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2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4화
김래빈은 첫 작곡을 시작한 14살 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만들어왔다.
그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모든 장르에서 저마다 매력적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래빈아 어제 선생님이랑 이야기했던 클래식 전공…… 디스코를 작곡해 왔네?!
-…그, 래빈 학생, 미안하지만 포트폴리오 정말 본인이 다 작곡한 거 맞죠?
그를 가르쳐보거나 스카웃했던 사람마다 다 당황했던 수준의 포괄성!
심지어 이론이 부족해 완성도가 미흡했던 그 시절에도 밍숭맹숭하지 않고 강렬한 개성이 있었다.
그리고 곡 자체만의 완결성에만 신경 쓰던 과도기를 지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직접 조정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누가 부를 것인가?
가수를 고려해 작곡한다.
상업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래빈은 그 과정도 즐겁게 밟아나갔다.
명화의 퍼즐을 짜 맞추어 절묘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듯, 섬세한 공정과 조절 과정을 거쳐서 ‘부르는 이’를 위한 곡이 나왔다.
그것이 김래빈에게는 퍽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 번도 싫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그 가수가 오로지 자신뿐이었던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고려한 곡이라니!
‘어, 어쩌지?’
김래빈은 그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자신의 솔로곡을 레코딩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타이틀곡 ‘행차’가 수록된 테스타의 정규앨범, 에서는 멤버 각자의 솔로곡으로 수록곡 과반수가 구성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김래빈뿐만 아니라 대여섯이나 되는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으며, 앨범의 각 곡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일부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그중 한 악장을 자신에게 할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앨범 하나를 대표하는 인트로를 통째로 자신이 맡은 적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단서가 되는 것은 신뢰하는 멤버의 말뿐!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네가 느낀 감상을 써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언제나 지표가 되어주셨던 박문대 형의 조언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그룹의 기대에 부응할 곡을 만들 것이다!
김래빈은 굳게 다짐했다.
바로 그 형이란 놈이 자신에게 티저를 떠맡겼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 와중에 무대 공포에 집중하지 않고자 했던 그의 목표는 어느새 무의식중에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단계 : 사전 조사.
김래빈은 우선 이번 인트로곡이 그룹의 앨범을 소개할 곡이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멤버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집하는 것은 마치 필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최근 스케줄이 많아 숙소에 있는 시간이 가장 적은 멤버부터 우선 방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감상? 그건 왜.”
바로 배세진이다.
관련 스케줄을 마치고 온 그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가 설문 조사를 당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약간 떨떠름하게 대꾸했으나, 곧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아니, 내가 대답하기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질문한 거야! 순수하게!”
“…?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 기분이 상한 적도 없던 김래빈은 그저 열심히 자신이 묻고 싶었던 질문을 이어갔다.
-이번 앨범에 대한 멤버들의 감상을 수집 중!
하지만 최대한 우호적인 얼굴을 하려 애쓰던 배세진은 그 말에 도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박문대가 네가 느낀 감상을 표현하라고 했다며. 나도 공감이야. 나한테 영향받지 마.”
배세진은 주스를 원샷 때린 후 욕실로 떠나갔다.
“…??”
김래빈은 당황했다!
‘실패…인가?’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다음 대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뭐야, 래빈이 뭐 찾아? 왜 여기 서 있어~”
바로 개인 운동을 마치고 귀가한 이세진이었다.
그는 김래빈에게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아이고… 래빈이 놀랐겠네!”
같은 이름을 가진 멤버의 요령 없음에 내심 낄낄거리던 그는 곧 매끄럽게 김래빈을 위로했다.
김래빈은 저도 모르게 고초를 토로하게 되었다.
“그룹의 앨범을 소개하는 곡이니만큼 그룹 전체의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라면 너무 지엽적으로 변모하지 않을지….”
“에이~ 래빈이 워낙 센스가 좋아서 괜찮을 것 같은데?”
빈말은 아니었다.
김래빈은 총체적으로, 예술과 관련되어 발군의 센스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세진은 살짝 김래빈의 현재 차림을 훑고는, 이 동생의 평소 사복 차림까지 떠올렸다.
한 치만 어긋나면 과하거나 민망한 꼴이 될 수도 있을 분위기의 의상을 잘 매치해서 입을 수 있다는 건 특유의 센스였다.
‘이런 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걸 세간에선 힙하다고 불렀다.
비록 서로를 떠보는 대인 관계에서의 눈치는 좀 없지만,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참 재능이 많은 동생이었다.
‘은근히 기도 세고.’
고집 있는 녀석이니,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세진은 평가를 마친 후, 씩 웃었다.
“그리고 어차피 다 끝나면 다 같이 피드백도 할 거니까~ 지금은 래빈이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해보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세진의 예상대로, 김래빈은 진지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올곧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지난번 ‘별의별곡’ 때처럼, 오로지 재밌는 곡만 생각하면서 하면 되는 거구나!’
“…그래서 취미라고 생각하면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어.”
“Oh.”
그날 밤.
김래빈은 주방 식탁에 앉아서 작업을 하며 차유진과 현재까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잡담을 나눴다.
기어코 박문대에게 야식으로 구운 불고기 주먹밥을 받아낸 차유진은 그것을 덥석덥석 집어먹는 중이었다.
고슬고슬한 밥이 참기름과 불고기 국물을 머금고 누릉지처럼 구수하게 구워져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김래빈의 결론을 듣고, 손가락의 밥풀을 핥으며 코웃음을 쳤다.
“김래빈 착각했어.”
뭐?
“내가 착각했다고?”
“그래! 취미랑 이거 달라.”
차유진이 씩 웃었다.
“김래빈 지금 곡만 만드는 거 아니야. 우리 앨범 소개하는 Performance 만들어야 해.”
“…!”
“그러니까 우리 팬들 좋아하는 것도 중요해.”
영상, 컨셉, 구성까지.
김래빈은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지극히 상업적인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팬분들께서 좋아하시도록….’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차유진은 마지막 주먹밥을 집어 드는 대신 사려 깊게 물었다.
“김래빈 원래 어떻게 우리를 위해 앨범 만들었어?”
김래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각자 이 곡을 통해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실 수 있도록 만들었어.”
차유진이 씩 웃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 그거 팬분들 좋아했어!”
‘아.’
그렇다.
‘내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곡을 만들어야 해.’
김래빈은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 선명한 목표를 발견했다.
드디어 도착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가수로서, 내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마침내 근원적인 물음이 나온다.
-퍼포머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김래빈은 자신이 여기서부터 인트로를 만들어가게 될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 * *
-두번째 단계 : 작업물 구상.
김래빈이 잘하는 것으로 꽉 찬 작업물.
우선, 김래빈은 자신이 무대에서 무엇을 잘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달력이 좋았고, 곡 해석력과 표현력, 그리고 변칙적인 와우 포인트 창출에 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갑자기 무대를 잘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렇다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역시 기억이야.’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스티어 김래빈까지 포함하여 고려해야만 이번 작업물을 제대로 조립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없는 기억을 단기간 내로 되살릴 길은 요원해 보였다.
‘문대 형도 난감해 보이셨지….’
그는 그래서 간접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가장 최근까지 스티어의 기억이 있었다는 멤버.
그리고 지극히 신뢰할 만한 이 그룹의 리더에게 말이다.
“…스티어 시절의 네가, 무대에서 어땠냐고?”
“그렇습니다.”
“…….”
거실. 배세진에게 빌린 책을 읽고 있던 류청우는 대답하는 대신, 계속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잘했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어.”
“그래도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만일 다른 멤버였다면 류청우에게 이런 질문을 굳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류청우는 스티어 시절에 관하여 그다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민망하네. 미안해.’ 정도로 이미 상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굳이 입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김래빈은 그 당시 류청우에 대한 기억이 날아간 상태였고, 상대의 미묘한 불편함을 눈치챌 위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류청우에게 구체적인 답을 얻어내고 만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때 회사에서는 무대에서도 각 멤버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주고 싶어 했어.”
김래빈이 캐릭터라는 소리에 즉시 떠올린 것은 바로 자신의 메인 헤드폰 중 하나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토끼.
“팬분들이 불러주시는 동물 캐릭터 같은 것 말입니까?”
“비슷하지만 그렇게 구체적이진 않았어.”
류청우는 짧게 덧붙였다.
“누구는 반드시 브릿지를 맡고, 누구는 항상 후렴구에서 중앙에 서고… 그런 거야. 염색이나 안경도 주로 특정 멤버만 했고.”
박문대가 들었다면 ‘수요층대로 애들 타입을 나눠보려는 어설픈 짓’이라고 일축했을 것이나, 그렇게 구체적인 어휘를 모르는 두 사람은 그저 이해하는 수준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소속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댄스, 보컬, 랩 같은 포지션과는 또 다른 추상적인 이미지군요.”
“그래.”
짧게 대응한 류청우는 김래빈이 더 구체적인 답변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결국 다음 말까지 느리게 이었다.
“그리고 너…, 래빈이는 지금보다도 약간 더 어둡고 화려한 역할을 무대에서 많이 했고.”
“그렇습니까?”
“그래. 임팩트 있는 파트를 많이 받았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만 들어서는 썩 ‘나는 그걸 소화할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서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맡은바 파트를 잘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대를 기피하게 됐을 확률도 있군요!”
“…….”
류청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잘했어.”
“예?”
“괜히 의심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해. 알았지?”
그 묘한 어투는 약간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곧 온화하게 마무리되었다.
“아…. 알겠습니다.”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돌려 말하기’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김래빈이라고 하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류청우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피곤하신 것 같은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게다가, 그는 류청우 다음으로 이 안건을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사람도 이미 머릿속에 떠올렸다.
“형께서 스티어의 팬이셨던 만큼, 제 무대에 대하여 감상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어둡고 화려했습니까?”
“…….”
“형?”
‘팬 아니었다니까.’
박문대는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그렇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본론 겉핥기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대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어, 그런 편이긴 했다. 그런데 어울렸지.”
‘그 X 같은 환경에서 용케도’라는 앞말을 꿀꺽 삼킨 박문대의 평에 김래빈은 오히려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못해서 무대를 기피하게 된 게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건 왜.”
김래빈은 혼란한 와중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왠지 그때의 기억까지 고려해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박문대는 타박하는 대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답지 않게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네가 만드는 건 테스타 앨범의 인트로다. 테스타로 살아온 너한테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은데.”
“…!”
“당장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생각해 봐.”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설마 자신은 작은 단서에서 촉발되는 영감에 익숙해진 나머지,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 걸까?
“지금 네가 하는 게 잘못됐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예…….”
결국 김래빈은 더 묻지 못하고, 그날의 진행단계를 종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침실로 돌아가서, 스스로 되뇌어보며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아마도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어….’
몽롱한 시야로 눈을 감았다 뜨던 김래빈은, 문득 자신의 옆자리 침대가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대 형?’
그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조용히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네가 답변한 것 말인데.”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사라진 박문대의 목소리였다.
“…?”
김래빈은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칫하고, 그 목소리를 보기 위해 슬쩍 방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다가 아니지.”
“…….”
어두운 거실.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간접 등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박문대.
그리고 류청우.
“스티어가 해체한 이후에 김래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건 그나마 너뿐이었지. 차유진은 미국에, 배세진은 재판장에 있었으니까.”
“…….”
“그리고… 너는 그때 지나치게 책임감이 투철한 상태였을 테니, 상태라도 체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문대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때 래빈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
김래빈은 숨을 죽였다.
가늠하기 힘든 침묵이, 거실에 깊게 머물렀다.
그리고,
“맞아.”
류청우가 까슬한 목소리로, 낮게 대답했다.
“내가 보지 말라고 했던 걸 봤더라.”
그 순간, 김래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범람했다.
“…!”
마치 둑이 깨지고 그 틈 사이로 물이 터져 나오듯이, 이미지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이었다.
* * *
그것은 액정 속에 뜬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했다.
-적폐 새끼 X 같네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4화
김래빈은 첫 작곡을 시작한 14살 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만들어왔다.
그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모든 장르에서 저마다 매력적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래빈아 어제 선생님이랑 이야기했던 클래식 전공…… 디스코를 작곡해 왔네?!
-…그, 래빈 학생, 미안하지만 포트폴리오 정말 본인이 다 작곡한 거 맞죠?
그를 가르쳐보거나 스카웃했던 사람마다 다 당황했던 수준의 포괄성!
심지어 이론이 부족해 완성도가 미흡했던 그 시절에도 밍숭맹숭하지 않고 강렬한 개성이 있었다.
그리고 곡 자체만의 완결성에만 신경 쓰던 과도기를 지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직접 조정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누가 부를 것인가?
가수를 고려해 작곡한다.
상업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래빈은 그 과정도 즐겁게 밟아나갔다.
명화의 퍼즐을 짜 맞추어 절묘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듯, 섬세한 공정과 조절 과정을 거쳐서 ‘부르는 이’를 위한 곡이 나왔다.
그것이 김래빈에게는 퍽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 번도 싫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그 가수가 오로지 자신뿐이었던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고려한 곡이라니!
‘어, 어쩌지?’
김래빈은 그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자신의 솔로곡을 레코딩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타이틀곡 ‘행차’가 수록된 테스타의 정규앨범, 에서는 멤버 각자의 솔로곡으로 수록곡 과반수가 구성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김래빈뿐만 아니라 대여섯이나 되는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으며, 앨범의 각 곡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일부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그중 한 악장을 자신에게 할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앨범 하나를 대표하는 인트로를 통째로 자신이 맡은 적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단서가 되는 것은 신뢰하는 멤버의 말뿐!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네가 느낀 감상을 써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언제나 지표가 되어주셨던 박문대 형의 조언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그룹의 기대에 부응할 곡을 만들 것이다!
김래빈은 굳게 다짐했다.
바로 그 형이란 놈이 자신에게 티저를 떠맡겼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 와중에 무대 공포에 집중하지 않고자 했던 그의 목표는 어느새 무의식중에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단계 : 사전 조사.
김래빈은 우선 이번 인트로곡이 그룹의 앨범을 소개할 곡이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멤버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집하는 것은 마치 필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최근 스케줄이 많아 숙소에 있는 시간이 가장 적은 멤버부터 우선 방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감상? 그건 왜.”
바로 배세진이다.
관련 스케줄을 마치고 온 그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가 설문 조사를 당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약간 떨떠름하게 대꾸했으나, 곧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아니, 내가 대답하기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질문한 거야! 순수하게!”
“…?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 기분이 상한 적도 없던 김래빈은 그저 열심히 자신이 묻고 싶었던 질문을 이어갔다.
-이번 앨범에 대한 멤버들의 감상을 수집 중!
하지만 최대한 우호적인 얼굴을 하려 애쓰던 배세진은 그 말에 도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박문대가 네가 느낀 감상을 표현하라고 했다며. 나도 공감이야. 나한테 영향받지 마.”
배세진은 주스를 원샷 때린 후 욕실로 떠나갔다.
“…??”
김래빈은 당황했다!
‘실패…인가?’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다음 대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뭐야, 래빈이 뭐 찾아? 왜 여기 서 있어~”
바로 개인 운동을 마치고 귀가한 이세진이었다.
그는 김래빈에게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아이고… 래빈이 놀랐겠네!”
같은 이름을 가진 멤버의 요령 없음에 내심 낄낄거리던 그는 곧 매끄럽게 김래빈을 위로했다.
김래빈은 저도 모르게 고초를 토로하게 되었다.
“그룹의 앨범을 소개하는 곡이니만큼 그룹 전체의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라면 너무 지엽적으로 변모하지 않을지….”
“에이~ 래빈이 워낙 센스가 좋아서 괜찮을 것 같은데?”
빈말은 아니었다.
김래빈은 총체적으로, 예술과 관련되어 발군의 센스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세진은 살짝 김래빈의 현재 차림을 훑고는, 이 동생의 평소 사복 차림까지 떠올렸다.
한 치만 어긋나면 과하거나 민망한 꼴이 될 수도 있을 분위기의 의상을 잘 매치해서 입을 수 있다는 건 특유의 센스였다.
‘이런 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걸 세간에선 힙하다고 불렀다.
비록 서로를 떠보는 대인 관계에서의 눈치는 좀 없지만,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참 재능이 많은 동생이었다.
‘은근히 기도 세고.’
고집 있는 녀석이니,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세진은 평가를 마친 후, 씩 웃었다.
“그리고 어차피 다 끝나면 다 같이 피드백도 할 거니까~ 지금은 래빈이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해보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세진의 예상대로, 김래빈은 진지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올곧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지난번 ‘별의별곡’ 때처럼, 오로지 재밌는 곡만 생각하면서 하면 되는 거구나!’
“…그래서 취미라고 생각하면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어.”
“Oh.”
그날 밤.
김래빈은 주방 식탁에 앉아서 작업을 하며 차유진과 현재까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잡담을 나눴다.
기어코 박문대에게 야식으로 구운 불고기 주먹밥을 받아낸 차유진은 그것을 덥석덥석 집어먹는 중이었다.
고슬고슬한 밥이 참기름과 불고기 국물을 머금고 누릉지처럼 구수하게 구워져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김래빈의 결론을 듣고, 손가락의 밥풀을 핥으며 코웃음을 쳤다.
“김래빈 착각했어.”
뭐?
“내가 착각했다고?”
“그래! 취미랑 이거 달라.”
차유진이 씩 웃었다.
“김래빈 지금 곡만 만드는 거 아니야. 우리 앨범 소개하는 Performance 만들어야 해.”
“…!”
“그러니까 우리 팬들 좋아하는 것도 중요해.”
영상, 컨셉, 구성까지.
김래빈은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지극히 상업적인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팬분들께서 좋아하시도록….’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차유진은 마지막 주먹밥을 집어 드는 대신 사려 깊게 물었다.
“김래빈 원래 어떻게 우리를 위해 앨범 만들었어?”
김래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각자 이 곡을 통해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실 수 있도록 만들었어.”
차유진이 씩 웃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 그거 팬분들 좋아했어!”
‘아.’
그렇다.
‘내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곡을 만들어야 해.’
김래빈은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 선명한 목표를 발견했다.
드디어 도착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가수로서, 내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마침내 근원적인 물음이 나온다.
-퍼포머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김래빈은 자신이 여기서부터 인트로를 만들어가게 될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 * *
-두번째 단계 : 작업물 구상.
김래빈이 잘하는 것으로 꽉 찬 작업물.
우선, 김래빈은 자신이 무대에서 무엇을 잘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달력이 좋았고, 곡 해석력과 표현력, 그리고 변칙적인 와우 포인트 창출에 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갑자기 무대를 잘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렇다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역시 기억이야.’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스티어 김래빈까지 포함하여 고려해야만 이번 작업물을 제대로 조립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없는 기억을 단기간 내로 되살릴 길은 요원해 보였다.
‘문대 형도 난감해 보이셨지….’
그는 그래서 간접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가장 최근까지 스티어의 기억이 있었다는 멤버.
그리고 지극히 신뢰할 만한 이 그룹의 리더에게 말이다.
“…스티어 시절의 네가, 무대에서 어땠냐고?”
“그렇습니다.”
“…….”
거실. 배세진에게 빌린 책을 읽고 있던 류청우는 대답하는 대신, 계속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잘했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어.”
“그래도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만일 다른 멤버였다면 류청우에게 이런 질문을 굳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류청우는 스티어 시절에 관하여 그다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민망하네. 미안해.’ 정도로 이미 상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굳이 입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김래빈은 그 당시 류청우에 대한 기억이 날아간 상태였고, 상대의 미묘한 불편함을 눈치챌 위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류청우에게 구체적인 답을 얻어내고 만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때 회사에서는 무대에서도 각 멤버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주고 싶어 했어.”
김래빈이 캐릭터라는 소리에 즉시 떠올린 것은 바로 자신의 메인 헤드폰 중 하나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토끼.
“팬분들이 불러주시는 동물 캐릭터 같은 것 말입니까?”
“비슷하지만 그렇게 구체적이진 않았어.”
류청우는 짧게 덧붙였다.
“누구는 반드시 브릿지를 맡고, 누구는 항상 후렴구에서 중앙에 서고… 그런 거야. 염색이나 안경도 주로 특정 멤버만 했고.”
박문대가 들었다면 ‘수요층대로 애들 타입을 나눠보려는 어설픈 짓’이라고 일축했을 것이나, 그렇게 구체적인 어휘를 모르는 두 사람은 그저 이해하는 수준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소속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댄스, 보컬, 랩 같은 포지션과는 또 다른 추상적인 이미지군요.”
“그래.”
짧게 대응한 류청우는 김래빈이 더 구체적인 답변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결국 다음 말까지 느리게 이었다.
“그리고 너…, 래빈이는 지금보다도 약간 더 어둡고 화려한 역할을 무대에서 많이 했고.”
“그렇습니까?”
“그래. 임팩트 있는 파트를 많이 받았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만 들어서는 썩 ‘나는 그걸 소화할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서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맡은바 파트를 잘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대를 기피하게 됐을 확률도 있군요!”
“…….”
류청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잘했어.”
“예?”
“괜히 의심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해. 알았지?”
그 묘한 어투는 약간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곧 온화하게 마무리되었다.
“아…. 알겠습니다.”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돌려 말하기’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김래빈이라고 하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류청우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피곤하신 것 같은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게다가, 그는 류청우 다음으로 이 안건을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사람도 이미 머릿속에 떠올렸다.
“형께서 스티어의 팬이셨던 만큼, 제 무대에 대하여 감상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어둡고 화려했습니까?”
“…….”
“형?”
‘팬 아니었다니까.’
박문대는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그렇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본론 겉핥기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대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어, 그런 편이긴 했다. 그런데 어울렸지.”
‘그 X 같은 환경에서 용케도’라는 앞말을 꿀꺽 삼킨 박문대의 평에 김래빈은 오히려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못해서 무대를 기피하게 된 게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건 왜.”
김래빈은 혼란한 와중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왠지 그때의 기억까지 고려해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박문대는 타박하는 대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답지 않게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네가 만드는 건 테스타 앨범의 인트로다. 테스타로 살아온 너한테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은데.”
“…!”
“당장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생각해 봐.”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설마 자신은 작은 단서에서 촉발되는 영감에 익숙해진 나머지,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 걸까?
“지금 네가 하는 게 잘못됐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예…….”
결국 김래빈은 더 묻지 못하고, 그날의 진행단계를 종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침실로 돌아가서, 스스로 되뇌어보며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아마도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어….’
몽롱한 시야로 눈을 감았다 뜨던 김래빈은, 문득 자신의 옆자리 침대가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대 형?’
그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조용히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네가 답변한 것 말인데.”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사라진 박문대의 목소리였다.
“…?”
김래빈은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칫하고, 그 목소리를 보기 위해 슬쩍 방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다가 아니지.”
“…….”
어두운 거실.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간접 등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박문대.
그리고 류청우.
“스티어가 해체한 이후에 김래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건 그나마 너뿐이었지. 차유진은 미국에, 배세진은 재판장에 있었으니까.”
“…….”
“그리고… 너는 그때 지나치게 책임감이 투철한 상태였을 테니, 상태라도 체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문대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때 래빈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
김래빈은 숨을 죽였다.
가늠하기 힘든 침묵이, 거실에 깊게 머물렀다.
그리고,
“맞아.”
류청우가 까슬한 목소리로, 낮게 대답했다.
“내가 보지 말라고 했던 걸 봤더라.”
그 순간, 김래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범람했다.
“…!”
마치 둑이 깨지고 그 틈 사이로 물이 터져 나오듯이, 이미지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이었다.
* * *
그것은 액정 속에 뜬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했다.
-적폐 새끼 X 같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