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9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7화
“괜찮죠?”
죽이겠… 아니, 죽일 힘도 없다.
‘개X끼야.’
나는 LeTi의 VTIC 전용 연습실에 뻗어 있다.
7시간.
청려 놈과 안무 연습을 한 시간이다.
‘미친놈 아니냐.’
컴백 막바지라 시간도 없을 텐데, 출연 무대 하나에 7시간을 통을 빼?
오늘 하루로 안 끝날 것 같다는 게 제일 끝내주는군.
그것도 무슨 극한 PT라도 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사람을 한계까지 밀었다가 아주 숨만 트게 해주는 게 예술이다.
‘이 새끼는 강사를 하면 떼돈 벌었을 텐데.’
잠깐, 이미 떼돈 번 놈한테 이런 말도 의미 없겠군.
‘뇌가 안 돌아가나….’
나는 숨을 골랐다.
테스타도 어디 가서 연습량으로 그리 빠지는 그룹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연습 시간을 물량 공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예 춤 선이 생소한 안무를 이렇게 단기간에 주입식으로 욱여넣는 건 또 다르단 말이지.
그 나이 먹고 난생처음 각 잡고 춤을 배우던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나는 묵묵히 대자로 뻗은 그대로 천장을 보았다.
낯선 형광등이 빛나고 있었다.
‘음?’
무심코 입을 열었다.
“조명 리모델링 했냐.”
“음?”
곡을 돌리던 청려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긴 했죠. 3년 전이지만.”
“아.”
그리고 깨달았다.
내 기억 속에 있는, 1년 가까이 연습했던 LeTi의 연습실은 이곳이 아니다.
‘그건 현실이 아니었지.’
‘위시즈’라는, VTIC과 테스타 멤버를 섞은 혼종 그룹으로 대상을 타려 할 때 봤던 천장이다.
시스템이 만든 가상 세계에서 류건우의 몸으로 VTIC 놈들과 함께 데뷔했을 때의 경험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군.’
그리고 청려도 그 부분을 눈치챈 것 같았다.
“후배님과 데뷔했을 때와 비슷한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내가 고쳤거든.”
‘여러 번 만들다 보면 표준 규격이 생기고 정형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웃기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실소했다.
“연습실에도 효율이 있냐.”
“그럼요.”
그것까지 알아낸 놈이라면 얼마나 고인물인지 모르겠군.
새삼스럽지만, 경험과 정보력의 측면에서는 누굴 가져다 대도 저놈에게 비비긴 힘들 것이다.
음, 역시.
‘VTIC도 군대 공백기 끝나면 어느 정도 하락세 탈 줄 알았는데.’
좀 더 빡세게 준비해야겠다.
우릴 벤치마킹해서 자본빨로 데뷔한 신인부터 폼 안 죽은 VTIC까지, 테스타도 아주 샌드위치 신세다.
‘대상 탔다고 방심할 수가 없겠군.’
나는 물을 마시며 다음 앨범 구상을 빠르게 정리했다.
청려가 옆에 앉은 것은 그때였다.
“후배님, 안무 습득력은 괜찮네요.”
그렇겠지.
“이 연차에 습득력 없으면 관둬야지.”
“하하.”
웃겨서 웃는 건 아닌 것 같군. 아마 이 연차에 습득력 없는 놈도 멤버로 써본 경험이 있나 보다.
‘성에 안 차서 돌아버리려고 했겠군.’
저놈 스탯창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극한까지, 한계 스탯까지 자신의 재능을 갈아서 완성한 놈이다. 자기 루틴에 확신이 있겠지.
그러니 그런 본인이 배정한 연습량을 못 따라오는 새끼는 사람 취급을 안 했을 것이다.
‘…흠.’
그런데 말이다.
나는 문득 드는 의문에 한 녀석을 호출했다.
이런 대화를 할 건 이 녀석뿐이지.
‘큰달.’
[넵?]
“…….”
순식간에 튀어나오냐.
근무 중이라 답변이 늦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칼같이 답변이 올 줄이야.
어쨌든 나는 녀석과 근황 이야기를 몇 가지 떠든 후, 운을 뗐다.
‘…상태창에 뜨는 잠재 스탯 말인데.’
[…?? 아, 형의 잠재력 무한 특성이요? 그건 시스템이 준 게 아니라 형이 원래 가진 게 맞는데…….]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다.
[네?]
‘나 말고 다른 사람 상태창에 뜨는 거 말이지.’
스탯 옆에 괄호로 표기되는 한계 스탯들 말이다.
그 사람의 한계치를 말해주는 지표.
하나 예시를 들어볼까.
[춤 : C- (B)]
여기서 괄호 안 ‘B’가 한계치다.
예체능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게 될 놈만 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재능빨.
그리고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무슨 짓을 해도 저걸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지.’
저 한계 스탯 이상으로 사람이 성장하는 건 불가능한가?
“…….”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소심하게 팝업이 떴다.
[아마도요…?]
그 뒤로 ‘사실 저는 시스템의 판단을 형이 보실 수 있게 바꾼 것뿐이라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시스템이 산출해 낸 값이라는 뜻이다.
‘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었다.
[설문조사 가능!]
“…!”
큰달의 채팅 팝업 옆.
갑자기 상태창 팝업이 튀어 올랐다.
‘뭐야.’
[도움말 : 설문조사를 통한 피드백으로 의 기능을 커스텀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자기 이야기가 나와서 영업하려고 튀어나온 거냐? 네가 가능한지 알려줄 수 있다고?
나는 상태창 팝업을 쳐다보았다.
제발 자기를 클릭해달라는 듯이 광고 배너처럼 빛나는군.
근데 말이다.
‘하겠냐?’
너 같으면 낚이겠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팝업을 없앴다.
‘넌 저놈한테 있는 시스템 파편 수거하는 대로 폐기행이다.’
이게 정답이지.
그리고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
“충분히 쉬었죠? 일어나요.”
“…….”
참고로 딱 5분 누워 있었다.
‘후.’
나는 쌍욕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한계 스탯이고 나발이고… 당장 내 춤 스탯은 여전히 B+이다.
뭐, 좋다. 이 짬에 못 하겠다고 징징댈 수는 없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갈아볼까.’
해보자고.
* * *
그날 밤.
테스타의 새 숙소 문이 힘없이 열렸다.
삐리릭- 달칵.
그리고 묵묵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후드를 뒤집어쓴 박문대였다.
“오 문대……??”
“…….”
얘 꼴이 왜 그래?
냉장고에서 팩을 꺼내다가 반갑게 맞아주려던 이세진은 당황했다.
하지만 박문대는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연습했다.”
무슨 놈의 연습을 하면 저 박문대가 저렇게 된단 말인가.
밤샘 연습에도 아득바득 따라오고 잠도 안 자고 모니터링하던 친구다.
그런 박문대가 물 먹은 빨래처럼 축축 늘어진 모습은 낯설고, 약간 숙연하기까지 했다…….
‘잠깐만.’
이세진은 순간, 박문대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 다시 깨달았다.
“청려 피처링 연습이지?”
“어.”
아니 누가 피처링을 부탁하면서 사람을 자기 회사 연습생처럼 굴린단 말인가.
‘선을 모르나?’
지난 사건들로 청려에 대한 평가가 약간 완화되긴 했지만, 어쨌든 타 그룹이고 경계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진은 더 탐탁지 않았다.
‘좀 적극적으로 반대할 걸 그랬나.’
그래서 그는 일부러 쾌활하게 박문대에게 어깨동무하며 외쳤다.
“문대문대~ 너무 남 좋은 일 해주는 거 아니야? 뭘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해줘!”
그때였다.
“…나도 동감이야.”
“…!”
독방 생활을 만끽하던 배세진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서 자신의 말을 거든 것이다.
이세진은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 형이 웬일로?
“꼭 안 해도 되는데 해주는 거잖아.”
배세진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
그는 VTIC 청려가 껄끄러웠다.
데뷔 초, 박문대를 갑자기 습격했다는 기함할 사실이 결정적인 요인이긴 했으나 비단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이상했어.’
청려라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그랬다.
사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드물다. 하지만 관찰만 하는 데도 느껴졌다.
감정적 맥락이 없는, 그러니까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마치 배세진 본인이 연기했던 사이코패스들이 떠오르도록 말이다.
본래 타인의 태도에 예민하고 기민한 그이기에 더 잘 느꼈다.
그건 시스템의 가상 세계에서, 혹은 건물 붕괴 사태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사실로도 잘 사라지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게 지극히 오랜 시간 반복된 재시작 때문에 생긴 간극이라는 걸 모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음.’
어쨌든 이세진은 정색해 버린 배세진을 보다가, 다시 분위기를 바꿨다.
‘아이고, 문대는 여기서 정색해 봤자 말 더 안 듣는데.’
더 가볍게.
“맞아. 우리 앨범을 위해 체력 비축해 줘 문대~”
“그래야지.”
그렇지!
이세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박문대는 보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박문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할 건 제대로 하고.”
“…….”
‘야 그러면 네가… 밤새워서 작업하는 김래빈이랑 다를 게 있냐?’
룸메이트인 김래빈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본인을 돌아보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이세진 옆에는 그 대신 화낼 배세진이 있었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고!”
“예. 뭐… 건강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연습하긴 했는데요.”
박문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더 꼴 받긴한데.”
“……?”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문대는 절묘하게 혹사당한 자신의 몸 상태를 돌아보며 침묵했다.
하지만 곧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도움이 되긴 합니다. 이런 장르 안무는 처음이라서. 그리고… 끝나면 받아낼 것도 있어서요.”
“받아?”
“예. 좀 얻어낼 게 있어서.”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의외로 보람 차 보이는 미소였다.
“이번에 저희 자체 컨텐츠가 재밌게 뽑히긴 한 것 같은데, 이전보다 좀 덜 대중적일 것 같거든요.”
“음?”
류서린이 자극적으로 흥미진진하도록 밸런스를 맞춰서 뽑긴 하겠지만, 이건 마니아층 용이라고 박문대도 결론을 내렸다.
‘추리는 머리를 써야 해서 가볍게 보기 힘들지.’
하지만 다음 앨범 떡밥과 연결하려면 어느 정도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기까지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라이트한 맛과는 더 멀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공포 요소를 살려서 대중성 밸런스를 맞췄어.’
그것도 늦여름, 초가을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다음 앨범에서 대중성도 제대로 챙겨야죠.”
국뽕과 대중성을 다 챙기겠다!
박문대는 씩 웃었다.
“거기에 도움이 될 걸 받아낼 겁니다.”
큰 그림이 그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곧 ‘알았으니까 쉬기나 하라’며 타박하는 동명이인에 의해 침실로 기어들어 가는 엔딩을 맞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테스타의 자체 컨텐츠, 이 화려하게 공개된 이후.
박문대가 피처링한 청려의 무대 경연 첫 촬영 날이 다가왔다.
* * *
VTIC, 그중에서도 청려의 팬 커뮤니티는 솔로 앨범 활동기를 맞아 대단히 활력이 넘쳤다.
특히 청려가 이번 앨범 프로모션용으로 방송 출연을 꽤 많이 잡았기 때문에 떡밥은 더욱 풍족했다.
-재현아 스케줄 미쳤냐 고맙다
-ㅠㅠㅠ채율이가 재현이 무대 챙겨본대 진짜 브이틱이 케이팝 관계성 근본이다…
-이 연차에 소처럼 일하는데 커리어하이 갱신하는 갓돌 신청려 어떻게 안 좋아하지요?
-신재현 팬싸 대응 돌았고 (영상)
그리고 이 분위기에서 청려의 프로그램 출연 소식은 처음엔 그저 앨범 프로모션용 활동 중 하나였을 뿐이다.
‘급 떨어지니까 굳이 안 나와도 괜찮다’라는, 다소 냉정한 평가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대부분은 일단 스케줄 자체에 반가워했고, 청려의 무대를 볼 시간이 늘었다는 것에 좋아했다.
의 방청객 신청이 역대 최고 수치를 갱신했다는 기사에 즐거워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커뮤니티 이용자 중에도 당첨자도 나왔다.
-내가 첨봄을 방청할 줄이야… 엄마 모시고 다녀온다 후기 가져오겠음ㅋㅋ
└ㅊㅋㅊㅋ
└부럽다
└어케 붙었냐
하지만 그날 오후.
-헐
-야 신재현
-ㅋㅋ
-와
방청 후기 올리기로 했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외마디 감상만 남기기 시작했다.
방청객 후기를 보려 그 시간 커뮤니티에 죽치고 있던 팬들은 모두 당황했다.
‘재현아??’
-????
-뭐야
-반응 뭐임 지금
몇 분 후.
드디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방청 후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미친!!
청려의 팬사이트가 비명과 혼란으로 가득 차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7화
“괜찮죠?”
죽이겠… 아니, 죽일 힘도 없다.
‘개X끼야.’
나는 LeTi의 VTIC 전용 연습실에 뻗어 있다.
7시간.
청려 놈과 안무 연습을 한 시간이다.
‘미친놈 아니냐.’
컴백 막바지라 시간도 없을 텐데, 출연 무대 하나에 7시간을 통을 빼?
오늘 하루로 안 끝날 것 같다는 게 제일 끝내주는군.
그것도 무슨 극한 PT라도 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사람을 한계까지 밀었다가 아주 숨만 트게 해주는 게 예술이다.
‘이 새끼는 강사를 하면 떼돈 벌었을 텐데.’
잠깐, 이미 떼돈 번 놈한테 이런 말도 의미 없겠군.
‘뇌가 안 돌아가나….’
나는 숨을 골랐다.
테스타도 어디 가서 연습량으로 그리 빠지는 그룹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연습 시간을 물량 공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예 춤 선이 생소한 안무를 이렇게 단기간에 주입식으로 욱여넣는 건 또 다르단 말이지.
그 나이 먹고 난생처음 각 잡고 춤을 배우던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나는 묵묵히 대자로 뻗은 그대로 천장을 보았다.
낯선 형광등이 빛나고 있었다.
‘음?’
무심코 입을 열었다.
“조명 리모델링 했냐.”
“음?”
곡을 돌리던 청려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긴 했죠. 3년 전이지만.”
“아.”
그리고 깨달았다.
내 기억 속에 있는, 1년 가까이 연습했던 LeTi의 연습실은 이곳이 아니다.
‘그건 현실이 아니었지.’
‘위시즈’라는, VTIC과 테스타 멤버를 섞은 혼종 그룹으로 대상을 타려 할 때 봤던 천장이다.
시스템이 만든 가상 세계에서 류건우의 몸으로 VTIC 놈들과 함께 데뷔했을 때의 경험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군.’
그리고 청려도 그 부분을 눈치챈 것 같았다.
“후배님과 데뷔했을 때와 비슷한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내가 고쳤거든.”
‘여러 번 만들다 보면 표준 규격이 생기고 정형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웃기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실소했다.
“연습실에도 효율이 있냐.”
“그럼요.”
그것까지 알아낸 놈이라면 얼마나 고인물인지 모르겠군.
새삼스럽지만, 경험과 정보력의 측면에서는 누굴 가져다 대도 저놈에게 비비긴 힘들 것이다.
음, 역시.
‘VTIC도 군대 공백기 끝나면 어느 정도 하락세 탈 줄 알았는데.’
좀 더 빡세게 준비해야겠다.
우릴 벤치마킹해서 자본빨로 데뷔한 신인부터 폼 안 죽은 VTIC까지, 테스타도 아주 샌드위치 신세다.
‘대상 탔다고 방심할 수가 없겠군.’
나는 물을 마시며 다음 앨범 구상을 빠르게 정리했다.
청려가 옆에 앉은 것은 그때였다.
“후배님, 안무 습득력은 괜찮네요.”
그렇겠지.
“이 연차에 습득력 없으면 관둬야지.”
“하하.”
웃겨서 웃는 건 아닌 것 같군. 아마 이 연차에 습득력 없는 놈도 멤버로 써본 경험이 있나 보다.
‘성에 안 차서 돌아버리려고 했겠군.’
저놈 스탯창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극한까지, 한계 스탯까지 자신의 재능을 갈아서 완성한 놈이다. 자기 루틴에 확신이 있겠지.
그러니 그런 본인이 배정한 연습량을 못 따라오는 새끼는 사람 취급을 안 했을 것이다.
‘…흠.’
그런데 말이다.
나는 문득 드는 의문에 한 녀석을 호출했다.
이런 대화를 할 건 이 녀석뿐이지.
‘큰달.’
“…….”
순식간에 튀어나오냐.
근무 중이라 답변이 늦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칼같이 답변이 올 줄이야.
어쨌든 나는 녀석과 근황 이야기를 몇 가지 떠든 후, 운을 뗐다.
‘…상태창에 뜨는 잠재 스탯 말인데.’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상태창에 뜨는 거 말이지.’
스탯 옆에 괄호로 표기되는 한계 스탯들 말이다.
그 사람의 한계치를 말해주는 지표.
하나 예시를 들어볼까.
여기서 괄호 안 ‘B’가 한계치다.
예체능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게 될 놈만 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재능빨.
그리고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무슨 짓을 해도 저걸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지.’
저 한계 스탯 이상으로 사람이 성장하는 건 불가능한가?
“…….”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소심하게 팝업이 떴다.
그 뒤로 ‘사실 저는 시스템의 판단을 형이 보실 수 있게 바꾼 것뿐이라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시스템이 산출해 낸 값이라는 뜻이다.
‘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었다.
“…!”
큰달의 채팅 팝업 옆.
갑자기 상태창 팝업이 튀어 올랐다.
‘뭐야.’
“…….”
그러니까… 자기 이야기가 나와서 영업하려고 튀어나온 거냐? 네가 가능한지 알려줄 수 있다고?
나는 상태창 팝업을 쳐다보았다.
제발 자기를 클릭해달라는 듯이 광고 배너처럼 빛나는군.
근데 말이다.
‘하겠냐?’
너 같으면 낚이겠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팝업을 없앴다.
‘넌 저놈한테 있는 시스템 파편 수거하는 대로 폐기행이다.’
이게 정답이지.
그리고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
“충분히 쉬었죠? 일어나요.”
“…….”
참고로 딱 5분 누워 있었다.
‘후.’
나는 쌍욕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한계 스탯이고 나발이고… 당장 내 춤 스탯은 여전히 B+이다.
뭐, 좋다. 이 짬에 못 하겠다고 징징댈 수는 없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갈아볼까.’
해보자고.
* * *
그날 밤.
테스타의 새 숙소 문이 힘없이 열렸다.
삐리릭- 달칵.
그리고 묵묵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후드를 뒤집어쓴 박문대였다.
“오 문대……??”
“…….”
얘 꼴이 왜 그래?
냉장고에서 팩을 꺼내다가 반갑게 맞아주려던 이세진은 당황했다.
하지만 박문대는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연습했다.”
무슨 놈의 연습을 하면 저 박문대가 저렇게 된단 말인가.
밤샘 연습에도 아득바득 따라오고 잠도 안 자고 모니터링하던 친구다.
그런 박문대가 물 먹은 빨래처럼 축축 늘어진 모습은 낯설고, 약간 숙연하기까지 했다…….
‘잠깐만.’
이세진은 순간, 박문대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 다시 깨달았다.
“청려 피처링 연습이지?”
“어.”
아니 누가 피처링을 부탁하면서 사람을 자기 회사 연습생처럼 굴린단 말인가.
‘선을 모르나?’
지난 사건들로 청려에 대한 평가가 약간 완화되긴 했지만, 어쨌든 타 그룹이고 경계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진은 더 탐탁지 않았다.
‘좀 적극적으로 반대할 걸 그랬나.’
그래서 그는 일부러 쾌활하게 박문대에게 어깨동무하며 외쳤다.
“문대문대~ 너무 남 좋은 일 해주는 거 아니야? 뭘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해줘!”
그때였다.
“…나도 동감이야.”
“…!”
독방 생활을 만끽하던 배세진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서 자신의 말을 거든 것이다.
이세진은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 형이 웬일로?
“꼭 안 해도 되는데 해주는 거잖아.”
배세진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
그는 VTIC 청려가 껄끄러웠다.
데뷔 초, 박문대를 갑자기 습격했다는 기함할 사실이 결정적인 요인이긴 했으나 비단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이상했어.’
청려라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그랬다.
사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드물다. 하지만 관찰만 하는 데도 느껴졌다.
감정적 맥락이 없는, 그러니까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마치 배세진 본인이 연기했던 사이코패스들이 떠오르도록 말이다.
본래 타인의 태도에 예민하고 기민한 그이기에 더 잘 느꼈다.
그건 시스템의 가상 세계에서, 혹은 건물 붕괴 사태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사실로도 잘 사라지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게 지극히 오랜 시간 반복된 재시작 때문에 생긴 간극이라는 걸 모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음.’
어쨌든 이세진은 정색해 버린 배세진을 보다가, 다시 분위기를 바꿨다.
‘아이고, 문대는 여기서 정색해 봤자 말 더 안 듣는데.’
더 가볍게.
“맞아. 우리 앨범을 위해 체력 비축해 줘 문대~”
“그래야지.”
그렇지!
이세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박문대는 보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박문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할 건 제대로 하고.”
“…….”
‘야 그러면 네가… 밤새워서 작업하는 김래빈이랑 다를 게 있냐?’
룸메이트인 김래빈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본인을 돌아보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이세진 옆에는 그 대신 화낼 배세진이 있었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고!”
“예. 뭐… 건강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연습하긴 했는데요.”
박문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더 꼴 받긴한데.”
“……?”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문대는 절묘하게 혹사당한 자신의 몸 상태를 돌아보며 침묵했다.
하지만 곧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도움이 되긴 합니다. 이런 장르 안무는 처음이라서. 그리고… 끝나면 받아낼 것도 있어서요.”
“받아?”
“예. 좀 얻어낼 게 있어서.”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의외로 보람 차 보이는 미소였다.
“이번에 저희 자체 컨텐츠가 재밌게 뽑히긴 한 것 같은데, 이전보다 좀 덜 대중적일 것 같거든요.”
“음?”
류서린이 자극적으로 흥미진진하도록 밸런스를 맞춰서 뽑긴 하겠지만, 이건 마니아층 용이라고 박문대도 결론을 내렸다.
‘추리는 머리를 써야 해서 가볍게 보기 힘들지.’
하지만 다음 앨범 떡밥과 연결하려면 어느 정도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기까지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라이트한 맛과는 더 멀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공포 요소를 살려서 대중성 밸런스를 맞췄어.’
그것도 늦여름, 초가을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다음 앨범에서 대중성도 제대로 챙겨야죠.”
국뽕과 대중성을 다 챙기겠다!
박문대는 씩 웃었다.
“거기에 도움이 될 걸 받아낼 겁니다.”
큰 그림이 그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곧 ‘알았으니까 쉬기나 하라’며 타박하는 동명이인에 의해 침실로 기어들어 가는 엔딩을 맞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테스타의 자체 컨텐츠, 이 화려하게 공개된 이후.
박문대가 피처링한 청려의 무대 경연 첫 촬영 날이 다가왔다.
* * *
VTIC, 그중에서도 청려의 팬 커뮤니티는 솔로 앨범 활동기를 맞아 대단히 활력이 넘쳤다.
특히 청려가 이번 앨범 프로모션용으로 방송 출연을 꽤 많이 잡았기 때문에 떡밥은 더욱 풍족했다.
-재현아 스케줄 미쳤냐 고맙다
-ㅠㅠㅠ채율이가 재현이 무대 챙겨본대 진짜 브이틱이 케이팝 관계성 근본이다…
-이 연차에 소처럼 일하는데 커리어하이 갱신하는 갓돌 신청려 어떻게 안 좋아하지요?
-신재현 팬싸 대응 돌았고 (영상)
그리고 이 분위기에서 청려의 프로그램 출연 소식은 처음엔 그저 앨범 프로모션용 활동 중 하나였을 뿐이다.
‘급 떨어지니까 굳이 안 나와도 괜찮다’라는, 다소 냉정한 평가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대부분은 일단 스케줄 자체에 반가워했고, 청려의 무대를 볼 시간이 늘었다는 것에 좋아했다.
의 방청객 신청이 역대 최고 수치를 갱신했다는 기사에 즐거워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커뮤니티 이용자 중에도 당첨자도 나왔다.
-내가 첨봄을 방청할 줄이야… 엄마 모시고 다녀온다 후기 가져오겠음ㅋㅋ
└ㅊㅋㅊㅋ
└부럽다
└어케 붙었냐
하지만 그날 오후.
-헐
-야 신재현
-ㅋㅋ
-와
방청 후기 올리기로 했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외마디 감상만 남기기 시작했다.
방청객 후기를 보려 그 시간 커뮤니티에 죽치고 있던 팬들은 모두 당황했다.
‘재현아??’
-????
-뭐야
-반응 뭐임 지금
몇 분 후.
드디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방청 후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미친!!
청려의 팬사이트가 비명과 혼란으로 가득 차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