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4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6화
[저 형, 그런데 왜 주단 님이세요?]
VTIC 주단.
갑자기 왜 뜬금없이 이놈이 사용할 뇌 리스트에서 튀어나왔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후보가 별로 없다.’
[……앗.]
애초에 내가 사정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몸이 바뀌어서 과거로 돌아오고 시스템이 어쩌고…. 이 정신 나간 말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큼 내가 멍청한 놈도 아니고.
사건에 휘말려서 어쩔 수 없이 약간 상황을 공유한 놈들만 소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 이런 쪽에 가장 거부감 없어 보이던 놈이지.’
좀… 특이한 놈이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주단에게 연락해 봤다는 거다.
나는 우선 예의상 근황을 물었다.
“군 생활은 어떠십니까, 선배님.”
-징병제의 효율성 문제로 할 이야기가 제법 있긴 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음, 예.”
저놈이 과연 부대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 슬슬 궁금해지는군.
하지만 내 문제나 신경 쓰기로 했다.
어디 보자….
‘생활관일 테니까 주변에서 엿듣고 있는 녀석들이 있겠지.’
연예인 통화, 안 그런 척해도 누구라도 들리면 관심 가지 않겠는가.
주제를 오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 ‘게임’을 하다가 이 ‘시스템’ 관련해서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렸는데요.”
나는 몇 번 더 ‘취미 생활 때문에 가볍게 연락함, 심리 테스트 같은 가정법임’ 밑밥을 깐 다음에야 시스템 문제를 꺼냈다.
대충 요약하자면 미션 실패로 몸이 바뀌고, 이러이러한 상태 문구가 떴다는 건데….
몇 가지 질의 문답을 주고받던 놈은 결국 이렇게 반응했다.
-바디 스위칭… 로맨틱코미디 클리셰군요. 제가 정통한 류는 아니죠.
“…….”
끊을까?
‘참는다.’
이놈 뇌를 써야 하니 한번은 참는다.
“제3자의 독특한 입장이 듣고 싶었던 거니 오히려 좋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후, 주단은 대뜸 말했다.
상상도 안 해본 발상을.
-혹시 애당초 미션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은 고려해 보셨습니까?
뭐?
* * *
그 후 며칠.
테스타의 컴백 막바지 준비는 큰 잡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원래는 간만의 앨범이니 힘 빡줘서 세게 가려고 했지만, 지난 앨범도 상당히 강했던 ‘Savior’였던 것을 감안해서 마니악한 농도는 낮췄다.
‘해태 컨셉이었잖아.’
그런 걸 또 들고나오려면 한번 템포 조절이 필요하지.
미니 앨범 볼륨으로 대중성 있는 스타일리쉬한 곡.
그래서 컨셉은….
“미국 공립고등학교풍 하이틴!”
아이돌의 정석이다.
…그래, 거짓말하진 않겠다.
아직 안 뻔뻔하게 할 수 있을 나이일 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했다.
“아~ 우리도 이런 걸 자연스럽게 소화할 나이가 얼마 안 남았나. 흑흑, 너무 슬프다. 관리 더 잘해야겠어요~”
“30대 배우들도 고등학생 배역 잘만 하잖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
“아아… 음, 넵. 그렇죠.”
참고로 이 티키타카 안 되는 상황은 선아현이 수습했다.
“다, 다들 의상도 잘 어울리고, 고등학생 같았어요…! 무대도, 멋질 거예요.”
“아~ 맞아, 그거는 장담할 수 있지!”
그래. 제대로 만들긴 했거든.
[오… 이렇게까지 유치할 필요는 없는데.]
뮤직비디오와 무대 고증에 차유진 선생을 모셨다. 아주 배역까지 신나서 정해주더라.
모든 것이 일정대로 착착 진행됐었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문대문대, 그 바뀌는 문제는….”
“지금은 신경 안 써도 돼. 조금만 기다려.”
“…오케이.”
그리하여 컴백 준비는 매끄럽게 잘 흘러갔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상태창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이것을 본 날.
[돌발!]
상태이상?미션 실패 : 원상 복귀 (2)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원상으로
: 다음 시작까지 D-?
나는 정보를 깨달았다.
‘큰달.’
[네??]
나는 심호흡했다.
“바뀌는 날짜 알았다.”
[…!!]
“상태창 봐. ‘D-??’이 ‘D-?’로 변한 거 보이지.”
나는 손가락으로 집었다.
하나씩 카운트다운 되는데 두 자릿수가 한 자릿수로 변했다는 뜻은 하나다.
10에서 9로 넘어온 것.
“9일 남았다.”
그리고 지난번과 비슷한 시간대라면….
“아마도… 그날 밤 11시 경일 확률이 가장 높겠지.”
1월 21일 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컴백 무대를 하기 전인 시기였다. 나는 열심히 당일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돌려보았다.
[그러면… 그때 맞춰서 스케줄을 빼주시는 건가요?]
“…….”
여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아니, 그러면 안 돼.”
[…!]
“나는 류건우로 출근하고, 너는 박문대로 스케줄을 소화한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게 우리가 당일에 해야 할 일이야.”
[왜, 왜요?]
“그게 미션 실패 효과를 끝낼 방법 같으니까.”
나는 며칠 전 주단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뜬금없는 말을.
-…미션이 없다?
-예. 원흉을 제거하려고 했더니 사실 원흉이란 없었다는, 공허한 서사죠. 이젠 너무 흔해서 클리셰를 깨는 클리셰가 되어버리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그… 괴랄한 논리는 동의 못 했다.
그러나 그 문장 자체는, 듣는 순간 갑자기 어떤 생각을 번뜩 떠오르게 했다.
“네가 내 상태이상 실패를 미션 실패로 바꿔 줬었지. 그러니까, 시스템은 애초에 미션이라는 걸 고려한 적이 없어. 원래는 그냥 상태 이상이었지.”
그리고.
“본래 ‘미션’이란 건… 내가 보상 타 먹으려고 내 마음대로 상태창을 통해 정하는 목표를 의미하는 거야.”
이놈이 준 특성, ‘미션 체질’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너는 애초에 그걸 만들 수가 없잖아.”
팝업이 잠시 멈췄다.
“넌 상태창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큰달에겐 미션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미션은…… 없는 거네요.]
그래.
‘미션 자체가 없다가, 미션 실패가 뜨는 순간 억지로 있었던 게 되어버리는 거지.’
무작정 대체하다 보니까, 알고리즘 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무조건 미션 실패는 발생하는 거야.”
없는 미션을 해결하는 대신.
“실패 효과가 발생했을 때, 목표 대상을 해제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배님 이론대로라면, 결국 건물 탈출 게임 때 했던 게 맞는 공략법 같습니다.
내가 무너지는 건물에서 탈출해서, 시스템의 ‘목표 대상’이 상실됐던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없는 미션을 추측할 게 아니라, 미션 실패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중점으로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굉장히 뻔하게 정황이 딱 드러나더란 말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몸 바뀌고 뭘 했는지 기억해?”
[어, 저는 테스타로 지내고, 형은 로드 매니저로 따라 와주셨고….]
“그렇지.”
그러니까, 이걸 다시 설명하자면 말이다.
“너는 ‘박문대’의 원래 일상을 제대로 살아낸 거고, 나는 ‘류건우’의 원래 일상에서 탈주한 거지.”
[…!]
“그래서 박문대만 목표 대상에서 해제된 것 같아.”
이렇게 말이다.
[목표 대상 ‘박문대 (1 / 2)’?상실]
[해제 진행 중]
[남은 목표 : 류건우 (2 / 2)]
그럼 이제 목표는 뻔하다.
“우리가 안 바뀐 채로 각자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목표 대상을 잃게 하면 돼.”
큰달은 잠시 답변이 없었다.
그리고 곧 팝업이 떴다.
[그럼 저는 한 번 더 테스타 박문대로, 형은 공무원 류건우로 지내는 걸로요…!]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다.’
완벽한 결론이 나오니 후련했다. 시기도 딱 잡혔고.
‘이제 제대로 수행만 하면….’
[와, 형이 주단님께 연락한 건 진짜 현명한 판단이셨던 것 같아요! 주단 님 좋은 분 같아요!]
“…….”
흠.
그건… 좀.
나는 그놈에게 괜찮은 답변을 들은 후, 제법 호의적으로 ‘요새 군대에서 어떤 걸그룹이 인기 있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이런 답을 들었다.
-모르겠는데요. 일과 후 각자 스마트폰으로 현대문명에 접속할 수 있는데 굳이 TV 같은 매스미디어에 다 같이 몰두할 일이 없는 거죠.
-…….
-물론 보안을 위해 쓸 수 있는 범위를 통제당하긴 합니다만.
-예.
스마트폰을 써서 개꿀이라 전처럼 TV로 보는 걸그룹 자체가 대세 아니라는 말을 이렇게 하는 놈이 있다니.
-아, 재현 형에게 안부 전해주시죠.
게다가 이건 나한테 왜 말했는지 모르겠다. 너희 그룹 리더 아니냐.
아무튼, 뭐… 청려야 굳이 연락 안 해도 어디서 보게 될 것이다. 시상식 시즌이니까.
나는 주단과 했던 말의 회상을 끝내며, 한숨을 참았다.
“…도움이 됐지. 그래. 그래서 21일 밤에 우리가 바뀌면, 내가 22일에 출근해서 할 일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둬야 할 것 같은데.”
[아, 저 그날은 출근 안 해요!]
“…? 아, 그렇겠지.”
21일이 토요일이니… 다음 날이 일요일이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훨씬 쉬워지겠는데?
“그럼 원래 네가 그날 하려고 했던 걸 그대로 이어서 할 테니까, 뭘 하려고 했는지 말해봐.”
[음… 일요일에는 다른 일 없이 쉴 생각이었어요!]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말은 의외였다.
[그런데 토요일 밤 말이에요…. 아마 제가 그때 밖일 것 같아요.]
이놈이 밤 11시에?
“그래. 무슨 일인데.”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저 형 팬사인회 가요!]
“…….”
네가 거길 왜 와…?
‘아니, 잠깐.’
그래, 내가 토요일 날… 팬사인회 스케줄이 있긴 하다. 정확히는 테스타가 말이다.
-오성 AI 비서 ‘큐리어스 베가’ 광고모델 테스타, 팬사인회 응모 이벤트!
기업에서 하는 광고모델 팬사인회다.
‘그런데 공무원이 거긴 왜….’
[그, 당첨됐으니까요…?]
아, 사인을 받으러…….
“…….”
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당일에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야지 생각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형ㅠㅠ 취, 취소할까요?]
“아니.”
웬만하면… 앞으로 뒤로도 영향을 주지 말자. 그대로 살아야 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건 없다.
‘오히려 좋다.’
그럼 바뀌기 직전에 편하게 얼굴도 보는 거니까.
팬사인회는 저녁에 시작하니 혹시 모를 특이사항을 확인하기 딱 좋지 않은가.
“좋아. 그럼 그때 귀갓길에 택시를 타는 걸로 부탁한다.”
[예!]
큰달과의 대화는 그렇게 깔끔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팬사인회 당일.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 * *
“숙소에 돌아가서 큰달로 바뀔 거라는 거지? 11시에서 자정 사이 정도에.”
“예.”
“그래.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확인했어.”
속삭인 류청우가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지나갔다. 나는 대기실에서 물을 마시며 의상을 갈아입었다.
‘이상은 없다.’
하지만 직후, 그놈의 ‘이상’이 발생했다.
“그, 주최측 문제로 한 시간 반 정도 딜레이가 생길 것 같다고….”
“…….”
“저희 뒤에 스케줄이 없기는 합니다. 조금만 쉬면서 컨디션 조절하는 방향으로 어떨지…….”
매니저가 말을 흐렸다. 사실 말이 좋아서 ‘컨디션 조절’이지, 그냥 퇴근 늦어지는 거니 빡쳐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서 말이다.
‘광고주가 오성이라서 이쪽이 강하게 나가지도 못하는 것 같고,’
오성이 워낙 대기업이라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퇴짜 놓고 몸 아프다고 퇴근해 버리면 위험하나?’
보자, 내가 평소대로라면….
‘당연히 기다렸다가 스케줄 소화했지.’
젠장. 뒤에 스케줄 없는 시점에, 팬사인회인 점에서 이미 확정이나 다름없다. 취소했을 때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니까.
‘…강행해야 하나.’
아니면, 돌발행동을, 해봐야 하나.
나는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무, 문대야…!”
“…!”
선아현이 옆에 앉았다.
“괜찮아. 우리, 보통… 사인회 시간 생각하면, 그 전에… 끝날 거야. 너무 고민하지 말고, 문대가 편한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어….”
“그렇습니다. 통계적으로 고려했을 때… 아마 차 안이나, 행사가 끝난 후 대기실 안일 듯합니다!”
“…….”
나는 둘러싼 놈들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그리나 나는 이 판단도 짧게 후회하게 된다….
여기서 설마, 사인회 중간에 짧은 토크 코너가 장비 문제로 또 딜레이 될 줄은 몰랐던 거지.
게다가 내 예상보다 살짝 빨리 이 빌어먹을 시스템 조각이 움직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니, 이 꼴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깜박.
나는 어느새 사인지를 들고 웬 고등학생의 뒤에 서 있었다.
고등학생의 단발머리에는 햄스터 머리띠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
그 고등학생 너머로, 웃는 얼굴로 사인을 끝마친 류청우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일단 시선을 피했다.
“…?”
류청우는 의아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서서히, 사태를 파악한 듯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옆자리에, 온갖 기상천외한 팬싸용 아이템을 머리에 바른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다.
……나다. 박문대.
[형…!]
‘차라리 내가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갈까.’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행사를 무마해서 이번 턴을 넘기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본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돌발!]
상태이상?미션 실패 : 원상 복귀 (2)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원상으로
: 종료까지 47:59:59
종료까지, 48시간.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안 좋은 징조였다.
‘이대로 두다간… 다음이나 다다음쯤에는 영구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나는 줄의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다.
즉, 나와 앞 사람 둘만 박문대의 사인을 받고 지나면 되는 상황.
“…….”
[제가… 제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쓰러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잘 들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테스타 박문대다.’
[…….]
그리고 나는….
‘…멤버들에게 사인을 받는 라이트 팬.’
나는 발을 비틀거리지 않게 노력하며, 류청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상 최악의 롤플레이가 시작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6화
VTIC 주단.
갑자기 왜 뜬금없이 이놈이 사용할 뇌 리스트에서 튀어나왔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후보가 별로 없다.’
애초에 내가 사정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몸이 바뀌어서 과거로 돌아오고 시스템이 어쩌고…. 이 정신 나간 말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큼 내가 멍청한 놈도 아니고.
사건에 휘말려서 어쩔 수 없이 약간 상황을 공유한 놈들만 소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 이런 쪽에 가장 거부감 없어 보이던 놈이지.’
좀… 특이한 놈이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주단에게 연락해 봤다는 거다.
나는 우선 예의상 근황을 물었다.
“군 생활은 어떠십니까, 선배님.”
-징병제의 효율성 문제로 할 이야기가 제법 있긴 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음, 예.”
저놈이 과연 부대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 슬슬 궁금해지는군.
하지만 내 문제나 신경 쓰기로 했다.
어디 보자….
‘생활관일 테니까 주변에서 엿듣고 있는 녀석들이 있겠지.’
연예인 통화, 안 그런 척해도 누구라도 들리면 관심 가지 않겠는가.
주제를 오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 ‘게임’을 하다가 이 ‘시스템’ 관련해서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렸는데요.”
나는 몇 번 더 ‘취미 생활 때문에 가볍게 연락함, 심리 테스트 같은 가정법임’ 밑밥을 깐 다음에야 시스템 문제를 꺼냈다.
대충 요약하자면 미션 실패로 몸이 바뀌고, 이러이러한 상태 문구가 떴다는 건데….
몇 가지 질의 문답을 주고받던 놈은 결국 이렇게 반응했다.
-바디 스위칭… 로맨틱코미디 클리셰군요. 제가 정통한 류는 아니죠.
“…….”
끊을까?
‘참는다.’
이놈 뇌를 써야 하니 한번은 참는다.
“제3자의 독특한 입장이 듣고 싶었던 거니 오히려 좋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후, 주단은 대뜸 말했다.
상상도 안 해본 발상을.
-혹시 애당초 미션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은 고려해 보셨습니까?
뭐?
* * *
그 후 며칠.
테스타의 컴백 막바지 준비는 큰 잡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원래는 간만의 앨범이니 힘 빡줘서 세게 가려고 했지만, 지난 앨범도 상당히 강했던 ‘Savior’였던 것을 감안해서 마니악한 농도는 낮췄다.
‘해태 컨셉이었잖아.’
그런 걸 또 들고나오려면 한번 템포 조절이 필요하지.
미니 앨범 볼륨으로 대중성 있는 스타일리쉬한 곡.
그래서 컨셉은….
“미국 공립고등학교풍 하이틴!”
아이돌의 정석이다.
…그래, 거짓말하진 않겠다.
아직 안 뻔뻔하게 할 수 있을 나이일 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했다.
“아~ 우리도 이런 걸 자연스럽게 소화할 나이가 얼마 안 남았나. 흑흑, 너무 슬프다. 관리 더 잘해야겠어요~”
“30대 배우들도 고등학생 배역 잘만 하잖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
“아아… 음, 넵. 그렇죠.”
참고로 이 티키타카 안 되는 상황은 선아현이 수습했다.
“다, 다들 의상도 잘 어울리고, 고등학생 같았어요…! 무대도, 멋질 거예요.”
“아~ 맞아, 그거는 장담할 수 있지!”
그래. 제대로 만들긴 했거든.
뮤직비디오와 무대 고증에 차유진 선생을 모셨다. 아주 배역까지 신나서 정해주더라.
모든 것이 일정대로 착착 진행됐었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문대문대, 그 바뀌는 문제는….”
“지금은 신경 안 써도 돼. 조금만 기다려.”
“…오케이.”
그리하여 컴백 준비는 매끄럽게 잘 흘러갔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상태창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이것을 본 날.
상태이상?미션 실패 : 원상 복귀 (2)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원상으로
: 다음 시작까지 D-?
나는 정보를 깨달았다.
‘큰달.’
나는 심호흡했다.
“바뀌는 날짜 알았다.”
“상태창 봐. ‘D-??’이 ‘D-?’로 변한 거 보이지.”
나는 손가락으로 집었다.
하나씩 카운트다운 되는데 두 자릿수가 한 자릿수로 변했다는 뜻은 하나다.
10에서 9로 넘어온 것.
“9일 남았다.”
그리고 지난번과 비슷한 시간대라면….
“아마도… 그날 밤 11시 경일 확률이 가장 높겠지.”
1월 21일 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컴백 무대를 하기 전인 시기였다. 나는 열심히 당일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돌려보았다.
“…….”
여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아니, 그러면 안 돼.”
“나는 류건우로 출근하고, 너는 박문대로 스케줄을 소화한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게 우리가 당일에 해야 할 일이야.”
“그게 미션 실패 효과를 끝낼 방법 같으니까.”
나는 며칠 전 주단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뜬금없는 말을.
-…미션이 없다?
-예. 원흉을 제거하려고 했더니 사실 원흉이란 없었다는, 공허한 서사죠. 이젠 너무 흔해서 클리셰를 깨는 클리셰가 되어버리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그… 괴랄한 논리는 동의 못 했다.
그러나 그 문장 자체는, 듣는 순간 갑자기 어떤 생각을 번뜩 떠오르게 했다.
“네가 내 상태이상 실패를 미션 실패로 바꿔 줬었지. 그러니까, 시스템은 애초에 미션이라는 걸 고려한 적이 없어. 원래는 그냥 상태 이상이었지.”
그리고.
“본래 ‘미션’이란 건… 내가 보상 타 먹으려고 내 마음대로 상태창을 통해 정하는 목표를 의미하는 거야.”
이놈이 준 특성, ‘미션 체질’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너는 애초에 그걸 만들 수가 없잖아.”
팝업이 잠시 멈췄다.
“넌 상태창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큰달에겐 미션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래.
‘미션 자체가 없다가, 미션 실패가 뜨는 순간 억지로 있었던 게 되어버리는 거지.’
무작정 대체하다 보니까, 알고리즘 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무조건 미션 실패는 발생하는 거야.”
없는 미션을 해결하는 대신.
“실패 효과가 발생했을 때, 목표 대상을 해제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배님 이론대로라면, 결국 건물 탈출 게임 때 했던 게 맞는 공략법 같습니다.
내가 무너지는 건물에서 탈출해서, 시스템의 ‘목표 대상’이 상실됐던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없는 미션을 추측할 게 아니라, 미션 실패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중점으로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굉장히 뻔하게 정황이 딱 드러나더란 말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몸 바뀌고 뭘 했는지 기억해?”
“그렇지.”
그러니까, 이걸 다시 설명하자면 말이다.
“너는 ‘박문대’의 원래 일상을 제대로 살아낸 거고, 나는 ‘류건우’의 원래 일상에서 탈주한 거지.”
“그래서 박문대만 목표 대상에서 해제된 것 같아.”
이렇게 말이다.
그럼 이제 목표는 뻔하다.
“우리가 안 바뀐 채로 각자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목표 대상을 잃게 하면 돼.”
큰달은 잠시 답변이 없었다.
그리고 곧 팝업이 떴다.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다.’
완벽한 결론이 나오니 후련했다. 시기도 딱 잡혔고.
‘이제 제대로 수행만 하면….’
“…….”
흠.
그건… 좀.
나는 그놈에게 괜찮은 답변을 들은 후, 제법 호의적으로 ‘요새 군대에서 어떤 걸그룹이 인기 있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이런 답을 들었다.
-모르겠는데요. 일과 후 각자 스마트폰으로 현대문명에 접속할 수 있는데 굳이 TV 같은 매스미디어에 다 같이 몰두할 일이 없는 거죠.
-…….
-물론 보안을 위해 쓸 수 있는 범위를 통제당하긴 합니다만.
-예.
스마트폰을 써서 개꿀이라 전처럼 TV로 보는 걸그룹 자체가 대세 아니라는 말을 이렇게 하는 놈이 있다니.
-아, 재현 형에게 안부 전해주시죠.
게다가 이건 나한테 왜 말했는지 모르겠다. 너희 그룹 리더 아니냐.
아무튼, 뭐… 청려야 굳이 연락 안 해도 어디서 보게 될 것이다. 시상식 시즌이니까.
나는 주단과 했던 말의 회상을 끝내며, 한숨을 참았다.
“…도움이 됐지. 그래. 그래서 21일 밤에 우리가 바뀌면, 내가 22일에 출근해서 할 일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둬야 할 것 같은데.”
“…? 아, 그렇겠지.”
21일이 토요일이니… 다음 날이 일요일이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훨씬 쉬워지겠는데?
“그럼 원래 네가 그날 하려고 했던 걸 그대로 이어서 할 테니까, 뭘 하려고 했는지 말해봐.”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말은 의외였다.
이놈이 밤 11시에?
“그래. 무슨 일인데.”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
네가 거길 왜 와…?
‘아니, 잠깐.’
그래, 내가 토요일 날… 팬사인회 스케줄이 있긴 하다. 정확히는 테스타가 말이다.
-오성 AI 비서 ‘큐리어스 베가’ 광고모델 테스타, 팬사인회 응모 이벤트!
기업에서 하는 광고모델 팬사인회다.
‘그런데 공무원이 거긴 왜….’
아, 사인을 받으러…….
“…….”
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
웬만하면… 앞으로 뒤로도 영향을 주지 말자. 그대로 살아야 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건 없다.
‘오히려 좋다.’
그럼 바뀌기 직전에 편하게 얼굴도 보는 거니까.
팬사인회는 저녁에 시작하니 혹시 모를 특이사항을 확인하기 딱 좋지 않은가.
“좋아. 그럼 그때 귀갓길에 택시를 타는 걸로 부탁한다.”
큰달과의 대화는 그렇게 깔끔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팬사인회 당일.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 * *
“숙소에 돌아가서 큰달로 바뀔 거라는 거지? 11시에서 자정 사이 정도에.”
“예.”
“그래.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확인했어.”
속삭인 류청우가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지나갔다. 나는 대기실에서 물을 마시며 의상을 갈아입었다.
‘이상은 없다.’
하지만 직후, 그놈의 ‘이상’이 발생했다.
“그, 주최측 문제로 한 시간 반 정도 딜레이가 생길 것 같다고….”
“…….”
“저희 뒤에 스케줄이 없기는 합니다. 조금만 쉬면서 컨디션 조절하는 방향으로 어떨지…….”
매니저가 말을 흐렸다. 사실 말이 좋아서 ‘컨디션 조절’이지, 그냥 퇴근 늦어지는 거니 빡쳐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서 말이다.
‘광고주가 오성이라서 이쪽이 강하게 나가지도 못하는 것 같고,’
오성이 워낙 대기업이라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퇴짜 놓고 몸 아프다고 퇴근해 버리면 위험하나?’
보자, 내가 평소대로라면….
‘당연히 기다렸다가 스케줄 소화했지.’
젠장. 뒤에 스케줄 없는 시점에, 팬사인회인 점에서 이미 확정이나 다름없다. 취소했을 때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니까.
‘…강행해야 하나.’
아니면, 돌발행동을, 해봐야 하나.
나는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무, 문대야…!”
“…!”
선아현이 옆에 앉았다.
“괜찮아. 우리, 보통… 사인회 시간 생각하면, 그 전에… 끝날 거야. 너무 고민하지 말고, 문대가 편한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어….”
“그렇습니다. 통계적으로 고려했을 때… 아마 차 안이나, 행사가 끝난 후 대기실 안일 듯합니다!”
“…….”
나는 둘러싼 놈들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그리나 나는 이 판단도 짧게 후회하게 된다….
여기서 설마, 사인회 중간에 짧은 토크 코너가 장비 문제로 또 딜레이 될 줄은 몰랐던 거지.
게다가 내 예상보다 살짝 빨리 이 빌어먹을 시스템 조각이 움직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니, 이 꼴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깜박.
나는 어느새 사인지를 들고 웬 고등학생의 뒤에 서 있었다.
고등학생의 단발머리에는 햄스터 머리띠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
그 고등학생 너머로, 웃는 얼굴로 사인을 끝마친 류청우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일단 시선을 피했다.
“…?”
류청우는 의아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서서히, 사태를 파악한 듯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옆자리에, 온갖 기상천외한 팬싸용 아이템을 머리에 바른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다.
……나다. 박문대.
‘차라리 내가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갈까.’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행사를 무마해서 이번 턴을 넘기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본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상태이상?미션 실패 : 원상 복귀 (2)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원상으로
: 종료까지 47:59:59
종료까지, 48시간.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안 좋은 징조였다.
‘이대로 두다간… 다음이나 다다음쯤에는 영구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나는 줄의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다.
즉, 나와 앞 사람 둘만 박문대의 사인을 받고 지나면 되는 상황.
“…….”
‘…잘 들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테스타 박문대다.’
그리고 나는….
‘…멤버들에게 사인을 받는 라이트 팬.’
나는 발을 비틀거리지 않게 노력하며, 류청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상 최악의 롤플레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