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6화
사실 차유진 하나 낀다고 시청 분위기가 박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9화에서 차유진의 팀 분위기가 지옥 불에 떨어지는 장면에 나오면 굉장히 숙연해지겠지.
괜히 불편해질 필요가 있나?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짧게 고민했다. 적절한 거절 문구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큰세진이 끼어든 건 그쯤이었다.
“뭐야?”
“아, 김래빈이 차유진 껴도 되냐는데.”
“음… 괜찮을 것 같은데?”
큰세진이 씩 웃었다.
“설마 제작진이 9화에서 그 팀을 풀겠어? 10화 예고편에나 나오겠지 뭐!”
“…….”
와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게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이야. 학폭 논란 이후로 이상한 신뢰도가 생겼는지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친목도 쌓으면 더 좋고~ 아 맞다, 집주인 의사가 중요하지! 아현이 어때?”
“나, 나는 괜찮아!”
“그렇대!”
선아현은 쿨하게 예스를 외치고 보드게임 룰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이놈도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
말도 안 놓은 참가자를 자기 집에 선뜻 부를 줄이야.
“뭐… 그렇다면야.”
오라고 하지 뭐.
나는 떨떠름하게 김래빈에게 답문을 넣었다.
* * *
김래빈과 차유진이 도착한 건 점심 이후였다.
“오~ 어서 와!”
큰세진이 쾌활하게 인사했다.
참고로 ‘이렇게 됐으니 형도 불러야겠다’라는 큰세진의 발언에 의해 황급히 합류한 골드 1도 거실에 앉아 있었다.
팀원 중에 골드 1만 안 부르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건 맞는데, 여기에 차유진이 끼는 것도 그림이 이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차유진은 의외로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들고 있던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내밀었다. 참고로 봉투 안에 든 것은 모두 과자였다.
“일단 치킨 시켰는데,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또 시키자.”
“예.”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구석에 앉았다. 안 시키겠다는 뜻이군.
그러나 차유진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럼 피자 시킬 수 있나요?”
“그럼!”
“와우!”
차유진은 감탄사만 남기고 배달 어플을 켰다. 여전히 기가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자기 혼자 해맑은 건 여전했다.
김래빈은 침착하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형들은 아침에 합류하신 건가요?”
“아, 나는 그렇고~ 문대는 더 전에 왔어.”
“예?”
굳이 숨길 건 없지만, 좀 귀찮긴 했다.
어쨌든 무시할 수는 없으니 원룸에서 일어난 대환장을 설명해 줬다. 중간중간 선아현이 끼어들어서 이야기를 보충했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도 있더라고.”
“히이익!”
“하, 한 명이 아니라, 3명이나 더 있었어!”
“…음, 그렇지. 그래서 경찰이 연행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겨, 경찰분들이 너무 건성으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너, 너무했어.”
“너무… 했지. 그래.”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사건은 점점 더 과장되어 마치 인터넷 주작 설처럼 변해 있었다.
덕분에 설명을 다 들은 참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너 아현이네 오길 잘했다. 무섭네.”
“그러게. 야… 나도 집 앞에 누가 찾아온 적은 있는데, 저럴까 봐 걱정이다. 집에 동생도 있고…….”
“헐, 누가 왔다고요?”
“어. 나중에 들으니까 초인종 누르고 앞에 계속 앉아 있어서 동생이 밖에 못 나갔다잖아.”
“어우…….”
자취하거나 소속사의 숙소에서 사는 사람들 위주로 비슷한 경험담이 쭉 나왔다.
충격과 공포의 본방 시청 전에 어울리는 섬뜩한 화제였다.
치킨을 먹을 때 즈음에는 아는 참가자의 친구 아이돌 이야기까지 지나갔다.
“……그래서 들어가 보니 샤워실에서 렌즈감지기 소리가 ‘삐삐-’ 울리면서….”
“미쳤네.”
다음으로 도착한 피자를 씹고 있을 때, TV에서는 마침내 9화 본방 전 8화 재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코멘트를 붙이며 8화를 감상했다. 끝날 즈음에는 차유진까지 분위기에 잘 끼어 있었다.
“3위 진짜 하나도 안 아쉬웠어?”
“아쉬웠는데 좋았어요.”
“야, 멋지다.”
“히히.”
골드 1의 감탄에 차유진이 히죽거렸다. 대체 팀에서는 무슨 지랄이 나서 저런 놈을 풀 죽게 만들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그렇게 피자 박스가 깨끗이 비워지고 나서야 9화가 시작했다.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이제 지긋지긋해지려는 로고가 뜨고, 먼저 나온 분량은 장기자랑이었다.
여기선 참가한 참가자들이 그럭저럭 골고루 분량을 챙겨갔다.
힐링을 표방하고 진행한 컨텐츠라 그런지, 아니면 급조된 부실한 진행을 훈훈함으로 때우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대부분은 적당히 캐릭터를 살리는 유머러스한 장면을 챙겨갔다. 큰세진이 대표적이었다.
문제는 내 분량이… 개그로 등장해서 개그로 끝났다는 점이다.
[이 순간… 무대를 지배한다!]
[박문대, 그는 트로트에 진심인가?]
노래 부르는데 이딴 자막을 넣더라고.
대놓고 오글거리게 만들었으니, 웃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들 참 잘 웃었다.
“으키키킥!!”
“프읍…….”
“인성 되게 좋아 보이는 분량이다. 축하해 문대야!”
마지막은 큰세진이다. 나는 탄산을 마시던 큰세진의 등을 말없이 한 대 쳤다.
“커헑.”
차라리 웃지 그랬냐.
박문대의 분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치 냉장고를 타고 참가자들이 뛰어나와서 열광의 도가니탕이 된 장면 끝에, 아예 도장을 찍듯이 인터뷰까지 삽입했다.
[Q : 트로트 좋아하나요?]
[박문대 : 네.]
즉답 후 엄지를 들어 보이는 컷이 삽입되었다.
‘저거 팀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던 인터뷰잖아.’
이 미친놈들은 무슨 날조를 이렇게 매화마다 한단 말인가.
자막은 거기다 못을 박고 있었다.
[트로트 러버 박문대 참가자, 김치냉장고와 행복하세요!]
아직 김치냉장고는 받지도 못했다, 개자식들아.
더 열 받는 점은 이후 9화에서 내 분량이 저걸로 끝이라는 것이다.
‘더럽게 실속 없는 것만 줬네.’
초반이었다면 일단 긍정적인 분량에 감사했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슬슬 마지막 팀전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다지 득이 되는 편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평만큼 서바이벌 결승전 표에 치명적인 말도 드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송에서의 박문대는… 솔직히 그다지 절박해 보이진 않았다.
간절해 보이는 장면보다 웃긴 장면이 차라리 더 많았을 정도라면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팀전에서 좀 더 열심히 한 측면도 있건만, 이 경향성이 계속 간다면 그다지 ‘절실함’이 조명받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쩔 수 없나.’
애초에 여기서 최종 데뷔하겠다 결심하고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컷을 노릴 만큼 보여준 적도 없고, 뽑을 타이밍이 꽤 지나긴 했다.
내가 무슨 백스토리가 있어서 팬분들이 자체적으로라도 절실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좀 웃기는 일이긴 하군.’
사실 여기 나온 사람 중 제일 절박한 것은 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놈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좀 해둬야 하나.’
마지막 화에서 갑자기 순위가 폭락해서 떨어지더라도 그러려니 하자. 누가 주워가든 데뷔는 빨리할 수 있겠지.
나는 입맛을 다셨다. 왠지… 좀 아쉬웠다.
‘기왕 활동할 거면 좀 편한 놈들이랑 하는 게 나을 텐데.’
아마 여기서 과반수는 데뷔할 것이다. 거기에 못 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패배감도 들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나도 꽤 많이 변한 것 같았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놀랍게도 제작진이 9화 끝에 팀이 망하는 것을 통으로 넣어준 것이다.
[최원길 : 그러니까, 형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이세진 : 할 수 있는 거랑 하고 싶은 건 엄연히 다른 의미 아니야?]
[최원길 : 형 지금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잖아요. 잘 생각해 보시면…….]
[기정균 :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좀 도전해 보는 게 어때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세진 : ……그만 좀.]
방송은 이 대화 뒤에 이세진의 얼굴이 썩어가는 장면을 몇 초나 길게 잡아서 송출해 줬다.
그리고 완전히 감정이 상한 상태로, 서로를 거의 주먹이 나갈 듯이 쳐다보며 짧게 문답하는 모습이 다시 나왔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참는 게 역력했다.
하필 류청우가 제작진에게 선곡을 제출하러 갔을 때 일어난 참사라 중재할 사람도 없었다.
[차유진 : …….]
참고로 차유진은 한번 끼어들었다가 아예 없던 발언처럼 무시당했다.
분위기에 맞는 발언이 아니라 그럴 줄 알았다.
“…….”
차유진이 우울한 얼굴로 화면을 보더니, 곧 얼굴을 컵에 처박고 탄산음료나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덕분에 욕먹을 소지 없이 잘 넘어간 것 같은데, 본인 입장은 달랐나 보다.
[류청우 : …무슨 일이야?]
9화는 돌아온 류청우가 완전히 박살 난 팀 분위기를 보며 당황하는 것으로 끝났다.
[절체절명의 분위기, 과연 그들은 무사히 무대를 완성했을까?]
“아, 완성했지~ 그치?”
“맞아. 잘하더라.”
큰세진이 적절히 치고 들어와서 분위기를 풀었다. 굳이 나한테 호응을 유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맞장구 쳐줬다.
차유진은 겨우 탄산음료에서 얼굴을 떼고 웃었다.
저거 아무래도 슈가 하이에 중독된 것 같은데?
‘…설마 내 탓인가.’
나는 불길한 생각을 얼른 지웠다.
화면에서는 이제 중간 광고의 탈을 쓴 끝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마 광고 후에 짧은 예고편이나 비하인트 컷이 나오면서 바로 방송이 끝날 것이다.
“오늘은 준비 과정만 보여주네.”
“그러게. 우리 별로 안 나왔다.”
팀은 초반 결성 때만 짧게 보여준 후 거의 분량이 없었다.
제작진이 임의로 순서를 조정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첫 무대니 9화 마지막에 걸리지 않을지 약간 기대했는데 아예 아무 무대도 편성을 안 할 줄이야.
‘이러면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나?’
잠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자니, 중간 광고가 끝나고 화면에 다시 가 나오기 시작했다.
MC가 화면에 등장했다.
“……느낌이 안 좋은걸?”
“너도? 야 나도.”
방송에 MC가 단독으로 나와서 좋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반사적으로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 오늘도 즐겁게 시청하셨나요?]
“아뇨.”
“아니오.”
여기저기서 힘없는 부정이 나왔다. 촬영 때는 하지 못하는 소소한 일탈이었다.
[이번에 제가 발표해드릴 부분은… 바로, 지금까지의 주식 현황입니다!]
“뭐?”
“음, 이렇게 쉽게 알려주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특정 등수 몇 명만 공개하지 않…….”
[단, ‘깎인 주식’만을 발표합니다! 주주 여러분은 어떤 주식을 가장 많이 매도하셨을까요?]
“맙소사.”
김래빈이 탄식했다. 그럴 만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마이너스 투표 수치만 공개하겠다는 발상을 한 거냐.’
대충 큰 어그로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건 별로 놀랍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을 줄은 몰랐지.’
이번 화에 무대를 안 넣은 패기는 여기서 나온 게 분명했다.
[그럼 지금 바로, 매도 순위를 공개합니다!]
MC의 말과 함께, 화면에 마이너스 표시가 붙은 순위가 주르륵 정렬되었다.
그리고 거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6화
사실 차유진 하나 낀다고 시청 분위기가 박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9화에서 차유진의 팀 분위기가 지옥 불에 떨어지는 장면에 나오면 굉장히 숙연해지겠지.
괜히 불편해질 필요가 있나?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짧게 고민했다. 적절한 거절 문구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큰세진이 끼어든 건 그쯤이었다.
“뭐야?”
“아, 김래빈이 차유진 껴도 되냐는데.”
“음… 괜찮을 것 같은데?”
큰세진이 씩 웃었다.
“설마 제작진이 9화에서 그 팀을 풀겠어? 10화 예고편에나 나오겠지 뭐!”
“…….”
와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게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이야. 학폭 논란 이후로 이상한 신뢰도가 생겼는지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친목도 쌓으면 더 좋고~ 아 맞다, 집주인 의사가 중요하지! 아현이 어때?”
“나, 나는 괜찮아!”
“그렇대!”
선아현은 쿨하게 예스를 외치고 보드게임 룰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이놈도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
말도 안 놓은 참가자를 자기 집에 선뜻 부를 줄이야.
“뭐… 그렇다면야.”
오라고 하지 뭐.
나는 떨떠름하게 김래빈에게 답문을 넣었다.
* * *
김래빈과 차유진이 도착한 건 점심 이후였다.
“오~ 어서 와!”
큰세진이 쾌활하게 인사했다.
참고로 ‘이렇게 됐으니 형도 불러야겠다’라는 큰세진의 발언에 의해 황급히 합류한 골드 1도 거실에 앉아 있었다.
팀원 중에 골드 1만 안 부르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건 맞는데, 여기에 차유진이 끼는 것도 그림이 이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차유진은 의외로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들고 있던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내밀었다. 참고로 봉투 안에 든 것은 모두 과자였다.
“일단 치킨 시켰는데,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또 시키자.”
“예.”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구석에 앉았다. 안 시키겠다는 뜻이군.
그러나 차유진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럼 피자 시킬 수 있나요?”
“그럼!”
“와우!”
차유진은 감탄사만 남기고 배달 어플을 켰다. 여전히 기가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자기 혼자 해맑은 건 여전했다.
김래빈은 침착하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형들은 아침에 합류하신 건가요?”
“아, 나는 그렇고~ 문대는 더 전에 왔어.”
“예?”
굳이 숨길 건 없지만, 좀 귀찮긴 했다.
어쨌든 무시할 수는 없으니 원룸에서 일어난 대환장을 설명해 줬다. 중간중간 선아현이 끼어들어서 이야기를 보충했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도 있더라고.”
“히이익!”
“하, 한 명이 아니라, 3명이나 더 있었어!”
“…음, 그렇지. 그래서 경찰이 연행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겨, 경찰분들이 너무 건성으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너, 너무했어.”
“너무… 했지. 그래.”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사건은 점점 더 과장되어 마치 인터넷 주작 설처럼 변해 있었다.
덕분에 설명을 다 들은 참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너 아현이네 오길 잘했다. 무섭네.”
“그러게. 야… 나도 집 앞에 누가 찾아온 적은 있는데, 저럴까 봐 걱정이다. 집에 동생도 있고…….”
“헐, 누가 왔다고요?”
“어. 나중에 들으니까 초인종 누르고 앞에 계속 앉아 있어서 동생이 밖에 못 나갔다잖아.”
“어우…….”
자취하거나 소속사의 숙소에서 사는 사람들 위주로 비슷한 경험담이 쭉 나왔다.
충격과 공포의 본방 시청 전에 어울리는 섬뜩한 화제였다.
치킨을 먹을 때 즈음에는 아는 참가자의 친구 아이돌 이야기까지 지나갔다.
“……그래서 들어가 보니 샤워실에서 렌즈감지기 소리가 ‘삐삐-’ 울리면서….”
“미쳤네.”
다음으로 도착한 피자를 씹고 있을 때, TV에서는 마침내 9화 본방 전 8화 재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코멘트를 붙이며 8화를 감상했다. 끝날 즈음에는 차유진까지 분위기에 잘 끼어 있었다.
“3위 진짜 하나도 안 아쉬웠어?”
“아쉬웠는데 좋았어요.”
“야, 멋지다.”
“히히.”
골드 1의 감탄에 차유진이 히죽거렸다. 대체 팀에서는 무슨 지랄이 나서 저런 놈을 풀 죽게 만들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그렇게 피자 박스가 깨끗이 비워지고 나서야 9화가 시작했다.
이제 지긋지긋해지려는 로고가 뜨고, 먼저 나온 분량은 장기자랑이었다.
여기선 참가한 참가자들이 그럭저럭 골고루 분량을 챙겨갔다.
힐링을 표방하고 진행한 컨텐츠라 그런지, 아니면 급조된 부실한 진행을 훈훈함으로 때우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대부분은 적당히 캐릭터를 살리는 유머러스한 장면을 챙겨갔다. 큰세진이 대표적이었다.
문제는 내 분량이… 개그로 등장해서 개그로 끝났다는 점이다.
노래 부르는데 이딴 자막을 넣더라고.
대놓고 오글거리게 만들었으니, 웃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들 참 잘 웃었다.
“으키키킥!!”
“프읍…….”
“인성 되게 좋아 보이는 분량이다. 축하해 문대야!”
마지막은 큰세진이다. 나는 탄산을 마시던 큰세진의 등을 말없이 한 대 쳤다.
“커헑.”
차라리 웃지 그랬냐.
박문대의 분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치 냉장고를 타고 참가자들이 뛰어나와서 열광의 도가니탕이 된 장면 끝에, 아예 도장을 찍듯이 인터뷰까지 삽입했다.
즉답 후 엄지를 들어 보이는 컷이 삽입되었다.
‘저거 팀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던 인터뷰잖아.’
이 미친놈들은 무슨 날조를 이렇게 매화마다 한단 말인가.
자막은 거기다 못을 박고 있었다.
아직 김치냉장고는 받지도 못했다, 개자식들아.
더 열 받는 점은 이후 9화에서 내 분량이 저걸로 끝이라는 것이다.
‘더럽게 실속 없는 것만 줬네.’
초반이었다면 일단 긍정적인 분량에 감사했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슬슬 마지막 팀전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다지 득이 되는 편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평만큼 서바이벌 결승전 표에 치명적인 말도 드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송에서의 박문대는… 솔직히 그다지 절박해 보이진 않았다.
간절해 보이는 장면보다 웃긴 장면이 차라리 더 많았을 정도라면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팀전에서 좀 더 열심히 한 측면도 있건만, 이 경향성이 계속 간다면 그다지 ‘절실함’이 조명받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쩔 수 없나.’
애초에 여기서 최종 데뷔하겠다 결심하고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컷을 노릴 만큼 보여준 적도 없고, 뽑을 타이밍이 꽤 지나긴 했다.
내가 무슨 백스토리가 있어서 팬분들이 자체적으로라도 절실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좀 웃기는 일이긴 하군.’
사실 여기 나온 사람 중 제일 절박한 것은 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놈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좀 해둬야 하나.’
마지막 화에서 갑자기 순위가 폭락해서 떨어지더라도 그러려니 하자. 누가 주워가든 데뷔는 빨리할 수 있겠지.
나는 입맛을 다셨다. 왠지… 좀 아쉬웠다.
‘기왕 활동할 거면 좀 편한 놈들이랑 하는 게 나을 텐데.’
아마 여기서 과반수는 데뷔할 것이다. 거기에 못 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패배감도 들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나도 꽤 많이 변한 것 같았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놀랍게도 제작진이 9화 끝에 팀이 망하는 것을 통으로 넣어준 것이다.
방송은 이 대화 뒤에 이세진의 얼굴이 썩어가는 장면을 몇 초나 길게 잡아서 송출해 줬다.
그리고 완전히 감정이 상한 상태로, 서로를 거의 주먹이 나갈 듯이 쳐다보며 짧게 문답하는 모습이 다시 나왔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참는 게 역력했다.
하필 류청우가 제작진에게 선곡을 제출하러 갔을 때 일어난 참사라 중재할 사람도 없었다.
참고로 차유진은 한번 끼어들었다가 아예 없던 발언처럼 무시당했다.
분위기에 맞는 발언이 아니라 그럴 줄 알았다.
“…….”
차유진이 우울한 얼굴로 화면을 보더니, 곧 얼굴을 컵에 처박고 탄산음료나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덕분에 욕먹을 소지 없이 잘 넘어간 것 같은데, 본인 입장은 달랐나 보다.
9화는 돌아온 류청우가 완전히 박살 난 팀 분위기를 보며 당황하는 것으로 끝났다.
“아, 완성했지~ 그치?”
“맞아. 잘하더라.”
큰세진이 적절히 치고 들어와서 분위기를 풀었다. 굳이 나한테 호응을 유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맞장구 쳐줬다.
차유진은 겨우 탄산음료에서 얼굴을 떼고 웃었다.
저거 아무래도 슈가 하이에 중독된 것 같은데?
‘…설마 내 탓인가.’
나는 불길한 생각을 얼른 지웠다.
화면에서는 이제 중간 광고의 탈을 쓴 끝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마 광고 후에 짧은 예고편이나 비하인트 컷이 나오면서 바로 방송이 끝날 것이다.
“오늘은 준비 과정만 보여주네.”
“그러게. 우리 별로 안 나왔다.”
팀은 초반 결성 때만 짧게 보여준 후 거의 분량이 없었다.
제작진이 임의로 순서를 조정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첫 무대니 9화 마지막에 걸리지 않을지 약간 기대했는데 아예 아무 무대도 편성을 안 할 줄이야.
‘이러면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나?’
잠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자니, 중간 광고가 끝나고 화면에 다시 가 나오기 시작했다.
MC가 화면에 등장했다.
“……느낌이 안 좋은걸?”
“너도? 야 나도.”
방송에 MC가 단독으로 나와서 좋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반사적으로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아뇨.”
“아니오.”
여기저기서 힘없는 부정이 나왔다. 촬영 때는 하지 못하는 소소한 일탈이었다.
“뭐?”
“음, 이렇게 쉽게 알려주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특정 등수 몇 명만 공개하지 않…….”
“맙소사.”
김래빈이 탄식했다. 그럴 만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마이너스 투표 수치만 공개하겠다는 발상을 한 거냐.’
대충 큰 어그로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건 별로 놀랍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을 줄은 몰랐지.’
이번 화에 무대를 안 넣은 패기는 여기서 나온 게 분명했다.
MC의 말과 함께, 화면에 마이너스 표시가 붙은 순위가 주르륵 정렬되었다.
그리고 거실은 침묵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