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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17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7화
“지금, 시작하는 거야…?”
“그래.”
내 대답에 선아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선아현만 그런 표정인 것은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고 합류한 녀석들이 류청우의 기억이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고 거실에 모인 것이다.
하나같이 긴장한 가운데, 그래도 큰세진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 가볍게 말을 던졌다.
“형님, 몇 초 만에 친한 동생이 여러 명 생길 텐데 어떠세요?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래. 그게 목적은 아니지만.”
“…!”
스티어 류청우의 대답은 거의 냉정하게까지 들렸다.
하지만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본인 성격대로 대답한 것 같았다.
그간 억지로 온화하게 보이려 애쓰던 이전보단 자연스러웠다.
녀석은 작게 웃었고, 큰세진도 그냥 웃어버렸다.
“편해 보이시니까 좋네요!”
“고마워.”
류청우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지금 찾아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회사용 ’을 재가동하시겠습니까?]
이걸 재가동하는 순간, 스티어 차유진이 그랬듯이 류청우도 기억이 돌아올 것이다.
참고로 지금 쓰는 ‘미리보기’를 종료하면 김래빈도 자동으로 기억을 되찾을 것 같아서, 미리보기와 재가동을 공존시켜보려고 시스템을 열심히 주물러봤다.
갑자기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 충격받아서 거부할까 봐 그런 거였다만….
“저, 김래빈. 너는… 청우보다 늦게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고, 더 천천히 생각해 봐도 괜찮으니까. 압박받진 마.”
“…?? 저는 애초에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앗.”
“제 기억을 되찾으면 작곡 방식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그렇다고 한다.
‘괜히 시스템을 주물러 놨냐.’
대가리 터질 만큼 기력을 쏟았던 게 어쩐지 억울해지는군.
아무튼 지금은 계획대로 해보자.
나는 미간을 누르던 손을 떼고 덤덤히 말했다.
“지금 누를 테니까, 누우시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생각해 봤을 때 녀석이 잠들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한 권유다.
그리고 스티어 류청우는 반박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웠다.
“이러면 될까?”
“예.”
그리고 나는, 녀석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뒤에, 상태창을 움직였다.
‘재가동.’
파앗.
팝업에서 불빛이 터졌다.
하지만 허공의 홀로그램이 눈이 부시든 말든, 소파에 누운 류청우는 미동 없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평온하게 잠이 들 듯이.
“…….”
“형?”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스티어 류청우는 편안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을 뿐이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내 팝업 빛을 무심코 가릴 뻔했을 정도로.
“…….”
“기다리자.”
“응.”
깊은 무의식 상태에 빠진 것 같은 녀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휴일 낮, 거실은 몇 시간이나 그렇게 조용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치이익.
나는 주방에서 계란을 굽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Oh my, 형!”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류청우 모니터링 당번을 맡은 차유진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깼군.’
나는 프라이팬 불을 끄고 당장 뒤를 돌았다.
거실에서는 부스스한 상태로 상체를 일으킨 류청우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리고 있다.
그러나 차유진은 거침없다.
“문대 형 맛있는 거 만들어요! 빨리 가요!”
…괜찮냐는 질문보다 그게 먼저냐?
‘그냥 네가 먹고 싶던 게 아니고?’
하지만 차유진이 팔을 잡아당기자, 류청우는 좀 부은 얼굴로 쾌활하게 웃었다.
“…그래? 고맙네…….”
“…!!”
정신없을 와중에도 부드럽고 편안한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사람이 할 법한 반응 말이다.
달려온 배세진이 동공을 떨며 물었다.
“……류청우?”
“응.”
구겨진 옷을 정리하고 머리를 넘기며, 류청우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는 다소 민망한 것 같은 미소가 떠 있다.
원래 우리가 알던 것처럼.
“다들 고생 많았어.”
그걸로 충분했다.
“…형!”
“아이고, 우리 리더 형님 돌아왔다~!”
순간 거실이 떠나갈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몇 녀석이 류청우를 부둥켜안았고, 류청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면서도 그 녀석들의 등을 하나하나 두드려주었다.
“특히 세진이가 고생을 많이 했어. 스케줄에서 필요한 말을 네가 다 했더라.”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맺는 것이다.
“나 말고도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운 멤버가 많았는데, 내가 챙겨주기는커녕 도움만 받아서 미안하네.”
“에이, 이런 날도 있어야 형이 평소에 하는 일이 보답도 되고 그러는 거죠~”
“아니, 그래도 고마워.”
녀석이 꽤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뭐, 저 자리에 없는 게 하나뿐이니 누굴 찾는지는 알겠다만.’
나 말이다.
뭐 하고 있냐고?
“그리고 문대….”
“…….”
나는 게를 들고 있었다.
“…??”
익은 게 말고, 간장에 절인 생물 말이다.
빠각.
등딱지를 떼어내자, 호쾌한 소리와 함께 노란 알이 터질 듯 들어찬 속이 드러났다.
살이 오른 게로 만든 간장게장이었다.
“와서 드시죠.”
“…….”
내가 고른 거 아니다. 저 녀석 부모님이 선정해 주신 메뉴다.
솔직히 뭘 더 할 시간도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맛집이라니까 먹을 만은 하겠지.
“형, 저거 문대가 콜택시까지 타가면서 방금 사 왔다니까요?”
조리하는 값에 비하면 싸게 먹힌다.
“문대가, 말해줬으면 가위바위보라도 했을 거야….”
내가 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문대 너도 쉬어야 했을 텐데.”
알면 됐다.
어차피 별거 안 했거든. 계란 부치고 게 뜯은 정도라서 말이다.
“금방 차렸습니다. 드시죠.”
오늘 먹은 것도 없을 텐데 말이지.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녀석이 앉는 것을 기다렸다.
“알았어.”
류청우는 약간 머쓱한 듯이 웃으면서 결국 식탁으로 왔고, 다른 녀석들도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신나게 류청우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야, 형은 기억이 없어도 이렇게 사건 사고 없이 부드럽게 일이 잘 마무리되네요.”
“마, 맞아요!”
“그러게. 차유진은 탈주했었잖아.”
“저 바다 갔어요. 피해 없었어요!”
“야, 우리 그날 잠도 못 잤어….”
식탁은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류청우는 잠깐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시원하게 웃었다.
“유진이는 처음이었잖아. 그럴 수 있지. 나야말로 그렇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형…….”
녀석은 자신의 상태를 묻는 다른 멤버들에게 하나하나 성실히 대답해 주면서 식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회사엔 오늘부터 내가 연락할게.”
“……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돌려 식탁을 쳐다보았다.
게장과 버터, 계란이 한 상 차려진 밥상.
“…….”
류청우는 거기 거의 손대지 않고 맨밥만 먹었다.
‘흠.’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 * *
류청우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야 겨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다.
“후.”
일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다른 멤버들을 안심시키는 것에 시간을 쓰느라 이럴 여유가 없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의 기억만 남은 자신이 어린 동생들에게 했던 일을 생각하면 좀 민망하다 못해 각오가 새롭게 설 지경이었다.
슬럼프 빠지다 못해 자기연민에도 빠지다니.
‘어린 애 같았지.’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은 제대로 한 것 같았다.
-이런 식이군요….
심지어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김래빈까지도 좀 안심한 기색이었다.
‘…좋았어.’
테스타 류청우는 그가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머리는 큰 고민이나 격정 없이 강인한 멘탈리티를 회복했다.
나는 좋은 팀에 소속되어 있다.
맡은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는 테스타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의 일을 되새기며, 기분을 안온히 가다듬었다.
그리고 괜히 어두운 쪽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도록, 머리를 비우며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
“아, 나왔냐.”
룸메이트 차유진은 없었다.
대신 두 침대 사이에 놓인 탁자 앞에는… 박문대가 앉아 있었다.
아니, 박문대라고 부르기보다는.
“앉아.”
그의 사촌 형이었던 류건우가 앉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침없이 편하게 반말을 던진 그는 탁자에 손을 뻗어 올라간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 가지 향이 강한 식재료. 그리고… 술병들.
류건우는, 탁자에 술판을 벌여둔 것이다.
류청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술은…….”
“이제 가끔은 마셔도 된다고 다 합의 봤잖아.”
하지만 탁자에 놓인 것은 맥주 한 캔이 아니라… 와인 무더기다.
“…….”
이래도 괜찮은 걸까?
류청우는 떨떠름함 반, 걱정 반으로 사촌 형을 쳐다보았으나, 어쨌든 간에 탁자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는 짧게 고민했으나, 곧 직감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것을 찾아냈다.
‘아.’
식사할 때 내가 신경을 별로 못 썼구나.
그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점이 어딘지 굳이 전화까지 해가며 알아냈을 텐데,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일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먹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하네.’
그는 즉시 그 점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어.”
“응.”
류청우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잘못을 저지른 후 상급자와 술을 마시는 것처럼.
하지만, 류건우는 그의 잘못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동생이 해준 말인데.”
류건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을.
“사람이, 공포와 고통 앞에서… 원래 좀 화내고 남 탓도 하고, 그래도 괜찮다더라고.”
“…….”
류청우는 눈을 크게 떴다.
류건우는 웃으며 손을 내밀어, 탁자 위에서 잔을 집어 들었다.
“내가 그래도 됐다면, 너는 더 그래도 되겠지.”
왜냐하면, 그 말을 해준 당사자니까.
-사람이 어떻게 매번 합리적으로 살겠어.
류청우는 술이 잔뜩 올라간 탁자를 보며, 마침내 데자뷔의 원인을 깨달았다.
썸머 패키지.
그가 박문대에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그날의 풍경을, 상대가 고스란히 다시 만들어준 것이었다.
‘아.’
류청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했다. 류건우는 그 앞에 잔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술이 안에 쏟아졌다. 류청우는 그것을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잔을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
사실 이런 걸로 취하기엔 그가 술에 너무 강했다.
하지만, 마시고 싶다는 것에서 깨달았다.
‘도망치고 싶었구나.’
자신은 일부러 최대한, 스티어 때의 기억을 자세히 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떠올리는 것 자체가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티어 류청우가 ‘어린 애 같았다’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건, 여기서 저지른 일 한정이었다.
당사자였을 때는 매몰되어서 깨닫지 못했으나, 단단한 정신을 되찾고 나서 돌아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전의 그는….
“사실 나는…….”
“…….”
류건우는 속으로 되물었다.
‘너는?’
하지만 류청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잔에 남은 술을 묵묵히 마셨을 뿐이다.
“…….”
류건우도 동생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둘은 그렇게, 천천히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한 병을 더 땄다.
“더 마실래?”
“응.”
그리고 한 병 더.
그게 전부였다.
사촌 형은 류청우에게 아무 역할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걸로 충분했다.
* * *
테스타는 그 다음 날까지 푹 쉬었다.
서로 방을 오가며 잡담이나 하는 게 움직임의 전부였다. 큰세진까지도 운동을 가지 않았고, 그건 류청우도 마찬가지였다.
배세진은 둘이 마신 술의 양을 보고 할 말이 더럽게 많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참았다.
그렇게 느긋하게 시간이 흘렀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다 같이 거실에 모여앉아서 드디어 공개된 지난 경연 무대를 시청하기도 했다.
“와, 역시 테스타야 무대 너무 잘한다.”
“맞아요. 특히 저 잘해요.”
긴장감 없는 대화가 툭툭 오갔다.
“우리 유닛 무대도 얼른 보고 싶은데?”
“으응. 나도…!”
“래빈이는 어때? 래빈이가 편곡했잖아~”
“…! 물론 저도…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오오오.”
래빈이가 언제 기억을 찾을지, 그전에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부드럽게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화면 속 테스타는 근사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막을 보면서도 테스타는 신나게 킬킬거렸다.
[관객을 홀리는 KPOP 제왕의 무대]
“우리 제왕이야?”
“으하하학!”
작은 박수가 들리고, 큰세진이 팬들에게 공개하겠다며 단체 셀카를 찍고, 박문대가 사진을 고른다.
류청우는 이완된 머릿속으로 그 편안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출연한 의 경연 영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둥.
[깨달았다.]
으스스한 단조의 울림과 함께, TV 화면으로 광고가 흘러나왔다.
“어? 저거….”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 건물에서는, 이상한 그림자가]
내레이션이 끝나고, 황폐한 복도와 비상 계단의 섬뜩한 이미지가 쭉 지나갔다.
판타지 느낌이 푹 함유된 스릴러.
[쫓아 온다.]
쿵, 쿵, 쿵.
소리에 맞춰서 붉고 푸른, 어두운 조명 아래에 선 배우들의 클로즈업 샷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카메라와 아이컨택을 하는 배세진이 있다!
“Oooooh! 세진 형!”
“우, 우와아…!”
[인형 사냥꾼]
[10월 31일 목요일, 넷플러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배세진이 찍은 드라마였다!
“형, 멋지게, 나올 것 같아요…!”
“저 들었어요! 주인공 친구!”
“맞아, 그런 역이었지? 세진아, 축하해!”
멤버들이 신나게 배세진의 어깨와 등을 두드렸다. 심지어 박문대까지도 미소를 띤 채로 말을 건넸다.
“이제 곧 공개되나 보네요.”
“……. 어? 어어.”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내에서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아직, 말을 못 했어…!’
배세진,
사이코패스 역 대공개까지 D-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7화

“지금, 시작하는 거야…?”

“그래.”

내 대답에 선아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선아현만 그런 표정인 것은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고 합류한 녀석들이 류청우의 기억이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고 거실에 모인 것이다.

하나같이 긴장한 가운데, 그래도 큰세진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 가볍게 말을 던졌다.

“형님, 몇 초 만에 친한 동생이 여러 명 생길 텐데 어떠세요?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래. 그게 목적은 아니지만.”

“…!”

스티어 류청우의 대답은 거의 냉정하게까지 들렸다.

하지만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본인 성격대로 대답한 것 같았다.

그간 억지로 온화하게 보이려 애쓰던 이전보단 자연스러웠다.

녀석은 작게 웃었고, 큰세진도 그냥 웃어버렸다.

“편해 보이시니까 좋네요!”

“고마워.”

류청우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지금 찾아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걸 재가동하는 순간, 스티어 차유진이 그랬듯이 류청우도 기억이 돌아올 것이다.

참고로 지금 쓰는 ‘미리보기’를 종료하면 김래빈도 자동으로 기억을 되찾을 것 같아서, 미리보기와 재가동을 공존시켜보려고 시스템을 열심히 주물러봤다.

갑자기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 충격받아서 거부할까 봐 그런 거였다만….

“저, 김래빈. 너는… 청우보다 늦게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고, 더 천천히 생각해 봐도 괜찮으니까. 압박받진 마.”

“…?? 저는 애초에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앗.”

“제 기억을 되찾으면 작곡 방식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그렇다고 한다.

‘괜히 시스템을 주물러 놨냐.’

대가리 터질 만큼 기력을 쏟았던 게 어쩐지 억울해지는군.

아무튼 지금은 계획대로 해보자.

나는 미간을 누르던 손을 떼고 덤덤히 말했다.

“지금 누를 테니까, 누우시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생각해 봤을 때 녀석이 잠들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한 권유다.

그리고 스티어 류청우는 반박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웠다.

“이러면 될까?”

“예.”

그리고 나는, 녀석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뒤에, 상태창을 움직였다.

‘재가동.’

파앗.

팝업에서 불빛이 터졌다.

하지만 허공의 홀로그램이 눈이 부시든 말든, 소파에 누운 류청우는 미동 없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평온하게 잠이 들 듯이.

“…….”

“형?”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스티어 류청우는 편안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을 뿐이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내 팝업 빛을 무심코 가릴 뻔했을 정도로.

“…….”

“기다리자.”

“응.”

깊은 무의식 상태에 빠진 것 같은 녀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휴일 낮, 거실은 몇 시간이나 그렇게 조용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치이익.

나는 주방에서 계란을 굽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Oh my, 형!”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류청우 모니터링 당번을 맡은 차유진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깼군.’

나는 프라이팬 불을 끄고 당장 뒤를 돌았다.

거실에서는 부스스한 상태로 상체를 일으킨 류청우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리고 있다.

그러나 차유진은 거침없다.

“문대 형 맛있는 거 만들어요! 빨리 가요!”

…괜찮냐는 질문보다 그게 먼저냐?

‘그냥 네가 먹고 싶던 게 아니고?’

하지만 차유진이 팔을 잡아당기자, 류청우는 좀 부은 얼굴로 쾌활하게 웃었다.

“…그래? 고맙네…….”

“…!!”

정신없을 와중에도 부드럽고 편안한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사람이 할 법한 반응 말이다.

달려온 배세진이 동공을 떨며 물었다.

“……류청우?”

“응.”

구겨진 옷을 정리하고 머리를 넘기며, 류청우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는 다소 민망한 것 같은 미소가 떠 있다.

원래 우리가 알던 것처럼.

“다들 고생 많았어.”

그걸로 충분했다.

“…형!”

“아이고, 우리 리더 형님 돌아왔다~!”

순간 거실이 떠나갈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몇 녀석이 류청우를 부둥켜안았고, 류청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면서도 그 녀석들의 등을 하나하나 두드려주었다.

“특히 세진이가 고생을 많이 했어. 스케줄에서 필요한 말을 네가 다 했더라.”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맺는 것이다.

“나 말고도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운 멤버가 많았는데, 내가 챙겨주기는커녕 도움만 받아서 미안하네.”

“에이, 이런 날도 있어야 형이 평소에 하는 일이 보답도 되고 그러는 거죠~”

“아니, 그래도 고마워.”

녀석이 꽤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뭐, 저 자리에 없는 게 하나뿐이니 누굴 찾는지는 알겠다만.’

나 말이다.

뭐 하고 있냐고?

“그리고 문대….”

“…….”

나는 게를 들고 있었다.

“…??”

익은 게 말고, 간장에 절인 생물 말이다.

빠각.

등딱지를 떼어내자, 호쾌한 소리와 함께 노란 알이 터질 듯 들어찬 속이 드러났다.

살이 오른 게로 만든 간장게장이었다.

“와서 드시죠.”

“…….”

내가 고른 거 아니다. 저 녀석 부모님이 선정해 주신 메뉴다.

솔직히 뭘 더 할 시간도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맛집이라니까 먹을 만은 하겠지.

“형, 저거 문대가 콜택시까지 타가면서 방금 사 왔다니까요?”

조리하는 값에 비하면 싸게 먹힌다.

“문대가, 말해줬으면 가위바위보라도 했을 거야….”

내가 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문대 너도 쉬어야 했을 텐데.”

알면 됐다.

어차피 별거 안 했거든. 계란 부치고 게 뜯은 정도라서 말이다.

“금방 차렸습니다. 드시죠.”

오늘 먹은 것도 없을 텐데 말이지.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녀석이 앉는 것을 기다렸다.

“알았어.”

류청우는 약간 머쓱한 듯이 웃으면서 결국 식탁으로 왔고, 다른 녀석들도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신나게 류청우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야, 형은 기억이 없어도 이렇게 사건 사고 없이 부드럽게 일이 잘 마무리되네요.”

“마, 맞아요!”

“그러게. 차유진은 탈주했었잖아.”

“저 바다 갔어요. 피해 없었어요!”

“야, 우리 그날 잠도 못 잤어….”

식탁은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류청우는 잠깐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시원하게 웃었다.

“유진이는 처음이었잖아. 그럴 수 있지. 나야말로 그렇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형…….”

녀석은 자신의 상태를 묻는 다른 멤버들에게 하나하나 성실히 대답해 주면서 식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회사엔 오늘부터 내가 연락할게.”

“……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돌려 식탁을 쳐다보았다.

게장과 버터, 계란이 한 상 차려진 밥상.

“…….”

류청우는 거기 거의 손대지 않고 맨밥만 먹었다.

‘흠.’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 * *

류청우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야 겨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다.

“후.”

일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다른 멤버들을 안심시키는 것에 시간을 쓰느라 이럴 여유가 없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의 기억만 남은 자신이 어린 동생들에게 했던 일을 생각하면 좀 민망하다 못해 각오가 새롭게 설 지경이었다.

슬럼프 빠지다 못해 자기연민에도 빠지다니.

‘어린 애 같았지.’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은 제대로 한 것 같았다.

-이런 식이군요….

심지어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김래빈까지도 좀 안심한 기색이었다.

‘…좋았어.’

테스타 류청우는 그가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머리는 큰 고민이나 격정 없이 강인한 멘탈리티를 회복했다.

나는 좋은 팀에 소속되어 있다.

맡은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는 테스타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의 일을 되새기며, 기분을 안온히 가다듬었다.

그리고 괜히 어두운 쪽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도록, 머리를 비우며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

“아, 나왔냐.”

룸메이트 차유진은 없었다.

대신 두 침대 사이에 놓인 탁자 앞에는… 박문대가 앉아 있었다.

아니, 박문대라고 부르기보다는.

“앉아.”

그의 사촌 형이었던 류건우가 앉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침없이 편하게 반말을 던진 그는 탁자에 손을 뻗어 올라간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 가지 향이 강한 식재료. 그리고… 술병들.

류건우는, 탁자에 술판을 벌여둔 것이다.

류청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술은…….”

“이제 가끔은 마셔도 된다고 다 합의 봤잖아.”

하지만 탁자에 놓인 것은 맥주 한 캔이 아니라… 와인 무더기다.

“…….”

이래도 괜찮은 걸까?

류청우는 떨떠름함 반, 걱정 반으로 사촌 형을 쳐다보았으나, 어쨌든 간에 탁자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는 짧게 고민했으나, 곧 직감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것을 찾아냈다.

‘아.’

식사할 때 내가 신경을 별로 못 썼구나.

그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점이 어딘지 굳이 전화까지 해가며 알아냈을 텐데,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일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먹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하네.’

그는 즉시 그 점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어.”

“응.”

류청우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잘못을 저지른 후 상급자와 술을 마시는 것처럼.

하지만, 류건우는 그의 잘못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동생이 해준 말인데.”

류건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을.

“사람이, 공포와 고통 앞에서… 원래 좀 화내고 남 탓도 하고, 그래도 괜찮다더라고.”

“…….”

류청우는 눈을 크게 떴다.

류건우는 웃으며 손을 내밀어, 탁자 위에서 잔을 집어 들었다.

“내가 그래도 됐다면, 너는 더 그래도 되겠지.”

왜냐하면, 그 말을 해준 당사자니까.

-사람이 어떻게 매번 합리적으로 살겠어.

류청우는 술이 잔뜩 올라간 탁자를 보며, 마침내 데자뷔의 원인을 깨달았다.

썸머 패키지.

그가 박문대에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그날의 풍경을, 상대가 고스란히 다시 만들어준 것이었다.

‘아.’

류청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했다. 류건우는 그 앞에 잔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술이 안에 쏟아졌다. 류청우는 그것을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잔을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

사실 이런 걸로 취하기엔 그가 술에 너무 강했다.

하지만, 마시고 싶다는 것에서 깨달았다.

‘도망치고 싶었구나.’

자신은 일부러 최대한, 스티어 때의 기억을 자세히 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떠올리는 것 자체가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티어 류청우가 ‘어린 애 같았다’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건, 여기서 저지른 일 한정이었다.

당사자였을 때는 매몰되어서 깨닫지 못했으나, 단단한 정신을 되찾고 나서 돌아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전의 그는….

“사실 나는…….”

“…….”

류건우는 속으로 되물었다.

‘너는?’

하지만 류청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잔에 남은 술을 묵묵히 마셨을 뿐이다.

“…….”

류건우도 동생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둘은 그렇게, 천천히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한 병을 더 땄다.

“더 마실래?”

“응.”

그리고 한 병 더.

그게 전부였다.

사촌 형은 류청우에게 아무 역할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걸로 충분했다.

* * *

테스타는 그 다음 날까지 푹 쉬었다.

서로 방을 오가며 잡담이나 하는 게 움직임의 전부였다. 큰세진까지도 운동을 가지 않았고, 그건 류청우도 마찬가지였다.

배세진은 둘이 마신 술의 양을 보고 할 말이 더럽게 많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참았다.

그렇게 느긋하게 시간이 흘렀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다 같이 거실에 모여앉아서 드디어 공개된 지난 경연 무대를 시청하기도 했다.

“와, 역시 테스타야 무대 너무 잘한다.”

“맞아요. 특히 저 잘해요.”

긴장감 없는 대화가 툭툭 오갔다.

“우리 유닛 무대도 얼른 보고 싶은데?”

“으응. 나도…!”

“래빈이는 어때? 래빈이가 편곡했잖아~”

“…! 물론 저도…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오오오.”

래빈이가 언제 기억을 찾을지, 그전에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부드럽게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화면 속 테스타는 근사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막을 보면서도 테스타는 신나게 킬킬거렸다.

“우리 제왕이야?”

“으하하학!”

작은 박수가 들리고, 큰세진이 팬들에게 공개하겠다며 단체 셀카를 찍고, 박문대가 사진을 고른다.

류청우는 이완된 머릿속으로 그 편안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출연한 의 경연 영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둥.

으스스한 단조의 울림과 함께, TV 화면으로 광고가 흘러나왔다.

“어? 저거….”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내레이션이 끝나고, 황폐한 복도와 비상 계단의 섬뜩한 이미지가 쭉 지나갔다.

판타지 느낌이 푹 함유된 스릴러.

쿵, 쿵, 쿵.

소리에 맞춰서 붉고 푸른, 어두운 조명 아래에 선 배우들의 클로즈업 샷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카메라와 아이컨택을 하는 배세진이 있다!

“Oooooh! 세진 형!”

“우, 우와아…!”

그렇다.

이것이 바로 배세진이 찍은 드라마였다!

“형, 멋지게, 나올 것 같아요…!”

“저 들었어요! 주인공 친구!”

“맞아, 그런 역이었지? 세진아, 축하해!”

멤버들이 신나게 배세진의 어깨와 등을 두드렸다. 심지어 박문대까지도 미소를 띤 채로 말을 건넸다.

“이제 곧 공개되나 보네요.”

“……. 어? 어어.”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내에서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아직, 말을 못 했어…!’

배세진,

사이코패스 역 대공개까지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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