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9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6화
2주 전.
박문대가 막 테스타 자체 컨텐츠 촬영을 마쳤을 무렵.
청려는 한창 컴백 준비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다음은 인터뷰죠?”
“네!”
준비는 순조로웠다.
LeTi의 관계자들은 청려의 모든 활동이 오차 없이 진행되는 것이 최우선 미덕인 것처럼 움직였다.
“아까부터 대기 중이시거든요. 되도록 빠르게 좀….”
“아아! 예.”
청려가 워낙 자기 관리가 투철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사무적일지라도 온화하며 변덕스러운 짜증이 일절 없는 타입이었으나, 결코 주변에서 대하기 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청려도 그것을 알았으나, 굳이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태도를 바꾸진 않았다.
‘편한 사람보단 어려운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수많은 시도 끝, 귀납적 통계에 의해 완성된 문법이었다.
어차피 청려는 일상을 공유해야만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는 부류도 아니었다.
그나마 반려견-콩이에 대한 이야기나 문득 입 밖에 내고 싶어졌으나, 그것도 상대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청려는 시간을 확인한 뒤, 그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만 이번에는 간혹 보내는 문자처럼 콩이 사진을 보내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
짧은 통화연결음 끝에 상대가 받았다.
“자체 컨텐츠 촬영은 잘 끝났어요?”
-예. 선배님.
바로 박문대다.
재밌는 점은 이 후배님이 전화나 문자가 오갈 때마다 되도록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반말로 통화한 내역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습관적인 치밀함이다.
‘그 점도 나쁘진 않지.’
방심하지 않는 태도는 어디서든 손해 보지 않을 테니까.
청려는 약간 유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검증된 자원과 함께 일하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곧 박문대의 무덤덤한 축하의 말이 들렸다.
-선배님 솔로 앨범 컴백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지난 며칠간 수많은 사람에게도 들었던 소리에 가볍게 대응한 청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때 합의한 일을 슬슬 준비할 시기가 다가와서요.”
-…….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후배님이 내 앨범 수록곡을 피처링할 건 아니고.”
-예.
청려는 당시 당황했던 박문대를 떠올리며 무심코 웃을 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신이 고른 피처링 방식.
“내가 이번에 나갈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같이 나가죠.”
-…!
“아마 후배님 마음에도 들 거예요.”
청려는 계산을 끝냈다.
“프로그램명은…….”
* * *
토요일 오후 5시 40분에 방영하는 MBS 예능.
공중파에서 가수들이 출연할만한, 얼마 안 되는 장수 경연 프로그램이다.
타이틀만 봐서는 실력 좋은 무명 가수나, 가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 활동 중인 명인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공중파식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정답이다.’
맞다. 공중파가 좋아하는 그 스타일.
그런데 반만 정답이기도 하다.
‘그것만 해서는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팔아먹으려면 뭘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끼워팔기지.’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의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앨범이나 공연 홍보 효과를 노리는 유명한 기성 가수들도 출연진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출연진 둘이 페어를 이루어 무대를 하게 만들면 다양한 그림을 뽑을 수 있다.
이걸로 시즌 7이 되도록 장수 중인 프로그램이다.
아직도 섭외 라인업은 제법 화려했으나,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로 정착해서 조금 올드한 맛이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이놈이 나온다고?’
나는 힐끗 청려를 쳐다보았다.
VTIC이 나오기엔 지나치게 출연진이 많고 번잡한 프로그램이었다.
저놈 정도 네임드면 본인 특집을 꾸려도 모자랄 마당에, 그냥 나온다?
‘흠.’
물론 당연히 노림수가 있겠지.
나는 ‘왜 이 프로그램을 골랐냐’라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한 놈의 대답을 떠올렸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뭐, 그래서 오늘은 이 프로그램 사전 미팅을 왔다.
참고로 여기 메인 PD가 시즌 3에 밀고 들어와서는 7이 넘었는데도 후배 PD에게 프로그램을 넘기기는커녕, 새 프로그램도 제작하지 않고 이것만 계속하는 중이라는데….
대화해 보니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아이고 반가워요. 문대 씨. 내 조카가 팬이라는데 앨범에 사인 좀 해서 줘요. 주고 남은 거 말고, 새로 해서.”
“그럼요.”
꼰대네.
뭐 사명 의식이 있어서 계속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성비 각 보고 눌러앉았다는 데 걸겠다.
그래도 아이돌로 이름값을 최정상인 여기까지 올려놔도 방송국 PD가 갑이라는 게 새삼 재밌긴 했다.
최소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긴 하다만, 해외 인지도가 정신 나간 급인 VTIC한테는 또 태도가 다르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 한류 스타 VTIC이! 이렇게 출연해 줘서 또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답은 국뽕인가.’
이런 전형적인 꼰대형 연장자에겐 그게 최고였다. 나는 PD를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앨범 내고 보자.’
마침 문화훈장 사냥하려고 국뽕 치사량이 목표다.
어쨌든 사인해달라던 팬한테는 죄가 없었다. PD 가족 찬스로 대기실로 들어오지 않는 게 어디냐.
나는 혹시 몰라서 가져온 여벌 앨범에 정성 들여서 사인을 끝냈고, PD는 냉큼 그것을 가져가더니 그제야 프로그램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래서 음, 두 분이 같이 무대를 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둘이 친해지셨어요?”
“아, 문대 데뷔할 때 예능을 같이 했었거든요. 그 프로그램도 MBS였는데.”
“…아아~ 기억난다! 그랬네요.”
‘기억 안 나는구만.’
사회생활 한번 잘하시는군.
역시 공중파에서 뜬 프로그램에 엉덩이 깔고 앉을 정도로 출세하려면 저래야 하나 보다.
“어쨌든 간에 이렇게 두 분 모시게 돼서 우리 프로그램이 참 기뻐요, 기뻐.”
그리고 역시나 PD는 구체적으로 해당 예능을 언급하는 대신 말을 흐리다가, 스윽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둘이 직업도 같고 이미지도 비슷해서 어? 분량에 그 오도시, 그러니까 클라이맥스 넣기 애매할까 봐 걱정도 되긴 하는데, 괜찮으신가?”
어. 괜찮다.
그냥… 타그룹 1군 아이돌 둘이 한 팀 하는 시점에서 이미 화제성은 폭발이다.
클라이맥스는 무슨 얼어 죽을.
‘수 쓰네.’
기왕 유명 아이돌이 둘이나 나올 거면 회차를 쪼개서 따로따로 분산시키고 시청률 띄우기 연장시키고 싶다는 뜻이지.
‘응, 안 돼.’
그리고 내가 말할 것도 없이 당사자인 청려가 즉각 대답했다.
“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오케이.”
자신 있는 것 같군.
내가 입 열 필요가 없다는 점은 편하긴 했다. 짬 찬 놈과 일하니 이건 괜찮군.
“그리고 저희 실장님이 미리 전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게….”
“아아, 예예.”
그 후로는 쓸데없는 미끼질은 없었다.
프로그램 작가와 서브 PD와 대화하며, 순조롭게 미팅이 흘러갔다. 나는 열심히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서 이놈, 대체 날 써서 무슨 무대를 하고 싶다는 거지.’
그리고 이 의문은 곧 풀린다.
미팅이 끝난 직후.
방송국에서 20분 거리인 LeTi 사옥의 회의실.
“우선 뮤직비디오부터 보여줄게요.”
프로젝터를 켠 청려는 당장 무대 구성부터 토의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프로그램 촬영분에 이런 컨셉을 짜는 장면도 들어가야 하나, 연습 시간 문제상 그건 다 재연 수준인 경우도 많다.
‘짜고 치는 대본이지.’
그래서 그건 이해하겠는데 말이다.
“가편집본이긴 하지만 인트로랑 크레딧만 없는 수준이라서. 후배님이 앨범 컨셉을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린 없고….”
“잠깐만.”
흐름이 좀 이상한데.
“무대 개요가 아니라 갑자기 네 뮤직비디오는 왜.”
“음?”
우리가 할 무대가 앨범에 수록된 곡도 아니라면서 왜 뜬금없이 곧 공개될 네 MV를 자랑하고 앉아 있냐는 말이다.
그러나 청려는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태연히 대답했다.
“앨범 홍보로 목적으로 나오는 프로그램 무대인데, 당연히 보자마자 내 이번 타이틀이 떠오르게 만들어야지.”
“…….”
“이 타이틀 자체가 우리 무대의 베이스가 될 컨셉이니까, 지금 잘 보고 숙지해 둬요. 공개 전 뮤직비디오 파일을 보내줄 순 없으니까.”
오냐.
‘머리 잘 돌아가는군.’
나는 한숨을 참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놈 무대에 잡소리 말고 협조하기로 괜히 합의했나, 생각하면서.
내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차원에서는 이놈이 만든 무대 구성을 일방적으로 따라주겠다고 이야기를 해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전이 뚜렷하다면야.
‘고음 셔틀이나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니, 쓸데없이 안 어울리는 컨셉 하느니 그게 나을 것도 같다.
나는 혀를 차며 놈이 재생하는 MV의 화면을 응시했다.
잿더미가 된 대리석 바닥.
폐허가 된 그 고풍스러운 미술관 바닥 한가운데, 물감이 어지럽게 터지듯 뒤섞인 자리가 있다.
그 위에 홀로 누워 있는 것이 바로 청려다.
[…….]
그 대비되는 이미지가 천천히 상공의 시점으로 지나갔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The devil is in the details]
의미심장한 문구가 뜨며, 곧 노래가 시작된다.
[Ash]
청려의 이번 솔로 앨범 타이틀.
-Oh maybe we’re just in pain
아련한 단조의 미디엄 템포.
그리고 재즈풍 반주.
-Ashes to ashes, dust to dust.
타다 남은 잿더미 속에
똑같은 Story
And love is dead
도입부터 아주 중독적인 후렴을 던진다.
그리고 벌스로 가기 전 천천히 낮아지는 허밍. 그리고 엇박의 안무.
맨발에 터틀넥, 그리고 검은 슬렉스 차림새로 재 위에서 추는 안무는 마치 그 자체로 힘이 있어서 카메라를 당기고 밀며 각도를 바꾸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비율과 체격이 최상급인 놈이 극한까지 체형을 관리해 둬서 그런지 미니멀한 게 제일 인상적이다.
‘망할.’
폼이 안 죽네.
혀 씹을 뻔했다.
곡만 들어도 좋은 이지리스닝에, 인상적인 안무를 섞는 까다로운 작업을 제대로 했다.
게다가 말이다.
이 안무.
‘동작만 따라 하긴 오히려 쉬운데, 느낌을 내는 게 힘든 안무다.’
챌린지를 시도하는 사람은 많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줄 세우기도 좋다는 뜻이다.
벌써 눈에 선했다.
-이분 청려랑 진짜 비슷함 대박ㄷㄷ
└선생님 알바 그만 쓰십쇼
└ㅋㅋㅋㅋㅋㅋ일침
-이 사람도 잘 추긴 하는데 원곡 바이브 살리는 사람 진짜 별로 없네ㅋㅋ
-왜 이렇게 악플 많아요 열심히 추신 것 같은데ㅠ
이런 댓글과 반응이 우수수 달릴 챌린지 영상들이.
‘춤에 자신 있는 솔로가 하기에 최적의 선택이다.’
만들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었다.
테스타도 아무리 군대를 미뤄도 몇 년 내로는 몇 놈은 군대에 갈 테고, 차유진, 류청우는 무조건 솔로나 유닛을 해야 할 텐데.
이만큼 정제된 결과물을 기획할 수 있을지 경쟁심리까지 들 판이다.
“…….”
나는 입을 다물고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시청했다.
점점 배경과 의상이 화려해지다가, 마지막에 다시 잿더미가 잡히며 미니멀하게 끝나는 게 아주 템포 조절이 대단했다.
-And love is the end.
화면은 어두운 공간, 검은 물 위에 선 청려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그리고 장본인, 청려는 뮤직비디오 가편집본이 끝난 후에야 미소 지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어요?”
객관적인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주관적 질문으로 건너뛰었다.
‘자신 있다 이거지.’
그러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
“잘 만들었는데.”
왜 놀라고 그러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어차피 지금은 같이 일해야 할 판에 자존심 싸움 해봤자 의미 없다.
‘컴백 시기가 겹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말이다.
“이 안무 느낌을 내가 살리기는 힘들다.”
“음?”
“혹시 해서 말해두는 거지만, 나더러 이런 비슷한 안무 느낌을 2주 만에 구현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무대 퀄리티를 위한 조언이다.
‘이건 춤 A등급 이상이나 겨우 비빌 수 있는 완성도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기성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데뷔 서바이벌처럼 일단 노력해서 성장세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이해해 주는 그런 서사는 웃길 뿐이란 뜻이다.
내가 이것과 비슷한 안무를 한다면, 무조건 이놈 컨셉을 깨지 않을 만큼 나도 잘해야 한다.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성비가 별로였다.
‘그냥 고음 셔틀로 써 새끼야.’
그러나 청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번 무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 아닌가?”
“…….”
진심이냐?
“농담이에요.”
놈은 실실 쪼개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계산하듯 두드렸다.
“각자가 잘하는 걸 해야… 후배님과 합의한 게 가치가 있겠죠.”
그래.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하니까.”
“…?”
청려가 가볍게 물었다.
“하루 연습을 몇 시간까지 해봤어요?”
그리고 급의 연습량이 대가리에 떨어졌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6화
2주 전.
박문대가 막 테스타 자체 컨텐츠 촬영을 마쳤을 무렵.
청려는 한창 컴백 준비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다음은 인터뷰죠?”
“네!”
준비는 순조로웠다.
LeTi의 관계자들은 청려의 모든 활동이 오차 없이 진행되는 것이 최우선 미덕인 것처럼 움직였다.
“아까부터 대기 중이시거든요. 되도록 빠르게 좀….”
“아아! 예.”
청려가 워낙 자기 관리가 투철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사무적일지라도 온화하며 변덕스러운 짜증이 일절 없는 타입이었으나, 결코 주변에서 대하기 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청려도 그것을 알았으나, 굳이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태도를 바꾸진 않았다.
‘편한 사람보단 어려운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수많은 시도 끝, 귀납적 통계에 의해 완성된 문법이었다.
어차피 청려는 일상을 공유해야만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는 부류도 아니었다.
그나마 반려견-콩이에 대한 이야기나 문득 입 밖에 내고 싶어졌으나, 그것도 상대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청려는 시간을 확인한 뒤, 그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만 이번에는 간혹 보내는 문자처럼 콩이 사진을 보내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
짧은 통화연결음 끝에 상대가 받았다.
“자체 컨텐츠 촬영은 잘 끝났어요?”
-예. 선배님.
바로 박문대다.
재밌는 점은 이 후배님이 전화나 문자가 오갈 때마다 되도록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반말로 통화한 내역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습관적인 치밀함이다.
‘그 점도 나쁘진 않지.’
방심하지 않는 태도는 어디서든 손해 보지 않을 테니까.
청려는 약간 유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검증된 자원과 함께 일하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곧 박문대의 무덤덤한 축하의 말이 들렸다.
-선배님 솔로 앨범 컴백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지난 며칠간 수많은 사람에게도 들었던 소리에 가볍게 대응한 청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때 합의한 일을 슬슬 준비할 시기가 다가와서요.”
-…….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후배님이 내 앨범 수록곡을 피처링할 건 아니고.”
-예.
청려는 당시 당황했던 박문대를 떠올리며 무심코 웃을 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신이 고른 피처링 방식.
“내가 이번에 나갈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같이 나가죠.”
-…!
“아마 후배님 마음에도 들 거예요.”
청려는 계산을 끝냈다.
“프로그램명은…….”
* * *
토요일 오후 5시 40분에 방영하는 MBS 예능.
공중파에서 가수들이 출연할만한, 얼마 안 되는 장수 경연 프로그램이다.
타이틀만 봐서는 실력 좋은 무명 가수나, 가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 활동 중인 명인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공중파식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정답이다.’
맞다. 공중파가 좋아하는 그 스타일.
그런데 반만 정답이기도 하다.
‘그것만 해서는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팔아먹으려면 뭘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끼워팔기지.’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의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앨범이나 공연 홍보 효과를 노리는 유명한 기성 가수들도 출연진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출연진 둘이 페어를 이루어 무대를 하게 만들면 다양한 그림을 뽑을 수 있다.
이걸로 시즌 7이 되도록 장수 중인 프로그램이다.
아직도 섭외 라인업은 제법 화려했으나,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로 정착해서 조금 올드한 맛이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이놈이 나온다고?’
나는 힐끗 청려를 쳐다보았다.
VTIC이 나오기엔 지나치게 출연진이 많고 번잡한 프로그램이었다.
저놈 정도 네임드면 본인 특집을 꾸려도 모자랄 마당에, 그냥 나온다?
‘흠.’
물론 당연히 노림수가 있겠지.
나는 ‘왜 이 프로그램을 골랐냐’라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한 놈의 대답을 떠올렸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뭐, 그래서 오늘은 이 프로그램 사전 미팅을 왔다.
참고로 여기 메인 PD가 시즌 3에 밀고 들어와서는 7이 넘었는데도 후배 PD에게 프로그램을 넘기기는커녕, 새 프로그램도 제작하지 않고 이것만 계속하는 중이라는데….
대화해 보니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아이고 반가워요. 문대 씨. 내 조카가 팬이라는데 앨범에 사인 좀 해서 줘요. 주고 남은 거 말고, 새로 해서.”
“그럼요.”
꼰대네.
뭐 사명 의식이 있어서 계속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성비 각 보고 눌러앉았다는 데 걸겠다.
그래도 아이돌로 이름값을 최정상인 여기까지 올려놔도 방송국 PD가 갑이라는 게 새삼 재밌긴 했다.
최소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긴 하다만, 해외 인지도가 정신 나간 급인 VTIC한테는 또 태도가 다르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 한류 스타 VTIC이! 이렇게 출연해 줘서 또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답은 국뽕인가.’
이런 전형적인 꼰대형 연장자에겐 그게 최고였다. 나는 PD를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앨범 내고 보자.’
마침 문화훈장 사냥하려고 국뽕 치사량이 목표다.
어쨌든 사인해달라던 팬한테는 죄가 없었다. PD 가족 찬스로 대기실로 들어오지 않는 게 어디냐.
나는 혹시 몰라서 가져온 여벌 앨범에 정성 들여서 사인을 끝냈고, PD는 냉큼 그것을 가져가더니 그제야 프로그램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래서 음, 두 분이 같이 무대를 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둘이 친해지셨어요?”
“아, 문대 데뷔할 때 예능을 같이 했었거든요. 그 프로그램도 MBS였는데.”
“…아아~ 기억난다! 그랬네요.”
‘기억 안 나는구만.’
사회생활 한번 잘하시는군.
역시 공중파에서 뜬 프로그램에 엉덩이 깔고 앉을 정도로 출세하려면 저래야 하나 보다.
“어쨌든 간에 이렇게 두 분 모시게 돼서 우리 프로그램이 참 기뻐요, 기뻐.”
그리고 역시나 PD는 구체적으로 해당 예능을 언급하는 대신 말을 흐리다가, 스윽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둘이 직업도 같고 이미지도 비슷해서 어? 분량에 그 오도시, 그러니까 클라이맥스 넣기 애매할까 봐 걱정도 되긴 하는데, 괜찮으신가?”
어. 괜찮다.
그냥… 타그룹 1군 아이돌 둘이 한 팀 하는 시점에서 이미 화제성은 폭발이다.
클라이맥스는 무슨 얼어 죽을.
‘수 쓰네.’
기왕 유명 아이돌이 둘이나 나올 거면 회차를 쪼개서 따로따로 분산시키고 시청률 띄우기 연장시키고 싶다는 뜻이지.
‘응, 안 돼.’
그리고 내가 말할 것도 없이 당사자인 청려가 즉각 대답했다.
“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오케이.”
자신 있는 것 같군.
내가 입 열 필요가 없다는 점은 편하긴 했다. 짬 찬 놈과 일하니 이건 괜찮군.
“그리고 저희 실장님이 미리 전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게….”
“아아, 예예.”
그 후로는 쓸데없는 미끼질은 없었다.
프로그램 작가와 서브 PD와 대화하며, 순조롭게 미팅이 흘러갔다. 나는 열심히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서 이놈, 대체 날 써서 무슨 무대를 하고 싶다는 거지.’
그리고 이 의문은 곧 풀린다.
미팅이 끝난 직후.
방송국에서 20분 거리인 LeTi 사옥의 회의실.
“우선 뮤직비디오부터 보여줄게요.”
프로젝터를 켠 청려는 당장 무대 구성부터 토의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프로그램 촬영분에 이런 컨셉을 짜는 장면도 들어가야 하나, 연습 시간 문제상 그건 다 재연 수준인 경우도 많다.
‘짜고 치는 대본이지.’
그래서 그건 이해하겠는데 말이다.
“가편집본이긴 하지만 인트로랑 크레딧만 없는 수준이라서. 후배님이 앨범 컨셉을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린 없고….”
“잠깐만.”
흐름이 좀 이상한데.
“무대 개요가 아니라 갑자기 네 뮤직비디오는 왜.”
“음?”
우리가 할 무대가 앨범에 수록된 곡도 아니라면서 왜 뜬금없이 곧 공개될 네 MV를 자랑하고 앉아 있냐는 말이다.
그러나 청려는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태연히 대답했다.
“앨범 홍보로 목적으로 나오는 프로그램 무대인데, 당연히 보자마자 내 이번 타이틀이 떠오르게 만들어야지.”
“…….”
“이 타이틀 자체가 우리 무대의 베이스가 될 컨셉이니까, 지금 잘 보고 숙지해 둬요. 공개 전 뮤직비디오 파일을 보내줄 순 없으니까.”
오냐.
‘머리 잘 돌아가는군.’
나는 한숨을 참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놈 무대에 잡소리 말고 협조하기로 괜히 합의했나, 생각하면서.
내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차원에서는 이놈이 만든 무대 구성을 일방적으로 따라주겠다고 이야기를 해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전이 뚜렷하다면야.
‘고음 셔틀이나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니, 쓸데없이 안 어울리는 컨셉 하느니 그게 나을 것도 같다.
나는 혀를 차며 놈이 재생하는 MV의 화면을 응시했다.
잿더미가 된 대리석 바닥.
폐허가 된 그 고풍스러운 미술관 바닥 한가운데, 물감이 어지럽게 터지듯 뒤섞인 자리가 있다.
그 위에 홀로 누워 있는 것이 바로 청려다.
그 대비되는 이미지가 천천히 상공의 시점으로 지나갔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문구가 뜨며, 곧 노래가 시작된다.
청려의 이번 솔로 앨범 타이틀.
-Oh maybe we’re just in pain
아련한 단조의 미디엄 템포.
그리고 재즈풍 반주.
-Ashes to ashes, dust to dust.
타다 남은 잿더미 속에
똑같은 Story
And love is dead
도입부터 아주 중독적인 후렴을 던진다.
그리고 벌스로 가기 전 천천히 낮아지는 허밍. 그리고 엇박의 안무.
맨발에 터틀넥, 그리고 검은 슬렉스 차림새로 재 위에서 추는 안무는 마치 그 자체로 힘이 있어서 카메라를 당기고 밀며 각도를 바꾸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비율과 체격이 최상급인 놈이 극한까지 체형을 관리해 둬서 그런지 미니멀한 게 제일 인상적이다.
‘망할.’
폼이 안 죽네.
혀 씹을 뻔했다.
곡만 들어도 좋은 이지리스닝에, 인상적인 안무를 섞는 까다로운 작업을 제대로 했다.
게다가 말이다.
이 안무.
‘동작만 따라 하긴 오히려 쉬운데, 느낌을 내는 게 힘든 안무다.’
챌린지를 시도하는 사람은 많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줄 세우기도 좋다는 뜻이다.
벌써 눈에 선했다.
-이분 청려랑 진짜 비슷함 대박ㄷㄷ
└선생님 알바 그만 쓰십쇼
└ㅋㅋㅋㅋㅋㅋ일침
-이 사람도 잘 추긴 하는데 원곡 바이브 살리는 사람 진짜 별로 없네ㅋㅋ
-왜 이렇게 악플 많아요 열심히 추신 것 같은데ㅠ
이런 댓글과 반응이 우수수 달릴 챌린지 영상들이.
‘춤에 자신 있는 솔로가 하기에 최적의 선택이다.’
만들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었다.
테스타도 아무리 군대를 미뤄도 몇 년 내로는 몇 놈은 군대에 갈 테고, 차유진, 류청우는 무조건 솔로나 유닛을 해야 할 텐데.
이만큼 정제된 결과물을 기획할 수 있을지 경쟁심리까지 들 판이다.
“…….”
나는 입을 다물고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시청했다.
점점 배경과 의상이 화려해지다가, 마지막에 다시 잿더미가 잡히며 미니멀하게 끝나는 게 아주 템포 조절이 대단했다.
-And love is the end.
화면은 어두운 공간, 검은 물 위에 선 청려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그리고 장본인, 청려는 뮤직비디오 가편집본이 끝난 후에야 미소 지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어요?”
객관적인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주관적 질문으로 건너뛰었다.
‘자신 있다 이거지.’
그러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
“잘 만들었는데.”
왜 놀라고 그러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어차피 지금은 같이 일해야 할 판에 자존심 싸움 해봤자 의미 없다.
‘컴백 시기가 겹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말이다.
“이 안무 느낌을 내가 살리기는 힘들다.”
“음?”
“혹시 해서 말해두는 거지만, 나더러 이런 비슷한 안무 느낌을 2주 만에 구현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무대 퀄리티를 위한 조언이다.
‘이건 춤 A등급 이상이나 겨우 비빌 수 있는 완성도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기성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데뷔 서바이벌처럼 일단 노력해서 성장세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이해해 주는 그런 서사는 웃길 뿐이란 뜻이다.
내가 이것과 비슷한 안무를 한다면, 무조건 이놈 컨셉을 깨지 않을 만큼 나도 잘해야 한다.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성비가 별로였다.
‘그냥 고음 셔틀로 써 새끼야.’
그러나 청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번 무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 아닌가?”
“…….”
진심이냐?
“농담이에요.”
놈은 실실 쪼개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계산하듯 두드렸다.
“각자가 잘하는 걸 해야… 후배님과 합의한 게 가치가 있겠죠.”
그래.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하니까.”
“…?”
청려가 가볍게 물었다.
“하루 연습을 몇 시간까지 해봤어요?”
그리고 급의 연습량이 대가리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