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5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54화
테스타가 LeTi로 갔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선 장점.
‘이미 해봤다는 것.’
그 회사 사장이 어떤 놈인지, 기획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미 내가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데뷔 서바이벌까지 해봤으니까.
비록 시점이 몇 년 전인 데다가 시스템이 만든 가상 시뮬레이션 같은 곳이긴 했지만 말이다.
‘적응이 빠를 거다.’
그리고 LeTi는 상장까지 한 큰 기업이니만큼 테스타의 이름값을 케어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낮다.
게다가….
‘남자 아이돌 신인이 없어.’
적어도 VTIC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는, 테스타에게 꽤 제대로 된 투자가 들어올 확률이 높다.
‘몇 년 시간 버는 거지.’
T1 Stars가 침몰한 마당에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옵션처럼 보이기도 했다.
‘계약 조건만 잘 조정하면 테스타 색 유지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그러니 내 답변은 결국 하나군.
이 모든 생각을 30초 내로 끝낸 뒤, 나는 즉각 답변했다.
-괜찮습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응, 안 가.
그러자 얼마 안 가서 답문이 돌아왔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아쉽네요
-VTIC 신청려 선배님 : 레이블로 들어오는 건?
어쭈.
-통화 가능하십니까.
나는 짧은 문자 후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후배님.
이놈이 굳이 전화 녹음본을 풀어버릴 일은 없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나는 예의 바르게 말을 시작했다.
“레이블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요. 음, 어려운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LeTi 산하 레이블을 하나 만들까 해서요.
“…!”
-이름 있는 소속사들은 대부분 자기 색이 분명하죠. 그런 곳에 테스타가 직접 소속되는 건 부담스러울 텐데.
-지금처럼 독립 레이블에서 원하는 대로 앨범을 만들면서 지낼 수 있는 조건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청려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척척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다시 권유했다.
-테스타가 이 레이블에 딱 적임 그룹 같아서 연락했는데요. 아닌가?
“…….”
나는 입을 열었다.
“그 레이블 말입니다만.”
-네.
“기획을 테스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일하기도 한결 편할걸요. 회사 체계가 괜찮게 잡혀 있는 편이라.
“예.”
저놈이 잡아놓은 체계도 있을 것이다.
분명 기획이 자율적이라는 것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하지만 프로모션과 스케줄을 조정하는 건 레이블이 아니라 LeTi 본사 아닌가요.”
-…….
“그리고 LeTi는 선배님의 소속사고.”
그렇다. LeTi에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나는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떼어내, 통화 상대방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VTIC 신청려 선배님]
…이놈이 테스타 스케줄을 손에 쥐고 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제 와서 해 먹으려고 들어봤자 10년이나 그 기획사에서 해 먹은 놈을 몇 개월 만에 누르긴 힘들지.
그것도 상대가 몇십, 혹은 몇백 번이나 같은 회사를 반복 공략해 본 놈이라면 더더욱.
‘내가 X신도 아니고.’
경쟁자 손에 그룹 생사여탈권을 주는 것은 바보짓이다.
‘하지만 경쟁자 입장에선 더없이 이득이지.’
그래서 이놈도 제안한 것일 터다.
나는 작년 연말, 시상식에서 청려의 기묘한 문자를 떠올렸다.
영상이 첨부된.
-동영상은 웬 모르는 개가 망가진 방석 대신 새로운 방석을 선물 받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방석.
‘새 회사, 새집이란 뜻이었나.’
어쩌면 그때부터 T1 돌아가는 판을 얼추 파악한 채로 각을 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X발 정보력에서 밀린다는 게 열받긴 하지만, 어쨌든 저놈의 행동 양식은 명백했다.
‘계산한 거다.’
이 새끼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당연히 이득 보려고 제안한 거란 뜻이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전히 똑똑하네.
모르는 게 멍청한 거 아니냐.
-음, 그래도 후배님이 걱정할 건 없는데. 해 될 일을 할 생각은 없거든요.
“VTIC과 테스타 양자택일 순간이 와도?”
-그럴 리가요. 서로 방해하지 않게 좋은 스케줄을 고를게요. 그러면 후배님은 좋은 소속사를 가지는 것뿐이죠.
“…….”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치열하고 짧게 머리를 굴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
사실상 항복선언처럼 들렸을 것이다.
놈의 말투가 더 사근사근해졌다.
-잘 생각했어요.
“그런데 몸값 좀 올리게 소문 좀 내주시면 안 됩니까.”
-음?
“테스타가 재계약 안 할 것 같다는 관계자발 루머요.”
회사가 의심하지 않도록, 그냥 찌라시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반신반의할 수 있으면 최고다.
나는 덤덤히 근거를 붙였다.
“경쟁이 좀 붙어야 LeTi에서도 뭘 좀 더 챙겨 주지 않겠습니까. 계약 조건을 잘 받으려면 그게 최고일 것 같아서.”
-음.
청려는 알겠다는 듯이 짧게 수긍했다.
‘좋아.’
이대로 소문이 나면….
-후배님. 올 생각 없구나.
“…….”
귀신같은 새끼.
‘바로 알았냐.’
그렇다.
웬만하면 LeTi에 갈 생각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짓이다.
저놈이 이제 와서 오함마 들고 설치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관리의 측면이다.
게다가 생각해 봐라. 테스타가 데뷔 초부터 개같이 싸우던 VTIC 소속사인 LeTi행?
‘팬들 속이 다 썩어나겠군.’
내가 하는 생각을 다 똑같이 할 텐데, 기왕이면 더 좋은 옵션을 고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
‘이거 소문내는 걸로 딜 좀 보려면 뭘 걸어야겠는데.’
일단 간 좀 볼까.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입을 열려 했으나, 통화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좋아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
놀랍게도 선선히 수긍한 것이다.
물론 그게 본론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제안은 재계약 전까지 유효하다는 건 꼭 기억해 뒀으면 하는데.
“예. 그러겠습니다.”
역시 저 말을 할 추진력을 얻기 위해 순순히 받았군. 하지만 기꺼이 수긍해 주마.
그렇게 납득하고 있었는데, 청려가 뜬금없이 말을 바꿨다.
-음.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긴 하네요.
“무슨….”
소리냐.
그러자, 스마트폰 너머로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컨택이 들어올수록 생각날 테니까. 이 제안이.
“…….”
-계약 조건은 메일로 보내줄게요. 다시 한번, 축하해요 후배님.
그리고 며칠 후, 크고 작은 기획사들로부터 은근한 연락이 시작되었다.
* * *
“문대 말대로, 진짜 꽤 오는구나.”
“…그러게.”
멤버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들의 인맥을 통해 넘어온 제안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일단 배세진 쪽으로 온 건 배우부터 아이돌까지 넓게 관리하는 몇몇 기획사다.
류청우는 리더라서 그런지 특히 컨택이 많았고, 큰세진은 본래 아이돌들이 재계약할 때 많이 고르는 적당한 기획사가 많다.
‘인맥 성격들이 보이는군.’
그리고 김래빈은….
“…? 힙합 레이블입니다. 어째서 여기서 제안을…?”
“음, 아이돌 그룹에 야망이 생기셨나?”
김래빈을 거의 막내 취급하는 AR팀 쪽 인맥이라는데 내 스마트폰을 걸겠다.
‘그리고 나는….’
내 쪽으로도 연락이 좀 오긴 했는데, 어째 악연들이 많군.
‘이 자식들도 보냈네.’
골드 1과 최원길이 소속된 골든 에이지 그룹. 산업 스파이로 난리 났던 거기 말이다.
나는 ‘안녕하세요. 트레블러 엔터테인먼트 박민정 팀장입니다. 지난 일에 대하여 다시 사과드리고…….’로 시작하는 장문의 카톡 팝업을 클릭하지 않고 읽었다.
좀 빡치긴 하지만, 확실히 일은 잘하는 기획사라 기억은 해두기로 했다.
‘테스타가 가면 골든에이지와 포지션과 연차가 딱 맞아떨어져서 개판이 될 거라는 게 마이너스 요소….’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옆에서 질문이 들렸다.
“그런데 문대문대, 무슨 방법으로 소문을 낸 거야?”
“…….”
“응?”
이제는… 공유해야 할 때가 됐군.
나는 며칠 전 받았던 권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Le, LeTi??”
“…청려, 선배님이…….”
“저 거기 싫어요. [제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음침한 것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진지하게, 거길 고려하는 건 아니죠, 형?]”
차유진이 이렇게 길고 총명하게 이야기할 줄이야.
나는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안 간다고 했어. 그래도 고려해 본다고 하니까 소문은 내준 거고.”
“후.”
큰세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나도 미간을 눌렀다.
“애초에 다 같이 옮길 건데 나 혼자 가겠다고 결론 내렸겠냐. 당연히 상의해 봐야….”
“자자~ 지금 투표 부치죠! LeTi 별로 안 가고 싶은 분?”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어어, 문대 안 들어?”
든다, 새끼야.
그렇게 화끈하게 ‘LeTi 안 가’ 결론이 난 거실 한복판에서, 김래빈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내게 작게 물었다.
“…좋은 소속사로 기억합니다만, 아닙니까?”
“…….”
과연, 머리부터 말끝까지 LeTi 취향일 만한 놈이었다.
그 후로도 몇 군데에서 유의미한 접촉이 있긴 했지만, 문제는 슬슬 타임 리미트가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빨리 골라야 하는데.’
멤버 각자마다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그걸 다 충족하는 기획사가 몇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단점이 있거나 위험한 요소가 꼭 있다.
너무 작아서 케어가 힘들겠거나, 너무 커서 이미 같은 포지션 남자 아이돌을 보유하고 있거나, 너무 개성이 강해서 테스타를 감당 못 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니 첫 타부터 독립 레이블 들고 온 LeTi가 선녀는 확실히 선녀였다.
‘X발.’
나는 머리를 헤집었다. 청려가 괜히 자신 있어 하던 게 아니었군.
‘그래, 막말로 LeTi에 간다고 치자.’
그래봤자… 근본적인 문제는 어딜 가든 해결이 불가능하다.
‘…테스타 이름.’
그 이름, 그룹 컨셉. 이 모든 상표권과 저작권은 이미 이 T1 Stars라는 소속사가 쥐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저… 아직, 정리 중이야?”
“음.”
선아현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마구잡이로 키워드를 적어놓은 종이를 옆으로 치웠으나, 녀석이 이미 본 모양이다.
-테스타 이름 계속
…이 키워드를 말이다.
“이름, 계속 쓰고 싶어서… 고민 중인 거구나.”
“…….”
“그, 회사랑 잘 이야기해 보면, 정말 안 될까…? 우리가, 권리를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좋겠지.”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안 줄 것이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내놓아도 가능성은 적다.
결정자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이해 관계자가 엮여 있으니까.
나는 그 부분을 선아현에게 설명했다. 선아현은 차분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렵더라도, 시도는… 해보자.”
“……그래.”
“으응. 어쩌면, 회사에 다른 사정이 생겨서, 허락해 주실 수도 있고…!”
“…….”
다른 사정?
그 순간, 번개같이 머리를 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다.
‘상표권을 안 팔아?’
그러면… 팔도록 ‘다른 사정’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맙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거든.”
“…으응?”
나는 의아한 표정이 된 선아현에게 편안히 말했다.
“이 회사가 망해야 해.”
“…!?”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니.
“무, 문대야?”
고맙다. 선아현.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두 녀석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스페이서 권희승]
[미리내 박민하]
같은 처지인 소속사 그룹 녀석들이었다.
-스페이서 권희승 : ???
-스페이서 권희승 : 이 단톡방 정체가 뭔가여
-스페이서 권희승 : 혹시 예능?
-미리내 박민하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타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 회사 좋아하시나요
먹을 게 없으면 초가삼간이라도 팔아치우겠지.
‘밥줄을 다 끊자.’
답은… 회사 멸망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54화
테스타가 LeTi로 갔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선 장점.
‘이미 해봤다는 것.’
그 회사 사장이 어떤 놈인지, 기획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미 내가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데뷔 서바이벌까지 해봤으니까.
비록 시점이 몇 년 전인 데다가 시스템이 만든 가상 시뮬레이션 같은 곳이긴 했지만 말이다.
‘적응이 빠를 거다.’
그리고 LeTi는 상장까지 한 큰 기업이니만큼 테스타의 이름값을 케어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낮다.
게다가….
‘남자 아이돌 신인이 없어.’
적어도 VTIC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는, 테스타에게 꽤 제대로 된 투자가 들어올 확률이 높다.
‘몇 년 시간 버는 거지.’
T1 Stars가 침몰한 마당에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옵션처럼 보이기도 했다.
‘계약 조건만 잘 조정하면 테스타 색 유지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그러니 내 답변은 결국 하나군.
이 모든 생각을 30초 내로 끝낸 뒤, 나는 즉각 답변했다.
-괜찮습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응, 안 가.
그러자 얼마 안 가서 답문이 돌아왔다.
-VTIC 신청려 선배님 : 아쉽네요
-VTIC 신청려 선배님 : 레이블로 들어오는 건?
어쭈.
-통화 가능하십니까.
나는 짧은 문자 후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후배님.
이놈이 굳이 전화 녹음본을 풀어버릴 일은 없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나는 예의 바르게 말을 시작했다.
“레이블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요. 음, 어려운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LeTi 산하 레이블을 하나 만들까 해서요.
“…!”
-이름 있는 소속사들은 대부분 자기 색이 분명하죠. 그런 곳에 테스타가 직접 소속되는 건 부담스러울 텐데.
-지금처럼 독립 레이블에서 원하는 대로 앨범을 만들면서 지낼 수 있는 조건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청려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척척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다시 권유했다.
-테스타가 이 레이블에 딱 적임 그룹 같아서 연락했는데요. 아닌가?
“…….”
나는 입을 열었다.
“그 레이블 말입니다만.”
-네.
“기획을 테스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일하기도 한결 편할걸요. 회사 체계가 괜찮게 잡혀 있는 편이라.
“예.”
저놈이 잡아놓은 체계도 있을 것이다.
분명 기획이 자율적이라는 것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하지만 프로모션과 스케줄을 조정하는 건 레이블이 아니라 LeTi 본사 아닌가요.”
-…….
“그리고 LeTi는 선배님의 소속사고.”
그렇다. LeTi에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나는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떼어내, 통화 상대방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이놈이 테스타 스케줄을 손에 쥐고 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제 와서 해 먹으려고 들어봤자 10년이나 그 기획사에서 해 먹은 놈을 몇 개월 만에 누르긴 힘들지.
그것도 상대가 몇십, 혹은 몇백 번이나 같은 회사를 반복 공략해 본 놈이라면 더더욱.
‘내가 X신도 아니고.’
경쟁자 손에 그룹 생사여탈권을 주는 것은 바보짓이다.
‘하지만 경쟁자 입장에선 더없이 이득이지.’
그래서 이놈도 제안한 것일 터다.
나는 작년 연말, 시상식에서 청려의 기묘한 문자를 떠올렸다.
영상이 첨부된.
-동영상은 웬 모르는 개가 망가진 방석 대신 새로운 방석을 선물 받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방석.
‘새 회사, 새집이란 뜻이었나.’
어쩌면 그때부터 T1 돌아가는 판을 얼추 파악한 채로 각을 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X발 정보력에서 밀린다는 게 열받긴 하지만, 어쨌든 저놈의 행동 양식은 명백했다.
‘계산한 거다.’
이 새끼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당연히 이득 보려고 제안한 거란 뜻이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전히 똑똑하네.
모르는 게 멍청한 거 아니냐.
-음, 그래도 후배님이 걱정할 건 없는데. 해 될 일을 할 생각은 없거든요.
“VTIC과 테스타 양자택일 순간이 와도?”
-그럴 리가요. 서로 방해하지 않게 좋은 스케줄을 고를게요. 그러면 후배님은 좋은 소속사를 가지는 것뿐이죠.
“…….”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치열하고 짧게 머리를 굴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
사실상 항복선언처럼 들렸을 것이다.
놈의 말투가 더 사근사근해졌다.
-잘 생각했어요.
“그런데 몸값 좀 올리게 소문 좀 내주시면 안 됩니까.”
-음?
“테스타가 재계약 안 할 것 같다는 관계자발 루머요.”
회사가 의심하지 않도록, 그냥 찌라시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반신반의할 수 있으면 최고다.
나는 덤덤히 근거를 붙였다.
“경쟁이 좀 붙어야 LeTi에서도 뭘 좀 더 챙겨 주지 않겠습니까. 계약 조건을 잘 받으려면 그게 최고일 것 같아서.”
-음.
청려는 알겠다는 듯이 짧게 수긍했다.
‘좋아.’
이대로 소문이 나면….
-후배님. 올 생각 없구나.
“…….”
귀신같은 새끼.
‘바로 알았냐.’
그렇다.
웬만하면 LeTi에 갈 생각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짓이다.
저놈이 이제 와서 오함마 들고 설치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관리의 측면이다.
게다가 생각해 봐라. 테스타가 데뷔 초부터 개같이 싸우던 VTIC 소속사인 LeTi행?
‘팬들 속이 다 썩어나겠군.’
내가 하는 생각을 다 똑같이 할 텐데, 기왕이면 더 좋은 옵션을 고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
‘이거 소문내는 걸로 딜 좀 보려면 뭘 걸어야겠는데.’
일단 간 좀 볼까.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입을 열려 했으나, 통화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좋아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
놀랍게도 선선히 수긍한 것이다.
물론 그게 본론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제안은 재계약 전까지 유효하다는 건 꼭 기억해 뒀으면 하는데.
“예. 그러겠습니다.”
역시 저 말을 할 추진력을 얻기 위해 순순히 받았군. 하지만 기꺼이 수긍해 주마.
그렇게 납득하고 있었는데, 청려가 뜬금없이 말을 바꿨다.
-음.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긴 하네요.
“무슨….”
소리냐.
그러자, 스마트폰 너머로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컨택이 들어올수록 생각날 테니까. 이 제안이.
“…….”
-계약 조건은 메일로 보내줄게요. 다시 한번, 축하해요 후배님.
그리고 며칠 후, 크고 작은 기획사들로부터 은근한 연락이 시작되었다.
* * *
“문대 말대로, 진짜 꽤 오는구나.”
“…그러게.”
멤버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들의 인맥을 통해 넘어온 제안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일단 배세진 쪽으로 온 건 배우부터 아이돌까지 넓게 관리하는 몇몇 기획사다.
류청우는 리더라서 그런지 특히 컨택이 많았고, 큰세진은 본래 아이돌들이 재계약할 때 많이 고르는 적당한 기획사가 많다.
‘인맥 성격들이 보이는군.’
그리고 김래빈은….
“…? 힙합 레이블입니다. 어째서 여기서 제안을…?”
“음, 아이돌 그룹에 야망이 생기셨나?”
김래빈을 거의 막내 취급하는 AR팀 쪽 인맥이라는데 내 스마트폰을 걸겠다.
‘그리고 나는….’
내 쪽으로도 연락이 좀 오긴 했는데, 어째 악연들이 많군.
‘이 자식들도 보냈네.’
골드 1과 최원길이 소속된 골든 에이지 그룹. 산업 스파이로 난리 났던 거기 말이다.
나는 ‘안녕하세요. 트레블러 엔터테인먼트 박민정 팀장입니다. 지난 일에 대하여 다시 사과드리고…….’로 시작하는 장문의 카톡 팝업을 클릭하지 않고 읽었다.
좀 빡치긴 하지만, 확실히 일은 잘하는 기획사라 기억은 해두기로 했다.
‘테스타가 가면 골든에이지와 포지션과 연차가 딱 맞아떨어져서 개판이 될 거라는 게 마이너스 요소….’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옆에서 질문이 들렸다.
“그런데 문대문대, 무슨 방법으로 소문을 낸 거야?”
“…….”
“응?”
이제는… 공유해야 할 때가 됐군.
나는 며칠 전 받았던 권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Le, LeTi??”
“…청려, 선배님이…….”
“저 거기 싫어요. [제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음침한 것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진지하게, 거길 고려하는 건 아니죠, 형?]”
차유진이 이렇게 길고 총명하게 이야기할 줄이야.
나는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안 간다고 했어. 그래도 고려해 본다고 하니까 소문은 내준 거고.”
“후.”
큰세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나도 미간을 눌렀다.
“애초에 다 같이 옮길 건데 나 혼자 가겠다고 결론 내렸겠냐. 당연히 상의해 봐야….”
“자자~ 지금 투표 부치죠! LeTi 별로 안 가고 싶은 분?”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어어, 문대 안 들어?”
든다, 새끼야.
그렇게 화끈하게 ‘LeTi 안 가’ 결론이 난 거실 한복판에서, 김래빈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내게 작게 물었다.
“…좋은 소속사로 기억합니다만, 아닙니까?”
“…….”
과연, 머리부터 말끝까지 LeTi 취향일 만한 놈이었다.
그 후로도 몇 군데에서 유의미한 접촉이 있긴 했지만, 문제는 슬슬 타임 리미트가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빨리 골라야 하는데.’
멤버 각자마다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그걸 다 충족하는 기획사가 몇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단점이 있거나 위험한 요소가 꼭 있다.
너무 작아서 케어가 힘들겠거나, 너무 커서 이미 같은 포지션 남자 아이돌을 보유하고 있거나, 너무 개성이 강해서 테스타를 감당 못 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니 첫 타부터 독립 레이블 들고 온 LeTi가 선녀는 확실히 선녀였다.
‘X발.’
나는 머리를 헤집었다. 청려가 괜히 자신 있어 하던 게 아니었군.
‘그래, 막말로 LeTi에 간다고 치자.’
그래봤자… 근본적인 문제는 어딜 가든 해결이 불가능하다.
‘…테스타 이름.’
그 이름, 그룹 컨셉. 이 모든 상표권과 저작권은 이미 이 T1 Stars라는 소속사가 쥐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저… 아직, 정리 중이야?”
“음.”
선아현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마구잡이로 키워드를 적어놓은 종이를 옆으로 치웠으나, 녀석이 이미 본 모양이다.
-테스타 이름 계속
…이 키워드를 말이다.
“이름, 계속 쓰고 싶어서… 고민 중인 거구나.”
“…….”
“그, 회사랑 잘 이야기해 보면, 정말 안 될까…? 우리가, 권리를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좋겠지.”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안 줄 것이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내놓아도 가능성은 적다.
결정자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이해 관계자가 엮여 있으니까.
나는 그 부분을 선아현에게 설명했다. 선아현은 차분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렵더라도, 시도는… 해보자.”
“……그래.”
“으응. 어쩌면, 회사에 다른 사정이 생겨서, 허락해 주실 수도 있고…!”
“…….”
다른 사정?
그 순간, 번개같이 머리를 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다.
‘상표권을 안 팔아?’
그러면… 팔도록 ‘다른 사정’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맙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거든.”
“…으응?”
나는 의아한 표정이 된 선아현에게 편안히 말했다.
“이 회사가 망해야 해.”
“…!?”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니.
“무, 문대야?”
고맙다. 선아현.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두 녀석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같은 처지인 소속사 그룹 녀석들이었다.
-스페이서 권희승 : ???
-스페이서 권희승 : 이 단톡방 정체가 뭔가여
-스페이서 권희승 : 혹시 예능?
-미리내 박민하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타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 회사 좋아하시나요
먹을 게 없으면 초가삼간이라도 팔아치우겠지.
‘밥줄을 다 끊자.’
답은… 회사 멸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