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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3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9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호떡 팔이부터 당근 코인까지 테스타와 쭉 같이 예능을 했던 그 제작진 군단을 최근 못 쓴 이유가 있다.
그 PD가 T1 계열사 라인이었거든.
애초에 그래서 데뷔부터 T1의 아들 소리 듣던 테스타와 자주 만난 것이기도 했다만.
테스타 독립 후에는 접촉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직장인이 어쩌겠냐.’
그래서 지난번 테스타의 오컬트 예능은 다른 사람을 구했었다.
바로 작가였다가 T1으로부터 팽 당한 류서린. 그 작가와 협업했으나… 재밌게도, 그 사건으로 발생한 나비 효과가 있었다.
바로 류서린 작가가 그 이후 아주 성공적으로 예능을 런칭해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점이다.
테스타 자체 컨텐츠를 계기로 넷플러스와 친한 스튜디오로 라인을 옮겨탄 그 작가는 드라마, 영화 홍보용 예능의 메인 작가로 승승장구 중이었다.
배세진과의 인맥도 알차게 써먹어서 출연진들도 그쪽 예능에 나오더라.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빚질 순 없으니까.
맞는 말이긴 했다.
그리고 배세진 인증 ‘인성은 못 믿음’ 류서린은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버리고 만다.
T1에 불만을 가진 그 계열 PD들이 이 사례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몇 명이 독립 스튜디오들로 탈주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여러분! 저 퇴사했습니다, 하하하!
…거기에 이 PD가 꽤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말이다.
그러면서 퇴사한 직장인 특유의 광기로 예능 하자고 직구를 꽂더라고.
물론 우리야 웬 떡인가 했다.
“하자. 제발 하자.”
“혹시 뭉게도 찍고 싶대?”
T1과 상호 손절한 지도 벌써 반년쯤 된 상황. 그간 찍지 못하고 넘겼던 재밌는 예능들을 향한 테스타 놈들의 열망이 불타올랐고….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협업이 성사된 것이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PD님께서 언제나처럼 잘 만들어주실 걸 믿습니다.”
“그, 그럼요. 아이, 원래 사람은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이 비범한 PD가 악수하는 류청우의 기세에 눌릴 정도였다.
“그때 감성 그대로! 잘해볼게요.”
그래도 웃는 걸 보자니 자신감은 넘치는 것 같았다만….
“건의 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네? 아휴, 그럼요. 하세요!”
“이전에 저희가 찍었던 예능의 감성은 물론 좋았지만, 계속 비슷하게 가면 내용을 예측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해서요.”
혹시 퇴사할 때 패기를 다 써서 이번 건 안전하게 가겠다고 노잼 선택지를 고르면 곤란했다.
PD는 간단히 대꾸했다.
“아, 감성만 그대로예요.”
“……??”
“내용은 반대!”
촤라락.
그리고 테스타는 제작진의 뜬금없이 현란한 PPT를 마주하게 됐다.
[테스타의 안 고독한 미식 여행]
두둥!
가제와 함께 현란한 무지개 색감이 회의실을 장악했다. 덕담과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것이 어디서 많이 본 구성이다.
‘…어르신 카톡짤.’
멤버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오로지 김래빈만이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하게 PPT를 쳐다보는 분위기.
[더는 호떡을 굽지 않아도 된다!]
[맛있는 건 돈 벌어서 사 먹자!]
“돈을… 벌어요?”
“여러분 다 직업 있잖아요~”
[테스타의 활동~ 응원합니다 *^^*]
[아이돌은 아이돌 일을 하자!]
“…….”
잠깐만.
설마 투어로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으라는… 아이돌만 힐링하는 예능을 하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사실 힐링이 아니라 기만자 특집이라고 욕 처먹을 거 아니냐.
“아 물론 카메라 안 돌아갈 때 버시는 건 제외!”
그렇지.
“저희 카메라 감독님이 보시는 중에 버는 돈만 인정됩니다!”
다행히 PD는 꿋꿋했다.
다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아이돌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단 말인가.
“헉! 혹시~ 저희 콘서트에 오시나요?”
“에이 그럴 리가요~”
거기서부터 다시 PPT가 돌아갔다.
아이돌이 아이돌 하면서 돈 벌고 음식에 싹 탕진하는 구성.
여기서 아이돌이 본업을 여행 중에 단기 알바처럼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공연하자!]
[어디서? 여행지에서!]
[☆테스타의 길거리 공연☆]
바로 버스킹이다.
“…….”
투어 간 남의 나라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친 실력의 버스킹 가수가 사실은 KPOP 대스타?’ 같은 힘을 숨기는 메타!
국뽕 MAX를 향한 노림수!
PPT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보겠다는 야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여러분 자기 일을 너무너무 사랑하시니까 어디서든! 어떤 조건이든! 100%의 실력을 발휘하실 수 있죠?”
[본업 존잘 테스타 화이팅!]
“…….”
“…….”
회의실에서 잠깐 형용할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퇴로는 없었다.
“설마 큰 무대가 아니면 공연을 못 한다? 나는 내 실력만으로는 돈을 벌 자신이 없다?”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김래빈의 자진 납세에 PD가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좋냐?
“좋습니다!”
옆에서 배세진이 얼굴을 가렸다. 포기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꼴은 다 촬영되어서 ‘어디서도 보지 못한 테스타의 충격적 반응’ 같은 타이틀을 달고 선공개 영상으로 기어코 올라가게 된다.
‘어쩐지 회의실에 PD만 있더니.’
예상했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기어코 투어로 출국한 우리를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고 따라온 제작진들에 의해 길거리로 나선 날.
-그런데 팬분들 입장에선 표를 사서 콘서트에 가셨는데 하루 이틀 차이로 누구는 길거리에서 공짜로 본다니, 서운하시지 않을까요.
-그럼 안 보여주면 되죠!
-…??
나는 지금 멀쩡한 꼴이 아니었다.
미니게임을 통해 (강제로) 고른 벌칙 의상을 입고 있거든….
‘끝내주네.’
바로 루돌프.
심지어 인형 탈도 아니고 분장을 시켰다.
“…….”
나는 코에서 대롱거리는 빨간 코를 느끼며, 발굽 장갑을 낀 손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봐도 돈 줬다.’
이 꼴을 한 놈을 동정해서라도 돈을 줬을 것이다.
멍청하게 붙은 코에서 야광으로 불빛이 들어와 희번덕거렸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열창하는 캐롤.
[Oh~! baby, You and me~ on a Snowy Christmas!]
옆에선 산타가 브레이킹 댄스를 췄다. 맨발의 호주식 산타가 걸린 차유진이다.
따스한 연말.
남의 나라 길거리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 *
은 비범한 임시 제목 그대로 출범했다.
그리고 선공개 영상에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뽑았다.
-제작진 이 미친 사람들
-기다렸다 이런 맛
주로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루면서도 분명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 투어 무대 집중하기도 힘들 텐데 또 길거리 공연을 시켜?;;
-꼭 이래야 하나 모를
-앵벌이랑 다를 게 뭐야
우리나라 대상 가수가 타국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어떻게든 인정받아 잔돈이라도 벌어보려 하는 것은 어딘지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하지만 연달아 공개된, 정식 예고편에서 이 모든 걱정이 다 날아갔다.
[♬Call me Santa Claus~]
화면 속, 눈 내리는 광장에서는 루돌프와 선물 상자가 정겹게 뛰어다니는 가운데 눈사람이 화음을 넣고 있었다.
캐롤에 맞춰서.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거 인형탈 알바잖아요
-개업 파티 아님?
영혼이 날아간 상태로 화려한 길거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테스타의 분장쇼는 이미 버스킹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 퍼레이드였다….
게다가 연말을 맞아서 가장 쉽게 흥을 돋울 크리스마스 캐롤로 분위기를 띄우는 노련한 모습은 어쩐지 개업 행사 알바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쩐지 목격담이 없더니
-ㅅㅂ 누가 알아봄ㅋㅋㅋㅋ
-이건 계탄 사람도 자기가 계탔다는 걸 몰랐다
-카메라 봐도 개그 위튜버라고 오해했을 것 같아 어떡해ㅋㅋㅋㅋㅠㅠㅠㅋ
심지어 주변 가게 상인에게 지자체에서 고용된 인력으로 오해받아서 빵을 받는 장면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회의적인 사람도 더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졌다
-야 행복해 보이는데?
-이건 아이돌 무대가 아니다 새로운 직업 경험이다
게다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보완이 들어갔다.
테스타는 이 예능에서 버스킹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제작진에게서 버스킹 미션을 받아서, 성공하면 용돈을 받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얼결에 받은 돈은 다 기부한다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열심히 일한 테스타]
[힐링도 한다….]
물론 먹방도 빠지지 않았다.
투어를 간 도시의 다양한 맛집을 방문하고, 심지어 챌린지 메뉴에 도전하는 모습들이 컷이 휙휙 바뀌며 화면에 비쳤다.
게다가 일하며, 식사하며 중간중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꽤 알찬 구성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특이점을 만나기도 했지만.
[행인 : 우리 시위에 동참해 줘서 고마워! 큰 힘이 됐어!]
[이세진 : ……?!]
[나도 모르게 시작한 사회활동]
졸지에 같은 자리에서 열리는 정체 모를 시위에 참가 인증할 뻔한 멤버들이 제작진을 부르짖으며 허겁지겁 악기를 들고 도망가는 건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배세진 : 무슨 시위인지는 들어볼 수 있잖아!]
[이세진 : 형 우리 여행 온 외국인이에요!]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방 예능에서 했던 말이 이거였구나
-술 마시는 것처럼 진솔한 대화를 하긴 하네 인정ㅇㅇ
└미쳤냐곸ㅋㅋㅋㅋ
그리고 미션을 실패한 건지, 테스타가 돈 없이 맛집 앞의 메뉴판만 보는 모습도 쓱 스쳐 지나갔다.
[차유진 : 저 이거 먹고 싶어요!]
[배세진 : (지갑을 보고 동공지진 중)]
[선아현 :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명쾌한 해답까지.
[이세진 : 문대한테 해달라고 하자~]
[박문대 : (제가요?)]
[류청우 : 그래 문대한테 돈을 주자.]
박문대의 넋 나간 표정이 천천히 클로즈업되었다.
[박문대 : …….]
[박문대 : ($$요리사로 고용됨$$)]
-앜ㅋㅋㅋㅋㅋㅋㅋ
-포기했어
-최저 챙겨줘라 얘들아
맛집을 못 가면 직접 요리하는 수밖에!
그래도 그것마저도 나름대로 낭만적인 맛이 있어 보였다.
[차유진 : 오오오오우!]
해가 진 외국의 바닷가.
박문대가 만든 쿠바 샌드위치를 하나씩 입에 물고 싸구려 탄산음료를 든 멤버들이 웃으며 떠드는 모습은 정겨워 보였다.
박문대마저도 피식 웃으며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웠다.
그 위로 테스타의 온갖 맛집과 분장 컷들이 쭉쭉 스쳐 지나갔다.
[웃음과 역경과 힐링이 넘칩니다.]
[하나도 안 고독한 미식 여행]
[지금 여러분과 함께 떠나요~]
셀프 캠에 대고 손을 흔드는 테스타의 모습으로 예고편은 끝났다.
-좋네
-재밌겠다
-빨리 보고 싶어짐ㅠㅠ
-그래 여행 예능은 이거지.. 돌발 상황이 있어야 재밌다고
└그런데 그 돌발 상황을 창조하는 제작진이 있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다이나믹한 예능이 올 것 같았다!
사람들은 우호적인 댓글을 달면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갔다.
-지난번 자컨 좀 매니악 했는데 이번 거 맘에 든다
-나 동생하고 같이 보려고ㅠㅠ
-제발 투어 도시에서 웃긴 분장하고 노래하는 사람들 목격담 없는지 찾아봐 줘
└위튜브 뒤지면 무조건 나올 것 같은데 이거ㅋㅋㅋㅋ
팬들에게 대중적이고 영업하기 좋은 영상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게다가 영상 속 테스타 역시 조금 고생하더라도 즐거워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혹시 지금도 촬영 중일까? 오늘 딱 콘서트 사이에 비는 날인데
└오 그럴 수도ㅋㅋㅋㅋㅋ 지금 스페인이지?
지금은 테스타가 무슨 재밌는 일을 하고 있을까, 팬들은 즐겁게 추측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
박문대와 선아현은 스페인 한복판에서 고립되었다.
‘차유진!’
팀 내 유일한 스페인어 네이티브가 그렇게 절실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9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호떡 팔이부터 당근 코인까지 테스타와 쭉 같이 예능을 했던 그 제작진 군단을 최근 못 쓴 이유가 있다.

그 PD가 T1 계열사 라인이었거든.

애초에 그래서 데뷔부터 T1의 아들 소리 듣던 테스타와 자주 만난 것이기도 했다만.

테스타 독립 후에는 접촉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직장인이 어쩌겠냐.’

그래서 지난번 테스타의 오컬트 예능은 다른 사람을 구했었다.

바로 작가였다가 T1으로부터 팽 당한 류서린. 그 작가와 협업했으나… 재밌게도, 그 사건으로 발생한 나비 효과가 있었다.

바로 류서린 작가가 그 이후 아주 성공적으로 예능을 런칭해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점이다.

테스타 자체 컨텐츠를 계기로 넷플러스와 친한 스튜디오로 라인을 옮겨탄 그 작가는 드라마, 영화 홍보용 예능의 메인 작가로 승승장구 중이었다.

배세진과의 인맥도 알차게 써먹어서 출연진들도 그쪽 예능에 나오더라.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빚질 순 없으니까.

맞는 말이긴 했다.

그리고 배세진 인증 ‘인성은 못 믿음’ 류서린은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버리고 만다.

T1에 불만을 가진 그 계열 PD들이 이 사례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몇 명이 독립 스튜디오들로 탈주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여러분! 저 퇴사했습니다, 하하하!

…거기에 이 PD가 꽤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말이다.

그러면서 퇴사한 직장인 특유의 광기로 예능 하자고 직구를 꽂더라고.

물론 우리야 웬 떡인가 했다.

“하자. 제발 하자.”

“혹시 뭉게도 찍고 싶대?”

T1과 상호 손절한 지도 벌써 반년쯤 된 상황. 그간 찍지 못하고 넘겼던 재밌는 예능들을 향한 테스타 놈들의 열망이 불타올랐고….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협업이 성사된 것이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PD님께서 언제나처럼 잘 만들어주실 걸 믿습니다.”

“그, 그럼요. 아이, 원래 사람은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이 비범한 PD가 악수하는 류청우의 기세에 눌릴 정도였다.

“그때 감성 그대로! 잘해볼게요.”

그래도 웃는 걸 보자니 자신감은 넘치는 것 같았다만….

“건의 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네? 아휴, 그럼요. 하세요!”

“이전에 저희가 찍었던 예능의 감성은 물론 좋았지만, 계속 비슷하게 가면 내용을 예측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해서요.”

혹시 퇴사할 때 패기를 다 써서 이번 건 안전하게 가겠다고 노잼 선택지를 고르면 곤란했다.

PD는 간단히 대꾸했다.

“아, 감성만 그대로예요.”

“……??”

“내용은 반대!”

촤라락.

그리고 테스타는 제작진의 뜬금없이 현란한 PPT를 마주하게 됐다.

두둥!

가제와 함께 현란한 무지개 색감이 회의실을 장악했다. 덕담과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것이 어디서 많이 본 구성이다.

‘…어르신 카톡짤.’

멤버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오로지 김래빈만이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하게 PPT를 쳐다보는 분위기.

“돈을… 벌어요?”

“여러분 다 직업 있잖아요~”

“…….”

잠깐만.

설마 투어로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으라는… 아이돌만 힐링하는 예능을 하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사실 힐링이 아니라 기만자 특집이라고 욕 처먹을 거 아니냐.

“아 물론 카메라 안 돌아갈 때 버시는 건 제외!”

그렇지.

“저희 카메라 감독님이 보시는 중에 버는 돈만 인정됩니다!”

다행히 PD는 꿋꿋했다.

다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아이돌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단 말인가.

“헉! 혹시~ 저희 콘서트에 오시나요?”

“에이 그럴 리가요~”

거기서부터 다시 PPT가 돌아갔다.

아이돌이 아이돌 하면서 돈 벌고 음식에 싹 탕진하는 구성.

여기서 아이돌이 본업을 여행 중에 단기 알바처럼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버스킹이다.

“…….”

투어 간 남의 나라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친 실력의 버스킹 가수가 사실은 KPOP 대스타?’ 같은 힘을 숨기는 메타!

국뽕 MAX를 향한 노림수!

PPT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보겠다는 야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여러분 자기 일을 너무너무 사랑하시니까 어디서든! 어떤 조건이든! 100%의 실력을 발휘하실 수 있죠?”

“…….”

“…….”

회의실에서 잠깐 형용할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퇴로는 없었다.

“설마 큰 무대가 아니면 공연을 못 한다? 나는 내 실력만으로는 돈을 벌 자신이 없다?”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김래빈의 자진 납세에 PD가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좋냐?

“좋습니다!”

옆에서 배세진이 얼굴을 가렸다. 포기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꼴은 다 촬영되어서 ‘어디서도 보지 못한 테스타의 충격적 반응’ 같은 타이틀을 달고 선공개 영상으로 기어코 올라가게 된다.

‘어쩐지 회의실에 PD만 있더니.’

예상했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기어코 투어로 출국한 우리를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고 따라온 제작진들에 의해 길거리로 나선 날.

-그런데 팬분들 입장에선 표를 사서 콘서트에 가셨는데 하루 이틀 차이로 누구는 길거리에서 공짜로 본다니, 서운하시지 않을까요.

-그럼 안 보여주면 되죠!

-…??

나는 지금 멀쩡한 꼴이 아니었다.

미니게임을 통해 (강제로) 고른 벌칙 의상을 입고 있거든….

‘끝내주네.’

바로 루돌프.

심지어 인형 탈도 아니고 분장을 시켰다.

“…….”

나는 코에서 대롱거리는 빨간 코를 느끼며, 발굽 장갑을 낀 손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봐도 돈 줬다.’

이 꼴을 한 놈을 동정해서라도 돈을 줬을 것이다.

멍청하게 붙은 코에서 야광으로 불빛이 들어와 희번덕거렸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열창하는 캐롤.

옆에선 산타가 브레이킹 댄스를 췄다. 맨발의 호주식 산타가 걸린 차유진이다.

따스한 연말.

남의 나라 길거리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 *

은 비범한 임시 제목 그대로 출범했다.

그리고 선공개 영상에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뽑았다.

-제작진 이 미친 사람들

-기다렸다 이런 맛

주로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루면서도 분명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 투어 무대 집중하기도 힘들 텐데 또 길거리 공연을 시켜?;;

-꼭 이래야 하나 모를

-앵벌이랑 다를 게 뭐야

우리나라 대상 가수가 타국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어떻게든 인정받아 잔돈이라도 벌어보려 하는 것은 어딘지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하지만 연달아 공개된, 정식 예고편에서 이 모든 걱정이 다 날아갔다.

화면 속, 눈 내리는 광장에서는 루돌프와 선물 상자가 정겹게 뛰어다니는 가운데 눈사람이 화음을 넣고 있었다.

캐롤에 맞춰서.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거 인형탈 알바잖아요

-개업 파티 아님?

영혼이 날아간 상태로 화려한 길거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테스타의 분장쇼는 이미 버스킹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 퍼레이드였다….

게다가 연말을 맞아서 가장 쉽게 흥을 돋울 크리스마스 캐롤로 분위기를 띄우는 노련한 모습은 어쩐지 개업 행사 알바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쩐지 목격담이 없더니

-ㅅㅂ 누가 알아봄ㅋㅋㅋㅋ

-이건 계탄 사람도 자기가 계탔다는 걸 몰랐다

-카메라 봐도 개그 위튜버라고 오해했을 것 같아 어떡해ㅋㅋㅋㅋㅠㅠㅠㅋ

심지어 주변 가게 상인에게 지자체에서 고용된 인력으로 오해받아서 빵을 받는 장면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회의적인 사람도 더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졌다

-야 행복해 보이는데?

-이건 아이돌 무대가 아니다 새로운 직업 경험이다

게다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보완이 들어갔다.

테스타는 이 예능에서 버스킹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제작진에게서 버스킹 미션을 받아서, 성공하면 용돈을 받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얼결에 받은 돈은 다 기부한다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물론 먹방도 빠지지 않았다.

투어를 간 도시의 다양한 맛집을 방문하고, 심지어 챌린지 메뉴에 도전하는 모습들이 컷이 휙휙 바뀌며 화면에 비쳤다.

게다가 일하며, 식사하며 중간중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꽤 알찬 구성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특이점을 만나기도 했지만.

졸지에 같은 자리에서 열리는 정체 모를 시위에 참가 인증할 뻔한 멤버들이 제작진을 부르짖으며 허겁지겁 악기를 들고 도망가는 건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방 예능에서 했던 말이 이거였구나

-술 마시는 것처럼 진솔한 대화를 하긴 하네 인정ㅇㅇ

└미쳤냐곸ㅋㅋㅋㅋ

그리고 미션을 실패한 건지, 테스타가 돈 없이 맛집 앞의 메뉴판만 보는 모습도 쓱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명쾌한 해답까지.

박문대의 넋 나간 표정이 천천히 클로즈업되었다.

-앜ㅋㅋㅋㅋㅋㅋㅋ

-포기했어

-최저 챙겨줘라 얘들아

맛집을 못 가면 직접 요리하는 수밖에!

그래도 그것마저도 나름대로 낭만적인 맛이 있어 보였다.

해가 진 외국의 바닷가.

박문대가 만든 쿠바 샌드위치를 하나씩 입에 물고 싸구려 탄산음료를 든 멤버들이 웃으며 떠드는 모습은 정겨워 보였다.

박문대마저도 피식 웃으며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웠다.

그 위로 테스타의 온갖 맛집과 분장 컷들이 쭉쭉 스쳐 지나갔다.

셀프 캠에 대고 손을 흔드는 테스타의 모습으로 예고편은 끝났다.

-좋네

-재밌겠다

-빨리 보고 싶어짐ㅠㅠ

-그래 여행 예능은 이거지.. 돌발 상황이 있어야 재밌다고

└그런데 그 돌발 상황을 창조하는 제작진이 있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다이나믹한 예능이 올 것 같았다!

사람들은 우호적인 댓글을 달면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갔다.

-지난번 자컨 좀 매니악 했는데 이번 거 맘에 든다

-나 동생하고 같이 보려고ㅠㅠ

-제발 투어 도시에서 웃긴 분장하고 노래하는 사람들 목격담 없는지 찾아봐 줘

└위튜브 뒤지면 무조건 나올 것 같은데 이거ㅋㅋㅋㅋ

팬들에게 대중적이고 영업하기 좋은 영상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게다가 영상 속 테스타 역시 조금 고생하더라도 즐거워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혹시 지금도 촬영 중일까? 오늘 딱 콘서트 사이에 비는 날인데

└오 그럴 수도ㅋㅋㅋㅋㅋ 지금 스페인이지?

지금은 테스타가 무슨 재밌는 일을 하고 있을까, 팬들은 즐겁게 추측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

박문대와 선아현은 스페인 한복판에서 고립되었다.

‘차유진!’

팀 내 유일한 스페인어 네이티브가 그렇게 절실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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