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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50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9화
‘큰달과 또 몸을 바꿔?’
건물 붕괴부터 몸 바뀌기까지.
지난 ‘미션 실패’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기능.
나는 상태창이 ‘재업데이트’랍시고 준 옵션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대체 누가 이딴 기능을 반기겠냐고.’
그때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걸 또 자진해서 경험해 보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대체 누가 무너지는 건물 속에 갇히거나 스케줄을 말아먹는 스릴을 느끼고 싶겠냐고.
설마 내가 최근에 ‘■■■의 파편’ 흡수를 자주 생각했다고 이러는 건가? 지금까지 ‘미션 실패’를 해결했을 때마다 파편을 습득했으니, 거기서 연관성을 찾은 거냔 말이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이딴 식으로 수요 예측하면 잘린다 새끼야.’
게다가 시스템을 회사에 적용했는데, 왜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부가 기능을 주냐고.
무슨 유명 웹툰에서 IP 껍데기만 빌려와서는 무맥락으로 모바일 뽑기 게임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응답이라도 하듯이 팝업이 위로 튀어나왔다.
[미션 실패 : 원상 복귀]
최대 열람 시간 : 48시간
-열람하시겠습니까?
심지어 이 새끼는 눈치도 없다.
‘좀 꺼져 봐라.’
나는 팝업을 지우고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가 지근거렸다.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지금 기억을 잃어버린 멤버는 류청우, 김래빈.’
현상만 두고 보자면, 둘 다 그룹에 협조적이며 돌발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류청우는 기억을 되찾는 것을 꺼리고, 김래빈은 무대를 꺼린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직전, 김래빈의 표정을 떠올렸다.
-하, 하지만….
‘아까 스티어 김래빈은 류청우의 눈치를 봤어.’
그것도 약간 무섭다는 듯이 말이다.
테스타로 살면서는 거의 보기 드문 광경인데, 그걸 거의 버릇처럼 했단 말이지.
“…….”
나는 지난 며칠간 스티어 류청우에게 느낀 묘한 위화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별수 없다.’
지금까지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자제했는데, 이렇게까지 된 이상 더 그러는 건 현실 도피하는 멍청한 짓이다.
얼굴 안 붉히는 방법이 안 통하면 정공법이지.
‘캐묻는다.’
그리고 누가 가장 적절한 상대인지도 알았다.
양쪽 기억을 다 가지고 있는 완전체.
* * *
“기억나는 거 있는 대로 다 말해봐라.”
나는 지난번 사태의 당사자이자 성공적으로 기억을 되찾은 녀석, 차유진을 부엌으로 불러낸 다음 이렇게 대화를 텄다.
“What?”
“스티어 때 내부 갈등.”
차유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형 맛있는 거 요리해 준다고 했어요! 저 속였어요!”
그래. 이러려고 이세진이랑 선아현까지 섭외해서 스티어 두 놈을 안무 연습실과 작업실로 분산시켜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기는 아니다.
“그것도 해줄 건데.”
“Oh.”
“뭐 먹고 싶냐.”
“김치볶음밥 주세요.”
접수.
나는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꺼냈다.
“치즈 넣어주세요!”
오냐.
단번에 얌전해진 놈을 옆에 세우고, 나는 김치를 썰며 물었다.
“묻는 이유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둬야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더는 모르는 게 있는 채로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침묵, 암묵적 동의군.
나는 가장 신경 쓰이던 부분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래빈이가 청우 형 눈치를 보는 것 같던데.”
“Umm… Yep.”
긍정.
“이유가 뭐냐.”
차유진은 잠깐 시무룩했으나, 곧 침착해졌다.
“형 정말 듣고 싶어요?”
“어.”
“OK.”
차유진은 잠깐 말이 없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재료 손질을 계속했다.
곧 덤덤한 목소리가 싱크대를 울렸다.
“옛날, 스티어의 청우 형은 겁주는 사람이었어요.”
“…!”
예사롭지 않은 단어 선택이었다.
겁을 준다고?
“구체적으로 어땠는데.”
[알잖아요, 스티어라는 KPOP 그룹의 초기 멤버 절반은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서열이 높은 우두머리처럼 팀을 이끈 거죠. 매우 거친 미식축구 캡틴처럼요.]
차유진이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가 지금처럼 포용력 있게 온화한 모습으로 팀원을 대하지 않았다는 거죠.]
“…예를 들자면?”
녀석이 어렴풋한 기억을 회상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안무 연습에 빠졌던 한 멤버를 숙소에 못 들어오게 하고 연습실에서 밤을 새우게 만든 적도 있어요.]
뭐?
나는 순간 프라이팬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차유진은 코웃음이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그 멍청한 녀석은 거의 울 지경으로 새벽 내내 안무를 익혀야 했다니까요.]
“…….”
[그리고 그런 종류의 처벌이 몇 년쯤 계속됐죠.]
‘믿기 힘든데.’
류청우의 품성상 불가능하고 뭐 그런 차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의 문제였다.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말이지.’
아무리 연장자라고 해도 같은 나이대의 또래였다.
그것도 서로 똑같은 처지에 명목만 리더인 개인이 교관처럼 ‘처벌’을 하려 든다?
다른 멤버들이 대가리가 굵은 이상, 그래 봤자 먹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다들 흥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순위 안에 들어서 막 데뷔한 상태이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 자의식 비대할 시기에….
“그게 통했다고?”
하지만 차유진은 즉답했다.
[통했어요.]
“…….”
알겠다.
‘상식이 안 통할만큼 류청우가 의외로 공포 정치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의미다.’
내외 양면으로 개난장판인 그룹 분위기를 휘어잡기 위해… 결국 강경책을 썼단 말이고.
나는 묵묵히 베이컨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 기름에 썰어놓은 김치를 튀기듯 볶기 시작하며 확인했다.
“리더로서 제대로 강압적이었다는 거지.”
“비슷해요.”
차유진의 긍정을 들으며, 나는 기계적으로 식은 쌀밥을 프라이팬에 넣어 고슬고슬하게 풀었다.
반복 노동은 다른 생각을 하기 쉽고, 나는 순식간에 반박문을 완성했다.
“하지만 래빈이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말을 들었을 텐데.”
“저는요? 저도 말 들어요!”
“양심 있냐.”
“우우.”
녀석이 약간 억울하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았다.
“차별하면 문제 생겨요. 제 생각엔, 그래서 청우 형은 모든 멤버에게 똑같이 강하게 대했어요.”
“…….”
기선 제압해서 찍소리도 못하게 둬야 하니, 하나하나 사정 봐줄 수 없었다는 거군.
‘그래서 김래빈까지 눈치를 보게 됐다…라.’
생각해 보니, 스티어 차유진도 초반에 놀라울 정도로 류청우에게 고분고분했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출신인 류청우가 ‘안 봐주고’ 휘어잡았던 팀 분위기가 어느 수준으로 살벌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공포 정치 메타가 장기적으로 먹히려면 그 정도는 되긴 했어야지.’
몇 년이나 반발을 억누르고, 결국 멤버 절반이 그룹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탈퇴하고 런을 택했을 정도면 말이다.
소속사가 손 놓은 그룹을 잡고, 어떻게든 운영하긴 한 것이다.
그러나 차유진은 말하고도 약간 후회하는 기색이었다.
[형은 우리 팬으로서 환상을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예, 그게 진실이에요.]
“…….”
그리고 나는 알았다.
“네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
“맞아요. 저는 정직한 사람이에요.”
나는 치즈를 넣어 김치볶음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식욕으로 침울함을 날리는 차유진에게 담담히 말했다.
“특별히 환상이 깨지고 뭐고 그런 건 없다.”
“…형 진심 말하는 중이에요?”
“오냐.”
결과적으로는, 주어진 환경 내에서는 류청우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거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는 없겠다.
‘말 안 듣는 애새끼들 데리고 그쯤 한 게 기적이지.’
그것보다 말이다.
“그럼 지금 스티어 류청우는 일부러 온화하게 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상태라는 거지.”
차유진은 짧게 생각에 잠긴 것 같았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약점 보이는 거 싫어해요. 청우 형도 예외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티어 류청우 자체도 자신의 ‘강압적인 리더’ 이미지가 여기 정착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점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도 그렇게까지 강압적으로 구는 걸 별로 내켜 하지 않았을 확률도 높고.’
나는 계란을 프라이하기 위해 버터 한 덩이를 반 잘라 새 팬에 넣으며 예상했다.
그리고 이제 치즈가 다 녹아내린 김치볶음밥에서 눈을 못 떼는 차유진에게 물었다.
“알았다. 그럼 래빈이는?”
“…….”
“왜 무대에 서기 싫어하는지 아냐.”
그러자 차유진이 어깨를 약간 늘어트렸다.
“저도 몰라요.”
“…??”
[제가 기억하는 스티어 김래빈은… 예, 지금보다 덜 활발하긴 했죠. 그런데 무대를 증오하진 않았거든요.]
“…….”
지금도 ‘퍼포머’로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무대를 증오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썩 다를 게 없으니까.
‘어쨌든, 이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거군.’
그렇다면 이놈이 미국에 간 후, 스티어 김래빈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걸 수도 있겠다.
-그룹 해체 이후. 멤버들과 다 헤어지고 난 후.
나는 이 타이밍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OK.”
나는 미뤄뒀던 질문을 꺼냈다.
“…배세진 형은, 어떻게 됐냐.”
타닥타닥.
계란이 익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을 채웠다.
그리고.
[소식은 몇 년 전에 끊겼던 것 같고, 아마 그는 재판을 계속 항소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항소했다고?
항소는 나온 재판 결과에 불복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마약 유통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이든 벌금이든 확실히 선고되었다는 뜻이기도 했고.
‘X발.’
유통이면 징역일 확률이 더 높겠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결과는?”
“제 기억에 없어요. [아마 스티어의 멤버들은 최종 결론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차유진의 목소리가 약간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제 알아요. 세진 형 완전히 moral한 사람이에요. So… [오해나, 타이밍 나쁜 우연일 거라고 지금의 저는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스티어 녀석들은 어쨌든 전부 배세진이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고.’
스티어 류청우가 여기서 배세진에게 제법 온화하고 친절하게 구는 건 더 놀라운 일이 되었다.
‘흠.’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우며, 인덕션의 열을 내렸다.
그리고 치즈가 눌어붙은 김치볶음밥 위로 반숙 계란프라이 두 점을 올렸다.
“다 됐다.”
“Wow!!”
순간 차유진의 모든 근심 걱정이 날아갔다. 뭐, 보기 좋군.
그리고 잠시 후에는 현관으로 나갔던 녀석들이 우르르 돌아왔다.
“헐, 우리 두고 김치볶음밥?”
“형은 배달 이용해요!”
“와~ 진짜 치사하다, 유진이.”
나는 그 틈에서 말없이 약간 어색하게 섞여 있는 스티어 녀석들을 보며, 모종의 결심을 끝냈다.
우선 기본.
‘지금 상황이 너무 꼬였다.’
차유진의 설명을 듣자 하니 스티어 때의 인과 관계가 내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인 상태다.
그런데 어느 쪽 폭탄도 밟지 않고, 두 녀석이 동시에 만족스럽게 기억을 되찾도록 인도하기?
‘난이도가 미쳤군.’
그리고 설사 이 모든 게 기적적으로 좋게 끝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기억을 되찾고 말고는 결국 이 시스템 업데이트에 달렸어.’
그걸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시스템의 작용 원리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의 추리가 모호해지고, 대화를 해도 해도 맴도는 것이다.
결국, 이 근본적인 부분을 내가 파악하지 못하면 속 시원한 정답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업데이트랍시고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돌아온 건지.
-언제 본래의 기억을 되찾는 건지.
시스템의 원리.
그리고 지금 주어진 조건하에서… 이걸 알아낼 방법이, 떠오르긴 했다.
‘그렇다면 알아내야지.’
머뭇거리다간 또 질질 끌다가 내 손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그 꼴은 다시 못 본다.’
여기서,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기에 이어서 ‘정공법’의 두 번째 단계가 나온다.
-시스템 직접 분석.
그리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나는 결정했다.
‘모험 수를 던진다.’
그리고 모름지기 리스크를 감수하려면, 내가 직접 해야 안심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날 새벽.
‘상태창.’
나는 아주 오랜만에, 게임 시스템을 자진해서 불러왔다.
그리고 ‘미리보기’ 중이라 어딘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스템 팝업을 다시 확인했다.
[미션 실패 : 원상 복귀]
최대 열람 시간 : 48시간
-열람하시겠습니까?
48시간이라는 것은 아마 지난번, 박문대와 류건우의 몸 주인이 바뀌었을 때 받았던 최대 패널티 기간이다.
‘굳이 최대라고 붙어 있는 걸 보니, 내가 임의로 끝낼 수 있을 확률도 높다.’
최악의 경우에도 무조건 48시간 안에는 결론이 난다는 소리.
참고로 내일은 주말이다.
내 경연 무대는 아직 준비하기 전이고, 큰달의 직장은 쉬는 날.
마침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형, 정말 하실 거예요?]
그래.
[알겠습니다….]
이미 몇 시간이나 설득당한 큰달은 순순히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
나는 피곤한 눈으로 침대에서 눈을 떴다.
류건우의 침실 천장이 어슴푸레한 빛 사이로 윤곽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확인할 여유는 없다.
‘접속부터.’
나는 당장 큰달이 들어간 ‘박문대’의 시야에 접속했다.
[파편 기록 열람 중]
시야가 둘로 나눠진 듯,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투영된다.
‘좋아.’
이것까지는 지난번에 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게 알려주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몸이 바뀐 상태라면, 나도 큰달이 했던 것처럼 상태창으로서 박문대의 시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 약간 태풍이나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요….
‘어렵군.’
나는 큰달의 모호한 설명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시야에 보이는 상태창의 표면으로 점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정말 잠기듯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상태창 속으로.
‘됐다!’
시스템 구조 확인 및 변경.
이전에 큰달이 백일몽 사건부터 건물 붕괴까지, 몇 번이나 상태창을 통해 시스템에 접속해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
‘그냥… 아주 혼수상태 같은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주마.’
나는 시스템 분석을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9화

‘큰달과 또 몸을 바꿔?’

건물 붕괴부터 몸 바뀌기까지.

지난 ‘미션 실패’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기능.

나는 상태창이 ‘재업데이트’랍시고 준 옵션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대체 누가 이딴 기능을 반기겠냐고.’

그때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걸 또 자진해서 경험해 보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대체 누가 무너지는 건물 속에 갇히거나 스케줄을 말아먹는 스릴을 느끼고 싶겠냐고.

설마 내가 최근에 ‘■■■의 파편’ 흡수를 자주 생각했다고 이러는 건가? 지금까지 ‘미션 실패’를 해결했을 때마다 파편을 습득했으니, 거기서 연관성을 찾은 거냔 말이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이딴 식으로 수요 예측하면 잘린다 새끼야.’

게다가 시스템을 회사에 적용했는데, 왜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부가 기능을 주냐고.

무슨 유명 웹툰에서 IP 껍데기만 빌려와서는 무맥락으로 모바일 뽑기 게임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응답이라도 하듯이 팝업이 위로 튀어나왔다.

최대 열람 시간 : 48시간

-열람하시겠습니까?

심지어 이 새끼는 눈치도 없다.

‘좀 꺼져 봐라.’

나는 팝업을 지우고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가 지근거렸다.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지금 기억을 잃어버린 멤버는 류청우, 김래빈.’

현상만 두고 보자면, 둘 다 그룹에 협조적이며 돌발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류청우는 기억을 되찾는 것을 꺼리고, 김래빈은 무대를 꺼린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직전, 김래빈의 표정을 떠올렸다.

-하, 하지만….

‘아까 스티어 김래빈은 류청우의 눈치를 봤어.’

그것도 약간 무섭다는 듯이 말이다.

테스타로 살면서는 거의 보기 드문 광경인데, 그걸 거의 버릇처럼 했단 말이지.

“…….”

나는 지난 며칠간 스티어 류청우에게 느낀 묘한 위화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별수 없다.’

지금까지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자제했는데, 이렇게까지 된 이상 더 그러는 건 현실 도피하는 멍청한 짓이다.

얼굴 안 붉히는 방법이 안 통하면 정공법이지.

‘캐묻는다.’

그리고 누가 가장 적절한 상대인지도 알았다.

양쪽 기억을 다 가지고 있는 완전체.

* * *

“기억나는 거 있는 대로 다 말해봐라.”

나는 지난번 사태의 당사자이자 성공적으로 기억을 되찾은 녀석, 차유진을 부엌으로 불러낸 다음 이렇게 대화를 텄다.

“What?”

“스티어 때 내부 갈등.”

차유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형 맛있는 거 요리해 준다고 했어요! 저 속였어요!”

그래. 이러려고 이세진이랑 선아현까지 섭외해서 스티어 두 놈을 안무 연습실과 작업실로 분산시켜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기는 아니다.

“그것도 해줄 건데.”

“Oh.”

“뭐 먹고 싶냐.”

“김치볶음밥 주세요.”

접수.

나는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꺼냈다.

“치즈 넣어주세요!”

오냐.

단번에 얌전해진 놈을 옆에 세우고, 나는 김치를 썰며 물었다.

“묻는 이유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둬야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더는 모르는 게 있는 채로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침묵, 암묵적 동의군.

나는 가장 신경 쓰이던 부분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래빈이가 청우 형 눈치를 보는 것 같던데.”

“Umm… Yep.”

긍정.

“이유가 뭐냐.”

차유진은 잠깐 시무룩했으나, 곧 침착해졌다.

“형 정말 듣고 싶어요?”

“어.”

“OK.”

차유진은 잠깐 말이 없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재료 손질을 계속했다.

곧 덤덤한 목소리가 싱크대를 울렸다.

“옛날, 스티어의 청우 형은 겁주는 사람이었어요.”

“…!”

예사롭지 않은 단어 선택이었다.

겁을 준다고?

“구체적으로 어땠는데.”

차유진이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예를 들자면?”

녀석이 어렴풋한 기억을 회상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뭐?

나는 순간 프라이팬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차유진은 코웃음이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

‘믿기 힘든데.’

류청우의 품성상 불가능하고 뭐 그런 차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의 문제였다.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말이지.’

아무리 연장자라고 해도 같은 나이대의 또래였다.

그것도 서로 똑같은 처지에 명목만 리더인 개인이 교관처럼 ‘처벌’을 하려 든다?

다른 멤버들이 대가리가 굵은 이상, 그래 봤자 먹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다들 흥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순위 안에 들어서 막 데뷔한 상태이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 자의식 비대할 시기에….

“그게 통했다고?”

하지만 차유진은 즉답했다.

“…….”

알겠다.

‘상식이 안 통할만큼 류청우가 의외로 공포 정치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의미다.’

내외 양면으로 개난장판인 그룹 분위기를 휘어잡기 위해… 결국 강경책을 썼단 말이고.

나는 묵묵히 베이컨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 기름에 썰어놓은 김치를 튀기듯 볶기 시작하며 확인했다.

“리더로서 제대로 강압적이었다는 거지.”

“비슷해요.”

차유진의 긍정을 들으며, 나는 기계적으로 식은 쌀밥을 프라이팬에 넣어 고슬고슬하게 풀었다.

반복 노동은 다른 생각을 하기 쉽고, 나는 순식간에 반박문을 완성했다.

“하지만 래빈이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말을 들었을 텐데.”

“저는요? 저도 말 들어요!”

“양심 있냐.”

“우우.”

녀석이 약간 억울하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았다.

“차별하면 문제 생겨요. 제 생각엔, 그래서 청우 형은 모든 멤버에게 똑같이 강하게 대했어요.”

“…….”

기선 제압해서 찍소리도 못하게 둬야 하니, 하나하나 사정 봐줄 수 없었다는 거군.

‘그래서 김래빈까지 눈치를 보게 됐다…라.’

생각해 보니, 스티어 차유진도 초반에 놀라울 정도로 류청우에게 고분고분했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출신인 류청우가 ‘안 봐주고’ 휘어잡았던 팀 분위기가 어느 수준으로 살벌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공포 정치 메타가 장기적으로 먹히려면 그 정도는 되긴 했어야지.’

몇 년이나 반발을 억누르고, 결국 멤버 절반이 그룹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탈퇴하고 런을 택했을 정도면 말이다.

소속사가 손 놓은 그룹을 잡고, 어떻게든 운영하긴 한 것이다.

그러나 차유진은 말하고도 약간 후회하는 기색이었다.

“…….”

그리고 나는 알았다.

“네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

“맞아요. 저는 정직한 사람이에요.”

나는 치즈를 넣어 김치볶음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식욕으로 침울함을 날리는 차유진에게 담담히 말했다.

“특별히 환상이 깨지고 뭐고 그런 건 없다.”

“…형 진심 말하는 중이에요?”

“오냐.”

결과적으로는, 주어진 환경 내에서는 류청우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거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는 없겠다.

‘말 안 듣는 애새끼들 데리고 그쯤 한 게 기적이지.’

그것보다 말이다.

“그럼 지금 스티어 류청우는 일부러 온화하게 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상태라는 거지.”

차유진은 짧게 생각에 잠긴 것 같았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약점 보이는 거 싫어해요. 청우 형도 예외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티어 류청우 자체도 자신의 ‘강압적인 리더’ 이미지가 여기 정착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점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도 그렇게까지 강압적으로 구는 걸 별로 내켜 하지 않았을 확률도 높고.’

나는 계란을 프라이하기 위해 버터 한 덩이를 반 잘라 새 팬에 넣으며 예상했다.

그리고 이제 치즈가 다 녹아내린 김치볶음밥에서 눈을 못 떼는 차유진에게 물었다.

“알았다. 그럼 래빈이는?”

“…….”

“왜 무대에 서기 싫어하는지 아냐.”

그러자 차유진이 어깨를 약간 늘어트렸다.

“저도 몰라요.”

“…??”

“…….”

지금도 ‘퍼포머’로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무대를 증오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썩 다를 게 없으니까.

‘어쨌든, 이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거군.’

그렇다면 이놈이 미국에 간 후, 스티어 김래빈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걸 수도 있겠다.

-그룹 해체 이후. 멤버들과 다 헤어지고 난 후.

나는 이 타이밍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OK.”

나는 미뤄뒀던 질문을 꺼냈다.

“…배세진 형은, 어떻게 됐냐.”

타닥타닥.

계란이 익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을 채웠다.

그리고.

항소했다고?

항소는 나온 재판 결과에 불복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마약 유통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이든 벌금이든 확실히 선고되었다는 뜻이기도 했고.

‘X발.’

유통이면 징역일 확률이 더 높겠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결과는?”

“제 기억에 없어요. [아마 스티어의 멤버들은 최종 결론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차유진의 목소리가 약간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제 알아요. 세진 형 완전히 moral한 사람이에요. So… [오해나, 타이밍 나쁜 우연일 거라고 지금의 저는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스티어 녀석들은 어쨌든 전부 배세진이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고.’

스티어 류청우가 여기서 배세진에게 제법 온화하고 친절하게 구는 건 더 놀라운 일이 되었다.

‘흠.’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우며, 인덕션의 열을 내렸다.

그리고 치즈가 눌어붙은 김치볶음밥 위로 반숙 계란프라이 두 점을 올렸다.

“다 됐다.”

“Wow!!”

순간 차유진의 모든 근심 걱정이 날아갔다. 뭐, 보기 좋군.

그리고 잠시 후에는 현관으로 나갔던 녀석들이 우르르 돌아왔다.

“헐, 우리 두고 김치볶음밥?”

“형은 배달 이용해요!”

“와~ 진짜 치사하다, 유진이.”

나는 그 틈에서 말없이 약간 어색하게 섞여 있는 스티어 녀석들을 보며, 모종의 결심을 끝냈다.

우선 기본.

‘지금 상황이 너무 꼬였다.’

차유진의 설명을 듣자 하니 스티어 때의 인과 관계가 내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인 상태다.

그런데 어느 쪽 폭탄도 밟지 않고, 두 녀석이 동시에 만족스럽게 기억을 되찾도록 인도하기?

‘난이도가 미쳤군.’

그리고 설사 이 모든 게 기적적으로 좋게 끝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기억을 되찾고 말고는 결국 이 시스템 업데이트에 달렸어.’

그걸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시스템의 작용 원리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의 추리가 모호해지고, 대화를 해도 해도 맴도는 것이다.

결국, 이 근본적인 부분을 내가 파악하지 못하면 속 시원한 정답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업데이트랍시고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돌아온 건지.

-언제 본래의 기억을 되찾는 건지.

시스템의 원리.

그리고 지금 주어진 조건하에서… 이걸 알아낼 방법이, 떠오르긴 했다.

‘그렇다면 알아내야지.’

머뭇거리다간 또 질질 끌다가 내 손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그 꼴은 다시 못 본다.’

여기서,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기에 이어서 ‘정공법’의 두 번째 단계가 나온다.

-시스템 직접 분석.

그리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나는 결정했다.

‘모험 수를 던진다.’

그리고 모름지기 리스크를 감수하려면, 내가 직접 해야 안심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날 새벽.

‘상태창.’

나는 아주 오랜만에, 게임 시스템을 자진해서 불러왔다.

그리고 ‘미리보기’ 중이라 어딘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스템 팝업을 다시 확인했다.

최대 열람 시간 : 48시간

-열람하시겠습니까?

48시간이라는 것은 아마 지난번, 박문대와 류건우의 몸 주인이 바뀌었을 때 받았던 최대 패널티 기간이다.

‘굳이 최대라고 붙어 있는 걸 보니, 내가 임의로 끝낼 수 있을 확률도 높다.’

최악의 경우에도 무조건 48시간 안에는 결론이 난다는 소리.

참고로 내일은 주말이다.

내 경연 무대는 아직 준비하기 전이고, 큰달의 직장은 쉬는 날.

마침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래.

이미 몇 시간이나 설득당한 큰달은 순순히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

나는 피곤한 눈으로 침대에서 눈을 떴다.

류건우의 침실 천장이 어슴푸레한 빛 사이로 윤곽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확인할 여유는 없다.

‘접속부터.’

나는 당장 큰달이 들어간 ‘박문대’의 시야에 접속했다.

시야가 둘로 나눠진 듯,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투영된다.

‘좋아.’

이것까지는 지난번에 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게 알려주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몸이 바뀐 상태라면, 나도 큰달이 했던 것처럼 상태창으로서 박문대의 시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 약간 태풍이나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요….

‘어렵군.’

나는 큰달의 모호한 설명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시야에 보이는 상태창의 표면으로 점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정말 잠기듯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상태창 속으로.

‘됐다!’

시스템 구조 확인 및 변경.

이전에 큰달이 백일몽 사건부터 건물 붕괴까지, 몇 번이나 상태창을 통해 시스템에 접속해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냥… 아주 혼수상태 같은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주마.’

나는 시스템 분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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