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화
태블릿에 뜬 성격 유형 문답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을 고르라는 것.
물론, 다 아이돌 특수 상황이다.
[1. 당신은 21개국 글로벌 팬들에게 선보이는 세계적인 KPOP 콘서트, TaKon(테이콘)의 퍼포머로 선정되었습니다!
피땀 흘리는 연습에 매진하던 중, 당신에게 갑작스럽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공연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뿐입니다. 당신의 선택은?]
일단 노골적으로 끼워 넣은 자기들 콘서트 간접광고는 무시하자.
차 떼고 포 떼면 대충… 데드라인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하던 거 엎어버리고 다시 할 거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안 하지.’
이게 무슨 학교 과제인 줄 아나.
일주일 남았으면 무대 세트부터 의상까지 거의 픽스됐을 텐데, 아이디어 생겼으니 다 갈아엎자고?
‘애초에 엎을 짬이 생기려면 한… 5년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웬만하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내가 절실함을 어필하고 싶어도 그렇지, 이건 열정이 아니라 만용이었다.
[⑤ 아쉽지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던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자.]
나는 최대한 고민하는 척하다가 이 선택지를 골랐다. 그리고 편집할 수 없도록 동시에 카메라를 보고 중얼거렸다.
“저 혼자 하는 거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데…… 무대는 종합 예술이니까, 그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잘 정리해 두고 바로 다음에 써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양념을 쳐놨는데 또 이상한 캐릭터를 잡기는 힘들겠지. 나는 다음 문답으로 넘어갔다.
[2. 당신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뮤직 어워드, ToneA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인해 한 멤버가 중상을 입게 됩니다.
다행히 당신은 경미한 타박상만 입었습니다. 곧바로 출발하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
당연히 X발 몸을 정양해야지.
당장 탑승자 중에 중상자가 나왔는데 뭘 믿고 타박상이니 시상식을 가냐.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거 의지와 노오력으로 시상식에 간다는 선택지가 긍정적으로 뜰 것 같다.
‘뭣 같네.’
나는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참으며, 중립 답안을 골랐다.
[④ 병원에서 원격으로 수상소감을 전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직접 가면 더 좋겠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은 즉각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검진을 통해서 몸 상태를 확실히 확인해야 활동에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연설명을 붙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설마 계속 이런 식인가?’
어. 그런 식이 맞았다.
놀랍게도 10가지 문답이 전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그놈의 KPOP 컨셉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제작진만 알 것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나머지 문제를 풀었다.
(은근히 자사 제품을 들먹이는) 광고와 관련된 9번 질문까지 넘기고 나니 드디어 마지막 문제가 떴다.
드디어 끝이군. 얼른 10번 문제를 훑어보았다.
[10. 당신은 세계적으로 활약할 글로벌 KPOP 아이돌을 뽑는 에 출연했습니다.
끝없는 노력과 극복을 통해 마침내 마지막 관문 앞에 선 지금. 어마어마한 캐스팅 콜이 당신을 부릅니다. 당신의 선택은?]
“…….”
이걸 여기다 넣어?
이중으로 낚였음을 깨닫는 순간, 태블릿 화면이 바뀌었다.
3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뭔 놈의 카운트다운을 3초만 주냐.’
기겁하는 참가자 리액션을 뽑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숫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생각할 새도 없이 곧장 문구가 떴다.
[지금 선택하세요!]
그 순간, 예고도 없이 정면의 문이 벌컥 열렸다.
“…!”
“안녕하세요?”
문밖에는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잠깐. 정정하겠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낯이 익었다.
왜냐하면… 많이 찍어봤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VTIC의 멤버가 웃는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상상도 못 한 거물의 등장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거 조금만 인사 늦었다가는 인터넷에서 주리가 틀릴 각이다.
“아,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VTIC 멤버가 손을 뻗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거래처 사장이라도 만난 것처럼 두 손 뻗어 악수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무슨 수로 섭외했냐.’
가 아무라 잘 됐어도 그렇지, VTIC 소속사에서 투자지분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출연하게 만들었냐는 말이다.
VTIC이 Tnet에서 독점 리얼리티라도 진행하나. T1 계열사 광고라도 잡았나.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는 SNS에 무슨 캡처본이 돌아다닐지 몰랐다.
나는 VTIC 멤버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착석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상대를 확인했다.
‘리더였던가.’
이름과 인기 척도는 기억나는데 다른 포지션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았다.
일단 저 팀 내에서도 개인 지표가 괜찮았고, 춤을 잘 춰서 직캠 수요가 좋았던 것만 기억났다.
활동명은 청려.
“일단 제 소개부터 드릴게요. VTIC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 중인 청려라고 합니다.”
본명은 따로 있던 것 같은데 당연히 모른다.
어쨌든 본인도 ‘박문대’가 자신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냥 방송 그림상 한번 소개한 거지.
“박문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하고도 뭘 잘 부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적당히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더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어야 했나?’
당황해서 오히려 리액션을 깜박했다.
“방송에서도 그러시던데, 굉장히 침착하시네요.”
“…너무 놀라서 굳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저거 지금 안 믿는다는 뜻이지?
청려는 적당히 분위기 가벼워질 만큼만 웃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제가 박문대 참가자님을 만나러 온 이유는… 저희 VTIC의 소속사인 LeTi로부터의 캐스팅 콜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 발언이 나올 것을 예상은 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제작진 돌았나?’
지금 LeTi 이름값이면 순위가 한 자릿수여도 탈주할 놈이 나올 수 있겠는데?
물론 저기 들어간다고 차기 남자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보장은 없다. 이미 소속사가 보유한 연습생이 한둘도 아닐 것이고.
그러나 워낙 현재 VTIC의 위상이 높아서 20살 전후의 어린애들은 홀라당 넘어가기 딱 좋았다. 심지어 VTIC 멤버 본인이 왔으니까.
‘이미 소속사 있는 놈도 눈 딱 감고 사인할 정도다.’
청려는 계속 준비된 것 같은 대사를 쳤다.
“물론 모든 참가자분께 드리는 제안은 아닙니다. 아까 푸신 문답 기억나시나요?”
“예….”
“9가지 상황 문답에서, 박문대 참가자님이 저희 VTIC 멤버들과 가장 응답 일치율이 높은 참가자세요.”
청려가 작게 손바닥을 쳤다.
“저희 LeTi 소속사의 아티스트들과 비슷한 인재상을 공유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른 방에는 각각 다른 소속사 사람들이 들어가서 캐스팅 콜을 진행 중이라는 뜻이었다.
‘예고편 뽑기 쉽겠는데.’
VTIC까지 나온 걸 봐서는 Tnet하고 친하면서 이름 있는 소속사는 다 긁어모았을 테니, 시청자들은 이런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선 LeTi 소속사를 선택하시면 누릴 수 있는 장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말은 뻔했다. 대충 복지랑 업적이랑 비전을 읊은 것이다.
‘소속사 이미지 챙기기용인가.’
외운 게 신기했다. 리더라 대외용으로 이미 알아둔 거겠지만.
어쨌든 참 감명 깊은 이야기 듣는 것처럼 성의껏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사를 냈다.
청려는 이번에도 적당 선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준비한 듯 유머를 덧붙였다.
“그리고 박문대 참가자님은 이미 아시겠지만, LeTi는 말랑달콤 선배님들의 소속사이기도 합니다. 음… 같이 을 추실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하하……, 네.”
이놈의 팝콘 망령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군.
어쨌든 내가 솔깃했다고 생각한 건지, 청려는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책상 위로 서류와 펜이 올라왔다.
계약서였다. 도장 찍힌 모양새나 양식을 보니 정말 쓰는 것 같다.
‘진짜냐.’
이렇게까지 연출에 진심일 필요가 있나. 나는 떨떠름하게 계약서를 훑었다.
“박문대 참가자님은 VTIC의 소속사, LeTi의 캐스팅 콜에 응답하시겠습니까?”
“…….”
생각해 보자.
내가 10명이 들어가는 첫 조였다. 남은 인원은 30명. 3조.
‘그럼 적어도 두 명은 더 LeTi의 캐스팅 콜을 받는다는 소리다.’
만약에 여기 온 VTIC 멤버가 둘 이상이라면?
그럼 나를 포함 총 6명까지 이 캐스팅 콜을 받는다는 게 된다.
여기서 나 말고 한 사람만이라도 더 오케이했다고 치자.
LeTi가 바보도 아니고, 만약에 2명 이상 탈주해서 그 소속사로 간다면 한두 번은 묶어서 활동을 시켜줄 확률이 높았다.
가 그냥 잘 된 것도 아니고, 지금은 거의 신드롬 수준이니까.
‘소속사가 이 유명세를 그냥 버리진 못하지.’
그러니 만약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계속 아이돌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쪽이 오히려 나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일이 년만 활동하고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으니까.
‘이후에는 원래 몸으로 돌아갈 단서를 찾거나… 새로운 진로를 찾아보면 된다.’
활동을 중단하면 금방 잊힐 것이다. 매년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만 수십 팀이다.
나는 계약서 위로 펜을 들어 올렸다.
“…….”
그리고, 얌전히 펜을 내려놓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계속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아…….”
청려가 아쉬운 것처럼 대응해 준다. 무대에서 팬서비스가 좋더니 카메라 앞에서도 인성이 좋군.
“아쉽네요. 박문대 참가자님, 정말 LeTi에서 잘하실 것 같았는데.”
“과찬이십니다.”
나는 깍듯하게 다시 한번 인사했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왜 거절했냐고?
일단……. 혹시라도 나 혼자 오케이한 거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얘네 솔로 활동을 안 시켜주거든.
심지어 VTIC도 유닛 활동만 시켜줬다. 아마 솔로 활동이 그룹 수명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 3년 후 미래에도 LeTi의 신인 남자 아이돌은 데뷔하지 않았었다.
즉, 돌연사 확정이다.
‘절대 안 되지.’
차라리 프로그램을 하차하면 하차했지, LeTi에서 데뷔 기다리는 건 미친 짓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으니, 다른 쪽 이유를 대답해야겠지.
“음……. 투자비용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예?”
“지금까지 제 데뷔를 위해 주식을 매입해 주신 분들이 계시니까, 그 투자만큼은 돌려드리고 싶어서요.”
그렇다.
‘…기왕 아이돌을 한다면, 제대로 해보는 게 낫지.’
에서 데뷔하면 T1 산하 레이블과 5년 계약이었다.
그럼 적어도 ‘박문대’가 데뷔하라고 돈과 시간을 쓴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은 활동하게 될 것이다.
…뭐 내 입장에서도 그렇다. 어차피 다른 꿈이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좀 즐거웠고.
‘의외로 적성에 맞나.’
무대도 재밌었으니까.
“여기서 데뷔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답이겠지.
하필 VTIC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절실함을 어필할 타이밍은 잡지 못했지만, 까이진 않을 것이다.
청려는 내 대답을 경청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화
태블릿에 뜬 성격 유형 문답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을 고르라는 것.
물론, 다 아이돌 특수 상황이다.
피땀 흘리는 연습에 매진하던 중, 당신에게 갑작스럽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공연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뿐입니다. 당신의 선택은?]
일단 노골적으로 끼워 넣은 자기들 콘서트 간접광고는 무시하자.
차 떼고 포 떼면 대충… 데드라인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하던 거 엎어버리고 다시 할 거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안 하지.’
이게 무슨 학교 과제인 줄 아나.
일주일 남았으면 무대 세트부터 의상까지 거의 픽스됐을 텐데, 아이디어 생겼으니 다 갈아엎자고?
‘애초에 엎을 짬이 생기려면 한… 5년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웬만하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내가 절실함을 어필하고 싶어도 그렇지, 이건 열정이 아니라 만용이었다.
나는 최대한 고민하는 척하다가 이 선택지를 골랐다. 그리고 편집할 수 없도록 동시에 카메라를 보고 중얼거렸다.
“저 혼자 하는 거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데…… 무대는 종합 예술이니까, 그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잘 정리해 두고 바로 다음에 써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양념을 쳐놨는데 또 이상한 캐릭터를 잡기는 힘들겠지. 나는 다음 문답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당신은 경미한 타박상만 입었습니다. 곧바로 출발하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
당연히 X발 몸을 정양해야지.
당장 탑승자 중에 중상자가 나왔는데 뭘 믿고 타박상이니 시상식을 가냐.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거 의지와 노오력으로 시상식에 간다는 선택지가 긍정적으로 뜰 것 같다.
‘뭣 같네.’
나는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참으며, 중립 답안을 골랐다.
“직접 가면 더 좋겠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은 즉각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검진을 통해서 몸 상태를 확실히 확인해야 활동에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연설명을 붙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설마 계속 이런 식인가?’
어. 그런 식이 맞았다.
놀랍게도 10가지 문답이 전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그놈의 KPOP 컨셉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제작진만 알 것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나머지 문제를 풀었다.
(은근히 자사 제품을 들먹이는) 광고와 관련된 9번 질문까지 넘기고 나니 드디어 마지막 문제가 떴다.
드디어 끝이군. 얼른 10번 문제를 훑어보았다.
끝없는 노력과 극복을 통해 마침내 마지막 관문 앞에 선 지금. 어마어마한 캐스팅 콜이 당신을 부릅니다. 당신의 선택은?]
“…….”
이걸 여기다 넣어?
이중으로 낚였음을 깨닫는 순간, 태블릿 화면이 바뀌었다.
3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뭔 놈의 카운트다운을 3초만 주냐.’
기겁하는 참가자 리액션을 뽑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숫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생각할 새도 없이 곧장 문구가 떴다.
그 순간, 예고도 없이 정면의 문이 벌컥 열렸다.
“…!”
“안녕하세요?”
문밖에는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잠깐. 정정하겠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낯이 익었다.
왜냐하면… 많이 찍어봤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VTIC의 멤버가 웃는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상상도 못 한 거물의 등장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거 조금만 인사 늦었다가는 인터넷에서 주리가 틀릴 각이다.
“아,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VTIC 멤버가 손을 뻗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거래처 사장이라도 만난 것처럼 두 손 뻗어 악수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무슨 수로 섭외했냐.’
가 아무라 잘 됐어도 그렇지, VTIC 소속사에서 투자지분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출연하게 만들었냐는 말이다.
VTIC이 Tnet에서 독점 리얼리티라도 진행하나. T1 계열사 광고라도 잡았나.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는 SNS에 무슨 캡처본이 돌아다닐지 몰랐다.
나는 VTIC 멤버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착석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상대를 확인했다.
‘리더였던가.’
이름과 인기 척도는 기억나는데 다른 포지션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았다.
일단 저 팀 내에서도 개인 지표가 괜찮았고, 춤을 잘 춰서 직캠 수요가 좋았던 것만 기억났다.
활동명은 청려.
“일단 제 소개부터 드릴게요. VTIC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 중인 청려라고 합니다.”
본명은 따로 있던 것 같은데 당연히 모른다.
어쨌든 본인도 ‘박문대’가 자신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냥 방송 그림상 한번 소개한 거지.
“박문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하고도 뭘 잘 부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적당히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더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어야 했나?’
당황해서 오히려 리액션을 깜박했다.
“방송에서도 그러시던데, 굉장히 침착하시네요.”
“…너무 놀라서 굳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저거 지금 안 믿는다는 뜻이지?
청려는 적당히 분위기 가벼워질 만큼만 웃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제가 박문대 참가자님을 만나러 온 이유는… 저희 VTIC의 소속사인 LeTi로부터의 캐스팅 콜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 발언이 나올 것을 예상은 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제작진 돌았나?’
지금 LeTi 이름값이면 순위가 한 자릿수여도 탈주할 놈이 나올 수 있겠는데?
물론 저기 들어간다고 차기 남자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보장은 없다. 이미 소속사가 보유한 연습생이 한둘도 아닐 것이고.
그러나 워낙 현재 VTIC의 위상이 높아서 20살 전후의 어린애들은 홀라당 넘어가기 딱 좋았다. 심지어 VTIC 멤버 본인이 왔으니까.
‘이미 소속사 있는 놈도 눈 딱 감고 사인할 정도다.’
청려는 계속 준비된 것 같은 대사를 쳤다.
“물론 모든 참가자분께 드리는 제안은 아닙니다. 아까 푸신 문답 기억나시나요?”
“예….”
“9가지 상황 문답에서, 박문대 참가자님이 저희 VTIC 멤버들과 가장 응답 일치율이 높은 참가자세요.”
청려가 작게 손바닥을 쳤다.
“저희 LeTi 소속사의 아티스트들과 비슷한 인재상을 공유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른 방에는 각각 다른 소속사 사람들이 들어가서 캐스팅 콜을 진행 중이라는 뜻이었다.
‘예고편 뽑기 쉽겠는데.’
VTIC까지 나온 걸 봐서는 Tnet하고 친하면서 이름 있는 소속사는 다 긁어모았을 테니, 시청자들은 이런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선 LeTi 소속사를 선택하시면 누릴 수 있는 장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말은 뻔했다. 대충 복지랑 업적이랑 비전을 읊은 것이다.
‘소속사 이미지 챙기기용인가.’
외운 게 신기했다. 리더라 대외용으로 이미 알아둔 거겠지만.
어쨌든 참 감명 깊은 이야기 듣는 것처럼 성의껏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사를 냈다.
청려는 이번에도 적당 선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준비한 듯 유머를 덧붙였다.
“그리고 박문대 참가자님은 이미 아시겠지만, LeTi는 말랑달콤 선배님들의 소속사이기도 합니다. 음… 같이 을 추실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하하……, 네.”
이놈의 팝콘 망령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군.
어쨌든 내가 솔깃했다고 생각한 건지, 청려는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책상 위로 서류와 펜이 올라왔다.
계약서였다. 도장 찍힌 모양새나 양식을 보니 정말 쓰는 것 같다.
‘진짜냐.’
이렇게까지 연출에 진심일 필요가 있나. 나는 떨떠름하게 계약서를 훑었다.
“박문대 참가자님은 VTIC의 소속사, LeTi의 캐스팅 콜에 응답하시겠습니까?”
“…….”
생각해 보자.
내가 10명이 들어가는 첫 조였다. 남은 인원은 30명. 3조.
‘그럼 적어도 두 명은 더 LeTi의 캐스팅 콜을 받는다는 소리다.’
만약에 여기 온 VTIC 멤버가 둘 이상이라면?
그럼 나를 포함 총 6명까지 이 캐스팅 콜을 받는다는 게 된다.
여기서 나 말고 한 사람만이라도 더 오케이했다고 치자.
LeTi가 바보도 아니고, 만약에 2명 이상 탈주해서 그 소속사로 간다면 한두 번은 묶어서 활동을 시켜줄 확률이 높았다.
가 그냥 잘 된 것도 아니고, 지금은 거의 신드롬 수준이니까.
‘소속사가 이 유명세를 그냥 버리진 못하지.’
그러니 만약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계속 아이돌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쪽이 오히려 나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일이 년만 활동하고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으니까.
‘이후에는 원래 몸으로 돌아갈 단서를 찾거나… 새로운 진로를 찾아보면 된다.’
활동을 중단하면 금방 잊힐 것이다. 매년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만 수십 팀이다.
나는 계약서 위로 펜을 들어 올렸다.
“…….”
그리고, 얌전히 펜을 내려놓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계속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아…….”
청려가 아쉬운 것처럼 대응해 준다. 무대에서 팬서비스가 좋더니 카메라 앞에서도 인성이 좋군.
“아쉽네요. 박문대 참가자님, 정말 LeTi에서 잘하실 것 같았는데.”
“과찬이십니다.”
나는 깍듯하게 다시 한번 인사했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왜 거절했냐고?
일단……. 혹시라도 나 혼자 오케이한 거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얘네 솔로 활동을 안 시켜주거든.
심지어 VTIC도 유닛 활동만 시켜줬다. 아마 솔로 활동이 그룹 수명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 3년 후 미래에도 LeTi의 신인 남자 아이돌은 데뷔하지 않았었다.
즉, 돌연사 확정이다.
‘절대 안 되지.’
차라리 프로그램을 하차하면 하차했지, LeTi에서 데뷔 기다리는 건 미친 짓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으니, 다른 쪽 이유를 대답해야겠지.
“음……. 투자비용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예?”
“지금까지 제 데뷔를 위해 주식을 매입해 주신 분들이 계시니까, 그 투자만큼은 돌려드리고 싶어서요.”
그렇다.
‘…기왕 아이돌을 한다면, 제대로 해보는 게 낫지.’
에서 데뷔하면 T1 산하 레이블과 5년 계약이었다.
그럼 적어도 ‘박문대’가 데뷔하라고 돈과 시간을 쓴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은 활동하게 될 것이다.
…뭐 내 입장에서도 그렇다. 어차피 다른 꿈이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좀 즐거웠고.
‘의외로 적성에 맞나.’
무대도 재밌었으니까.
“여기서 데뷔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답이겠지.
하필 VTIC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절실함을 어필할 타이밍은 잡지 못했지만, 까이진 않을 것이다.
청려는 내 대답을 경청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