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5화
“…….”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원룸 현관문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분명히 이중으로 잠금을 해두고 촬영을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잠금이 다 풀려 있다?
‘올 것이 왔군.’
유명세가 생기면 따라오는 문제. 사생활 침해 편이다.
이미 걱정했던 문제긴 했다. 금전상 다른 대책이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던 거지.
‘…일단, 안에 중요한 물건은 없다.’
별로 산 것도 없고, 옷도 촬영 때문에 이미 다 챙겨왔기 때문에 원룸에 가치 있는 건 전무 했다.
‘그럼 이대로 조용히 나가서…….’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선아현]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문제를 깨달았다.
여기 원룸 벽이 종잇장 수준이라 방음이 안 된다.
‘X 됐다.’
나는 황급히 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당장 비상구 쪽으로 달렸다.
비상구 앞 모퉁이에서 꺾어서 사각지대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틈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가, 주변을 살피고 들어가는 웬 여자의 뒤통수를 보았다.
세상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데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있다는 게 문제지.
식은땀이 흘렀다.
‘돌겠네.’
나는 우선, 비상구 밖 계단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것은 화면에 뜬 그대로 선아현이었다.
-무, 문대야 저기… 아직 식사 안 했어?
“안 했는데, 지금 내가 밥 먹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어, 어?
“집에 누가 무단침입해 있어.”
-허, 헉.
전화기 뒤로 숨을 삼키는 선아현의 목소리와 무슨 일이냐며 묻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라면 대충 둘러대고 끊었겠지만, 지금은 귀찮다고 얼버무릴 상황이 아니었다.
‘경찰서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해야겠군.’
112에 신고했다가 경찰차라도 출동하면 동네가 소란스러워질 테고, 자칫하면 괜히 이상한 루머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이제 막판인데 괜한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직접 가서 상황 설명하고 조용히 인계할 생각이었다.
‘택시 부르다가 한세월은 걸릴 줄 알았는데 차라리 잘됐어.’
-자, 잠깐. 우, 우리 바로 갈게. 바로 내려와! 시, 신고해야…….
“내가 직접 가서 하려고. 미안한데 경찰서까지만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
-다, 당연하지!
나는 선아현과 통화하며 바로 계단으로 내려갔다.
정말 별일을 다 겪는구나 싶었다.
* * *
이후 일은 다행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보다 더 식겁한 선아현과 부모님이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준 덕에 곧바로 신고를 진행할 수 있었다.
-네? 아, 여자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경찰은 좀 시큰둥한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출동은 해줬다.
그리고 밝혀진 전말은 이렇다.
‘설마 한 명이 아닐 줄이야.’
원룸 안에 있던 것은 총 4명이었다.
그들은 함께 집을 뒤진 뒤 식기와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챙겨 쓰고 있었다.
이미 다른 아이돌을 스토킹한 전적이 있는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내 뒤를 밟은 뒤, 방범이 허술한 원룸에 침입한 모양이었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어깨를 주물렀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그다지 체포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동네 뽑기 운이 나빴나.’
발각된 4명도 긴장한 기색 없이 나한테 자꾸 말을 붙이려고 들며 실실 웃었다.
-야!
-문대야, 안 들려?
-너 귀 들리잖아. 대답 좀 해봐~
-박문대!
‘대충 훈방 아니면 벌금이겠군.’
진짜 원룸 안 옮기면 큰일 날 것 같다.
“무, 문대야. 괜찮아?”
“어? 아. 괜찮아.”
선아현은 안절부절 젓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내가 밥을 얻어먹는 입장이라 민망할 정도였다.
일이 끝나고 들은 사정은 이렇다.
-그, 근처에서 외식하기로 했는데, 너, 너도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아. 그래서 전화한 거구나.
-으응!
덕분에 지금 선아현네 외식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이 집 갈비 잘하네.’
나는 묵묵히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잠을 못 잤으니 먹기라도 잘 먹어야겠다.
“세상에, 요새 진짜 이상한 사람들 많아. 어떻게 그런 짓을….”
“우선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게 좋지 않겠니?”
선아현 부모님은 많이 놀랐는지 이 대화 패턴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계신다.
흠.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오늘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데다가 밥까지 얻어먹고 있는데 최소한 답변이라도 성실하게 하는 성의는 보여야겠지.
“예전에 사고가 좀 있어서… 부모님 안 계십니다.”
헙. 숨을 들이 삼킨 선아현의 아버지를 흘겨보며 어머니 쪽이 조용하게 물었다.
“따로 연락할 어른 계시니?”
“특별히… 떠오르는 분은 없습니다.”
내가 박문대 몸에 들어와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있지만, ‘박문대’도 딱히 보호자가 있는 흔적은 없었다.
‘이렇게 보니 진짜 비슷하군.’
지금 보니 좀 흥미로웠다.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온 이유 중에 배경의 유사성도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식탁 위 분위기가 늪처럼 가라앉고 있었으니 수습부터 하자.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건 아니고요. 여러 사정이 겹쳐서 이렇게 된 거라……. 지금도 지내는 데 특별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니?”
“네.”
선아현의 어머니는 괜한 호들갑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래. 혼자 지내면 이것저것 할 게 많아서 바쁠 텐데, 그동안 우리 아현이 잘 챙겨줘서 참 고맙다.”
“아뇨. 제가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
이쯤에서 선아현이 펄쩍 뛰면서 부정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었다. 돌아보니 선아현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기를 열심히 뒤집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내가 부모님 없는 걸 몰랐나?’
생각해 보니 제작진한테만 이야기하고, 그 후로 방송에서 다룬 적이 없었다.
그럼 꽤 놀랐을 것 같은데, 선아현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저런 반응을 원하나 보군.’
이제 보니까 어쩌면 촬영 초기에 선아현이 ‘박문대’를 졸졸 따라다닌 것도 저기서 이유가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첫 등수 평가에서 선아현의 증상을 적당히 넘기고 리액션했기 때문인가.’
추측이 대충 짜임새는 맞았다.
‘뭐 중요한 추리는 아니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고기나 더 주워 먹었다. 일단 다른 방도가 없으니 오늘은 그 원룸에서 보내고, 내일 바로 어디라도 구해봐야겠다.
그러나 식사 직후 뜻밖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거, 거기에 다시?”
“잡혀갔으니까 최소한 오늘은 안 오겠지.”
“그, 그래도…….”
일단 원룸에 돌아갈 예정이라는 말에 기겁한 선아현과 가족들이 수군거리더니, 다음 촬영 때까지 선아현의 자취 집에 얹혀살 수 있게 됐다.
“……?”
뭔진 모르겠지만 개이득이니 입 다물고 따라가도록 하자.
* * *
박문대가 뜻밖의 거주지 등급 업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즈음, 인터넷에서는 방청을 마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스포일러를 풀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잘 나가는 탓에, 이쯤 되니 더 이상 발설 금지 조항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언급량이 많았던 것은 개인으로는 단언 차유진이었으나, 팀으로는 팀이 압도적이었다.
-그걸 오프닝에 꽂냐 다음 팀이 불쌍했음
-등수 높은 건 이유가 있더라! 다 존잘이었당
-무대 나오면 인터넷 뒤집어진다에 건다ㅋㅋ
-선아현 왜 욕먹음? 개 잘하던데
팀 소속 참가자 팬들의 여론몰이라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누르려는 사람도 많았으나, 방청 인증이 속속들이 올라오자 슬그머니 악담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 본인도 지인도 방청에 당첨되지 못해 종일 넋을 놓고 있던 박문대의 네임드 팬 계정 운영자가 있었다.
첫 팀전에 카메라를 몰래 숨겨갔다가 박문대에 정착한 바로 그 사람이다.
‘내 인맥이 이렇게 부족했던가.’
아직 팬덤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바이벌 참가자라, 네임드 계정으로서 최대한 친목질을 자제했더니 돌아온 것은 정보전 패배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현재 인기글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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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 갔다 왔다. (사진 有) (361)]
: 이런 거 된 적이 처음이라 두근거리면서 다녀왔는데 진짜 문대 얼굴 본 것만으로도 가치가 차고 넘쳤다ㅠㅠ
문대 첫 번째 팀으로 나왔는데 토끼 탈 쓰고 한복 입었어. 퓨전 판타지 사극 등장인물 같더라. 존멋이라 견디지 못하고… 살짝 찍었음ㅠㅠ
그리고 무대 방송빨이라는 거 진짜 개소리임 너무 잘해서 아직도 심장 두근거려ㅠㅠ
노래 진짜 탈 인간급으로 잘하고 춤도 잘만 추던데 못 한다고 염불 외는 애들은 대체 뭘 보고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밑으로 자세한 감상 적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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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글을 한 자씩 정독하다가, 사진을 찍었다는 말에 참지 못하고 스크롤을 확 내렸다.
밑에 토끼 탈을 비스듬히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박문대의 상반신 사진이 있었다.
“악!!”
별빛이 빛나는 검은 배경에 군청색 두루마기를 걸친 금발의 박문대는 진짜 더럽게 잘생겨서 그녀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데이터를… 사야 하나.’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데이터 파는 놈들도 법적 문제가 생길까 봐 보통 이런 건 방영 이후에나 팔았다.
빨라도 9화 예고편, 늦으면 10화 본방에서나 볼 수 있는 저 모습을 상상할수록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광고, 광고나 보자…….”
그녀는 막방 전에 올릴 새로운 광고 시안을 화면에 띄우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아니, 근데 이 광고에도 저 때 사진을 쓰면! 좋을 텐데!’
그리고 다시 울부짖으며 SNS에 접속했다.
방청 후기를 검색하는 그녀의 일과는 9화 예고편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선아현 자취 집에 얹혀사는 것은 원룸에서 살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을 제공했다.
물론 중간에 원룸 주인과 훼손된 현관문 잠금장치 보상 문제로 골 아픈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야 박문대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연례행사로 일어났던 일이니 딱히 기분 상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건 곰팡이 없는 방에서 잔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음이 좋아서 귀마개 없이 잘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소음 없는 환경에 대한 즐거움은 오늘 누릴 수 있는 이점은 아니었다.
“아니, 니들끼리만 재밌게 지내고 있었다니!”
큰세진이 놀러 왔기 때문이다.
오늘 9화를 같이 시청하자며 동갑 단체방에 떠들던 큰세진은, 내가 선아현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에 급발진하더니 기어코 아침부터 쳐들어왔다.
“어, 어서 와!”
선아현은 그저 즐거워 보였다. 집주인이 좋다니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는 뜻이다.
큰세진은 히죽히죽 웃으며 거실로 들어오더니, 챙겨온 보드게임을 꺼냈다.
…정말 본격적으로 놀 생각이 만만한 것 같았다.
지이이잉.
“박문대 연락 오는 거 아냐?”
“어. 맞네.”
나는 식탁에 둔 스마트폰이 울리는 것을 확인했다.
[김래빈 : 안녕하세요 형. 오늘 9화가 방영되는 날입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함께 시청할 수 있을까요?]
음, 어차피 같은 팀이니 여기 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큰세진이 있는 시점에서 조용한 시청은 글렀으니 괜찮겠지.
“래빈이가 9화 같이 보자는데 부를까?”
“어? 찬성~”
“조, 좋지!”
곧바로 만장일치가 나오는군.
나는 별생각 없이 김래빈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약간의 텀을 두고 답장이 왔다.
[김래빈 : 저… 차유진도 있는데, 같이 시청해도 괜찮을까요?]
“…….”
야, 그건 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5화
“…….”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원룸 현관문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분명히 이중으로 잠금을 해두고 촬영을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잠금이 다 풀려 있다?
‘올 것이 왔군.’
유명세가 생기면 따라오는 문제. 사생활 침해 편이다.
이미 걱정했던 문제긴 했다. 금전상 다른 대책이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던 거지.
‘…일단, 안에 중요한 물건은 없다.’
별로 산 것도 없고, 옷도 촬영 때문에 이미 다 챙겨왔기 때문에 원룸에 가치 있는 건 전무 했다.
‘그럼 이대로 조용히 나가서…….’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문제를 깨달았다.
여기 원룸 벽이 종잇장 수준이라 방음이 안 된다.
‘X 됐다.’
나는 황급히 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당장 비상구 쪽으로 달렸다.
비상구 앞 모퉁이에서 꺾어서 사각지대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틈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가, 주변을 살피고 들어가는 웬 여자의 뒤통수를 보았다.
세상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데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있다는 게 문제지.
식은땀이 흘렀다.
‘돌겠네.’
나는 우선, 비상구 밖 계단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것은 화면에 뜬 그대로 선아현이었다.
-무, 문대야 저기… 아직 식사 안 했어?
“안 했는데, 지금 내가 밥 먹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어, 어?
“집에 누가 무단침입해 있어.”
-허, 헉.
전화기 뒤로 숨을 삼키는 선아현의 목소리와 무슨 일이냐며 묻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라면 대충 둘러대고 끊었겠지만, 지금은 귀찮다고 얼버무릴 상황이 아니었다.
‘경찰서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해야겠군.’
112에 신고했다가 경찰차라도 출동하면 동네가 소란스러워질 테고, 자칫하면 괜히 이상한 루머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이제 막판인데 괜한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직접 가서 상황 설명하고 조용히 인계할 생각이었다.
‘택시 부르다가 한세월은 걸릴 줄 알았는데 차라리 잘됐어.’
-자, 잠깐. 우, 우리 바로 갈게. 바로 내려와! 시, 신고해야…….
“내가 직접 가서 하려고. 미안한데 경찰서까지만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
-다, 당연하지!
나는 선아현과 통화하며 바로 계단으로 내려갔다.
정말 별일을 다 겪는구나 싶었다.
* * *
이후 일은 다행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보다 더 식겁한 선아현과 부모님이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준 덕에 곧바로 신고를 진행할 수 있었다.
-네? 아, 여자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경찰은 좀 시큰둥한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출동은 해줬다.
그리고 밝혀진 전말은 이렇다.
‘설마 한 명이 아닐 줄이야.’
원룸 안에 있던 것은 총 4명이었다.
그들은 함께 집을 뒤진 뒤 식기와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챙겨 쓰고 있었다.
이미 다른 아이돌을 스토킹한 전적이 있는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내 뒤를 밟은 뒤, 방범이 허술한 원룸에 침입한 모양이었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어깨를 주물렀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그다지 체포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동네 뽑기 운이 나빴나.’
발각된 4명도 긴장한 기색 없이 나한테 자꾸 말을 붙이려고 들며 실실 웃었다.
-야!
-문대야, 안 들려?
-너 귀 들리잖아. 대답 좀 해봐~
-박문대!
‘대충 훈방 아니면 벌금이겠군.’
진짜 원룸 안 옮기면 큰일 날 것 같다.
“무, 문대야. 괜찮아?”
“어? 아. 괜찮아.”
선아현은 안절부절 젓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내가 밥을 얻어먹는 입장이라 민망할 정도였다.
일이 끝나고 들은 사정은 이렇다.
-그, 근처에서 외식하기로 했는데, 너, 너도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아. 그래서 전화한 거구나.
-으응!
덕분에 지금 선아현네 외식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이 집 갈비 잘하네.’
나는 묵묵히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잠을 못 잤으니 먹기라도 잘 먹어야겠다.
“세상에, 요새 진짜 이상한 사람들 많아. 어떻게 그런 짓을….”
“우선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게 좋지 않겠니?”
선아현 부모님은 많이 놀랐는지 이 대화 패턴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계신다.
흠.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오늘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데다가 밥까지 얻어먹고 있는데 최소한 답변이라도 성실하게 하는 성의는 보여야겠지.
“예전에 사고가 좀 있어서… 부모님 안 계십니다.”
헙. 숨을 들이 삼킨 선아현의 아버지를 흘겨보며 어머니 쪽이 조용하게 물었다.
“따로 연락할 어른 계시니?”
“특별히… 떠오르는 분은 없습니다.”
내가 박문대 몸에 들어와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있지만, ‘박문대’도 딱히 보호자가 있는 흔적은 없었다.
‘이렇게 보니 진짜 비슷하군.’
지금 보니 좀 흥미로웠다.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온 이유 중에 배경의 유사성도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식탁 위 분위기가 늪처럼 가라앉고 있었으니 수습부터 하자.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건 아니고요. 여러 사정이 겹쳐서 이렇게 된 거라……. 지금도 지내는 데 특별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니?”
“네.”
선아현의 어머니는 괜한 호들갑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래. 혼자 지내면 이것저것 할 게 많아서 바쁠 텐데, 그동안 우리 아현이 잘 챙겨줘서 참 고맙다.”
“아뇨. 제가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
이쯤에서 선아현이 펄쩍 뛰면서 부정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었다. 돌아보니 선아현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기를 열심히 뒤집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내가 부모님 없는 걸 몰랐나?’
생각해 보니 제작진한테만 이야기하고, 그 후로 방송에서 다룬 적이 없었다.
그럼 꽤 놀랐을 것 같은데, 선아현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저런 반응을 원하나 보군.’
이제 보니까 어쩌면 촬영 초기에 선아현이 ‘박문대’를 졸졸 따라다닌 것도 저기서 이유가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첫 등수 평가에서 선아현의 증상을 적당히 넘기고 리액션했기 때문인가.’
추측이 대충 짜임새는 맞았다.
‘뭐 중요한 추리는 아니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고기나 더 주워 먹었다. 일단 다른 방도가 없으니 오늘은 그 원룸에서 보내고, 내일 바로 어디라도 구해봐야겠다.
그러나 식사 직후 뜻밖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거, 거기에 다시?”
“잡혀갔으니까 최소한 오늘은 안 오겠지.”
“그, 그래도…….”
일단 원룸에 돌아갈 예정이라는 말에 기겁한 선아현과 가족들이 수군거리더니, 다음 촬영 때까지 선아현의 자취 집에 얹혀살 수 있게 됐다.
“……?”
뭔진 모르겠지만 개이득이니 입 다물고 따라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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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대가 뜻밖의 거주지 등급 업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즈음, 인터넷에서는 방청을 마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스포일러를 풀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잘 나가는 탓에, 이쯤 되니 더 이상 발설 금지 조항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언급량이 많았던 것은 개인으로는 단언 차유진이었으나, 팀으로는 팀이 압도적이었다.
-그걸 오프닝에 꽂냐 다음 팀이 불쌍했음
-등수 높은 건 이유가 있더라! 다 존잘이었당
-무대 나오면 인터넷 뒤집어진다에 건다ㅋㅋ
-선아현 왜 욕먹음? 개 잘하던데
팀 소속 참가자 팬들의 여론몰이라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누르려는 사람도 많았으나, 방청 인증이 속속들이 올라오자 슬그머니 악담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 본인도 지인도 방청에 당첨되지 못해 종일 넋을 놓고 있던 박문대의 네임드 팬 계정 운영자가 있었다.
첫 팀전에 카메라를 몰래 숨겨갔다가 박문대에 정착한 바로 그 사람이다.
‘내 인맥이 이렇게 부족했던가.’
아직 팬덤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바이벌 참가자라, 네임드 계정으로서 최대한 친목질을 자제했더니 돌아온 것은 정보전 패배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현재 인기글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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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거 된 적이 처음이라 두근거리면서 다녀왔는데 진짜 문대 얼굴 본 것만으로도 가치가 차고 넘쳤다ㅠㅠ
문대 첫 번째 팀으로 나왔는데 토끼 탈 쓰고 한복 입었어. 퓨전 판타지 사극 등장인물 같더라. 존멋이라 견디지 못하고… 살짝 찍었음ㅠㅠ
그리고 무대 방송빨이라는 거 진짜 개소리임 너무 잘해서 아직도 심장 두근거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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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 자세한 감상 적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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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토끼 탈을 비스듬히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박문대의 상반신 사진이 있었다.
“악!!”
별빛이 빛나는 검은 배경에 군청색 두루마기를 걸친 금발의 박문대는 진짜 더럽게 잘생겨서 그녀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데이터를… 사야 하나.’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데이터 파는 놈들도 법적 문제가 생길까 봐 보통 이런 건 방영 이후에나 팔았다.
빨라도 9화 예고편, 늦으면 10화 본방에서나 볼 수 있는 저 모습을 상상할수록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광고, 광고나 보자…….”
그녀는 막방 전에 올릴 새로운 광고 시안을 화면에 띄우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아니, 근데 이 광고에도 저 때 사진을 쓰면! 좋을 텐데!’
그리고 다시 울부짖으며 SNS에 접속했다.
방청 후기를 검색하는 그녀의 일과는 9화 예고편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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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현 자취 집에 얹혀사는 것은 원룸에서 살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을 제공했다.
물론 중간에 원룸 주인과 훼손된 현관문 잠금장치 보상 문제로 골 아픈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야 박문대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연례행사로 일어났던 일이니 딱히 기분 상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건 곰팡이 없는 방에서 잔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음이 좋아서 귀마개 없이 잘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소음 없는 환경에 대한 즐거움은 오늘 누릴 수 있는 이점은 아니었다.
“아니, 니들끼리만 재밌게 지내고 있었다니!”
큰세진이 놀러 왔기 때문이다.
오늘 9화를 같이 시청하자며 동갑 단체방에 떠들던 큰세진은, 내가 선아현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에 급발진하더니 기어코 아침부터 쳐들어왔다.
“어, 어서 와!”
선아현은 그저 즐거워 보였다. 집주인이 좋다니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는 뜻이다.
큰세진은 히죽히죽 웃으며 거실로 들어오더니, 챙겨온 보드게임을 꺼냈다.
…정말 본격적으로 놀 생각이 만만한 것 같았다.
지이이잉.
“박문대 연락 오는 거 아냐?”
“어. 맞네.”
나는 식탁에 둔 스마트폰이 울리는 것을 확인했다.
음, 어차피 같은 팀이니 여기 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큰세진이 있는 시점에서 조용한 시청은 글렀으니 괜찮겠지.
“래빈이가 9화 같이 보자는데 부를까?”
“어? 찬성~”
“조, 좋지!”
곧바로 만장일치가 나오는군.
나는 별생각 없이 김래빈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약간의 텀을 두고 답장이 왔다.
“…….”
야, 그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