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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14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4화
이테르 놈들이 우리가 선점한 리뉴얼판에 섭외되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복도에서 대기실을 돌며 다른 출연진들에게 인사를 돌리는 녀석들을 보자, 처음 든 생각은 이거다.
‘왜 못 들었지?’
저놈들이 출연한다는 걸 왜 우리는 몰랐는가.
나는 잠깐 스스로 질문했다가, 곧 혀를 찼다.
뻔하다.
제작진이 일부러 안 흘린 것이다.
‘우리가 지랄할 줄 알았겠지.’
테스타가 이테르를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는 건 현재 우리 회사 사람 몇몇과 이야기만 나눠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 현 출연진 중에는 깐깐하게 추가 출연진까지 확인하고 미리 견제하는 LeTi 같은 회사 소속도 없었다.
그러니 ‘아직 섭외가 결정되지 않았다’라는 말로 시간을 끈 것이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물로 봤군.’
사실 이런 사태를 예상하진 못했다. 아니, 굳이 예측할 필요도 없었다.
이테르 소속사, 원더홀 측에서 감히 여기에 밀어 넣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워터밤 건으로 경험하지 않았겠는가.
‘경험도 없는 신인이 정면 승부로 비교되었다간 X 되게 깨지기 딱 좋을 텐데.’
그래서 일부러 이 회사에 심은 그쪽 끄나풀도 남겨두고, 살살 미끼를 흔들어서 역으로 물도록 만들 생각이었는데….
엉뚱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마지막 발악인가.’
원더홀 같은 회사가 그런 얕은수를 쓸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 더 내 대가리가 팽팽 굴러가게 만든다.
“자자, 우선 들어갑시다~”
“Yep.”
일단 테스타는 지정된 대기실에 별말 없이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측 스탭들은 표정만 봐도 상당히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스티어 류청우도 이걸 봤을 텐데.’
지금까지라면 슬쩍 눈치를 봐서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할 놈이었으나, 어쩐지 말없이 그냥 따라오기만 할 뿐이다.
‘흠.’
나는 대기실에 들어간 후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이테르라는 그룹인데, 테스타를 벤치마킹해서 데뷔했죠.”
“그렇구나.”
관성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테스타에 대해서 파헤치듯이 조사했던 녀석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지나치게 담담하며 평온했다.
관심 없는 화제에 반응하듯이.
‘…….’
나는 녀석의 반응을 체크해 둔 후, 시선을 돌렸다.
분노한 회사 직원들이 불을 뿜을 듯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니, 이건 진짜 저희 쪽을 무시하는 처사인데….”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정말로 열받았군.
물론 ‘이것도 몰랐냐’라며 테스타가 쪼아댈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더 과격하게 빡친 척하는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직원 중 직급이 높은 몇몇이 제작진에게 따지기 위해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그래봤자 방송국이 갑이라 일종의 체면 차리기 액션일 뿐이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수위 조절해서 항의하는 게 낫긴 했다.
그것을 눈치챈 몇몇 멤버들이 쓴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속인 거나 다름없잖아!”
“음…, 예~ 그렇긴 하죠, 형님.”
…물론 그냥 저렇게 그냥 빡친 놈도 있고.
나에게 와서 긴장된 얼굴로 물어보는 녀석도 있다.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라고 했으나, 우선 촬영에는 성심껏 동행한 스티어 김래빈이다.
“저, 혹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큰 문제는 아니야. 쉬고 있으면 된다. 앉아.”
“예….”
녀석은 오묘한 얼굴로 소파 옆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당사자 얼굴도 볼 거고.”
“……?”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대기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테르.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던 녀석들이 예상대로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더홀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는 녀석들.
실물로 만난 이테르는… 싹수 노란 구석이 없는, 수더분해 보이는 내성적인 녀석들이었다.
그러니까,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는 놈이나 약아빠진 놈, 하다못해 성격이 강한 캐릭터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런 망할.’
원더홀 새끼들이 이걸 노렸구나.
이 이테르 놈들은 사회적으로 흠잡을 곳 없이 유순한 성격이었다.
‘이걸 대중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그간 신비주의 노선을 타며 쌓았던 빌드업을 여기서 터트릴 작정이라면.
이건… 아예 테스타와의 갈등 구도를 누그러트리려는 속셈이다.
‘후계자’ 이미지를 죽일 수 없다면, 거기서 최대한 이득을 가져가 보기로 노선을 선회한 것이다.
관계성 강화로.
‘뻔하지.’
경연 프로그램이지만 훈훈한 연예계 선후배 관계로 테스타에게 한 수 잘 배워가는 이테르!
거기에 인간적인 모습 좀 더해주면, 대중은 순박하고 계산속 없어 뵈는 어린 신인에게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간 이 녀석들을 둘러싼 ‘테스타를 따라 했다’라는 조롱이나 논란은 이 이미지에 맞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겠지.
상대에게 친근감이 드는 순간 거부감도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테르 애들 나 막 회사 들어갔을 때 생각남ㅋㅋㅠㅠ
-에휴ㅠㅠ 고생한다
-무대 잘했으면 좋겠어 뭔가
그리고 테스타의 후계자 이야기에 기겁하는 모습을 겸허히 보여주며, 안전하게 슈퍼루키 이미지를 선점하는 거다.
무대는 그냥 망하지만 않으면 된다.
‘유망주 이미지 굳히기.’
리스크의 최소화.
나는 미간을 누르고 싶은 손을 참았다.
‘잘도 생각해 냈군.’
더 큰 문제는 그게 무조건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나는 자기들끼리 우르르 뭉쳐 선 이테르를 훑었다.
‘이놈들이 진짜 그냥 어린 애들이야.’
소속사의 계책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기를 쓰고 열심히 연습해서 데뷔한 10대 애들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알더라도 겉핥기식으로 아는 모범생들.
높은 확률로 아마 스마트폰 사용도 금지당한 상태일 것이다.
‘이런 놈들만 일부러 솎아내서 데뷔시킨 거다.’
원더홀의 계산이 보였다.
앞으로도 욕은 소속사가 다 먹고, 얘들은 한발 비켜 나가는 상황을 몇 번은 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말 잘 듣고 무고한 애들이라는 걸 팬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는 리더 맡고 있는 누아입니다. 무대 정말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자기 소개하며 인사말을 이어가는 녀석들의 얼굴은 긴장과 군기, 수줍음 따위로 범벅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은발이 양손을 꾹 쥔 상태로 힘차게 외쳤다.
“저희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경쟁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시비 아니냐?
하지만 말하는 놈들에게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는 점은 뻔했기에, 멤버들도 그냥 적당히 좋은 반응을 돌려줬다.
“옙~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촬영, 힘내시길 바라요…!”
“…! 감사합니다!”
그냥 평소에 별 감정 없는 후배와 대화할 때의 친절한 모습이었다.
아마 원더홀은 이것도 노렸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가 사실상 우리 입김으로 움직인다는 걸 아는 거지.’
그래서 차라리 테스타가 이테르에게 가질 반감을 누그러트리고, 이 녀석들에게 가혹하게 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손 쓰려다가도 한 번 주저하게 말이다.
게다가 카메라가 돌 때는 더 할 것이다.
‘촬영 중에 반응 잘못하면 테스타가 도리어 속 좁아 보이겠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인 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이테르 리더 놈과 악수했다.
“멋진 모습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옙!”
그리고 녀석들은 조심스럽게 부탁해서 우리에게 장문의 편지가 붙은 앨범까지 전달한 후, 상기된 얼굴로 대기실에서 떠났다.
나는 ‘박문대 선배님께서 를 부르실 때부터 팬’으로 시작하는 긴 편지가 적힌 앨범을 덮었다.
다른 멤버들도 묘한 감상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인지, 대부분 앨범을 한번 들여다보긴 하더라고.
‘이 앨범이 행차를 벤치마킹했었지.’
그걸 진심으로 존경심을 담아 내밀 수 있다는 점.
바로 저 회사와 그룹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일 것이다.
‘뭐, 동요할 정도는 아니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앨범을 적당히 치웠다.
뭐, 이 업계에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말도 안 되게 초자연적인 별일도 겪어봤다.
당장 내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산 증거기도 하고.
“…….”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스티어 류청우는 진작에 앨범을 소파 앞 탁자에 갈무리해둔 채, 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쨌든 ‘류청우’는 테스타의 리더였기 때문에, 대기실에 인사 온 후배들을 맞이하면서 자리를 옮겨서 여기 앉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리더다운 적극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누나~ 저희 30분 내로 촬영 들어가는 거죠?”
“그럼요. 아, 그리고 저희 진짜 대표님 선까지 이 이야기 올라갔대요. 제대로 항의 들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이고… 그래요?”
“왜 항의해요? 저희 강해요. 그래서 항의 필요 없… What? 세진 형?”
“조용히 해, 차유진.”
왁자지껄하게 촬영을 준비하는 주변과 상관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류청우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
뭐, 나도 입 안 열고 있는 건 매한가지긴 하다만.
‘슬슬 준비해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였다.
“할 말이 있어.”
스티어 류청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흠.’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앉은 그대로 녀석을 돌아보았다.
“말씀하시죠.”
“고마워.”
류청우가 짧게 대답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제를.
“내… ‘기억’ 말인데.”
“…….”
“돌려줘도 상관없지 않을까.”
“……!”
촬영 30분 전.
갑자기 스티어 류청우가 기억을 돌려받는 것을 거부하던 자신의 입장을 철회한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폐를 많이 끼쳤던 것 같거든. 내가 좀 과하게 굴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스티어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정신적 안정을 되찾고 평온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녀석이 그럴 리가 없었다.
‘이유가 없어.’
그럴 계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놈은 깨달음을 얻거나 스스로 마음 편히 상황을 받아들여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지난 새벽, 녀석의 얼굴을 기억했다.
‘이세진A’의 말을 전부 전달받고 난 이후, 스티어 류청우의 얼굴을.
-네가 여기서 잘해보고 싶다면 응원할게. …그간 고생 많았어. 믿어줘서 고마웠고, 미안해.
그 말이 끝난 직후, 녀석은 분명… 피로한 표정이었다.
번아웃.
‘저건…… 지친 거다.’
지독한 탈력감을 관성으로 감추는 기색이, 지금 녀석의 얼굴에도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온화한 목소리로 테스타의 사정에 유리한 소리가 이어진다.
“이번 촬영이 끝나면 바로 진행해도 괜찮아. 음, 이번엔 유닛 무대를 하려고 했지? 우선 나는 빠질게.”
유닛 무대.
나는 오늘 아침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경연 프로그램의 매너리즘을 탈피하기 위해 구성한 조건이었다.
-인원수가 많으면 퍼포먼스가 겹칠 수 있으니까 한두 번은 인원을 나눠서 하죠. 개인 스케줄도 잡고.
“…기억을 되찾고 난 후엔 하고 싶어지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스티어 류청우는 선선히 긍정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그 ‘류청우’가 감당해야지.”
서늘하기까지 한 태연함이었다.
“…….”
나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 예.”
즉각 수긍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에 무대 안 하시겠다는 말씀 말인데요. 안 그래도 다른 녀석들 의견도 들어보려고 했으니까 지금 추합해 보죠.”
나는 당장 주변에서 떠들던 멤버들을 불러서 탁자 주변으로 앉혔다. 스탭들이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괜찮았다.
시간 지체할 생각은 없거든.
“유닛 말인데, 지금 지원자 받아서 빨리 묶고 갈까. 촬영 전에 조사하려고.”
“아, 좋지.”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 화제였기에 다른 녀석들과도 동요는 없었다.
“그럼 거수해 볼까. 손.”
즉시 반응이 돌아왔다.
텀 없이 바로 손을 든 것은 차유진, 그리고 큰세진이다.
무대 기회를 안 놓치는 녀석들.
“…….”
그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든 것이 선아현이다. 신중하고 성실한 녀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굳은 얼굴의 배세진까지.
즉, 스티어 때의 기억만 있는 녀석 둘 빼고는 다 손을 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류청우의 입가에 희미한 쓴웃음 같은 것이 언뜻 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총 4명. 이대로 해도 괜찮겠습니다. 인원수도 적당하고요.”
그러자 옆에서 스티어 김래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녀석은 발언을 허락받고서야 입을 열었다.
“저… 다섯 아닙니까?”
“4명 맞는데.”
“…아, 스스로를 제외하고 말씀하신 거군요. 죄송합니다.”
“음?”
나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난 안 하는데.”
“…??”
“손 안 들었잖아.”
“…!”
나는 선언했다.
“차유진, 이세진, 선아현, 그리고 배세진 형. 이렇게 4명이 합니다.”
사이 좋게 안 해보자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4화

이테르 놈들이 우리가 선점한 리뉴얼판에 섭외되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복도에서 대기실을 돌며 다른 출연진들에게 인사를 돌리는 녀석들을 보자, 처음 든 생각은 이거다.

‘왜 못 들었지?’

저놈들이 출연한다는 걸 왜 우리는 몰랐는가.

나는 잠깐 스스로 질문했다가, 곧 혀를 찼다.

뻔하다.

제작진이 일부러 안 흘린 것이다.

‘우리가 지랄할 줄 알았겠지.’

테스타가 이테르를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는 건 현재 우리 회사 사람 몇몇과 이야기만 나눠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 현 출연진 중에는 깐깐하게 추가 출연진까지 확인하고 미리 견제하는 LeTi 같은 회사 소속도 없었다.

그러니 ‘아직 섭외가 결정되지 않았다’라는 말로 시간을 끈 것이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물로 봤군.’

사실 이런 사태를 예상하진 못했다. 아니, 굳이 예측할 필요도 없었다.

이테르 소속사, 원더홀 측에서 감히 여기에 밀어 넣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워터밤 건으로 경험하지 않았겠는가.

‘경험도 없는 신인이 정면 승부로 비교되었다간 X 되게 깨지기 딱 좋을 텐데.’

그래서 일부러 이 회사에 심은 그쪽 끄나풀도 남겨두고, 살살 미끼를 흔들어서 역으로 물도록 만들 생각이었는데….

엉뚱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마지막 발악인가.’

원더홀 같은 회사가 그런 얕은수를 쓸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 더 내 대가리가 팽팽 굴러가게 만든다.

“자자, 우선 들어갑시다~”

“Yep.”

일단 테스타는 지정된 대기실에 별말 없이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측 스탭들은 표정만 봐도 상당히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스티어 류청우도 이걸 봤을 텐데.’

지금까지라면 슬쩍 눈치를 봐서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할 놈이었으나, 어쩐지 말없이 그냥 따라오기만 할 뿐이다.

‘흠.’

나는 대기실에 들어간 후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이테르라는 그룹인데, 테스타를 벤치마킹해서 데뷔했죠.”

“그렇구나.”

관성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테스타에 대해서 파헤치듯이 조사했던 녀석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지나치게 담담하며 평온했다.

관심 없는 화제에 반응하듯이.

‘…….’

나는 녀석의 반응을 체크해 둔 후, 시선을 돌렸다.

분노한 회사 직원들이 불을 뿜을 듯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니, 이건 진짜 저희 쪽을 무시하는 처사인데….”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정말로 열받았군.

물론 ‘이것도 몰랐냐’라며 테스타가 쪼아댈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더 과격하게 빡친 척하는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직원 중 직급이 높은 몇몇이 제작진에게 따지기 위해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그래봤자 방송국이 갑이라 일종의 체면 차리기 액션일 뿐이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수위 조절해서 항의하는 게 낫긴 했다.

그것을 눈치챈 몇몇 멤버들이 쓴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속인 거나 다름없잖아!”

“음…, 예~ 그렇긴 하죠, 형님.”

…물론 그냥 저렇게 그냥 빡친 놈도 있고.

나에게 와서 긴장된 얼굴로 물어보는 녀석도 있다.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라고 했으나, 우선 촬영에는 성심껏 동행한 스티어 김래빈이다.

“저, 혹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큰 문제는 아니야. 쉬고 있으면 된다. 앉아.”

“예….”

녀석은 오묘한 얼굴로 소파 옆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당사자 얼굴도 볼 거고.”

“……?”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대기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테르.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던 녀석들이 예상대로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더홀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는 녀석들.

실물로 만난 이테르는… 싹수 노란 구석이 없는, 수더분해 보이는 내성적인 녀석들이었다.

그러니까,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는 놈이나 약아빠진 놈, 하다못해 성격이 강한 캐릭터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런 망할.’

원더홀 새끼들이 이걸 노렸구나.

이 이테르 놈들은 사회적으로 흠잡을 곳 없이 유순한 성격이었다.

‘이걸 대중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그간 신비주의 노선을 타며 쌓았던 빌드업을 여기서 터트릴 작정이라면.

이건… 아예 테스타와의 갈등 구도를 누그러트리려는 속셈이다.

‘후계자’ 이미지를 죽일 수 없다면, 거기서 최대한 이득을 가져가 보기로 노선을 선회한 것이다.

관계성 강화로.

‘뻔하지.’

경연 프로그램이지만 훈훈한 연예계 선후배 관계로 테스타에게 한 수 잘 배워가는 이테르!

거기에 인간적인 모습 좀 더해주면, 대중은 순박하고 계산속 없어 뵈는 어린 신인에게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간 이 녀석들을 둘러싼 ‘테스타를 따라 했다’라는 조롱이나 논란은 이 이미지에 맞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겠지.

상대에게 친근감이 드는 순간 거부감도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테르 애들 나 막 회사 들어갔을 때 생각남ㅋㅋㅠㅠ

-에휴ㅠㅠ 고생한다

-무대 잘했으면 좋겠어 뭔가

그리고 테스타의 후계자 이야기에 기겁하는 모습을 겸허히 보여주며, 안전하게 슈퍼루키 이미지를 선점하는 거다.

무대는 그냥 망하지만 않으면 된다.

‘유망주 이미지 굳히기.’

리스크의 최소화.

나는 미간을 누르고 싶은 손을 참았다.

‘잘도 생각해 냈군.’

더 큰 문제는 그게 무조건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나는 자기들끼리 우르르 뭉쳐 선 이테르를 훑었다.

‘이놈들이 진짜 그냥 어린 애들이야.’

소속사의 계책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기를 쓰고 열심히 연습해서 데뷔한 10대 애들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알더라도 겉핥기식으로 아는 모범생들.

높은 확률로 아마 스마트폰 사용도 금지당한 상태일 것이다.

‘이런 놈들만 일부러 솎아내서 데뷔시킨 거다.’

원더홀의 계산이 보였다.

앞으로도 욕은 소속사가 다 먹고, 얘들은 한발 비켜 나가는 상황을 몇 번은 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말 잘 듣고 무고한 애들이라는 걸 팬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는 리더 맡고 있는 누아입니다. 무대 정말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자기 소개하며 인사말을 이어가는 녀석들의 얼굴은 긴장과 군기, 수줍음 따위로 범벅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은발이 양손을 꾹 쥔 상태로 힘차게 외쳤다.

“저희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경쟁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시비 아니냐?

하지만 말하는 놈들에게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는 점은 뻔했기에, 멤버들도 그냥 적당히 좋은 반응을 돌려줬다.

“옙~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촬영, 힘내시길 바라요…!”

“…! 감사합니다!”

그냥 평소에 별 감정 없는 후배와 대화할 때의 친절한 모습이었다.

아마 원더홀은 이것도 노렸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가 사실상 우리 입김으로 움직인다는 걸 아는 거지.’

그래서 차라리 테스타가 이테르에게 가질 반감을 누그러트리고, 이 녀석들에게 가혹하게 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손 쓰려다가도 한 번 주저하게 말이다.

게다가 카메라가 돌 때는 더 할 것이다.

‘촬영 중에 반응 잘못하면 테스타가 도리어 속 좁아 보이겠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인 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이테르 리더 놈과 악수했다.

“멋진 모습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옙!”

그리고 녀석들은 조심스럽게 부탁해서 우리에게 장문의 편지가 붙은 앨범까지 전달한 후, 상기된 얼굴로 대기실에서 떠났다.

나는 ‘박문대 선배님께서 를 부르실 때부터 팬’으로 시작하는 긴 편지가 적힌 앨범을 덮었다.

다른 멤버들도 묘한 감상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인지, 대부분 앨범을 한번 들여다보긴 하더라고.

‘이 앨범이 행차를 벤치마킹했었지.’

그걸 진심으로 존경심을 담아 내밀 수 있다는 점.

바로 저 회사와 그룹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일 것이다.

‘뭐, 동요할 정도는 아니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앨범을 적당히 치웠다.

뭐, 이 업계에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말도 안 되게 초자연적인 별일도 겪어봤다.

당장 내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산 증거기도 하고.

“…….”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스티어 류청우는 진작에 앨범을 소파 앞 탁자에 갈무리해둔 채, 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쨌든 ‘류청우’는 테스타의 리더였기 때문에, 대기실에 인사 온 후배들을 맞이하면서 자리를 옮겨서 여기 앉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리더다운 적극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누나~ 저희 30분 내로 촬영 들어가는 거죠?”

“그럼요. 아, 그리고 저희 진짜 대표님 선까지 이 이야기 올라갔대요. 제대로 항의 들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이고… 그래요?”

“왜 항의해요? 저희 강해요. 그래서 항의 필요 없… What? 세진 형?”

“조용히 해, 차유진.”

왁자지껄하게 촬영을 준비하는 주변과 상관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류청우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

뭐, 나도 입 안 열고 있는 건 매한가지긴 하다만.

‘슬슬 준비해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였다.

“할 말이 있어.”

스티어 류청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흠.’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앉은 그대로 녀석을 돌아보았다.

“말씀하시죠.”

“고마워.”

류청우가 짧게 대답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제를.

“내… ‘기억’ 말인데.”

“…….”

“돌려줘도 상관없지 않을까.”

“……!”

촬영 30분 전.

갑자기 스티어 류청우가 기억을 돌려받는 것을 거부하던 자신의 입장을 철회한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폐를 많이 끼쳤던 것 같거든. 내가 좀 과하게 굴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스티어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정신적 안정을 되찾고 평온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녀석이 그럴 리가 없었다.

‘이유가 없어.’

그럴 계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놈은 깨달음을 얻거나 스스로 마음 편히 상황을 받아들여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지난 새벽, 녀석의 얼굴을 기억했다.

‘이세진A’의 말을 전부 전달받고 난 이후, 스티어 류청우의 얼굴을.

-네가 여기서 잘해보고 싶다면 응원할게. …그간 고생 많았어. 믿어줘서 고마웠고, 미안해.

그 말이 끝난 직후, 녀석은 분명… 피로한 표정이었다.

번아웃.

‘저건…… 지친 거다.’

지독한 탈력감을 관성으로 감추는 기색이, 지금 녀석의 얼굴에도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온화한 목소리로 테스타의 사정에 유리한 소리가 이어진다.

“이번 촬영이 끝나면 바로 진행해도 괜찮아. 음, 이번엔 유닛 무대를 하려고 했지? 우선 나는 빠질게.”

유닛 무대.

나는 오늘 아침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경연 프로그램의 매너리즘을 탈피하기 위해 구성한 조건이었다.

-인원수가 많으면 퍼포먼스가 겹칠 수 있으니까 한두 번은 인원을 나눠서 하죠. 개인 스케줄도 잡고.

“…기억을 되찾고 난 후엔 하고 싶어지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스티어 류청우는 선선히 긍정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그 ‘류청우’가 감당해야지.”

서늘하기까지 한 태연함이었다.

“…….”

나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 예.”

즉각 수긍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에 무대 안 하시겠다는 말씀 말인데요. 안 그래도 다른 녀석들 의견도 들어보려고 했으니까 지금 추합해 보죠.”

나는 당장 주변에서 떠들던 멤버들을 불러서 탁자 주변으로 앉혔다. 스탭들이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괜찮았다.

시간 지체할 생각은 없거든.

“유닛 말인데, 지금 지원자 받아서 빨리 묶고 갈까. 촬영 전에 조사하려고.”

“아, 좋지.”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 화제였기에 다른 녀석들과도 동요는 없었다.

“그럼 거수해 볼까. 손.”

즉시 반응이 돌아왔다.

텀 없이 바로 손을 든 것은 차유진, 그리고 큰세진이다.

무대 기회를 안 놓치는 녀석들.

“…….”

그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든 것이 선아현이다. 신중하고 성실한 녀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굳은 얼굴의 배세진까지.

즉, 스티어 때의 기억만 있는 녀석 둘 빼고는 다 손을 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류청우의 입가에 희미한 쓴웃음 같은 것이 언뜻 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총 4명. 이대로 해도 괜찮겠습니다. 인원수도 적당하고요.”

그러자 옆에서 스티어 김래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녀석은 발언을 허락받고서야 입을 열었다.

“저… 다섯 아닙니까?”

“4명 맞는데.”

“…아, 스스로를 제외하고 말씀하신 거군요. 죄송합니다.”

“음?”

나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난 안 하는데.”

“…??”

“손 안 들었잖아.”

“…!”

나는 선언했다.

“차유진, 이세진, 선아현, 그리고 배세진 형. 이렇게 4명이 합니다.”

사이 좋게 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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