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3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8화
이테르의 리더, 누아의 연습 노트.
그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몇 번이고 선배의 뮤직비디오를 분석해 만든 것이다.
-내가 지금 우리 멤버들 포지션에 맞춰서 최대한 어울릴 만하게 분배해 봤는데, 이대로 해볼래?
-역시 형!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뿌듯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중간 평가에서 들은 스탭들의 진심 어린 호평과 선공개 영상 이후 밝아진 회사 사람들의 표정까지.
좋은 피드백 덕에 걱정 없이 연습하면 보냈던 며칠까지.
그러나 며칠 후, 본방송인 경연 무대.
[와아아악!]
[방금 봤어?]
테스타는 거짓말처럼 중간 평가 때 보여줬던 안무와 편곡을 모두 뒤집고 강렬한 무대를 가져왔다.
마치 이테르를 저격이라도 한 듯이.
그리고 이테르의 리더는 직전에 무대를 하면서 느낀 만족감과 자신감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며칠 동안 머릿속에는 그 무대의 잔상과 후회, 억울함, 슬픔 등만이 휘몰아쳤다.
간신히 스케줄은 소화했으나,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면 평소에는 꼼꼼히 챙기던 사소한 것들을 다 잊었다.
그중에는… 그 연습 노트도 있었다.
이미 효용을 다해서 더는 필요하지 않았던.
“…….”
그리고 지금 그게, 분석의 당사자인 선배, 테스타 멤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신에게 ‘이건 이테르 멤버의 것이 아니냐’라고 물어보면서.
상상도 한 적 없는 상황.
피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쩌지?’
노트 안을 본 걸까? 아니, 질문할 것도 없었다. 분명 봤을 것이다. 내용을 확인했으니까 이테르의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누아는 필사적으로 뭐라도 생각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입 밖에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초조함에 일단 부정부터 하게 되었다.
“저희 멤버 노트는 아닌 것 같아요.”
“…….”
상대, 선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고요히 노트를 들고 응시해 왔다.
그리고 누아는 자신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테르 게 아니라니!
지금 저 선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저 노트를 보여주며, ‘혹시 당신의 것이냐’라고 물어볼 이유를 자신이 준 것 아닌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면… 그러니까.
‘아…….’
식은땀이 등 뒤에서 쭉 흘렀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는 얼어붙은 그대로 자리에 서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악몽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래요…. 그러면, 혹시 주인을 찾아줄 수 있을까요? 저희 쪽에는… 주인이 없는 것 같아서.”
누아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에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했다.
“여기요.”
그러나 선아현은 한 손을 뻗어서 자신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
‘모르겠다’, ‘우리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굳이 주인을 찾아달라고 물건을 내밀 필요는 없었다.
누아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알고 있는 거야.’
이 노트가 자기 것이란 사실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선아현이 확신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황급히 끄덕이며 양손을 뻗었다.
“예…!”
그렇게 노트를 잡아서 받아드는 순간에야, 아찔했던 두려움이 사그라들며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아.’
그는 노트를 꽉 쥐었다. 십년감수한 듯 심장이 느려졌다.
테스타, 선아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차분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곧 음료수를 챙긴 채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
그러고 나서야, 이테르의 리더는 안도감 외에 다른 감정과 생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상대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였을지에 대한…….
‘아, 아냐.’
그는 황급히 생각을 멈췄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경쟁자이자 선배의 퍼포먼스를 분석하는 것은 열심히 활동하려는 아이돌에겐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맞아, 당연한 건데… 상황이 이상해서.’
이테르의 스탭이 테스타를 견제했다는 구설수와 논란으로 뒤숭숭해서 그랬다.
이럴 때 이테르가 자신들의 제스처를 연구한 노트를 테스타가 갑자기 보게 되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당황한 것이다.
‘일부러 테스타 선배님 제스처만 연구한 건 아니었어.’
시간이 없어서 지금 경쟁자인 아이돌을 빠르게 분석한 것이다. 자신들은 그저 열심히 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이테르는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상 상대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당황한 것이다.
왜냐하면…….
-테스타 선배님이 내 사정을 모르니까.
“…….”
그러나 그 순간, 이테르의 리더는 완성된 문장에서 위화감을 깨달았다.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건 테스타 선배님만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을 거야.’
이테르의 관계자가 아닌 누구에게도 노트를 보여주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테르가 집요하게 테스타의 제스처를 따라 했다’…라고.
그게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나야.’
오로지 자신만 너그럽게 스스로를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 억울함과 사정을 다 아니까.
‘내 일이니까….’
그것을 깨닫는 순간, 보호막이 깨지는 것처럼 차가운 공기가 훅 머릿속을 지나간 것 같았다.
“…….”
누아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노트를 가리듯 품에 넣었다.
꿈에서 깬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누구나 사정은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에게만 특별히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보통 그걸 자기합리화라고 불렀다.
이 자기합리화를 걷어내고, 모든 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보자면….
‘…부끄러운 일이 맞았던 거야.’
그리고 자신을 허락 없이 따라 하는 후배에게, 이렇게까지 내색하지 않고 점잖게 대해주는 선배가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고 나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
그는 말없이 자신에게 노트를 넘겨준 선아현과, 자신의 속셈 있는 말에도 부드럽게 답변해 줬던 이세진을 떠올렸다.
사실 그 모든 상황에서, 자신은 선배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나와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 게 내 마음에 편하니까.
안 그래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회사를 원망하는 건 너무 힘드니까.
무의식중으로 무시해 온 것이다.
“…….”
이테르의 리더는 느릿느릿, 복도를 벗어나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충분히 차가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날.
====================
3.1. 테스타 레퍼런스 논란 (7)
====================
촬영이 끝난 후, 그는 몰래 숙소에 들여놓은 노트북을 이용해 처음으로 대중이 평가하는 이테르의 사건 사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욕설은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글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심적 충격을 받기는 했다.
-…구도, 소품, 안무까지 다양한 자료가 나오며, ‘레퍼런스라기엔 테스타에게서만 사례가 나온다’(9)라는 의견이 연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
데뷔 앨범에서부터 이미 테스타를 따라했다는 사진 자료를 쭉쭉 넘기고 있노라면, 눈물로 코까지 훌쩍이게 되는 것이다.
좀 도망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떨치려 노력하며, 최대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테르는 기획 단계부터, 시작부터 잘못된 그룹인 것 같았다.
‘그런 건가?’
아이돌로서 자신의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아서 은퇴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한 팬의 SNS 게시글을 캡처한 자료였다.
-이테르가 프로듀싱에 거의 참여 못 하는 것 같은데 이런 문제는 회사 기획팀 수준에서 고쳐야 함 이테르 멤버들이 싫어해도 별수 없을 듯
그는 깨달았다.
‘아.’
팬들도, 회사와 자신들을 같은 선에 놓고 생각하진 않았다.
거기엔 명제가 있던 것이다.
-회사와 아이돌은 같지 않다.
“…….”
그는 눈물을 닦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내 잘못은 반성하고 고치자.
그리고 회사의 잘못은 내가 옹호하거나, 그것에 지나치게 몰입할 필요가 없었다.
반대 의견을 가져도 괜찮았다.
‘회사는 내가 아니니까.’
가슴이 한결 시원했다.
탁.
그는 그렇게 성장통으로 가득 찬 에고서치를 마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오늘 촬영하고 온, 경연 결과 발표를 떠올렸다.
-1위는… 테스타입니다!
-와!
박수와 행복으로 테스타의 자리가 소란스러워졌었다.
그리고 이테르는 3위로 끝났다.
망하지도 않았기에 동정을 산 것도 아니고, 주목받을 만큼 대단한 등수도 아닌 순위.
회사가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고, 그룹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누아는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 * *
-선배님, 제가 그간 폐를 많이 끼쳤는데도 끝까지 친절하게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뵐 수 있다면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뵙고 싶습니다….
“이걸 이테르 애가 보낸 거라고?”
“으응.”
선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녀석이 내민 건 무려 카톡도 메시지도 아닌 자필 쪽지였다.
아마 번호 교환할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 이런 방법을 고른 것 같았다. 매니저한테 알려달라기에도 워낙 스탭들 간에 사이가 안 좋으니까.
‘흠.’
나는 놈이 보낸 글을 대충 다시 훑었다.
요약하자면 대가리 박는 사과와 재발 방지 맹세쯤 되겠다.
“나한테 줬지만, 사실… 우리 그룹에 준 것 같아서.”
“그래?”
별로 동의할 수는 없다만, 선아현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애초에… 노트를 발견한 건, 문대니까.”
음, 그건 맞지.
사실 며칠 전, 촬영장에서 노트를 발견한 건 나였다.
-…? 저거.
‘그쪽 스탭들 동향 좀 관찰하다가 의자에 두고 가는 걸 봤지.’
그리고 노트 내용을 확인한 순간….
-이걸 두고 가냐.
미친 잭팟이라고 생각했다.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적절한 폭로 방법이 즉각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으나….
‘안 써먹었지.’
어. 폐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테스타가 큰세진에게 설득당해서 무대로 도박하겠다고 올인을 때려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수를 더 늘리는 건 나라도 좀 그랬다.
‘원더홀을 그렇게까지 개같이 밟으면 풍선효과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말이야.’
몸집이 큰 만큼 불똥이 튀면서 무슨 뜬금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몇십 년간 업계에서 구르고 직원을 몇백 명이나 데리고 있는 원더홀과는 다르게 우린 아직 소규모 신생 기업이라 그걸 다 케어할 직원은 없거든. 그래서 좀 사렸다.
정치적으로 우회로를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테르 리더 놈의 편지를 탁자 위로 올리며, 피식 웃었다.
‘뭐… 사실 터지면 X 되는 게 원더홀보다 이테르 멤버라 효율이 안 좋기도 했고.’
회사를 조져야지 회사와 물아일체된 저 비정규직 꼬마를 조져봤자 뒷맛만 더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선아현의 주장에 따라 녀석에게 할당한 노트는… 제법 괜찮은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양심 공격이 먹히다니.’
역시 애는 애다. 이제 한동안 귀찮을 일은 없겠군.
“고생했다.”
“아, 아냐.”
선아현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꽤 흐뭇한 얼굴로 편지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깔끔히 끝났군.’
나는 시원하게 생각했다.
다만 원더홀 관계자에게 며칠 후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오, 1위 하셨다면서요. 테스타 축하해요!]
바로 티홀릭 하진태였다.
다만 이 ‘원더홀 관계자’라는 속성은 이제 시한부였다.
“…티홀릭 선배님들께서도 독립 축하드립니다.”
[하하! 아니 뭐, 어떻게 조건이 맞아서 같이 얼굴만 사장님된 건데요 뭘.]
그렇다.
이놈들은 아예 본인들이 사장으로 간판 달고 곧 독립해 버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겨우 독립하면서 대형인 원더홀에 그렇게까지 엿을 먹일 수 있던 이유를 아는가?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얼굴 볼일 좀 많아질 것 같은데?]
“……그렇죠.”
저 발언이 예의상 하는 게 아니라… 아주 담백한 사실이거든.
‘망할.’
놀랍게도 티홀릭 놈들도 우리처럼 LeTi에게서 출자금을 먹은 것이다.
심지어 얘들은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기사를 빵빵 때리더라.
‘어차피 지금은 VTIC이랑 포지션도 안 겹친다 이거지.’
티홀릭은 이미 퍼포머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대중성 중심의 예능형 아이돌이다.
이 경우 개인 활동으로 뿔뿔이 흩어질 걸 걱정하느니, 차라리 대형 기획사의 조직력과 자본이 투입된 걸 아는 쪽을 티홀릭 팬들도 선호하긴 할 것이다.
그래, 그렇긴 한데… 이 꼴을 봐라.
‘졸지에 대상 받은 남자 아이돌 계보가 싹 다 같은 라인이 됐는데.’
자본금으로 묶인 선후배.
그렇게 이 미친 판이 짜인 것이다….
[테스타 회사, 그 오르빗에 있는 후배들도 다 많이 보겠네~ 아, 우리 이번엔 진짜 이렇게 다 모여서 운동회 같은 거 해도 되겠는데? 어때요?]
제안도 끔찍하니 그만해라.
“스케줄 맞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에이, 당연히 우리 노는 늙은이들이 젊고 바쁜 테스타 스케줄 맞춰줘야죠!]
다행히 눈치가 있는지 킬킬대던 놈은 곧 덕담으로 돌아섰다.
[아, 이번에도 엄청 바쁘다면서. 그거 다 잘된다는 증거니까 즐겨요. 이번 앨범도 대박이잖아!]
“…감사합니다.”
이건 담백한 사실이었다.
내 미국 시상식 출연 어그로와 테스타가 영미권에 심어둔 인터넷 밈들과의 시너지로 해외 유입을 쭉 당겼거든.
덕분에 이번 앨범 활동, 그리고 지난 배세진의 연기 활동으로 시스템의 회사 등급은 순조롭게 상향 중이었다.
‘체급 증명 좀 더 당기면 되겠어.’
그게 무엇이냐.
[이제 투어 가죠?]
“예.”
그렇다. 바로 콘서트 투어다.
자고로 객석수만큼 해외 위상으로 기사 내기 좋은 게 없다.
‘정석적으로 가는 거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투어로 인한 공백기마다 자체 컨텐츠를 하나씩 배치해 뒀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테스타의 호떡 팔아 여행하기 대장전… 기억 나시나요? (눈 이모티콘) 저희가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호떡 예능 제작진, 도로 구해왔거든.
다만 약간 차이가 있긴 했다.
[그런데 이제 반대임]
“…….”
[테스타가 한 점의 호떡을 먹기 위해 댕같이 돈을 버는 모습을 봐주세요 (링크)]
…프로그램명 .
기획 완료.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8화
이테르의 리더, 누아의 연습 노트.
그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몇 번이고 선배의 뮤직비디오를 분석해 만든 것이다.
-내가 지금 우리 멤버들 포지션에 맞춰서 최대한 어울릴 만하게 분배해 봤는데, 이대로 해볼래?
-역시 형!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뿌듯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중간 평가에서 들은 스탭들의 진심 어린 호평과 선공개 영상 이후 밝아진 회사 사람들의 표정까지.
좋은 피드백 덕에 걱정 없이 연습하면 보냈던 며칠까지.
그러나 며칠 후, 본방송인 경연 무대.
테스타는 거짓말처럼 중간 평가 때 보여줬던 안무와 편곡을 모두 뒤집고 강렬한 무대를 가져왔다.
마치 이테르를 저격이라도 한 듯이.
그리고 이테르의 리더는 직전에 무대를 하면서 느낀 만족감과 자신감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며칠 동안 머릿속에는 그 무대의 잔상과 후회, 억울함, 슬픔 등만이 휘몰아쳤다.
간신히 스케줄은 소화했으나,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면 평소에는 꼼꼼히 챙기던 사소한 것들을 다 잊었다.
그중에는… 그 연습 노트도 있었다.
이미 효용을 다해서 더는 필요하지 않았던.
“…….”
그리고 지금 그게, 분석의 당사자인 선배, 테스타 멤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신에게 ‘이건 이테르 멤버의 것이 아니냐’라고 물어보면서.
상상도 한 적 없는 상황.
피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쩌지?’
노트 안을 본 걸까? 아니, 질문할 것도 없었다. 분명 봤을 것이다. 내용을 확인했으니까 이테르의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누아는 필사적으로 뭐라도 생각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입 밖에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초조함에 일단 부정부터 하게 되었다.
“저희 멤버 노트는 아닌 것 같아요.”
“…….”
상대, 선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고요히 노트를 들고 응시해 왔다.
그리고 누아는 자신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테르 게 아니라니!
지금 저 선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저 노트를 보여주며, ‘혹시 당신의 것이냐’라고 물어볼 이유를 자신이 준 것 아닌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면… 그러니까.
‘아…….’
식은땀이 등 뒤에서 쭉 흘렀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는 얼어붙은 그대로 자리에 서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악몽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래요…. 그러면, 혹시 주인을 찾아줄 수 있을까요? 저희 쪽에는… 주인이 없는 것 같아서.”
누아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에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했다.
“여기요.”
그러나 선아현은 한 손을 뻗어서 자신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
‘모르겠다’, ‘우리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굳이 주인을 찾아달라고 물건을 내밀 필요는 없었다.
누아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알고 있는 거야.’
이 노트가 자기 것이란 사실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선아현이 확신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황급히 끄덕이며 양손을 뻗었다.
“예…!”
그렇게 노트를 잡아서 받아드는 순간에야, 아찔했던 두려움이 사그라들며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아.’
그는 노트를 꽉 쥐었다. 십년감수한 듯 심장이 느려졌다.
테스타, 선아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차분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곧 음료수를 챙긴 채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
그러고 나서야, 이테르의 리더는 안도감 외에 다른 감정과 생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상대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였을지에 대한…….
‘아, 아냐.’
그는 황급히 생각을 멈췄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경쟁자이자 선배의 퍼포먼스를 분석하는 것은 열심히 활동하려는 아이돌에겐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맞아, 당연한 건데… 상황이 이상해서.’
이테르의 스탭이 테스타를 견제했다는 구설수와 논란으로 뒤숭숭해서 그랬다.
이럴 때 이테르가 자신들의 제스처를 연구한 노트를 테스타가 갑자기 보게 되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당황한 것이다.
‘일부러 테스타 선배님 제스처만 연구한 건 아니었어.’
시간이 없어서 지금 경쟁자인 아이돌을 빠르게 분석한 것이다. 자신들은 그저 열심히 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이테르는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상 상대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당황한 것이다.
왜냐하면…….
-테스타 선배님이 내 사정을 모르니까.
“…….”
그러나 그 순간, 이테르의 리더는 완성된 문장에서 위화감을 깨달았다.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건 테스타 선배님만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을 거야.’
이테르의 관계자가 아닌 누구에게도 노트를 보여주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테르가 집요하게 테스타의 제스처를 따라 했다’…라고.
그게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나야.’
오로지 자신만 너그럽게 스스로를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 억울함과 사정을 다 아니까.
‘내 일이니까….’
그것을 깨닫는 순간, 보호막이 깨지는 것처럼 차가운 공기가 훅 머릿속을 지나간 것 같았다.
“…….”
누아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노트를 가리듯 품에 넣었다.
꿈에서 깬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누구나 사정은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에게만 특별히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보통 그걸 자기합리화라고 불렀다.
이 자기합리화를 걷어내고, 모든 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보자면….
‘…부끄러운 일이 맞았던 거야.’
그리고 자신을 허락 없이 따라 하는 후배에게, 이렇게까지 내색하지 않고 점잖게 대해주는 선배가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고 나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
그는 말없이 자신에게 노트를 넘겨준 선아현과, 자신의 속셈 있는 말에도 부드럽게 답변해 줬던 이세진을 떠올렸다.
사실 그 모든 상황에서, 자신은 선배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나와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 게 내 마음에 편하니까.
안 그래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회사를 원망하는 건 너무 힘드니까.
무의식중으로 무시해 온 것이다.
“…….”
이테르의 리더는 느릿느릿, 복도를 벗어나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충분히 차가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날.
====================
3.1. 테스타 레퍼런스 논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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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끝난 후, 그는 몰래 숙소에 들여놓은 노트북을 이용해 처음으로 대중이 평가하는 이테르의 사건 사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욕설은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글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심적 충격을 받기는 했다.
-…구도, 소품, 안무까지 다양한 자료가 나오며, ‘레퍼런스라기엔 테스타에게서만 사례가 나온다’(9)라는 의견이 연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
데뷔 앨범에서부터 이미 테스타를 따라했다는 사진 자료를 쭉쭉 넘기고 있노라면, 눈물로 코까지 훌쩍이게 되는 것이다.
좀 도망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떨치려 노력하며, 최대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테르는 기획 단계부터, 시작부터 잘못된 그룹인 것 같았다.
‘그런 건가?’
아이돌로서 자신의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아서 은퇴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한 팬의 SNS 게시글을 캡처한 자료였다.
-이테르가 프로듀싱에 거의 참여 못 하는 것 같은데 이런 문제는 회사 기획팀 수준에서 고쳐야 함 이테르 멤버들이 싫어해도 별수 없을 듯
그는 깨달았다.
‘아.’
팬들도, 회사와 자신들을 같은 선에 놓고 생각하진 않았다.
거기엔 명제가 있던 것이다.
-회사와 아이돌은 같지 않다.
“…….”
그는 눈물을 닦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내 잘못은 반성하고 고치자.
그리고 회사의 잘못은 내가 옹호하거나, 그것에 지나치게 몰입할 필요가 없었다.
반대 의견을 가져도 괜찮았다.
‘회사는 내가 아니니까.’
가슴이 한결 시원했다.
탁.
그는 그렇게 성장통으로 가득 찬 에고서치를 마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오늘 촬영하고 온, 경연 결과 발표를 떠올렸다.
-1위는… 테스타입니다!
-와!
박수와 행복으로 테스타의 자리가 소란스러워졌었다.
그리고 이테르는 3위로 끝났다.
망하지도 않았기에 동정을 산 것도 아니고, 주목받을 만큼 대단한 등수도 아닌 순위.
회사가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고, 그룹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누아는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 * *
-선배님, 제가 그간 폐를 많이 끼쳤는데도 끝까지 친절하게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뵐 수 있다면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뵙고 싶습니다….
“이걸 이테르 애가 보낸 거라고?”
“으응.”
선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녀석이 내민 건 무려 카톡도 메시지도 아닌 자필 쪽지였다.
아마 번호 교환할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 이런 방법을 고른 것 같았다. 매니저한테 알려달라기에도 워낙 스탭들 간에 사이가 안 좋으니까.
‘흠.’
나는 놈이 보낸 글을 대충 다시 훑었다.
요약하자면 대가리 박는 사과와 재발 방지 맹세쯤 되겠다.
“나한테 줬지만, 사실… 우리 그룹에 준 것 같아서.”
“그래?”
별로 동의할 수는 없다만, 선아현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애초에… 노트를 발견한 건, 문대니까.”
음, 그건 맞지.
사실 며칠 전, 촬영장에서 노트를 발견한 건 나였다.
-…? 저거.
‘그쪽 스탭들 동향 좀 관찰하다가 의자에 두고 가는 걸 봤지.’
그리고 노트 내용을 확인한 순간….
-이걸 두고 가냐.
미친 잭팟이라고 생각했다.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적절한 폭로 방법이 즉각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으나….
‘안 써먹었지.’
어. 폐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테스타가 큰세진에게 설득당해서 무대로 도박하겠다고 올인을 때려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수를 더 늘리는 건 나라도 좀 그랬다.
‘원더홀을 그렇게까지 개같이 밟으면 풍선효과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말이야.’
몸집이 큰 만큼 불똥이 튀면서 무슨 뜬금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몇십 년간 업계에서 구르고 직원을 몇백 명이나 데리고 있는 원더홀과는 다르게 우린 아직 소규모 신생 기업이라 그걸 다 케어할 직원은 없거든. 그래서 좀 사렸다.
정치적으로 우회로를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테르 리더 놈의 편지를 탁자 위로 올리며, 피식 웃었다.
‘뭐… 사실 터지면 X 되는 게 원더홀보다 이테르 멤버라 효율이 안 좋기도 했고.’
회사를 조져야지 회사와 물아일체된 저 비정규직 꼬마를 조져봤자 뒷맛만 더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선아현의 주장에 따라 녀석에게 할당한 노트는… 제법 괜찮은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양심 공격이 먹히다니.’
역시 애는 애다. 이제 한동안 귀찮을 일은 없겠군.
“고생했다.”
“아, 아냐.”
선아현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꽤 흐뭇한 얼굴로 편지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깔끔히 끝났군.’
나는 시원하게 생각했다.
다만 원더홀 관계자에게 며칠 후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바로 티홀릭 하진태였다.
다만 이 ‘원더홀 관계자’라는 속성은 이제 시한부였다.
“…티홀릭 선배님들께서도 독립 축하드립니다.”
그렇다.
이놈들은 아예 본인들이 사장으로 간판 달고 곧 독립해 버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겨우 독립하면서 대형인 원더홀에 그렇게까지 엿을 먹일 수 있던 이유를 아는가?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죠.”
저 발언이 예의상 하는 게 아니라… 아주 담백한 사실이거든.
‘망할.’
놀랍게도 티홀릭 놈들도 우리처럼 LeTi에게서 출자금을 먹은 것이다.
심지어 얘들은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기사를 빵빵 때리더라.
‘어차피 지금은 VTIC이랑 포지션도 안 겹친다 이거지.’
티홀릭은 이미 퍼포머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대중성 중심의 예능형 아이돌이다.
이 경우 개인 활동으로 뿔뿔이 흩어질 걸 걱정하느니, 차라리 대형 기획사의 조직력과 자본이 투입된 걸 아는 쪽을 티홀릭 팬들도 선호하긴 할 것이다.
그래, 그렇긴 한데… 이 꼴을 봐라.
‘졸지에 대상 받은 남자 아이돌 계보가 싹 다 같은 라인이 됐는데.’
자본금으로 묶인 선후배.
그렇게 이 미친 판이 짜인 것이다….
제안도 끔찍하니 그만해라.
“스케줄 맞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다행히 눈치가 있는지 킬킬대던 놈은 곧 덕담으로 돌아섰다.
“…감사합니다.”
이건 담백한 사실이었다.
내 미국 시상식 출연 어그로와 테스타가 영미권에 심어둔 인터넷 밈들과의 시너지로 해외 유입을 쭉 당겼거든.
덕분에 이번 앨범 활동, 그리고 지난 배세진의 연기 활동으로 시스템의 회사 등급은 순조롭게 상향 중이었다.
‘체급 증명 좀 더 당기면 되겠어.’
그게 무엇이냐.
“예.”
그렇다. 바로 콘서트 투어다.
자고로 객석수만큼 해외 위상으로 기사 내기 좋은 게 없다.
‘정석적으로 가는 거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투어로 인한 공백기마다 자체 컨텐츠를 하나씩 배치해 뒀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드디어 호떡 예능 제작진, 도로 구해왔거든.
다만 약간 차이가 있긴 했다.
“…….”
…프로그램명 .
기획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