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2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5화
스티어 김래빈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소속 그룹은 악재에 시달렸으며, 그는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곡을 만들거나 프로듀싱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불면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래빈은 그것들을 털어놓을 가족이 있었고, 스케줄이 꽉 차 있지 않은 밤이면 으레 베란다에서 통화를 하곤 했다.
-너무 염려 안 해도 돼, 래빈아.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렇더라. 사회 초년생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 해.
그의 누나는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예시를 들며 자주 그렇게 위로했고, 끝에는 격려의 말도 덧붙였다.
-시간 지나면 또 네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야.
그리고 그 말을 김래빈은 믿었다.
그는 감사와 안부를 전하며 통화를 마무리하고 조심히 베란다에서 자신의 방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가끔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너무 오래 나가 있지 마.”
“죄송합니다.”
류청우는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고, 긴장하던 김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김래빈은 어떤 상황이든 좋은 점을 잘 찾아내는 편이었다.
“김래빈 빨리 자!”
“너도 얼른 자.”
이 그룹엔 10대 때부터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던 동갑 친구가 있었다. 왠지 또래와 가까워지기 어렵던 그에게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데뷔하여 여러 무대를 경험해 보고, 곡을 발매하는 경험 자체를 얻었지 않은가.
‘종합적으로, 내 상황은 감사할 만한 상황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몇몇 멤버처럼 우울감이나 절망에 잠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힘을 쏟아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은 끝나지 않을 듯이 흘러가더니, 곧 거짓말처럼 깔끔한 끝을 맞이했다.
그룹 해체.
-잘 가, 차유진.
탈력감, 번아웃은 김래빈에게도 피해갈 수 없이 찾아왔다. 5년을 힘겹게 최선을 다해 쏟아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래빈은 매몰되진 않았다.
‘조금만 쉬고 계획대로 수행하자!’
그는 벌써 새로운 진로에 대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비록 스티어가 그리 좋지 않은 활동 끝에 끝을 맞이했다고 해도, 크지 않게나마 투어도 돌고 앨범을 수십 만장 팔 정도의 여력은 있었다.
거기서 모아둔 돈이면, 집에 보낸 것을 제외해도 장비에 투자하여 괜찮은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곡으로 활동하는 것도 도전해 보고 싶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무궁무진했다. 더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김래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원도로 돌아가 평온한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류청우 형님 : 잘 지내고 있어?
보름쯤 후, 그룹의 리더였던 연장자에게 문자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아.’
김래빈은 반사적으로 등골을 펴며 빠릿빠릿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다가, 자신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억지로 이완했다.
‘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위의 문자를 적던 그는, 문득 자신이 이제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인터넷을 말이다.
-규칙 세 번째, 허가 없이 SNS에 접속하지 않는다.
그룹 활동 동안에는 류청우는 꽉 짜인 규율로 기숙학교처럼 팀원을 감시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래빈은 몇 년이나 인터넷과 멀어진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큰 관심도 없었고, 가끔 플랫폼에 익명으로 곡을 올리는 용도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룹의 규칙이었다.
‘지금은 해당하지 않는 것 아닌가?’
스티어는 이미 해체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무 허점이 없었다. 이 상황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가진 두려움과 학습된 금지 때문이니까.
그는 약간 울적해질 뻔했으나, 곧 목적의식을 되찾았다.
‘좋아!’
김래빈은 우선 류청우에게 예의 바른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조금 망설였지만, 피드백을 받기 위해 SNS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잘생겼어 (사진) #김래빈
-킹래빈.. 흑토끼황제 (동영상)
-래빈이 보고 싶다ㅠㅠ
마지막 활동기에 작성된 글들, 그리고 최근 근황을 알 수 없는 자신을 찾는 다정한 글이 쏟아졌다.
약간 마음이 아릿해질 뻔했으나, 그는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글들을 쭉 보았다.
‘SNS에는 아직도 팬분들이 많이 계시는구나.’
이미 죽은 계정이나 활동이 끊긴 계정이라는 것까지 알 정도의 탐색 능력은 몇 년간의 거리두기로 사라진 채였다.
그는 본명만을 넣은 검색어로 SNS를 인기글 위주로 몇 번 둘러보다가, 곧 다른 방식을 떠올리며 탭을 바꿨다.
‘다양한 곳을 보자.’
그리고 검색엔진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 순간.
‘…?’
그는 첫 번째 페이지에서 특이한 글을 보았다.
-…김래빈, 차유진, 민정훈, 스티어, 티원, 브이틱, 미리내, 티홀릭…….
다짜고짜 온갖 그룹명과 인명을 마구잡이로 붙인 것 같은 글이었다.
‘왜 이런 구조이지?’
김래빈은 무심코 그 글을 클릭했다. 그러자 페이지가 바뀌며,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이동한다.
“…!”
가십 게시판이었다.
때 온갖 루머의 온상이기도 했던 그곳에, 몇 주 전에 올라와 순위권을 차지했던 글이, 김래빈의 눈앞에 펼쳐졌다.
=====================
[스티어 해체했대]
(기사 캡처)
아주사 때는 진짜 대단한 남돌 나올 줄 알았는데 어쩐지 좀 허망하다
=====================
그리고 글의 기묘한 구조가 왜 그랬던 건지 깨달았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 그 글은 검색에 걸리기 위한 키워드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무심코 베스트 댓글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찬반이 미친 듯이 갈리는 장문의 문장들이 그의 시야를 뒤덮었다.
-스티어 문제점은 X도 아닌 컨셉용 프로듀싱 멤을 광푸쉬했다는 거임 심지어 아주사 때부터 인성 논란도 있었는데 대체 왜 얘를 민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논란도 많았지만 일단 기획력 문제가 가장 컸던 건 맞는 것 같아 암튼 멤버들 다 잘 살길ㅇㅇ
-기획력=프로듀싱 그리고 프로듀싱 참여한 멤버 하나뿐임 이걸로 설명 끝
-푸쉬 분쇄기 김레넨ㅋㅋㅋㅋ
“…….”
김래빈은 돌려 말하는 사람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어 규칙과, 묘사되는 특징은 충분히 분석하고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알아차렸다.
-적폐 새끼 X 같네ㅠ
그건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래빈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관련 내용을 계속 확인하기 시작했다.
-곡도 X 같이 만들면서 매번 지 파트 아득바득 챙기는 거 보면 진짜 한숨 나왔잖아
-방송에서 깍듯한 막내인 척 굴 때마다 진짜.. 하 그럴 시간에 푸쉬나 좀 잘 받아먹든가 이도저도 아니고 무대 보고 입덕하는 사람도 노잼 성격 아닌 척 욕심 부리는 거 보고 다 탈덕했을 듯
-눈깔 악개들이 올려치기 하고 있는 거 볼 때마다 토나왔는데 차라리 잘 해체했어 응 다시 볼일 없길ㅠ
-자기도 창피한 건 아나 봐 소식 없는 걸 보면ㅋㅋㅋ
마치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토해내기라도 하는 듯 비슷한 논조의 댓글은 몇 시간 전까지도 최신댓글로 달려 있었다.
-아 속 시원하다 진짜ㅠㅠ 드디어 머글들도 이 X 같음을 알았네
-악개 열폭 취급하는 거 짜증났는데 정의가 승리한 기분임ㅋㅋ
만일 이것들이 순수하게 근거 없는 비난, 악의로만 이루어진 문장들이었다면 김래빈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어의 실패 원인을 편하게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마침 개인감정으로 꼴 보기 싫은 멤버가 거기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래빈이 본 각각의 문장은 논리구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분석적인.
왜 스티어의 프로듀싱과 마케팅에 문제가 있는 건지, 왜 파트 분배가 불공정하며 문제가 있는 건지,
왜 김래빈 때문에 이 모든 사태가 초래된 것인지.
사실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일방적인 주장은 마치 진실처럼 들렸다. 자신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경멸을 표출하는 글에 패닉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자신이 프로듀싱을 전반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며, 과반수 이상이 억측에 불과하다는 차분한 반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얘네 싹 미친 거 아니냐’는 반대 의견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비난이 설득력 있게 보였다.
게다가 이 ‘팬’들은 단순히 비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유진이 본국에 돌아가서 안 돌아올 것 같아.. 어떡해 진짜 나 죽고 싶어
-솔직히 연애보다 본업에서 문제 있는 게 더 처맞을 일 아니야? 진짜 우리 애 왜 처맞았던 건 거야?ㅋㅋ
타인에 대한 애정, 울분, 억울함, 지침이 묻어났다.
“…….”
그래서 김래빈은, 피가 식은 듯 차가워진 손을 문지르며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걸까.’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
그는 말수가 없어졌다.
원래 사교적인 잡담에 능숙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다정한 말을 잘하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쉴 새 없이 말할 수도 있던 성향은 죽은 듯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가족들이 걱정 끝에 그에게 묻게 되었다.
“래빈아, 너 무슨 일 있어?”
“…….”
“김래빈!”
“…그러니까,”
결국 김래빈은 자신이 본 모 가쉽 게시판의 글과, 그것을 통해 링크로 찾아 들어간 익명 사이트를 본 것까지 누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걸 왜 봤어!”
누나는 기겁하고 그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김래빈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대답이 필요했다.
스티어라는 그룹이 잘 되지 못한 것에 자신의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
하지만 가족은 정색하고 그의 말을 잘랐다.
“래빈아. 걔네 다 제정신 아닌 애들이야. 자기 인생이나 살지 무슨 연예인을 그렇게 욕해? 너 하나도 안 그랬으니까 그런 거 앞으로 보지 마. 알았지?”
무작정 자신을 옹호해 주는 것 같아 납득할 수는 없었으나, 계속 질문할 수도 없었다.
이야기할수록 가족이 너무도 괴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혼자 방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본 날, 김래빈은 스스로 생각해 정답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무서워하지 않고 곰곰이 고민하여 판단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생각했다.
‘우선….’
수많은 비판, 지적을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눌 수 있었다.
논제 1.
-김래빈의 프로듀싱 탓에 앨범 퀄리티가 떨어졌다.
김래빈은 프로듀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할당만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회사는 원하는 대로 그 결과물을 수정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기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선량함과 유능함은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하여 의견의 피력하지 못했다는 건 내 잘못이 맞는 것 같아.’
반성해야 한다고, 김래빈은 결론 내렸다.
다음은 논제 2.
김래빈은 목이 턱 막히는 느낌에 침대를 뒤척였다. 그리고 간신히 문장을 떠올렸다.
-김래빈은 좋은 파트를 독점하여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팀에 큰 악영향을 주었다.
김래빈은… 주어진 파트를 최선을 다해서 소화하려고 했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건지도 몰라.’
분석 글들을 보면, 왜 그 파트가 ‘파트를 처먹는’ 김래빈이 아닌 더 잘 어울리는 누군가에게 가야 하는지 강력히 적혀 있었다.
게다가 실증적 증거도 있었다.
‘우리 그룹은 잘 되지 못했어.’
자신은 중요한 파트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인상적인 파트들을 소화했다면, 더 유익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그리고 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
그러니까, 어쩌면 답은 간단했다.
-결론 : 김래빈은 아이돌로서의 능력이 없다.
처음, 어릴 적에 마음먹었던 대로 프로듀싱을 하는 게 옳았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올바르게 생각하려 애썼다.
좋은 방향으로.
‘이 팬분들이 비판하는 우리의 활동곡 요소들은 나 역시 문제점을 느꼈어.’
자신의 안목은 여전히 괜찮았다. 그러니까, 그 일은 계속해도 괜찮았다.
‘그래. 그렇게 하자.’
김래빈은 결론을 내렸고 드디어 머리가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곡을 만들 것이다.
‘거기까지는 할 수 있어.’
그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수정된 미래 계획을 다짐했다.
“…….”
눈물이 나오진 않았으나, 어쩐지 가슴이 공허하고 서러웠다.
* * *
테스타의 숙소.
김래빈은 쏟아진 기억을 폭포에 흠뻑 젖어 들어가는 것처럼 맞았다. 기억보다는 다시 체험하는 듯이, 그때의 감정이 생생했다.
마치, 참고 참다가 겨우 쏟아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가까운 누군가가 서럽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들으면 깊이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지금 김래빈에겐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었다.
“…….”
아직도 거실에서는 두 형이 대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리면서,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 나오는 거실을 등지고 조용히 어두운 방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머릿속은 찬물을 맞은 듯 얼얼하고 창백했다.
하지만 자료 수집 끝에 나왔던 최종 질문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명료하게.
-퍼포머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이건 수정해야 했다.
더 짧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 순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가만히 노트북에 손을 대고,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건 테스타로 데뷔했기에 지금껏 깊게 맛보지 않고 피할 수 있던 감정이었다.
자신이 가장 나약해졌을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요소였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
고통.
“…….”
김래빈은 고통에 대하여 말하기로 결정했다.
* * *
몇 주 후.
[테스타(TeSTAR) ‘서곡(Overture)’ Comeback Trailer]
티저가 공개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5화
스티어 김래빈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소속 그룹은 악재에 시달렸으며, 그는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곡을 만들거나 프로듀싱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불면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래빈은 그것들을 털어놓을 가족이 있었고, 스케줄이 꽉 차 있지 않은 밤이면 으레 베란다에서 통화를 하곤 했다.
-너무 염려 안 해도 돼, 래빈아.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렇더라. 사회 초년생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 해.
그의 누나는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예시를 들며 자주 그렇게 위로했고, 끝에는 격려의 말도 덧붙였다.
-시간 지나면 또 네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야.
그리고 그 말을 김래빈은 믿었다.
그는 감사와 안부를 전하며 통화를 마무리하고 조심히 베란다에서 자신의 방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가끔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너무 오래 나가 있지 마.”
“죄송합니다.”
류청우는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고, 긴장하던 김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김래빈은 어떤 상황이든 좋은 점을 잘 찾아내는 편이었다.
“김래빈 빨리 자!”
“너도 얼른 자.”
이 그룹엔 10대 때부터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던 동갑 친구가 있었다. 왠지 또래와 가까워지기 어렵던 그에게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데뷔하여 여러 무대를 경험해 보고, 곡을 발매하는 경험 자체를 얻었지 않은가.
‘종합적으로, 내 상황은 감사할 만한 상황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몇몇 멤버처럼 우울감이나 절망에 잠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힘을 쏟아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은 끝나지 않을 듯이 흘러가더니, 곧 거짓말처럼 깔끔한 끝을 맞이했다.
그룹 해체.
-잘 가, 차유진.
탈력감, 번아웃은 김래빈에게도 피해갈 수 없이 찾아왔다. 5년을 힘겹게 최선을 다해 쏟아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래빈은 매몰되진 않았다.
‘조금만 쉬고 계획대로 수행하자!’
그는 벌써 새로운 진로에 대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비록 스티어가 그리 좋지 않은 활동 끝에 끝을 맞이했다고 해도, 크지 않게나마 투어도 돌고 앨범을 수십 만장 팔 정도의 여력은 있었다.
거기서 모아둔 돈이면, 집에 보낸 것을 제외해도 장비에 투자하여 괜찮은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곡으로 활동하는 것도 도전해 보고 싶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무궁무진했다. 더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김래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원도로 돌아가 평온한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류청우 형님 : 잘 지내고 있어?
보름쯤 후, 그룹의 리더였던 연장자에게 문자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아.’
김래빈은 반사적으로 등골을 펴며 빠릿빠릿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다가, 자신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억지로 이완했다.
‘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위의 문자를 적던 그는, 문득 자신이 이제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인터넷을 말이다.
-규칙 세 번째, 허가 없이 SNS에 접속하지 않는다.
그룹 활동 동안에는 류청우는 꽉 짜인 규율로 기숙학교처럼 팀원을 감시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래빈은 몇 년이나 인터넷과 멀어진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큰 관심도 없었고, 가끔 플랫폼에 익명으로 곡을 올리는 용도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룹의 규칙이었다.
‘지금은 해당하지 않는 것 아닌가?’
스티어는 이미 해체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무 허점이 없었다. 이 상황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가진 두려움과 학습된 금지 때문이니까.
그는 약간 울적해질 뻔했으나, 곧 목적의식을 되찾았다.
‘좋아!’
김래빈은 우선 류청우에게 예의 바른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조금 망설였지만, 피드백을 받기 위해 SNS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잘생겼어 (사진) #김래빈
-킹래빈.. 흑토끼황제 (동영상)
-래빈이 보고 싶다ㅠㅠ
마지막 활동기에 작성된 글들, 그리고 최근 근황을 알 수 없는 자신을 찾는 다정한 글이 쏟아졌다.
약간 마음이 아릿해질 뻔했으나, 그는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글들을 쭉 보았다.
‘SNS에는 아직도 팬분들이 많이 계시는구나.’
이미 죽은 계정이나 활동이 끊긴 계정이라는 것까지 알 정도의 탐색 능력은 몇 년간의 거리두기로 사라진 채였다.
그는 본명만을 넣은 검색어로 SNS를 인기글 위주로 몇 번 둘러보다가, 곧 다른 방식을 떠올리며 탭을 바꿨다.
‘다양한 곳을 보자.’
그리고 검색엔진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 순간.
‘…?’
그는 첫 번째 페이지에서 특이한 글을 보았다.
-…김래빈, 차유진, 민정훈, 스티어, 티원, 브이틱, 미리내, 티홀릭…….
다짜고짜 온갖 그룹명과 인명을 마구잡이로 붙인 것 같은 글이었다.
‘왜 이런 구조이지?’
김래빈은 무심코 그 글을 클릭했다. 그러자 페이지가 바뀌며,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이동한다.
“…!”
가십 게시판이었다.
때 온갖 루머의 온상이기도 했던 그곳에, 몇 주 전에 올라와 순위권을 차지했던 글이, 김래빈의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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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캡처)
아주사 때는 진짜 대단한 남돌 나올 줄 알았는데 어쩐지 좀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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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글의 기묘한 구조가 왜 그랬던 건지 깨달았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 그 글은 검색에 걸리기 위한 키워드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무심코 베스트 댓글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찬반이 미친 듯이 갈리는 장문의 문장들이 그의 시야를 뒤덮었다.
-스티어 문제점은 X도 아닌 컨셉용 프로듀싱 멤을 광푸쉬했다는 거임 심지어 아주사 때부터 인성 논란도 있었는데 대체 왜 얘를 민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논란도 많았지만 일단 기획력 문제가 가장 컸던 건 맞는 것 같아 암튼 멤버들 다 잘 살길ㅇㅇ
-기획력=프로듀싱 그리고 프로듀싱 참여한 멤버 하나뿐임 이걸로 설명 끝
-푸쉬 분쇄기 김레넨ㅋㅋㅋㅋ
“…….”
김래빈은 돌려 말하는 사람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어 규칙과, 묘사되는 특징은 충분히 분석하고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알아차렸다.
-적폐 새끼 X 같네ㅠ
그건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래빈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관련 내용을 계속 확인하기 시작했다.
-곡도 X 같이 만들면서 매번 지 파트 아득바득 챙기는 거 보면 진짜 한숨 나왔잖아
-방송에서 깍듯한 막내인 척 굴 때마다 진짜.. 하 그럴 시간에 푸쉬나 좀 잘 받아먹든가 이도저도 아니고 무대 보고 입덕하는 사람도 노잼 성격 아닌 척 욕심 부리는 거 보고 다 탈덕했을 듯
-눈깔 악개들이 올려치기 하고 있는 거 볼 때마다 토나왔는데 차라리 잘 해체했어 응 다시 볼일 없길ㅠ
-자기도 창피한 건 아나 봐 소식 없는 걸 보면ㅋㅋㅋ
마치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토해내기라도 하는 듯 비슷한 논조의 댓글은 몇 시간 전까지도 최신댓글로 달려 있었다.
-아 속 시원하다 진짜ㅠㅠ 드디어 머글들도 이 X 같음을 알았네
-악개 열폭 취급하는 거 짜증났는데 정의가 승리한 기분임ㅋㅋ
만일 이것들이 순수하게 근거 없는 비난, 악의로만 이루어진 문장들이었다면 김래빈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어의 실패 원인을 편하게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마침 개인감정으로 꼴 보기 싫은 멤버가 거기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래빈이 본 각각의 문장은 논리구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분석적인.
왜 스티어의 프로듀싱과 마케팅에 문제가 있는 건지, 왜 파트 분배가 불공정하며 문제가 있는 건지,
왜 김래빈 때문에 이 모든 사태가 초래된 것인지.
사실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일방적인 주장은 마치 진실처럼 들렸다. 자신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경멸을 표출하는 글에 패닉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자신이 프로듀싱을 전반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며, 과반수 이상이 억측에 불과하다는 차분한 반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얘네 싹 미친 거 아니냐’는 반대 의견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비난이 설득력 있게 보였다.
게다가 이 ‘팬’들은 단순히 비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유진이 본국에 돌아가서 안 돌아올 것 같아.. 어떡해 진짜 나 죽고 싶어
-솔직히 연애보다 본업에서 문제 있는 게 더 처맞을 일 아니야? 진짜 우리 애 왜 처맞았던 건 거야?ㅋㅋ
타인에 대한 애정, 울분, 억울함, 지침이 묻어났다.
“…….”
그래서 김래빈은, 피가 식은 듯 차가워진 손을 문지르며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걸까.’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
그는 말수가 없어졌다.
원래 사교적인 잡담에 능숙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다정한 말을 잘하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쉴 새 없이 말할 수도 있던 성향은 죽은 듯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가족들이 걱정 끝에 그에게 묻게 되었다.
“래빈아, 너 무슨 일 있어?”
“…….”
“김래빈!”
“…그러니까,”
결국 김래빈은 자신이 본 모 가쉽 게시판의 글과, 그것을 통해 링크로 찾아 들어간 익명 사이트를 본 것까지 누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걸 왜 봤어!”
누나는 기겁하고 그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김래빈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대답이 필요했다.
스티어라는 그룹이 잘 되지 못한 것에 자신의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
하지만 가족은 정색하고 그의 말을 잘랐다.
“래빈아. 걔네 다 제정신 아닌 애들이야. 자기 인생이나 살지 무슨 연예인을 그렇게 욕해? 너 하나도 안 그랬으니까 그런 거 앞으로 보지 마. 알았지?”
무작정 자신을 옹호해 주는 것 같아 납득할 수는 없었으나, 계속 질문할 수도 없었다.
이야기할수록 가족이 너무도 괴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혼자 방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본 날, 김래빈은 스스로 생각해 정답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무서워하지 않고 곰곰이 고민하여 판단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생각했다.
‘우선….’
수많은 비판, 지적을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눌 수 있었다.
논제 1.
-김래빈의 프로듀싱 탓에 앨범 퀄리티가 떨어졌다.
김래빈은 프로듀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할당만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회사는 원하는 대로 그 결과물을 수정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기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선량함과 유능함은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하여 의견의 피력하지 못했다는 건 내 잘못이 맞는 것 같아.’
반성해야 한다고, 김래빈은 결론 내렸다.
다음은 논제 2.
김래빈은 목이 턱 막히는 느낌에 침대를 뒤척였다. 그리고 간신히 문장을 떠올렸다.
-김래빈은 좋은 파트를 독점하여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팀에 큰 악영향을 주었다.
김래빈은… 주어진 파트를 최선을 다해서 소화하려고 했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건지도 몰라.’
분석 글들을 보면, 왜 그 파트가 ‘파트를 처먹는’ 김래빈이 아닌 더 잘 어울리는 누군가에게 가야 하는지 강력히 적혀 있었다.
게다가 실증적 증거도 있었다.
‘우리 그룹은 잘 되지 못했어.’
자신은 중요한 파트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인상적인 파트들을 소화했다면, 더 유익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그리고 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
그러니까, 어쩌면 답은 간단했다.
-결론 : 김래빈은 아이돌로서의 능력이 없다.
처음, 어릴 적에 마음먹었던 대로 프로듀싱을 하는 게 옳았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올바르게 생각하려 애썼다.
좋은 방향으로.
‘이 팬분들이 비판하는 우리의 활동곡 요소들은 나 역시 문제점을 느꼈어.’
자신의 안목은 여전히 괜찮았다. 그러니까, 그 일은 계속해도 괜찮았다.
‘그래. 그렇게 하자.’
김래빈은 결론을 내렸고 드디어 머리가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곡을 만들 것이다.
‘거기까지는 할 수 있어.’
그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수정된 미래 계획을 다짐했다.
“…….”
눈물이 나오진 않았으나, 어쩐지 가슴이 공허하고 서러웠다.
* * *
테스타의 숙소.
김래빈은 쏟아진 기억을 폭포에 흠뻑 젖어 들어가는 것처럼 맞았다. 기억보다는 다시 체험하는 듯이, 그때의 감정이 생생했다.
마치, 참고 참다가 겨우 쏟아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가까운 누군가가 서럽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들으면 깊이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지금 김래빈에겐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었다.
“…….”
아직도 거실에서는 두 형이 대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리면서,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 나오는 거실을 등지고 조용히 어두운 방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머릿속은 찬물을 맞은 듯 얼얼하고 창백했다.
하지만 자료 수집 끝에 나왔던 최종 질문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명료하게.
-퍼포머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이건 수정해야 했다.
더 짧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 순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가만히 노트북에 손을 대고,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건 테스타로 데뷔했기에 지금껏 깊게 맛보지 않고 피할 수 있던 감정이었다.
자신이 가장 나약해졌을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요소였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
고통.
“…….”
김래빈은 고통에 대하여 말하기로 결정했다.
* * *
몇 주 후.
티저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