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0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3화
시스템 자동 재업데이트?
미친 소리를 하는 팝업을 본 순간,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지난번 업데이트 때 일어났던 사건 사고를 생각하자면,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중지!’
[자동 업데이트 강제중지 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개X끼야.
이러면 어떤 지랄 맞은 사태가 날 줄 모르니 함부로 중지시킬 수도 없었다.
일단 상황을 확인한 뒤에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저번 업데이트 때는 스티어 차유진이 깨어났지.’
그렇다면.
나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각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 문대야?”
“문대문대 왜 그렇게 뛰어다니… 어?”
“형 운동해요?”
그리고 발견했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머리 박고 쓰러진 녀석이 하나.
침대에서 E북을 읽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은 녀석이 하나.
그리고… 책상 앞에서 프로그램 소개서를 보다가 책장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이 하나.
“…….”
김래빈, 배세진, 류청우.
세 명.
혀를 깨물 뻔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세 명이 동시에 갑자기 잠들 수 있나?’
그것도 지난번 시스템 업데이트 때 ‘잠깐 현기증을 느꼈다’라고 진술했던 녀석들만?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게 상황을 브리핑받자마자 깨어 있는 녀석들의 안색이 변했다.
“잠깐, 이거 설마….”
“Seriously? 또 이래요?”
나는 ‘응급실로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급한 토의를 시작한 녀석들을 두고, 다시 머리를 굴렸다.
이 꼴이 난 원인이 뭐지?
그리고 아까 떴던 팝업의 내용을 되새김질했다.
‘소유자 불만족을 감지해서… 재업데이트?’
그 순간,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발상이 있었다.
설마.
…내가 시스템은 건들지도 않고 그놈의 설문조사를 계속 무시했다고, ‘불만족 상태’라고 판단해서 이런 짓을 했다는 거냐.
‘빌어먹을.’
한 마디로, 내가 자기를 쓸 때까지 계속 시스템을 조정해 보겠다는 소리 같지 않은가.
‘무슨 고객 만족 CS인 줄 아나.’
섬뜩하기까지 했다.
상태창 없이 미션 실패 사태를 직면해야 할 VTIC 리더 놈의 목숨줄 때문에 계속 회사 시스템이라는 걸 살려두고 있지만, 지나치게 변수가 많았다.
‘…자아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박살 내기 전, 대화가 가능하던 시스템의 인간 형상이 떠올랐다. 등골이 약간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쪽도 이 사태에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아니다.
‘업데이트 사태가 또 일어날 걸 가정해 본 적은 당연히 있다.’
겪어본 당사자와 말이다.
“…….”
나는 차유진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있는 녀석이 있어.’
저 셋이 한꺼번에 그때로 롤백된다고 해도… 망할, 그 공중파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나만 날리면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버텨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게 저 녀석들 입장에서는 혼자인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여럿에게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하나 확실히 예방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립감.
갑자기 낯선 환경에 처박혀서 내가 제정신인가 의심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차유진 때도 그랬지만, 그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지금 이러면 우리 멤버 중에 거의 절반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
“…….”
나는 이를 악물었다가 뗐다.
원상복구될 때까지 그룹 활동은 꿈도 못 꾸겠군.
“미안하다.”
“…!”
큰세진이 순식간에 안면을 바꾸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어깨를 쳤다.
“문대 넌 또 왜 없는 책임을 만들고 있냐. 그냥 상황 정리하는 거야~”
아니, 내 책임이 맞긴 하다.
하지만 억지로 분위기 풀려는 놈한테 빠득빠득 내 책임이라고 말해봤자 분위기만 X 되는 것이니, 속 시원하자고 그런 짓을 하진 않기로 했다.
그래서 대신, 우리는 대책을 세웠다.
“저 병원 반대예요. [기억을 잃고 병실 침대에서 일어난다?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놀리는 거라고 오해할걸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락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아, 그리고 멤버들 깨어나면 잘 설명할 준비를 하는 게 최우선이잖아. 그렇지?”
결론은 이렇게 나왔다.
일단 숙소에서 대기.
다만 빠른 설명이 가능하도록 숙소에서, 사진과 데이터, 위튜브, 포털 사이트로 증거물을 모아둔 채로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문제 생기면, 바로 응급실로 갈 수 있게… 매니저분께 연락드렸어!”
“오케이.”
마지막으로 이 녀석들이 30분 내로 안 깨어나면 깨우는 걸 시도하고, 그래도 안 일어나면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극적 합의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방을 하나씩 감시하며 진을 치고 앉았다.
식은땀이 흐를 것처럼 긴장감이 숙소에 꽉 찼다.
이윽고, 몇 분이 지났을까.
신호가 왔다.
“…! 여, 여기…!”
“…!!”
외친 건, 선아현이었다.
우리는 당장 녀석이 보초를 서고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선아현이 있던 곳은….
‘배세진.’
녀석의 독방이었다.
이미 방 안에 들어가서 침대 옆에 서 있던 선아현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깨어나실 것, 같아…!”
확실히, 배세진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후.’
긴장된 순간.
“으음….”
“…….”
배세진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눈을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더 바짝 대가리에 기합을 넣었다.
스티어 배세진?
그 녀석은 데뷔 초에 마약 누명 쓰고 그룹에서 퇴출당한 뒤, 아마도 감옥까지 간 인간이다.
‘아이돌이고 나발이고, 아주 연예계 생활에 질려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심하면 인간 불신일 확률도 상당히 높고.
다 떠나서 일단 때의 비협조적인 모습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했겠지 않은가.
그러니까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까지 생각할 무렵이었다.
배세진이 멀뚱히 입을 열었다.
잠깐, …멀뚱히?
“…너희 뭐 하는 건데?”
“…??”
“…?!”
멀쩡하잖아.
배세진은 도리어 자기 방 안에서 잠든 자신을 내려다보던 멀대같은 놈들을 보고 기겁한 모양이었다.
“Oh!! 형 제정신이에요?!”
“당연히 제정신이지! 아니, 책 읽다가 졸았다고 지금 나한테….”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진첩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녀석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그건 또 뭐야?”
“…그게요.”
알겠다.
아무래도… 이놈은 아닌가 보다.
빠른 상황 요약 설명 후.
곧 배세진도 이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복도로 나온 녀석은 심란한 표정으로 김래빈의 방과 류청우의 방을 번갈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난번 차유진 같은 꼴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거지?”
“형 말 심해요.”
“네가 할 말이야?”
‘제정신이냐’ 드립을 들어서 공격력이 오른 배세진이 차유진에게 으르렁댔다. X망할 것까지 생각한 것치고는 대단히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틈을 타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배세진에게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혹시 남은 두 녀석은 어떨지 모른다.
그러니까 말이다.
‘말해야 하나.’
이전 삶에서 네가 상당히 고초를 겪었다고.
‘매도 미리 맞는 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결국 나는 E북 리더기를 쥔 채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세진을 불렀다.
“형, 잠깐….”
“어?”
그때였다.
“허억!”
외곽 방에서 소리가 터졌다.
김래빈의 방이었다.
“래빈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 없이 다 허겁지겁 복도를 질주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사태는….
“아무래도 에너지 드링크 부작용 같습니다! 이번 달에 새롭게 출시된 P사의 제품을 시음했는데….”
“잠깐만.”
야.
“래빈아. 너 지금 상태가 어때.”
눈을 꿈벅이던 김래빈은 선선히 대답했다.
“…? 낮잠 덕에 개운합니다…?”
“…….”
멀쩡 그 자체다.
2연타 세이프에 멤버들이 나자빠졌다.
“후.”
“아, 이거 그냥 우연히 다들 잠든 거 아니야?”
“…요새 다들 무리하긴 했지.”
“으응, 그, 프로그램 출연 이야기로, 어제도 다들 늦게까지 회의했으니까요….”
“병원 안 가는 게 정답 맞았어요. 저 똑똑해요.”
이젠 다들 그냥 우연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과연.’
나는 어리둥절한 김래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갑자기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진 않냐.”
“특별히 없습니다만… 아, 혹시 제가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있는 겁니까?”
“아니.”
오히려 잘 됐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뒤 방에서 나왔다. 다른 녀석들이 김래빈에게 붙어서 사태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류청우뿐인데.’
이쪽도 별일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말자.
스티어 때로 자아가 돌아가 버리는 게 아니더라도 별 괴상한 일이 터질 수 있으니까.
“이제 이 앞에서 대기하자.”
“으음.”
그래서 멤버들이 다들 류청우의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좁은데.”
“…….”
성인 7명이 방에 우르르 들어앉아 있으니 상당히 껄끄럽다.
‘흠.’
이대로 가만히만 있는 것도 좀 그런가. 앞에 두 번이 멀쩡했으니, 이젠 조금 과감한 시도도 해볼 때다.
나는 시험 삼아 몸을 일으킨 후, 책장에 기대어 있는 류청우를 불러보았다.
혹시 정말 잠들어 있는 거라면 이걸로 깰 수도 있을까 해서.
“형.”
“…….”
응답은 없었다.
‘역시 아니었나.’
나는 기대를 더 버리며, 부르는 방법을 바꾸었다.
정확히 이 녀석을 지칭하는 것으로.
“류청우.”
그 순간이었다.
“…!”
류청우가 번쩍 눈을 떴다.
“엄마야!”
“얘가 원래 이렇게 깼었어?”
“지금 Cult 영화 같아요.”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는 녀석들 사이로, 나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참았다.
이름 불렀다고 눈 떴으면 뭐, 뻔하다.
‘이놈은 그냥 잠든 거였나.’
하긴, 쓰러진 게 아니라 책장에 기댄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조심해서 기다리지 말고 진작 다 그냥 깨울 걸 그랬군.
‘호들갑 좀 떨었다고 설명해야겠….’
“…누구시죠?”
“…….”
“…….”
잠깐.
나는 류청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녀석의 얼굴에는 온화함 대신 경계심이 깔린 의아함이 옅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색은 내 뒤를 보는 순간 더 진해졌다.
“차유진? 그리고 김래빈…….”
“…….”
이 녀석은 박문대를 몰랐다.
그런데 저 두 놈만 굳이 알아보면서 불렀다는 것은… 그렇군.
나는 안 떨어지는 입을 열었다.
“혹시 소속 그룹명이 스티어신가요.”
“예? 예, 그랬죠. 그런데 지금 상황은 대체….”
“…….”
X 됐다….
* * *
류청우가 스티어 시절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혹시 경계할까 봐 따지도 않은 생수병 하나를 건네주었으나, 녀석은 마시지 않고 쥔 채로 미소 짓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표정에는 평소 같은 온화함이 좀 보였다.
“그런데 우선 상황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예.”
아무래도 이게 뭔 개판인가 싶겠지.
나는 차유진과 했던 대화를 빠르게 대가리 굴려 복기했다.
녀석이 비록 스티어 시절의 기억에서 디테일을 많이 잊어버렸으나, 아예 까먹은 건 아니었거든.
그러니 당시 류청우에 대해 차유진이 기억하고 있는 인상을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 청우 형 좀 무서웠어요. 우리 다 조심해요.
-어떤 의미로 그랬는데.
-[그러니까 제 말은, 음… 전형적인 번아웃, 그리고 특별히 뒤틀린 강인함?]
‘뭐라는 거야.’
차유진 본인도 썩 좋은 예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폭탄처럼 섬세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건 잘 알아들었다.
‘어쩌면 차유진보다도 더.’
지난번 스티어 차유진이 가출까지 할 정도로 관계를 말아먹었던 기억도 있지 않은가.
그것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대단히 진지하고 거의 비장하기까지 한 자세로 류청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저희가 테스타라는 그룹이거든요.”
“음.”
시각 자료와 인터넷 접속까지 곁들인 증거설명, 그리고 증인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자료가 부족하진 않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설명을 다 듣고도, 스티어 류청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냥 제공된 자료를 몇 번이나 더 확인할 뿐이었다.
“…….”
‘이번에도 글렀나.’
역시 곧바로 믿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비현실적인 일에 관심 있던 놈도 아니니….
“그렇군요.”
“…….”
음?
갑자기 깔끔한 긍정문이 나왔다.
차유진까지 당황해서 되물었다.
“형 우리 믿어요?”
“음… 믿기 힘들긴 하지만, 못 믿기도 힘든 상황이야. 포털 사이트를 조작할 수는 없잖아.”
류청우가 뒷머리를 만지더니, 여러 멤버가 우르르 내민 스마트폰으로 몇 번이나 접속한 포털 사이트의 화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앨범들로 시선을 돌리더니,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런 것도 전부 조작할 수는 없겠죠.”
“…….”
“그래서 말인데, 지금 스케줄이 있는 상황이죠? 그건 최대한 빨리 공유해 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음?
“예?”
김래빈의 되물음에, 류청우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음, 갑자기 그룹 활동을 쉬는 것보다는, 내가 어느 정도 소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
류청우는 낯선 멤버들을 돌아보며 약간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일단, 실력과 끈기로는 자신 있는 편이고요.”
잠깐만.
‘X 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3화
시스템 자동 재업데이트?
미친 소리를 하는 팝업을 본 순간,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지난번 업데이트 때 일어났던 사건 사고를 생각하자면,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중지!’
개X끼야.
이러면 어떤 지랄 맞은 사태가 날 줄 모르니 함부로 중지시킬 수도 없었다.
일단 상황을 확인한 뒤에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저번 업데이트 때는 스티어 차유진이 깨어났지.’
그렇다면.
나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각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 문대야?”
“문대문대 왜 그렇게 뛰어다니… 어?”
“형 운동해요?”
그리고 발견했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머리 박고 쓰러진 녀석이 하나.
침대에서 E북을 읽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은 녀석이 하나.
그리고… 책상 앞에서 프로그램 소개서를 보다가 책장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이 하나.
“…….”
김래빈, 배세진, 류청우.
세 명.
혀를 깨물 뻔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세 명이 동시에 갑자기 잠들 수 있나?’
그것도 지난번 시스템 업데이트 때 ‘잠깐 현기증을 느꼈다’라고 진술했던 녀석들만?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게 상황을 브리핑받자마자 깨어 있는 녀석들의 안색이 변했다.
“잠깐, 이거 설마….”
“Seriously? 또 이래요?”
나는 ‘응급실로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급한 토의를 시작한 녀석들을 두고, 다시 머리를 굴렸다.
이 꼴이 난 원인이 뭐지?
그리고 아까 떴던 팝업의 내용을 되새김질했다.
‘소유자 불만족을 감지해서… 재업데이트?’
그 순간,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발상이 있었다.
설마.
…내가 시스템은 건들지도 않고 그놈의 설문조사를 계속 무시했다고, ‘불만족 상태’라고 판단해서 이런 짓을 했다는 거냐.
‘빌어먹을.’
한 마디로, 내가 자기를 쓸 때까지 계속 시스템을 조정해 보겠다는 소리 같지 않은가.
‘무슨 고객 만족 CS인 줄 아나.’
섬뜩하기까지 했다.
상태창 없이 미션 실패 사태를 직면해야 할 VTIC 리더 놈의 목숨줄 때문에 계속 회사 시스템이라는 걸 살려두고 있지만, 지나치게 변수가 많았다.
‘…자아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박살 내기 전, 대화가 가능하던 시스템의 인간 형상이 떠올랐다. 등골이 약간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쪽도 이 사태에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아니다.
‘업데이트 사태가 또 일어날 걸 가정해 본 적은 당연히 있다.’
겪어본 당사자와 말이다.
“…….”
나는 차유진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있는 녀석이 있어.’
저 셋이 한꺼번에 그때로 롤백된다고 해도… 망할, 그 공중파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나만 날리면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버텨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게 저 녀석들 입장에서는 혼자인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여럿에게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하나 확실히 예방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립감.
갑자기 낯선 환경에 처박혀서 내가 제정신인가 의심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차유진 때도 그랬지만, 그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지금 이러면 우리 멤버 중에 거의 절반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
“…….”
나는 이를 악물었다가 뗐다.
원상복구될 때까지 그룹 활동은 꿈도 못 꾸겠군.
“미안하다.”
“…!”
큰세진이 순식간에 안면을 바꾸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어깨를 쳤다.
“문대 넌 또 왜 없는 책임을 만들고 있냐. 그냥 상황 정리하는 거야~”
아니, 내 책임이 맞긴 하다.
하지만 억지로 분위기 풀려는 놈한테 빠득빠득 내 책임이라고 말해봤자 분위기만 X 되는 것이니, 속 시원하자고 그런 짓을 하진 않기로 했다.
그래서 대신, 우리는 대책을 세웠다.
“저 병원 반대예요. [기억을 잃고 병실 침대에서 일어난다?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놀리는 거라고 오해할걸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락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아, 그리고 멤버들 깨어나면 잘 설명할 준비를 하는 게 최우선이잖아. 그렇지?”
결론은 이렇게 나왔다.
일단 숙소에서 대기.
다만 빠른 설명이 가능하도록 숙소에서, 사진과 데이터, 위튜브, 포털 사이트로 증거물을 모아둔 채로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문제 생기면, 바로 응급실로 갈 수 있게… 매니저분께 연락드렸어!”
“오케이.”
마지막으로 이 녀석들이 30분 내로 안 깨어나면 깨우는 걸 시도하고, 그래도 안 일어나면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극적 합의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방을 하나씩 감시하며 진을 치고 앉았다.
식은땀이 흐를 것처럼 긴장감이 숙소에 꽉 찼다.
이윽고, 몇 분이 지났을까.
신호가 왔다.
“…! 여, 여기…!”
“…!!”
외친 건, 선아현이었다.
우리는 당장 녀석이 보초를 서고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선아현이 있던 곳은….
‘배세진.’
녀석의 독방이었다.
이미 방 안에 들어가서 침대 옆에 서 있던 선아현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깨어나실 것, 같아…!”
확실히, 배세진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후.’
긴장된 순간.
“으음….”
“…….”
배세진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눈을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더 바짝 대가리에 기합을 넣었다.
스티어 배세진?
그 녀석은 데뷔 초에 마약 누명 쓰고 그룹에서 퇴출당한 뒤, 아마도 감옥까지 간 인간이다.
‘아이돌이고 나발이고, 아주 연예계 생활에 질려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심하면 인간 불신일 확률도 상당히 높고.
다 떠나서 일단 때의 비협조적인 모습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했겠지 않은가.
그러니까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까지 생각할 무렵이었다.
배세진이 멀뚱히 입을 열었다.
잠깐, …멀뚱히?
“…너희 뭐 하는 건데?”
“…??”
“…?!”
멀쩡하잖아.
배세진은 도리어 자기 방 안에서 잠든 자신을 내려다보던 멀대같은 놈들을 보고 기겁한 모양이었다.
“Oh!! 형 제정신이에요?!”
“당연히 제정신이지! 아니, 책 읽다가 졸았다고 지금 나한테….”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진첩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녀석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그건 또 뭐야?”
“…그게요.”
알겠다.
아무래도… 이놈은 아닌가 보다.
빠른 상황 요약 설명 후.
곧 배세진도 이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복도로 나온 녀석은 심란한 표정으로 김래빈의 방과 류청우의 방을 번갈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난번 차유진 같은 꼴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거지?”
“형 말 심해요.”
“네가 할 말이야?”
‘제정신이냐’ 드립을 들어서 공격력이 오른 배세진이 차유진에게 으르렁댔다. X망할 것까지 생각한 것치고는 대단히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틈을 타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배세진에게 스티어 당시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혹시 남은 두 녀석은 어떨지 모른다.
그러니까 말이다.
‘말해야 하나.’
이전 삶에서 네가 상당히 고초를 겪었다고.
‘매도 미리 맞는 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결국 나는 E북 리더기를 쥔 채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세진을 불렀다.
“형, 잠깐….”
“어?”
그때였다.
“허억!”
외곽 방에서 소리가 터졌다.
김래빈의 방이었다.
“래빈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 없이 다 허겁지겁 복도를 질주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사태는….
“아무래도 에너지 드링크 부작용 같습니다! 이번 달에 새롭게 출시된 P사의 제품을 시음했는데….”
“잠깐만.”
야.
“래빈아. 너 지금 상태가 어때.”
눈을 꿈벅이던 김래빈은 선선히 대답했다.
“…? 낮잠 덕에 개운합니다…?”
“…….”
멀쩡 그 자체다.
2연타 세이프에 멤버들이 나자빠졌다.
“후.”
“아, 이거 그냥 우연히 다들 잠든 거 아니야?”
“…요새 다들 무리하긴 했지.”
“으응, 그, 프로그램 출연 이야기로, 어제도 다들 늦게까지 회의했으니까요….”
“병원 안 가는 게 정답 맞았어요. 저 똑똑해요.”
이젠 다들 그냥 우연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과연.’
나는 어리둥절한 김래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갑자기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진 않냐.”
“특별히 없습니다만… 아, 혹시 제가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있는 겁니까?”
“아니.”
오히려 잘 됐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뒤 방에서 나왔다. 다른 녀석들이 김래빈에게 붙어서 사태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류청우뿐인데.’
이쪽도 별일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말자.
스티어 때로 자아가 돌아가 버리는 게 아니더라도 별 괴상한 일이 터질 수 있으니까.
“이제 이 앞에서 대기하자.”
“으음.”
그래서 멤버들이 다들 류청우의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좁은데.”
“…….”
성인 7명이 방에 우르르 들어앉아 있으니 상당히 껄끄럽다.
‘흠.’
이대로 가만히만 있는 것도 좀 그런가. 앞에 두 번이 멀쩡했으니, 이젠 조금 과감한 시도도 해볼 때다.
나는 시험 삼아 몸을 일으킨 후, 책장에 기대어 있는 류청우를 불러보았다.
혹시 정말 잠들어 있는 거라면 이걸로 깰 수도 있을까 해서.
“형.”
“…….”
응답은 없었다.
‘역시 아니었나.’
나는 기대를 더 버리며, 부르는 방법을 바꾸었다.
정확히 이 녀석을 지칭하는 것으로.
“류청우.”
그 순간이었다.
“…!”
류청우가 번쩍 눈을 떴다.
“엄마야!”
“얘가 원래 이렇게 깼었어?”
“지금 Cult 영화 같아요.”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는 녀석들 사이로, 나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참았다.
이름 불렀다고 눈 떴으면 뭐, 뻔하다.
‘이놈은 그냥 잠든 거였나.’
하긴, 쓰러진 게 아니라 책장에 기댄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조심해서 기다리지 말고 진작 다 그냥 깨울 걸 그랬군.
‘호들갑 좀 떨었다고 설명해야겠….’
“…누구시죠?”
“…….”
“…….”
잠깐.
나는 류청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녀석의 얼굴에는 온화함 대신 경계심이 깔린 의아함이 옅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색은 내 뒤를 보는 순간 더 진해졌다.
“차유진? 그리고 김래빈…….”
“…….”
이 녀석은 박문대를 몰랐다.
그런데 저 두 놈만 굳이 알아보면서 불렀다는 것은… 그렇군.
나는 안 떨어지는 입을 열었다.
“혹시 소속 그룹명이 스티어신가요.”
“예? 예, 그랬죠. 그런데 지금 상황은 대체….”
“…….”
X 됐다….
* * *
류청우가 스티어 시절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혹시 경계할까 봐 따지도 않은 생수병 하나를 건네주었으나, 녀석은 마시지 않고 쥔 채로 미소 짓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표정에는 평소 같은 온화함이 좀 보였다.
“그런데 우선 상황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예.”
아무래도 이게 뭔 개판인가 싶겠지.
나는 차유진과 했던 대화를 빠르게 대가리 굴려 복기했다.
녀석이 비록 스티어 시절의 기억에서 디테일을 많이 잊어버렸으나, 아예 까먹은 건 아니었거든.
그러니 당시 류청우에 대해 차유진이 기억하고 있는 인상을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 청우 형 좀 무서웠어요. 우리 다 조심해요.
-어떤 의미로 그랬는데.
-[그러니까 제 말은, 음… 전형적인 번아웃, 그리고 특별히 뒤틀린 강인함?]
‘뭐라는 거야.’
차유진 본인도 썩 좋은 예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폭탄처럼 섬세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건 잘 알아들었다.
‘어쩌면 차유진보다도 더.’
지난번 스티어 차유진이 가출까지 할 정도로 관계를 말아먹었던 기억도 있지 않은가.
그것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대단히 진지하고 거의 비장하기까지 한 자세로 류청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저희가 테스타라는 그룹이거든요.”
“음.”
시각 자료와 인터넷 접속까지 곁들인 증거설명, 그리고 증인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자료가 부족하진 않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설명을 다 듣고도, 스티어 류청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냥 제공된 자료를 몇 번이나 더 확인할 뿐이었다.
“…….”
‘이번에도 글렀나.’
역시 곧바로 믿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비현실적인 일에 관심 있던 놈도 아니니….
“그렇군요.”
“…….”
음?
갑자기 깔끔한 긍정문이 나왔다.
차유진까지 당황해서 되물었다.
“형 우리 믿어요?”
“음… 믿기 힘들긴 하지만, 못 믿기도 힘든 상황이야. 포털 사이트를 조작할 수는 없잖아.”
류청우가 뒷머리를 만지더니, 여러 멤버가 우르르 내민 스마트폰으로 몇 번이나 접속한 포털 사이트의 화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앨범들로 시선을 돌리더니,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런 것도 전부 조작할 수는 없겠죠.”
“…….”
“그래서 말인데, 지금 스케줄이 있는 상황이죠? 그건 최대한 빨리 공유해 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음?
“예?”
김래빈의 되물음에, 류청우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음, 갑자기 그룹 활동을 쉬는 것보다는, 내가 어느 정도 소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
류청우는 낯선 멤버들을 돌아보며 약간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일단, 실력과 끈기로는 자신 있는 편이고요.”
잠깐만.
‘X 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