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화
‘눈에 띄는 참가자라.’
청려는 웃으며 참가자들과의 촬영을 끝마친 것과 관계없이, 그들의 장기적 성공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현재 상위권이 오디션 예능의 힘으로 잘나가는 중이긴 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 나왔을 때의 경쟁력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스토리 내에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일 수도.’
어차피 소속사 내부 경쟁에서 탈락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팽당한 케이스가 다수였으니까.
청려는 그냥 점심 메뉴 이야기나 계속하려다가, 무심코 떠오른 한 참가자를 입에 담았다.
“박문대?”
“아, 닭발?”
그보다 어린 멤버가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청려는 웃지 않았다.
“설문지 답이 나랑 전부 일치했어.”
“헐! 진짜? 신기하네. …형이랑 성격이 비슷한가?”
“…어느 정도는.”
“헉, 진짜?”
청려는 경악하는 동생을 무시하며, 약간 아쉬워했다.
‘그런 타입이 팀에 하나 있으면 좋은데.’
박문대는 설문의 보기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방송을 신경 써서 어떻게든 중립적인 답을 찍은 기색이 역력했다.
“음, 형이랑 비슷한 성격이면 굉장히… 냉정하겠는데?”
“현실적이라는 뜻이지?”
“그, 그렇지.”
타인의 사정에 몰입하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사고는 잘 못 하는 타입. 연예인보다 일반 기업에 더 어울리는 인재상 말이다.
대체로 아이돌 지망생들, 특히 재능 있는 어린 애들은 예체능 계열 특유의 장단점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덜 차갑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그들이 직면할 현실은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성인 사회였다.
“뭐, 형 같은 사람이 리더인 게 좋긴 해.”
“그래? 고맙다.”
자기 얼굴에 금칠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청려도 동생의 말에 동의했다.
‘머리 식은 사람이 분위기 잡는 편이 좋다.’
꼭 자신이 리더를 맡은 VTIC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문대는 꽤 괜찮은 차기 데뷔조 후보군이었다.
‘한 일이 년 구르면 춤도 되겠지.’
그리고 그 성격에, 연상이라면 연차가 짧아도 저절로 팀에서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려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본 일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럼 같이 일하기 편해질 텐데.’
팀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VTIC이 회사와 재계약하며 지분을 좀 받았다고 해서 차기 남자 아이돌에게 더 신경 써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어차피 데뷔하면 경쟁자인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양심상 권유 한번 해줬으니 충분했다.
‘본인이 생각 있으면 연락하겠지.’
짧은 결론을 끝으로 청려는 머리에서 ‘이미 끝낸 스케줄’에 줄을 긋고 치웠다. 바쁜 계절이었다.
* * *
순위 발표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촬영장 안.
포맷은 똑같았다. 그러나 인원은 확 줄어들었다.
붙을 수 있는 것은 20명뿐.
그것만으로도 장내에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비좁은 인원에 변동을 일으킬 요소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3차 팀전의 두 1위 후보팀 리더분들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팀전 우승 혜택이다. 1위 팀에서 합의한 한 명이 무조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생존권.
우리 쪽은 당연히 골드 1으로 합의가 끝난 상태다. 촬영 전에 사전 인터뷰 때 이미 제출했기도 하고.
“저희 팀은… 하일준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큰세진의 말이 끝나고도 꽤 오랫동안 팀의 리더, 류청우는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 팀, 선정한 팀원을 발표해주시기 바랍니다.”
MC의 재촉이 신난 것처럼 들리는 건 내 피해의식 때문이겠지.
류청우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저희 팀은 최원길 참가자를 선정했었습니다.”
“…!”
이야, 끝까지 한 건 하고 가네.
‘걔가 의외로 난 놈이었나?’
솔직히 저걸 챙겼을 줄은 몰랐다. 그럼 최원길은 50%의 프리패스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갈아탔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쨌든, 놈 덕분에 상황이 애매해졌다.
이미 누구를 선정했는지 촬영 전에 제작진에게 전달했었기 때문이다.
눈치 보니 최원길이 탈주한 후 급하게 바꾸는 것도 제작진 측에서 컨펌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제작진은 당황한 것처럼 다급히 회의하는 모션을 취하더니, MC에게 사인을 보냈다.
MC는 제작진의 스케치북을 보고 천천히 대사를 완성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원칙상 자진 하차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그 참가자의 혜택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팀에게 3분 간의 상의 시간을 추가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류청우는 묵례하고 앉아서 팀원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내심 혀를 찼다.
‘…끝났군.’
이건 안 봐도 저 팀이 1등이다.
‘저렇게까지 화면을 뽑아놓고 혜택을 안 주면 그림이 안 산다.’
제작진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판을 짰을 리가 없었다.
결국, 골드 1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전승은 물 건너 갔군.’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는 골드 1의 얼굴을 보니, 저쪽도 은근한 싸함을 느끼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1등은 팀이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1등은… 팀!”
“감사합니다.”
그러나 웃기는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 팀의 추가 합의에 따라, 무조건 생존의 혜택을 받는 참가자는… 차유진 참가자입니다!”
저 미친놈들이 혜택을 차유진에게 줬던 것이다.
‘둘 중 하나겠어.’
합의가 결렬됐거나, 차유진이 말도 안 되게 밉보였거나.
어쨌든 그건 자기들 알아서 할 사정이고, 팀 쪽은 2등스러운 분위기였다.
“좀 아쉽네요.”
“그, 그러니까요.”
“야야, 아니야! 정정당당하게 등수 받는 거지!”
골드 1이야 호쾌한 척 외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속으로 놈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라도 벌써 했다.’
팀전 1위 발표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진짜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18위는… 권희승 참가자입니다!”
로 풀어졌던 분위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순위가 발표되는 순간 공기가 조여들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초반에 불린 골드 2가 대놓고 안심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저놈도 은근히 계속 가네.’
최종까지 갈 줄은 몰랐다. 턱걸이긴 했지만.
그렇게 10위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순위가 발표되었다. 붙을 만한 사람들이 쭉 붙었다는 소리다.
그나마 놀라운 점은 이세진이 소폭 상승했다는 정도일까.
“11위는… 이세진~ A! 참가자입니다!”
직전 팀전에서 대놓고 싸운 것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아마 빌런으로 찍힌 최원길과 싸운 덕에 의문의 보정을 받은 모양이다.
옆에서 큰세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세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 부럽다.”
큰세진은 마치 떨어질까 걱정된다는 것처럼, 살짝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
저 정도면 기만 아닌가?
기세상 누가 봐도 붙을 놈이었다.
속으로 ‘제발 늦게 불러라’ 염불을 외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정말 프로다운 카메라 의식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단상에서는 MC가 적당히 뜸을 들이며 쭉쭉 순위를 발표해 나갔다.
친분 있는 참가자들 대부분은 이름이 불려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박문대의 이름은 전보다 늦지 않게 불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6위 자리에 착석했다.
지난번보다 소폭 하락세였다.
‘역시 순위가 떨어졌군.’
표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위권 인플레만큼 내 표가 불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인플레가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돈 쓴 만큼 투표할 수 있으니, 팬들은 마이너스 투표를 의식할수록 불안감에 더 표를 사게 됐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참가자가 간절해 보일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쫄리면 더 지르라는 거지.’
하여간 제작진 놈들이 지갑 쥐어짜는 방법은 기가 막히게 채택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량이든 등수든 과거든 논란이 있는 다른 최상위권들과 비교할 때, 최근 ‘박문대’는 특별히 꼬투리 잡힐 상황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그렇다고 논란거리를 만드는 건 미친 짓이었다. 편집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제작진이니까.
‘을 그냥 넘긴 게 역시 좀 아깝다.’
약간 아쉬웠지만, 이미 지나간 배였다. 어차피 VTIC이 튀어나온 이상 박문대 중심의 분량을 뽑기는 글렀던 것이다.
“축하한다~”
“어. 고맙다.”
소폭 상승해서 7위로 마감한 큰세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아주 정석적인 동료 참가자의 리액션이었다.
‘이놈도 기세를 봐서는 데뷔할 것 같은데.’
학폭 논란 때 붙은 마이너스 표를 제외하면 큰세진이 박문대보다 표수가 많았다.
예상대로 투표자들이 결집한 모양이다.
선행이 내 뒤통수를 위협할 줄이야.
‘역시 호구 짓이었나….’
그 당시 같은 팀이라 별수 없긴 했다. 그래도 약간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심 짧게 혀를 차고, 도로 MC에게 시선을 돌렸다.
1위는 차유진이었다.
“와우!!”
차유진은 신나게 웃으며 1위 배지를 받다가, 문득 진지하게 태도를 가다듬고 소감과 감사를 전했다.
“여기 나와서…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더 강하게 멋진 모습 만들겠습니다. 1위 정말 감사합니다.”
문법은 여전히 해괴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을 만큼 진중한 목소리였다. 최근 분량과 시너지가 날 만한 면모였다.
‘저래서 1등 했군.’
노리고 저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점이 과연 여기서 끼 스탯이 가장 높은 놈다웠다.
“주주 여러분께서 선택하신 1등 주식, 차유진 참가자!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적당한 박수 소리와 함께 차유진은 1등 좌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남은 생존자는 최하위 두 자리.
그리고 아직까지도 골드 1은 단상에 올라오지 못했다.
‘일단 후보에는 들었다.’
20위, 19위 후보 넷이 전광판에 뜨고, 골드 1의 얼굴이 보일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희망적이었다. 확률은 50%였으니까.
그리고 골드 1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20위! 의 결승 무대에 진출할 마지막 참가자는… 서태문입니다!”
…없었다.
팀전 1위 때처럼, 절반의 확률이 또 다시 골드 1을 배신한 것이다.
확률 50%랑 원수라도 졌나 싶은 결과였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투표해주신 주주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골드 1, 하일준은 21위로 오디션 참가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형!!”
“야, 연락해!”
MC의 마무리 멘트가 끝나자마자 탈락자들은 전보다 덜 형식적인 배웅의 시간을 가졌다. 몇 달간 부대끼고 지냈으니 어지간하면 친한 놈이 서넛은 생겼을 테니까.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골드 2와 선아현 다음으로 골드 1과 인사하게 되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하필 감성에 푹 젖은 둘 다음에 대화하게 되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단 적당히 악수를 하자.
“문대~”
그러나 이쪽도 만만찮게 감성 빌드업이 됐는지 허그로 시작했다.
‘이걸 떼어낼 수도 없고.’
찜찜해하려니 골드 1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쉬운 기색을 꾹 누른 것 같은 말을.
“넌 데뷔할 것 같다. 힘내.”
“…….”
‘박문대’의 몸에 막 들어온 나에게, 몇 달 뒤 아이돌 지망생의 덕담에 복잡한 심정이 될 거라고 말해줬다면 과연 믿었을까 모르겠다.
‘거참.’
나는 한숨 대신 덕담을 돌려줬다.
“형도요.”
“뭐?”
“형도 금방 데뷔하실 것 같습니다.”
골드 1, 하일준은 허그를 풀고 히죽 웃었다.
“그렇지? 난 잘될 준비가 됐다니까.”
모른다. 21위라는 애매한 최종 등수로 과연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그러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적당히 해치우자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야말로 고마웠다!”
57명이 탈락하고 남은 20명의 참가자. 이제 기다리는 건 결승전뿐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화
‘눈에 띄는 참가자라.’
청려는 웃으며 참가자들과의 촬영을 끝마친 것과 관계없이, 그들의 장기적 성공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현재 상위권이 오디션 예능의 힘으로 잘나가는 중이긴 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 나왔을 때의 경쟁력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스토리 내에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일 수도.’
어차피 소속사 내부 경쟁에서 탈락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팽당한 케이스가 다수였으니까.
청려는 그냥 점심 메뉴 이야기나 계속하려다가, 무심코 떠오른 한 참가자를 입에 담았다.
“박문대?”
“아, 닭발?”
그보다 어린 멤버가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청려는 웃지 않았다.
“설문지 답이 나랑 전부 일치했어.”
“헐! 진짜? 신기하네. …형이랑 성격이 비슷한가?”
“…어느 정도는.”
“헉, 진짜?”
청려는 경악하는 동생을 무시하며, 약간 아쉬워했다.
‘그런 타입이 팀에 하나 있으면 좋은데.’
박문대는 설문의 보기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방송을 신경 써서 어떻게든 중립적인 답을 찍은 기색이 역력했다.
“음, 형이랑 비슷한 성격이면 굉장히… 냉정하겠는데?”
“현실적이라는 뜻이지?”
“그, 그렇지.”
타인의 사정에 몰입하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사고는 잘 못 하는 타입. 연예인보다 일반 기업에 더 어울리는 인재상 말이다.
대체로 아이돌 지망생들, 특히 재능 있는 어린 애들은 예체능 계열 특유의 장단점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덜 차갑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그들이 직면할 현실은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성인 사회였다.
“뭐, 형 같은 사람이 리더인 게 좋긴 해.”
“그래? 고맙다.”
자기 얼굴에 금칠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청려도 동생의 말에 동의했다.
‘머리 식은 사람이 분위기 잡는 편이 좋다.’
꼭 자신이 리더를 맡은 VTIC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문대는 꽤 괜찮은 차기 데뷔조 후보군이었다.
‘한 일이 년 구르면 춤도 되겠지.’
그리고 그 성격에, 연상이라면 연차가 짧아도 저절로 팀에서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려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본 일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럼 같이 일하기 편해질 텐데.’
팀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VTIC이 회사와 재계약하며 지분을 좀 받았다고 해서 차기 남자 아이돌에게 더 신경 써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어차피 데뷔하면 경쟁자인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양심상 권유 한번 해줬으니 충분했다.
‘본인이 생각 있으면 연락하겠지.’
짧은 결론을 끝으로 청려는 머리에서 ‘이미 끝낸 스케줄’에 줄을 긋고 치웠다. 바쁜 계절이었다.
* * *
순위 발표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촬영장 안.
포맷은 똑같았다. 그러나 인원은 확 줄어들었다.
붙을 수 있는 것은 20명뿐.
그것만으로도 장내에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비좁은 인원에 변동을 일으킬 요소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3차 팀전의 두 1위 후보팀 리더분들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팀전 우승 혜택이다. 1위 팀에서 합의한 한 명이 무조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생존권.
우리 쪽은 당연히 골드 1으로 합의가 끝난 상태다. 촬영 전에 사전 인터뷰 때 이미 제출했기도 하고.
“저희 팀은… 하일준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큰세진의 말이 끝나고도 꽤 오랫동안 팀의 리더, 류청우는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 팀, 선정한 팀원을 발표해주시기 바랍니다.”
MC의 재촉이 신난 것처럼 들리는 건 내 피해의식 때문이겠지.
류청우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저희 팀은 최원길 참가자를 선정했었습니다.”
“…!”
이야, 끝까지 한 건 하고 가네.
‘걔가 의외로 난 놈이었나?’
솔직히 저걸 챙겼을 줄은 몰랐다. 그럼 최원길은 50%의 프리패스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갈아탔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쨌든, 놈 덕분에 상황이 애매해졌다.
이미 누구를 선정했는지 촬영 전에 제작진에게 전달했었기 때문이다.
눈치 보니 최원길이 탈주한 후 급하게 바꾸는 것도 제작진 측에서 컨펌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제작진은 당황한 것처럼 다급히 회의하는 모션을 취하더니, MC에게 사인을 보냈다.
MC는 제작진의 스케치북을 보고 천천히 대사를 완성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원칙상 자진 하차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그 참가자의 혜택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팀에게 3분 간의 상의 시간을 추가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류청우는 묵례하고 앉아서 팀원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내심 혀를 찼다.
‘…끝났군.’
이건 안 봐도 저 팀이 1등이다.
‘저렇게까지 화면을 뽑아놓고 혜택을 안 주면 그림이 안 산다.’
제작진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판을 짰을 리가 없었다.
결국, 골드 1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전승은 물 건너 갔군.’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는 골드 1의 얼굴을 보니, 저쪽도 은근한 싸함을 느끼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1등은 팀이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1등은… 팀!”
“감사합니다.”
그러나 웃기는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 팀의 추가 합의에 따라, 무조건 생존의 혜택을 받는 참가자는… 차유진 참가자입니다!”
저 미친놈들이 혜택을 차유진에게 줬던 것이다.
‘둘 중 하나겠어.’
합의가 결렬됐거나, 차유진이 말도 안 되게 밉보였거나.
어쨌든 그건 자기들 알아서 할 사정이고, 팀 쪽은 2등스러운 분위기였다.
“좀 아쉽네요.”
“그, 그러니까요.”
“야야, 아니야! 정정당당하게 등수 받는 거지!”
골드 1이야 호쾌한 척 외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속으로 놈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라도 벌써 했다.’
팀전 1위 발표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진짜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18위는… 권희승 참가자입니다!”
로 풀어졌던 분위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순위가 발표되는 순간 공기가 조여들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초반에 불린 골드 2가 대놓고 안심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저놈도 은근히 계속 가네.’
최종까지 갈 줄은 몰랐다. 턱걸이긴 했지만.
그렇게 10위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순위가 발표되었다. 붙을 만한 사람들이 쭉 붙었다는 소리다.
그나마 놀라운 점은 이세진이 소폭 상승했다는 정도일까.
“11위는… 이세진~ A! 참가자입니다!”
직전 팀전에서 대놓고 싸운 것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아마 빌런으로 찍힌 최원길과 싸운 덕에 의문의 보정을 받은 모양이다.
옆에서 큰세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세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 부럽다.”
큰세진은 마치 떨어질까 걱정된다는 것처럼, 살짝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
저 정도면 기만 아닌가?
기세상 누가 봐도 붙을 놈이었다.
속으로 ‘제발 늦게 불러라’ 염불을 외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정말 프로다운 카메라 의식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단상에서는 MC가 적당히 뜸을 들이며 쭉쭉 순위를 발표해 나갔다.
친분 있는 참가자들 대부분은 이름이 불려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박문대의 이름은 전보다 늦지 않게 불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6위 자리에 착석했다.
지난번보다 소폭 하락세였다.
‘역시 순위가 떨어졌군.’
표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위권 인플레만큼 내 표가 불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인플레가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돈 쓴 만큼 투표할 수 있으니, 팬들은 마이너스 투표를 의식할수록 불안감에 더 표를 사게 됐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참가자가 간절해 보일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쫄리면 더 지르라는 거지.’
하여간 제작진 놈들이 지갑 쥐어짜는 방법은 기가 막히게 채택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량이든 등수든 과거든 논란이 있는 다른 최상위권들과 비교할 때, 최근 ‘박문대’는 특별히 꼬투리 잡힐 상황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그렇다고 논란거리를 만드는 건 미친 짓이었다. 편집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제작진이니까.
‘을 그냥 넘긴 게 역시 좀 아깝다.’
약간 아쉬웠지만, 이미 지나간 배였다. 어차피 VTIC이 튀어나온 이상 박문대 중심의 분량을 뽑기는 글렀던 것이다.
“축하한다~”
“어. 고맙다.”
소폭 상승해서 7위로 마감한 큰세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아주 정석적인 동료 참가자의 리액션이었다.
‘이놈도 기세를 봐서는 데뷔할 것 같은데.’
학폭 논란 때 붙은 마이너스 표를 제외하면 큰세진이 박문대보다 표수가 많았다.
예상대로 투표자들이 결집한 모양이다.
선행이 내 뒤통수를 위협할 줄이야.
‘역시 호구 짓이었나….’
그 당시 같은 팀이라 별수 없긴 했다. 그래도 약간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심 짧게 혀를 차고, 도로 MC에게 시선을 돌렸다.
1위는 차유진이었다.
“와우!!”
차유진은 신나게 웃으며 1위 배지를 받다가, 문득 진지하게 태도를 가다듬고 소감과 감사를 전했다.
“여기 나와서…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더 강하게 멋진 모습 만들겠습니다. 1위 정말 감사합니다.”
문법은 여전히 해괴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을 만큼 진중한 목소리였다. 최근 분량과 시너지가 날 만한 면모였다.
‘저래서 1등 했군.’
노리고 저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점이 과연 여기서 끼 스탯이 가장 높은 놈다웠다.
“주주 여러분께서 선택하신 1등 주식, 차유진 참가자!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적당한 박수 소리와 함께 차유진은 1등 좌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남은 생존자는 최하위 두 자리.
그리고 아직까지도 골드 1은 단상에 올라오지 못했다.
‘일단 후보에는 들었다.’
20위, 19위 후보 넷이 전광판에 뜨고, 골드 1의 얼굴이 보일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희망적이었다. 확률은 50%였으니까.
그리고 골드 1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20위! 의 결승 무대에 진출할 마지막 참가자는… 서태문입니다!”
…없었다.
팀전 1위 때처럼, 절반의 확률이 또 다시 골드 1을 배신한 것이다.
확률 50%랑 원수라도 졌나 싶은 결과였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투표해주신 주주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골드 1, 하일준은 21위로 오디션 참가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형!!”
“야, 연락해!”
MC의 마무리 멘트가 끝나자마자 탈락자들은 전보다 덜 형식적인 배웅의 시간을 가졌다. 몇 달간 부대끼고 지냈으니 어지간하면 친한 놈이 서넛은 생겼을 테니까.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골드 2와 선아현 다음으로 골드 1과 인사하게 되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하필 감성에 푹 젖은 둘 다음에 대화하게 되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단 적당히 악수를 하자.
“문대~”
그러나 이쪽도 만만찮게 감성 빌드업이 됐는지 허그로 시작했다.
‘이걸 떼어낼 수도 없고.’
찜찜해하려니 골드 1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쉬운 기색을 꾹 누른 것 같은 말을.
“넌 데뷔할 것 같다. 힘내.”
“…….”
‘박문대’의 몸에 막 들어온 나에게, 몇 달 뒤 아이돌 지망생의 덕담에 복잡한 심정이 될 거라고 말해줬다면 과연 믿었을까 모르겠다.
‘거참.’
나는 한숨 대신 덕담을 돌려줬다.
“형도요.”
“뭐?”
“형도 금방 데뷔하실 것 같습니다.”
골드 1, 하일준은 허그를 풀고 히죽 웃었다.
“그렇지? 난 잘될 준비가 됐다니까.”
모른다. 21위라는 애매한 최종 등수로 과연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그러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적당히 해치우자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야말로 고마웠다!”
57명이 탈락하고 남은 20명의 참가자. 이제 기다리는 건 결승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