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화
무대를 마친 팀은 리액션 컷을 위해 단체 대기실에 돌아왔다. 다른 팀의 무대를 관람하도록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방이었다.
참고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놈 저놈 가릴 것 없이 대오열하는 통에 다들 눈깔이 붕어처럼 부어 있다.
솔직히 울 만도 했다. 열흘 넘게 제대로 못 쉬면서 이 악물고 준비한 걸 무사히 끝냈으니까. 나도 20살이었으면 질질 짰을 것이다.
“야 문대는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 너 혹시 정말 국정원 출신….”
“아닙니다.”
다 쉰 떡밥을 개그로 써먹으려는 골드 1의 시도를 제지해 줬다. 주변에서 팀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분위기는 편안했다.
‘잘했다는 걸 안다 이거지.’
다른 팀 참가자들과 같이 있으니 암묵적으로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중간 평가와 리허설로 이미 견적이 나온 상태였다.
다른 팀에서 누가 갑자기 미친 잠재력을 발휘해서 무대에서 축지법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이건 이긴 판이라는 것이 말이다.
덕분에 다른 팀의 무대가 나올 때마다 유독 리액션이 잘 나왔다.
맘이 편하니 사심 없이 다른 팀의 무대를 즐길 수 있다는 거겠지.
‘재밌네.’
나도 모처럼 관람객의 자세로 돌아가서 무대들을 감상했다. 물론 적당히 주변 봐가면서 반응도 좀 해주고.
‘일단 두세 번째는 텄다.’
두 번째 팀은 일단 편곡이 뜬금없었고, 제시간 내로 안무를 완성 못 해서 후반부 댄스 브레이크 때 인원의 절반 이상이 동작을 날렸다.
세 번째 팀은 큰세진처럼 섹시 컨셉을 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센스 없이 너무 과하기만 해서 좀…… 사람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저 정도면 여자들이 더 싫어하겠는데.’
과연 방송에서 얼마나 편집으로 보정 해줄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팀은 그나마 본전은 건진 것 같았다.
골드 2가 있는 이 팀은 귀엽고 신나는 곡을 골랐는데, 원곡에서 크게 다른 편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잘 어울렸다.
“희승이 잘한다!”
골드 1이 골드 2가 센터로 나오자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도 박수를 보냈다.
이제 남은 건 한 팀.
바로 불지옥 맛 류청우 조였다.
‘불쌍한 놈.’
이 판에 류청우에게 측은지심이 안 생긴다면 그건 조별과제를 해본 적 없는 놈일 것이다.
이세진과 최원길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런데 그걸 끌고 트롤러 하나와 차유진까지 챙겨서 무대를 완성했다?
그것만으로도 돈을 받아야 할 업적이었다.
참고로 차유진은 여전히 기가 죽은 상태고, 그동안 이삼일에 한 번씩 찾아와서 간식을 뜯어갔었다.
과연 입에 들어간 초콜릿값만큼 무대에서 힘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못 써도 상관없었다. 내 팀도 아니고 뭐.
“화이팅!”
대기실을 떠나 무대로 나가는 팀마다 격려를 보내던 큰세진이 류청우 팀에게도 응원을 보냈다.
약간 시간이 흐른 후, 모니터 화면에 류청우 조가 등장했다.
“시작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등수 높고 등급 높은 놈들이 모인 팀이다 보니 대기실 분위기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물론 잘하는 게 아니라 망하길 바라는 기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류청우 팀은 망하지 않았다.
‘…저 새끼 왜 날아다니냐.’
차유진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갔기 때문이다.
후렴구에 센터로 치고 나올 때마다 무대 완성도가 좋아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다.
‘저래서 1등 했구나.’
멘탈 나간 줄 알았는데 무대에 올라가니 사람이 달라졌다.
‘특성 덕인가.’
나는 지난 팀전에서 확인했던 차유진의 특성을 떠올렸다.
[특성 : 블랙홀(A)]
: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인력
무대 몰입도 +150%
이런 걸 달고 있으니 웬만하면 데뷔할 수밖에 없지.
“오오오!”
류청우 팀의 무대가 끝나자 대기실의 참가자들이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차, 차유진 씨 정말 잘한다.”
“그러게.”
팀이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초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차유진이 날고 기었어도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오프닝이었다는 점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 인상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무대 순서를 정하는 미니게임을 말아먹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골드 1이 그렇게까지 털릴 줄은 몰랐지.
당시 팀 대표로 미니게임에 나간 골드 1의 위풍당당한 발언이 떠올랐다.
-나만 믿으라고!
…그러나 이 발언이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팀 내 가위바위보에 모든 힘을 쏟아낸 골드 1은, 이어지는 팀 대표전에서 거짓말처럼 연달아 참패를 당했다.
만일 이 순서 때문에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못 한다?
사실 아쉬운 건 골드 1뿐이다. 나머지 팀원들은 어지간히 순위가 떨어져도 최종까지는 갈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골드 1은 순위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에 이번 팀전 우승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경향성을 봤을 때 제작진이 분명 이번 생존에 도움이 될 걸 우승상품으로 줄 테니까.
‘곧 발표하겠군.’
마지막 팀 무대가 끝났으니, 앞으로 팀전 순위발표까지 대략 1시간 전후로 남은 셈이다.
이번에도 1, 2위만 남겨두고 다음 순위 발표식으로 미루는 개짓거리를 할 확률이 높았으나, 어쨌든 대강 윤곽은 잡히겠지.
그리고 한 시간 반 뒤, 결과는 정확히 예측대로였다.
“남은 1위 후보는 두 팀! 팀과 팀입니다! 과연 어떤 팀이 최종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까요?”
저 가 류청우의 팀명이다. 여기까지는 뻔한 전개였다.
“결과는… 순위 발표식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그것도 예상했고.
“하지만 매번 이러면 여러분, 너무 지치겠지요? 그래서 이번 팀전 우승 혜택을 지금 발표하겠습니다!”
“어어?”
그건… 몰랐네.
“우승 혜택은… 다음 순위 발표식에서 무조건 생존입니다!”
“…!”
너무 과하게 좋았다. 인원이 30명밖에 안 남았는데 굳이 이런 보상을 내건다고?
아니나 다를까 MC가 맥을 끊었다.
“단,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 다음 순위 발표식 전까지, 1위 후보 팀들은 팀 내부 상의를 통하여 혜택을 받아갈 한 명의 참가자를 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작진 놈들의 발상은 어째 프로그램이 후반에 접어들수록 기상천외해지고 있었다.
이거… 못 받아가는 나머지 놈들한테는 우승 벌칙 아닌가?
받아가는 놈도 같은 팀원 팬들에게 집중포화 당해서 욕이란 욕은 다 처먹게 생겼는데.
하기야 대충 공시생이던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제작진들은 최종화까지 어그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기가 막힌 놈들이었다.
어쨌든, 사실 팀에서야 별문제 없었다. 받아갈 놈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골드 1 줘야 공리주의적으로 맞지.’
어차피 나머지 놈들은 탈락할 것 같지도 않다. 괜히 받아서 논란이 되느니 깔끔하게 주고 이미지 챙기는 걸 선호하겠지.
문제가 있다면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조리 돌림 당하던 선아현이 지레 겁먹고 본인이 받고 싶다고 말하는 그림인데, 성격상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큰세진은 학폭 루머 때문에 여론이 반전된 상태니 본인 순위를 잘 짐작할 테고.
대충 눈으로 팀원들 표정을 훑었다. 골드 1을 힐끗거리는 게, 다들 비슷한 발상을 한 것이 눈에 보였다.
골드 1은 민망해 보였지만 거절할 눈치는 아니었다. 예의상 사양만 몇 번 하겠지.
‘이쪽은 문제없고.’
역시 문제는 저쪽 팀인 것 같은데.
팀에서 과연 누가 어떤 깽판을 칠지 두근두근 기다리는 제작진들의 마음이 눈에 선했다.
“그럼 3차 팀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주 여러분, 순위 발표식에서 뵙겠습니다~”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참가자들을 끝으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촬영 때 뵙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인사성 바른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 옷을 갈아입고 나온 팀은 일단 다시 모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승 혜택을 골드 1에게 몰아줬다.
“저희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 최연장자가 받아가는 걸로 할까요?”
“넵.”
“찬성합니다.”
“조, 좋아요!”
“야, 진짜 고마운데 그래도 좀 더 상의해 보고…….”
큰세진이 허허 웃으며 말을 정리했다.
“형님, 모르시겠습니까? 더 상의할수록 잘 시간만 늦어진다는 것을…….”
“아.”
촬영이 끝나고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자 슬슬 지난 열흘간 못 잔 잠이 끝도 없이 밀려온 것이다.
덕분에 다들 눈을 반만 뜬 채로 대화하는 중이다.
“그, 그래. 고맙다 얘들아. 내가 밥 살게.”
“하하. 고마워요 형! 소고기 같이 양심 없는 메뉴는 안 부를게요.”
“…….”
나 들으라고 저격한 것 같지만 무시하자. 피곤하니까.
어쨌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팀은 해산했다.
나는 하품을 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스마트폰 내비를 찍었다.
“무, 문대야.”
“어.”
고개를 돌리자 선아현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설마 때리려는 건 아니겠지.
“왜.”
“지, 집 갈 때 같이 갈래? 부, 부모님이 데리러 오셔서…….”
“어… 그래. 고맙다.”
프로그램 인지도상 이젠 버스에 타서 이동하긴 힘들 것 같아서 안 그래도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덕분에 택시비 좀 절약하겠군.’
다른 참가자 부모님을 뵙는 건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뭐 차 얻어타는 것 정도야 별일 있겠나 싶다.
“아, 아니야! 고, 고맙긴!”
선아현은 앞장서서 신나게 걸어가더니, 도롯가의 검은 세단 앞에서 멈춰섰다.
외제차였다.
‘역시 집이 좀 사는 것 같군.’
선아현이 자취하는 곳 보고 짐작은 했었다.
나는 차에 올라타는 선아현을 따라 들어가며,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가 문대구나! 반갑다.”
“어서 타라~ 우리 아현이 이번에도 잘했니?”
“아, 아빠!”
예상했던 것보다도 가족 분위기가 화목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선아현이 허둥지둥거리자 부모님이 흐뭇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예. 잘했습니다. 방송 보면 놀라실걸요.”
“역시 우리 아들이야~”
선아현은 수치사할 것 같은 얼굴로 앞 좌석의 뒤판에 얼굴을 박았다. 가족을 만나니 표현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역시 만악의 근원은 또래 관계였군.’
나는 정중하게 원룸 주소를 알려드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편안하게 이동을 즐겼다. 가끔 질문에 대답만 하면 되니 꿀이었다.
화목한 친구 가족을 보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단계는 옛적에 지났다. 덕분에 이 편안한 착석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 * *
“잘 들어가요~”
“넵. 감사합니다.”
“여, 연락할게!”
“그래.”
나는 선아현의 가족들과 여러 번 작별인사를 한 뒤에야 내 주소에서 내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TMI를 너무 들었군…….’
선아현이 유럽으로 유학을 갔고 발레도 배웠다는 것까지 내가 알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만, 차를 얻어탄 값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나는 낡은 계단과 복도를 지나서 내가 계약한 원룸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들어가면 무조건 잠부터…….
‘아.’
이런 X발….
문이 열려 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화
무대를 마친 팀은 리액션 컷을 위해 단체 대기실에 돌아왔다. 다른 팀의 무대를 관람하도록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방이었다.
참고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놈 저놈 가릴 것 없이 대오열하는 통에 다들 눈깔이 붕어처럼 부어 있다.
솔직히 울 만도 했다. 열흘 넘게 제대로 못 쉬면서 이 악물고 준비한 걸 무사히 끝냈으니까. 나도 20살이었으면 질질 짰을 것이다.
“야 문대는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 너 혹시 정말 국정원 출신….”
“아닙니다.”
다 쉰 떡밥을 개그로 써먹으려는 골드 1의 시도를 제지해 줬다. 주변에서 팀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분위기는 편안했다.
‘잘했다는 걸 안다 이거지.’
다른 팀 참가자들과 같이 있으니 암묵적으로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중간 평가와 리허설로 이미 견적이 나온 상태였다.
다른 팀에서 누가 갑자기 미친 잠재력을 발휘해서 무대에서 축지법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이건 이긴 판이라는 것이 말이다.
덕분에 다른 팀의 무대가 나올 때마다 유독 리액션이 잘 나왔다.
맘이 편하니 사심 없이 다른 팀의 무대를 즐길 수 있다는 거겠지.
‘재밌네.’
나도 모처럼 관람객의 자세로 돌아가서 무대들을 감상했다. 물론 적당히 주변 봐가면서 반응도 좀 해주고.
‘일단 두세 번째는 텄다.’
두 번째 팀은 일단 편곡이 뜬금없었고, 제시간 내로 안무를 완성 못 해서 후반부 댄스 브레이크 때 인원의 절반 이상이 동작을 날렸다.
세 번째 팀은 큰세진처럼 섹시 컨셉을 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센스 없이 너무 과하기만 해서 좀…… 사람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저 정도면 여자들이 더 싫어하겠는데.’
과연 방송에서 얼마나 편집으로 보정 해줄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팀은 그나마 본전은 건진 것 같았다.
골드 2가 있는 이 팀은 귀엽고 신나는 곡을 골랐는데, 원곡에서 크게 다른 편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잘 어울렸다.
“희승이 잘한다!”
골드 1이 골드 2가 센터로 나오자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도 박수를 보냈다.
이제 남은 건 한 팀.
바로 불지옥 맛 류청우 조였다.
‘불쌍한 놈.’
이 판에 류청우에게 측은지심이 안 생긴다면 그건 조별과제를 해본 적 없는 놈일 것이다.
이세진과 최원길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런데 그걸 끌고 트롤러 하나와 차유진까지 챙겨서 무대를 완성했다?
그것만으로도 돈을 받아야 할 업적이었다.
참고로 차유진은 여전히 기가 죽은 상태고, 그동안 이삼일에 한 번씩 찾아와서 간식을 뜯어갔었다.
과연 입에 들어간 초콜릿값만큼 무대에서 힘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못 써도 상관없었다. 내 팀도 아니고 뭐.
“화이팅!”
대기실을 떠나 무대로 나가는 팀마다 격려를 보내던 큰세진이 류청우 팀에게도 응원을 보냈다.
약간 시간이 흐른 후, 모니터 화면에 류청우 조가 등장했다.
“시작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등수 높고 등급 높은 놈들이 모인 팀이다 보니 대기실 분위기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물론 잘하는 게 아니라 망하길 바라는 기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류청우 팀은 망하지 않았다.
‘…저 새끼 왜 날아다니냐.’
차유진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갔기 때문이다.
후렴구에 센터로 치고 나올 때마다 무대 완성도가 좋아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다.
‘저래서 1등 했구나.’
멘탈 나간 줄 알았는데 무대에 올라가니 사람이 달라졌다.
‘특성 덕인가.’
나는 지난 팀전에서 확인했던 차유진의 특성을 떠올렸다.
: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인력
무대 몰입도 +150%
이런 걸 달고 있으니 웬만하면 데뷔할 수밖에 없지.
“오오오!”
류청우 팀의 무대가 끝나자 대기실의 참가자들이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차, 차유진 씨 정말 잘한다.”
“그러게.”
팀이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초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차유진이 날고 기었어도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오프닝이었다는 점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 인상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무대 순서를 정하는 미니게임을 말아먹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골드 1이 그렇게까지 털릴 줄은 몰랐지.
당시 팀 대표로 미니게임에 나간 골드 1의 위풍당당한 발언이 떠올랐다.
-나만 믿으라고!
…그러나 이 발언이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팀 내 가위바위보에 모든 힘을 쏟아낸 골드 1은, 이어지는 팀 대표전에서 거짓말처럼 연달아 참패를 당했다.
만일 이 순서 때문에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못 한다?
사실 아쉬운 건 골드 1뿐이다. 나머지 팀원들은 어지간히 순위가 떨어져도 최종까지는 갈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골드 1은 순위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에 이번 팀전 우승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경향성을 봤을 때 제작진이 분명 이번 생존에 도움이 될 걸 우승상품으로 줄 테니까.
‘곧 발표하겠군.’
마지막 팀 무대가 끝났으니, 앞으로 팀전 순위발표까지 대략 1시간 전후로 남은 셈이다.
이번에도 1, 2위만 남겨두고 다음 순위 발표식으로 미루는 개짓거리를 할 확률이 높았으나, 어쨌든 대강 윤곽은 잡히겠지.
그리고 한 시간 반 뒤, 결과는 정확히 예측대로였다.
“남은 1위 후보는 두 팀! 팀과 팀입니다! 과연 어떤 팀이 최종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까요?”
저 가 류청우의 팀명이다. 여기까지는 뻔한 전개였다.
“결과는… 순위 발표식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그것도 예상했고.
“하지만 매번 이러면 여러분, 너무 지치겠지요? 그래서 이번 팀전 우승 혜택을 지금 발표하겠습니다!”
“어어?”
그건… 몰랐네.
“우승 혜택은… 다음 순위 발표식에서 무조건 생존입니다!”
“…!”
너무 과하게 좋았다. 인원이 30명밖에 안 남았는데 굳이 이런 보상을 내건다고?
아니나 다를까 MC가 맥을 끊었다.
“단,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 다음 순위 발표식 전까지, 1위 후보 팀들은 팀 내부 상의를 통하여 혜택을 받아갈 한 명의 참가자를 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작진 놈들의 발상은 어째 프로그램이 후반에 접어들수록 기상천외해지고 있었다.
이거… 못 받아가는 나머지 놈들한테는 우승 벌칙 아닌가?
받아가는 놈도 같은 팀원 팬들에게 집중포화 당해서 욕이란 욕은 다 처먹게 생겼는데.
하기야 대충 공시생이던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제작진들은 최종화까지 어그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기가 막힌 놈들이었다.
어쨌든, 사실 팀에서야 별문제 없었다. 받아갈 놈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골드 1 줘야 공리주의적으로 맞지.’
어차피 나머지 놈들은 탈락할 것 같지도 않다. 괜히 받아서 논란이 되느니 깔끔하게 주고 이미지 챙기는 걸 선호하겠지.
문제가 있다면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조리 돌림 당하던 선아현이 지레 겁먹고 본인이 받고 싶다고 말하는 그림인데, 성격상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큰세진은 학폭 루머 때문에 여론이 반전된 상태니 본인 순위를 잘 짐작할 테고.
대충 눈으로 팀원들 표정을 훑었다. 골드 1을 힐끗거리는 게, 다들 비슷한 발상을 한 것이 눈에 보였다.
골드 1은 민망해 보였지만 거절할 눈치는 아니었다. 예의상 사양만 몇 번 하겠지.
‘이쪽은 문제없고.’
역시 문제는 저쪽 팀인 것 같은데.
팀에서 과연 누가 어떤 깽판을 칠지 두근두근 기다리는 제작진들의 마음이 눈에 선했다.
“그럼 3차 팀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주 여러분, 순위 발표식에서 뵙겠습니다~”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참가자들을 끝으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촬영 때 뵙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인사성 바른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 옷을 갈아입고 나온 팀은 일단 다시 모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승 혜택을 골드 1에게 몰아줬다.
“저희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 최연장자가 받아가는 걸로 할까요?”
“넵.”
“찬성합니다.”
“조, 좋아요!”
“야, 진짜 고마운데 그래도 좀 더 상의해 보고…….”
큰세진이 허허 웃으며 말을 정리했다.
“형님, 모르시겠습니까? 더 상의할수록 잘 시간만 늦어진다는 것을…….”
“아.”
촬영이 끝나고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자 슬슬 지난 열흘간 못 잔 잠이 끝도 없이 밀려온 것이다.
덕분에 다들 눈을 반만 뜬 채로 대화하는 중이다.
“그, 그래. 고맙다 얘들아. 내가 밥 살게.”
“하하. 고마워요 형! 소고기 같이 양심 없는 메뉴는 안 부를게요.”
“…….”
나 들으라고 저격한 것 같지만 무시하자. 피곤하니까.
어쨌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팀은 해산했다.
나는 하품을 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스마트폰 내비를 찍었다.
“무, 문대야.”
“어.”
고개를 돌리자 선아현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설마 때리려는 건 아니겠지.
“왜.”
“지, 집 갈 때 같이 갈래? 부, 부모님이 데리러 오셔서…….”
“어… 그래. 고맙다.”
프로그램 인지도상 이젠 버스에 타서 이동하긴 힘들 것 같아서 안 그래도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덕분에 택시비 좀 절약하겠군.’
다른 참가자 부모님을 뵙는 건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뭐 차 얻어타는 것 정도야 별일 있겠나 싶다.
“아, 아니야! 고, 고맙긴!”
선아현은 앞장서서 신나게 걸어가더니, 도롯가의 검은 세단 앞에서 멈춰섰다.
외제차였다.
‘역시 집이 좀 사는 것 같군.’
선아현이 자취하는 곳 보고 짐작은 했었다.
나는 차에 올라타는 선아현을 따라 들어가며,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가 문대구나! 반갑다.”
“어서 타라~ 우리 아현이 이번에도 잘했니?”
“아, 아빠!”
예상했던 것보다도 가족 분위기가 화목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선아현이 허둥지둥거리자 부모님이 흐뭇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예. 잘했습니다. 방송 보면 놀라실걸요.”
“역시 우리 아들이야~”
선아현은 수치사할 것 같은 얼굴로 앞 좌석의 뒤판에 얼굴을 박았다. 가족을 만나니 표현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역시 만악의 근원은 또래 관계였군.’
나는 정중하게 원룸 주소를 알려드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편안하게 이동을 즐겼다. 가끔 질문에 대답만 하면 되니 꿀이었다.
화목한 친구 가족을 보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단계는 옛적에 지났다. 덕분에 이 편안한 착석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 * *
“잘 들어가요~”
“넵. 감사합니다.”
“여, 연락할게!”
“그래.”
나는 선아현의 가족들과 여러 번 작별인사를 한 뒤에야 내 주소에서 내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TMI를 너무 들었군…….’
선아현이 유럽으로 유학을 갔고 발레도 배웠다는 것까지 내가 알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만, 차를 얻어탄 값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나는 낡은 계단과 복도를 지나서 내가 계약한 원룸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들어가면 무조건 잠부터…….
‘아.’
이런 X발….
문이 열려 있다.