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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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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7화
티저가 공개된 날 오전.
멤버들을 거실에 불러 모은 김래빈은 마치 명절날 세배라도 준비하는 것처럼 그 앞에 엄숙히 섰다.
어쩐지 학교 성적표를 받는 부모나 가족이 된 기분으로 박문대는 녀석을 훑었다.
‘거참.’
김래빈은 지난 몇 주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로감에 찌든 모습이었다.
박문대는 무심히 입을 열었다.
“…일단 자고 이야기할까.”
“저를 배려하셔서 제안해 주신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드릴 말씀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은 매우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우선 죄송합니다.”
“…??”
‘트레일러를 끝장나게 잘 만들고 혼자 출연해서 미안하다는 건가?’
‘…그동안 이렇게 만들 수 있었는데 실력을 숨겨서 미안하다고?’
멤버들에 머릿속에 얼토당토않은 해석이 스쳐 지나갔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해석을 폐기했다.
그리고 친절한 미소나 짓기로 결심한 멤버들에게, 김래빈이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해당 티저에는 제 개인적인 감상이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안다.
“그러나 이 티저는 테스타의 새 앨범을 소개하는 대표 작업물입니다. 제 개인 작업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멤버들은 김래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우리 앨범인데 저 혼자만의 이야기를 담아서 죄송해요!
“앨범과의 연결점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작업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상징물과 은유를 사용했는지도 체계적으로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
김래빈은 침을 삼키더니, 굳건하게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 꼭 사과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짧은 침묵이 흐를 새도 없이, 당장 말이 치고 들어왔다.
“김래빈 바보야? 빨리 앉아!”
“…?!”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거실 러그 위에 앉아 있었다.
“래빈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
“그러게. 잘 만들어놓고는.”
비난 없이 따스한 타박이 이어졌다. 김래빈은 배세진이 무뚝뚝한 얼굴로 내미는 꿀차를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신의 등을 느리게 두드렸다.
박문대였다.
“네가 굳이 자세하게 설명 안 해도 티저와 앨범이 잘 연결된 건 알아볼 수 있어. 같이 만든 앨범이니까.”
그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네가 만든 콘티나 진행 과정은 다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했어. 알고 있지?”
“…예.”
“그래. 그럼 컨펌 받고 진행한 걸로 괜한 생각 말고.”
그는 약간 갈등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조회수도 잘 나왔으니, 좀 즐겨.”
그 말을 하는 박문대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래빈은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비밀이 있었다.
사실 그는 멤버들이 이렇게 반응할 것을 어렴풋이 기대하고 예상했다.
타박하거나 비난할 팀원들이 아니라는 점은 지난 몇 년간 함께 울고 웃으며 체득한 사실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한 거야.’
이 반응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스티어의 기억은 거의 충격적일 정도로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릴 만한 상황에 상당히 과민한 상태였다.
비판과 비난에 말이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안에서 비난당할 당위성을 찾아내고 논리를 생각해내는 연쇄를 끊기 위해, 김래빈에겐 반례가 필요했다.
현실에서 그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고생했어. 잘했다, 래빈아.”
그리고 그 시도는 아주 성공적으로 돌아왔으며, 김래빈은 마침내 지난 몇 주간 자신을 잡고 있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은 뜨겁고, 가슴이 가벼워졌다.
그는 꿀차를 꽉 쥐었다.
“래빈아, 티저, 마음에 들어…?”
“솔직히, 만든 사람이 직접 봐도 멋졌을 것 같긴 해~ 감상이 어때!”
“그건…….”
이제 김래빈은 더는 걱정하지 않는 채로, 그 질문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곰곰이 생각해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후련했습니다. 제가 느낀 심상을 구현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저 자체보다는, 그 티저를 만들면서 느꼈던 감상이었다.
그는 이미 테스타로 데뷔하여 수많은 성공을 경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성적으론 스티어 시절, 자신의 자아 학대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례를 들어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티어 시절 자신이 왜 그토록 악의적이며 궤변에 가까운 논리들을 받아들였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저리도록.
왜냐하면, 둘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부끄럽지만… 사실 이 티저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낸 곡입니다.”
주변이 살짝 고요해졌다.
김래빈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건 대중분들께 공개된 사연이 아니니, 다소 모호하고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Nope!”
‘최대한 보완하려 노력했습니다’라는 마무리 문구가 싹둑 잘려 나갔다.
“바보야, 해석 다 달라서 재밌는 거야! 그래서 멋졌어. [그 티저는 말 그대로 쿨했다고!]”
김래빈은 얼빠진 얼굴로 차유진을 바라보았다.
차유진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리고….
‘진심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확실한 답이 없기 때문에 더 재밌다고?
그 생각에 대답해 주듯이, 차유진의 말을 보충해 주듯이 박문대가 말을 이었다.
“그래.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아는 대로, 경험한 대로 해석하고 이해했을 테니까.”
그것도 좋은 바이럴이 됐을 것이라는 뒷말을 양심상 삼킨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티저를 봤지. 그중에는 네가 생각했던 그대로 티저를 이해한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 말은 어딘가 울림이 있었다.
김래빈은 자연스럽게 그 광경을 짧게 상상하게 되었다.
비난과 비판으로 고뇌하는 누군가.
그 사람이 자신이 만든 티저를 우연히 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어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장면을.
내 이야기구나 생각하는 장면을.
그는 곧 약간 목이 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일 그가 대중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전긍긍 작업물을 재조립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김래빈은 새삼 다시 다짐했다.
-참고는 하되, 휘둘리지는 말자.
머릿속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
그는 맑은 정신으로 굳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뭘.”
이세진이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자, 우리 앨범에 이렇게 멋진 트레일러가 나왔으니까 건배나 할까요?”
“으응, 좋아…!”
고개를 끄덕인 멤버들은 찬물부터 헛개수까지 자기가 원하는 음료를 대충 따라서 분위기를 냈다.
배세진은 자신이 티저에서 찾아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레퍼런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세진은 팬이 해석한 위튜브 영상을 소개했다.
김래빈은 그 모든 것을 진지하게, 그러나 즐겁게 받아들였다.
몇 년이나 겪어온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좋다.’
그 틈에서 김래빈은 깊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지난 몇 주, 그는 흘러 넘치는 고통을 자극적인 영감으로 승화하는 것에 성공하긴 했다.
그 자극이 창작을 위한 계기를 주었지만,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쉬지 않고 창조적인 일을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 전에 지치고 고갈될 테니까.
안정과 회복의 시기 역시 다음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김래빈은 지금, 겨우 그런 정신적 휴식을 맞이했다.
‘감사하다….’
그는 감정을 덜어놓고, 드디어 속 편히 웃었다.
그리고 졸도했다.
“…?! 래빈아??”
“Ooooooh 김래빈!”
긴장이 이완되며, 밤샘의 후유증이 닥쳐온 것이다.
행복한 졸도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Oh….”
“차유진. 다리는 네가 들어라. 내가 머리를 들 테니까.”
“문대문대 너도 쉬기나 하세요.”
곧바로 숙면 상태로 접어든 김래빈은 허둥지둥 일어난 멤버들에 의해 침대로 옮겨졌다.
새 앨범을 발표까지 단 10일을 남긴 시점이었다.
“…….”
그리고 이 시점에서, 박문대는 김래빈의 팔 한 짝을 들며 모종의 결심을 했다.
* * *
김래빈은 평온한 무의식에 잠겨 있었다.
따스하고 좋은 기분으로 모호한 꿈을 꾼다. 이대로 푹 잠들어 한참 후에나 깨어나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언어화되지도 않은 채 머릿속을 부드럽고 기분 좋게 울리길 한창….
찬물을 끼얹듯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깼냐.”
할머니!
답지 않게 보호자를 부르짖으며 눈을 번쩍 뜬 김래빈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문대와 눈이 마주쳤다.
티벳 여우라는 별칭이 딱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인 그 형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
다시 보니, 그 형은 양털 플리스를 걸친 외출복 차림이었다.
“어디 나가십니까…?”
“어. 샵에. 홍보 위튜브 채널이 잡혀서.”
그러고 보니 컴백이 코앞이지!
김래빈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배웅을 위해 따라 나갔다.
‘대체 나는… 언제 잠든 거지??’
눈앞이 핑글핑글 돌 것 같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선 세 명의 형은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출발해버렸다.
바로 박문대, 선아현, 이세진.
방송에서 이래저래 관계성 이야기 하기 좋은 동갑내기 3인이었다.
“다, 다녀올게요…!”
“앨범 홍보 제대로 하고 오겠습니다~”
탁.
현관문은 경쾌하게 닫혔다.
그리고 김래빈은 멍하니 현관에 남았다.
“…….”
누구…에게 이 상황을 물어봐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툭툭.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래빈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배세진 형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흠, 밥 먹자.”
“예…….”
얼결에 대답한 김래빈은 무의식중에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식탁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치킨 스프…….’
하얀 국물 요리가 접시에 담겨 서빙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걸 만드는 사람은 이 팀에서 한 명뿐이었다.
‘차유진!’
그렇다.
다만 차유진은 이번엔 고추장을 풀어 넣어 닭볶음탕처럼 만들어 버리는 대신, 어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한 전통 스프를 만들어놓았다.
“Bon app?tit.”
어깨를 으쓱한 차유진은 ‘잘 먹겠습니다’쯤에 해당하는 관용어를 툭 뱉으며 식탁에 앉았다. 김래빈은 그 자연스러움에 질문도 잊고, 스프를 한술 떠서 입에 가져갔다.
어딘가 전보다 익숙한 건….
‘아.’
김래빈은 깨달았다.
스티어 때 가끔 먹었던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땐 차유진이 종종 요리를 했었어….’
사람을 붙여 케어해 주는 회사와 요리를 잘하는 멤버까지 다 갖춰진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배달을 시켜 먹거나 간간이 돌아가며 요리를 했었다.
불쑥 떠오르는 흐릿한 기억에 김래빈은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스티어 때 함께 한 멤버들만이 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맛있어요? 전에 먹은 거 기억나요?”
심지어 차유진은 대놓고 그렇게 물었다.
순간, 짧은 침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배세진이 먼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먹어 본 기억은 없어. 아니, 그… 지난번에 네가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해준 걸 먹어 보긴 했지만.”
“그렇겠네. 유진이가 요리를 시작한 게 데뷔하고 만 1년이 지나서였으니까.”
네가 탈퇴한 후야.
류청우는 그 말을 굳이 붙이진 않았으나, 다들 내포된 의미는 알아들었다.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Oh… 형 기억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럼 제 요리 안 먹고 버린 것도 기억해요?”
그, 그건 가벼운 어조로 꺼낼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김래빈까지 그 생각을 했으나, 어딘가 스티어 당시가 생각나는 이 분위기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는 식탁에서 말대답은 절대 못 했으니까!
“기억 안 나요? 크리스마스 이브.”
“…….”
류청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내면에서 갈등하듯이 주저했으나, 곧 차분하게 대꾸했다.
“버린 건 내가 아니었어.”
“What?!”
“민정훈이었을 거야.”
류청우는 구체적인 이름을 하나 댔다. 열애설이 터졌던 모 스티어 멤버였다.
차유진은 숟가락으로 탁자를 칠뻔했다.
“Holy sh…, 그럼 왜 오해라고 말 안 했어요?”
“그럴 필요가 없어서.”
류청우는 또 한 번 말을 꺼낼지 말지 갈등하는 것 같았으나, 곧 상당히 무감한 어조로 대꾸했다.
“너희가 싸울 것 같아서 내가 한 걸로 정리했어. 그편이 통제하기 쉬울 것 같았거든. 너는 내 말은 들었으니까.”
“…….”
곧 차유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OK. [전형적인 “스티어 리더” 짓이네요. 물어본 내 잘못이지.]”
차유진은 상당히 시니컬하게 대꾸했으나, 그것에 악의는 없다는 것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긴장감은 조성되지 않았다. 그 대신 류청우가 희미하게 피식 웃는 걸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오해가 풀린 사람 간에 조정될 법한, 약간 쑥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말 없는 숟가락질이 이어졌다.
‘음.’
김래빈은 의외의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된 과거, 그것도 불편한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둘러앉아 있다.
사실 불편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이 분위기에 어딘가 약간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시기라도, 좋은 결말을 맞이했을 때는 돌아보며 추억할 거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시기를 같이 견뎌 온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더더욱.
“너 후추를 대체 얼마나 뿌린 거야?”
“아픈 사람 아니면 먹을 수 있어요. 이거 맞아요!”
그들은 묵묵히 스프를 다 비웠다.
그렇게 한번 잊었다가 기억해 낸 과거를 정리했다.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
* * *
같은 시각.
홍보용 먹방 예능 위튜브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문대는 문자를 하나 받았다.
아주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후배님, 사흘 내로 한번 만나요. 되도록 직접 보는 방식으로.
‘미친놈아 나 컴백이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도 박문대는 아직 촬영장인 주변을 의식해 예의 바르며 알맹이 없는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내가 나흘 후에 입대라서^^
“…?? ……!!”
VTIC. 리더 청려를 마지막으로 전원 입대까지 앞으로 나흘.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7화

티저가 공개된 날 오전.

멤버들을 거실에 불러 모은 김래빈은 마치 명절날 세배라도 준비하는 것처럼 그 앞에 엄숙히 섰다.

어쩐지 학교 성적표를 받는 부모나 가족이 된 기분으로 박문대는 녀석을 훑었다.

‘거참.’

김래빈은 지난 몇 주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로감에 찌든 모습이었다.

박문대는 무심히 입을 열었다.

“…일단 자고 이야기할까.”

“저를 배려하셔서 제안해 주신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드릴 말씀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은 매우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우선 죄송합니다.”

“…??”

‘트레일러를 끝장나게 잘 만들고 혼자 출연해서 미안하다는 건가?’

‘…그동안 이렇게 만들 수 있었는데 실력을 숨겨서 미안하다고?’

멤버들에 머릿속에 얼토당토않은 해석이 스쳐 지나갔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해석을 폐기했다.

그리고 친절한 미소나 짓기로 결심한 멤버들에게, 김래빈이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해당 티저에는 제 개인적인 감상이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안다.

“그러나 이 티저는 테스타의 새 앨범을 소개하는 대표 작업물입니다. 제 개인 작업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멤버들은 김래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우리 앨범인데 저 혼자만의 이야기를 담아서 죄송해요!

“앨범과의 연결점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작업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상징물과 은유를 사용했는지도 체계적으로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

김래빈은 침을 삼키더니, 굳건하게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 꼭 사과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짧은 침묵이 흐를 새도 없이, 당장 말이 치고 들어왔다.

“김래빈 바보야? 빨리 앉아!”

“…?!”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거실 러그 위에 앉아 있었다.

“래빈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

“그러게. 잘 만들어놓고는.”

비난 없이 따스한 타박이 이어졌다. 김래빈은 배세진이 무뚝뚝한 얼굴로 내미는 꿀차를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신의 등을 느리게 두드렸다.

박문대였다.

“네가 굳이 자세하게 설명 안 해도 티저와 앨범이 잘 연결된 건 알아볼 수 있어. 같이 만든 앨범이니까.”

그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네가 만든 콘티나 진행 과정은 다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했어. 알고 있지?”

“…예.”

“그래. 그럼 컨펌 받고 진행한 걸로 괜한 생각 말고.”

그는 약간 갈등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조회수도 잘 나왔으니, 좀 즐겨.”

그 말을 하는 박문대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래빈은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비밀이 있었다.

사실 그는 멤버들이 이렇게 반응할 것을 어렴풋이 기대하고 예상했다.

타박하거나 비난할 팀원들이 아니라는 점은 지난 몇 년간 함께 울고 웃으며 체득한 사실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한 거야.’

이 반응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스티어의 기억은 거의 충격적일 정도로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릴 만한 상황에 상당히 과민한 상태였다.

비판과 비난에 말이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안에서 비난당할 당위성을 찾아내고 논리를 생각해내는 연쇄를 끊기 위해, 김래빈에겐 반례가 필요했다.

현실에서 그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고생했어. 잘했다, 래빈아.”

그리고 그 시도는 아주 성공적으로 돌아왔으며, 김래빈은 마침내 지난 몇 주간 자신을 잡고 있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은 뜨겁고, 가슴이 가벼워졌다.

그는 꿀차를 꽉 쥐었다.

“래빈아, 티저, 마음에 들어…?”

“솔직히, 만든 사람이 직접 봐도 멋졌을 것 같긴 해~ 감상이 어때!”

“그건…….”

이제 김래빈은 더는 걱정하지 않는 채로, 그 질문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곰곰이 생각해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후련했습니다. 제가 느낀 심상을 구현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저 자체보다는, 그 티저를 만들면서 느꼈던 감상이었다.

그는 이미 테스타로 데뷔하여 수많은 성공을 경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성적으론 스티어 시절, 자신의 자아 학대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례를 들어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티어 시절 자신이 왜 그토록 악의적이며 궤변에 가까운 논리들을 받아들였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저리도록.

왜냐하면, 둘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부끄럽지만… 사실 이 티저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낸 곡입니다.”

주변이 살짝 고요해졌다.

김래빈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건 대중분들께 공개된 사연이 아니니, 다소 모호하고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Nope!”

‘최대한 보완하려 노력했습니다’라는 마무리 문구가 싹둑 잘려 나갔다.

“바보야, 해석 다 달라서 재밌는 거야! 그래서 멋졌어. [그 티저는 말 그대로 쿨했다고!]”

김래빈은 얼빠진 얼굴로 차유진을 바라보았다.

차유진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리고….

‘진심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확실한 답이 없기 때문에 더 재밌다고?

그 생각에 대답해 주듯이, 차유진의 말을 보충해 주듯이 박문대가 말을 이었다.

“그래.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아는 대로, 경험한 대로 해석하고 이해했을 테니까.”

그것도 좋은 바이럴이 됐을 것이라는 뒷말을 양심상 삼킨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티저를 봤지. 그중에는 네가 생각했던 그대로 티저를 이해한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 말은 어딘가 울림이 있었다.

김래빈은 자연스럽게 그 광경을 짧게 상상하게 되었다.

비난과 비판으로 고뇌하는 누군가.

그 사람이 자신이 만든 티저를 우연히 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어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장면을.

내 이야기구나 생각하는 장면을.

그는 곧 약간 목이 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일 그가 대중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전긍긍 작업물을 재조립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김래빈은 새삼 다시 다짐했다.

-참고는 하되, 휘둘리지는 말자.

머릿속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

그는 맑은 정신으로 굳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뭘.”

이세진이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자, 우리 앨범에 이렇게 멋진 트레일러가 나왔으니까 건배나 할까요?”

“으응, 좋아…!”

고개를 끄덕인 멤버들은 찬물부터 헛개수까지 자기가 원하는 음료를 대충 따라서 분위기를 냈다.

배세진은 자신이 티저에서 찾아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레퍼런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세진은 팬이 해석한 위튜브 영상을 소개했다.

김래빈은 그 모든 것을 진지하게, 그러나 즐겁게 받아들였다.

몇 년이나 겪어온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좋다.’

그 틈에서 김래빈은 깊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지난 몇 주, 그는 흘러 넘치는 고통을 자극적인 영감으로 승화하는 것에 성공하긴 했다.

그 자극이 창작을 위한 계기를 주었지만,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쉬지 않고 창조적인 일을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 전에 지치고 고갈될 테니까.

안정과 회복의 시기 역시 다음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김래빈은 지금, 겨우 그런 정신적 휴식을 맞이했다.

‘감사하다….’

그는 감정을 덜어놓고, 드디어 속 편히 웃었다.

그리고 졸도했다.

“…?! 래빈아??”

“Ooooooh 김래빈!”

긴장이 이완되며, 밤샘의 후유증이 닥쳐온 것이다.

행복한 졸도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Oh….”

“차유진. 다리는 네가 들어라. 내가 머리를 들 테니까.”

“문대문대 너도 쉬기나 하세요.”

곧바로 숙면 상태로 접어든 김래빈은 허둥지둥 일어난 멤버들에 의해 침대로 옮겨졌다.

새 앨범을 발표까지 단 10일을 남긴 시점이었다.

“…….”

그리고 이 시점에서, 박문대는 김래빈의 팔 한 짝을 들며 모종의 결심을 했다.

* * *

김래빈은 평온한 무의식에 잠겨 있었다.

따스하고 좋은 기분으로 모호한 꿈을 꾼다. 이대로 푹 잠들어 한참 후에나 깨어나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언어화되지도 않은 채 머릿속을 부드럽고 기분 좋게 울리길 한창….

찬물을 끼얹듯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깼냐.”

할머니!

답지 않게 보호자를 부르짖으며 눈을 번쩍 뜬 김래빈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문대와 눈이 마주쳤다.

티벳 여우라는 별칭이 딱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인 그 형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

다시 보니, 그 형은 양털 플리스를 걸친 외출복 차림이었다.

“어디 나가십니까…?”

“어. 샵에. 홍보 위튜브 채널이 잡혀서.”

그러고 보니 컴백이 코앞이지!

김래빈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배웅을 위해 따라 나갔다.

‘대체 나는… 언제 잠든 거지??’

눈앞이 핑글핑글 돌 것 같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선 세 명의 형은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출발해버렸다.

바로 박문대, 선아현, 이세진.

방송에서 이래저래 관계성 이야기 하기 좋은 동갑내기 3인이었다.

“다, 다녀올게요…!”

“앨범 홍보 제대로 하고 오겠습니다~”

탁.

현관문은 경쾌하게 닫혔다.

그리고 김래빈은 멍하니 현관에 남았다.

“…….”

누구…에게 이 상황을 물어봐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툭툭.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래빈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배세진 형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흠, 밥 먹자.”

“예…….”

얼결에 대답한 김래빈은 무의식중에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식탁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치킨 스프…….’

하얀 국물 요리가 접시에 담겨 서빙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걸 만드는 사람은 이 팀에서 한 명뿐이었다.

‘차유진!’

그렇다.

다만 차유진은 이번엔 고추장을 풀어 넣어 닭볶음탕처럼 만들어 버리는 대신, 어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한 전통 스프를 만들어놓았다.

“Bon app?tit.”

어깨를 으쓱한 차유진은 ‘잘 먹겠습니다’쯤에 해당하는 관용어를 툭 뱉으며 식탁에 앉았다. 김래빈은 그 자연스러움에 질문도 잊고, 스프를 한술 떠서 입에 가져갔다.

어딘가 전보다 익숙한 건….

‘아.’

김래빈은 깨달았다.

스티어 때 가끔 먹었던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땐 차유진이 종종 요리를 했었어….’

사람을 붙여 케어해 주는 회사와 요리를 잘하는 멤버까지 다 갖춰진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배달을 시켜 먹거나 간간이 돌아가며 요리를 했었다.

불쑥 떠오르는 흐릿한 기억에 김래빈은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스티어 때 함께 한 멤버들만이 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맛있어요? 전에 먹은 거 기억나요?”

심지어 차유진은 대놓고 그렇게 물었다.

순간, 짧은 침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배세진이 먼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먹어 본 기억은 없어. 아니, 그… 지난번에 네가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해준 걸 먹어 보긴 했지만.”

“그렇겠네. 유진이가 요리를 시작한 게 데뷔하고 만 1년이 지나서였으니까.”

네가 탈퇴한 후야.

류청우는 그 말을 굳이 붙이진 않았으나, 다들 내포된 의미는 알아들었다.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Oh… 형 기억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럼 제 요리 안 먹고 버린 것도 기억해요?”

그, 그건 가벼운 어조로 꺼낼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김래빈까지 그 생각을 했으나, 어딘가 스티어 당시가 생각나는 이 분위기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는 식탁에서 말대답은 절대 못 했으니까!

“기억 안 나요? 크리스마스 이브.”

“…….”

류청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내면에서 갈등하듯이 주저했으나, 곧 차분하게 대꾸했다.

“버린 건 내가 아니었어.”

“What?!”

“민정훈이었을 거야.”

류청우는 구체적인 이름을 하나 댔다. 열애설이 터졌던 모 스티어 멤버였다.

차유진은 숟가락으로 탁자를 칠뻔했다.

“Holy sh…, 그럼 왜 오해라고 말 안 했어요?”

“그럴 필요가 없어서.”

류청우는 또 한 번 말을 꺼낼지 말지 갈등하는 것 같았으나, 곧 상당히 무감한 어조로 대꾸했다.

“너희가 싸울 것 같아서 내가 한 걸로 정리했어. 그편이 통제하기 쉬울 것 같았거든. 너는 내 말은 들었으니까.”

“…….”

곧 차유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OK. [전형적인 “스티어 리더” 짓이네요. 물어본 내 잘못이지.]”

차유진은 상당히 시니컬하게 대꾸했으나, 그것에 악의는 없다는 것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긴장감은 조성되지 않았다. 그 대신 류청우가 희미하게 피식 웃는 걸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오해가 풀린 사람 간에 조정될 법한, 약간 쑥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말 없는 숟가락질이 이어졌다.

‘음.’

김래빈은 의외의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된 과거, 그것도 불편한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둘러앉아 있다.

사실 불편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이 분위기에 어딘가 약간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시기라도, 좋은 결말을 맞이했을 때는 돌아보며 추억할 거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시기를 같이 견뎌 온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더더욱.

“너 후추를 대체 얼마나 뿌린 거야?”

“아픈 사람 아니면 먹을 수 있어요. 이거 맞아요!”

그들은 묵묵히 스프를 다 비웠다.

그렇게 한번 잊었다가 기억해 낸 과거를 정리했다.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

* * *

같은 시각.

홍보용 먹방 예능 위튜브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문대는 문자를 하나 받았다.

아주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후배님, 사흘 내로 한번 만나요. 되도록 직접 보는 방식으로.

‘미친놈아 나 컴백이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도 박문대는 아직 촬영장인 주변을 의식해 예의 바르며 알맹이 없는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내가 나흘 후에 입대라서^^

“…?? ……!!”

VTIC. 리더 청려를 마지막으로 전원 입대까지 앞으로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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