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2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8화
“…….”
나는 스마트폰을 잡고 다시 읽었다.
-VTIC 청려, 입대까지 D-4 (속보)
하나도 안 궁금했던 소식이 기어코 속보로까지 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가 일부러 대중 공개에 맞춰서 나한테 군대 간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타이밍.
나는 미간을 누르며 간신히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참았다.
아직 촬영장이다. 관계자들에게 ‘테스타 박문대가 VTIC 군대 소식 보더니 견제 한번 오지게 하더라’ 같은 재밌는 카더라를 굳이 주지 말자고.
다만 몇 년이나 같이 다닌 놈은 내 면상에서 무슨 기색을 읽은 모양이었다.
큰세진이 일부러 호들갑을 떨면서 내 어깨를 쳤다. 그만해라….
“뭐야, 뭔데?”
“VTIC 청려… 선배님까지 군대 가신다는데.”
“오~”
의미 없는 감탄사를 한 큰세진이 서글서글 웃었다.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네~”
말투에선 사회성이 흐르지만 얼굴에는 ‘얼른 꺼졌으면’이라고 적혀있군.
그리고 나는 이게 딱히 놀랄 소식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지금이 11월이니까.’
VTIC이 전부 동반 제대하겠다는 계획까지 들었는데 새삼 뻔한 입대 날짜에 놀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작년부터 진작에 계산해 놨었는데 하도 사건이 많아서 잠깐 잊고 있었군.
“그럼, VTIC 선배님들… 활동이 아예 없으니까, 팬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실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다.”
선아현은 주변을 의식한 게 아니라 정말 걱정해서 꺼낸 말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걱정해 줄 필요 없다.
‘그놈 자기 살길은 이미 잔디까지 깔아놨을걸.’
청려는 벌써 완전체 컴백 곡까지 정해놨을 놈이다. 어쩌면 진채율 같은 녀석은 군대에서 안무 영상까지 받아 봤을지도 모르겠군.
그 전에 그놈들 전체 공백기를 이용해서 팬 끌어올 생각이나 하자. 오로지 테스타만 잘 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VTIC 팬들도 다 짐작하고 있었는지 반응도 그렇게까지 살벌하진 않았다.
이 정도는 나오긴 했다만.
-재현아 너는 무슨 군대 간다는 얘기를 나흘 전에 하니
-군대에서 우리 애들 완전체 공연 볼 수 있는 거임?ㅋㅋ신난다 (사실 신나지 않음 지나가세요)
-갓기 17살 신재현이 왜 군대를 가
“…….”
마지막은 진심이신가 싶다만 아무튼.
“그래도 동시 제대 진짜 멋질 것 같은데?”
“그러게.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다.”
“으응…!”
우리는 이 정도로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촬영장에서는 말이다.
“문대문대! 아까 이야기 말인데.”
차에 타서 문 닫히자마자 큰세진이 당장 해당 화제를 다시 꺼냈다.
“6개월 뒤에 제대하면서 바로 컴백… 아니, 헤어 문제도 있으니까 7개월 정도겠다. 그럼 내년 6월 컴백?”
“아마도.”
녀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때는 피해서 우리도 내년 플랜 짜봐야겠네.”
동감이다. 일단 우리가 입대를 연기할 수 있게 문화훈장부터 잡아야 제대로 된 플랜이 나오겠지만.
“휴, 우리가 직접 이런 걸 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
“그래, 그래도 못 짜는 것보단 낫고.”
무슨 당연한 소리는 하냐는 듯이 녀석이 씩 웃었다.
신인 데뷔 앨범을 VTIC 컴백과 굳이 겹쳐서 내겠다는 미친 발상을 기어코 진행시키던 T1 시절에 비하면 이런 호사가 없기 때문이다.
선아현이 조심스럽게 끼어든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저… 그, VTIC 선배님, 이야기야?”
“응? 아~ 맞아 맞아! 내년에 컴백하시겠다 싶어서 시기 생각해 보는 거야. 이제 연말인데 우리도 내년 계획 짜야지.”
선아현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봄도, 괜찮을 것 같아. 계절감을 살릴 수 있는, 앨범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오~ 그것도 좋은데?”
그리고 신나게 다음 앨범 구상을 떠들기 시작했다. 뭐, 아이디어가 많고 적극적인 건 좋은 일이었다. 머리가 많으면 후보군이 더 많아지지.
그렇게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는 것 같더니, 큰세진은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를 도출한 모양이다.
“잠깐만, 그 선배 혹시 너한테 직접 연락했어?”
내가 기사로 접한 것 치고는 많이 어처구니가 없어 보인 모양이다.
“어.”
“아니, 대체 왜?”
“몰라.”
큰세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진짜 모르겠다.
차라리 한 2주 전에 불렀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굳이 입소 나흘 전에 바쁜 사람을 왜 부르냐.
‘컴백 방해 수작질인가?’
솔직히 내가 사흘 내로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만만치 않다. 자정 넘어서까지도 스케줄이 쭉 있어서 말이지.
‘게다가 목격담 걸리는 순간 골 아픈데.’
-곰머 컴백 직전에 친목질ㅋㅋㅋㅋ하 개빡친다 진짜
-군머가는 행님하고 술 잡솨야지 암ㅋㅋㅋ 팬들 개같이 맘고생 시킨 경쟁 그룹이라도 지 친목이 더 중요한 대단한 새끼ㅋㅋ
한번 예상 답안지를 돌려보니 답이 나온다. 역시 통화로 충분하겠군.
내가 ‘제정신이냐, 전화로 해라’를 짧고 점잖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던 순간.
[형! 저 좋은 생각이 났는데요!]
“…?”
큰달이 끼어들었다.
이번에 찍는 예능을 굳이 실시간으로 보고 싶다고 해서 시야 공유를 해줬던 터라 아까 문자를 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좋은 생각?’
대체 무슨 발상인데.
[아, 시스템 접속 절대 안 하신다고 약속해 주시면요!]
그리고 나는 큰달 녀석의 ‘좋은 생각’이 뭔지 알게 되었다.
* * *
“…그래서 그 모습으로 왔다?”
여의도의 한 한식집.
나는 유리컵을 들어 올렸다. 박문대의 손보다 굳은살이 많은 손이 보였다.
류건우의 손이다.
그렇다. 큰달의 제안은 ‘1시간 몸 바꾸기’였다.
지난번 사례로 몸을 바꾸는 것 자체에는 리스크가 없다는 걸 깨달은 녀석이 기꺼이 바꿔 준 것이다.
-제가 이번 주에는 저녁에 아무런 일정도 없어서 형이 편하게 대화 나누셔도 되거든요!
-어. 고맙다. 근데 그럼 너 그 시간에 테스타 화보 촬영해야 할 텐데.
-허어어업.
물론 농담이다.
청려에게 연락을 받은 날로부터 이틀 후 저녁. 이동 및 마사지 시간을 합쳐서 대강 1시간쯤 뺄 수 있어서 이 시간을 사용했다.
뭐, 마사지가 기분 나쁜 경험을 아니겠지. 하지만 어쨌든 큰달이 이쪽을 배려해 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빚졌군.’
이번에도 제대로 정산해 주도록 하자. 나는 대강 금액을 계산하며 컵을 도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여긴 지난번에 몇 번 청려와 만났던 야외 카페가 아니라 룸 형태의 한식 코스 요리 집이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
“월!”
애견 동반이 가능한 집이라는 것이다.
‘기어코 개를 또 데려왔군….’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방바닥에 발라당 누워있는 큼직한 개가 하네스로 잡혀있는 것을 확인한 뒤, 줄을 잡고 있는 놈을 쳐다보았다.
청려.
무채색 사복을 입고 온 녀석은 내가 왜 류건우 모습인지 대충 설명을 듣고서도 폭소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반응했다.
“계속 몸을 바꾸다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될 텐데.”
“…….”
“지금까지 일을 고려하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작정 그냥 쓰는 게 아니야.”
“음?”
이러다 시스템 개지랄에 또 끌려다니면 어쩌냐고? 당연히 고민해 봤다.
내가 어지간히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그랬겠냐.
“빈도수를 패턴에 맞춰서 쓰고 있지.”
이건 ‘특별히’ 시스템을 딱 집어 이 용도로만 오늘 사용한 게 아니다.
애초에 사흘에 한 번 빈도로 시스템을 정기 사용 중이거든.
“이 시스템이라는 건 내가 자기를 자주 쓰는 상황을 계속 만들려는 것 같은데, 아예 ‘얼마나 자주 쓰는지’ 순위를 못 매기게 매번 똑같은 간격으로 쓰는 거야.”
일부러 쓸모없는 기능 위주로 썼기 때문에 내가 이 성능에 감화될 가능성도 없다.
‘그러다가 이렇게 진짜로 필요할 때는… 이렇게 한 번씩 바꿔치기하는 거지.’
이러면 진짜 필요해서 쓴 게 어떤 건지 가려내지 못하니, 사흘에 한 번 쓰는 정기적 패턴만 시스템의 기록에 남는 것이다.
한마디로, 데이터 눈속임이다.
맞은편에 앉은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후배님이 생각할 법한 방법이네요.”
욕이냐?
나는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무슨 방법을 생각했는데.”
“버려야죠. 쓰지 말고.”
“…….”
뭐… 정설이군.
솔직히 말하자면, 저놈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건한 선택지다.
근데 내가 지금 회사 시스템 없애면 네가 제일 손해일 텐데 말이다.
‘너한테 있는 시스템 파편을 흡수 안 하면 미션 실패로 무슨 일이 날지 알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거 좀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긴 하군. 파편 처리한 후에 그걸 명분으로 이놈한테 정보라도 뜯어내야겠다.
‘일단 이득을 본 이상 뭐라도 토해낼 수밖에 없겠지.’
물론 지금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사정이 좀 있어서. 아무튼… 왜 만나자고 부른 거냐.”
빨리 본론 들어가자 이거다.
지금 뒈지게 바쁜 판이다. ‘흑흑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같은 개소리가 나오진 않겠지.
청려 놈이 약간 서운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입대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개소리 말고.”
“하하!”
응, 그럴 줄 알았다.
“음,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있긴 하죠.”
청려는 빙긋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콩이요.”
“…….”
나는 고개를 내려서, 여전히 방바닥에 배 까고 누운 털복숭이를 보았다.
야 설마….
“너 들어가 있을 동안 나더러 봐달라는 거냐.”
“네.”
제정신인가?
지금 우리 숙소에서 뭉게도 못 돌보니 배세진 어머님이 입양하신 판인데 무슨 남의 개를 키운단 말인가.
‘잠깐.’
나는 즉시 반박하려다가, 이 패턴이 상당히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저놈이 사람 개빡치게 만들 때 쓰는 패턴인데.’
“물론 전문업체에 맡길 예정이에요. 설마 후배님 숙소에서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이해한 건 아니죠?”
역시.
‘저거 혓바닥만 길어서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죽을 한술 떴다.
“부모님은.”
“어머니는… 음, 강아지를 맡을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해두죠. 워낙 바쁜 사람이라. 개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나도 바쁘다, 이 새끼야.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의 어머님이 국가유공자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입을 다물었다. 청려는 실실 웃었다.
설마 일부러 노렸냐?
“그리고 이런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맡아야 잘하니까.”
내가?
“너희 개를?”
“네.”
그리고 청려는 잡고 있던 하네스 줄을 풀었다.
왕!
맹렬히 노란 털복숭이가 이쪽으로 달려든다.
‘무슨.’
이쪽이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대충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너희 개가 사람을 좋아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죠.”
웃기는 놈.
청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개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답지 않게 약간 고심하는 것 같은 기색이다.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런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는 고용한 사람의 품성은 안 믿거든.”
“…….”
그러고 보니, 숙소 하우스 키퍼가 포도 껍질을 안 치워서 이 녀석이 입원했던가.
‘뭐, 여러 사람이 크로스체크하면 문제 생길 확률이 낮아지긴 하지.’
그리고 저놈 인맥 중에 사정 아는 놈들은 이미 다 입대해버렸기 때문에 왜 나한테까지 제안이 온 건지는 알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방문해서 상태만 체크해 주면 돼요. 간단하죠?”
음.
“시간이 괜찮다면… 콩이와 함께 있어 주면 더 좋고.”
“…….”
아, 망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장담은 못 한다.”
“…!”
“그래도 좋다면….”
“좋아요.”
아니.
“장담 못 한다니까.”
“하하, 후배님 성격에?”
“…….”
“한번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음… 고마워요.”
놀랍게도, 청려는 꽤 진심으로 보였다.
‘…후.’
어차피 시스템 파편 회수하려면 저놈 복무 중에 면회라도 한번 가야 할 판이다. 이걸 이유로 하면 더 자연스럽긴 하겠지.
결국 나는 이놈 개를 한 번씩 확인해 주기로 했다.
물론 맨입으로는 안 되고.
이 정도는 듣고 가자.
“너희 내년 컴백이 정확히 언제냐.”
“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추측할 수 있을 텐데요.”
뭐, 정확한 날짜는 리스크 감안해서 말 안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만 들어도 대충 각은 나오는군.
‘6월 중에 VTIC에게 의미 있는 날짜라는 거지.’
나는 순식간에 날짜 몇 가지를 특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때 동시에 컴백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게요.”
미쳤나.
“어. 너도.”
“하하.”
나는 개를 도로 녀석에게 돌려보내며, 다시 젓가락을 들려고 했다.
그때 탁자 건너편에서 도전적인 덕담이 들렸다.
“이번 컴백, 잘해봐요.”
“그래.”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나는 손을 뻗은 청려와 악수했다.
“근데 너 군악대냐?”
“아니요. 어학병인데.”
“…….”
“외국어 습득은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던데, 워낙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보니.”
정말 독한 새끼다.
며칠 후.
-ㅠㅠ재현이 조용히 갔네.. 6개월 존버 할게
-신재현 왜 군악대가 아니라 어학병인데 대체 외국어를 얼마나 잘하는 거임
└글로벌 케이팝 리더 짬밥이래
청려는 예정대로 입대했고, VTIC 단체 컴백까지는 반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반년.
‘그 안에 문화훈장을 받게 판을 바꿔놔야 해.’
그런 의미에서 이번 컴백의 목표는 확실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스타는 공격적인 컴백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8화
“…….”
나는 스마트폰을 잡고 다시 읽었다.
-VTIC 청려, 입대까지 D-4 (속보)
하나도 안 궁금했던 소식이 기어코 속보로까지 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가 일부러 대중 공개에 맞춰서 나한테 군대 간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타이밍.
나는 미간을 누르며 간신히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참았다.
아직 촬영장이다. 관계자들에게 ‘테스타 박문대가 VTIC 군대 소식 보더니 견제 한번 오지게 하더라’ 같은 재밌는 카더라를 굳이 주지 말자고.
다만 몇 년이나 같이 다닌 놈은 내 면상에서 무슨 기색을 읽은 모양이었다.
큰세진이 일부러 호들갑을 떨면서 내 어깨를 쳤다. 그만해라….
“뭐야, 뭔데?”
“VTIC 청려… 선배님까지 군대 가신다는데.”
“오~”
의미 없는 감탄사를 한 큰세진이 서글서글 웃었다.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네~”
말투에선 사회성이 흐르지만 얼굴에는 ‘얼른 꺼졌으면’이라고 적혀있군.
그리고 나는 이게 딱히 놀랄 소식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지금이 11월이니까.’
VTIC이 전부 동반 제대하겠다는 계획까지 들었는데 새삼 뻔한 입대 날짜에 놀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작년부터 진작에 계산해 놨었는데 하도 사건이 많아서 잠깐 잊고 있었군.
“그럼, VTIC 선배님들… 활동이 아예 없으니까, 팬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실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다.”
선아현은 주변을 의식한 게 아니라 정말 걱정해서 꺼낸 말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걱정해 줄 필요 없다.
‘그놈 자기 살길은 이미 잔디까지 깔아놨을걸.’
청려는 벌써 완전체 컴백 곡까지 정해놨을 놈이다. 어쩌면 진채율 같은 녀석은 군대에서 안무 영상까지 받아 봤을지도 모르겠군.
그 전에 그놈들 전체 공백기를 이용해서 팬 끌어올 생각이나 하자. 오로지 테스타만 잘 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VTIC 팬들도 다 짐작하고 있었는지 반응도 그렇게까지 살벌하진 않았다.
이 정도는 나오긴 했다만.
-재현아 너는 무슨 군대 간다는 얘기를 나흘 전에 하니
-군대에서 우리 애들 완전체 공연 볼 수 있는 거임?ㅋㅋ신난다 (사실 신나지 않음 지나가세요)
-갓기 17살 신재현이 왜 군대를 가
“…….”
마지막은 진심이신가 싶다만 아무튼.
“그래도 동시 제대 진짜 멋질 것 같은데?”
“그러게.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다.”
“으응…!”
우리는 이 정도로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촬영장에서는 말이다.
“문대문대! 아까 이야기 말인데.”
차에 타서 문 닫히자마자 큰세진이 당장 해당 화제를 다시 꺼냈다.
“6개월 뒤에 제대하면서 바로 컴백… 아니, 헤어 문제도 있으니까 7개월 정도겠다. 그럼 내년 6월 컴백?”
“아마도.”
녀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때는 피해서 우리도 내년 플랜 짜봐야겠네.”
동감이다. 일단 우리가 입대를 연기할 수 있게 문화훈장부터 잡아야 제대로 된 플랜이 나오겠지만.
“휴, 우리가 직접 이런 걸 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
“그래, 그래도 못 짜는 것보단 낫고.”
무슨 당연한 소리는 하냐는 듯이 녀석이 씩 웃었다.
신인 데뷔 앨범을 VTIC 컴백과 굳이 겹쳐서 내겠다는 미친 발상을 기어코 진행시키던 T1 시절에 비하면 이런 호사가 없기 때문이다.
선아현이 조심스럽게 끼어든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저… 그, VTIC 선배님, 이야기야?”
“응? 아~ 맞아 맞아! 내년에 컴백하시겠다 싶어서 시기 생각해 보는 거야. 이제 연말인데 우리도 내년 계획 짜야지.”
선아현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봄도, 괜찮을 것 같아. 계절감을 살릴 수 있는, 앨범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오~ 그것도 좋은데?”
그리고 신나게 다음 앨범 구상을 떠들기 시작했다. 뭐, 아이디어가 많고 적극적인 건 좋은 일이었다. 머리가 많으면 후보군이 더 많아지지.
그렇게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는 것 같더니, 큰세진은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를 도출한 모양이다.
“잠깐만, 그 선배 혹시 너한테 직접 연락했어?”
내가 기사로 접한 것 치고는 많이 어처구니가 없어 보인 모양이다.
“어.”
“아니, 대체 왜?”
“몰라.”
큰세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진짜 모르겠다.
차라리 한 2주 전에 불렀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굳이 입소 나흘 전에 바쁜 사람을 왜 부르냐.
‘컴백 방해 수작질인가?’
솔직히 내가 사흘 내로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만만치 않다. 자정 넘어서까지도 스케줄이 쭉 있어서 말이지.
‘게다가 목격담 걸리는 순간 골 아픈데.’
-곰머 컴백 직전에 친목질ㅋㅋㅋㅋ하 개빡친다 진짜
-군머가는 행님하고 술 잡솨야지 암ㅋㅋㅋ 팬들 개같이 맘고생 시킨 경쟁 그룹이라도 지 친목이 더 중요한 대단한 새끼ㅋㅋ
한번 예상 답안지를 돌려보니 답이 나온다. 역시 통화로 충분하겠군.
내가 ‘제정신이냐, 전화로 해라’를 짧고 점잖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던 순간.
“…?”
큰달이 끼어들었다.
이번에 찍는 예능을 굳이 실시간으로 보고 싶다고 해서 시야 공유를 해줬던 터라 아까 문자를 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좋은 생각?’
대체 무슨 발상인데.
그리고 나는 큰달 녀석의 ‘좋은 생각’이 뭔지 알게 되었다.
* * *
“…그래서 그 모습으로 왔다?”
여의도의 한 한식집.
나는 유리컵을 들어 올렸다. 박문대의 손보다 굳은살이 많은 손이 보였다.
류건우의 손이다.
그렇다. 큰달의 제안은 ‘1시간 몸 바꾸기’였다.
지난번 사례로 몸을 바꾸는 것 자체에는 리스크가 없다는 걸 깨달은 녀석이 기꺼이 바꿔 준 것이다.
-제가 이번 주에는 저녁에 아무런 일정도 없어서 형이 편하게 대화 나누셔도 되거든요!
-어. 고맙다. 근데 그럼 너 그 시간에 테스타 화보 촬영해야 할 텐데.
-허어어업.
물론 농담이다.
청려에게 연락을 받은 날로부터 이틀 후 저녁. 이동 및 마사지 시간을 합쳐서 대강 1시간쯤 뺄 수 있어서 이 시간을 사용했다.
뭐, 마사지가 기분 나쁜 경험을 아니겠지. 하지만 어쨌든 큰달이 이쪽을 배려해 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빚졌군.’
이번에도 제대로 정산해 주도록 하자. 나는 대강 금액을 계산하며 컵을 도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여긴 지난번에 몇 번 청려와 만났던 야외 카페가 아니라 룸 형태의 한식 코스 요리 집이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
“월!”
애견 동반이 가능한 집이라는 것이다.
‘기어코 개를 또 데려왔군….’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방바닥에 발라당 누워있는 큼직한 개가 하네스로 잡혀있는 것을 확인한 뒤, 줄을 잡고 있는 놈을 쳐다보았다.
청려.
무채색 사복을 입고 온 녀석은 내가 왜 류건우 모습인지 대충 설명을 듣고서도 폭소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반응했다.
“계속 몸을 바꾸다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될 텐데.”
“…….”
“지금까지 일을 고려하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작정 그냥 쓰는 게 아니야.”
“음?”
이러다 시스템 개지랄에 또 끌려다니면 어쩌냐고? 당연히 고민해 봤다.
내가 어지간히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그랬겠냐.
“빈도수를 패턴에 맞춰서 쓰고 있지.”
이건 ‘특별히’ 시스템을 딱 집어 이 용도로만 오늘 사용한 게 아니다.
애초에 사흘에 한 번 빈도로 시스템을 정기 사용 중이거든.
“이 시스템이라는 건 내가 자기를 자주 쓰는 상황을 계속 만들려는 것 같은데, 아예 ‘얼마나 자주 쓰는지’ 순위를 못 매기게 매번 똑같은 간격으로 쓰는 거야.”
일부러 쓸모없는 기능 위주로 썼기 때문에 내가 이 성능에 감화될 가능성도 없다.
‘그러다가 이렇게 진짜로 필요할 때는… 이렇게 한 번씩 바꿔치기하는 거지.’
이러면 진짜 필요해서 쓴 게 어떤 건지 가려내지 못하니, 사흘에 한 번 쓰는 정기적 패턴만 시스템의 기록에 남는 것이다.
한마디로, 데이터 눈속임이다.
맞은편에 앉은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후배님이 생각할 법한 방법이네요.”
욕이냐?
나는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무슨 방법을 생각했는데.”
“버려야죠. 쓰지 말고.”
“…….”
뭐… 정설이군.
솔직히 말하자면, 저놈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건한 선택지다.
근데 내가 지금 회사 시스템 없애면 네가 제일 손해일 텐데 말이다.
‘너한테 있는 시스템 파편을 흡수 안 하면 미션 실패로 무슨 일이 날지 알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거 좀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긴 하군. 파편 처리한 후에 그걸 명분으로 이놈한테 정보라도 뜯어내야겠다.
‘일단 이득을 본 이상 뭐라도 토해낼 수밖에 없겠지.’
물론 지금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사정이 좀 있어서. 아무튼… 왜 만나자고 부른 거냐.”
빨리 본론 들어가자 이거다.
지금 뒈지게 바쁜 판이다. ‘흑흑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같은 개소리가 나오진 않겠지.
청려 놈이 약간 서운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입대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개소리 말고.”
“하하!”
응, 그럴 줄 알았다.
“음,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있긴 하죠.”
청려는 빙긋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콩이요.”
“…….”
나는 고개를 내려서, 여전히 방바닥에 배 까고 누운 털복숭이를 보았다.
야 설마….
“너 들어가 있을 동안 나더러 봐달라는 거냐.”
“네.”
제정신인가?
지금 우리 숙소에서 뭉게도 못 돌보니 배세진 어머님이 입양하신 판인데 무슨 남의 개를 키운단 말인가.
‘잠깐.’
나는 즉시 반박하려다가, 이 패턴이 상당히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저놈이 사람 개빡치게 만들 때 쓰는 패턴인데.’
“물론 전문업체에 맡길 예정이에요. 설마 후배님 숙소에서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이해한 건 아니죠?”
역시.
‘저거 혓바닥만 길어서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죽을 한술 떴다.
“부모님은.”
“어머니는… 음, 강아지를 맡을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해두죠. 워낙 바쁜 사람이라. 개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나도 바쁘다, 이 새끼야.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의 어머님이 국가유공자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입을 다물었다. 청려는 실실 웃었다.
설마 일부러 노렸냐?
“그리고 이런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맡아야 잘하니까.”
내가?
“너희 개를?”
“네.”
그리고 청려는 잡고 있던 하네스 줄을 풀었다.
왕!
맹렬히 노란 털복숭이가 이쪽으로 달려든다.
‘무슨.’
이쪽이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대충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너희 개가 사람을 좋아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죠.”
웃기는 놈.
청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개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답지 않게 약간 고심하는 것 같은 기색이다.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런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는 고용한 사람의 품성은 안 믿거든.”
“…….”
그러고 보니, 숙소 하우스 키퍼가 포도 껍질을 안 치워서 이 녀석이 입원했던가.
‘뭐, 여러 사람이 크로스체크하면 문제 생길 확률이 낮아지긴 하지.’
그리고 저놈 인맥 중에 사정 아는 놈들은 이미 다 입대해버렸기 때문에 왜 나한테까지 제안이 온 건지는 알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방문해서 상태만 체크해 주면 돼요. 간단하죠?”
음.
“시간이 괜찮다면… 콩이와 함께 있어 주면 더 좋고.”
“…….”
아, 망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장담은 못 한다.”
“…!”
“그래도 좋다면….”
“좋아요.”
아니.
“장담 못 한다니까.”
“하하, 후배님 성격에?”
“…….”
“한번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음… 고마워요.”
놀랍게도, 청려는 꽤 진심으로 보였다.
‘…후.’
어차피 시스템 파편 회수하려면 저놈 복무 중에 면회라도 한번 가야 할 판이다. 이걸 이유로 하면 더 자연스럽긴 하겠지.
결국 나는 이놈 개를 한 번씩 확인해 주기로 했다.
물론 맨입으로는 안 되고.
이 정도는 듣고 가자.
“너희 내년 컴백이 정확히 언제냐.”
“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추측할 수 있을 텐데요.”
뭐, 정확한 날짜는 리스크 감안해서 말 안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만 들어도 대충 각은 나오는군.
‘6월 중에 VTIC에게 의미 있는 날짜라는 거지.’
나는 순식간에 날짜 몇 가지를 특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때 동시에 컴백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게요.”
미쳤나.
“어. 너도.”
“하하.”
나는 개를 도로 녀석에게 돌려보내며, 다시 젓가락을 들려고 했다.
그때 탁자 건너편에서 도전적인 덕담이 들렸다.
“이번 컴백, 잘해봐요.”
“그래.”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나는 손을 뻗은 청려와 악수했다.
“근데 너 군악대냐?”
“아니요. 어학병인데.”
“…….”
“외국어 습득은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던데, 워낙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보니.”
정말 독한 새끼다.
며칠 후.
-ㅠㅠ재현이 조용히 갔네.. 6개월 존버 할게
-신재현 왜 군악대가 아니라 어학병인데 대체 외국어를 얼마나 잘하는 거임
└글로벌 케이팝 리더 짬밥이래
청려는 예정대로 입대했고, VTIC 단체 컴백까지는 반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반년.
‘그 안에 문화훈장을 받게 판을 바꿔놔야 해.’
그런 의미에서 이번 컴백의 목표는 확실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스타는 공격적인 컴백 프로모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