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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471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1화
스페이서와의 만남은 바로 다음 날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정확히는 스페이서 대표로 나온 권희승과 회의실에서 만난 것이지만 말이다.
“오오 희승 씨~ 이게 얼마 만이야!”
“아이고 형님!”
나는 오두방정을 떠는 큰세진과 권희승을 대충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따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옆자리 의자를 밀고 한 녀석이 쓱 자리에 앉았다.
바로 차유진이다.
녀석이 팔짱을 끼며 숙덕거렸다.
“끝나고 점심 먹어요?”
아니, 넌 왜 따라왔냐.
“배고프면 그냥 숙소에 있지 그랬냐.”
“심심해요. 저 스케줄 없어요.”
“음.”
그렇긴 하겠군.
차유진은 개인 스케줄이 유달리 빨리 끝났기 때문이다.
그냥… 3박 4일 동안 몰아서 찍고 왔거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하면, 녀석이 선택한 것이 무려….
[캠핑 일기 : 우리의 이야기는 성장한다.]
……이것이기 때문이다.
사연 있는 문제아들을 모아 캠핑을 하며, 연예인이 캠프 지도사로 출연해 그들의 사정을 듣고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공중파 예능이다.
대충 짐작했겠지만, 처음 런칭할 때 반응이 이랬던 프로그램이다.
-느그들 사정 안 궁금함
-그럴 시간에 학폭 피해자한테나 기회 더 줘라 ㅂㅅ들아 가해자 감정이입 실화야?
-연예인이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힐링 지도사 이지랄ㅋㅋㅋㅋㅋ 그냥… 할 말이 없네
-또 억즙 짜내겠네 벌써 역하다
-사고 친 연예인도 지도사로 같이 나와서 사연 팔고 세탁하면 되겠는데? 캬 이중 세탁ㅋㅋ
누가 기획했냐 나와
과연 공중파다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신나게 까였지.
물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미적지근한 일반 예능이라 시들시들해지며 정착했지만 말이다.
-문제아라고 하는데 그렇게 심하진 않은 듯? 일진 이런 것보다 그냥 상담 필요한 애들임
-까보면 그 사정도 반은 주작일걸 벌써 쇼핑몰 운영자랑 배우 지망생 밝혀짐ㅋㅋ
└에휴
홍보용으로 만든 과장된 사연을 말하는, 겉만 일반인인 참가자들도 함께하는 그거 말이다.
근데 이런 프로그램에 차유진이 출연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려고?
-걍 워터밤이나 나와다오
-차고영 착하긴 한데 캘리놈이라 긍정충이잖아 가서 눈새로 욕만 처먹는 거 아니냐
팬이고 대중이고 할 것 없이 대체 저놈이 무슨 말을 할까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방송 당일.
-참가자 : 헐 차유진!
-참가자 : 테스타 차유진이야? 맞아요? 헐, 여기 보여요? 차유진!
-차유진 : …….
-차유진 : 본 지도사를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
군대 말투를 쓰는 차유진이 등장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어설프게 저런 말투 써 봤자 어색해서 더 얕보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참가자 : 저기요, 저희가 암벽등반 같은 걸 꼭 해야 하는….
-차유진 : 끝날 때까지 질문하지 않습니다.
-참가자 : (흡)
이미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 군대 예능 경험자인 놈은 관용구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
-이이게 대체 뭐임
그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와 참가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서 차유진은 귀신같이 10대 후반 틴에이저들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첫 임팩트 이후로는 살살 풀어줘야 하는 타이밍에 귀신같이 말을 경청하고 챙겨주며 정을 붙이게 해줬던 것이다.
-왜 말투는 교관인데 태도는 아메리칸 캠프 지도사인 거죠
-차유진 개웃기고 개훈훈하네…
-이게 아메리카 캠프 유경험자의 맛이냐
어쨌든, 그 독특한 말투로 한번 판을 잡은 차유진은 엄격함과 다정함, 개그와 진지함을 오가며 혹시 모를 이미지 논란까지 다 처리했다.
그리고 ‘다나까 지도사’라는 올드한 공중파 스타일 자막으로 밈까지 만들며 어마어마한 가성비를 챙긴 것이다….
‘설마 계산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게 더 대단한 놈이었다. 나는 이걸 고를 때 저놈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저 이제 경험 있어요.
“…….”
그리고 지금 그놈은 내 옆에서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저는 이 대화 직접 들을 권리 가졌어요. 저 팀 멤버예요.”
오냐.
감이 좋은 놈이니 순간 판단력으로 좋은 의견을 낼지도 몰랐다. 나는 차유진의 발언을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때야 그새 인사를 마친 큰세진과 권희승은 희희낙락하며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권희승이 눈을 빛냈다.
“와, 그러면 문대 형이 우리 스페이서 프로듀싱을 해주시는 겁니까? 이야!”
그래. 그 이야기로 부르긴 했지.
“그 전에 확인은 하고.”
“…넵?”
나는 깍지를 꼈다.
“믿을 수 있겠냐.”
“…!”
“우리가 같은 소속사라고는 해도 결국 경쟁자라는 건 너도 알 거야. 그런데 내가 과연 스페이서한테 무조건 승승장구하고 좋기만 할 기획을 내놓을지 의심되지 않냐는 거지.”
“…….”
골드 2, 권희승은 입을 다물었다.
‘역시.’
바보가 아닌 이상 의심은 해봤을 것이다.
테스타 셋은 아무 재촉도 하지 않고 천천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
녀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어, 아뇨?”
“…!”
“근데 뭐 안 그러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형님?”
권희승이 허허 웃었다.
좀… 해탈한 것 같았다.
“저희 티원에 있을 때도 뭐… 회사한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직원분들이 다 계획 짰을 거 아녜요. 그러니까 애초에 저희한테 좋기만 한 플랜을 받은 적도 없고….”
녀석은 중얼거리더니 이내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회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서로 상호 이득을 바라면서 하는 거죠!”
“……그러냐.”
“그렇죠!”
과연.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주식으로 돈 번 놈다운 현실 인식이다.
“그리고 형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전 오히려 좋은데요? 이 계획 뭐가 우리한테 위험하고 형한테는 좋고 이런 거 다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래야지.”
입 닫고 있다가 변수 생기느니, 고지하고 나서도 직접 본인이 오케이하도록 만드는 게 깔끔하다.
난 다 말해줬는데 자기가 선택했다? 이건 나중에 다른 소리 못 하지 않는가.
‘보험약관 같긴 하지만.’
약간 씁쓸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와.”
“…?”
넌 왜 감탄하면서 한숨까지 쉬냐.
“후… 형, 그게 바로 세상 상위 1% 양심인데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
“와, 형 무슨… 진짜 아닌 척하면서 사실 성인군자 아니세요?”
“맞아 문대가 좀 그렇지?”
아니다.
“그러니까요. 형한테 사실 이득도 없는데 우리 그룹 도와주시면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시고….”
그러니까 이 회사가 내 시스템… 아니, 그만하자.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럼 이야기 시작한다.”
“크으, 넵!”
권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전략이 나올 것인지 기대와 긴장이 표정에 드러난 채로.
큰세진이 사람 좋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희승~ 이번에 데뷔한 원더홀 신인 그룹 알지? 이테르!”
“네넵.”
관련된 논란을 아는지 권희승의 얼굴에 짧게 여러 예상이 지나가는 것 같았으나….
다음 말에 표백되었다.
“그 친구들이 우리 스페이서 프로모션에 큰 도움을 줄 거야!”
“…?!”
정확히는, 주도록 만들겠단 뜻이다.
* * *
그리고 몇십 분 후.
“…….”
폭풍을 맨몸으로 맞은 듯, 멍하니 회의실에 앉아 있던 권희승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아무래도 충격이 심한 모양이다.
“생각 충분히 해보고 대답해 줘도 괜찮아.”
“아니… 그,”
권희승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될까요?!”
“되니까 이야기했지.”
“그, 그렇죠……. 형이 말하면 되죠.”
그렇게까지?
권희승은 이번엔 진지한 얼굴로 회의실 탁자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이놈이 거의 무늬를 세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드르르륵.
“앗, 저 잠깐 통화 좀.”
“그래.”
권희승의 스마트폰이 울렸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닫고 회의실을 나갔다.
툭.
“…….”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전화 본인이 건 거지?”
“아니. 진짜 온 건 맞는 것 같아.”
“음.”
바로 멤버들과 상의해 보려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 이 자리에 스페이서 멤버를 몇 명 더 부르려고 했는데, 권희승 본인이 일단 혼자만 나오겠다고 해서 의외였다.
“저 사람 리더예요?”
“스페이서? 거기는 리더 제도가 없긴 한데, 희승이가 1등이고 센터라 역할이 크긴 해.”
“오우.”
왜 날 보냐. 센터는 너잖아.
어쨌든, 나는 잠시 회의실에서 탁자를 두드리다가 시간을 맞춰 일어났다.
이쯤 됐으면 그 녀석도 슬슬 통화는 끝낼 때가 됐겠지.
“나도 잠깐 화장실 좀.”
“오케이.”
나는 권희승과 둘만 할 이야기를 위해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툭.
하지만, 문을 닫는 순간 통로에서 권희승의 목소리가 작게 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녀석은 아직도 통화 중이던 것이다.
“어어, 에이! 아, 우리 이번 곡 진짜 좋다니까. 진짜 믿어! 형 진짜 작곡에 재능 있는데 왜 걱정해!”
“…….”
“프로모션만 잘 받으면 차트 들걸? 이제 회사도 좋으니까 우리 더 잘 될 거야. ……어어. 작업 화이팅하고.”
녀석은 타이르듯이 그렇게 말하더니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음. 형님,”
당황한 모양이었다.
‘…후.’
“미안하다. 들으려던 건 아니야.”
“그러실 것 같았어요…. 흠흠.”
권희승은 좀 민망했는지 답지 않게 말을 끌었다.
‘젠장.’
나는 한숨을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팀 분위기 좋은 것 같던데.”
“그렇긴 해요.”
권희승이 벽에 기대서 한숨을 쉬었다.
“근데 솔직히 막… 형들처럼 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 저희 시즌이 진짜 특이한 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
녀석은 약간 쪽팔린 대화를 들킨 김에 아예 확 말하기로 결심이라도 한 건지, 무심코인지 다음 말까지 했다.
“음, 그래서 저도 그때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 적도 있긴 한데…. 어쨌든 최종까지는 갔었잖아요, 저도.”
아.
나는 이놈이 순간 뭘 떠올리면서 이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그냥 최종화 전체가 아니다.
‘마지막 멤버 호명.’
내 1위 특전.
-박문대 참가자는 1등의 권한으로, 마지막 순위발표식까지 함께 올라온 14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을 함께 데뷔할 팀원으로 지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을 시청자에게 넘겼었다.
최대한 후폭풍을 없애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참가자는… 주주님들께서 선택하신 7위 참가자입니다.
하지만 사실 거기, 테스타 멤버로 불리지 못하고 남아 있던 참가자 중에 가장 나와 팀원으로서 친분이 깊은 건 이놈이긴 했다.
골드 2. 권희승.
그 자리에서 저놈이 기대를 안 했었을 리가 없다.
벌써 5년도 더 지난 지금도 떠오를 정도면.
‘게다가 테스타가 보통 잘 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녀석의 대화는 한탄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근데 상상할수록 깨닫더라고요. 전 그래도 지금 제 팀이 좋은 것 같아요. 에휴… 정이 너무 들어가지고.”
“…….”
“아까 저 통화한 형도 자신감이 되게 없긴 한데 되게 재밌는 사람이거든요? 곡도 잘 만들고… 근데 요즘 저희 음원 성적이 그렇게 막 좋지는 않아서.”
스페이서는 객관적으로 괜찮게 정착한 그룹이다.
대중성은 서바이벌 직후부터 자연스럽게 점점 떨어지며 음원 성적도 하락했다. 하지만 음반 판매량은 차근히 늘어났고, 해외 인기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사람은 뭐든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법이고, 스페이서가 가장 가장 비교하기 편한 상대가 누구겠는가.
‘테스타지.’
저놈들이 썩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 회사로부터 그렇게 비교하는 말을 한두 번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다른 멤버들 의견을 들어보고 다시 말씀드려야겠지만… 일단 저는 무조건 도전해 보고 싶다로 결론 내렸거든요!”
“…….”
“저희 스페이서 앞날이 아직 짱짱한 그룹인 걸 한번 증명해 봐야죠!”
“…그래.”
“한번 사는 인생! 아니, 우리는 그… 흠흠, 기회가 한 번 더, 아무튼 그렇지만.”
“…….”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눈을 찡긋거리는 권희승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만난 순간부터 떠 있던 팝업이 여전히 보였다.
[‘■■■의 파편’ 보유자 재확인]
‘■■■ 파편 (1 / 4)’을 ‘회사용 ’으로 흡수하시겠습니까?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
뭐, 어차피 그 신인 그룹 치우는 데에 저놈을 이용해 먹는 판이다.
회사 시스템 기능도 업그레이드할 겸 안 그래도 뽑아내려고 했는데, 저놈에게 직접 미션 실패니 뭐니 다 말해서 빚을 지울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도 나쁠 건 없지.
나는 말 없이, 조용히 상태창에게 응답했다.
‘그래.’
그러자, 팝업이 빛나기 시작했다.
“……!”
“그럼 저희 슬슬 회의실 들어갈까요?”
권희승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녀석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팝업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는 권희승을 한 바퀴 휘감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다시 팝업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 파편 (1 / 4)’ 회수 완료!]
팝업의 내용이 그렇게 바뀌는 것 같더니, 곧 모든 팝업이 사라지며 매우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새 팝업 하나가 떴다.
[‘회사용 ’ 업데이트 중]
‘끝인가?’
몸에 무슨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신 그 팝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던 순간이었다.
쾅!
“…!!”
“뭐, 뭐야?”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것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큰세진이었다.
녀석이 외쳤다.
“사람 불러!”
뭐?
“유진이 쓰러졌어. 사람 불러!”
“…!!”
당장 회의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의자 아래로 쓰러진 차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
왜?
“박문대!”
“어.”
나는 당장 발을 움직였다. 회사 사람을 불러서 응급실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뛰어가면서도 생각했다.
이게 X발 무슨 일이지?
그 옆으로 시스템창이 사라지지도 않고 계속 따라왔다.
[‘회사용 ’ 업데이트 중]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1화

스페이서와의 만남은 바로 다음 날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정확히는 스페이서 대표로 나온 권희승과 회의실에서 만난 것이지만 말이다.

“오오 희승 씨~ 이게 얼마 만이야!”

“아이고 형님!”

나는 오두방정을 떠는 큰세진과 권희승을 대충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따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옆자리 의자를 밀고 한 녀석이 쓱 자리에 앉았다.

바로 차유진이다.

녀석이 팔짱을 끼며 숙덕거렸다.

“끝나고 점심 먹어요?”

아니, 넌 왜 따라왔냐.

“배고프면 그냥 숙소에 있지 그랬냐.”

“심심해요. 저 스케줄 없어요.”

“음.”

그렇긴 하겠군.

차유진은 개인 스케줄이 유달리 빨리 끝났기 때문이다.

그냥… 3박 4일 동안 몰아서 찍고 왔거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하면, 녀석이 선택한 것이 무려….

……이것이기 때문이다.

사연 있는 문제아들을 모아 캠핑을 하며, 연예인이 캠프 지도사로 출연해 그들의 사정을 듣고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공중파 예능이다.

대충 짐작했겠지만, 처음 런칭할 때 반응이 이랬던 프로그램이다.

-느그들 사정 안 궁금함

-그럴 시간에 학폭 피해자한테나 기회 더 줘라 ㅂㅅ들아 가해자 감정이입 실화야?

-연예인이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힐링 지도사 이지랄ㅋㅋㅋㅋㅋ 그냥… 할 말이 없네

-또 억즙 짜내겠네 벌써 역하다

-사고 친 연예인도 지도사로 같이 나와서 사연 팔고 세탁하면 되겠는데? 캬 이중 세탁ㅋㅋ

누가 기획했냐 나와

과연 공중파다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신나게 까였지.

물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미적지근한 일반 예능이라 시들시들해지며 정착했지만 말이다.

-문제아라고 하는데 그렇게 심하진 않은 듯? 일진 이런 것보다 그냥 상담 필요한 애들임

-까보면 그 사정도 반은 주작일걸 벌써 쇼핑몰 운영자랑 배우 지망생 밝혀짐ㅋㅋ

└에휴

홍보용으로 만든 과장된 사연을 말하는, 겉만 일반인인 참가자들도 함께하는 그거 말이다.

근데 이런 프로그램에 차유진이 출연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려고?

-걍 워터밤이나 나와다오

-차고영 착하긴 한데 캘리놈이라 긍정충이잖아 가서 눈새로 욕만 처먹는 거 아니냐

팬이고 대중이고 할 것 없이 대체 저놈이 무슨 말을 할까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방송 당일.

-참가자 : 헐 차유진!

-참가자 : 테스타 차유진이야? 맞아요? 헐, 여기 보여요? 차유진!

-차유진 : …….

-차유진 : 본 지도사를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

군대 말투를 쓰는 차유진이 등장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어설프게 저런 말투 써 봤자 어색해서 더 얕보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참가자 : 저기요, 저희가 암벽등반 같은 걸 꼭 해야 하는….

-차유진 : 끝날 때까지 질문하지 않습니다.

-참가자 : (흡)

이미 시스템 가상 세계에서 군대 예능 경험자인 놈은 관용구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

-이이게 대체 뭐임

그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와 참가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서 차유진은 귀신같이 10대 후반 틴에이저들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첫 임팩트 이후로는 살살 풀어줘야 하는 타이밍에 귀신같이 말을 경청하고 챙겨주며 정을 붙이게 해줬던 것이다.

-왜 말투는 교관인데 태도는 아메리칸 캠프 지도사인 거죠

-차유진 개웃기고 개훈훈하네…

-이게 아메리카 캠프 유경험자의 맛이냐

어쨌든, 그 독특한 말투로 한번 판을 잡은 차유진은 엄격함과 다정함, 개그와 진지함을 오가며 혹시 모를 이미지 논란까지 다 처리했다.

그리고 ‘다나까 지도사’라는 올드한 공중파 스타일 자막으로 밈까지 만들며 어마어마한 가성비를 챙긴 것이다….

‘설마 계산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게 더 대단한 놈이었다. 나는 이걸 고를 때 저놈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저 이제 경험 있어요.

“…….”

그리고 지금 그놈은 내 옆에서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저는 이 대화 직접 들을 권리 가졌어요. 저 팀 멤버예요.”

오냐.

감이 좋은 놈이니 순간 판단력으로 좋은 의견을 낼지도 몰랐다. 나는 차유진의 발언을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때야 그새 인사를 마친 큰세진과 권희승은 희희낙락하며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권희승이 눈을 빛냈다.

“와, 그러면 문대 형이 우리 스페이서 프로듀싱을 해주시는 겁니까? 이야!”

그래. 그 이야기로 부르긴 했지.

“그 전에 확인은 하고.”

“…넵?”

나는 깍지를 꼈다.

“믿을 수 있겠냐.”

“…!”

“우리가 같은 소속사라고는 해도 결국 경쟁자라는 건 너도 알 거야. 그런데 내가 과연 스페이서한테 무조건 승승장구하고 좋기만 할 기획을 내놓을지 의심되지 않냐는 거지.”

“…….”

골드 2, 권희승은 입을 다물었다.

‘역시.’

바보가 아닌 이상 의심은 해봤을 것이다.

테스타 셋은 아무 재촉도 하지 않고 천천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

녀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어, 아뇨?”

“…!”

“근데 뭐 안 그러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형님?”

권희승이 허허 웃었다.

좀… 해탈한 것 같았다.

“저희 티원에 있을 때도 뭐… 회사한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직원분들이 다 계획 짰을 거 아녜요. 그러니까 애초에 저희한테 좋기만 한 플랜을 받은 적도 없고….”

녀석은 중얼거리더니 이내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회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서로 상호 이득을 바라면서 하는 거죠!”

“……그러냐.”

“그렇죠!”

과연.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주식으로 돈 번 놈다운 현실 인식이다.

“그리고 형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전 오히려 좋은데요? 이 계획 뭐가 우리한테 위험하고 형한테는 좋고 이런 거 다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래야지.”

입 닫고 있다가 변수 생기느니, 고지하고 나서도 직접 본인이 오케이하도록 만드는 게 깔끔하다.

난 다 말해줬는데 자기가 선택했다? 이건 나중에 다른 소리 못 하지 않는가.

‘보험약관 같긴 하지만.’

약간 씁쓸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와.”

“…?”

넌 왜 감탄하면서 한숨까지 쉬냐.

“후… 형, 그게 바로 세상 상위 1% 양심인데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

“와, 형 무슨… 진짜 아닌 척하면서 사실 성인군자 아니세요?”

“맞아 문대가 좀 그렇지?”

아니다.

“그러니까요. 형한테 사실 이득도 없는데 우리 그룹 도와주시면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시고….”

그러니까 이 회사가 내 시스템… 아니, 그만하자.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럼 이야기 시작한다.”

“크으, 넵!”

권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전략이 나올 것인지 기대와 긴장이 표정에 드러난 채로.

큰세진이 사람 좋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희승~ 이번에 데뷔한 원더홀 신인 그룹 알지? 이테르!”

“네넵.”

관련된 논란을 아는지 권희승의 얼굴에 짧게 여러 예상이 지나가는 것 같았으나….

다음 말에 표백되었다.

“그 친구들이 우리 스페이서 프로모션에 큰 도움을 줄 거야!”

“…?!”

정확히는, 주도록 만들겠단 뜻이다.

* * *

그리고 몇십 분 후.

“…….”

폭풍을 맨몸으로 맞은 듯, 멍하니 회의실에 앉아 있던 권희승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아무래도 충격이 심한 모양이다.

“생각 충분히 해보고 대답해 줘도 괜찮아.”

“아니… 그,”

권희승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될까요?!”

“되니까 이야기했지.”

“그, 그렇죠……. 형이 말하면 되죠.”

그렇게까지?

권희승은 이번엔 진지한 얼굴로 회의실 탁자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이놈이 거의 무늬를 세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드르르륵.

“앗, 저 잠깐 통화 좀.”

“그래.”

권희승의 스마트폰이 울렸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닫고 회의실을 나갔다.

툭.

“…….”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전화 본인이 건 거지?”

“아니. 진짜 온 건 맞는 것 같아.”

“음.”

바로 멤버들과 상의해 보려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 이 자리에 스페이서 멤버를 몇 명 더 부르려고 했는데, 권희승 본인이 일단 혼자만 나오겠다고 해서 의외였다.

“저 사람 리더예요?”

“스페이서? 거기는 리더 제도가 없긴 한데, 희승이가 1등이고 센터라 역할이 크긴 해.”

“오우.”

왜 날 보냐. 센터는 너잖아.

어쨌든, 나는 잠시 회의실에서 탁자를 두드리다가 시간을 맞춰 일어났다.

이쯤 됐으면 그 녀석도 슬슬 통화는 끝낼 때가 됐겠지.

“나도 잠깐 화장실 좀.”

“오케이.”

나는 권희승과 둘만 할 이야기를 위해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툭.

하지만, 문을 닫는 순간 통로에서 권희승의 목소리가 작게 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녀석은 아직도 통화 중이던 것이다.

“어어, 에이! 아, 우리 이번 곡 진짜 좋다니까. 진짜 믿어! 형 진짜 작곡에 재능 있는데 왜 걱정해!”

“…….”

“프로모션만 잘 받으면 차트 들걸? 이제 회사도 좋으니까 우리 더 잘 될 거야. ……어어. 작업 화이팅하고.”

녀석은 타이르듯이 그렇게 말하더니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음. 형님,”

당황한 모양이었다.

‘…후.’

“미안하다. 들으려던 건 아니야.”

“그러실 것 같았어요…. 흠흠.”

권희승은 좀 민망했는지 답지 않게 말을 끌었다.

‘젠장.’

나는 한숨을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팀 분위기 좋은 것 같던데.”

“그렇긴 해요.”

권희승이 벽에 기대서 한숨을 쉬었다.

“근데 솔직히 막… 형들처럼 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 저희 시즌이 진짜 특이한 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

녀석은 약간 쪽팔린 대화를 들킨 김에 아예 확 말하기로 결심이라도 한 건지, 무심코인지 다음 말까지 했다.

“음, 그래서 저도 그때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 적도 있긴 한데…. 어쨌든 최종까지는 갔었잖아요, 저도.”

아.

나는 이놈이 순간 뭘 떠올리면서 이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그냥 최종화 전체가 아니다.

‘마지막 멤버 호명.’

내 1위 특전.

-박문대 참가자는 1등의 권한으로, 마지막 순위발표식까지 함께 올라온 14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을 함께 데뷔할 팀원으로 지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을 시청자에게 넘겼었다.

최대한 후폭풍을 없애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참가자는… 주주님들께서 선택하신 7위 참가자입니다.

하지만 사실 거기, 테스타 멤버로 불리지 못하고 남아 있던 참가자 중에 가장 나와 팀원으로서 친분이 깊은 건 이놈이긴 했다.

골드 2. 권희승.

그 자리에서 저놈이 기대를 안 했었을 리가 없다.

벌써 5년도 더 지난 지금도 떠오를 정도면.

‘게다가 테스타가 보통 잘 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녀석의 대화는 한탄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근데 상상할수록 깨닫더라고요. 전 그래도 지금 제 팀이 좋은 것 같아요. 에휴… 정이 너무 들어가지고.”

“…….”

“아까 저 통화한 형도 자신감이 되게 없긴 한데 되게 재밌는 사람이거든요? 곡도 잘 만들고… 근데 요즘 저희 음원 성적이 그렇게 막 좋지는 않아서.”

스페이서는 객관적으로 괜찮게 정착한 그룹이다.

대중성은 서바이벌 직후부터 자연스럽게 점점 떨어지며 음원 성적도 하락했다. 하지만 음반 판매량은 차근히 늘어났고, 해외 인기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사람은 뭐든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법이고, 스페이서가 가장 가장 비교하기 편한 상대가 누구겠는가.

‘테스타지.’

저놈들이 썩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 회사로부터 그렇게 비교하는 말을 한두 번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다른 멤버들 의견을 들어보고 다시 말씀드려야겠지만… 일단 저는 무조건 도전해 보고 싶다로 결론 내렸거든요!”

“…….”

“저희 스페이서 앞날이 아직 짱짱한 그룹인 걸 한번 증명해 봐야죠!”

“…그래.”

“한번 사는 인생! 아니, 우리는 그… 흠흠, 기회가 한 번 더, 아무튼 그렇지만.”

“…….”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눈을 찡긋거리는 권희승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만난 순간부터 떠 있던 팝업이 여전히 보였다.

‘■■■ 파편 (1 / 4)’을 ‘회사용 ’으로 흡수하시겠습니까?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

뭐, 어차피 그 신인 그룹 치우는 데에 저놈을 이용해 먹는 판이다.

회사 시스템 기능도 업그레이드할 겸 안 그래도 뽑아내려고 했는데, 저놈에게 직접 미션 실패니 뭐니 다 말해서 빚을 지울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도 나쁠 건 없지.

나는 말 없이, 조용히 상태창에게 응답했다.

‘그래.’

그러자, 팝업이 빛나기 시작했다.

“……!”

“그럼 저희 슬슬 회의실 들어갈까요?”

권희승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녀석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팝업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는 권희승을 한 바퀴 휘감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다시 팝업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팝업의 내용이 그렇게 바뀌는 것 같더니, 곧 모든 팝업이 사라지며 매우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새 팝업 하나가 떴다.

‘끝인가?’

몸에 무슨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신 그 팝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던 순간이었다.

쾅!

“…!!”

“뭐, 뭐야?”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것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큰세진이었다.

녀석이 외쳤다.

“사람 불러!”

뭐?

“유진이 쓰러졌어. 사람 불러!”

“…!!”

당장 회의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의자 아래로 쓰러진 차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

왜?

“박문대!”

“어.”

나는 당장 발을 움직였다. 회사 사람을 불러서 응급실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뛰어가면서도 생각했다.

이게 X발 무슨 일이지?

그 옆으로 시스템창이 사라지지도 않고 계속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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