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3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6화
는 후반전의 첫 무대를 마치 개막식처럼 제법 대규모의 방청객을 불러 시작했다.
이 관객들이 스포일러를 뿌려도 좋으니, 그렇게 떠들고 싶을 만큼 대단한 서사의 무대가 나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테스타 팬들 많네.’
박문대와 이세진의 트윈 홈마, 직장인은 본인도 테스타 팬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류서린의 동생이자 류건우의 동아리 선배였기도 한 그녀는 당연하지만 류건우가 박문대가 됐다는 것은 짐작도 못 했지만, 가끔 큰달인 류건우와 연락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오늘도 혹시 올 생각 있냐고 물어봤는데….
-괜찮습니다. 저는 연말이라 일이 바빠서 힘들 것 같습니다.
라는 답장을 받았다.
‘다른 각도 사진 건지고 싶었는데… 쯧.’
여전히 무뚝뚝한 놈이라며 직장인은 혀를 찼다.
큰달이 기겁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나는… 건우 형이다!’를 외치며 답장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세팅한 후 자리에 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테스타 팬이 거의 절반은 되는 것 같고.’
이러면 테스타가 무대를 말아먹지 않는 이상 2위 안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다만 그게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테르를 밀어주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노골적이던데.’
이대로라면 이테르가 3위 이하를 받을 시,
-그 정도 순위 받을 무대는 아니었음 솔직히
-거기 방청객 절반이 테스타팬이었대 이 악물고 견제한 듯ㅋㅋ
이렇게 ‘강자에 의해 평가 절하당한 비운의 라이징’ 서사도 줄 수 있었다.
이테르 상대로 그런 말을 들을 생각을 하자, 이 트윈 홈마까지도 심기가 불편해졌다.
‘애들이 뭘 알겠냐고 생각해 주기엔 걔들이 앞으로 벌 돈이 얼만데….’
돈 받는 이상 프로의식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원더홀이 한 짓으로 이득 본 건 이테르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관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직장인 홈마가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으론 카메라를 보이지 않게 고치고 있을 때, 마침 MC의 오프닝 멘트가 끝났다.
‘시작하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테스타 외의 다른 그룹도 테스트 샷을 위해 몇 장 찍어놓을 생각을 하면서.
[첫 무대는… 아, 마지막 전반전 무대의 우승자이시기도 합니다. 말랑달콤!]
그리고 그녀는 첫 순서의 이름을 듣자마자 예측했다.
‘다음이나 다다음이 이테르겠어.’
제작진은 이테르에게 일부러 앞 순서를 줬을 것이다. 도전자의 이미지에 딱 맞으니까.
‘그리고 테스타랑 경연 순서를 떨어트려 놓으려는 것도 있었겠고.’
테스타는 시청률을 위해 무조건 마지막 아니면 마지막 직전이다.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그 앞에 연달아 공연하면 테스타와 직접 비교가 될 테니, 적어도 두세 팀을 그사이에 샌드위치로 넣었을 것이라는 분석.
[이번 순서는… 이테르입니다!]
‘맞네.’
그녀는 말랑달콤이 무대를 마친 후, 이테르가 등장하는 것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와아아!
스탭들의 유도에 따라 나온 관객들의 환호를 배경으로, 무대 위 이테르가 자리를 잡고 대형을 맞추었다.
그리고 짧은 정적 이후, 폭발할 듯 강렬한 반주와 함께 시작하는 무대.
[Feel the sunrise!]
선공개에서 봤던 그 곡이 강렬한 효과음과 함께 펼쳐지기 시작했다.
칼같이 각을 맞춘 그것은 티홀릭의 3번째 앨범 타이틀곡, 이다.
티홀릭이 딱 한 번 타이틀로 들고 나왔던 강렬하고 치기 어린 사회비판 곡으로, 고전적인 검은 교복을 입고 퍼포먼스하는 10대 어필용 곡이었다.
[아픔을 벗어나 또다시 Gear up
박수 소리로 이 공간을 채워]
누가 봐도 이테르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가사였다.
심지어 ‘Who am I’라는 무대 주제에 빗대어 생각해 봤을 때, 여러 가지 재밌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무대였으나….
‘역시.’
테스타를 꾸준히 봐오면서, 그들의 무대에서 디테일한 즐거움들을 찾아냈던 사람의 눈에는 바로 보였다.
테스타와 비슷한 제스처, 표정이.
“…….”
참고한 건 확실해 보였다. 트윈 홈마는 팔짱을 꼈다.
‘저 소속사는 정도를 모르네.’
원래 사람이 한계에 달하면 이성을 잃는 법이었다.
이게 한두 번도 아니었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테스타에게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다들 참은 거지, 이게 제대로 방영되고 나면 역풍이고 나발이고 폭발한 테스타 팬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잠깐. 오히려 그걸 원하는 거야?’
순간 되물은 트윈 홈마는, 곧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더홀은 일부러 이테르가 테스타를 참고하도록 묵인한 것이다.
-테스타 팬들이 시비 걸면 노이즈 마케팅이 되니까.
이테르가 무대만 잘하면, 대중이 감정 이입해서 대신 싸워줄 것이다.
-신인이 그렇게 힘들어하던 걸 보고도 또 억까;;
└테스타팬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구니까 스탭이 억하심정 생겨서 욕한 게 아닐까요ㅠ
└킹리적 갓심ㅋㅋㅋㅋ
-테스타는 이테르가 아니라 너희를 더 싫어할 듯 개뷰어들아
그리고 지금 이테르는 확실히 무대를 잘했다.
필사적인, 온갖 기력을 다 쏟아부어 펼쳐낸 듯한 퍼포먼스.
부족한 테크닉과 끼를 연습량과 목숨을 건 듯한 기세로 채웠다.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붉고 노란 조명 효과를 배경으로, 이테르는 힘을 가득 준 채로 엔딩 컷을 잡았다.
[Feel the sun, rise!]
와아아!
환호와 함께 무대는 끝났다.
감명 깊게 본 듯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사이, 미묘한 얼굴을 한 몇몇 관객들의 반응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
직장인은 복잡한 심경으로 무대 위 이테르를 보았다.
그들은 눈물이 글썽해진 채로,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관객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한 후 내려갔다.
‘신인 좋아하는 애들 눈 돌아가겠네.’
저 시기, 독기와 간절함으로 가득한 라이징에게만 감명받는 타입의 인간들은 꽤 많았다.
‘단가는… 올라가겠어.’
그리고 트윈 홈마는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테르의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같았으면 단가 오를 것 팀은 일단 찍는 게 남는 거라 찍었을 텐데.
‘나름대로 의리인가?’
그녀는 헛웃음을 참으며 남은 무대를 관람했다.
답지 않게 약간 심란하던 마음은 그사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테스타입니다!]
드디어 이번 방청의 이유가 왔다.
와아아아악!!
비명 같은 환호가 가득 찼다. 홈마는 그 사이에서 냉정히 생각을 전개했다.
‘중간 평가 때는….’
중간 평가, 테스타는 2000년대 밴드의 명곡을 KPOP 아이돌답게 편곡해서 보기 좋고 기분 좋은 무대를 선보였었다.
아이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국민가요를 트렌디하게 바꾼 무대다.
여유롭고 능숙한 매력.
하지만 선공개에서 분량을 거의 안 준 걸 보니, 제작진이 편집을 그리 잘해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차라리 괜찮아.’
이테르가 했던 필사적인 퍼포먼스와 정반대의 속성인 무대다.
이대로면 쓸데없이 비교되지 않고 ‘둘 다 잘했다’ 정도로 부드럽게 대중 여론이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럼 테스타 팬들도 이테르에게 열받더라도 상황을 보고 한 번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현명한 방법은 맞았다.
‘정치로 머리 쓸 줄 아는 애들이 팀에 있으니까, 중간 평가 의식해서 허겁지겁 바꾸는 짓도 안 했을 거야.’
그녀는 자신이 찍는 두 멤버의 빠른 두뇌 회전과 냉철한 판단력을 신뢰했다.
[…….]
그 사이, 무대 위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반짝, 불빛이 살아났다.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조명이 이루는 별빛 같은 반짝임이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그 위로 상승하듯 치솟는 목소리.
[기다려 넌 일어서니까
바닥이 차가워도
네 삶은 So br-ight!]
“…!!”
그곳에 중간 평가에서 보였던 매끈한 댄스 팝은 없었다.
화려하고 섹슈얼한,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맛을 한껏 살려 올린 강력한 록 사운드.
[Yeeees
Ride the clouds, and
Shoot out into the skyyyy-!]
글램 메탈이 사방을 울렸다.
‘아.’
쿵쿵거리는 사운드를 타고 완급 조절이 무시무시한 군무가 대형을 갖추고 밀려든다.
블론드 계열의 염색모와 검은 라이더 재킷, 하얀 프린팅 티셔츠가 절묘하게 튀었다.
퍼포머들이 공격적일 정도로 화려하게, 빛처럼 무대 정면까지 쏘아져 나온다.
[혜성으로 쏟아져
지난밤의 아픔이
아스팔트 위에서 빛나
City of lights]
어쩌면, ‘Who am I’라는 주제 의식은 차라리 중간 평가 당시의 버전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
‘대상급 KPOP 아이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이니까.
‘테스타는 항상 컨셉추얼하게 도전하는 그룹이니까 이게 저희답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은 덜 직접적이었다.
그러나.
[별처럼 반짝여
달려가는 네 눈물이
Shining like the nightscape]
무대는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고음 끝에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털며, 재킷을 넘기는 박문대를 본 순간.
‘미치겠네.’
직장인은 알았다.
이건 기를 쓰고 이기려고, 중간 평가 보고 바꾼 무대였다.
대체 어쩌려고 이런 거냐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잠깐.’
[이제 내게로 와
하늘을 건너
바다를 넘어]
테스타는 지금 메탈 밴드에서 흔히 하듯이 제스처가 화려하다.
그리고 그 제스처들은….
‘아까 이테르가 했던 걸 그대로 하잖아!’
그렇다.
이테르가 했던 거의 모든 제스처가 파트가 넘어갈 때마다 나왔다.
손을 들어 올리고, 턱을 괴고,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알았다는 듯이 뜨면서 고개를 까닥이는 것까지.
비록 이 글램 메탈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애티튜드였긴 했지만.
‘이 미친놈들이!’
[이제 내게로 와
눈물은 잊고
아픔은 두고]
테스타는 언젠가 신인상 때 오닉스와 붙을 때처럼, 대놓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건 테스타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홈마가 생각했던 실수였다.
‘까닥만 실수하면 망하는 건데.’
강자가 약자를 의식해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반감을 불러올 수 있었다.
후배와 기 싸움 하려 든다, 욕심만 많다 같은 소리를 들으며 이미지만 망가지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바보 같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은 테스타가, 여기서도 이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The world is yours
다 주고 싶어
이게 사랑일 거야]
그들은 선택했다.
가슴에서부터 기분 좋은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은 짜릿함이 머리를 뜨겁게 했다.
‘아, X발…….’
홈마는 탄식했다.
계산하지 않고 미친 듯이 올인하는 그 기세에는 이상하게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무대 위에서 피어싱을 반짝이며, 인상을 찌푸린 차유진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며, 박문대가 뒤에서 아득바득 화음을 집어넣는다.
[기다려 넌 일어서니까
가로등이 없어도
네 삶은 So br-ight!]
투머치할 수준으로, 폭격같이 쏟아지는 퍼포먼스와 보컬의 휘몰아침.
직장인 홈마는 그 틈에서 간신히 현실적인 이성을 붙잡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한참 후배와 대놓고 비교될 감을 주는 것이 통하려면, 정말 압도적으로 표현을 잘해야 했다.
누가 봐도 테스타 쪽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정도로.
[Yeeees
Ride the clouds, and
Shoot out into the skyyyy-!]
그리고 그걸 이세진도 알았다.
-정말 죄송한데, 하면 안 될까요?
사흘 만에 이걸 해내자고 주장하고, 기어코 안무를 짜고 제스처를 분배해서 이걸 해낸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그도 알았다.
갓 데뷔한 신인도 아니고, 이러자는 게 썩 현명한 인간다운 짓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줄 건 주고, 이미 가진 것을 생각하고.
‘사람은 템포를 조절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밸런스가 무너진다고 하지 않는가.
가뜩이나 대중에게 휘둘리기 좋은 직업이다. 아이돌이 아닌 개인, 사람으로서의 자아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에겐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만.
‘됐어.’
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고 인간답게 산다.
그게 더는 고통을 딛고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라면.
그는 계속 불안해하면서, 초조해하면서 필사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이제 내게로 와
하늘을 건너
바다를 넘어]
아이돌로만 살고 싶었다.
[정숙하세요(B)]
-추진력 +100%
더.
[정숙하세요(A)]
-추진력 +120%
더.
[정숙하세요(S)]
-추진력 +150%
…더!
[정숙하세요(EX) 발동!]
-추진력 +180%
발동 중, 한계 스탯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센터로 왔다.
[이름: 이세진]
가창 : B (B+)
춤 : S- (S)
외모 : A (A+)
끼 : A+ (A+)
특성 : 정숙하세요(EX)
이런 사람인 그는.
[끼 : A+ (A+)]
아이돌로 살고 싶었다.
[끼 : S-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6화
는 후반전의 첫 무대를 마치 개막식처럼 제법 대규모의 방청객을 불러 시작했다.
이 관객들이 스포일러를 뿌려도 좋으니, 그렇게 떠들고 싶을 만큼 대단한 서사의 무대가 나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테스타 팬들 많네.’
박문대와 이세진의 트윈 홈마, 직장인은 본인도 테스타 팬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류서린의 동생이자 류건우의 동아리 선배였기도 한 그녀는 당연하지만 류건우가 박문대가 됐다는 것은 짐작도 못 했지만, 가끔 큰달인 류건우와 연락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오늘도 혹시 올 생각 있냐고 물어봤는데….
-괜찮습니다. 저는 연말이라 일이 바빠서 힘들 것 같습니다.
라는 답장을 받았다.
‘다른 각도 사진 건지고 싶었는데… 쯧.’
여전히 무뚝뚝한 놈이라며 직장인은 혀를 찼다.
큰달이 기겁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나는… 건우 형이다!’를 외치며 답장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세팅한 후 자리에 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테스타 팬이 거의 절반은 되는 것 같고.’
이러면 테스타가 무대를 말아먹지 않는 이상 2위 안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다만 그게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테르를 밀어주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노골적이던데.’
이대로라면 이테르가 3위 이하를 받을 시,
-그 정도 순위 받을 무대는 아니었음 솔직히
-거기 방청객 절반이 테스타팬이었대 이 악물고 견제한 듯ㅋㅋ
이렇게 ‘강자에 의해 평가 절하당한 비운의 라이징’ 서사도 줄 수 있었다.
이테르 상대로 그런 말을 들을 생각을 하자, 이 트윈 홈마까지도 심기가 불편해졌다.
‘애들이 뭘 알겠냐고 생각해 주기엔 걔들이 앞으로 벌 돈이 얼만데….’
돈 받는 이상 프로의식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원더홀이 한 짓으로 이득 본 건 이테르도 마찬가지 아닌가.
직장인 홈마가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으론 카메라를 보이지 않게 고치고 있을 때, 마침 MC의 오프닝 멘트가 끝났다.
‘시작하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테스타 외의 다른 그룹도 테스트 샷을 위해 몇 장 찍어놓을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그녀는 첫 순서의 이름을 듣자마자 예측했다.
‘다음이나 다다음이 이테르겠어.’
제작진은 이테르에게 일부러 앞 순서를 줬을 것이다. 도전자의 이미지에 딱 맞으니까.
‘그리고 테스타랑 경연 순서를 떨어트려 놓으려는 것도 있었겠고.’
테스타는 시청률을 위해 무조건 마지막 아니면 마지막 직전이다.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그 앞에 연달아 공연하면 테스타와 직접 비교가 될 테니, 적어도 두세 팀을 그사이에 샌드위치로 넣었을 것이라는 분석.
‘맞네.’
그녀는 말랑달콤이 무대를 마친 후, 이테르가 등장하는 것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와아아!
스탭들의 유도에 따라 나온 관객들의 환호를 배경으로, 무대 위 이테르가 자리를 잡고 대형을 맞추었다.
그리고 짧은 정적 이후, 폭발할 듯 강렬한 반주와 함께 시작하는 무대.
선공개에서 봤던 그 곡이 강렬한 효과음과 함께 펼쳐지기 시작했다.
칼같이 각을 맞춘 그것은 티홀릭의 3번째 앨범 타이틀곡, 이다.
티홀릭이 딱 한 번 타이틀로 들고 나왔던 강렬하고 치기 어린 사회비판 곡으로, 고전적인 검은 교복을 입고 퍼포먼스하는 10대 어필용 곡이었다.
박수 소리로 이 공간을 채워]
누가 봐도 이테르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가사였다.
심지어 ‘Who am I’라는 무대 주제에 빗대어 생각해 봤을 때, 여러 가지 재밌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무대였으나….
‘역시.’
테스타를 꾸준히 봐오면서, 그들의 무대에서 디테일한 즐거움들을 찾아냈던 사람의 눈에는 바로 보였다.
테스타와 비슷한 제스처, 표정이.
“…….”
참고한 건 확실해 보였다. 트윈 홈마는 팔짱을 꼈다.
‘저 소속사는 정도를 모르네.’
원래 사람이 한계에 달하면 이성을 잃는 법이었다.
이게 한두 번도 아니었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테스타에게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다들 참은 거지, 이게 제대로 방영되고 나면 역풍이고 나발이고 폭발한 테스타 팬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잠깐. 오히려 그걸 원하는 거야?’
순간 되물은 트윈 홈마는, 곧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더홀은 일부러 이테르가 테스타를 참고하도록 묵인한 것이다.
-테스타 팬들이 시비 걸면 노이즈 마케팅이 되니까.
이테르가 무대만 잘하면, 대중이 감정 이입해서 대신 싸워줄 것이다.
-신인이 그렇게 힘들어하던 걸 보고도 또 억까;;
└테스타팬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구니까 스탭이 억하심정 생겨서 욕한 게 아닐까요ㅠ
└킹리적 갓심ㅋㅋㅋㅋ
-테스타는 이테르가 아니라 너희를 더 싫어할 듯 개뷰어들아
그리고 지금 이테르는 확실히 무대를 잘했다.
필사적인, 온갖 기력을 다 쏟아부어 펼쳐낸 듯한 퍼포먼스.
부족한 테크닉과 끼를 연습량과 목숨을 건 듯한 기세로 채웠다.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붉고 노란 조명 효과를 배경으로, 이테르는 힘을 가득 준 채로 엔딩 컷을 잡았다.
와아아!
환호와 함께 무대는 끝났다.
감명 깊게 본 듯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사이, 미묘한 얼굴을 한 몇몇 관객들의 반응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
직장인은 복잡한 심경으로 무대 위 이테르를 보았다.
그들은 눈물이 글썽해진 채로,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관객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한 후 내려갔다.
‘신인 좋아하는 애들 눈 돌아가겠네.’
저 시기, 독기와 간절함으로 가득한 라이징에게만 감명받는 타입의 인간들은 꽤 많았다.
‘단가는… 올라가겠어.’
그리고 트윈 홈마는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테르의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같았으면 단가 오를 것 팀은 일단 찍는 게 남는 거라 찍었을 텐데.
‘나름대로 의리인가?’
그녀는 헛웃음을 참으며 남은 무대를 관람했다.
답지 않게 약간 심란하던 마음은 그사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방청의 이유가 왔다.
와아아아악!!
비명 같은 환호가 가득 찼다. 홈마는 그 사이에서 냉정히 생각을 전개했다.
‘중간 평가 때는….’
중간 평가, 테스타는 2000년대 밴드의 명곡을 KPOP 아이돌답게 편곡해서 보기 좋고 기분 좋은 무대를 선보였었다.
아이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국민가요를 트렌디하게 바꾼 무대다.
여유롭고 능숙한 매력.
하지만 선공개에서 분량을 거의 안 준 걸 보니, 제작진이 편집을 그리 잘해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차라리 괜찮아.’
이테르가 했던 필사적인 퍼포먼스와 정반대의 속성인 무대다.
이대로면 쓸데없이 비교되지 않고 ‘둘 다 잘했다’ 정도로 부드럽게 대중 여론이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럼 테스타 팬들도 이테르에게 열받더라도 상황을 보고 한 번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현명한 방법은 맞았다.
‘정치로 머리 쓸 줄 아는 애들이 팀에 있으니까, 중간 평가 의식해서 허겁지겁 바꾸는 짓도 안 했을 거야.’
그녀는 자신이 찍는 두 멤버의 빠른 두뇌 회전과 냉철한 판단력을 신뢰했다.
그 사이, 무대 위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반짝, 불빛이 살아났다.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조명이 이루는 별빛 같은 반짝임이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그 위로 상승하듯 치솟는 목소리.
바닥이 차가워도
네 삶은 So br-ight!]
“…!!”
그곳에 중간 평가에서 보였던 매끈한 댄스 팝은 없었다.
화려하고 섹슈얼한,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맛을 한껏 살려 올린 강력한 록 사운드.
Ride the clouds, and
Shoot out into the skyyyy-!]
글램 메탈이 사방을 울렸다.
‘아.’
쿵쿵거리는 사운드를 타고 완급 조절이 무시무시한 군무가 대형을 갖추고 밀려든다.
블론드 계열의 염색모와 검은 라이더 재킷, 하얀 프린팅 티셔츠가 절묘하게 튀었다.
퍼포머들이 공격적일 정도로 화려하게, 빛처럼 무대 정면까지 쏘아져 나온다.
지난밤의 아픔이
아스팔트 위에서 빛나
City of lights]
어쩌면, ‘Who am I’라는 주제 의식은 차라리 중간 평가 당시의 버전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
‘대상급 KPOP 아이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이니까.
‘테스타는 항상 컨셉추얼하게 도전하는 그룹이니까 이게 저희답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은 덜 직접적이었다.
그러나.
달려가는 네 눈물이
Shining like the nightscape]
무대는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고음 끝에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털며, 재킷을 넘기는 박문대를 본 순간.
‘미치겠네.’
직장인은 알았다.
이건 기를 쓰고 이기려고, 중간 평가 보고 바꾼 무대였다.
대체 어쩌려고 이런 거냐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잠깐.’
하늘을 건너
바다를 넘어]
테스타는 지금 메탈 밴드에서 흔히 하듯이 제스처가 화려하다.
그리고 그 제스처들은….
‘아까 이테르가 했던 걸 그대로 하잖아!’
그렇다.
이테르가 했던 거의 모든 제스처가 파트가 넘어갈 때마다 나왔다.
손을 들어 올리고, 턱을 괴고,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알았다는 듯이 뜨면서 고개를 까닥이는 것까지.
비록 이 글램 메탈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애티튜드였긴 했지만.
‘이 미친놈들이!’
눈물은 잊고
아픔은 두고]
테스타는 언젠가 신인상 때 오닉스와 붙을 때처럼, 대놓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건 테스타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홈마가 생각했던 실수였다.
‘까닥만 실수하면 망하는 건데.’
강자가 약자를 의식해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반감을 불러올 수 있었다.
후배와 기 싸움 하려 든다, 욕심만 많다 같은 소리를 들으며 이미지만 망가지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바보 같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은 테스타가, 여기서도 이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주고 싶어
이게 사랑일 거야]
그들은 선택했다.
가슴에서부터 기분 좋은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은 짜릿함이 머리를 뜨겁게 했다.
‘아, X발…….’
홈마는 탄식했다.
계산하지 않고 미친 듯이 올인하는 그 기세에는 이상하게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무대 위에서 피어싱을 반짝이며, 인상을 찌푸린 차유진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며, 박문대가 뒤에서 아득바득 화음을 집어넣는다.
가로등이 없어도
네 삶은 So br-ight!]
투머치할 수준으로, 폭격같이 쏟아지는 퍼포먼스와 보컬의 휘몰아침.
직장인 홈마는 그 틈에서 간신히 현실적인 이성을 붙잡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한참 후배와 대놓고 비교될 감을 주는 것이 통하려면, 정말 압도적으로 표현을 잘해야 했다.
누가 봐도 테스타 쪽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정도로.
Ride the clouds, and
Shoot out into the skyyyy-!]
그리고 그걸 이세진도 알았다.
-정말 죄송한데, 하면 안 될까요?
사흘 만에 이걸 해내자고 주장하고, 기어코 안무를 짜고 제스처를 분배해서 이걸 해낸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그도 알았다.
갓 데뷔한 신인도 아니고, 이러자는 게 썩 현명한 인간다운 짓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줄 건 주고, 이미 가진 것을 생각하고.
‘사람은 템포를 조절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밸런스가 무너진다고 하지 않는가.
가뜩이나 대중에게 휘둘리기 좋은 직업이다. 아이돌이 아닌 개인, 사람으로서의 자아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에겐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만.
‘됐어.’
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고 인간답게 산다.
그게 더는 고통을 딛고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라면.
그는 계속 불안해하면서, 초조해하면서 필사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늘을 건너
바다를 넘어]
아이돌로만 살고 싶었다.
-추진력 +100%
더.
-추진력 +120%
더.
-추진력 +150%
…더!
-추진력 +180%
발동 중, 한계 스탯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센터로 왔다.
가창 : B (B+)
춤 : S- (S)
외모 : A (A+)
끼 : A+ (A+)
특성 : 정숙하세요(EX)
이런 사람인 그는.
아이돌로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