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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475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5화
일단 우리 사이에선 확실히 정리가 끝났다.
지금의 차유진과는 일을 할 수 없다.
그게 개인 스케줄이든, 짧은 행사든, 간신히 잡아놓은 단체 리얼리티 예능 촬영이든 간에.
“어쩔 수 없지.”
“으음.”
…그런데 내가 딱 한 번 베란다에서 10분간 시도한 걸로 설득이 끝이어도 정말 괜찮냐?
나야 이야기 빨라서 편하다만, 어쨌든 이걸 기준으로 한 달의 스케줄이 책정되었으니 말이다.
“에이, 문대가 안 되면 뭐.”
“그래.”
“…….”
그렇다면야.
“그럼 다음 주 즈음에 건강 문제로 이야기하고 유진이 스케줄을 아예 빼자.”
“네넵. 그리고 리얼리티 편성을 조금 늦추면 나중에 돌아온 유진이만 따로 촬영해서 분량 넣는 걸로….”
“그래. 관련해서 내일 아침에 바로 PD님과 통화부터 할게요.”
회사에 지분이 생기니 우리가 이렇게 세세한 일을 다 처리해도 좀 덜 억울하긴 하군.
어쨌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그 후.
나는 대본을 챙겨 든 배세진에게 잠깐 말을 걸었다.
이건 해둘까 싶어서.
“형.”
“왜, 왜?”
“저희 방 바꿀까요.”
“…뭐?”
“형이 낯선 사람을 불편해하시는 편인 것 같아서요. 요즘 스케줄도 더 많으시니까 방에선 편하게 지내시는 게 낫죠.”
…라는 것도 반은 진실이다만, 사실 스티어 차유진 쪽에서 널 불편해해서 방 꼴이 썩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냉큼 반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배세진은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됐어. 그 정도로 내가 예민한 것도 아니고.”
“…….”
자기 객관화가… 뭐, 됐다.
‘촬영 때문에 워낙 바빠서 거의 잠만 자니까.’
아마 둘 다 입 다문 채로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괜히 여기서 계속 권유했다가 갈등이 생기는 등의 변수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낫다.
‘위장 장애만 안 생긴다면 상관없지.’
“네.”
나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까 방문은 열어두기로 하고.
다만 내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생각보다 배세진이 맏형 노릇에 자신감이 붙었으며, 의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틀 뒤 한밤중에 그 방에서 웬 고함이 들렸을 때.
“…!!”
‘X발.’
“…문대야 방금,”
“예.”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오며 추측했다.
‘확률 터졌네, 망할.’
스티어 차유진이 기어코 못 참고 빡돌거나 잠결에 착각했겠구나!
‘그 자식 뭐 다른 사람인 걸 안다더니 선 지키느니 설마 입으로만 떠든….’
하지만 멤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방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고함은… 배세진이 차유진에게 지르고 있었다.
‘…?’
“무, 무슨 일입니까?”
진짜 뭐냐?
* * *
며칠 전.
‘후.’
배세진은 짧게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방 앞에 섰다.
아까는 박문대에게 자신만만하게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소 떨리긴 했다.
여전히, 가깝지 않은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은 고역이니까.
다른 사람처럼 변한 차유진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것, 맞다.
‘그래도… 나도 성장했어.’
이제 불편하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무작정 피하려 드는 어린애는 아니었다.
자신은 상황에 맞설 수 있었다!
그리고 차유진과 룸메이트를 하는 것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어쨌든 같은 몸이니, 관성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짐작도 한몫했다.
‘…좋아.’
그는 힘차게 방문을 열었다.
쿵.
“…….”
하지만 차유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하다못해 시선도 주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미식 축구공을 던졌다 받고 있을 뿐이었다.
‘윽.’
배세진은 일방적으로 차유진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린 뒤(왜 자신이 굳이 이랬는지 직후 후회했다), 본인의 침대에 누웠다.
‘후…….’
그리고 대본을 펼쳐 들었으나, 싱숭생숭했다.
이 상황에 빈정이 상한 건지 속상한 건지, 아니면 의무감이 드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감정과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약간 궁금하긴 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저 차유진이 경험한, ‘박문대’가 없었던 를 겪은 자신이 말이다.
추측은 가능했다.
저 차유진의 태도가 그렇게 친근하지 않은 걸로 봐선 아마 데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비협조적인 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때의 첫인상으로만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쨌든, 인지도는 생겼을 테니 연기를 하고 있을까….’
하지만 ‘드림K’ 소속사 그대로라면 그다지 괜찮은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 같진 않았다.
“…….”
사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건 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이 겪는 일도 아니고.
‘애초에 그냥 추리일 뿐이잖아….’
그냥 심력만 소모하는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깊게 상념 속으로 파고드는 게 배세진의 특징이기도 했다.
‘…끊자!’
하지만 이젠 도전하는 법도 배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고, 괜한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본을 한 번 완독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초조함을 잘 다스리며 스케줄을 착실히 소화한 후, 다음 날 같은 시간 야밤에야 다시 움직였다.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으니까.
“…먹을래?”
배세진은 침대 머리맡에 둔 상자에서 재생지 봉투 하나를 꺼내 들어, 차유진에게 건넸다.
바로 차유진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배세진의 간식이었다.
수제 사탕!
어머니가 지인분의 수제 사탕 가게에서 때마다 사서 보내주시는데, ‘고향의 맛’이 난다며 어찌나 평소에 탐을….
“오, Nope.”
“…….”
탐을 냈…는데.
-형 이거 많이 사요! 저 좋아요.
-…엄마한테 말씀드려볼게.
-Oh!!
‘…너 브라우니는 먹었잖아!’
배세진은 갑자기 시끄럽고 말 많던 그의 룸메이트가 한없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울컥할 뻔한 심정을 참으며, 꿋꿋이 다음 말을 이었다.
“큼, 그래. 그, 음, 그리고 네 침대 밑에 원래 네가 보관하던 간식이랑 취미로 하는 것들 있거든. 심심하면… 찾아서 써.”
“알았어요.”
말은 긍정했다.
그러나 침대 위, 지금의 차유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찾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완곡한 무시다.
“…….”
지금까지는, 사실 워낙 정신없이 단체로 상호작용하느라 배세진도 확신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게 되자, 섬세한 배세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얘 뭐야?’
경멸.
적개심, 깔보는 것 같은 태도.
그런 것에 익숙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던 배세진은 단번에 스티어 차유진의 아주 미묘한 비언어적인 표현을 알아차렸다.
본인이 굳이 티 내려고 하지 않아도 예민한 그는 읽을 수 있던 것이다.
“…….”
배세진은 화내지 않았다.
대신 대본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뭐지?’
왜 나한테… 저런 태도지? 혹시, 예전에는 내가 에서 데뷔를 못 해서… 터무니없이 한심한 사람이 됐었나?
그러고 보면 나한테만 유독….
‘그, 그만하자.’
이건 피해의식 같았다. 그리고 겨우 누구 하나의 태도에 휘둘리는 사람은 더 이상 되고 싶지도 않았고!
배세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였다.
“여기의 나랑 친해요?”
“…!”
차유진이… 말을 걸었다.
물론 그다지 친근한 투는 아니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무심코 한 말. 심지어 어이없다는 투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배세진은 성실히 대답했다.
“같은 그룹이니까… 크흠, 그리고, 같이 방을 쓰기도 하니까.”
“Umm, 여기 새 숙소 아니에요?”
새로운 곳에서 룸메이트가 된 것일 테니, 기껏해야 며칠 밖에 같이 안 쓰지 않았냐는 말이다.
그러나 배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사는 막 했지만, 전에도 똑같이 1년이 넘게 룸메이트였어. 일단 이전 숙소랑 똑같이 룸메이트 쓰는 중이니까.”
“…….”
차유진은 입을 다물었지만, 배세진의 머릿속에서는 순간 무언가가 번뜩였다.
‘어?’
바로 다음 대화 내용이었다. 마치 대본처럼 착착 짜 맞춰지듯 머릿속에 타자로 정리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잠깐, 혹시 이건 기회인가?
“저, 그런데 곧 바뀔 예정이거든.”
배세진은 침을 삼킨 뒤, 적극적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아마 리얼리티 촬영 들어가면서 룸메이트도 바꾸게 될 것 같아.”
‘그래서?’라고 묻는 듯한 짧은 시선이 왔다.
배세진은 최대한 부드럽게, 류청우의 말솜씨를 연기하듯 따라 하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쓰고 싶은 방 있으면 그 촬영은 한번 참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
“최대한 네가 원하는 방 쓸 수 있게 촬영할 때….”
“저 상관없어요. 어느 방이든, 누구랑 쓰든.”
이 자식 왜 이렇게 한국말 잘해…!
배세진은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으나, 어차피 하고 싶던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있긴 했다.
“…그래. 그런데! 불편하기도 하잖아. 그럼 넌 촬영하는 동안 숙소 아닌 곳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 밖에도 잘 못 나갈 거고.”
차유진을 대외적으로는 아프다고 할 테니까, 병원이나 호텔에서 계속 지내야 할 것이다.
‘굉장히 답답할 텐데, 그럴 바에야 다리 부상 정도로 말하면서 무대는 빠지더라도 단체 리얼리티 하나 정도는 나오는 편이….’
이 차유진에게도 낫지 않을까, 배세진이 최대한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해서 설명해 보려던 참이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실소였다.
“왜 내가 그래요?”
…뭐?
“숙소 나가는 건 괜찮아요.”
차유진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별 표정 없이 배세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어디서 사는 지는 내 마음이에요. 내 몸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요. OK?”
“…….”
배세진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건….’
지금까지, 배세진은 최대한 이 차유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갑자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낯선 환경에 떨어진 입장에서, 같은 처지인 사람도 없이 지내는 게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겠는가?
때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차유진은 양반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저 몸을 쓰던 ‘테스타 차유진’에게 엄청난 폐가 될지도 모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그거야말로 폭력이잖아.’
내가 춥다고 남의 옷을 뺏어 입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저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니.”
배세진은 정색했다.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 *
새벽.
배세진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나는, 네가 혼란스럽고 힘들다는 건 이해하겠어. 그런데… 그렇다고 네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잖아.”
“…….”
“나도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표출했다가 사과해 봐서 하는 소리야.”
“저, 형님.”
큰세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여기 유진이가 무슨 말 했어요? 음….”
“…리얼리티 촬영할 때, 자기는 빠지겠다고. 그럼 숙소에서 잠깐 나가야 하는데….”
배세진은 주먹을 쥐었다.
“그때 자기 마음대로, 알아서 돌아다니겠다고.”
“…!”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에도 뭐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하잖아!”
아, 젠장.
나는 스티어 차유진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배세진을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도 몇 번 말싸움이 오가긴 한 것 같은 느낌인데.
일단 확인…. 아니, 시시비비 가리려고 드는 것 같아서 도리어 일 키우겠군.
무난한 봉합부터 시도한다.
나는 일부러 배세진의 분노에 동조하지 않고 담담하게 차유진에게 말했다.
“우리가 차유진 활동 불참 변명으로 ‘건강 사유’를 댔거든. 그게 사유로 제일 괜찮잖아.”
“…….”
그건 아이돌 활동해 본 이 차유진도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면, 그 사유에 어느 정도는 맞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뭐든지 당신 원하는 대로 말해요.]
차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그럴 테니까.]
X발.
이 새끼도 빡치긴 했네.
‘선 넘었다 이거냐.’
나는 해결은 확실하지만 극단적인 대책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우리가 널… 이런 상황에 끌어들인 게 아니야. 우리도 너처럼 이 상황에 휘말린 몇몇일 뿐인걸.]
차분한 영어가 들렸다.
선아현이다.
녀석은 상당히 정중하게 어휘를 골랐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배려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소통을 통해 보충할 의사는 없니?]
“…….”
차유진은 침묵했다.
그러더니,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들의 배려엔 목적이 있어요. 그건 배려가 아니라 통제예요. Control.”
뭐?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차유진이 돌아왔을 때 그의 커리어에 지장이 갈 활동은 하지 말아 달라.’]
“…!”
[모든 신경이 거기 쏠려 있죠. 당신들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들도 날 탓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스티어 차유진은 목을 움직였다.
[테스타? 유감이지만 내 알 바 아니에요.]
그리고 다음 순간.
“…!!”
녀석은 방을 지나 현관으로 가기 시작했다.
“잠깐,”
“쟤 뭐 하는 거야?”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반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하필이면 류청우가 제일 외곽에 서 있었던 것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저놈이 낯설어서 퍼뜩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젠장.’
나는 즉시 패드로 현관을 강제 잠금하려 했으나, 녀석이 먼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닫힘 버튼을 누르기까지.
“야!”
그렇다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미리 불러놨다.’
이 새끼… 설마 진작 나가려고 계획했던 건가?
내가 현관을 돌아보며 이를 악물 때였다.
“차유진!”
“…….”
닫힌 엘리베이터는 열리지 않았으나, 김래빈은 물었다.
“너 어디가?”
입 모양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몰라.’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스티어 차유진은, 그렇게 숙소에서 나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5화

일단 우리 사이에선 확실히 정리가 끝났다.

지금의 차유진과는 일을 할 수 없다.

그게 개인 스케줄이든, 짧은 행사든, 간신히 잡아놓은 단체 리얼리티 예능 촬영이든 간에.

“어쩔 수 없지.”

“으음.”

…그런데 내가 딱 한 번 베란다에서 10분간 시도한 걸로 설득이 끝이어도 정말 괜찮냐?

나야 이야기 빨라서 편하다만, 어쨌든 이걸 기준으로 한 달의 스케줄이 책정되었으니 말이다.

“에이, 문대가 안 되면 뭐.”

“그래.”

“…….”

그렇다면야.

“그럼 다음 주 즈음에 건강 문제로 이야기하고 유진이 스케줄을 아예 빼자.”

“네넵. 그리고 리얼리티 편성을 조금 늦추면 나중에 돌아온 유진이만 따로 촬영해서 분량 넣는 걸로….”

“그래. 관련해서 내일 아침에 바로 PD님과 통화부터 할게요.”

회사에 지분이 생기니 우리가 이렇게 세세한 일을 다 처리해도 좀 덜 억울하긴 하군.

어쨌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그 후.

나는 대본을 챙겨 든 배세진에게 잠깐 말을 걸었다.

이건 해둘까 싶어서.

“형.”

“왜, 왜?”

“저희 방 바꿀까요.”

“…뭐?”

“형이 낯선 사람을 불편해하시는 편인 것 같아서요. 요즘 스케줄도 더 많으시니까 방에선 편하게 지내시는 게 낫죠.”

…라는 것도 반은 진실이다만, 사실 스티어 차유진 쪽에서 널 불편해해서 방 꼴이 썩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냉큼 반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배세진은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됐어. 그 정도로 내가 예민한 것도 아니고.”

“…….”

자기 객관화가… 뭐, 됐다.

‘촬영 때문에 워낙 바빠서 거의 잠만 자니까.’

아마 둘 다 입 다문 채로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괜히 여기서 계속 권유했다가 갈등이 생기는 등의 변수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낫다.

‘위장 장애만 안 생긴다면 상관없지.’

“네.”

나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까 방문은 열어두기로 하고.

다만 내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생각보다 배세진이 맏형 노릇에 자신감이 붙었으며, 의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틀 뒤 한밤중에 그 방에서 웬 고함이 들렸을 때.

“…!!”

‘X발.’

“…문대야 방금,”

“예.”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오며 추측했다.

‘확률 터졌네, 망할.’

스티어 차유진이 기어코 못 참고 빡돌거나 잠결에 착각했겠구나!

‘그 자식 뭐 다른 사람인 걸 안다더니 선 지키느니 설마 입으로만 떠든….’

하지만 멤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방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고함은… 배세진이 차유진에게 지르고 있었다.

‘…?’

“무, 무슨 일입니까?”

진짜 뭐냐?

* * *

며칠 전.

‘후.’

배세진은 짧게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방 앞에 섰다.

아까는 박문대에게 자신만만하게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소 떨리긴 했다.

여전히, 가깝지 않은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은 고역이니까.

다른 사람처럼 변한 차유진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것, 맞다.

‘그래도… 나도 성장했어.’

이제 불편하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무작정 피하려 드는 어린애는 아니었다.

자신은 상황에 맞설 수 있었다!

그리고 차유진과 룸메이트를 하는 것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어쨌든 같은 몸이니, 관성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짐작도 한몫했다.

‘…좋아.’

그는 힘차게 방문을 열었다.

쿵.

“…….”

하지만 차유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하다못해 시선도 주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미식 축구공을 던졌다 받고 있을 뿐이었다.

‘윽.’

배세진은 일방적으로 차유진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린 뒤(왜 자신이 굳이 이랬는지 직후 후회했다), 본인의 침대에 누웠다.

‘후…….’

그리고 대본을 펼쳐 들었으나, 싱숭생숭했다.

이 상황에 빈정이 상한 건지 속상한 건지, 아니면 의무감이 드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감정과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약간 궁금하긴 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저 차유진이 경험한, ‘박문대’가 없었던 를 겪은 자신이 말이다.

추측은 가능했다.

저 차유진의 태도가 그렇게 친근하지 않은 걸로 봐선 아마 데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비협조적인 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때의 첫인상으로만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쨌든, 인지도는 생겼을 테니 연기를 하고 있을까….’

하지만 ‘드림K’ 소속사 그대로라면 그다지 괜찮은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 같진 않았다.

“…….”

사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건 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이 겪는 일도 아니고.

‘애초에 그냥 추리일 뿐이잖아….’

그냥 심력만 소모하는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깊게 상념 속으로 파고드는 게 배세진의 특징이기도 했다.

‘…끊자!’

하지만 이젠 도전하는 법도 배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고, 괜한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본을 한 번 완독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초조함을 잘 다스리며 스케줄을 착실히 소화한 후, 다음 날 같은 시간 야밤에야 다시 움직였다.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으니까.

“…먹을래?”

배세진은 침대 머리맡에 둔 상자에서 재생지 봉투 하나를 꺼내 들어, 차유진에게 건넸다.

바로 차유진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배세진의 간식이었다.

수제 사탕!

어머니가 지인분의 수제 사탕 가게에서 때마다 사서 보내주시는데, ‘고향의 맛’이 난다며 어찌나 평소에 탐을….

“오, Nope.”

“…….”

탐을 냈…는데.

-형 이거 많이 사요! 저 좋아요.

-…엄마한테 말씀드려볼게.

-Oh!!

‘…너 브라우니는 먹었잖아!’

배세진은 갑자기 시끄럽고 말 많던 그의 룸메이트가 한없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울컥할 뻔한 심정을 참으며, 꿋꿋이 다음 말을 이었다.

“큼, 그래. 그, 음, 그리고 네 침대 밑에 원래 네가 보관하던 간식이랑 취미로 하는 것들 있거든. 심심하면… 찾아서 써.”

“알았어요.”

말은 긍정했다.

그러나 침대 위, 지금의 차유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찾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완곡한 무시다.

“…….”

지금까지는, 사실 워낙 정신없이 단체로 상호작용하느라 배세진도 확신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게 되자, 섬세한 배세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얘 뭐야?’

경멸.

적개심, 깔보는 것 같은 태도.

그런 것에 익숙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던 배세진은 단번에 스티어 차유진의 아주 미묘한 비언어적인 표현을 알아차렸다.

본인이 굳이 티 내려고 하지 않아도 예민한 그는 읽을 수 있던 것이다.

“…….”

배세진은 화내지 않았다.

대신 대본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뭐지?’

왜 나한테… 저런 태도지? 혹시, 예전에는 내가 에서 데뷔를 못 해서… 터무니없이 한심한 사람이 됐었나?

그러고 보면 나한테만 유독….

‘그, 그만하자.’

이건 피해의식 같았다. 그리고 겨우 누구 하나의 태도에 휘둘리는 사람은 더 이상 되고 싶지도 않았고!

배세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였다.

“여기의 나랑 친해요?”

“…!”

차유진이… 말을 걸었다.

물론 그다지 친근한 투는 아니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무심코 한 말. 심지어 어이없다는 투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배세진은 성실히 대답했다.

“같은 그룹이니까… 크흠, 그리고, 같이 방을 쓰기도 하니까.”

“Umm, 여기 새 숙소 아니에요?”

새로운 곳에서 룸메이트가 된 것일 테니, 기껏해야 며칠 밖에 같이 안 쓰지 않았냐는 말이다.

그러나 배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사는 막 했지만, 전에도 똑같이 1년이 넘게 룸메이트였어. 일단 이전 숙소랑 똑같이 룸메이트 쓰는 중이니까.”

“…….”

차유진은 입을 다물었지만, 배세진의 머릿속에서는 순간 무언가가 번뜩였다.

‘어?’

바로 다음 대화 내용이었다. 마치 대본처럼 착착 짜 맞춰지듯 머릿속에 타자로 정리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잠깐, 혹시 이건 기회인가?

“저, 그런데 곧 바뀔 예정이거든.”

배세진은 침을 삼킨 뒤, 적극적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아마 리얼리티 촬영 들어가면서 룸메이트도 바꾸게 될 것 같아.”

‘그래서?’라고 묻는 듯한 짧은 시선이 왔다.

배세진은 최대한 부드럽게, 류청우의 말솜씨를 연기하듯 따라 하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쓰고 싶은 방 있으면 그 촬영은 한번 참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

“최대한 네가 원하는 방 쓸 수 있게 촬영할 때….”

“저 상관없어요. 어느 방이든, 누구랑 쓰든.”

이 자식 왜 이렇게 한국말 잘해…!

배세진은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으나, 어차피 하고 싶던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있긴 했다.

“…그래. 그런데! 불편하기도 하잖아. 그럼 넌 촬영하는 동안 숙소 아닌 곳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 밖에도 잘 못 나갈 거고.”

차유진을 대외적으로는 아프다고 할 테니까, 병원이나 호텔에서 계속 지내야 할 것이다.

‘굉장히 답답할 텐데, 그럴 바에야 다리 부상 정도로 말하면서 무대는 빠지더라도 단체 리얼리티 하나 정도는 나오는 편이….’

이 차유진에게도 낫지 않을까, 배세진이 최대한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해서 설명해 보려던 참이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실소였다.

“왜 내가 그래요?”

…뭐?

“숙소 나가는 건 괜찮아요.”

차유진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별 표정 없이 배세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어디서 사는 지는 내 마음이에요. 내 몸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요. OK?”

“…….”

배세진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건….’

지금까지, 배세진은 최대한 이 차유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갑자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낯선 환경에 떨어진 입장에서, 같은 처지인 사람도 없이 지내는 게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겠는가?

때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차유진은 양반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저 몸을 쓰던 ‘테스타 차유진’에게 엄청난 폐가 될지도 모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그거야말로 폭력이잖아.’

내가 춥다고 남의 옷을 뺏어 입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저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니.”

배세진은 정색했다.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 *

새벽.

배세진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나는, 네가 혼란스럽고 힘들다는 건 이해하겠어. 그런데… 그렇다고 네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잖아.”

“…….”

“나도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표출했다가 사과해 봐서 하는 소리야.”

“저, 형님.”

큰세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여기 유진이가 무슨 말 했어요? 음….”

“…리얼리티 촬영할 때, 자기는 빠지겠다고. 그럼 숙소에서 잠깐 나가야 하는데….”

배세진은 주먹을 쥐었다.

“그때 자기 마음대로, 알아서 돌아다니겠다고.”

“…!”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에도 뭐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하잖아!”

아, 젠장.

나는 스티어 차유진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배세진을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도 몇 번 말싸움이 오가긴 한 것 같은 느낌인데.

일단 확인…. 아니, 시시비비 가리려고 드는 것 같아서 도리어 일 키우겠군.

무난한 봉합부터 시도한다.

나는 일부러 배세진의 분노에 동조하지 않고 담담하게 차유진에게 말했다.

“우리가 차유진 활동 불참 변명으로 ‘건강 사유’를 댔거든. 그게 사유로 제일 괜찮잖아.”

“…….”

그건 아이돌 활동해 본 이 차유진도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면, 그 사유에 어느 정도는 맞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차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X발.

이 새끼도 빡치긴 했네.

‘선 넘었다 이거냐.’

나는 해결은 확실하지만 극단적인 대책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차분한 영어가 들렸다.

선아현이다.

녀석은 상당히 정중하게 어휘를 골랐다.

“…….”

차유진은 침묵했다.

그러더니,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들의 배려엔 목적이 있어요. 그건 배려가 아니라 통제예요. Control.”

뭐?

“…!”

스티어 차유진은 목을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녀석은 방을 지나 현관으로 가기 시작했다.

“잠깐,”

“쟤 뭐 하는 거야?”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반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하필이면 류청우가 제일 외곽에 서 있었던 것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저놈이 낯설어서 퍼뜩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젠장.’

나는 즉시 패드로 현관을 강제 잠금하려 했으나, 녀석이 먼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닫힘 버튼을 누르기까지.

“야!”

그렇다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미리 불러놨다.’

이 새끼… 설마 진작 나가려고 계획했던 건가?

내가 현관을 돌아보며 이를 악물 때였다.

“차유진!”

“…….”

닫힌 엘리베이터는 열리지 않았으나, 김래빈은 물었다.

“너 어디가?”

입 모양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몰라.’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스티어 차유진은, 그렇게 숙소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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