.”
“예…….”
“인형탈 쓰고 가요!”
“…??”
조용한 합의 분위기를 깨고 차유진이 갑자기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인형탈?”
“네! 귀엽고 사람들 모르고!”
그 말에 큰세진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잠깐… 아, 강남 쪽에 대여업체 있네.”
“오우!”
“가격도 괜찮다! 인당 5, 6만 원만 쓰면 되겠는데?”
5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하지만 괜찮은 발상이긴 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첨언했다.
“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각자 알아서 광고 보러 가는 걸로 하자.”
“응?”
“왜요?!”
차유진의 되물음에 김래빈이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인형탈 넷이 돌아다니면 시선이 더 집중될 테니까…….”
“아.”
모두 즉각 납득했다.
“그럼 일단 대여까지는 같이하자. 괜찮지?”
“네!”
“오키. 기사님! 저희 여기로 가고 싶은데요…….”
큰세진이 곧바로 택시 목적지를 변경했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왠 상가건물 구석에 위치한 파티용품 대여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 이거!”
도착하자마자 차유진이 곧장 인형탈 하나를 집어 들고 신나게 계산대로 향했다. 아마 백호 비슷한 뭔가였던 것 같다.
“빠르네.”
“우리도 얼른 고를까.”
그러자 인형탈 앞에 남은 인원 옆으로 다가온 직원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사인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혹시라도 오늘 중에는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며 부탁한 뒤에, 우리는 줄을 서서 사인을 했다.
굉장히 어색했다.
“난 이거.”
사인이 끝난 뒤, 직원분을 대동한 채로 인형탈을 골라갔다. 큰세진이 거대한 곰 인형탈을 고르자 옆에서 김래빈이 토끼 탈을 골랐다.
누가 봐도 다분히 팬 여론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결국 이건가.’
나는 떨떠름하게 인형탈 하나를 잡아들었다.
5년 전 인형탈 알바 이후 처음 써보는 인형탈은 묵직했다.
‘이것도 고생이겠군.’
이걸 쓰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까마득했다.
일단… 루트부터 새로 짤까.
* * *
박문대의 팬사이트들은 투표 독려에 이어서, 결승전 때 문자 투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대중교통마다 광고를 걸었다.
래핑버스에 영화관까지 별 광고를 다 잡았지만, 준비 시일이 짧은 탓에 현재 실행된 것은 지하철역 광고들 정도였다.
여기, 강남역 지하상가 부근 대형 전광판을 선점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잘 나왔다!’
제작발표회 때 박문대의 볼 콕 포즈를 뽑아낸 이 여성은 기어코 그 사진으로 광고판을 뽑았다.
‘아껴두길 잘했어.’
참고로 잠실역에는 2차 팀전의 히어로 수트를 입은 박문대 전신을 디지털 포스터 광고로 걸었다. 이다음에는 그걸 보러 갈 예정이었다.
‘하나 더 하고 싶었는데.’
맞은편 전광판의 선아현을 보며, 그녀는 아쉬움을 삼켰다.
저 자리가 탐났던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 선아현의 팬들이 아현역을 통째로 빌리다시피 해서 지하철 안전문부터 출구까지 광고를 깔아놨다는 포스팅도 봤다.
‘거기를 그럴 정도면 강남은 좀 놔주지.’
모금액도 충분해서 그녀가 보태려던 사비가 남았기 때문에 더 아까웠다.
‘어찌 됐든 색도 잘 나왔고, 됐다.’
그녀는 전광판을 다시 한번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 잠시 커피를 사러 갔던 그녀의 친구가 다가와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야, 저거 봐!”
“어?”
커피 빨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웬 귀 쫑긋한 노란 강아지 탈이 뒤뚱뒤뚱 전광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웰시코기?’
멍하니 보고 있자니, 웰시코기의 손에 들린 스케치북이 보였다.
[박문대 데뷔해]
“뭐야 저게!”
그녀는 빵 터져 웃으면서 웰시코기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주변에서 전광판을 보던 몇몇 사람들도 웰시코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대 머리색과 별명에 맞춰서 노란 강아지탈을 쓰고 온 모양이었다.
키 큰 사람이 뒤뚱뒤뚱 인형탈을 움직이는 것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그녀의 친구가 전광판 앞에서 멀뚱히 선 웰시코기에게 물어봤다. 웰시코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아, 재밌는 사람 진짜 많아.’
그녀는 웃음을 가리지 못한 채 웰시코기에게 말을 걸었다.
“저 사진 하나 찍어서 올려도 될까요? 아이디어 좋으시네요!”
웰시코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얼른 사진을 찍고 자신의 팬 계정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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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확인하러 왔는데 문댕댕 인형탈 쓴 팬분 만났어요! 😀 (사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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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였기에 순식간에 공유와 좋아요 수가 늘어났다.
그사이, 웰시코기는 인증샷을 다 찍고 그녀의 친구에게 폰을 돌려받았다.
“잘 들어가세요~”
웰시코기가 그녀와 친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다시 뒤뚱뒤뚱 길을 떠났다.
그녀도 키득키득 웃으며 친구와 2호선을 타러 이동했다. 잠실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그곳 광고도 확인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근처 맛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가서 시킨 음료를 기다리고 있자니, 그녀의 친구가 웃으며 뭔가를 보여주었다.
“이거 봐! 아까 웰시코기 팬분 잠실도 갔었나 봐. 사진 또 떴었네.”
“와, 대단하네. 그거 입고 이동하기 힘들 텐데.”
문대가 봐도 재밌어하겠다며, 그녀는 웃으며 SNS에 뜬 사진들을 확인했다.
웰시코기는 부지런하게도 오전과 점심 내내 여기저기 역마다 방문해서 인증샷을 찍었다.
‘이거 하려고 서울 올라오셨나?’
간혹 그런 팬분들을 보기도 해서 낯선 일은 아니었다. 인형탈은 재밌는 발상이긴 했지만.
휙휙 넘기다 보니 아까 그녀가 찍은 사진들도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을 멈추었다.
그녀의 친구가 웰시코기를 찍어주는 장면.
“…어?”
“왜 그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물었다.
“그… 아까 웰시코기 찍어줄 때.”
“응.”
“호, 혹시… 폰 확인했어?”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 그냥 스마트폰이지. 좀 낡았고… 케이스도 안 꼈…… 자, 잠깐.”
친구는 말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
그녀는 그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다급히 문대의 PR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기종.’
그리고 다시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친구 손에 들린 웰시코기의 폰은… PR 영상의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등에 쭈욱 소름이 돋았다.
“야, 야야야, 야…….”
“…진짜야? 진짜? 진짜?”
“아니, 이게, 어…….”
그녀와 친구가 믿기지 않는 추측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을 때, 스마트폰에 새로운 알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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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미친미친 노란댕댕탈 문대임 시발 지금 탈 벗었어 아아아악ㅠㅠㅠ (흔들린 사진) (탈 벗는 문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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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는 신촌역 전광판 앞에서 땀에 젖은 채로 탈을 벗고 미소 짓고 있는 박문대의 상반신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오전에 그녀들이 본 그 인형탈이 맞았다.
“…….”
두 사람은 음료가 나올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
그제야 얼음물을 목구멍에 꽂아 넣으며 내면으로 울부짖었다.
‘악수라도 할걸!!’
분명 계를 타서 기쁘고 문대가 좋아서 죽을 것 같은데, 동시에 아쉬워서 토할 것 같은 괴상한 기분이었다.
“팬싸 가자.”
“꼭 간다.”
팬사인회를 기약하며, 둘은 조용히 불타올랐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4화
‘27개 역’이라는 숫자에 말문이 막힌 사이, 광고 인증 원정대는 착실하게 숫자가 불어났다.
“지금 갈 거야? 그럼 나도 갈래. 여기 몇 군데 겹치네!”
“팀 스포일러 금지 조항이 있으니 다른 팀 사람도 같이 가는 건 어떨까요.”
“차유진?”
“예.”
“난 괜찮아. 문대는?”
“그러든가.”
“네!”
조용히 얼른 보고 오는 건 그 시점에서 끝났다.
의외였던 점은 선아현이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로 빠졌다는 점이다.
“부, 부모님이랑… 여행가기로 해서.”
“그래?”
이게 사유면 선아현 자취 집에 나 혼자 가 있는 것도 웃긴 일인데?
“아, 그럼 나도 다른 데 묵을까.”
“아, 아니! 써!”
선아현이 기겁했다.
“키, 키 줄게.”
“음, 고맙다.”
내 뭘 믿고 키까지 빌려주는 건지 모르겠다. 떨떠름하게 키를 받아들자, 선아현이 뜬금없이 이실직고했다.
“워, 원래는, 같이 가자고 하려고…….”
“…….”
가족여행에 박문대를 대체 왜 끼워주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이 허락은 한 건가?
“…마음만 고맙게 받는다.”
“으응.”
이렇게 된 거면 차라리 김래빈과 광고 투어가 낫겠군. 하마터면 얼굴 한 번 본 남의 부모님과 여행까지 갈 뻔했다.
“촬영 날 봐~”
손을 붕붕 흔드는 큰세진 주도로 선아현을 배웅했다. 그리고 선아현이 차를 타고 사라지자마자, 차유진이 나타났다.
“완전 신나요!”
차유진이 눈을 빛내며 백팩을 흔들었다. 벌써부터 피곤한 예감이 들었다.
‘하루는 날렸군.’
날아간 내 휴일에 묵념이나 하자.
* * *
일단 이 인원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자는 미친 안건은 기각했다. 이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역도 못 가서 도망쳐야 할걸.”
“맞아.”
차유진은 아쉬워했지만 금방 회복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재밌어하더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첫 타자는 촬영장과 제일 가까운 여의도역이었다.
“찍는다?”
이건 어찌저찌 잘 끝났다.
여의도역에 걸린 건 나와 김래빈뿐이었기 때문에 각자 군말 없이 얼른 사진을 찍고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마스크 벗을 때 눈치챈 사람이 한두 명 있던 것 같긴 했지만, 직장인이 많은 역에 평일 오전인지라 소란이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다.
“좋았어!”
비밀 지령이라도 수행한 것처럼 신난 동행인들과 택시에 도로 타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러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닌가?’
목격담이 없으면 그냥 혼자 광고판 실물 구경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인증이라고 해도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목격담인 것처럼 내가 유출이라도 해야 하나.’
그러나 이 걱정은 쓸모없는 상념이었다.
바로 다음 방문지인 고속터미널역부터 난장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어어!!”
“차유진! 야 차유진이야!”
“쟤네 걔들이야? 아주사?”
“광고판 보러왔나 봐. 헐….”
이 모든 말을 고속터미널역 광고판 전방 3M 안에 접근하자마자 동시에 들었다.
당연히 모두 마스크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다들 모자나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지하상가에서부터 이쪽을 보고 뛰어오는 사람까지 보인다.
‘이건… 민폐다.’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튀자.’
대충 시선만 교환한 뒤 얼른 역을 벗어났다. 사진은 당연히 찍지 못했다.
‘이제 뭐로 가려도 쓸모가 없군.’
택시에 타서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택시 뒤로 다른 택시가 따라붙은 것까지 확인했다.
“저거 우리 따라오는 거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김래빈의 확인에 택시 분위기가 우중충해졌다.
택시 기사분은 ‘뭔 재밌는 일들을 그렇게 하셔~’ 하고 농담을 하셨다가, 심각한 분위기에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망했네.’
그렇게 광고 투어는 초반부터 장렬하게 망했다.
간신히 따라오는 차를 따돌리고 난 뒤, 모두 현 상황을 납득했다.
“…따로 가자.”
“그래.”
“예…….”
“인형탈 쓰고 가요!”
“…??”
조용한 합의 분위기를 깨고 차유진이 갑자기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인형탈?”
“네! 귀엽고 사람들 모르고!”
그 말에 큰세진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잠깐… 아, 강남 쪽에 대여업체 있네.”
“오우!”
“가격도 괜찮다! 인당 5, 6만 원만 쓰면 되겠는데?”
5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하지만 괜찮은 발상이긴 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첨언했다.
“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각자 알아서 광고 보러 가는 걸로 하자.”
“응?”
“왜요?!”
차유진의 되물음에 김래빈이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인형탈 넷이 돌아다니면 시선이 더 집중될 테니까…….”
“아.”
모두 즉각 납득했다.
“그럼 일단 대여까지는 같이하자. 괜찮지?”
“네!”
“오키. 기사님! 저희 여기로 가고 싶은데요…….”
큰세진이 곧바로 택시 목적지를 변경했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왠 상가건물 구석에 위치한 파티용품 대여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 이거!”
도착하자마자 차유진이 곧장 인형탈 하나를 집어 들고 신나게 계산대로 향했다. 아마 백호 비슷한 뭔가였던 것 같다.
“빠르네.”
“우리도 얼른 고를까.”
그러자 인형탈 앞에 남은 인원 옆으로 다가온 직원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사인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혹시라도 오늘 중에는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며 부탁한 뒤에, 우리는 줄을 서서 사인을 했다.
굉장히 어색했다.
“난 이거.”
사인이 끝난 뒤, 직원분을 대동한 채로 인형탈을 골라갔다. 큰세진이 거대한 곰 인형탈을 고르자 옆에서 김래빈이 토끼 탈을 골랐다.
누가 봐도 다분히 팬 여론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결국 이건가.’
나는 떨떠름하게 인형탈 하나를 잡아들었다.
5년 전 인형탈 알바 이후 처음 써보는 인형탈은 묵직했다.
‘이것도 고생이겠군.’
이걸 쓰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까마득했다.
일단… 루트부터 새로 짤까.
* * *
박문대의 팬사이트들은 투표 독려에 이어서, 결승전 때 문자 투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대중교통마다 광고를 걸었다.
래핑버스에 영화관까지 별 광고를 다 잡았지만, 준비 시일이 짧은 탓에 현재 실행된 것은 지하철역 광고들 정도였다.
여기, 강남역 지하상가 부근 대형 전광판을 선점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잘 나왔다!’
제작발표회 때 박문대의 볼 콕 포즈를 뽑아낸 이 여성은 기어코 그 사진으로 광고판을 뽑았다.
‘아껴두길 잘했어.’
참고로 잠실역에는 2차 팀전의 히어로 수트를 입은 박문대 전신을 디지털 포스터 광고로 걸었다. 이다음에는 그걸 보러 갈 예정이었다.
‘하나 더 하고 싶었는데.’
맞은편 전광판의 선아현을 보며, 그녀는 아쉬움을 삼켰다.
저 자리가 탐났던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 선아현의 팬들이 아현역을 통째로 빌리다시피 해서 지하철 안전문부터 출구까지 광고를 깔아놨다는 포스팅도 봤다.
‘거기를 그럴 정도면 강남은 좀 놔주지.’
모금액도 충분해서 그녀가 보태려던 사비가 남았기 때문에 더 아까웠다.
‘어찌 됐든 색도 잘 나왔고, 됐다.’
그녀는 전광판을 다시 한번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 잠시 커피를 사러 갔던 그녀의 친구가 다가와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야, 저거 봐!”
“어?”
커피 빨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웬 귀 쫑긋한 노란 강아지 탈이 뒤뚱뒤뚱 전광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웰시코기?’
멍하니 보고 있자니, 웰시코기의 손에 들린 스케치북이 보였다.
“뭐야 저게!”
그녀는 빵 터져 웃으면서 웰시코기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주변에서 전광판을 보던 몇몇 사람들도 웰시코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대 머리색과 별명에 맞춰서 노란 강아지탈을 쓰고 온 모양이었다.
키 큰 사람이 뒤뚱뒤뚱 인형탈을 움직이는 것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그녀의 친구가 전광판 앞에서 멀뚱히 선 웰시코기에게 물어봤다. 웰시코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아, 재밌는 사람 진짜 많아.’
그녀는 웃음을 가리지 못한 채 웰시코기에게 말을 걸었다.
“저 사진 하나 찍어서 올려도 될까요? 아이디어 좋으시네요!”
웰시코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얼른 사진을 찍고 자신의 팬 계정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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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였기에 순식간에 공유와 좋아요 수가 늘어났다.
그사이, 웰시코기는 인증샷을 다 찍고 그녀의 친구에게 폰을 돌려받았다.
“잘 들어가세요~”
웰시코기가 그녀와 친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다시 뒤뚱뒤뚱 길을 떠났다.
그녀도 키득키득 웃으며 친구와 2호선을 타러 이동했다. 잠실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그곳 광고도 확인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근처 맛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가서 시킨 음료를 기다리고 있자니, 그녀의 친구가 웃으며 뭔가를 보여주었다.
“이거 봐! 아까 웰시코기 팬분 잠실도 갔었나 봐. 사진 또 떴었네.”
“와, 대단하네. 그거 입고 이동하기 힘들 텐데.”
문대가 봐도 재밌어하겠다며, 그녀는 웃으며 SNS에 뜬 사진들을 확인했다.
웰시코기는 부지런하게도 오전과 점심 내내 여기저기 역마다 방문해서 인증샷을 찍었다.
‘이거 하려고 서울 올라오셨나?’
간혹 그런 팬분들을 보기도 해서 낯선 일은 아니었다. 인형탈은 재밌는 발상이긴 했지만.
휙휙 넘기다 보니 아까 그녀가 찍은 사진들도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을 멈추었다.
그녀의 친구가 웰시코기를 찍어주는 장면.
“…어?”
“왜 그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물었다.
“그… 아까 웰시코기 찍어줄 때.”
“응.”
“호, 혹시… 폰 확인했어?”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 그냥 스마트폰이지. 좀 낡았고… 케이스도 안 꼈…… 자, 잠깐.”
친구는 말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
그녀는 그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다급히 문대의 PR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기종.’
그리고 다시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친구 손에 들린 웰시코기의 폰은… PR 영상의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등에 쭈욱 소름이 돋았다.
“야, 야야야, 야…….”
“…진짜야? 진짜? 진짜?”
“아니, 이게, 어…….”
그녀와 친구가 믿기지 않는 추측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을 때, 스마트폰에 새로운 알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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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는 신촌역 전광판 앞에서 땀에 젖은 채로 탈을 벗고 미소 짓고 있는 박문대의 상반신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오전에 그녀들이 본 그 인형탈이 맞았다.
“…….”
두 사람은 음료가 나올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
그제야 얼음물을 목구멍에 꽂아 넣으며 내면으로 울부짖었다.
‘악수라도 할걸!!’
분명 계를 타서 기쁘고 문대가 좋아서 죽을 것 같은데, 동시에 아쉬워서 토할 것 같은 괴상한 기분이었다.
“팬싸 가자.”
“꼭 간다.”
팬사인회를 기약하며, 둘은 조용히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